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한국 경제, 높은 불확실성과 취약한 대응 여력

2020년 한국 경제 전망

김태훈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1. 마르크스적 경제정세 분석

 

매년 매분기, 경제기관과 경제연구소는 경제전망을 분석한다. 이러한 경제전망은 경제주체들의 생산과 소비, 투자 등의 경제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경제전망을 분석할까.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정세를 분석한다는 것은 계급 모순의 양상과 계급 투쟁의 조건을 분석하는 것이다. 경제가 계급 모순과 투쟁의 객관적 조건이라면, 시민들이 형성하는 제도·문화·관습들은 주관적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계급 모순과 투쟁의 객관적 조건으로서 경제를 분석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 분석은 현대경제학의 경제성장론과 경기순환론을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경제성장론은 경제가 지속적 성장 상태(steady state)에 도달한다는 전제 위에서 소비, 저축, 이자율, 임금률 등의 균형점을 찾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은 경제가 정지 상태(stationary state)로 나아간다는 전제 위에서 편향적 기술진보로 인한 이윤율 하락과 이윤율 변동 속에 나타나는 자본축적의 동역학을 분석한다. 물론 정지 상태에 도달하는 역사적 경로는 단순하지 않다. 자본가들은 산업혁명 같은 기술적, 제도적 혁신을 통해 이윤율 하락 법칙에 반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행기가 중력 법칙을 끝내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자본가들의 반작용도 최종적으로 법칙에 순응하게 된다. 경기순환론은 경기 확장과 수축을 자본가성향(animal spirit)에 따른 투자 변동에서 찾는다. 반면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은 경기를 임금 상승과 가동률 변화에 따른 이윤율 변동으로 분석한다. 자본가의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객관적 원인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르크스 경제이론의 관점에서 경제정세 분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세계경제는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이전 같은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는가“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의 회복이 몹시 더딘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가 발생하고, 수익성 있는 투자처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비금융법인기업의 수익은 재투자되지 않고, 금융시장에서 채권과 주식 등 ‘가공자본’의 거래를 통해 매매차익을 추구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세계적 차원의 금융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고질적인 신흥국 위기가 반복된다.

 

한국 경제는 1990년대부터 성장잠재력 자체에 문제가 발생했다. 기술수준을 반영하는 총요소생산성의 하락과 자본축적의 둔화가 잠재성장률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단적으로 말해 선진국 추격에 실패한 것이다. 수출제조업의 구조적인 국제경쟁력 약화, 저출산과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에는 1~2% 수준, 2030년대에는 1%이하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7년 말부터 둔화된 한국경제는 2019년에는 아예 곤두박질을 쳤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 순환상 침체가 아니라 대내외적 요인에 의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반영하는 현상이었다. 따라서 2020년의 한국경제를 전망하는 것은 소비, 투자, 수출 등 단기적인 거시 경제 지표를 예측하는 것을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어떻게 한국 경제의 위기로 나타나는지, 또한 그것이 한국 사회의 정치, 제도, 계급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야 한다.

 

2. 현재의 경제상황

 

1)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의 경제성장

 

2017년 취임 이후 3년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은 구조개혁은커녕, 단기적 경기 대응에도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7~3.1%였다. 지난해 정부는 2019년에도 잠재성장률 수준의 2.7~2.8% 성장을 전망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2019년 초부터 엇나갔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3%를 기록했고, 2분기에 반등이 있었으나, 3분기는 다시 저조했다.

 

대부분의 경제 관련 기관에서 2019년 내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해왔다. 예를 들어, 2019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망치를 2.6%에서 2.4%로 하향조정했고, 3분기 결과까지 나온 11월에는 2.0%로 낮췄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2.6%를 유지하다가 지난 10월 2.0%로 낮췄다. 민간 경제연구기관은 더욱 낮춰서 하나금융연구소(하나은행)나 엘지경제연구원은 1.8%를 전망하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에는 한국 경제가 반등할 수 있을까?

 

우선 2019년 급속한 경기둔화의 원인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의 지표인 국내총생산(GDP)은 국민소득 삼면등가의 원칙에 따라 같은 양의 지출을 구성하는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로 분해해볼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수출과 투자의 부진이 저성장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모두 2018년에 이어 계속 부진했고,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설비투자가 크게 감소했다. 수출은 지난해부터 올해 10월까지 11개월 연속으로 감소했는데, 수요 감소로 인해 수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수출가격과 수출물량이 모두 감소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줄었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가 심화되었고,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부과를 실제로 시행하면서 미중갈등이 고조되었으며, 하반기에 반등할 것이라 기대했던 반도체 경기도 침체가 지속되었다. 애초에 예측했던 위험요인들이 예상보다 더 크게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국은행은 미중 관세 부과로 한국 수출이 감소한 데 따른 하락 효과가 0.2%p,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투자·소비 등이 둔화한 영향이 0.2%p로, 한국 경제성장률이 이미 0.4%p 정도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2019년의 저성장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생산성과 수익성을 무시하는 재벌체제로 인해 한국 경제는 선진국의 생산성을 추격하는 데 실패하고 수출경쟁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중진국 함정에 빠져있다. 이 과정에서 수출의존도, 특히 산업부문 측면에서 반도체, 국가별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해지면서 미중갈등과 반도체 불황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총 수출 6047억 달러 중 하이테크 제품(전자통신기기, 항공우주제품, 의약품, 화학품, 전자기기 등 제조과정에서 연구개발 비중이 8% 이상인 제품)의 수출은 2047억 달러로 33.8%를 차지했고, 그 중 반도체의 비중이 56.6%, 국가별로는 홍콩과 중국이 56.8%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2) 잠재성장률 추이와 GDP갭

 

세계적인 무역 퇴조만 저성장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외부요인을 차치하고도, 한국 경제는 이미 1990년대 이후 잠재성장률이 하락했고, 최근에는 하락폭이 더 커졌다고 추계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9월 보고서에서 2019~2020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5~2.6%로 추정했다. 또한 2016~2020년 중 잠재성장률은 2.7~2.8%로 기존 추정치였던 2.8~2.9%보다 0.1%p씩 낮췄다.

 

[그림 1] 잠재성장률 요인별 기여도 (출처:한국은행)

 

그 이유는 경제활동참가율 상승속도가 예상보다 완만하여 노동투입 기여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는 2019년 장래인구특별추계 결과 15세 이상 인구의 정점시기가 2033년에서 2031년으로 2016년 인구추계에 비해 2년 단축된 것과 관련이 있다.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이 되면서, 한국은 OECD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미만인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1970년 연간 100만 명이 넘던 출생아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1년부터 43~48만 명 수준이다가, 최근에는 32.7만 명(2018년)으로 줄었다. 또한 기대수명 증가로 노인인구 비중이 전체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2025년에 도래할 것이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보다도 실제 성장률이 낮다는 점이다. 실제 성장률에서 잠재성장률을 뺀 수치인 GDP갭은 경기순환을 설명하는 지표다. GDP갭이 플러스로 커지면 경기가 과열된 것이고, 마이너스로 커지면 침체된 것이다. 실제 성장률은 측정치이니, 계산을 통해 추정된 잠재성장률이 얼마냐에 따라 GDP갭은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 조선일보가 OECD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근거로 2013~18년 한국GDP갭이 마이너스로 커지고 있다(즉 경기침체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하자, 정부는 IMF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근거로 GDP갭이 감소하고 있다(즉 경기침체가 완화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이런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 OECD와 IMF의 잠재성장률 추정치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 계산은 세계 기관들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GDP갭에 대한 약간의 차이는 그래서 그다지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모든 기관들의 계산에서 공통적으로 잠재성장률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경제가 그 낮아지는 잠재성장률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한국은행의 잠재성장률 추산치(2016~20년간 2.8~2.8%)를 기준으로 봐도 한국의 GDP갭은 마이너스로 여전히 크다. 2019년 2.0% 성장을 가정하더라도 -0.8~-0.7%나 된다.

 

3) 디플레이션 불안

 

지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동월비 -0.4%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 전년동월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65년 이후 최초다. 사실 8월에도 -0.04%를 기록하였으나,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만 공식 통계로 인정하는 국제 관행상 물가상승률은 0.0%로 처리되었다.

 

주류경제학은 통화주의 전통에서 물가 인상과 인플레이션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데, 마르크스 경제이론은 둘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물가 변동은 노동생산성 변화가 원인이고,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 변동이 원인인데, 현대경제에서는 화폐수량의 영향을 받는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경기 하락을 우려해 화폐를 충분히 공급하기 때문에, 물가하락 요인인 노동생산성 상승에도 불구하고, 화폐 공급이 요인인 인플레이션이 상품가격에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상품가격이 완만하게 상승하는 현상을 정상적 상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한편 상품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예외적이다. 미국의 대공황이나 일본의 1990년대 장기불황처럼 사례가 흔하지 않다. 디플레이션이 나타날 경우 결과적으로 화폐상품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경제 주체들이 실물자산보다도 화폐 보유에 집착하게 된다. 투자와 소비가 감소하고 경제 하강의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래서 정부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디플레이션을 막는데, 그럼에도 디플레이션이 나타난다는 것은 경제가 크게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즉 디플레이션은 정부 정책이 무용지물이 되는 심각한 불황의 증표다.

 

한국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태로 진입한 것은 아직 아니다. 정부는 9월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하락, 고교 무상교육 등 정부 복지정책 영향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석유와 농산물 가격 하락폭이 줄면서 10월에는 다시 0.0%로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지수 구성 품목 중 가격하락을 주도하는 품목수의 비중이 30%이내에 머물고 있어 광범위한 확산성이 없고, 일반인 기대인플레이션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인 2% 수준을 상회하고 있어서, 전반적인 총수요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올해의 저물가 현상은 전반적인 수요 측 상승압력 약화에 공급요인과 정부정책 측면의 물가하방압력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2017년부터 올해까지 동시에 낮아지고 있고, 수출부문의 가격하락으로 GDP디플레이터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한국경제가 활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에도 저물가가 지속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 주체들이 화폐를 보유하기만 할뿐 시장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이런 상황을 화폐유통속도가 하락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의 화폐유통속도는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소비와 투자가 그만큼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4) 계속되는 수출제조업 위기 속에 내수까지 부진

 

주요 산업전망 또한 밝지 않다. 2020년에는 주력 산업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반도체 산업이 그나마 개선이 기대된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일본, 유럽의 경기가 2019년과 비슷하게 낮은 수준일 것으로 예상돼 올해 계속되었던 수출하락이 저점을 찍고 반등할 수는 있으나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의 공격적인 설비 증설 등 2020년에도 공급 과잉과 경쟁 심화가 지속되며 자동차, 화학, 철강 등 주요 제조업의 위기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주요산업별 수출증가율 전망 (출처: 산업연구원)

 

반도체는 단가 하락세가 진정되고, 일부 제품은 반등도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수요회복이 아닌 주요 업체의 감산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2020년에는 데이터센터나 5G 통신 등 신규 수요 증가로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컴퓨터, 휴대폰 등 전통적인 수요는 줄어들 예정이다. 또한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누적된 설비투자 부담으로 인해 공급과잉 우려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지적도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전자·IT산업은 여전히 전망이 좋지 않다.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기, 디스플레이, 가전의 경우 그 감소폭은 줄어들더라도 지속적으로 수출이 감소할 전망이다.

 

조선 수출은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수주한 고가의 LNG운반선과 컨테이너선 등이 본격 인도되면서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자동차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글로벌 수요 증가율이 거의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의 수익성이 매출처 다변화, 선제적 구조조정 등으로 수익성이 소폭 개선세를 보일 전망이나, 외국계 완성차 회사와 부품사 등은 여전히 부진할 전망으로, 자동차 산업 전반의 수출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철강, 석유화학 역시 주요 수출시장의 수요 감소, 수입규제 및 공급과잉, 수출단가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더욱 감소할 것이다.

 

계속되는 수출제조업의 위기 속에서 내수 부문의 소비와 건설투자도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KDI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대될 수 있으나,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 압력이 지속되면서 민간소비는 2019년 수준에서 소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민간경제연구소들은 더 부정적인데, LG경제연구원은 수출둔화의 여파로 구조조정이나 임금상승률의 하락 추세가 내년에도 이어지면서 민간소비도 더욱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올해 2,3분기에 소비 선행지표인 내구재 소비가 감소하고, 소비재 수입액과 소비재 수입물량이 모두 침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설투자의 경우 정부 SOC예산이 다소 증가하면서 토목건설은 상승할 여지가 있으나, 주거용 건물 중심으로 감소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경기 동행지표인 건설기성액뿐만 아니라 선행지표인 건설수주액이 크게 감소해,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5) 심화되는 소득불평등

 

문재인 정부가 중요시했던 분배 문제도 개선은커녕 악화되었다. 2018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가계동향조사에서 1분위(하위20%) 가구와 5분위(상위20%) 가구의 소득격차가 계속 벌어졌다(그림 3). 2017년부터 바뀐 표본, 이전 정권의 문제, 1분위는 현물복지로 비현금소득이 있다는 등의 핑계를 대던 여당도 계속된 소득 격차에 더는 변명을 찾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소득격차는 이미 2016년부터 심화되기는 했다. 즉, 제조업 구조조정, 건설업 경기 둔화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자체가 저소득층의 고용 문제와 그로 인한 소득 감소를 만들었다. 또한 자영업자가 소득이 감소하면서 1분위로 내려오는 경향도 강했다. 그 결과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사업소득이 증가했다.

 

그런데 일자리 정책을 앞장세우며,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 시기에 통계가 더 악화된 것이 문제다. 이는 정부의 정책이 한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미 저성장·저물가 속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한계를 비판한 바 있다. 시장을 규제할 수단이 부재하고 시장의 함을 뛰어넘을 노동자운동이 부재한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이 그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고용을 축소하거나 저임금 노동자간 경쟁을 심화시키는 자본의 반격에 부딪힌 것이다.

 

[그림 3] 2019년 2/4분기까지
1분위와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 증감률 추이 (출처: 통계청)

 

최근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격차가 4년 만에 감소했다. 지난 2018년부터 5분기 내내 감소하던 1분위 가구 소득이 2019년 2분기에 증가세로 바뀌었지만 0.04%(600원)에 그쳐 5분위 가구와 격차가 더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번 3분기에는 1분위가 4.3%(5만 6800원)증가해 0.7% 증가한 5분위와의 소득격차를 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성과”라며 한동안 언급하지 않았던 소득주도성장을 다시 부각했다. 이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소득격차가 이전에 너무 높아 아직 2018년 수준으로도 낮아지지 않았다. 또한 소득주도성장의 원래 의미조차 망각한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은 노동자 임금소득 혹은 자영업자 소득을 높이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그러나 1분위 소득 성장을 주도한 것은 근로소득, 사업소득이 아니라 공적 이전소득이었다.

 

물론 노동소득분배율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하락하다가, 2018년에 소폭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2017년을 정점으로 경기침체 국면으로 반전된 경기순환 효과의 영향이었다. 임금의 하방경직성이 작동하는 가운데, 기업의 영업잉여가 줄어들면 노동소득분배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정리해보자. 재정정책을 통한 재분배 효과가 공적 이전소득의 성장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애초에 목표로 했던 임금분배율의 개선이나 이를 통한 거시 경제 전반의 경제성장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침체로 인해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노동소득은 상대적으로 더 악화되고 있다.

 

3. 2020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전망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2019년 1분기 마이너스 성장과 그 뒤의 저조한 경제실적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정부의 경기 대응 문제가 부각되자, 오히려 정부는 구조적 문제를 강조하는 모양새다. 잠재성장률을 낮게 잡으면 그만큼 GDP갭도 작아지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0월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올해처럼 2% 넘기냐 마냐는 단기적으로 1년 성과고, 전체적으로 길게 봐서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 받아들인 것은 받아들이고, 제고하기 위한 노력은 별도로 한다는 의미에서 뉴노멀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낮은 경제성장률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 뉴노멀, 즉 구조적 문제라는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을 낮게 잡더라도, GDP갭이 여전히 마이너스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구조적 문제에 경기대응 문제가 겹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고질적인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도 개선하지 못했고, 대내외에 악재가 겹치긴 했으나 단기 경기 대응조차 실패했음을 시인한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해법이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인가? 홍 부총리는 같은 국정감사에서 "최근 민간의 활력이 잘 안 나타나니까 재정 역할을 강화하는 거고, 이를 토대로 시장 활력을 찾는데 몰두하되 규제개혁,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 민간산업 경쟁력 강화, 구조개혁도 더 속도 내고 탄탄히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0년은 재정확대와 동시에 혁신성장을 강조했던 2019년 경제정책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지만 달리 쓸 수 있는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1) 사상 최저의 기준금리

 

정부의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등 경제정책들은 단기 경기순환에 영향을 미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기가 둔화, 침체될 때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이나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올해 7월과 10월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두 차례 낮췄다. 연 1.75% → 1.5% → 1.25%로 낮아졌다. 금리인하는 전 세계적인 추세였는데, 미국 연준은 7월, 9월, 10월 세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했고,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7월 금리 인하에도 8, 9월에 소비자물가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10월 금리 인하 이후에도 효과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내년 초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더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통화정책의 효과는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앞서 살펴본 통화유통속도의 저하뿐만 아니라 통화승수도 낮아지고 있다. 통화승수가 낮아진다는 것은 한국은행이 본원통화를 증가시켜도 시중 유통되는 통화량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통화승수는 2008년 초반 26배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낮아져서 2019년 2분기에는 15.4배를 기록하고 있다.

 

만약 한 번 더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낮출 경우 한국 경제는 기준금리 1.0%라는 한국 경제 역사에서 전인미답의 영역에 진입한다. 기준금리가 너무 낮아질 경우, 가계부채 증가로 인해 거시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고, 한국의 경우 해외 투자 자금의 유출 유인이 커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통화정책의 효력이 점점 약해지는 가운데, 기준금리를 더 낮추기도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2) 믿을 구석은 재정뿐?

 

이러한 통화정책의 한계로 인해 정부의 재정정책의 역할과 재정여력을 둘러싼 논란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이미 정부의 재정지출은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이 지속되면서 정부부문의 경제성장률 기여도가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2019년에는 민간부문보다 더 큰 상황이다. 2019년 1~3분기 누적 기준 정부 부문의 GDP 증가율은 전년동기비 6.4%인데 민간부문의 GDP 증가율은 1.1%밖에 안 된다.

 

2020년 예산안은 이러한 재정확장 기조를 유지하려 한다. 총지출은 산업, 연구개발, 사회간접자본, 일자리 예산 등을 중심으로 2019년(9.5%)과 비슷한 수준의 높은 증가율(9.3%)을 유지한다. 따라서 내년 정부부문의 성장기여도는 올해와 비슷할 것이다. 반면 총수입은 법인실적 부진에 따른 세입여건 악화와 부가세 지방이전비율 상승 등으로 인해 증가폭이 크게 축소된다.(6.5% -> 1.2%) 이에 따라 관리재정수지(사회보장성기금수지 및 공적자금 상환원금을 제외한 정부의 흑자 또는 적자 규모) 적자폭은 2009년과 비슷한 -3.6%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그동안 재정건전성의 기준이 되어왔던 연간 -3%기준이 깨진다는 의미다. 한국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1.0% 내외의 2009년 위기 이전 수준을 지속하고 있었다.

 

게다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2021년 이후 -3.9% 수준으로 더욱 증가할 예정이다. 정부의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상(2019~2023년), 재정수입 증가율(연 3.9%)보다 더 높은 재정지출 증가율(연 6.5%)을 통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평균 -3% 중반 수준으로 관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무지출 증가(연 평균 6.1%)만큼 재량지출도 증가(연평균 6.9%)시킬 예정이다. 정부는 “경제활력 제고, 혁신성장 가속화, 미래 대비, 포용국가 기반 공고화”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운용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2019년 38%에서 2023년 46.4%까지 올라간다.

 

통합재정수지도 적자가 커질 전망이다. 지난 10년 간 통합재정수지가 적자였던 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세입이 부진했던 2015년 두 차례에 불과했다. 올해 4년 만에 26조 원 이상의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발생할 예정이다. 게다가 정부의 2019∼2023년 중기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적자는 더욱 증가한다.

 

그동안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뺀 관리대상 재정수지는 적자를 나타냈으나, 통합재정수지는 흑자를 유지했다. 국민연금의 흑자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현행 제도 하에서 국민연금은 2041년 이후에 적자로 돌아선다. 고령화로 인한 지출 증가는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일반회계에서 지출되는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에도 모두 적용된다.

 

3) 서로 다른 부채비율 전망

 

올해 상반기에는 추경예산, 하반기에는 2020년 예산 및 중기 계획을 둘러싸고 재정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마땅한 경기부양 수단이 없기에 여야 정치세력이 모두 재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도 했다. 주로 국가채무 비율의 전망과 적정 상한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올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재정건전성 관리의 마지노선으로 GDP 대비국가채무 비율 40%를 제시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그 근거를 따져 묻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후 민주당,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40%라는 기준이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공세를 폈다. 이런 논쟁 과정에서에 올해 9월에는 앞서 살펴본 대로 2020년에 40%가 넘어가 2023년에 46.4%에 이르는 중기 재정계획을 제출하는 데 이른다.

 

[그림 4] 국회예산정책처 재정전망과 국가재정운용계획의 국가채무 비교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국회는 정부의 이러한 예산 계획을 심사해야 한다.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바탕으로 별도로 2028년까지 10년 전망을 추산했다. 국가채무 비율은 좀 더 높은데, 2023년에 48.2%에 도달하고 2028년에는 56.7%로 증가한다(그림4 참조). 이 차이는 거시경제 전망의 차이에 기인한다. 재정수지는 결국 조세, 보험료 등 정부수입과 정부지출의 차이인데,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세금을 부과할 소득 자체가 줄어들어 정부수입은 줄어들고, 고용보험 등 정부지출은 늘어난다. NABO에 따르면, 기재부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경상GDP성장률을 3.0, 3.8, 4.1, 4.1, 4.1%로 전망한 반면, NABO는 2.1, 3.5, 3.6, 3.6, 3.6%로 전망했다. 사실 NABO의 전망도 낙관적인 편이라 할 수 있는데, 물가수준(GDP디플레이터)이 올해는 0.1이나 2020년부터 회복되어 1.2를 유지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실질GDP 성장률은 2.1, 2.3, 2.4%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경제성장률만 고려했으나, 국가채무비율은 합계출산율, 경제활동참가율, 실업률, 명목임금상승률 등 거시경제지표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기 변동이 심한 경우에는 비율이 급증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경제위기에는 정부의 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2014년 국가채무 비율이 40%대였던 아르헨티나가 2018년 4년 만에 부채비율이 80%로 급등하기도 했고, 2018년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179%에 달하는 그리스도 재정위기 이전 2009년에는 40% 수준이었다.

 

4) 확장적 재정정책 지속가능한가

 

박근혜 정부 시절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던 민주당이 여당이 되자 앞장서서 부채비율의 상한을 공격하면서, 확장재정의 규모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곳간에 재정 쌓아두면 썩는다’는 경제학을 무시한 발언으로 웃지 못할 논란을 만들었다. 자유한국당은 국가채무 비율 상한을 40%로 법제화하는 재정건전화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맞서지만, 정작 예산 통과시점에는 지역구 챙기기에 바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민주당보다 더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정의당은 500조 예산이 아니라 600조, 향후에는 700~ 800조까지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재정정책을 확대하는 것이 무조건 진보이고 민중적인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케인즈주의를 흡수한 주류 현대경제학은 총자본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 국가의 경제적 기능에 주목한다. 따라서 확장적 재정정책 또한 자본주의 시장법칙이라는 객관적, 경제적 한계를 가진다. 20세기 초중반 케인스주의 재정확장이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2차 산업혁명 이후 인류 역사상 최고, 최장기 경제성장이 배경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그 반대다. 과도한 긴축재정을 비판하는 것과 금융위기 이후 장기침체라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한계를 무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재정은 국가의 공적 금융(public finance)으로서, 기업이나 은행의 사적금융과 다른 특수성을 지닌다. 국가는 국채와 화폐라는 두 가지 부채를 지닌다. 화폐가 부채라는 사실은 종종 망각되지만, 한국은행은 대차대조표상 한국은행권 화폐발행잔액을 부채로, 외국증권(주로 미국 국채와 같은 달러 표시 증권)을 자산으로 보유한다. 정부가 두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때 국가부도가 발생한다. 세계 금융시장 내에서 국가 채무상환 능력이 일단 의심을 받게 되면 채권 만기 연장이 되지 않고, 국채 수요가 줄어들면서 정부가 새로운 국채를 발행하지 못하고 결국 이를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국채 상환은 자국 화폐로 이뤄진다. 만약 세금을 거둬 국채를 상환하자면 국내 경제가 침체될 것이다. 수량완화와 같이 중앙은행이 정부 국채를 인수해 화폐를 추가로 발행하면 중앙은행 부채(화폐발행잔액)가 증가하는데, 부실자산(국채)과 부도 위험이 큰 부채(화폐가치의 하락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를 중앙은행에 쌓는 꼴이 된다. 이런 결과로 국채 이자율(위험도)이 폭등하고, 환율이 폭등(원화 가치의 폭락)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부도-외환위기 현상이다.

 

무디스와 같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신용평가사들은 국가신용등급도 평가하면서 국가의 채무상환능력, 국채의 신용도를 평가한다. 투자자들은 이런 평가에 반응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투기등급 수준(무디스 기준 Ba1, 11등급)까지 떨어졌던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이후 다시 상승해 현재 Aa2(3등급) 수준이다. 높은 신용도를 받으면 차입금리가 낮아지는 등 자금조달이 쉬워진다.

 

더 큰 확장재정을 주장하는 입장들은 한국의 부채비중이 OECD 평균에 비해 매우 양호하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40.1%(2017년 결산 기준)로, OECD 평균 110.5%보다 많이 낮다. 미국 (106.0%), 프랑스(123.3%), 독일(72.3%)에 비해 낮고, 일본은 222.5%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은 달러, 엔, 유로와 같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기축통화란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적으로 사용된 역사를 반영한다. 또한 세계에서 그 국가에 대해 신뢰를 하고 있다는 증표다. 미국이나 독일은 높은 부채비율에도 가장 높은 신용등급(Aaa, 1등급)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뉴질랜드·스위스·호주 등 비기축통화국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확장재정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그야말로 곡학아세에 다름 아니다. 우선, 앞서 봤듯 일본은 기축통화국이다. 원화와 엔화는 비교 불가능한 화폐다. 다음으로 일본의 엄청난 국가부채는 일본 가계의 높은 저축률과 일본의 세계 최고 수준의 해외자산 보유 덕에 유지된다. 일본 가계의 순금융자산은 일본 GDP의 250%를 뛰어넘는 규모지만, 한국은 100%를 겨우 넘는 정도다. 일본 가계의 저축 중 한 부분이 정부 채권을 사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해외순자산은 약 3조 달러(GDP의 60%)로 압도적 세계 1위다. 이렇게 큰 해외순자산 덕분에 일본 국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 평가가 이뤄진다. 그리고 대외적인 이런 평가 덕분에 국내에서도 저축이 국채 보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해외순자산이 일본의 15% 수준이고, GDP 대비로도 20%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이 일본처럼 국가부채를 쌓았다가는 큰일이 난다. 해외는 물론이거니와 국내에서도 국채 투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국내에서 최대 국채 보유자는 국민연금이다. 정부가 국채발행을 늘려 위험도가 증가하면, 국민연금 손실이 증가한다.

 

마지막으로 고령화 정도도 다르다. 한국의 부채증가 속도는 OECD국가 중 6번째로 높다. 현재 선진국 수준의 고령화가 진행될 경우 부채비율은 더욱 증가한다. 따라서 딱 정해진 국가채무 비중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장적 제정정책에도 현실적 제약은 엄연히 존재한다. 이것을 단순히 무시하는 것은 대안적 사회운동을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경제위기와 사회 전체의 우경화를 촉발할 수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정책이 그 전철을 밟고 있지만, 더 나아가면 남미와 남유럽의 인민주의 경제정책처럼 회복 불가능한 자멸로 향할 것이다.

 

5) 방향 없는 구조개혁

 

비록 제약은 있지만, 확장적 거시정책은 어쨌든 경기침체의 수준을 일정 완화시켜 줄 수는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어떤 구조개혁을 하느냐다. 경제 위기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진단과 구조적 해법이 없다면, 위기는 단지 지연되고 완화될 뿐 더 큰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확장 재정의 근거로 제시하는 IMF나 OECD의 권고는 재정정책의 역할도 강조하지만 그 과정에서 포용적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을 권고한다. 포용적 성장의 본질은 유연안전성을 좀 더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으로서, 금융위기 이후 자주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실패 이후 개혁 방향조차 찾을 수 없는 상태다. 물론 소득주도성장 정책 자체가 경제학적 근거도 부족하고, 도덕적 정당성에 의존할 뿐인 인민주의(포퓰리즘)적 정책으로, 애초부터 구조개혁에 미달한 정책이긴 했다. 그러나 마이너스 GDP갭 확대, 고용성과 저조, 소득분배 악화 등 단기 경기 대응에도 실패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경제문제를 최대한 얘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포용적 혁신국가라는 애매한 표현을 하지만 포용적 성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명확히 정리하지도 않는다.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될 2020년 총선에 경제문제가 이슈가 되면 불리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까.

 

특히 2019년에는 한일갈등이 극단화되면서, 당정청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라는 명분으로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및 노동·환경 규제 완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재벌은 국정농단의 범법자에서 애국자로 변모하였다. 삼성 이재용은 이병철 선대회장 추모식에 3년 만에 나타나 “사업보국”을 강조하면서 사실상 첫 사장단 회의를 주재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은 진짜 재벌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프랜차이즈 갑질 규제로 변질되다가, 이마저도 사라졌다.

 

저출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정권 초 문재인 정부는 출산율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고 ‘2040세대 삶의 질’ 개선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은 산업화 초기 출산억압에서 출산장려로 전환되고 있는 국가의 임신출산 통제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정부는 그나마 임기응변식으로 몇 가지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하다가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라는 충격적인 결과에 놀라 다시 관계부처 합동의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인구구조 대응전략을 논의하게 되었다. 기존의 출산장려 대책으로 돌아간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성 변화의 핵심은 부양비(생산연령인구 대비 유소년+노인인구 비율)의 증가다. 1인당 국민소득과 생활수준의 상승에 따라 출산율이 하락하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발전의 ‘정형화된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의 출산율이 너무 빠르게 하락하고, 너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는 경제활동참가율을 증가시키거나 교육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여서 일정 보완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현 상황은 전쟁 시기나 다름없기에 임대주택 공급, 돌봄체계 개선, 재교육 및 사회안전망 개선 등 보다 과감하고 획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많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전략’은 문재인 정부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6) 국민연금 문제 회피하는 인구정책

 

한국의 유례없이 낮은 합계출산율로 인해, 생산연령인구가 2018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2028년부터 총인구도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55~63년생)가 고령층에 접어드는 2020년부터 생산연령인구의 감소세와 부양비의 증가가 가팔라진다. 생산연령인구 100명 당 유소년+고령인구의 숫자(총부양비)는 2017년 36.7명에서 2030년 53.0명으로 증가한다.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는 경제성장에 있어서 노동투입의 감소이므로, 잠재성장률에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세수감소와 세출증가로 인해 재정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정부는 “인구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종합적·근원적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4대 전략 및 20개 정책 과제’를 제출한다. 4대 전략은 첫째, 생산연령인구 확충, 둘째, 절대인구감소 충격 완화, 셋째, 고령인구 증가 대응, 넷째, 복지지출 증가 관리로 구성된다. 그런데 정작 그동안 가장 큰 쟁점이 되어온 민감한 의제에 대해서는 전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예를 들면 생산연령인구 확충 전략으로, 정년연장이 포함될 수 있는 계속고용제도를 2022년에 (도입이 아니라) 검토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했다. 인구대책에는 현재 60세를 정년 기준으로 설정한 고령자고용지원금을 분기별 27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소폭 상향할 계획만 제시했다.

 

고령인구 증가 대응 전략에서도 주택연금의 활성화, 그리고 사적연금인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활성화 대책만 언급될 뿐, 노후 소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적연금에 대한 대책은 뺐다. 복지지출 증가 관리 전략에서도 규모가 작은 장기요양보험만 보험료 인상 및 국고지원 확대를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복지지출 증가 관리 전략의 도전요인이 ‘국민연금·복지·보건 지출 확대 등 재정지출 급증’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대책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문재인 정부 상반기 동안 국민연금을 논의해온 과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난 2018년 4차 재정계산 결과가 발표된 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연금기금 고갈과 보험료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서둘러 불만을 진화했다. “국민연금 문제로 여론이 들끓는다는 보도를 봤는데, 일부 보도대로라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국민연금 재정계산 정책자문안은 보험료 인상안이 포함되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5%로 높이고, 보험료율을 즉각 11%로 인상하는 방안(‘가’안)과 소득대체율을 현행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5%로 인상하는 방안(‘나’안)이었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하에서 ‘국민연금 1045 운동’을 한 바 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고, 기초연금도 10%수준(20만원 상당)으로 인상하자는 요구였다. 그런데 2015년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과정에서 새누리당-민주당 양당 대표는 공무원연금 일부 개정과 함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이라는 뜬금없는 합의를 만들었다. 한편에서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차별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었고, 다른 한편 민주노총과 공무원노조는 개악저지 투쟁을 했기에, 양당에서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떠한 재정대책도 준비되지 않았기에, 정책자문안 ‘가’안에서 다시 45%인상으로 슬그머니 조정되었다. 적립된 기금의 소진 시점을 유지하려면 더 높은 보험요율 인상이 필요하나, 재정 목표를 다르게 설정해 11%인상으로 타협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집권세력으로 책임있는 방안을 제출하지 못했다. 오히려 네 가지 개편안이 담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연금특위에 핵심 쟁점 논의를 넘겼다.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으로 연금개혁을 활용했을 뿐이다. 경사노위 연금특위는 단일안 합의에 실패했고, 증세논의는 어차피 선거에 불리하기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여야 모두 논의를 회피했다. 최근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21대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게 정부 내에서 안을 다듬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추진력이 가장 강력한 정권 초기에도 불구하고 노인 빈곤 문제도, 국민연금 재정 문제도 모두 회피한 것이다.

 

4. 결론: 2020년 총선과 구조적 위기의 심화

 

4분기 결과가 나와야 알지만 2019년 경제성장률은 2.0%를 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4분기 경제 실적도 나빠서 연간 경제성장률이 1%대가 될까봐 걱정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2020년 경제는 나아질 것인가? 미중 무역분쟁이나 브렉시트와 같은 대외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수출제조업, 그것도 특정 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미래를 전망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정부는 2019년이 경기 순환 상 저점이 되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미중 간 무역분쟁이 완화되고, 반도체 경기도 살아나길 바랄 것이다. 국책연구원에서는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다지고, 정부의 재정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리라 좀 더 기대를 하는 반면, 민간기업연구원이나 투자기관은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낙관적 전망조차도 2.2~2.3% 성장을 예상하고 있어, 이전 수준의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장기불황기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경기하락은 폭도 크고, 기간도 긴 반면, 상승은 작고, 짧을 가능성이 높다. 미중분쟁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미국의 관세부과가 일부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대미 수입 증가나 대미 수출 감소와 교환될 가능성이 높아서, 한국 경제에는 여전히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진지하게 대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국론을 만들어 갈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국민연금 개혁이나 산업 구조조정 같은 민감한 문제를 가급적 회피하고 단기 총선용 정책에 매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대 국회는 차기 총선 준비에 여념이 없다. 여야 다툼을 하다가도 마지막 예산안 확정과정에서는 또다시 쪽지 예산, 카톡 예산이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에게 유일한 위안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구 새누리당 세력들이 지리멸렬하고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이란 사실 말고는 없다.

 

이 과정에서 본래 정책목표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수단에 예산을 쓴다거나, 중복되고 이미 실패한 정책을 반복하고, 재정 낭비가 발생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진 ‘3축’이 일자리·미세먼지·소부장(소재·부품·장비) 예산이다. ‘저소득층 마스크 보급’에 574억 원을 책정했다. 올해 추경 예산(194억 원)보다 380억 원 늘렸다. 저소득층 246만 명에게 1인당 연간 50매씩 책정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별도로 작년과 올해 매년 12억 원 정도의 예산으로 마스크를 100만~200만 개씩 배포했고, 경로당에 남아돌고 있다고 한다. 마스크의 효과도 논란이지만, 저소득층 문제와 생태문제에 이런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철저히 체감하는 것은 어쩌면 자본가 계급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사회구조를 개혁하는 주체가 될 수 없고 각자도생하기 위해 혈안일 뿐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제외한 한국의 하위 재벌들은 선진국을 추격하는 데 실패하고 수출경쟁력도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와 함께 몰락하고 있다. 이윤율의 하락과 이에 대응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과정에서 손실의 사회화, 노동자 책임 전가와 같은 한국의 재벌체제의 모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기업별, 직종별, 개별적 이해에 매몰되고, 나아가 서로 경쟁하면서 각자도생에 몰두한다면, 정권 재창출에만 혈안이 된 문재인 정부, 자기만 살아남으려는 자본가 계급과 무엇이 다른가. 향후 20-30년간 한국의 노동자, 시민들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낮은 경제성장률을 장기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노동자 간 격차와 상호 경쟁, 갈등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그 결과는 말 그대로 ‘야만’일 것이다.

 

총선을 앞둔 2020년, 노동자운동은 개별적 자기 이해를 지양하고 보편적 관점에서 거시적 경제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나, ‘사람 중심 경제’, ‘포용적 혁신국가’ 같은 총선용 인민주의 정책은, 결코 장기적 구조적 대안이 아니다. 오히려 구조적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와 당장의 차별화에 급급해, 민주당이 기초연금 40만원을 공약하면 50만원을 요구하고, 500조 예산안을 세우면 600조 확대재정을 요구하는 식의 관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별반 다르지 않은 정책을 더 과격하고 도발적인 언어로 포장해 정책협약 등 총선 대응 투쟁을 하는 것도 민주당을 도울 뿐이다. 기본 가치와 사회변혁 전략부터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된 경제대안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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