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책보다
  • 2018/11 제46호

우주는 새로운 전쟁터가 되고 있다

헬런 캘디컷 · 크레이그 아이젠드레스, 《우주 무기화 시대의 미래 예측 보고서》

  • 이준혁

“처음으로 인류가 우주에 진출했는데, 그 사람은 빨갱이랍니다.”

1961년, 소련의 우주선 보스토크 1호가 우주 공간으로 날아올랐다. 여기에 탑승한 유리 가가린은 “지구는 푸르다”고 말했다.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냉전의 경쟁자, 미국은 얼어붙었다. 우주 개발을 이끄는 건 당연히 자신들이었어야 했는데! 분노에 가득 찬 뉴스 앵커가 독설을 쏟아냈다. 최초의 우주인이 왜 빨갱이여야 했냐고.

독이 오른 미국은 우주 개발에 막대한 돈을 퍼부었다. 결국 소련을 제치고 달에 인간을 보낸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달에 꽂혀있는 성조기는 앞으로 펼쳐질 우주 시대의 리더는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미국의 우주 개발이 단순히 질투 때문은 아니었다. 우주 개발은 곧 선진 군사기술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우주선 발사에 쓰이는 로켓과 핵탄두를 실어 나르는 미사일의 원리는 과학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인공위성과 인터넷, GPS가 적국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 동기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우주 시대의 리더란 곧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주 시대 50여 년의 역사는 미지의 공간을 탐사한다는 과학적 낭만과 최첨단 군사기술을 향한 욕구가 마구 뒤엉킨 무언가였다.

그런 모순된 역사를 잘 정리한 책이 있어 소개한다. 미국의 반핵 운동가들이 지은 다소 솔직한 제목의 책 《우주 무기화 시대의 미래 예측 보고서》다. 
 

냉전과 우주의 군사화

우주에 대한 군사적 관심은 2차 세계대전에서 시작되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인류 최초의 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탄도미사일은 우주 공간을 거쳐 무시무시한 속도로 목표물을 향해 낙하하는 무기였다. 덕분에 항공기나 전차와 달리 한 번 발사되면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과 소련은 탄도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렸고 결국 50년대 후반에 핵탄두를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

80년대에는 레이건 대통령이 그 유명한 전략방위구상(SDI), 일명 ‘스타워즈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적국이 쏜 탄도미사일을 인공위성의 레이저 포격으로 격추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허황된 계획은 결국 비용과 효용성 문제로 폐기되었다. 하지만 스타워즈 계획의 핵심 아이디어는 현대의 미사일방어(MD)에 고스란히 옮겨갔다. 미사일방어는 자신은 핵공격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상대를 타격할 수 있는, 핵 선제공격을 위한 계획이다. 지금도 미사일방어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우주의 군비 경쟁을 통제하자

지금까지 우주 공간에서의 군비 경쟁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9년 UN은 ‘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했다. 여기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주의 군사화를 강력하게 추동했던 미국이었다. 1963년 해당 위원회가 발표한 선언문은 UN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 선언은 1967년 제정된 ‘우주조약’(정식 명칭은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우주의 탐사 및 이용에서 국가 활동을 규율하는 원칙에 관한 조약’)으로 정식화되었다. 이 조약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군비경쟁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규정은 제4조다. 제4조는 조약 당사국들은 “핵무기를 비롯해 기타 어떤 종류든 대량살상무기를 적재한 물체를 지구 궤도에 배치하거나, 그와 같은 무기를 천체에 설치하거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우주에 머물게 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다. 우주가 핵전쟁이나 대량살상무기의 각축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인 셈이다.

하지만 우주조약에는 커다란 약점이 있다. 대량살상무기만 금지되었을 뿐 재래무기의 우주 배치는 금지하지 못했다. 당연한 내용이 삭제된 이유는 전면적인 비무장화는 안 된다는 미국의 입장 때문이었다.
 

미국의 우주군 창설 계획

냉전은 끝났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우주의 적을 찾고 있다. 올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주군 창설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육·해·공군과 해병대, 해안 경비대와 다른 별도의 제6군으로서 우주군을 창설하며 그 전에 올해 안에 우주사령부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위성요격기술을 비롯한 고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의 우주시스템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주군 창설은 레이건의 스타워즈 계획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우주군은 단지 우주에서 지상 목표를 타격하거나 우주에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우주공간 자체를 장악하여 우주에서의 절대적 패권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1997년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2020년을 위한 비전’에 명시되어 있다. 문서는 “지상과 해상, 공중의 우위와 더불어 우주에서의 우위로 전방위 지배가 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미국과 패권 경쟁을 펼치는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중국은 2007년에 자국의 기상위성을 공격해 파괴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로서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만 가지고 있던 인공위성 타격무기를 보유한 세 번째 나라가 되었다. 트럼프의 우주군 창설 계획에도 중국 정부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입장을 대변하는 주간지 〈환구시보〉는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미국과 우주에서의 전면적인 군비경쟁을 펼치기 중국의 국력은 아직 약하다는 점을 시인하면서도 “중국은 반드시 환상을 버리고 미국의 우주 패권을 저지할 스스로의 능력을 결연히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 궤도엔 쓰레기가 너무 많아!

우주 군비경쟁이 초래할 위험은 불 보듯 뻔하다. 금전적 비용, 세계 평화에 미치는 악영향 등등. 이러한 비판은 책에도 잘 적혀있다. 그런데 저자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서도 우주의 군사화를 비판한다. ‘우주 쓰레기’ 문제다.

과학자들은 지구 궤도 주변에 지름 10센티미터 이상의 쓰레기가 2만 개 이상, 1~10센티미터 사이의 물체는 수천만 개나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주에서는 중력이 없기 때문에 지름 0.1밀리미터 미만의 입자도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에 파괴적 손상을 입힐 수 있다. 심지어 지름 10센티미터의 잔해가 고도 300~2000킬로미터의 저궤도에서 충돌할 경우 시속 190킬로미터로 달리던 35톤 트럭에 부딪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여기에 가장 취약한 것이 저궤도에 위치한 위성들인데, 이들 대부분은 우리 일상과 밀접한 기상관측, 통신 등에 사용되는 위성이다.
 

이에 많은 국가들이 우주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고 협력하고 있다. 문제는 군사 활동에 의한 쓰레기 발생은 규제 범위 밖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우주에서의 군사 활동의 대부분인 미사일방어나 인공위성 요격은 다른 어떤 활동보다 많은 쓰레기를 발생시킨다. 앞서 언급한 2007년 중국의 위성 요격 실험 한 번으로 무려 15만 개의 파편이 생겼는데 단일 사건으로는 역대 최고의 수치다. 미국과 중국의 우주 군비경쟁이 격화될수록 우주 쓰레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우주 쓰레기로 인공위성이 타격을 입는다면 우리 일상생활에서 주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심각할 경우 추가적인 인공위성이나 우주선 발사, 우주정거장 건설 등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나사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가 1978년에 이미 제기한 문제다. 그러나 우주 쓰레기를 처리할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도 않았다.
 

생소한 주제를 폭넓게 비판한 책

이 책은 2010년에 이미 나온 책을 제목만 바꿔서 다시 출판한 것이다. 저자들이 이 책을 썼을 때는 무려 2007년이다. 아무래도 지금 보기에는 옛날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당장 이 글을 쓸 때도 다른 자료를 많이 참조했다. 읽으면서도 최근 동향을 담은 새로운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우주의 군사화 문제에 포괄적으로, 그것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먼 얘기처럼 들려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큰 얘기다. 특히 지구촌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 시대에서는 더더욱. 관련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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