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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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운동을 위한 모색과 확장된 '실업운동'의 주체형성

유의선 | 집행위원, 서울지역실업극복연대 사무국장
1. 실업(자)운동은 존재하는가?

대량실업 초기에 실업운동은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실업운동이 존재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실업자와 사회위협으로 느껴지는 실업의 문제가 새로운 운동기반을 형성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 것이었다. 대량실업 초기 등장했던 '실업자동맹'이나 '실업자 거리행진' 등은 실업문제의 정치적인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었으나 더 이상의 자기계획을 가지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업이 바로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되었던 대다수의 실업자를 지원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실업자 풀(pool)을 형성, 조직하려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들은 사업참여자들의 조직을 기반으로 생산공동체와 같은 일자리 창출을 시도하며, 실업자를 '투쟁하는 기계로 보지 않는' 긴 호흡의 운동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이 (시민, 종교단체들의 구호성 사업을 제외하더라도) 정부의 지원이나 기금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에 실업률의 하락과 함께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사업종결, 정부·지자체의 실업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은 실업활동의 중단 혹은 사업의 대폭적인 축소를 동반했다. '공공근로 축소반대'투쟁 등 2000년 3회에 걸친 실업자대회와 농성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음에도 단편적인 요구의 한계와 계속적인 조직화의 실패로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2001년은 이러한 상황에서 출발했으며 '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주요 화두로 등장하게 된다. 이는 실업률이 하락한 상황에서는 '실업'의 문제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판단이었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으로 수급권, 자활사업 등의 문제가 부각된 측면도 존재했다. 구체적인 활동으로 드러나지 못했으나 지원활동을 지양하고 실업'운동'으로 보다 적극적인 방향모색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실업단체의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축되었다. 실업의 요구는 불분명했으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활동역량은 취약했다. 실업자를 주체로 하는 당사자 운동은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존재했으나 여전히 묘연했다. 낮은 실업률로 계속 악화되는 정부의 실업정책에 대하여 시원한 문제제기나 연대의 모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중진영의 실업문제의 인식과 대응은 실업운동단체보다 더욱 깊은 굴절을 겪었다. 대량실업 초기에는 노동사회운동단체를 망라하고 실업문제에 대한 입장과 대응방향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에서는 '실업자 조직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고, 사회운동진영에서는 노동, 경제, 여성, 복지, 정보통신, 보건의료 등 각 부문에서 나타나는 실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각각의 대응과 총체적인 실업운동이 필요함을 제기했다.
그러나 실업률의 하락과 함께 실업의 문제가 수그러들면서, 실업문제는 경기가 악화되고 있음을 나타나는 사례로, 문서에나 등장할 뿐이었다. '실업운동'은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으로 인식되지 못했으며, 현재의 실업운동진영의 활동이 실업운동의 전부인 듯 지켜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2. 실업운동의 대중력 복원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회의(이하 전실연)은 2002년을 실업단체들의 활동역량 위축과 침체라는 취약성을 극복하고 새롭게 전열을 정비하여 긴 호흡으로 실업운동을 준비할 기회의 해로 상정하고 있다. '정부의 한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실업정책을 실업의 고통을 경험하고 실업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으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것에 기초하여 2002년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보완과 관련한 문제제기와 요구를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 둘째, 일일노동자들의 고용보험확대 적용과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의 요구. 셋째,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제도화와 자활지원특별법 제정요구. 넷째, 중앙정부와 지역실업대책협의회 구성과 민간의 참여보장 요구, 마지막으로 인프라의 확충이다. 2002년 이러한 요구들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초와 토대를 마련하며 당사자운동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활동의 중심을 다시 실업센터로 이동하는 동시에 각 지역 실업센터들의 활동을 정상화하며, 지역의 청년실업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등 조직정비와 계획이 제출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2002년 실업운동진영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대중력의 복원이다.
현재의 실업단체는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새로이 결성된 조직이거나, 실업문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지역 내에서 빈민(주민)운동을 일구어왔던 단체들이다.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지역 내 저소득 주민의 대부분이 실업의 문제로 생존을 위협받게 되었으며, 실업은 가장 큰 쟁점이자 관심사가 되었다. 이들 단체들은 실업문제를 매개로 지역주민과 만나고 조직하고자 했으며, 단체의 이름자체를 '실업'으로 전환하거나 조직의 주요사업으로 실업대책사업을 배치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에는 양자모두 조직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실업대책과 지원의 중단 및 축소로 인해 몇몇 단체들은 아예 활동을 중단했으며, 남아있는 단체들도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업을 통해 단체를 중심으로 모여있던 실업자대중이 떠나면서 단체의 대중적 기반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노동의 유연화와 '실업'은 별개의 사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실업'의 문제라도 청년실업, 중고령 실업 등 그 양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전의 공공근로 등으로 포괄되었던 실업노동자들은 실업대책의 축소로 일상적인 취업과 실업을 반복 경험하는 일용직·저소득 노동자로, 혹은 수급권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단체들은 지역 내 이슈나 대다수의 빈곤대중의 이해와 결합하는 주제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적 삶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안전망(복지)의 취약성 문제나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불어나는 불안정 고용의 확대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그것이다. 이는 '실업'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의 한계와 '실업자'로의 조직화의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오히려 노동의 유연화가 확대된 현실에서 실업과 취업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불안정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사업적 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의 중심에는 '무엇으로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가 존재한다.
작년부터 계속 강조되는 수급권 상담사업이나 일용직 무료취업 알선사업도 동일한 선상에서 제기된 사업들이며 여전히 중요하다. 일상적인 수급권 상담은 수급권 탈락자와 차상위계층(수급자가 아닌 자로서 실제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100 미만인 자)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한 노력의 하나였으며, 한 걸음 나아가 전반적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자, 자활사업참여자까지를 확대하는 공동의 요구와 실천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용직 취업알선사업은 계속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일용직·저소득 노동자의 취업알선을 통해 직종별 모임 등을 조직하며, 나아가 노동조합의 연계 및 건설 등 당사자 운동으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 상황에 걸맞는 저소득층의 주거와 의료, 교육에 대한 개입과 조직화 또한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단체의 '서비스'활동을 통해 방문하여 교육되고 조직되는 경로 이외에 지역의 문제해결을 위한 투쟁의 조직화는 폭넓은 지점에서 준비되어야 한다.
최근 아르헨티나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의 도시빈민운동은 기존의 주변적이고 분산된 고용상태이거나 생산양식에서 단절된 도시빈민 대중은 제도화된 정치권력에 도전하기에 무능력하다고 주장했던 사회과학 이론가들의 기존 전통론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와 같은 도시빈민들의 투쟁이 가능한 것은 경제위기상황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실업자 때문만은 아니다. 수년간의 인내심 있고 까다로운 조직화에서 기인한 것임을 확인하며, 2002년 지역대중활동의 활성화와 이를 통한 조직력의 확대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실업노동자 스스로 '실업자운동'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요구를 실업문제 및 실업운동에 대한 방향으로 제기하고 이에 따른 일관된 정책제시와 실천을 통해 실업운동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실업단체의 활동가들이 실업운동의 주체로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 그동안 지역단체활동가들은 당사자 운동을 묶어내기 위한 보조적 역할을 수행할 뿐 활동가 개개인이 실업운동의 주체로 자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업운동단체의 실업과 빈곤에 대한 지역 내의 지속적인 정치활동의 진행이야말로 실업노동자를 묶어 세우는 큰 틀의 조직화가 될 것이다. 특히 선거시기 실업자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며, 지역내 일자리확대요구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지자체의 복지예산의 확대 및 공공근로의 안정적인 일자리로의 전환 등은 구체적인 요구로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실업 노동자가 사회의 수혜 및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실업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 실업운동은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발언할 뿐만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일자리 창출'의 요구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와 결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역 내 정치활동은 국민적 지지와 실업운동의 정당성을 획득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3. 확장된 실업운동의 전략을 위하여

현재의 실업운동조직은 '저소득 장기실업노동자'를 주된 대상으로 다양한 요구와 조직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실업노동자나 해고노동자, 그밖에 여성실업노동자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 실업노동자는 '실업'의 문제로 그들을 대변할 구체적인 조직을 형성해내지 못한 상태이다. 또한 실업의 문제는 실업노동자만이 아니라 실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대다수의 불안정노동자, 임금노동자의 문제며, 잠재적 실업속에 있는 청년학생의 문제이기도 하다. 2002년은 아직까지 실업자운동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체적인 실업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실업'의 문제를 어떻게 제기할 것인가에 대해 부문이 아닌 전체운동의 관점에서의 계획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실업을 양산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동시에 떳떳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실업의 구조적 원인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철폐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과제이다. 국가와 자본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취업의 기회를 확대하고 그만큼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 노동시장이 유연화 되어야만 경제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대처할 수 있고, 그만큼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기업에게는 마음대로 노동자를 쓰다 잘라버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며, 노동자에게는 안정된 노동과 생활의 권리를 빼앗긴 채 이윤추구의 논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에 항거하는 투쟁은 가장 정치적이며 궁극적인 실업운동의 투쟁과제이다. 실업에 반대하는 투쟁은 가장 근본적이며 정치적인 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를 한 부문의 역량과 운동의 과제로 국한시킬 때 실업운동은 온전히 제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
2002년은 사회적 의제로 '실업'의 문제를 제기해야 하며, 다양한 부문마다 실업이 미치는 영향과 노동과 생활에 가해지는 폭력성을 드러내며, 이를 투쟁으로 조직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실업노동자는 실업의 상태로 계속 존재할 수는 없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그러나 보다 열악한) 형태로 노동을 팔아야 한다. 때문에 실업자조직이 건설되더라도 그 구성원은 끊임없이 교체되거나 일상적으로 결합하는데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노동자와 청년학생이 반실업 혹은 잠재적 실업의 상황에 항상적으로 놓여있다는 것은 역으로 실업의 문제가 사안에 따라 보다 확대된 대중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실업급여 기간의 문제, 취업연령제한, 직업훈련의 문제, 고용보험 확대의 문제, 인턴제 등 다양한 사안뿐 아니라 최저임금인상, 노동시간단축과 관련된 쟁점, 무엇보다 일자리 확대와 안정화 요구 등 노동정책의 문제까지 다양한 영역에서의 투쟁을 제기할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조직적 틀에 국한되지 않는 대중투쟁의 기획이야말로 확장된 의미의 실업운동이 될 것이다.
2002년, 조직화된 노동자의 실업운동으로의 재조직화와 사회 곳곳에 드러나지 않게 존재하는 광범위한 실업노동자를 조직하는 방안으로서 확장된 실업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노동사회운동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4. 실업운동의 전진을 위해

실업운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운동이자, 대중운동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실업운동의 대중적 주체를 확장하기 위하여 시혜적 혹은 자활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실업자 또는 실업운동을 보다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조직할 필요성이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1년 실업운동진영은 당면요구를 가지고 단 한 번의 대중투쟁도 조직하지 못했다. 즉, 아직까지 실업운동이 실업자 스스로를 운동의 주체로 세워내지 못하고 실업지원 사업단위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던 한계를 2001년 상황이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그리고 실업자가 주체가 된 대중운동으로서 실업운동이 조직되기 위해서는 첫째, 실업운동의 주체형성을 위한 정치적 대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실업이 개인의 능력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실업자에 대한 관리 또는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면, 실업의 문제를 사회적 사안으로 바라보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대응이다. 때문에 각각의 운동진영에서도 실업을 단지 선전과 폭로 중심이 아닌 물리적 힘을 동반한 정치적 대응을 확대할 계획을 함께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셋째, 실업의 문제를 자활 또는 지원에서 벗어나 불안정 노동의 확산의 문제로 바라보고, 불안정 노동 철폐와 연계된 운동으로 상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럴 때라야만 실업자가 주체가 된 실업대중운동으로 성장 전화할 가능성을 엿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년 여 동안 실업운동에도 불구하고 실업운동의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실업 역시 지속될 수밖에 없고 수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될 것이라면, 아르헨티나의 경험과 같이 강력한 실업자 조직을 목표로 올 한해도 투쟁을 일궈가야 할 것이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태그
유럽 노동 총파업 신자유주의 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