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1 봄.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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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평가와 2021년 정치전망』 독자에게

임필수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1. 글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386집단이 부상할 조건이 되었고, 이것이 정당정치의 약화, 행정부·관료의 무능으로 나타나 문재인 정부의 총체적 실패를 야기하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고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게 유독 문재인 정부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텐데요, 문재인 정부의 실패 원인으로 특별히 지목하는 게 타당할까요? 
 

(1) 1987년 개헌의 한계, 대통령의 비민주적 권한  

독자께서 지적한 것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는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고, 1987년을 전후로 한 ‘민주화’의 근본적 한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7년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통령후보가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해서 평화적인 정부 이양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후, 7월 31일부터 한 달간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국회의원 8명이 모인 ‘8인 정치회담’에서 개헌협상을 개시했습니다. 8인 회담은 협상해야 할 쟁점사안을 정리했는데, 그 중 정부 관련 사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이 표를 보면 행정부(administration)를 정부(government)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원내각제가 아닌 미국의 경우에도 항상 오바마 행정부, 트럼프 행정부라고 부르지 오바마 정부, 트럼프 정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우리 습관에 따라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죠. 미국에서도 정부라 함은 사실 의회를 지칭합니다. 사실 그래서 우리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재인 행정부, 이런 식으로 불러야 하는데요, 습관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정부가 행정부를 지칭한다는 인식 자체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귀결이라는 점은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개헌안 내용을 보면, 1960년 4·19혁명 이후에는 의원내각제가 도입되었으나, 1987년에는 6월항쟁의 주류적 노선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전환이 처음부터 배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에서는 아예 제헌의회를 소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히 강력했으나, 전체 운동은 직선제 개헌으로 흘러갔습니다.) 또한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하고,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폐지하고, 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새로 들어가기는 했으나,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행정입법권, 개헌발의권, 국민투표 부의권과 같이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은 고스란히 그대로입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비상조치권은 ‘긴급명령, 긴급재정경제처분 및 명령, 계엄과 그 해제’라고 이름을 바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권한은 입법부인 국회를 초월하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비민주적’ 권한이라고 부를 수 있고요, 실제로 과거 이승만 정부나 박정희 정부처럼 ‘비민주적’ 정부가 도입하거나 즐겨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사회운동에서 이러한 대통령의 비민주적 권한에 대한 비판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2018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는데요,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낸 논평, “촛불개헌을 위한 국회의 역할을 기대한다”를 보면 대통령 개헌 발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의식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1년간 국회에서의 개헌논의는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대통령 개헌 발의가 불가피했다는 뉘앙스가 있고, 오히려 개헌안 내용이 “촛불개헌을 위한 최저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통령 개헌 발의를 사실상 찬성하는 마당에, 어찌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축소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겨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 하나의 예를 들면, 2020년 6월 17일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해고금지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국회를 초월하는 대통령의 비민주적 권한인 비상조치권에 의존하자는 주장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2) 내각제에 대한 입장 돌변

질문 중에, 제왕적 대통령제가 유독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특출한 근거가 되냐는 의문도 있었는데요, 1987년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비교할 때,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전에는 말로는 가장 강력하게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했다가, 집권 후에는 가장 의식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청와대 중심성을 강화했다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인 2012년에는 의원내각제 개헌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개헌을 연구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말한다면,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다. 세계적 대세로 보더라도 민주주의가 발전된 대부분의 나라들이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다”, “대통령제를 해서 성공한 나라는 미국 정도”이며, “미국도 연방제라는, 연방에 권한이 분산됐다는 토대 위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환경이 다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권력이 본인에게 점점 더 가까이 오자, 말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죠. 2017년 1월 17일,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출판기념회에서 “4·19 혁명 이후 짧게 내각제를 운영해 봤는데, 곧바로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서 국민들은 (내각제를) 실패했던 경험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과연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이론적으로는 뛰어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우리 현실에서 대통령제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 충분히 검증된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죠. 

그러면서 내각제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도입과 △재벌개혁을 꼽았습니다. 첫 번째 전제조건에 관해 살펴보면, 내각제 개헌을 한다면 선거제도 개편도 당연히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으니, 전제조건이라고 말할 것까지도 없죠. 특히 두 번째 전제조건이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다. 그 가운데에서 삼성의 힘이 특히 강해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을 한다”며 “이런 부분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 저는 내각제에선 더 취약하다고 본다”고 주장했습니다. 왜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재벌에 취약하다는 것인지, 그래서 내각제가 되면 결코 재벌개혁은 할 수 없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제 나라에서는 재벌과 같은 피라미드형 기업집단이 없고, 내각제 나라에서는 그런 게 있다는 어떤 규칙성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대통령 권력이 눈앞에 있는 마당에, 내각제가 더 좋다는 과거의 발언을 지워내려는 변명으로 볼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덧붙여, 그럼 문 대통령 본인의 말을 따를 때, 4년간 펼친 국정으로 이제는 내각제의 전제조건이 갖추어졌다고 보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쨌든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졌고, 삼성 이재용 회장은 수감 중이니까요. 
 

(3) 청와대 중심 행정부 운영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정부 운영과 관련된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첫째, 국무총리 임명은 국회의 동의를 얻겠다는 것인데요, 원래 헌법에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얘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는 실상 야당의 동의를 구한다, 즉 야당과 협치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정부를 운영한다는 것인데요, 이 역시도 헌법에서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실상 청와대 비서실이 중심이 아니라, 행정부 장관과 국무총리가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책임장관과 책임총리를 약속했고요. 두 번째, 세 번째 약속은 청와대 중심성을 탈피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문재인 정부가 아닌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정당과 의회, 내각이 각각 중심이 되는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스스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이런 약속이 지켜졌는가가 그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겁니다. 마지막부터 보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후, 2017년 5월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당헌을 개정해서 당의 ‘인사추천위원회’를 설립하고 당의 인사추천권을 실현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자 바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갈등설이 불거졌고, 결국 당헌 개정은 좌절되었습니다. 청와대의 어떤 고위 인사는 “정책이 아닌 인사가 당청 협의 대상인지는 모르겠다”고 아예 대놓고 얘기하기도 했는데요, 정당이 인사추천권도 행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당 중심 정부운영이 가능하겠습니까. 정당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당선되자마자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이 중심이 아니라 내각과 총리 중심으로 행정부를 운영하겠다는 약속은 앞에서 언급한 ‘386세대의 득세와 행정부·관료의 무능’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87년 개헌 이후로, 대통령 후보자는 ‘정치 민주화’와 관련된 분명한 테마 중 하나로, 청와대 권력 축소를 항상 공약으로 내걸고, 최소한 집권 초기에는 그러한 약속을 실천하려는 어떤 제스처라도 취했습니다. 장관과 총리를 중심으로 행정부를 운영하는 게 정상적이고,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이 장관을 능가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 때에나 있었던 일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던 것이죠. 그런데, 정반대로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를 의식적으로 강화했습니다. 

청와대 비서실 인원으로만 비교해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 정점을 찍었는데, 막판에는 533명에 이르렀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405명보다 30%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는 비서실 몸집을 줄이겠다고 공언하면서 출발할 때는 인원을 427명까지 줄였는데, 막판에는 456명까지 다시 늘어났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443명 규모를 유지했습니다. 반면 현재 청와대 인원은 490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요신문》 2020년 8월 12일 보도.) 그리고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에 장관급이 1명, 차관급이 8명, 박근혜 정부 때는 장관급 1명, 차관급 9명이었는데,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장관급 2명(비서실장, 정책실장), 차관급 10명(수석비서관)으로 장차관급이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그 당시 청와대에서 일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 사이에 분명한 공통점이 있는 셈이지요.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했습니다. 

권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새 정부는 비서실장 밑에 재정기획관을 신설했습니다. 예산에 관한 권한을 기획재정부에 맡기지 않고 청와대가 직접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죠. 국정상황실, 행사기획비서관도 신설했습니다. 비서실장 밑에 정무, 민정, 사회혁신, 국민소통, 인사 수석이 있는데요, 특히 이전 정부에서는 여론을 의식해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민정수석실과 인사수석실을 처음부터 가동했습니다. 특히 민정수석은 ‘권력통제’라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공직자의 인사검증, 직무관찰이라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인사검증 권한을 기반으로 검찰인사에 영향력을 미치고, 5대 사정기관(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감사원)을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민정수석은 박정희 정부 때 도입되어 3선 개헌과 유신체제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민정수석에 대한 시선이 따가웠고, 김대중 정부 때는 직급을 낮추고 권력통제 기능을 없앴습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민정수석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심지어 개헌안을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의 민정수석이 바로 조국 교수였습니다. “조문작업은 민정수석실이 했다. 업무의 처음부터 마지막 발의까지 저희(민정수석실)가 책임진다”고 마치 자랑스럽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요, 개헌안 조문의 권한이 민정수석실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식의 태도였습니다. 그 당시 야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개인 비서에 불과한 민정수석 주도로 이벤트 하듯 (개헌안을 발표)하는 것은 야당을 무시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 그 자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 때 폐지했던 정책실을 복원하고, 장관급 정책실장 밑에 차관급 경제보좌관, 과학기술보좌관을 두고, 역시 차관급인 일자리수석, 경제수석, 사회수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사회수석 밑에는 사회복지, 교육문화, 주택도시, 기후환경, 여성가족 담당 비서관이 있고, 복지, 국정교과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미세먼지, 몰래카메라 대책, 탈원전도 사회수석실이 관할합니다. 비서실과 별도의 조직인 국가안보실의 경우도 정원이 22명에서 43명으로 늘고 3차장 8비서관 체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청와대 구성과 권한이 행정부와 병렬적으로 존재한다면, 당연히 행정부처가 중심이 아니라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국정이 운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처럼 비대하면서 병렬적인 청와대 기구가 한편으로는 청와대 중심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의 발원지이자, 다른 한편으로 행정부·관료의 무능이 나타나는 원천이 됩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장관 패싱’ 논란이 너무 흔한 뉴스가 되어서 일일이 언급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국토부가 장관이 휴가 기간일 때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버렸다는 뉴스라든가, 교육부 장관이 “정시 확대는 없다”고 말했다가 다음 날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강조해서, 청와대가 교육부 장관을 패싱했다는 논란이 일었다는 뉴스라든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북한 주민이 북송되었는데, JSA 대대장이 국가안보실에 직보해서 정작 국방부장관은 이런 사실도 몰랐다는 뉴스라든가,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무수히 많습니다. 청와대가 장관조차 패싱해버린다는 말이 곧 행정부·관료의 무기력, 무능을 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국무총리 임명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비해, 장차관급의 청와대 비서실의 공직자는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습니다.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다는 것은, 시민의 선출된 대표기관인 의회가 임명직 공직자에 대한 책임성을 부과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장관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서 개인적 청렴성에 대한 검증뿐만 아니라, 정책방향에 대한 검증도 거치기 때문에 개인의 도덕적 책임성뿐만 아니라 정책의 책임성이 부과됩니다. 그런데, 청와대의 장차관급 실장, 수석은 인사청문회를 거치지도 않는데, 그들이 장관에 버금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의 책임성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야당과의 협치라는 약속이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문제는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함께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서 대선 전에는 그렇게 강한 목소리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다가, 당선된 후에는 1987년 이후 그 어떤 정부보다 더 강한 청와대 정부가 되어버렸냐는 의문이 남겠습니다. 혹자는 문 대통령 본인이 의회 정치인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게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상을 하면서 시작했기 때문에 청와대 중심성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적하기도 합니다. 386세대, ‘캠프 인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선거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국회의원이나, 정책적 전문성을 갖추고 또 국회청문회도 거쳐야 하는 행정부 장관보다는 청와대 경력이 가장 손쉽게 거대한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386세대의 정치문화 자체가 의회민주주의를 통한 경험, 훈련이 없었고, 그래서 결국 군부독재 시기 정치문화의 닮은 꼴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더 비관적 분석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 간에, 현재까지 집권 4년이 흐르면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청와대 정부’가 문제라는 인식은 완전히 사라진 듯 보입니다. 그래서, 현재 여권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한다면, 이런 경향은 전혀 바뀌지 않거나 도리어 더 강해질지도 모릅니다. 
 
2. 글에서는 “문민독재로 폭주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저지해야 한다”는 언급이 나오는데요, 문 정부를 ‘문민독재’로 규정하는 게 적절할까요? 독재라는 말에는 대중적 지지가 없는 상태에서 인민을 억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현 정부를 이런 의미에서 독재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현 정부를 독재로 부르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일 터인데요, 그런 지적은 당연히 타당하지만, 독재로 폭주하는 것이 아니냐고 표현한 것은 독재의 ‘표지’라고 할 수 있는 요소를 현 정부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앞에서 비대하고 병렬적인 청와대 기구가 청와대발 권위주의의 원천이 된다는 점은 이미 지적했기 때문에, 국회라는 측면, 사법부라는 측면, 언론이라는 측면에서 독재의 표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국회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독재의 표지가 국회의 주변화, 즉 여당의 도구화나 야당의 배제라고 생각합니다. 파시즘의 궁극적 정의는 대의제의 파괴, 즉 의회의 폐지인 것이고, 대표적인 사례가 제국의회를 폐지한 나치즘이죠. 현재 유럽의 인민주의는 파시즘의 경험 때문에 의회의 폐지를 내걸지는 못하고, 오히려 의회정치에 적응해서 의회에서 의원을 배출하고자 하는데요, 그러면서도 의회를 우회하면서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에 호소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쨌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의회에서 협치를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여야합의 없이 선거법을 개정해서는 안 되었고, 또한 여야합의 없이 대통령이 개헌 발의안을 내놓아서는 안 되었죠. 선거법은 의회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의 경우, 여야합의 없이 개정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습니다. 다수당이 자신에게 편향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에서 다수결로 밀어붙일 경우, 당연히 파행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의회 다수당이 교체되면 또다시 선거제도 개정 파행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개헌발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대통령의 권한 자체가 과도한 것이므로 스스로 절제해야 마땅했습니다. 

다음으로 21대 국회로 넘어가면 여당의 상임위 독식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죠. 특히 법사위는 야당이 맡는 관행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고 있었는데, 이러한 관행을 깨버렸다는 게 문제가 됩니다. 한국은 상하원 양원제가 아니라 단원제이기 때문에 법사위의 야당 배정은 국회 내 다수당의 독주를 막는 관행으로 존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쟁점을 두고 야당을 배제하면, 당연히 국회는 파행으로 가는 것이고, 국회의 권위와 역할은 점점 더 주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사법부와의 관계 측면인데, 이는 제가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도입 문제에 대해 별도의 글에서도 다뤘던 문제이니까 간단히만 말하겠습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명분으로 문 정부가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검찰을 핍박한다는 말입니다. 검찰개혁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고, 사법부의 영역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면서, 대통령과 행정부가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 내로 인입시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최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추진하겠다는 민주당의 입장이 나왔는데요, 이는 가장 극단적 사례가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통령의 사법부 지배인 것이죠. 

세 번째는 언론 측면에서 나타나는 문제인데, 문재인 지지자들이 언론사에 대해 보이는 행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문 정부에서는 오히려 ‘진보언론’, 예를 들어 《한겨레》가 문재인 지지자의 타깃이 되는데요, 대통령에 대해서 약간의 부정적인 기사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식의 공격이 끊이지를 않았죠. 이러한 극단적 지지자들의 행태를 보면 심한 경우에, ‘프로토-파시즘’, 즉 파시즘의 어떤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죠. 그런데 언론도 이런 공격을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논조를 조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고요. 실제로 올해 1월 《한겨레》 사회부장이 보직사퇴를 했는데, 일선 기자들이 “어설프게 정권을 감싸려 든다”고 그를 비판한 게 원인이 되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여론이 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언론이 없는데, 대의제 민주주의가 어찌 작동될 수 있겠습니까. 

종합해보면, 비대한 청와대 권력, 국회의 주변화, 사법부 지배, 언론 억압 또는 언론 조작, 이런 요소는 가히 독재로 가는 지표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중에는 독재에는 대중의 지지 없이 억압으로 일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중이 지지하는 독재가 있다는 의미에서 ‘대중독재’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독일의 나치 시대이든, 한국의 박정희 시대이든 대중의 커다란 지지가 있었죠. 예를 들어 박정희 정부 때를 보면,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친다고 하면서 이를 자신의 재신임투표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민이 현행헌법의 철폐를 원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즉각 대통령 직에서 물러날 것이다”고 말한 것이죠. 선거 결과, 전국적으로 73.1%라는 높은 찬성률이 나왔습니다. 서울과 부산은 각각 58%와 62%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득표율을 보이긴 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대중의 지지가 있는 독재야말로 더욱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위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유념하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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