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1 여름.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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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 그 출발점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특집팀 |
기획재정부는 재정·경제·공공정책의 총괄부처로 행정부에서 막강한 위상을 갖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는 대부분 재정 지출을 동반하기 때문에 기재부가 담당하는 영역을 우회할 수 없다. 또한 양대 노총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공부문 노조들에 기재부는 사실상의 사용자로도 여겨진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과 공공부문 산별노조들의 올해 대정부 요구와 투쟁도 상당 부분이 기재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기재부에 대한 노조의 요구


민주노총과 공공부문 노조들은 재정 지출이 필요한 요구를 제시하면서, 보수적으로 재정을 운용하려는 기재부를 비판한다. 이러한 보수적 재정 운용은 기재부의 관료적 정책과 예산 통제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기재부 혁신을 요구한다. 공공부문의 기업별 노조도 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처우개선)라는 요구를 실현하는 데 있어 기재부가 중요한 걸림돌이 된다고 본다. 

최근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 4년 평가토론회(민주노동정책연구원)의 산업정책 부문(김성혁)에서 “집권 1년 만에 포용적 성장 정책의 기조는 사라지고, 기재부 등 관료들이 주도하는 대기업 위주 성장 전략, 수출·투자의 양적 투입전략이 대세를 이루었다”라고 평가했다. 기재부에 대한 비판은 이렇게 경제 정책, 재정지출 모두에 대해 제기된다. 다만 요구는 거시경제·산업 정책보다 확장적 재정 지출을 요구하는 데 초점이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올해(2021년) 5대 핵심의제 15대 요구안 역시 지난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요구안과 같이, 정부의 재정지출을 요구하는 내용을 다수 포함한다. 국가의 일자리 보장, 기간산업 국유화, 국방예산 삭감과 주택·교육·의료·돌봄 무상 제공 등이 요구안의 주요 사항이며 재난생계소득 지급도 포함되어 있다. 공공부문을 대표하는 공공운수노조도 공공성과 노동권 확대의 걸림돌인 기재부를 집중적으로 규탄한다는 투쟁 기조를 제시했다. 2021년 10대 요구 중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관련된 예산, 공공기관 운영제도, 사회보험 등에 대한 예산요구를 담은 핵심 요구안이 기재부를 대상으로 한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관련 산별들이 함께 구성한 ‘공공부문비정규직공동파업위원회’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 예산을 기재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 내 각종 회의에서도 기재부가 재정당국으로서 취하는 입장은 노조의 반발을 사기 충분하다. 다른 경로로 이미 결정된 정책에 대해서도 기재부가 과도하게 통제한다거나, 노조가 참여하는 협의기구에서 기재부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정책 결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불만이 자주 제기되었다. 이 때문에 예산 편성권을 가진 기재부에 대한 불만이 공공부문 노조에서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 개별 기관의 노사관계 쟁점도 정부 예산 편성 과정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기재부에 대한 노조의 불만


실제로 기재부 기능의 일부인 공공부문 관리 정책 등은 문제가 많다. 공공기관 운영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통해 사실상의 사용자 역할을 하면서도, 총연맹, 산별노조와의 협의에는 매우 소극적이며 관료적 통제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논란도, 당연히 노조와 충실히 협의해야 할 임금체계 개편 정책을 기재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더 문제가 되었다. 물론 정부 운영에서 재정 당국의 힘이 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모든 사업은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노조의 불만은 정부 부처 중 특히 기재부에 집중된다.

기재부의 힘을 빼기 위한 ‘기재부 개혁’ 방안도 종종 제기된다. 현재의 기재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재경부·기획예산처를 통합하여 구성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권한을 지닌 재정 당국이 이러한 통합을 통해 ‘공룡부처’가 되어 더욱 견제가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노조 안팎에서는 예전과 같이 재정정책, 세제, 화폐·금융, 정부회계·국채 기능은 재정경제부로, 경제기획·예산 기능은 기획예산처로 다시 분리하는 식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기재부에 대한 총연맹과 공공운수노조 등 공공부문 노조의 요구는 개별 기관에서 풀리지 않는 쟁점을 예산부처, 공공기관 관리부처에 요구한다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기재부에 대한 요구는 재정정책을 포함한 경제 정책 전체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총연맹과 산별노조 같은 상급 조직이 산하조직의 요구 사항을 취합하여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재정정책의 특성상, 정책의 결과는 산하 노조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사회 전체에 영향이 있다.
 

여당의 기재부 비판에도 편승


최근 들어 노조만 기재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여당 인사들은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며 기재부를 비판했다. 국무총리부터 나서서 자신이 총괄하는 행정부를 비판하는 기이한 행태도 있었다. 이들 정치인의 기재부 비판은 2020년 총선과 2021년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집중되었다. 재정이 필요한 정책에 재정 당국이 제동을 걸었으니 심기가 불편했던 게다. 그러나 반발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던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부총리)은 매번 꼬리를 내려, 언론에서는 ‘홍백기’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노조의 기재부 비판도 많은 부분 이러한 비판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도 이미 민주노총은 재난지원금에 미온적인 기재부가 문제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비판에 호응한 바 있었다.

대정부 요구의 많은 부분이 재정 지출을 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렇겠지만, 노조가 항상 투쟁 대상을 기재부라는 부처로 삼아온 것은 아니다. 정부의 경제 정책이나 재정 지출의 난맥상에는 기재부의 예산 통제 이전에 예산의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부 여당에 대한 투쟁이 일반적이었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기 성과연봉제 반대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기재부와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주로 집권 이후 현재까지 청와대와 여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의 결과로 보아야한다. 여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같은 청와대 경제팀을 중심으로 짰던 경제 정책이 실패한 후, 이러한 실패가 자신들의 무능과 오판 때문이 아니라 기재부 관료들의 반발과 비토 때문이라고 책임을 떠넘겨왔다. 

이러한 여당의 좌충우돌은 최근에도 나타난다. 재보궐 선거 이후 여당의 부동산 감세 정책에 기재부가 반발하자, 이번에도 여당이 기재부를 비난했다. 그런데 과거처럼 적자재정에 소극적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이번에는 부동산 감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기재부를 비판하는 이유가 선거 전후로 정반대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정부 여당이 추석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추진하자, 이에 소극적인 기재부를 다시 비난한다. 여당 정책에 반대할 때만 기재부를 비난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찬반을 떠나, 기재부의 입장은 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목표에서 차라리 일관된 데 비해, 여당의 입장은 정치적 필요에 따를 뿐 정책적 일관성이 없다. 노조의 비판도, 좌충우돌과 정략적 접근으로 노동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의 실패를 불러온 정부 여당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어떤 방향의 비판인가


각 부문의 예산을 요구하는 노조의 투쟁은 결과적으로는 예산 총액의 증가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각자의 요구는 모두 나름의 정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의 지출 구조가 경직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매년 지출하는 공무원 인건비나 경상비, 법정 사회복지 등 고정적 지출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출 구조조정이 만만치 않다면, 많은 요구안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출을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지출 구조조정이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 지출을 확대하려면 사회보험료를 포함하여 조세를 인상하여 수입을 확대하거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러한 재정정책은 거시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노동자의 고용과 실질임금에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총연맹이나 산별노조가 재정 지출을 요구하려면, 거시경제 상황과 재정정책에 대해서도 정리된 입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노총이나 관련 산별은 이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들은 최대치의 요구안을 모두 제시하고 투쟁하면 그 수용 여부와 재정 조달, 부작용 방지는 정부의 책임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최대한의 요구를 제기하고 일부라도 수용되면 실익이 있다는 접근이다. 

이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협의에 참여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거시경제정책에 유의미하게 개입할 경로가 없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정책에 개입할 경로가 없으니 구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요구를 낼 필요도 없고, 또 그렇다 보니 실질적인 개입이 큰 의미가 없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대정부 요구안에는 쉽게 (최대치의 요구만을 구호성으로 제기하는) ‘요구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만 제기되다 보면, 노조의 정책요구는 사회적으로 설득력 있는 진지한 검토 대상이 되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는 오히려 조직 내 토론을 통한 합의로 정책 요구의 시급 사항, 우선순위를 판단하여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매우 불안정한 현재 국내외 경제, 금융 상황, 즉 객관적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의 요구안 중 상당수가, 설사 노정협의가 진행된다고 해도 진지한 협의 의제로 올라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기해야 할 주장을 희석한다는 의미에서의 ‘현실성’이 아니라, 실현가능성을 갖춘다는 의미에서 ‘현실성’을 정책 요구에 담아야 한다.

한편, 정부 예산 결정에 있어서는 기재부가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산 결정은 국회의 심의, 그리고 그 이전에 진행되는 정당 간 협상이나 노정/노사정 사회적 협의, 투쟁과 갈등, 합의 과정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주체로서 노조가 예산에 영향을 주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행정 부처가 아니라 여당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 투쟁일 수밖에 없다. 기재부의 관료적 통제가 문제라면, 노조가 행정 당국의 관료들을 상대로 싸워 정책을 변경하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 투쟁과 여론을 통해 적절한 경제정책 해법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경제 정책에 대한 입장부터 있어야


민주노총은 기업 지원 정책들에 대해서 종종 ‘재벌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소속 조합원이 있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이고 완화적인 재정 지원을 요구한다. 산하 조직을 지지하고 조합원의 일자리를 지킬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들이 현재 경제 정책에 일관된 입장이나 기준을 갖고 기재부나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것이 단지 실무적 준비 부족인지, 노선의 문제인지, 혹은 민주노총의 구조적 문제인지는 현재 총파업 요구로 제시한 ‘15대 요구안’을 하반기까지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부문 노조들은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노동자의 고용, 처우 개선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런 측면이 있고,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와 처우개선에는 예산을 사용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재정 지출 확대와 적자재정을 일반적 선(善)이라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며,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역대 어느 정부보다 재정과 공공기관에서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정부들의 사례를 볼 때, 공공기관 부채가 증가할 때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기관 통폐합·구조조정(이명박 정부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진행하거나, 복리후생 삭감(박근혜 정부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을 통해 수지 개선을 시도했다. 차기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에는 이번에 증가한 부채에 대한 대책이 포함될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정부 여당의 경제 정책 실패는 국민경제 위기를 심화할 수밖에 없고, 공공부문 노동자의 고용·임금은 직접적으로 국민경제 규모, 즉 GDP 성장률에 따른다는 제약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기 고용이 특징인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국민경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더 크다.

앞으로 대선을 앞두고 이해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부터 포퓰리즘 공약 경쟁이 벌어지면서 예산 요구가 더욱 커질 것이다. 노조가 전체 예산의 배분, 거시경제에 대한 관점 없이 대선(예비)후보들의 기재부 공격에 편승할 경우, 이러한 포퓰리즘 경쟁을 가속하는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이나 공공부문 노조는 각 현장노조의 예산 증액 요구를 모아 정부에 제기하는 것을 넘어, 정부 예산의 운용 방향,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노조 내부의 합의를 형성하는 데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경제위기 이후이자 또한 대선을 앞둔 정세에서, 노조 운동 안에서 이러한 연구와 토론이 더욱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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