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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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냄과 떠남 그리고 만남

송명관 | 집행위원
●이별의 아픔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지 몰라도 2월은 늘 싱숭생숭했다. 올해를 어떻게 살 것인지 겨울 내내 고민해서 결정했지만, 졸업식을 보면 아쉽기도 하고 3월을 생각하면 다시 설레임이 일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2월은 좀 서운한 느낌이 더 많은 듯 하다. 졸업은 지난 여름에 했고, 이젠 학교도 영영 떠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3월의 향기'가 없는 02년 2월의 끝맺음은 왠지 두렵기도 하다.

무엇보다 부모님 곁을 정말로 떠나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아 더욱 서운하고 두려운 것 같다. 평소에 그렇게 바라던 바였는데... 집에 있기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할 정도였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섭섭하기만 하다.
오늘 어머니와 말싸움을 했는데 어머니가 우시고 말았다. 도중에 내가 "그냥 그렇게 아버지와 티격태격 싸우시면서 사시다가 죽어버리세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 자식 걱정하지 말고 어머니의 삶을 사시라고 한 말이었는데... 그것이 그만 너무 과했던 것이다. 자식이 어머니께 죽어버리라고 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어머님은 목이 메여 말씀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펑펑 눈물만 흘리셨다. 나도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어머니는 결혼하고 지금까지 27년 동안, 가슴속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을 다 하셨다.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는 못 살겠다며 몇 시간 동안 그 많은 얘기들을 다 하셨다. 내가 몰랐고 집안에서 쉬쉬했던 가족사까지... 가사노동과 직장일로 파김치가 된 자신의 삶을 보며 느끼는 서글픔까지...

가끔 영화에 보면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의 이별 장면이 나오는 데 대개 두 가지인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교감이 있는 장면과 서로가 서로에게 한을 심은 채 한쪽이 훌쩍 떠나버리는 장면 두 가지이다. 전자의 그림이었음 하는 것이 바램이었는데, 자꾸만 후자로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의지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던데 이런 이별도 그럴까? 그런데 정말 나는 최소한의 의지라도 보여 드렸었나? 어머니와 한 집에 살면서 저녁을 같이 먹은 지가 너무 오래된 일 같다. 심지어 주말에도 휴일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정말 슬프다. '어둠속의 댄서'라는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이 가끔씩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뮤지컬을 상상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상상이 끝나면 항상 비참한 현실로 되돌아오는데 그 장면들에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희망을 되찾을 수 없는 것일까? 그 주인공이 마지막에 사형을 당하면서 끝내 자신의 희망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어머니도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신 것 같아 슬펐다. 그동안 나 역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 원망스러웠다.


●숙대입구역 1번 출구에 가다

99년 11월 사회진보연대 사무실을 처음 찾아갔다. 제대하고 다음날이었는데, 이제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할 지 선배와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불쑥 찾아가 이사전 사무실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그 당시 선배는 무척 바빴던 것 같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후배를 반겨주고 싶어서인지 이런 저런 질문을 나에게 하셨다. 군대가기 전에 한번 정도밖에 못 본 사이인데도 그 선배는 열심히 이야기를 하셨는데 오히려 내가 약간 당황할 정도였다. 지금도 그 선배의 그러한 적극성이 나에게 좋은 채찍질이 되곤 한다. 그일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작년에 졸업하고 방황하던 시기 다시 운동을 결의할 때, 그 선배의 조언이 상당한 자극되었었다.

때론 그러한 적극성은 다른 사람들을 위축하게 하거나 갈등을 빚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열정'에는 항상 진실이 묻어 난다. 항상 그러한 열정을 어머니께도 털어놓고 싶다. 그런데 아직도 자신이 없다. 항상 나는 어머니가 현실을 모른다거나 혹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투로 무시했었다. 좋은 만남에는 진실이 있어야 하는데 왜 나는 나의 진실을 말하지 못했을까? 나에게는 진실이 없는 것이 아닐까?

●영원한 이별은 없다

얼마간의 방황을 끝내고 지금은 사회진보연대와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매달 받아보는「월간 사회진보연대」를 읽었기에 사회진보연대의 고민을 몰랐던 바는 아니었지만 막상 사회진보연대 활동을 결의하고 준비하려니 떨리기도 하다. 몇 번의 정책워크샵을 계기로 사람들과 친숙해졌지만 나는 아직 사회진보연대를 잘 모른다. 상근자 숫자도 몇 일 전에야 알았고, 누가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

이제, 가끔씩 사회진보연대의 토론회 자리에서 느꼈던 그 설레임을 '열정'으로 만들고 싶다. 그 속에서 나의 진실도 성숙시키고 싶다. 그래서 어머니께 나의 진실을 보여드리고 싶다. 운동을 어머니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보내는 자에게 떠나는 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약속이 좋은 만남을 기약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 진실을 지금 당장 보여드릴 수 있을지, 또한 어머니가 그것을 이해하실지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만약 어머님이 자식이 열정으로 가득찬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면, 앞서 말했던 두가지 영화의 이별장면 중에서 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어머니께 이 말을 꼭 드리고 싶다. "어머니, 어머니의 잃어버린 삶을 꼭 되찾으세요... 저는 어머니 편입니다...어머니 곁에 항상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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