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0 봄. 170호
첨부파일
01_연남동에서_임필수.pdf

민주당은 기어코 비례위성정당을 강행하려는가

임필수 | 계간 사회진보연대 편집장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사실상 승인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2월 23일 “의병들이 나서서 만드는 것을 말릴 수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원내대표가 비례·위성정당 창당은 선거법 개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단호히 말리는 게 충분히 가능한데, 왜 말릴 수 없다고 했겠는가. 이는 민주당 내외곽 인사들에게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서두르라는 신호탄이 아니었겠는가.
2월 28일 《중앙일보》 기사, ‘민주당 5인 마포서 비례당 결의’에 따르면, 2월 26일 민주당 핵심 의원이 모여 비례·위성정당 창당 문제를 논의했다.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전해철 당대표 특보단장, 김종민, 홍영표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이 나눈 대화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전해철 의원: 애초에 선거법 자체를 이렇게 했으면 안 됐다. (연동형 30석) 비율을 더 낮춰야 했다.
(목소리를 확인할 수 없는) 어느 참석자: 그 때는 공수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즉,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싼 의회 내 대치 상황에서 여당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선거법이 아니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통과였다는 ‘실토’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공수처가 중요했을까? 당시는 조국 전 민정수석 개인의 위법(입시, 사모펀드 등)을 넘어서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을 두고 검찰수사가 확대되는 국면이었다. 특히 울산 선거 하명수사는 정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사건이다.
한국의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한국 정치사에서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고 공무원을 동원하는 부정선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즉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발언도 탄핵 사유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그 정도 후과를 낳았는데, 청와대가 시장 선거에 하명수사를 포함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기소와 재판으로 확인된다면 그 정치적 파장은 실로 막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란 무엇이었을까?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속내를 너무나 솔직히 드러냈다. 그는 조국 전 수석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활동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기소되자 “검찰권을 남용한 기소쿠데타”라면서 공수처가 출범하면 “윤 총장 세력의 사적농단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공수처 1호 수사대상’이라고도 했다. 그의 발언은 공수처가 이미 진행 중인 수사를 포함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청와대·여당 관련 권력형 부패·비리 사건 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그야말로 방패막이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드러낸 셈이었다. 공수처와 같이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준)사법기관을 새로 도입하고 장악해서, 권력형 사건을 미리 차단해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의도야말로 정권의 본질적 반(反)민주성을 드러내지 않는가?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다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한 마디로, 공수처 통과로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소수정당에 나눠주어 잃어버리게 된 국회의원 의석이 아까운 것이다. 준연동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란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소수정당이 정당명부 투표를 통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바로 이런 거대한 ‘실익’이 존재하기 때문에 4+1 협의체가 가동되어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된 셈이었다.
사실 선거법 개정의 방향으로 제시된 ‘비례성’이라는 쟁점에도 논란이 있었다. 새로운 선거법을 지지하는 세력은 연동형이 정당투표의 득표수에 ‘비례하여’ 의석수를 보장하므로 ‘비례성’을 높이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세력은 지역구 투표와 분리해야 할 정당명부 투표가 연동이 되면서 오히려 ‘비례성’이 왜곡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즉 현 상황처럼 특정 정당이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은 조금밖에 얻지 못하거나 아예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거법을 여야합의가 아닌 다수결로, 그것도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킨 것은 상당한 무리였다. 이는 넓은 의미의 ‘게리맨더링’이기 때문이다. 게리맨더링이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넓은 의미로 쓰면, 의회 내 다수당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시도 전반을 일컫게 된다. 그런데 게리맨더링은 극히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성숙한 의회정치에서는 금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게리맨더링이 관행화되면 매번 여야가 교체될 때마다 여당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이 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 정당은 최소한 정당의 ‘밥그릇’이 걸려 있는 선거제도에 관한 한, 여야 합의 없이 개정을 강행하는 것을 피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법의 전면적 개정이란 쉬운 일이 아니고, 일단 한 번 도입되면 바꾸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4+1 협의체는 그러한 의회민주주의의 관습을 무시하고 다수결로 선거법 개정을 강행했다. 이러한 선거법 개정 강행은 당장 4+1에 속한 정당의 의석수를 늘리기 때문에 유리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야당을 배제한 다수당에 의한 선거법 개정이라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어쨌든 그에 따라, 선거법 개정에서 소외된 야당 세력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야당은 선거법이 개정되면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계속 경고했고, 통과되자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야당의 비례정당에 대해 “국민투표권을 무시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든다”(이해찬 대표), “국민을 얕잡아보고는 눈속임이다, 유권자의 거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이인영 원내대표)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다가 막상 선거가 가까워오자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이를 사후적으로 해석해보자. 민주당은 처음에는 공수처 도입을 목표로 파격적인 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함으로써 제1 야당을 배제하고 소수 정당을 4+1 협의체라는 틀로 끌어들였다. 그런 다음에는 선거법 개정안의 파격적인 내용을 조금씩 깎아내고 덜어내면서, 다른 소수정당이 ‘그 정도라도 어디냐’라는 식으로, 또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거법 수정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면서 결국 공수처를 통과시켰다. 그러다가, 막상 선거가 다가오자 소수정당으로 돌아갈 표가 아까워 비례정당을 창당하는 길로 나간 것이다.
민주당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근거는 ‘탄핵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야당이 의회 내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미 대통령 탄핵 과정을 두 차례(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겪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듯이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는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수, 의결에는 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선거 판세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탄핵소추 의결은 물론이거니와 발의조차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당이 탄핵을 마치 정치공세인 것처럼 인식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미 ‘추 장관의 사법방해와 자연국가로 타락하는 문 정부’(사회운동포커스, 2020. 2. 11.)에서 주장했듯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검찰 수사 방해와 기소장 비공개는 명백한 사법방해이며, 미국과 같은 경우 탄핵사유에 해당한다. 우리는 미국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도청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도청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탄핵 심판에 소추되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청와대나 여당이 탄핵을 막고 싶다면, 탄핵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 대다수는 대통령이, 게다가 연속으로 두 번이나 탄핵을 당하는 불행한 사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탄핵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잘못이 있다면 자복하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빌미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여 소수 정당의 표를 다시 빼앗아 오려고 시도하는 게 사태를 막는 데 도움이 될지 심히 의문이다. 과연 민주당은 기어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만약 창당을 강행한다면, 민주당의 후안무치는 한층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 * *
이번 호 특집 주제는 ‘2020년 총선과 한국정치’로 잡았다. 4·15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먼저 김태훈의 「집권 86세대의 포퓰리즘」은 86세대론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과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은 서로 다른가, 무언가 다르다면 왜 그런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을 ‘정치가적 인민주의’라고 규정했다. 노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하면서도, 즉 기술관료적 지배를 본질로 하면서도 그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을 일종의 가상의 적, 즉 ‘기득권 세력’ 탓으로 돌리며 정치적 쟁점을 호도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변칙적이다. 김태훈은 문 정부의 특징으로, △경제정책에서 소득주도성장론과 같은 반(反)경제학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외교정책에서 주관적 희망에 근거하여 비현실적인 민족주의적 선동을 즐긴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대한 원한에 사로잡힌 듯 정치의 사법화(공수처 신설, 경찰 강화)라는 무기를 통해 ‘기득권’을 제압하려고 한다는 점을 꼽았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세계적 포퓰리즘의 흐름과 일맥상통하지만, 한국의 고유한 특징, 곧 포퓰리즘의 ‘주체’라는 측면에도 주목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집권 86세대가 존재한다. 예컨대 현재 민주당 의원을 보면 80~87학번이 67명으로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 86세대는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보좌진’이었다면, 시간이 흘러 이제는 지도자, 달리 말하면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그런데 김태훈은 1980년대 민족해방파(NL) 학생운동의 자주노선이 반경제학과 민족주의적 선동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1980년대 중반 한국사회성격논쟁을 사실상 회피했는데, 이는 객관적 정세인식을 무시하는 집권 86세대의 몰인식의 기원이 된 셈이다. 최근 언론에서 자주 언급하는 ‘86세대의 행운’은 그 세대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될 때 사회에 진출해 그 위기의 직격탄을 맞기보다는 성장기의 마지막 혜택을 입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민주당의 집권 엘리트 86세대는 바로 그러한 몰인식으로 인해 세대 간 불평등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다음으로 김동근의 「정의당 이대론 안 된다」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의당의 행보를 비판한다. 정의당은 주요 쟁점 사안을 두고 민주당과 같은 편에 섰다. 소득주도성장 전략, 김경수-드루킹 언론조작 스캔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선거제도 개편, 패스트트랙 상정, 강제동원 배상과 지소미아 파기,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등 모든 사안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김동근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을 개혁 대 반개혁의 대결로 보는 정의당의 정세인식 자체가 오류라고 지적한다. 민주당의 포퓰리즘에 휘말리는 결과만 낳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2019년 당 대표 선거에서 심상정 대표는 양경규 후보가 주장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반대하며 정의당의 이념을 ‘개혁적 자유주의부터 민주적 사회주의까지 포괄하는 다원적 진보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렇지만 심 대표가 말하는 다원적 진보주의란 실상 정의당의 고유한 이념·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 글을 쓰는 현재,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정의당에 약속했던 ‘선물’을 도로 가져가겠다는 의도가 분명해진 상황이다. 정의당으로선 또다시 심대한 시련에 직면한 셈이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민주당이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착각이나, 민주당과 협력하여 자유한국당과 같은 보수세력을 밀어내고 민주당과 진보개혁 경쟁을 펼치겠다는 식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소형의 「2020년 민주노총 총선방침 비판」은 ‘정치방침이 없는 총선방침’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란 정당건설과 같은 정치전략이나 ‘배타적 지지’와 같이 행동통일을 규율하는 수준의 실천방침을 뜻한다. 반면, 선거방침이란 정치방침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후보전술과 투표방침을 뜻한다. 사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부재는 현 집행부에서 처음 나타난 상황은 아니다. 2017년 대선을 앞둔 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을 담은 원안과 수정안이 모두 부결되어 방침의 실종 상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2018년 지방선거 전까지 다수의 진보정당들을 통합하는 ‘선거연합정당’ 창당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2017년 대선에서 진보정당 후보들 간 민중경선을 통한 단일화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방침의 경우도, 산별노조와 지역본부 수준에서 보면 사실상 무력하다. 각 조직이 실리를 추구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입법 로비, 정책연대, 조합원 개별 후원사업, 비공식적 조직투표를 용인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민중연합당의 정당투표 지지율 합계는 8.95%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는데, 이는 조합원이 투표지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명환 집행부는 정치방침의 공백을 대체한다는 취지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정치사업계획을 입안했다. ‘연합정치’를 통해 진보진영의 통일적 대응을 만들어나가자는 게 요지였다. 이소형은 현존 진보정당들이 이런 연합정치를 수용할 것이냐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심각한 공백이 있었으나 집행부의 계획은 그러한 공백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노동자운동의 이념적 혁신이 없다면 정치세력화 운동이 조합원의 강력한 실리주의적 편향을 유의미한 정치의식으로 전혀 조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식이 없다면 민주노총의 정치적 실천은 과거의 오류를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집의 마지막 글로 한지원의 「정치·경제 역사로 살펴본 민주당 정치의 위험성」은 민주당 정치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당 대표 시절 ‘창당 60주년’ 행사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1955년 9월 18일,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 장면, 정일형 등 범야권이 결집했다. 그렇게 창당된 민주당이 지금 우리당의 뿌리이다”, “김대중 대통령님도 이 민주당에 참여하여 정치를 시작하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뿌리는 1945-55년 시기로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얘기인지, 왜 그렇다는 것인지 여러 의문이 들지만 일단 이 문제는 생략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걸어온 지난 60년은 (…)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와 통일, 정의와 복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려온 희망의 역사였다”라고도 말했다. 과연 민주당의 역사는 곧 희망의 역사였나? 한지원은 △1959-61년 장면 내각의 무능, △1979-80년 경제위기와 양김(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세오판, △1987년 이후 금권정치와 1997년 외환위기, △노무현정부의 금융세계화 주도 성장론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 각각을 파헤친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경제위기의 분기점마다 무능을 반복했을 뿐이다. 왜 그런가? 한지원은 민주당이 자유주의에 미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자유주의는 의회정치를 통한 법치와 경제학을 요체로 하지만, 민주당(특히 장면-김대중의 신파)은 이 모든 것을 결여했다. 현재 민주당은 2년 가까이 사법적인 힘으로 이른바 ‘적폐청산’에 매진했으나, 검찰과 법원이 정치를 통제한다고 경제가 살아나거나 더 나은 민주주의가 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법이 정치를 마비시켜, 더욱 포퓰리즘 친화적 경제정책이 양산되게 할 수 있다. 이 모든 면에서 볼 때,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차선이나 차악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김진현의 「혁신 없이 거품만 조장하는 혁신성장 정책」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새로운 브랜드인 ‘혁신성장’을 해부한다. 혁신성장은 창업과 생산활동에 대한 규제를 풀고, 금융시장 규제완화를 통해 벤처기업 투자자금 규모를 늘린다는 발상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정작 혁신은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그림자금융을 키우고 위험한 투자를 늘리며, 코스닥 시장의 거품을 확대할 따름이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와 라임자산운영의 대규모 손실 사태는 그림자금융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장래가 밝다고 적극 선전해 개인투자자들이 바이오기업 가치를 과대평가하도록 이끌었다. 그에 따라 바이오기업의 주가가 폭등해 코스닥 시장의 거품이 커졌으나, 2019년에는 바이오기업 대부분이 신약개발에 실패함으로써 거품이 터졌다. 문 정부의 혁신성장 기조는 새로운 금융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독자에 따라 이 글이 다소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2007-9년 금융위기를 통해 깨달았듯이, 사회운동도 최첨단 금융기법과 그 위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일독을 권한다.
김진영의 「2020년 NPT를 넘어 핵무기금지조약으로」는 1970년에 발효되어 50주년을 맞이한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NPT)의 역사를 살펴본다. NPT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양도를 받는 ‘수평적 핵확산’은 엄격히 금지했으나, 핵무기 보유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이 핵무기의 수를 늘리거나 질적으로 개량하는 ‘수직적 핵확산’은 엄격히 금지하지 않으므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NPT의 역사는 곧 ‘수직적 핵확산’을 막고,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도 폐기하기 위한 반핵평화운동의 도전의 역사다. NPT 체제는 매년 5년마다 가입국의 약속 이행을 평가하는 회의를 개최한다. 올해 2020년 봄에도 뉴욕에서 평가회의가 개최될 것이며, 세계 반핵평화운동 단체들도 이 시기에 맞춰 다양한 행사와 시위를 조직한다. 올해에는 특히 현재 81개국이 서명, 35개국이 비준한 ‘핵무기금지조약’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동북아에서 핵 경쟁 고조라는 위험을 엄중히 인식하며, 핵무기금지조약 서명, 비준을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지난 호에 이어 세계사회운동 꼭지로 수잔 왓킨스의 「어느 페미니즘인가③」, 사회운동사 꼭지로 임필수의 「남북한 통일정책의 역사와 통일운동④」를 싣는다. 왓킨스의 글은 라틴 아메리카와 지중해 유럽, 중국과 미국의 최근 페미니즘 운동 흐름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공식 페미니즘은 젠더 평등이 사회적 불평등과 혼합되는 전략을 추진한다면, 남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페미니즘은 젠더 평등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또한 역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면서 젠더 평등을 촉진하는 전략을 추구한다. 임필수의 글은 1990년대 한반도 정세를 회고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1993~2000년 대기근을 재고찰하고, ‘탈냉전’을 거부한 쪽이 미국과 김영삼 정부인가, 아니면 북한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번 호는 두 편의 책 소개를 담았다. 앞서 김태훈의 글에서도 언급되었던 『세습 중산층 사회』를 소개하는 박준형의 「세급되는 불평등, 노조운동의 혁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노동조합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 책의 저자는 노동자운동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냐는 문제에 회의적이지만, 박준형은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합의를 통해 격차를 축소하는 방안을 찾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헌법사 산책』을 소개하는 김성균의 「발전과 쇠퇴, 갈림길에 선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 각국과 한국의 헌법사를 간략히 살펴보면서 문재인 정부 시기 개헌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문재인 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내놓은 개헌안은 대통령 권력의 분산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의도로밖에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두 글 모두 특집 글들의 논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호부터 ‘독자가 필자에게’라는 꼭지를 담는다. 지난 호 글에 대한 회원, 독자의 질문과 의견에 답하고자 기획했다. 이번에는 지난 특집글에 대한 김태훈, 한지원의 답변이 담겼다. 회원, 독자가 질문이나 의견을 담은 글을 보내면 그 글도 실을 수 있다. 회원, 독자 여러분과 적극 소통하도록 노력하겠다.

2020년 3월 10일
편집장 임필수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