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1 여름.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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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환 정책의 문제점과 노동조합의 역할

특집팀 |

본격화된 산업전환


산업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작년 10월,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전기·수소차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밝힌 이후,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030년까지 전기요금에 환경비용을 반영할 것, △2035년에서 2040년 사이 내연기관차를 판매 금지할 것, △2045년 또는 그 이전에 석탄발전을 퇴출할 것을 권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2월 초부터 철강·에너지 등 탄소 다배출 산업에서의 탄소중립 공동선언을 시작해, 2달 만에 13개 업종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4월 초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유례없는 속도와 범위다.

산업전환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2010년대 초 저가 노동력을 무기로 한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세계 주요 제조업 강국은 성장 한계의 위기에 직면했다. 세계 각국은 독일 제조업 혁신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을 시작으로 경쟁적으로 디지털 혁신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혁신에 돌입했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그 속도와 파급효과 측면에서 이전의 산업혁명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전 세계에 회자시켰다. 

코로나19는 산업전환을 가속했다.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에 친숙해졌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모든 나라의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려고 돈을 풀었다. 유례없는 정책자금이 그린뉴딜, 그린딜의 이름으로 사회로 흘러들고 있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큰 변화에 직면해 있다. 혹자는 칼 벤츠가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제작한 1880년대 중반 이래 130년 남짓한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까지 말한다. 새롭게 형성된 시장에 IT기반 서비스 제공자들과 전장기반 제품 공급자 등 새로운 행위자가 진입하고, 사업의 모델이 자동차라는 재화의 공급에서 이동수단 종합선물세트라는 서비스 공급으로 바뀌었다. 자동차의 동력원이 전기·수소로 전환하고 자동차가 직접 도로, 교통상황, 모바일 상거래와 연결된다. 자율주행 기술로 운전자의 역할이 달라지고 제조 전 과정의 디지털화·자동화가 진행된다. 


산업전환에 내포된 위험


문제는 산업전환에 따른 전 세계적 수준에서의 과잉중복 투자다. 세계 주요국은 유례없는 규모의 산업정책을 구사하며 신산업을 지원하고, 기업도 시장 선점을 위해 공격적으로 생산설비를 늘리고 있다.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과잉중복 생산은 반드시 조정된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뒤따를 위험이 커진다. 지난 2019년, 딜로이트 컨설팅은 2030년 전기차 영역에서만 1400만 대 분량의 유휴 가동시설이 생길 것으로 예측했다. 딜로이트가 다른 리서치 기관보다 시장규모를 다소 보수적으로 예측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1400만 대는 2020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294만 대의 거의 5배에 육박하는 상당히 큰 규모다.

공격적 시장 선점 경쟁은 승자 독식 치킨게임의 양상을 띤다. 경쟁하는 기업 모두에 출혈적이기 때문에 승자가 시장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때, 즉 패자를 파산시킬 수 있을 때만 벌어진다. 미래자동차의 표준이 불확실해 초기 시장 선점이 가져올 이익이 막대한 만큼, 세계 주요 자동차 업계는 위험을 예견하면서도 출혈적 경쟁에 돌입한다.

과잉생산은 자본주의에 내재한 본질적 모순의 발현이다. 최대한의 이윤을 획득하고자 하는 자본 간의 치열한 생산확대 경쟁은, 결국 수요로부터 괴리되어 재생산의 조건을 파괴한다. 공급과잉이 높은 개연성으로 예상되는 만큼, 뒤따르는 자본가치의 물리적 청산과 전 세계적 수준의 구조조정의 위험도 가시적이다. 이런 위험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기저질환과 결합해 더 증폭된다. 
 

기저질환1.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수요독점이 야기하는 종속구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생태계는 고착화된 수요독점구조다. 2020년 말 기준 완성차 업체와 직접 거래하고 있는 744개 1차 협력업체들의 총 매출에서 현대기아차 납품 비중은 88.1%를 차지한다. 1차 협력업체 중에 1개 완성차하고만 독점적으로 거래하는 납품업체의 비중도 48%에 이른다. 거래기간이 10년 이상이고 매출액 대비 납품액 비중이 50% 이상인 경우를 전속거래로 정의할 때, 납품업체들의 전속거래 비중도 1차 협력업체 52.3%, 2차 이하 협력업체 42.3%로 매우 높은 편이다.

재벌 완성차의 수요독점은 약탈적 가치사슬을 야기한다. 납품업체들이 현대차그룹 이외의 다른 수요처를 개척하지 못하고 현대차그룹이 제공하는 납품시장만이 존재하는 구조에서는, 납품업체들은 대등한 교섭력을 확보할 수단을 갖지 못한다. 완성차의 매입거래가 기업의 사활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약정CR, 비대칭적 비용연동가격제와 정책CR, 원가계산서, 거래처정보 등 내부정보를 요구하고 이를 이용해 납품업체의 마진율까지 결정하는 경영간섭 관행, 기술유출을 빌미로 한 납품업체 통제 등은 모두 납품업체의 열악한 교섭상 지위의 반영이다. 

한편 자동차 부품업계의 모듈화도 종속을 심화시켜 왔다. 순전히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모듈 방식의 생산체계가 자동차산업 원하청 기업 간의 전속적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존재할 수 있다. 모든 부품업체가 완성차 업체와 전속관계를 맺는 2단계 구조보다, 중간에 모듈사가 끼어들어 중층화하는 구조가 덜 전속적이고 자연스럽게 대형 부품업체를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이론 수준의 예측과 사뭇 다르다. 실제로는 모듈화에도 불구하고, 부품회사에 대한 완성차의 교섭력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 첫째, 최전방 수요업체의 독점구조가 그대로여서 여전히 직간접적 전속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이고, 둘째,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 전략에 따라 부품의 모듈화를 계열사로 재편해 주요 부품의 외부의존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폐쇄적 모듈화’의 예견된 결과다.
 

기저질환2. 부품업체의 독자적 자생력 부족


현대차그룹에 대한 종속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혁신역량 축적을 저해한다. 중소기업들은 스스로 독자적인 기술개발, 설계능력 함양, 다양한 수요처 개척을 통해 공급하는 재화의 다양성을 높이기보다 수요독점적 지위를 지닌 대기업의 요구에 맞는 중간재를 납품하는 관행을 따르도록 유도된다. 남종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후견-피후견 관계로 진단한다. 피후견은 개념적으로 무능력을 전제한다. 

이런 관계에서 중소기업의 기술역량 부족은 필연적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설계도에 근거한 단순 조립활동에 매몰된다. 원재료를 스스로 구매한다는 점 외에 임가공업체와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결국 원가절감, 공정개선에 특화된 조립역량을 보유할지 모르나, 산업전환에 대응하는 비전, 기술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재벌대기업에 대한 기술종속, 물량종속을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귀결된다. 

한편 모듈화가 부품업체의 혁신역량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 자신의 혁신역량을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를 활용해 수직적 분업구조를 만들고 가치사슬에서 고부가가치를 낳는 중간재는 계열사로 내부화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 비중이 낮은 중간재는 비계열사 협력업체로부터 조달해 이윤 격차를 구조화시켰다. 그 결과 현대차그룹 계열 부품사와 그 외 부품사의 영업이익률 격차가 상당하다. 현대차그룹은 모듈화를 통해 교섭력 우위뿐만 아니라 안정적 수익구조와 경기변동 위험의 완충구조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모듈화 전략이 자회사인 현대모비스를 전략적 시스템 통합자로 이용해 부품업체들에 대한 통제력과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진다면, 현대자동차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제약한다. 국내 부품업체들이 설계기술능력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면서 모듈 전문화 업체로 발전되지 않고서는, 완성차 메이커의 모듈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재벌 중심의 종속적 네트워크의 결합으로 발전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재의 관행적 전속거래 구조는 △ 과도한 납품단가 인하로 인해 협력업체의 수익성을 저하시키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며, 임금격차를 유발한다. 또한, △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총요소생산성을 저하시켜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약화하며, △ 협력업체의 혁신역량과 국제화 역량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품업체들과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품질부담과 비용절감을 과도하게 전가하는 생산구조는 장기적 관점에서 재생산이 불가능하다. 
부품사 혁신능력 저하를 초래한 것은 현대차 자신이다. 단기적으로 이윤을 쌓아 올릴 수는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미래 전환의 협력 파트너를 잃고 전환의 부담과 위험을 혼자 짊어지게 되었다. 협업의 시너지, 자원분배의 효율성 이익을 상실한 것이다.
 

산업전환의 전개방향1. 종속구조의 심화와 위기규모의 증대


과잉중복 투자의 조정이 위기의 국제적 조건이라면, 현대기아차에 극단적으로 집중된 국내 산업구조는 위기 증폭의 국내적 조건이다. 다양성이 결여된 생태계는 외부 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수요독점 구조 아래에서 국내 자동차산업 생태계는 현대차그룹의 성패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의 위기가 산업 전체로 전이된다. 

오늘의 산업전환은 위험을 증폭시킨다. 완성차 중심의 종속적 네트워크로 인한 수요독점과 기술독점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전자는 국내 완성차 중에 현대차그룹만이 전기차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고, 후자는 정부의 기술 지원이 절대적으로 현대차그룹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수요독점 강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한편에서 현대차그룹이 미래차 생태계로 데리고 갈 부품사와 버릴 부품사를 선별할 수 있게 해줬다. 현대차그룹은 기업활력법에 따른 사업재편 승인절차에 승인 전 선별단계부터 개입한다. 부품사는 현대차그룹의 기준을 통과해야 컨설팅, 시제품 제작 등 사업 재편을 승인받기 위한 요건을 마련할 수 있다. 현재 현대기아차 피라미드에 들어와 있는 부품업체는 미래차 거래선을 유지하려고 목을 매고, 현대기아차 피라미드 밖에 있는 부품업체는 미래차 피라미드에 들어가려고 기를 쓴다. 

다른 한편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가 자원을 아낌없이 현대차에 지원한다. 산업 전체의 성장에 필수적인 전기·수소차 인프라구축, 공공·민간에서의 대규모 수요 창출 등의 조치가 현대차그룹에 큰 이윤을 남기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기술자원이 집중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기술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전기·수소차, 하이브리드 등 고도화기술이 모두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집중되게 되면 중소기업의 독자적 자생력 형성은 요원한 목표가 된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 몰아주기 산업정책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잠식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외적 충격을 완충할 수 없다. 오히려 위기가 초래하는 충격의 규모가 더 커진다. 부분의 위기가 다른 부분의 작용으로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 도미노처럼 전체의 위기로 번지게 된다. 
 

산업전환의 전개방향2. 정부와 자본의 유착


앞서 언급했던 대로, 정부는 철강, 반도체, 비철금속, 전자전기, 자동차, 기계, 조선 등 13개 업종에서 업종별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금속노조가 정부와 자본에 업종별 협의체를 요구해 왔지만, 정부와 자본이 들은 체도 하지 않았던 것과 매우 대조되는 행보다. 

정부와 자본이 전례 없는 속도로 전례 없는 범위의 업종을 포괄하며 공조체제를 구축하면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철저히 배제한 것은 의도적이다. 업종별 민관협의체는 일관되게 대규모 R&D(연구·개발), 투자 세액 공제 및 감세 인센티브, 금융지원과 규제 철폐를 요구한다. 정부는 일관되게 민원을 수리할 의지를 내비친다. 여기에는 심지어 반환경적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자본편향의 정부 산업전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사회의 통제를 배제한 거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현대차그룹과 물리적으로 유착하고 있다. 수소경제위원회 민간위원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자율주행사업단 단장에 현대차 최진우 전무가, 미래자동차산업과장에 현대차 서길원 파트장이 임명되었다. 명백한 이해충돌이다. 수소경제로 가장 큰 돈을 벌게 될 정의선 회장이 수소경제 육성 방향을 결정하고, 자율주행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현대차 전무에게 자율주행에 따른 도로교통의 안전을 맡기고, 미래차 산업 생태계를 장악하려는 현대차 연구원에게 미래차 육성을 맡기면 국내 자동차산업의 독점구조라는 고질병이 더욱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응방향: 생산물시장 수요독점 해체


위기에 대한 저항력은 생태계 건전성에 달려있다. 전통적으로 자동차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제출되었던 것은 수요독점 구조의 개선, 불공정 전속거래 관행의 근절, 인력양성 정책과 혁신정책의 전환, 지원 하부구조의 효율화 등이다.

이중 근본문제는 생산물 시장의 수요독점이다. 협력업체들이 생산하는 중간재를 사줄 구매처가 독점되어 있는 공급사슬 구조가 계속 유지되는 한 그로부터 파생한 이윤 통제, 단가 인하, 기술 탈취, 경영 간섭은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파생된 현상이 해결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벌 몰수 같은 일망타진식 대안은 정직하지 못하고 무책임하다. 공정거래 그 자체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들은 아무래도 임시변통이다. 

노동조합도 생산물 시장에서 수요독점의 해체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거래구조 문제를 자본 간의 문제로 치부하고, 파생적인 불공정 행위의 규제에 집중해 왔다. 물론 산업 수준에서의 재벌 자본 독점구조에 노조가 개입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개입 시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산별노조가 산업정책에 개입하는 중요한 경로로 고려해야 한다.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전환기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일 수 있다. 자동차산업 생산물 시장에 배터리 업체, 전장 업체 등 새로운 부품 공급자가 진입한다. 사업 모델이 모빌리티 서비스로 변해 간다. 새로운 공급자의 등장은 구조 변화를 촉진한다. 다만 그 방향이 수요독점의 공고화일 수도, 수요독점의 해체일 수도 있다. 새롭게 재편되는 국내 미래차 부품업계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현대차그룹 이외의 납품처를 찾을 수 없다면 수요독점은 더욱 공고해진다. 반대로 자동차 생태계가 현대차그룹 이외의 다른 중심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구조가 변한다. 물론 현재까지는 희망보다 절망이 가깝지만 그러나 아직 기회가 모두 소진되지는 않았다. 

또 다른 중심으로 가장 유력한 대안은 현대차 이외의 글로벌 완성차다. 벌써 십수 년 전부터 부품업계의 글로벌 진출을 통한 독자적 자생력 구축을 주문하는 많은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중소기업은 종속적 국내시장에서 기술 부족, 자금 부족, 투자 부족에 스스로 적응했다. 갑자기 해외에 진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기술과 정보, 마케팅 역량과 인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다. 정부 역시 사업재편 지원단을 통해 희망기업의 해외진출을 독려한다. 그러나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를 통한 판로 정보는 엉성하고,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을 통한 금융지원은 복잡하고 늦다. R&D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거품처럼 사라진다. 자원을 배분하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 자원을 결합하지 못한다.

해외 완성차 업체의 구체적 수요를 세밀하게 파악해 2차 이하 벤더들의 도전 의식을 유발하는 정보와 플랫폼, 자동차 부품업계에 요청되는 규모를 실현하기 위한 수평적 협력체계를 꾸릴 수 있는 네트워크, 그에 적합한 기술지원과 이를 뒷받침하는 펀딩 등 자원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조직화된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수요독점의 거래구조를 해체해 나가는 것이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경쟁력과 건전성에 사활적임을 인식해야 한다. 중소기업 또는 그 연합체가 새로운 거래선을 확보하는 문제를 단순히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답이 없다.
 

산업전환의 전개 방향: 고위험군 피해 집중


국제적 규모로 발생하고 국내 조건에 의해 증폭될 위기의 규모와 범위가 얼마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세계 전기차 시장의 확대 속도, 생산설비의 구축 속도, 완성차 업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 등 수많은 가정이 복잡하게 중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전환이 진행되는 경우 발생할 부정적 효과는 예측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질 효과는 사회 양극화다. 국가의 자원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몰아주고 있다. 특정 재벌그룹의 이윤과 기술에 대한 독점이 강화된다. 반대로 산업전환 자체 또는 과잉투자로 인한 위기는 개별 기업과 개별 노동자에 전가된다. 대중소기업간 기술격차는 생산성격차로 이어져 다시 기술격차를 확대한다. 위기 시기 일자리 부족은 노동자 간 경쟁을 격화한다. 생산물 시장의 독점 구조는 노동시장에 반영된다. 즉 노동자 간 임금격차가 확대된다.

자동차산업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2~3차 벤더 이하의 중소기업 노동자다. 2021년 4월 기준 자동차부품 산업에 속한 10,010개 사업장 중에 10인 미만 사업장은 6,322개로 63%를 차지한다. 10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장도 2,098개로 21%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자동차부품산업협동조합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10인 이상 30인 미만의 자동차 부품사들 중 45.5%는 아예 연구개발 부서가 없다. 실태조사에서 제외된 10인 미만 사업장도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할 리 없다. 이들에게 미래차 전환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산업전환이 그들의 고용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말이다. 

전환기 노동시장에서 새로 공급되는 일자리보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에서 분명한 근거를 밝히면서 산업전환의 고용영향을 평가한 연구는 없지만 독일의 고용 영향 평가 결과를 통해 간접적으로 가늠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독일 NPM(Nationale Plattform Zukunft der Mobilität, 국가 모빌리티 미래 플랫폼)은 자동화를 고려하지 않고 전동화만 고려했을 때 2030년까지 직접 생산직 17%, 간접 생산직 9%, 사무직 10%의 감소를 예측했다.(전기자동차 비중 30% 시나리오) 여기에 자동화에 따른 생산성 증가요소를 추가로 고려했을 때는 직접 생산직은 41%, 간접 생산직과 사무직은 36% 감소로 나타나 고용 영향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 전동화의 영향은 직접 생산직 노동자가 크게 받는 반면, 자동화의 영향은 사무직 노동자가 크게 받는다. 이 결과는 심지어 과잉투자의 조정으로 인한 가동률 저하를 고려한 수치도 아니다. 과잉투자로 인한 조정이 겹치게 되는 경우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진다.
 

대응방향: 전환기 안전망 확대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산업전환의 피해를 어떻게 완충할 것인가. 자동차산업 3차 벤더 이하의 영세노동자들이 직면한 피해의 양상은 일자리 자체의 소멸이다. 이들에게 문제는 해고가 아니라 폐업과 청산이다. 소규모 사업장은 구조적으로 폐업과 청산에 취약하다. 기업 수준의 해결을 전제로 하는 고용안정 요구는 무력하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지킬 노동조합이라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거다. 우리나라 300명 이상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54.8%인데 반해 30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08%, 100명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은 0.49%에 불과하다. 만연한 기업별 노동조합 문화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이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아무런 사회적 반향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소리 없이 무너진다. 

산업전환이 야기하는 구조조정에 희생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닥친 현실은 실업과 가혹한 경쟁이다. 이들은 미련을 버리고 빨리 새로운 직장을 물색하는 방법 말고는 별다른 대응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산업 차원 또는 지역 차원에서 발생한 노동력 초과공급 상태는 격화된 일자리 경쟁을 유발한다. 재취업의 문은 좁다. 그 문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경쟁으로 열악해진 일자리뿐이다. 

그러니 관대한 실업급여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실업이 만연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 보호 수준을 높여야 한다. 늘어나게 될 일자리보다 줄어들게 될 일자리가 더 많다면 노동시장에서의 노동력 이동을 고려해야 한다. 늘어나게 될 일자리가 필요로 하는 숙련수준을 줄어들게 될 일자리의 숙련수준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새로운 산업에 필요한 직무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수준은 턱없이 부족하다. 스웨덴이 1972년부터 제도화한 고용안정위원회는 실업상태 이전부터 이·전직을 위한 일자리 코칭, 교육훈련, 기술훈련을 제공한다. 실업상태로 바뀌게 되면 최대 12개월 동안 재취업 알선을 비롯한 서비스와 기금에 따른 실업급여를 수령한다. 프랑스의 경우 직업전환계약을 통해 정리해고(폐업 포함)된 노동자를 지원한다. 특정한 규모를 갖춘 사업체는 의무적으로 직업전환계약을 맺어야 한다. 직업전환계약은 2006년, 훈련기간을 12개월로, 보조금을 평균임금의 100%로 강화했다. 독일은 전환회사를 운영한다. 전환회사는 집단해고로 구조조정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교육훈련과 직장알선을 통해 재취업시키는 제도다.

더불어 전반적인 노동시장 정책의 변화도 필요하다. 세계 주요국의 노동시장 정책은 보호의 수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세계는 국가별 상황에 따라 숙련 향상과 재배치, 전환배치에 초점을 맞춰 전통적인 공공 고용 정책을 개선해 왔다. 반면에 우리는 산업전환 흐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논의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 노동력 수급 불균형이라는 근본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역할


단적으로 말해 오늘 노동조합에 필요한 자세는 동시대에 대한, 그리고 후대에 대한 책임감이다. 

첫째, 노동조합은 기후위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현재 세대의 책임이다. 어쩌면 우리는 환경재난을 막을 가능성이 있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산업전환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기후위기 자체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 어떻게 공장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과 생산 감축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노동조합은 조직된 조합원의 고용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안전망을 주도해야 한다. 조직된 노동자들만 대표해서는 안 된다. 산업전환의 격랑에서 피해가 집중되는 영세사업장 미조직 노동자들까지 시야에 넣어야 한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조합의 책임이다. 금속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에서 협약을 통해 산업전환에 대응하는 한편, 조직되지 않은 모든 사업장에서 적용될 공동결정의 법제화를 제기하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금속노조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고민하는 이유다.

셋째, 노동조합은 더욱더 정치적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중심에 서서, 자본 편향의 산업전환의 흐름을 역전시키고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사회세력을 결집해야 한다. 재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집단은 노동조합이다. 

손쓸 방법이 없게 되면 책임도 없어진다. 아직 책임이 있을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이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자임할 때, 노동자계급의 더 큰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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