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1 여름.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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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전략조직화 방향」 인터뷰

중요한 건, 조직화 자체보단 조직화의 목표

박준도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진행·정리: 조유리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지난 10여 년간 사회진보연대의 수많은 활동가가 미조직 사업에 투신했고, 또 그만큼 많은 성과를 냈다. 이렇게 조직화에 주목했던 것은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 사회운동노조 노선을 현실화하기 위한 유력한 경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의 노동운동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등장한 직후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조직률이 떨어져 왔다. 법·제도적 장벽이 높기도 하고 단체협약 적용률도 매우 낮은 편이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운동의 새길을 찾기 위해서는 미조직 조직화가 사활적이라고 봤다.

박준도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활동을 앞장서서 실천한 사람 중 하나다. 박준도 연구원이 작년 9월 발표한 「금속노조 전략조직화 사업 방향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전략조직사업을 평가해보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금속노조 1기 전략조직화 사업 평가와 2기 사업의 방향


조유리    금속노조가 전략조직화 사업을 언제부터 한 거죠?
박준도    금속노조가 ‘전략조직화’라는 이름으로 조직화 사업을 시작한 건 2017년이었어요. 이전에도 미조직사업을 안 했던 건 아닌데요, 대표적으로 ‘사내하청 조직화’입니다. 1990년대 말에 관련 논의가 이미 있었고, 2000년대 초에 본격화되고 불법파견 정규직화, 1사 1노조 규약 변경으로 이어지죠.  이후로도 다양하게 조직화 사업을 하다가 2017년부터 ‘별도의 기금을 설치하고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는 조직화 사업을 본격화하죠. 그게 금속노조의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이에요. 경남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 광주전남 포스코 사내하청, 대전 한국타이어 및 대전공단, 인천 주안·부평공단, 포항 철강 하청, 부산양산 녹산 공단, 서울 디지털산업단지, 경기 전기·전자 반월·시화공단 8곳을 선정해 조직화 사업을 전개한 거죠.

조유리    오래전부터 서울 남부 공단조직화 사업에 함께 하셨죠?
박준도    네. 서울 남부 공단조직화 사업이 금속노조 1기 전략조직화 사업 대상지이긴 했지만, 역사는 좀 더 길죠. 민주노총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이기도 했거든요. 2011년부터 민주노총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이 진행되는데 바로 인천공항과 서울 남부였습니다. 
    서울남부 전략조직화 사업은 지역사회단체와 함께 사업단을 구성했는데 바로 <노동자의미래>였습니다. 제가 여기서 정책기획팀장 역할을 맡았죠. 3기에도 공단조직화 차원에서 전략조직화의 맥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해산하지 않고 <노동자의미래> 사업을 한 거죠.

조유리    금속노조의 1기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평가와 2기 사업의 방향이 어땠나요?
박준도    간단히 요약하면 “다양한 시도를 통해 조직화 사업의 발판을 마련하고 노조 내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여전히 전략사업의 상이 명확하지 않았고, 이를 관장하기 위한 조직 체계 역시 미흡했다.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노조(중앙)의 역할을 강화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에요.
    금속노조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목표 자체가 조직화 사업의 토대를 닦는 거였어요.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례를 발굴하고 이것이 조직 내 변화의 시발점이 되도록 하는 게 사업목표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소명을 다한 거죠. 
    8개 지부가 8개 거점에서 조직화 사업을 한다는 건 전략조직화라기보다는 지역지부의 조직화 사업을 노조 중앙이 지원해주는 거와 다를 바 없었어요. 이렇게 하면 조직화 사업에 전략이 없었다, 노조 중앙의 역할이 뭐냐는 평가가 제기돼요.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도 마찬가지였어요. 민주노총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은 2005년에 본격화되는데 연맹별로 미조직담당자를 배치하는 식으로 했거든요. 물론 전략조직화 사업 초창기였기 때문에 훨씬 많은 평가 쟁점을 있긴 했었습니다만 동일한 평가가 제기되었습니다. ‘전략이 없다, 중앙의 역할은 뭐냐?’는 평가요.
    민주노총 2기 전략조직화 사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좀 더 역량을 집중하는 취지에서 핵심 대상, 지원 대상으로 나눠, 총연맹은 핵심 대상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핵심 대상에 대한 총연맹의 지원이 좀 더 늘었을 뿐 결국 선정된 산별 지역지부나 지역지회가 재량껏 조직화를 하는 거였거든요. 결국 똑같이 전략의 부재, 중앙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중장기적인 계획과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방식의 조직화 사업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제기된 거죠. 
    저 역시 그런 평가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조직화 사업은 중앙이 분명한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게 맞아요. 지역과 업종보다는 산별이, 산별보다는 민주노총이 전략조직화 사업을 주관해야 목적의식적이고, 좀 더 계급적인 시야에서 조직화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공공운수는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서비스 조직화를 하려 들 것이고, 자동차 부품사가 많은 지부, 지회는 부품사 관련 공단을 조직화하고 싶어 할 것이고, 조선업종은 조선과 관련된 업종을, 남성들이 많은 사업장은 남성이 많은 사업장을 조직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거든요. 그러면 조직의 관성대로, 기존 관행대로 조직화 사업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조직의 관성, 기존 관행이 아니라 계급적 시각에서 필요한 부문, 정세적으로 긴급한 부문, 새로운 부문을 조직할 때, 예컨대 수출제조업, 전자산업, 중소사업장, 여성노동자 조직화가 필요하고 초기업적 교섭과 조직화가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역과 업종, 산별을 뛰어넘어 총연맹이나 산별 중앙이 조직과 자원을 해당 분야로 집중하고 사업장 조직화와 교섭에 갇혀 있던 관행을 넘어서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중앙이 책임지고 해야 계급적 시야를 가지고 이런 조직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요. 
 

전략조직화의 의미


조유리    보고서가 전략조직화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던데요. 
박준도    조직화 사업이 중요한 건 조직화 자체가 아니라, 그걸 해서 뭐 할 거냐는 겁니다. 목표가 뭐냐는 거예요. 조직화 사업은 노조의 활동 영역 중 하나에요. 노조의 일상 활동이라고 하면 교섭과 투쟁, 투쟁과 교섭 그러는데, 사실은 조직화와 교섭과 투쟁, 3개 축이에요. 그래서 조직화 사업을 강조한다는 건 엄밀한 의미에서 노조 일상 활동의 복원이에요.
    보통 전략조직화 사업을 말할 때, ‘전략’을 목적의식성, 치밀한 계획 정도로 이해하는데요, 그럼 반대로 일상 사업으로서 조직화는 치밀하지 않아도 되는 거냐, 그런 건 아니죠. 노조 조직화하는데 가만히 있는 사업주가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일상적으로 조직화를 할 때도 치밀한 계획, 주도면밀한 계획이 필요해요. 수동적으로 해서 조직화 사업에 실패했던 겁니다. 치밀한 계획 없이 교섭에 응하면 망하듯이 조직화도 기다리는 방식으로 하면 망해요.
    그래서 전략조직화 사업에서 중요한 건 ‘목표’임을 강조하려고 군사전략에서 사용하는 전략, 전술 용법을 좀 빌려왔습니다. 군사전략에서 전략은 전쟁의 목표와 목적 달성을 위한 총체적인 계획을 의미하고 전술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인데, ‘전략’ 조직화 사업이 너무 방법에만 치중한 거 아니냐는 질문을 제기하면서요.
    그래서 전략조직화, 일상적인 조직화를 구분하고, 여기에 집중 조직화 개념을 추가해 조직화를 세 층위로 나눴죠. 노동조합의 중장기 계획과 목표에 조응하는 조직화로서 전략조직화, 지역과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조직화로서 상시조직화, 단기적인 목표이지만 노조의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 조직하는 집중조직화. 이렇게요. 
    사실 일상 사업으로서 조직화, 담대한 계획으로서 전략조직화를 구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민주노총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평가하고 2기 사업 계획을 세울 때 초반부터 지적되었던 문제이기도 해요. 당시에도 이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금속노조의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은 상시조직화 시스템을 구축한 걸로 볼 수 있어요. 지역지부에 미조직 담당자를 두는 일상적인 체계요. 예컨대 인천지부가 5,000명이 넘자 추가 채용 상근자로 미조직 담당자를 채용했어요. 서울지부는 한 명 있었는데, 한 명을 더 추가 채용했죠. 이런 것들이 금속노조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성과인 셈이에요. 

조유리    전략조직화 사업 이전에 노조의 운동 목표가 세워야 한다는 뜻이군요?
박준도    네. 왜 조직화 사업을 하려고 하는지, 노조운동의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혁신 전략 아래 조직화 계획을 세우는지 이에 대한 대답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미국 노총의 전략조직화 계획도 그런 맥락에서 제안된 거예요. 1980년대 반노조주의의 공격 앞에 무기력해진 미국노총의 현실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높아지고, 노총 혁신의 방향이 제시되는데 바로 사회운동노조였죠. 사회운동노조의 기치 아래 노총을 혁신하자, 노총 혁신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새 조합원을 조직하자는 거죠. 이런 일련의 흐름을 전략조직화라고 칭한 거예요. 조직화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요.
    물론 미국노총 혁신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전략조직화가 실패하면서 미국노총이 깨지거든요. 미국노총 혁신 프로젝트의 역사적 한계도 있고 반면교사의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운동 목표, 조직 혁신 방안 논의가 더 중요


조유리    그러면 금속노조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박준도    금속노조도 자신의 강령이 있습니다. 자신의 강령을 실현하는 게 조직화의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임시·비정규·여성·이주 노동자와의 차별을 없애고(강령1), 노동조건을 개선하며(강령2), 노동의 소유·통제권을 확보하고(강령3), 평등사회를 건설(강령4)하는 게 금속노조의 핵심 강령이에요. 이걸 오늘날 정세에 맞게 현대화하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조직화 사업을 하자는 게 제가 제안한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골자입니다. 금속노조의 강령을 현대화하면 다음과 같이 되겠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현실화하고(강령1+강령2), 경영과 회계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면서 생산 통제에 대한 노동자의 집단적 역량을 키우고(강령3), 나아가 오늘날 사회운동의 이념으로서 페미니즘과 평화주의, 국제주의적 흐름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대안세계를 향해 나아가자(강령4).” 이렇게요. 1980년대 전노협 운동의 계승자를 자처해서인지 모르지만, 금속노조 강령은 오늘날 정세에 맞게 현대화하고 재구성하면 노조운동의 목표로 손색이 없어요. 
    게다가 주지하는 것처럼 수출제조업 노동자가 금속노조의 주요 조직대상입니다. 수출제조업이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핵심 기반인데 여기에 맞서 성장과 쇠퇴의 궤적을 그린 게 금속노조운동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금속노조가 어떻게 자신의 운동과제를 정립하고 민주노조운동을 선도하려 하는지, 누구를 조직해서 무슨 운동을 하려는지 매우 중요해요. 
    더구나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결함이 재벌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할 때, 이들 재벌을 통제하는 운동을 금속노조가 얼마나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는지도 중요하죠. 재벌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속노조가 자신의 4대 강령을 실현할 수 있거든요. 
    보고서에서 조직화의 방향 못지않게 강령 1조를 현대화하고, 금속노조가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원하청 임금 격차와 생산성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재벌들을 중앙교섭 자리에 응하게 해 연대 임금과 연대 고용을 실현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하는 것, 그리하여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높이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 금속노조운동의 과제여야 해요.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대의원, 간부, 활동가들을 규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시간에 되지 않겠죠. 하지만 꾸준히 도전하면서 사회운동노조로서 금속노조를 혁신하겠다는 10년의 계획이 필요해요. 이를 실현하려는 활동가를 규합하고, 조직화 사업을 전면화하고, 신규조합원을 새로운 운동 주체로서 성장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입안하고…, 이런 정도는 설계가 되어야 전략조직화 사업이라는 겁니다.

조유리    다른 사람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박준도    노조 내에서 간담회를 할 때, 한 활동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필요한 건 3년짜리 계획인데, 너무 방대한 계획을 제시했다는 거예요. ‘노조 혁신이 먼저’라는 식으로 말하면 지금 정도의 조직화 사업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거죠. 현실론입니다. 
    또 연대임금, 연대고용이 핵심 키워드인 거 같은데, 그런 문제의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구요. 연대임금은 곧 양보론이기에 이게 노조의 혁신방향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조유리    그럼 금속노조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은 어떻게 설계된 거죠?
박준도    금속노조 2기 전략조직화 사업도 1기처럼 조직화의 대상을 선정하고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어요. 자동차 부품사 조직화, 공단조직화, 재벌그룹사 조직화, 제조서비스 조직화, 포스코 원하청과 조선하청 조직화 이렇게요. 
    물론 1기와 분명히 달라진 건 있어요. 무엇보다도 노조 중앙의 관장하에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 집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1기에 비해 더 많은 기금을 바탕으로, 경험 많은 활동가들을 모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차이일 테고요. 이상은 금속노조의 조직화 사업을 좀 더 일상 사업으로 안착시키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보고서를 쓸 때도 이런 문제의식이 지금 당장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제가 10년 전에 노조 혁신이 조직화보다 먼저라는 문제의식을 듣고 이제야 실행에 옮기려 했듯이 누군가 제 보고서를 매개로 고민을 하고 있다가 실행에 옮기는 순간이 오겠거니 한 겁니다. 문제의식 정도를 남겨두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한 거죠. 

조유리    전략조직화, 집중조직화, 상시조직화에 대한 의견은 없었나요?
박준도    물론 있었습니다. 상시조직화와 전략조직화 층위를 나누는 바람에, 전략조직화가 아닌 상시조직화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거였죠. 특히 지역지부가 수행해야 하는 공단조직화 사업의 중요성이 반감될 수 있다는 거예요. 
    공단조직화 사업을 전략적 심급에서 논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기본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중소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면서 계급적 대표성을 유지하려는 것은 상당히 의식적이고 정치적인 노력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전략적인 심급이 될 수는 없다는 거예요.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발전할수록 자본의 집적과 집중과 함께 생산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기업규모가 커지는 게 정상입니다. 대기업 고용이 늘고 생산과정에서 집단화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게 자연스러운 경로이고요. 이들을 조직하고 이들을 계급적으로 단련시키는 게 노동운동의 발전 경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어떤 노동운동을 하냐는 거예요.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을 노조로 견인하고, 이들의 노동조건 악화를 막아 계급적 단결을 높이려는 것은 일상적으로 전개해야 해요. 물론 이건 좀 더 목적의식적인 접근이 필요한 건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중소사업장 조직화가 전략적 수준에서 다뤄야 하는 건 아니에요. 대기업의 직접 고용 확대를 요구하고, 원하청 임금격차 축소와 생산성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요구하는 게 기본 방향이죠.
    물론 그렇다고 공단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는 지역지부의 미조직 역량을 줄이고 노조 중앙의 조직화 역량을 확대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3기 전략조직화 사업에 공단조직화 사업이 포함되기도 했어요. 전략조직화는 조직화 역량의 성장을 전제하거든요. 또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자원을 재배치하면 긴 안목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없습니다. 갈등을 유발하고 3년 후엔 되돌아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공단 조직화 사업을 노조의 일상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 현 금속노조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공단사업’이라고 명명하면서 조직률을 높이기 위한 조직사업의 관점보다는, 공단에서 공단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을 대변하려는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낸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공급사슬 조직화를 통한 재벌 포위 전략


조유리    조직화 역량을 꾸준히 축적하고,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노조 혁신 방향에 대한 활동가들의 합의 기반을 높이는 방식으로 길게 보고 가자는 거군요. 그러면 보고서에서 제시한 조직화 대상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보고서에서는 공급사슬 조직화를 통한 재벌 포위 전략, 핵심생산인구 조직화 전략을 제안하셨는데요. 
박준도    네, 수출 제조업 생산의 연쇄 사슬 고리에 있는 곳을 조직해야 해요. 그래야 현대·기아 완성차에 의존하지 않는 작업장 교섭력을 가질 수 있어요. 그리고 여기는 청장년층이 상당히 많이 밀집해 있습니다. 사실 상대적으로 조직률이 높다는 자동차산업에서조차도 핵심 부품업체, 1차 벤더의 조직률은 완성차 조직률에 비하면 매우 낮습니다. 더구나 여기에는 탄소중립 산업전환을 모색하는 재벌들의 전진기지, 주요 부품업체들이 몰려 있기도 해요. 반도체산업, 전자산업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엔 30~40대 청장년층들이 몰려 있어요. 이들이 조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요. 이들을 조직화해야 금속노조운동을 재건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어요. 공급사슬 조직화를 통한 재벌 포위 전략이나 핵심생산인구 조직화 전략은 같은 대상의 다른 측면을 이야기한 거예요.

조유리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좀 있었을 거 같습니다. 더구나 박준도 연구원께서는 공단조직화 사업을 해왔잖아요? 
박준도    네, 이 역시 쟁점이었습니다.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도 그렇고, 금속노조의 조직화 사업도 그런데, 조직화 사업이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과도하게 초점 맞춰져 있어요. 모두 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을 우선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어요. 대공장 노동자들은 우경화되고,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점점 대공장 운동 논리를 추종하고, 그래서 중심에서 먼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해야지 노조가 새로운 혁신 동인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런 식의 접근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운동 주체가 빈곤하고 불안정한 노동자에게서 나타날 거라고 주장하는 거거든요. 물론 오늘날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가 생산성 이상의 높은 고임금을 받으며 자신의 고용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하고,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따라잡기에 급급한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건 이들이 대공장에 취업해서 혹은 정규직이어서가 아니라, 노조가 경제투쟁, 즉 임금 극대화 투쟁에 몰두한 결과에요. 그리고 자본가들이 양보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높은 임금, 혹은 완전한 고용안정 쟁취 투쟁이 노동자를 급진화한다는 기이한 주체 형성론을 가지고 있는 일부 현장파들의 맹목적인 투쟁방식이 야기한 결과이기도 하고요.
    전통적으로 이 같은 조합주의, 경제주의로의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강조해왔던 것이 교육과 토론이고 의식화라 불렸던 영역입니다. 또 공동투쟁과 연대사업을 통해 단결력을 제고하자, 계급적 의식을 고취하자고 불렸던 영역도 있고요. 보편적 권리에 대한 공통의 관념을 형성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지적 요소’를 강화함으로써 경제주의적 편향을 극복한다는 거죠. 
    중요한 건 노조의 경제주의적 경향을 활동가들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의 위치가 아니에요. 보고서에서도 강조했다시피 착취당하는 자가 착취에서도 배제당한 자와 계급적으로 연대하는 게 노동운동이에요. 즉 노동자가 반(半)실업자, 실업자와 연대하는 게 노동조합 운동이에요. 거꾸로가 아닙니다.
 

주체 형성 전략까지 분명히 세워야


조유리    생산의 연쇄사슬이나 공급사슬의 고리에 있는 노동자들이 조직되면 금속노조 재건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박준도    물론 공급사슬의 핵심에 있는 노동자들이 조직된다고 이들이 저절로 운동주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자신들의 파업으로 원청의 라인도 서는 걸 경험하면, 자신들이 생산에서 가진 힘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하게 될 수 있어요. 그만큼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에 임금극대화투쟁이 더해지면 완성차 정규직 따라잡기에 매몰돼요. 마치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완성차 노동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 부문에 대해 거점 장악하듯 군사주의적으로 접근하면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습니다. 노조운동을 볼모로 하는 활동을 하게 돼요. 주의해야 해요.
    정규직 따라잡기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해요. 노조의 운영방식을 바꾸는 것과 조합원과 간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거예요. 노조의 운영방식을 바꾸는 것의 핵심은 교섭을 초기업 단위로 하는 거예요. 새로 조직한 단위는 무조건 초기업 교섭을 한다는 걸 원칙으로 세워놓고 가는 거죠. 아울러 연대사업도 활발하게 전개해야 하죠. 노조가 처음 만들어질 때 연대사업을 어떤 식으로 하는가에 따라 노조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건 우리가 이미 경험적으로 확인했어요.
    주체 형성을 위해 중요한 또 다른 건 교육 사업이에요. 조합원과 간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건데요, 여기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어요. 하나는 노조의 가치에 대한 교육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식인으로서 활동가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이에요. 먼저 노조의 가치에 대한 교육부터 이야기하면 우리가 왜 노조 활동을 하는지, 목표를 새롭게 부여하는 게 중요하죠.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잘하는 건데요, “우리는 임금의 노예가 되는 게 아니라 권리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노동자로서 가치관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노조운동에 대한 정체성이 이렇게 형성되면 당연히 노조운동의 활동방식이 달라집니다. 또 이탈리아 사례를 적용해보면 금속노조 4대 강령을 체득하는 과정이 여기에 해당하겠죠. 
    한편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답게 활동하려면 산별 임금정책과 고용정책, 산업정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조 간부들과 대의원들이 이에 대해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어야 해요. 이걸 하려면 관련 지식이 필요해요. 지식이 부족하면 본능적이고 경험적인 요구에 근거해 토론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이해타산을 따지는 방식으로 토론하거나 도덕적 명분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논의하게 됩니다.
    노조가 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과 투쟁방향을 이야기하려면 과학적인 정세분석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지식’이 필요합니다. 특히 경제와 노동시장을 분석하고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본인이 직접 분석을 못하더라도, 남들이 내놓은 분석을 보면 그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지 대의원대회에서 정세토론이 가능합니다. 
    정세토론이 가능해야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제대로 토론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해타산을 따지며 정규직 양보론이라는 식의 덮어놓고 반대하는 논의가 제기되거나 도덕주의를 앞세워 도와주자는 식의 이야기만 오고 갑니다.

조유리    이탈리아 노총의 교육사례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박준도     네, 맞습니다. 이탈리아 노총의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놀라운 게 많습니다. 특히 간부, 대의원들에겐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이 많아요. 이탈리아 노총 초급 대의원 교육에는 노동법 등 실무교육뿐만이 아니라 거시·미시에 대한 경제학적 지식이 포함되어 있어요. 이걸 매년 반복해서 교육한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이탈리아 노총의 대의원들은 경제 상황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거 같아요. 이탈리아 노총이 정액인상-물가연동제라는 연대임금 모델을 채택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던 거죠.
    또 이탈리아 노총에서 강조하는 교육이 있는데, 바로 노동조합운동의 역사, 이탈리아 및 국제노동운동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식으로 번안하면 ‘금속노조의 자랑찬 운동 역사를 배운다’, 좀 더 정확히는 ‘금속노조의 4대 강령을 배운다’ 정도가 되겠죠. 4대 강령을 체득한 노동자라면 자신의 노조활동을 그 누구에게도 숨기려 하지 않을 거예요. 가족과 친지에게 자신의 노조활동을 자랑스럽게 설명하겠죠.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강령을 암기할 수 있을 만큼 반복적으로 교육해야 해요. 간부와 대의원들은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요. 


사회진보연대의 역할


조유리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전략조직화 사업을 제대로 구상하려면 노조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노조 자체가 혁신되어야 하고 노조의 혁신으로부터 한국 사회를 바꿔낼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런 계획을 구상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런 목표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고, 노조혁신전략을 세우는 동안에도 일상 조직화는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재벌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생산의 연쇄사슬, 공급사슬의 고리에 있는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조직된 노동자들이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운영방식과 교육체계를 재구성해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까지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동조합의 혁신과 조직화를 위해 사회진보연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박준도    돌이켜보니 지난 10년간 조직화 사업을 해왔습니다. 한 순환이 지나서인지, 오늘날 민주노총의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워서인지 이런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왜 나는 조직화 사업을 했나?
    정세가 많이 바뀌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사회진보연대가 서 있는 위치도 많이 달라졌고요.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 과제, 조직적 과제 등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있는 우리 활동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겠죠. 지금 우리는 정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어요. 계속된 후퇴국면이죠. 인민주의적 요구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이들과 분별정립할 수 있는 과제도 찾아야 해요. 연대임금, 연대고용을 각자의 공간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 해요. 현장과 지역에서 미조직사업을 했던 노조의 임원, 간부들과 함께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 방향, 리더십, 구체적인 임금투쟁의 방향, 투쟁계획들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해야 해요. 임원이라면 뭘 해야 하는지, 정책담당자들은 뭘 해야 하는지, 마땅한 정책담당자가 없다면 자임한다든가, 이런 역할을 위해서는 조합원 교육이 중요하니 교육과 관련해서 뭔가 혁신을 한다거나. 우리 회원들 하나하나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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