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9/03 제50호

생물학적 여성의 생존을 넘어 여성의 삶을 바꾸는 힘으로

  • 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팀장 김유미
2016년 즈음부터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다. ‘메갈리아’의 탄생,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행동, 소라넷 폐지,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인기 등을 통과하는 그 과정은 매우 갑작스러웠고 이전과는 단절적으로 느껴졌다. 가히 ‘페미니즘 열풍’이라 할 만한 분위기였다.  

여성으로 살면서 마주했던 부당한 경험들을 재해석하며 ‘페미니즘 열풍’에 동참한 수많은 여성을 단일한 조직이나 경향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온·오프라인 담론 및 행동 양태를 통해 일정한 경향이 만들어져 온 건 사실이다. 그것의 가장 가시적인 형태는 ‘워마드(메갈리아가 분열되며 만들어진 사이트로, 여성의 인권만을 위한 커뮤니티를 표방)’,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이른바 혜화역 시위)’ 등에서 그러하듯 남성 및 기존 사회운동과의 연계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분리주의다. 지금 한국에서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향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를 우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처: 한겨레('불편한용기' 제공)

여기에서는 이들의 입장을 잠정적으로 ‘전투적 여성주의’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여성 문제가 다른 사회적 모순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피기보다 ‘여성(문제) 우선주의’ 입장을 강하게 취한다는 점, ▲운동의 주체 역시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하는 점(기본적으로 남성의 참여를 거부, 입장에 따라 트랜스 여성의 참여도 거부),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매우 공격적·폭력적인 언행을 장려하고 어떤 도덕적 평가도 거부한다는 점 등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사회를 바꾸려는 이념이자 운동이었으며 사회운동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그러나 전투적 여성주의적 입장은 피해자로서 여성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체성의 정치’로서의 성격이 특히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전투적 여성주의의 특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첫 번째는 배타적 여성 범주를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페미니즘을 탈정치적 생존 자원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첫 번째 특징: 배타적 여성 범주의 강조

전투적 여성주의는 기본적으로 급진주의(래디컬) 페미니즘의 입장을 따른다고 자처하고 있으며 그와 유사한 활동 양태를 보인다.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가시화하여 여성 동일성에 호소하고, 여성 개인의 행동 변화(탈코르셋), 남성에 대한 단죄(미러링) 등 대항문화·대항폭력으로서의 실천에 집중하는 것이다. 여성 억압의 원인에 대해서도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를 지적하는데, 여기에 특별히 ‘한남(한국 남성의 줄임말)’의 열등하고 위선적인 행태에 관한 비난이 더해진다. 

사실 1990년대 반성폭력 운동을 포함해 한국의 여성 운동계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왔다. 가부장제라는 분석틀, 문화주의적 실천, 성폭력 사건의 폭로와 가해자 처벌 강조 등이 단적인 예다. 그런데도 ‘전투적 여성주의’ 경향이 굳이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소환하는 이유는 현재 여성학계의 주류가 여성 범주의 해체와 다양한 소수자성의 인정이라는 입장(이른바 ‘교차성 페미니즘’)을 채택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이들은 이러한 경향이 페미니즘을 모든 소수자 정치학과 동일시하면서 여성 인권을 위한 운동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변질시켰으며,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계가 여성운동의 단일성과 집중력을 흐린다고 비판한다. 즉, 여성 내부의 차이가 주목받기 이전의 초기 급진주의 페미니즘 운동처럼 ‘여성’이라는 공통의 범주와 그에 따른 문제들을 기반으로 활동하겠다는 의미다.
 

2018년도에 이들이 가장 집중한 사회적 이슈는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과 임신 중단 합법화다. 각각 ‘불편한용기’와 ‘비웨이브’라는 커뮤니티의 주최로 도심에서 수차례의 시위가 열렸다. 시위의 주최 측은 본인들이 어떤 단체와도 무관한 익명의 여성 개인들이라고 주장하며, 남성 및 정치 조직과의 연계 거부를 기치로 내세웠다. 시위의 내용에서는 경찰이나 산부인과 의사, 국회의원의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을 문제시하는 등 여성과 남성의 대립을 주된 갈등의 축이자 문제의 원인으로 사고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특징: 탈정치 생존 자원으로서 페미니즘

1980년대 이래 한국 여성운동이 대체로 진보적인 사회운동과 가치관을 공유해온 것과 달리 전투적 여성주의는 여성 문제를 제외한 정치적 입장을 모호하게 남겨두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인 것과의 연계나 세력화를 극도로 거부한다. 나아가 구호나 행동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것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높은 수준으로 요구되는 도덕성을 버리는 것도 여성을 옥죄는 ‘코르셋’을 벗는 과정이라 보기 때문이다.

여성 문제 외에 모든 정치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한편으로 여성 내부의 정치적 견해 차이를 부각하지 않고 여성 문제 해결에 힘을 집중하기 위한 전술일 것이고, 한편으로는 사회변혁 운동이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는 현 정세의 반영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적인 입장을 모호하게 두고 여성 대 남성의 대립 구도만 강조하는 것은 운동의 방향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여성 후보 중에서 ‘쓰까(여성 문제를다른 소수자 문제와 함께 해결하려 하는 입장을 낮추어 일컫는 속어) 페미’라는 이유로 녹색당 신지예 후보를 제외하고 대한애국당 인지연 후보에게 투표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반대, 게이·트랜스젠더 혐오, 난민 수용 반대 등의 이슈에서 극우 정치세력과 공명하기도 했다.

김보명은 <페미니즘의 재부상, 그 경로와 특징들(경제와사회 2018년 6월호 게재)>이라는 글에서 2015년을 전후해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스트 주체들이 ‘가해자’들에게 폭력의 부당함을 항의하고 설득하기보다 ‘피해자’ 여성들이 가진 문화적 역량을 조직하고 표출하고 행동하는 식의 정치적 방향성을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성은 구조 변혁이나 대안적 공동체 규범의 마련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청년들의 삶의 감각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금의 청년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저항이나 변혁의 담론이기 이전에 차별, 폭력, 배제, 소외의 시대에 개개인의 생존을 위한 대응, 즉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언어, 자원, 전략”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전투적 여성주의 비판

운동의 의제와 주체에서 배타적인 여성 범주를 강조하는 전투적 여성주의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남성(또는 남성성) 자체에서 찾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오류를 반복한다. 1960~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제도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폭넓게 존재하는 여성 억압에 저항하고자 했다. 하지만 억압의 원인을 초역사적인 가부장제 또는 남성의 본질에서 찾았기에 현존하는 사회의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답하지 못했다. 원인이 초역사적 본질에 있다면, 여성 개인의 의식·행동을 바꾸고 남성의 폭력을 강력하게 단죄하는 문화주의적 실천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외에는 세상을 바꿀 어떠한 해답도 도출할 수 없게 된다.

전투적 여성주의가 보이는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는 일견 한국 여성들이 놓인 취약한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조건이 ‘특별히 더 후진적이고 열악하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그러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북미·유럽 등 중심부 국가보다 한국 사회가 여성에 대한 문화적·사회경제적인 ‘포섭’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심부에서도 그러한 사회적 기준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 정세의 특징임을 고려해야 한다. 세계적 수준의 사회경제적 위기가 지속하면서 여성들은 점점 더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와 실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으며,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폭력적 언행이 공공연히 벌어진다. 2010년대에 미국, 유럽, 라틴아메리카,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페미니즘 의제를 중심으로 한 대중시위가 활발히 벌어지는 것은 그러한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한국의 후진성이라는 논리는 더욱 정확한 시대 인식과 세계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평가 속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결국 페미니즘 운동은 지금 시대와 사회 구조에 맹목적인 채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여성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여성 개개인의 생존 전략 이상의 정치·사회적 기획이 필요하다. 
 
 

사회를 바꾸는 이념·운동으로서 페미니즘의 복원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여성들의 분노·저항의 정당성이 운동의 방식과 결과를 모두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성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매우 다양한 입장이 존재해 왔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기획은 여성 억압의 원인을 초역사적인 가부장제나 남성의 본성에서 찾으며 사회 구조를 바꾸는 데 실패했으며,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페미니즘 운동이 기존 질서에 여성을 편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체제 보완적 역할을 하는 게 주류적인 경향이 되어 왔다. 그러나 현 체제를 그대로 두고 여성들을 주류에 편입하려는 시도, 남성 일반에 대한 대항폭력으로서 페미니즘적 실천은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격)’라는 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수 있다. 

과거보다 현재 우리가 놓인 상황이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데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페미니즘 열풍이 시작되었을 때, 일시적으로는 운동 세력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발화하고 운동을 기획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열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평가해 보면 페미니즘의 대중적 상징이 빠르게 ‘전투적 여성주의’로 수렴되면서, 사회적 논의의 지형이 왜곡되고 양극단의 입장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 시대에 어떤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한가에 대한 입장 제시와 함께 ‘다른 운동의 기획’이 중요한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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