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기획
  • 2019/03 제50호

쉼없이 달려온 ≪오늘보다≫, 이제 그 마라톤을 마치고자 합니다

≪오늘보다≫의 5년을 돌아보며

  • ≪오늘보다≫ 편집디자인국장 이준혁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회자된 지 6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지배질서는 공고합니다. …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취약한 것은 운동입니다.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이어진 민주노조 운동은 많은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 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흩뿌려져 있어, 연결되고 뻗어 나가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지긋지긋한 구체제로 변해버린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꿈틀대는 극우주의와 구조적 폭력의 전제정치를 막고 대안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노동조합에서 사회단체에서 직장과 지역에서,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 오늘을 직시하는 우직한 매체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보다》 창간호인 2015년 2월호의 여는 글에 적혀있던 글귀입니다. 누구나 체제와 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 그 가운데서도 운동으로 희망을 일구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들을 조금이나마 모아가는 잡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5년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을, 때로는 명철한 분석을 담고자 했습니다. 또 때로는 삶과 운동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싣고자 했습니다. 오늘의 운동에서 희망의 불씨를 발견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글과 기획, 만화가 《오늘보다》를 거쳐 갔습니다.
 

그런 《오늘보다》가 이제 잠시 쉬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에 지난 5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보다》가 걸어왔던 5년을 정리하는 건 곧 한국 사회와 좌파 운동의 치열한 고민의 궤적을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지난 고민에서 힌트를 얻어 여러 묵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내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해봅니다.
 

노동자의 시선으로 박근혜를 비판하다: 2014~2015년, 《오늘보다》가 출발하다

<민주노총 어디를 보고 있나요>라는 패기 넘치는 표지와 함께 2014년 11월 《오늘보다》 창간 준비 1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사회진보연대는 2005년부터 《사회운동》을 발간해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월간 《사회진보연대》가 발간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회운동》의 글들이 너무 어렵다거나 많은 이들이 잡지를 받아보기만 하고 읽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오늘보다》는 출발부터 가독성을 높이고 흥미로운 기획으로 구성하자는 문제의식이 많았습니다. 발간사에 적힌 대로 “가방에 넣어두고 잊어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오늘날 이슈와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새우깡처럼 저절로 손이 가는 좌파 교양지”를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2014~2015년만 하더라도 박근혜를 위시한 우파 정부의 지위는 확고해 보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보수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처럼 보였습니다. 창간호의 커버스토리가 <대한민국 우파의 얼굴>이었던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당시 진보 진영의 다수 담론은 박근혜와 우파에 대해 절망과 혐오의 감정 속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당선은 박정희 향수 때문이고, 박근혜는 김기춘을 비롯한 장막 뒤 인물의 꼭두각시이며, 한국 사회는 이제 파시즘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거였습니다. ‘불통’과 ‘수첩 공주’ 등 조롱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여기에 《오늘보다》는 작은 틈새를 뚫고자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떠받치는 최고의 디딤돌이 ‘대안 세력의 부재’인 만큼, 정치폭로보다는 박근혜를 만든 체제를 분석하고 ‘신자유주의 이후의 정치’를 위한 내용, 세력, 실천을 만드는 것이 우리 운동의 가장 큰 목표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보다》가 고민한 나름의 답은 “오늘을 보는 노동자의 시선”, 즉 노동자계급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와 세계정세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당대의 논쟁에 노동자의 시선으로 개입하고자 했던 것이죠. 가장 대표적인 기획이 2015년 4월호 <소득 불평등 제대로 다루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른바 ‘피케티 열풍’이 불던 때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었고, 이를 꼬집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 ‘분배의 불공정성’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친재벌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도 많아졌던 때입니다. 《오늘보다》는 마르크스주의 시각을 통해 소득불평등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나타나는 하나의 방식이며, 지금의 위기는 투자를 아무리 많이 해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구조적 위기라는 분석을 던졌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제시했던 소득재분배나 포용적 경제 제도 등 단기 처방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본주의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노동자의 자주적인 운동과 조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물론 해당 기획은 정말 노동조합이 강화되면 소득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로도 《오늘보다》는 대안 제시를 위해 노력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외에도 새롭게 출발한 잡지인 만큼, 여러 의욕적인 시도들이 돋보였습니다. 《오늘보다》와 사회진보연대로서는 다소 생경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인터뷰도 실렸습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발맞춰 새로운 노동자 운동의 교육을 모색했던 <다른 세계를 만드는 힘, 노동자 시민 교육>(2015년 7월호)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오늘보다》의 간판 코너, ‘단결툰’과 ‘노조할권리’가 시작된 겁니다. 창간호부터 꾸준히 많은 인기를 얻었던 코너이기도 하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재밌는 스토리로 구성하여 언제 봐도 새롭다는 좋은 평가를 받은 기획이기도 합니다. 단결툰에 등장한 대부분의 주인공은 노조의 ‘ㄴ’자도 몰랐거나 노조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을 품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평범한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나며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단결툰과 노조할권리를 좋게 봐주신 이유라고 생각해봅니다.
 

다양한 사회운동 이슈를 바라보았던 2016년

여러 분석과 입장은 개진했지만, 한국 사회 변혁의 전망이나 노동운동 혁신 방안 등에는 약하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문제점은 잘 짚는데 대안이 약하다, 무엇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쓴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2016년부터 《오늘보다》는 특집 기획을 더욱 탄탄히 하기 위해 커버스토리 기획마다 특집팀을 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분석과 대안의 구체성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가장 호응이 컸던 기획은 <하이 페미니즘 바이 여성혐오>(2016년 7월호)였습니다. 2016년 5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에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한편으로 ‘페미니즘의 과잉 속에 억눌려 살았다’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여성혐오와 조롱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보다》는 해당 기획을 통해 성차별적인 현실을 바꾸려는 여성들의 움직임을 옹호하고자 했습니다. 페미니즘이 곧 ‘여성우월주의’, ‘이기적인 여성들의 피해망상’으로 읽히지 않아야 했습니다. 여성혐오라는 퇴행적 현상 뒤에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야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진 상황에 대한 남성들의 좌절감이 자리 잡고 있고, 이러한 ‘재생산의 위기’를 분석하는 이론적 틀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적었습니다. 당시 파급력이 매우 컸던 이슈를 깊이 있게 접근하고자 했으나 쉽지는 않은 기획이었습니다.
 
페미니즘과 여성 운동을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8월호부터는 ‘여성운동 열두 장면’이라는 기획 연재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 세계 주요 정치사에서 잊혀왔던 여성 운동의 흐름을 지금 시점에서 복기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꼬박 1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과거의 여성들이 어떻게 여성의 고유한 권리를 발견했고 사회에 어떻게 요구해왔는지를 다뤘습니다. 여기 글들을 묶어 책자로 내려던 기획도 있었으나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외에도 2016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주요 쟁점을 조금씩이나마 다루고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수술 무섭다고 안 하고 있다간 죽음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억지로 밀어붙인 조선업종 구조조정 문제를 다룬 <구조조정 브레이크>(2016년 6월호)가 대표적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말처럼 태만한 노동자 때문이 아니라 재벌의 집착과 무능이 해운업 위기를 일으켰다는 분석을 필두로 르포와 과제, 인터뷰까지 나름 다채롭게 구성하고자 노력한 기획이었습니다. 최근 조선업이 다시 활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량실업의 공포는 여전히 조선소 안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체제 해체와 노동운동의 전망을 고민하다

2016년 말,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전 국민을 경악케 했습니다. 그 경악은 분노가 되어 전국을 촛불로 수놓았습니다. 《오늘보다》는 백만 촛불과 함께하며 “안개 덮인 헬조선에 틈이 생겼다”고 썼습니다. 박근혜 보수 체제에 드디어 균열이 생긴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그저 상찬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을 옥죄던 사슬의 실체가 무언지 … 성벽이 무너지면 어떤 세상을 만들지”였습니다. 《오늘보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를 만든 체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한 고민 속에 나온 것이 바로 <박근혜 체제 해체 가이드북>(2016년 12월호)과 <2017 촛불의 길 찾기>(2017년 1월호)였습니다.

《오늘보다》는 박근혜-최순실 뒤에 숨어있는 재벌의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부를 독식하고 손실을 사회화’하여 ‘금수저의 나라’를 만든 장본인들이 거액의 돈으로 나라 살림까지 제 맘대로 갖고 놀았던 거죠. 그 때문에 재벌 세상을 끝장내고 부익부 빈익빈의 체제를 없애야 진짜 ‘박근혜를 만든 체제’를 없앨 수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한편으로는 촛불의 기운을 각자의 일터와 삶터로 확장하자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국민들이 직접 경험한 ‘민주주의’를 광장에서 하루 머물다가는 축제가 아닌 ‘진짜 내 삶의 변화’로 만들어야 앞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갈 힘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촛불 이후 노동조합 조직률이 2008년 이후 최고치인 10.7퍼센트를 갱신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촛불의 힘으로 당선됐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에 들어선 지금, 많은 개혁 정책들을 포기했습니다. 국정 농단의 주인공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은 버젓이 석방되어 대통령을 만나는 현실입니다. 촛불 이후 사회운동의 전략을 다시금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수많은 촛불에 취해 너무 낙관적인 전망만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보다》를 비롯해 많은 사회운동 세력의 고민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가 명백해진 지금, 어쩌면 사회운동이 맞닥뜨린 가장 큰 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노동운동의 대안 찾기’에 좀 더 힘을 기울인 기획도 선보였습니다. <노조의 변화로 사회의 변화를>(2017년 9월호)과 <우리가 만들어야 할 노조는?>(2017년 11월호)가 그것입니다. 이전부터 《오늘보다》는 임금 격차 축소나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같은 노동운동의 개혁 방향을 조금씩 제시하기는 했었습니다만, 그 방향을 나름 특집이라는 큰 틀로 묶은 것은 창간 준비호 이후로는 처음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2017년 말 민주노총 2기 직선제 선거를 앞두고 사회진보연대 내외에서 열렸던 치열한 토론을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창간 준비호의 제목인 <민주노총 어디를 보고 있나요>에 비해 ‘노동조합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로 상징화했다고 나름 자화자찬해봅니다. 물론 그 대안을 현실화하기까지는 더 많은 이들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전략이 필요하겠지요.
 

 

2018년: 문재인 정부의 위기, 사회운동의 위기

2018년 《오늘보다》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기획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좌파적 비판’입니다. 보수우파가 연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세를 퍼붓는 가운데 진보·좌파 진영은 자칫 잘못하면 ‘문재인을 지키자’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공약했던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옹호하면서 말이죠. 아니면 문재인 정부의 처음 기치는 좋았지만, 의지가 꺾였다는 ‘도덕적 비판’에 머무를 수도 있었죠. 안타깝게도 지금 진보·좌파 진영의 전반적인 논리는 여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늘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는 방향으로요. 전체 국민 소득을 올려 투자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뜻은 가상할지 모르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지금 정세에서 그것은 실현할 수 없고, 사회운동이 꿈꿔왔던 대안적인 경제 체제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1년, Moon만 보면 될까>(2018년 5월호), <위기의 문재인, 갈 길 잃은 민주노총>(2018년 9월호)가 그 나름의 결과물입니다.
 
2018년은 미투 운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여성운동이 부상하고 평창 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큰 변화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관련한 기획을 내고자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미투 운동을 여성 노동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일터에서 성폭력 근절을 고민해온 이들의 이야기를 실은 <일터에서 싸우는 여자들>(2018년 3월호)가 대표적입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계기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권리를 외친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글도 꾸준히 싣고자 노력했습니다. (<낙태죄,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2018년 6월호)) 해외 노동조합의 실천 사례를 인터뷰로 싣기도 했죠.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관해서는 일단 당장 전쟁이 일어날 분위기가 없어진 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뻥 뚫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는 견해를 실었습니다. 북한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의 핵무기가 언제든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데다 미국과 중국, 일본의 군비 경쟁이 수면 아래서 격화되고 있는 상황을 진정한 평화 분위기라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망하다>(2018년 8월호) 특집은 북한과 교류의 길이 열렸다고 해서 맹목적인 민족 교류를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과 입장을 싣기도 했지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가려면

사실 《오늘보다》의 지난 5년은 저의 어설픈 정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노동, 보다’ 코너를 통해 각지의 여러 노동 현안을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오늘, 평등’ 코너에서는 노동과 주거 현장에서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시대의 빈곤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나름의 조사와 문제의식을 종합하여 <모두를 위한 주거>(2016년 9월호)라는 특집으로 낸 적도 있죠. 또 권말에는 ‘칼럼64’를 통해 많은 독자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습니다. ‘필름x정치’ 코너에서는 영상 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문화 기획이었습니다. 나름 《오늘보다》를 종합 잡지로 만들어주었던 고마운 코너였습니다. 이외에도 지면상 다루지 못한 많은 기획과 코너들이 스쳐 지나가네요.

주마간산으로 《오늘보다》의 5년을 되돌아봤습니다. 돌이켜보니 수많은 일이 있었고, 지금에 와서 참고할만한 글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짧은 글에서 감히 정리하기에는 너무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자부해봅니다. 다만 사회운동의 새로운 전략과 대안을 마련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독자의 평가에서 ‘운동의 방향 제시가 약하다’고 지적해주신 대목이 떠오릅니다. 앞으로 발행될 새로운 매체, 그리고 사회진보연대의 운동을 통해 더 고민해가야 할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가요. 《오늘보다》는 “오늘을 직시하는 우직한 매체”가 되었나요. 그저 오늘을 ‘보는 것’에만 만족하고 대안을 그리는 일에 소홀하진 않았을까요. 혹은 ‘우직함’을 핑계 삼아 시시각각 변하는 이슈와 새로운 사회운동의 희망을 포착하는 일을 게을리 한 건 아닐까요. 그럼에도 사회운동의 내일을 그리기 위한 조그마한 힌트라도 담을 수 있었을까요. 이제 이 모든 평가는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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