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1 가을.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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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본부 노정교섭, 쟁점과 과제

지자체 노동정책 시행, 지역 노동운동의 주도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운동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이진숙 | 민주노총 인천본부 정책국장
최근 몇 년 사이 지자체를 상대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노정교섭이 활성화되고 있다. 여러 배경이 있지만 2018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많은 지자체가 노동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2018년에 가장 먼저 노정교섭을 시작한 경기본부가 2019년 경기도와 협약서까지 체결하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그 뒤를 이어 서울본부, 인천본부 등 일부 지역본부가 노정교섭을 시작했고, 올해는 많은 지역본부가 노정교섭을 진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올해 들어 지자체 노정교섭을 추진하는 지역본부가 급격히 확대된 것은 양경수 총연맹 집행부의 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다. 지자체 노정교섭을 가장 앞서서 진행한 경기본부장 출신이기도 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2020년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 당시 ‘동네마다 민주노총’이라는 구호 아래 전국의 모든 시·군·구마다 민주노총 협의회를 만들고 시·군·구청을 상대로 하는 노정교섭을 진행한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양경수 위원장 당선 이후 총연맹 집행부의 2021년 사업계획에는 중앙교섭-업종별 교섭-지역별 교섭이 통일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 아래, 총연맹의 관장하에 16개 지역본부가 동시에 지역별 교섭을 개시한다는 계획이 반영되었다. 전국적인 시·군·구 지역지부 건설 과제 역시 2021년 핵심 사업과제 중 하나로 반영되었고, 현재 지역본부 실태조사와 관련 연구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5~7월 사이 지역본부 정책담당자 회의, 지역본부 노정교섭 준비를 위한 정책워크숍 등의 조직적 논의가 진행되었고, 현재 많은 지역에서 노정교섭이 진행 및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의 지자체 노정교섭 추진 역사 

 
민주노총 지역본부 지자체 노정교섭은 2000년대 후반 처음 시도되었다. 당시에는 사업을 추진한 지역이 많지 않았고 지속되지도 못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최근 지자체 노정교섭이 활성화되고 있다. 2000년대 후반의 지역본부 노정교섭은 진보정당 운동의 지역적 기반확대와 연계성이 강했던 반면, 최근의 노정교섭은 지자체 노동정책과 연계되어 있다.

민주노총 지자체 노정교섭의 시초라 볼 수 있는 것은 공공운수노조의 전신인 공공연맹·공공운수연맹이 2000년대 중후반경 시도한 대지자체 교섭이다. 당시 공공연맹·공공운수연맹은 정부-지자체-사업장 교섭 틀을 구상하고 지자체 교섭을 추진하였다. 주요 정책요구는 ▲ 공공서비스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기반 구축 ▲ 공공부문의 대지자체 통일교섭 보장 ▲ 지자체가 모범 사용자로서 정규직 고용,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 공공서비스 업무 민간위탁과 외주용역 확산 중단 ▲ 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 노동자 시민의 참여 보장 ▲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 ▲ 문화예술 공공성 강화 등이었다. 요구의 대략을 보아 알 수, 있듯 당시 공공연맹·공공운수연맹의 대지자체 교섭은 대정부 교섭의 하위 교섭으로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지자체의 책임을 강제하고 지역에서 사회공공성 투쟁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구상된 것이었다.  

2000년대 후반이 되면 민주노총 차원에서 지역본부 지자체 교섭을 추진한다. 총연맹은 ‘노동의 지역 개입력 확대’라는 방향성을 제출하며 대략 ▲ 지역 미조직 비정규 사업 강화 ▲ 대지자체 교섭과 투쟁 강화 ▲ 민주노총의 일상적 지역사업 전형 창출 ▲ 민주노총 지역본부-산별노조 지부(본부)-진보정당 지역위원회 삼각체계 구축 등과 같은 지역본부 사업과제를 제시했다. 당시 대지자체 교섭은 지역본부에 새로운 사업영역인 만큼 전면적으로 확대되지는 못했고, 일부 지역본부들에서 추진되었다. 정책요구안은 대체로 앞서 공공연맹·공공운수연맹의 요구와 유사하게 지역 사회공공성 강화 의제, 사업장의 현안투쟁 의제가 중심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고 볼 순 없다. 지역본부 내부의 준비도 문제였겠지만, 지자체들이 교섭에 응할 조건이 전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회성 간담회나 서면답변서 정도의 사업에 그쳤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지역본부 지자체 노정교섭 사업 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경남이다. 민주노총이 지자체 노정교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사업을 시작하여, 일시적 단절이 있긴 했지만 가장 지속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경남본부는 2008년부터 고용정책과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력 강화 등 민주노총의 대사회적 정책 개입력을 극대화한다는 목표하에 지자체 노정교섭을 추진했다. 2008년 김태호(한나라당, 2004~2010) 도지사 집권 시기 사업을 시작했는데, 홍준표(한나라당, 2012~2017) 도지사 시기에만 사업이 중단되었고, 김두관(무소속, 2010~2012), 김경수(더불어민주당, 2018~2021) 도지사 시기에는 노정교섭이 진행되었다. 

경남본부의 노정교섭이 가장 활발했던 때는 김두관 도지사 시기로 평가된다. 2010년 6·2 지방선거는 그 어느 선거보다 야권단일화 흐름이 강했는데, 무소속이었던 김두관 후보가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3자 간의 후보 단일화 과정을 거쳐 경남도지사에 당선되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결합한 ‘희망자치만들기경남연대’가 후보단일화 과정을 관장했다. 야권단일후보로 당선된 김두관 도지사는 후보단일화에 참여한 정당 및 시민사회진영과의 ‘공동정부’를 표방하며 인적, 정책적 협력 수준을 높였다. 김두관 도지사 시기인 2011년,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정교섭 주요 의제는 지자체 비정규직 제도개선, 영세노동자 건강센터 설치, 보호자 없는 병원 확대, 정리해고자 생계대책 및 외자기업 실태조사,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복지기금, 돌봄서비스 참여자 소득보전, 노동자연수원 건립 등이었다. 당시 민주노총의 지역 정책이나 지자체 노정교섭 요구 일반과 비교해 볼 때, 정책의 범위가 매우 넓고 상당히 구체적이다. 김두관 도집행부와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민주노동당과의 적극적인 협력 속에 노정교섭이 추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역사회 개입전략’, ‘노동의 지역 개입전략’이라는 방향 아래서 검토되거나 추진된 지자체 노정교섭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지역사업들은 진보정당 운동과 강하게 연계되었다. 민주노총은 지역 집행기관으로 지역본부를 설치하기 시작한 이래 지자체를 상대로 하는 사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인 입론으로 발전시키고 사업과제를 정식화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진보정당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진보정당 운동의 지역적 기반 확대 방향 속에 지자체 사업이 구체화되었다. 특히 2006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이 다수의 광역 및 기초의원을 배출하자 지자체 사업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지자체 노동정책 도입과 확대

 
잘 알려져 있듯 지자체 노동정책은 서울시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노동존중 사회문화 정착’이라는 기조하에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정책, 취약노동자 권익보호, 노동시간 준수와 일자리 보호 등의 노동공약을 제시했다. 당시 노동공약에는 이후 추진되는 서울시 노동정책의 대략적인 골격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이후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시장은 2014~2017년 두 번째 임기 동안 노동정책의 제도화에 주력했다. 노동정책 추진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근로자 권리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5년 단위의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서울시는 5년 단위의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에는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된 서울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평가하고 보완하는 제2차 서울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제출했다. 서울시는 보완과제로 1) 시대와 노동형태 변화로 대두된 사각지대 新노동자 맞춤형 지원 2) 작업장 안전 및 직장 내 문화 조성 등 노동환경 개선 정책 마련 3) 정책 추진 권한의 중앙 집중화로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권익보호 한계를 제시했다. 제2차 노동정책 기본계획은 보완과제를 통해 도출된 4가지 추진전략을 바탕으로 추진된다.

2014년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일부 지역 단체장들도 서울을 좇아 노동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광주(윤장현 시장), 충남(안희정 도지사)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역은 서울의 노동정책을 모델로 하여 정책 시행 초기부터 제도화를 동시에 추진해 나갔다. 2018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노동정책 도입은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된다. 경기(이재명 도지사), 경남(김경수 도지사), 인천(박남춘 시장), 울산(송철호 시장), 부산(오거돈 시장) 등이 여기 해당한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지자체가 여전히 체계적인 노동정책 도입에 미온적인데, 충북, 전북, 전남, 제주, 강원. 세종, 대전, 대구, 경북 등이 그렇다. 

현재 선발로 노동정책을 시작한 지역들은 2기 노동정책 기본계획, 후발 지역들은 1기 노동정책 시행단계에 있다. 세부 정책과제는 대략 다음과 같다. 1기 노동정책 기본계획은 ▲ 생활임금, 노동이사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등 공공부문 노동정책 ▲ 취약노동자 권익 보호 사업 ▲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지원사업 ▲ 감정노동자 보호 사업 ▲ 노동권익센터, 비정규센터 등 중간지원 조직 설립이 중심이다. 2기에 가면 ▲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비전형노동자 보호사업 ▲ 산업단지 영세사업장 노동자 지원 사업(작업복 세탁소, 공동근로복지기금, 산단협의체 운영 등) ▲ 노동안전사업 ▲ 필수노동자 지원 사업 ▲ 지자체형 유급병가 도입 등 사회안전망 지원 사업 등으로 정책과제가 확대된다. 1기에서 2기 정책 추진 사이에 코로나19를 계기로 취약노동자, 필수노동자 보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플랫폼 노동의 급격한 확대, 중대재해법 제정 등의 상황이 있어 이에 대응하며 정책이 확대된 것이다. 

지자체 노동정책 확대 과정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대체로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역에서 정책이 도입되어 왔지만, 모든 지역이 그렇지는 않다. 법적 근거와 규정력이 없는 가운데 단체장의 자율적 판단과 의지에 근거해 정책이 추진되고 있고, 민주당은 당론 수준에서 이를 규율하지는 않고 있다. 

아울러 지자체 노동정책이 정부 노동정책과 성격과 목적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도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정부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을 조정하고 법에 근거해 집단적·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것에 주목적이 있다. 반면, 법적 근거가 취약하고 지자체 권한의 한계로 인해 지자체 노동정책의 범위와 성격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노동정책·행정의 여러 영역 중 근로기준을 입안·시행·감독할 권한이 전혀 없기에, 지자체가 집중할 수 있는 노동정책은 개별 노동자들에 대한 상담, 취약노동자를 범주화한 맞춤형 지원 정책 등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지자체 노동정책 시행에서 지자체의 재정 여력은 매우 중요하다. 취약노동자 지원사업, 사회안전망 지원사업 등 노동자에 대한 직접지원 사업이 많고, 노동권익센터 등 중간지원조직 설립도 예산 투입 정도에 따라 사업의 범위와 규모가 달라진다. 재정의 절대적 규모, 재정자립도 등에서 지자체별 편차가 큰 만큼, 노동정책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자체 노동정책이 서울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도 재정과 인력의 규모가 타 지자체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은 2021년 예산규모가 약 40조다. 전체 예산 중 중앙정부의 보조금이나 교부금을 제외하고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예산 비율을 의미하는 재정자립도는 75~80%다. 2021년 재정자립도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자체는 전북인데 약 23%로, 2021년 예산은 약 8조 7천억 정도다. 앞으로 산업재편, 인구감소 등이 지역별로 불균등한 효과를 가져올 것임을 고려한다면 지역별 예산 편차의 확대는 지자체 노동정책으로도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 간의 격차가 커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 외에 현재 드러나는 지자체 노동정책의 한계 중 지역본부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정책이 서울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노동정책을 도입한 지역 대부분이 서울을 모델로 정책을 설계·시행하고 있다. 처음 도입되는 사업 영역이기에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불가피함과 그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한계도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예산 조건뿐 아니라 서울과 다른 지역,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산업구조, 노동시장 상황은 현격히 다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은 제조업의 비중이 극히 낮은 대도시인 만큼 제조업 노동자, 특히 지자체 노동정책이 개입해야 할 공단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정책 비중이 매우 낮다. 그런데 제주, 강원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 어느 지역도 제조업이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서울을 모델로 설계되어 확산된 현재의 지자체 노동정책은 이런 점에서 많은 한계와 과제를 안고 있다. 지자체 노동정책이 지역의 산업구조, 노동시장에 잘 적용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책 방향, 정책과제에 개입하는 지역본부 역할과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 
 

지역본부, 왜 지자체 노정교섭을 추진하는가?   

 
지역본부에 지자체 노정교섭 사업은 어떤 의미이며 왜 추진하려고 하는가? 최근 많은 지역본부가 지자체 노정교섭을 추진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위상과 목표가 균질하지 않다.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 정도도 차이가 커서 사업 비중, 역량의 집중 정도도 차이가 크다. 이런 현실은 이 사업이 지역본부 내부의 능동적 고민과 계획보다는 지자체 노동정책의 확대라는 외적 조건 변화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지자체 노동정책에 개입할 필요성이 제기됨과 동시에 지자체에 노동정책 영역이 생김으로써 지역본부가 교섭을 제기할 명분과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 만큼 민주노총 내에 지역본부 노정교섭의 취지와 방향에 대한 합의 및 준비는 여전히 취약하다. 사업을 추진하는 각 지역본부 차원에서도 노정교섭의 위상과 목표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지역본부가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에는 오랜 기간 지역본부 운동이 안고 온 어려움과 곤란함이 있다. 민주노총의 지역 집행기관 위상을 가지는 지역본부는 설립 이후 늘 총연맹 수임사업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본부 운동은 민주노총 조직 체계 내에서의 위치상 역사적으로 산별노조의 상태, 진보정당 운동 등의 조건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략 2000년대 후반경 산별노조 체계가 안착하고 뒤이어 진보정당 운동이 분화되면서 지역본부의 기존 역할이 많이 달라졌고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지역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는 활동으로 지역본부 운동의 무게중심을 옮기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진행되었다. 

지역 투쟁 조직, 산별 지원, 시민사회단체와의 지역적 연대와 같은 기본적 역할 외에 미조직사업, 상담사업의 비중이 높아졌고 지자체를 상대로 하는 각종 정책개입 사업을 모색하는 지역본부가 늘어왔다. 총연맹이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한 목적으로 각종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처럼 지역에서도 지자체의 각종 위원회, 협의기구 참여 사업도 확대되어 왔다. 이런 가운데 지자체 노동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지역본부가 이에 개입하는 사업을 벌이고 노정교섭을 추진하고자 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현재 수준의 주요 목표는 지자체 노동정책이 정부 노동정책과 노동법의 보호가 미치지 못하는 영세사업장, 취약노동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초기 제도 설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민주노총과의 교섭(협의)을 노동정책의 주요 영역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역본부 노정교섭 추진 배경에는 지역 산업·고용정책에 대한 개입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이 있다. 지자체 노동정책이 확대된 시점은 세계적인 경제 저성장이 지속하면서 일부 산업에서 산업재편, 구조조정이 확대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대표적이다. 또한 최근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면서 자동차 산업재편, 석탄발전소 폐쇄 문제에 대한 지역적 대응은 많은 지역본부의 긴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작년과 올해의 코로나19 상황도 지역본부 운동에 많은 과제를 제기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지역 노동자의 피해실태를 파악하여 대응하는 과정에서 고용위기, 소득감소에 대한 지자체의 정책수립을 요구하는 교섭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들에 대응하는 것은 민주노총의 전통적인 대응방식인 고용안정 투쟁만으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위기 산업이 집중된 지역본부의 경우 지자체 노정교섭을 통해 지역 차원의 고용안정 대책 수립, 사회안전망 보완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향후 이러한 지역적 대응과제는 더욱더 많아질 것이다. 산업재편, 고용변화에 대한 총연맹의 대정부 교섭, 산별노조 산별교섭이 원활히 작동하지 못한 조건 속에서 지역이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처럼 지역본부 노동정책 개입 사업이 산업·고용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역본부 노정교섭 현황과 쟁점 

 
현재 지역본부 노정교섭 요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범주 내에서 구성되고 있다. ▲ 지자체 노동정책 제도화 토대 구축(조례 제정, 전담부서 설치, 정책 추진 등) ▲ 공공부문 노동자 고용안정 및 처우 개선(민간위탁 개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 취약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사업 ▲ 지역 공공의료 확충, 교통 공공성 확대 등 사회공공성 요구 ▲ 필수노동자 지원사업 ▲ 각종 노동자 지원 기관 설립 요구 ▲ 공공서비스 분야(특히 요양, 아이 돌봄 등의 돌봄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수당 지급 요구 ▲ 법제도 개선 사항에 대해 중앙정부에 요구 및 협의 ▲ 노동안전 요구 ▲ 그 밖에 산별 지역조직, 사업장의 현안 요구 등. 언뜻 보아도 알 수 있듯 대체적인 요구가 지자체 노동정책의 정책과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요구안을 보면 각 지역본부가 추진하는 노정교섭의 위상과 목표의 대략이 확인되는데, 쟁점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외관상으로는 지자체 노동정책의 한계 범위 안에서 미조직 노동자의 요구를 폭넓게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산별, 사업장의 현안 요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민주노총 내에 사업장 단위 노조가 아닌 직종·업종 단위 노조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라 요구안의 상당수가 겉보기에는 지역 내 해당 직종·업종 노동자 전체를 포괄하는 요구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조의 현안 요구, 조합원들의 숙원사업 해결 요구인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산별노조의 대정부 교섭과 지자체 노정교섭에 동일한 요구가 올라오기도 한다. 민간위탁된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의 요구로 주로 제기되는 각종 수당 지급 요구가 대표적이다. 누가 시행 주체가 되든 노동자는 혜택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접근이다. 

물론 노정교섭에 올라오는 현안 요구는 대체로 노동조건과 처우가 열악한 노동자들에 해당하는 것이라 요구의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 모두를 위한 보편성을 가지는 요구인지 고민해야한다. 특히 특정 지역에서만 시행됨으로써 나타나는 지역별 편차 확대가 가지는 부정적 효과와 요구 시행에 따른 노동조합의 역할 등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지자체의 권한 범위에서는 시행이 불가능해 중앙정부를 상대로 제기해야 할 요구도 뒤섞여 있다. 

이처럼 현재의 지역본부 노정교섭은 지역 내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한다는 사업 취지에  미달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가맹산하 조직들의 현안 해결 통로로써의 활용도가 높다. 이런 한계는 관련 사업 경험의 부재, 조직노동의 이해를 앞세우는 오래된 사업 관행에서 기인한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 각 지역본부마다 진행된 대응 사업을 돌아보면 이런 문제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많은 지역본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감염위험과 건강권, 고용과 생계 위기 등에 대응하는 요구안을 만들어 지자체나 지역 노동청과의 협의에 나섰다. 전례 없는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지역의 미조직 노동자들이 처한 실태를 파악하고, 고용위기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부문이 어디인지 조사하여 긴급하게 필요한 정책요구를 제기하는 것이 지역본부가 해야 할 역할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요구안이나 대응사업은 주로 현장으로부터 제기되는 불만과 요구를 취합하는 수준이었다. 

지역본부가 미조직 노동자 조직사업, 상담사업 등을 오랜 기간 해왔지만, 지역의 산업·노동시장 구조나 영세사업장 노동자, 특고노동자 등 보다 취약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의 존재 양태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요구안을 구성해본 경험은 거의 없었다. 이런 조건이기에 노정교섭을 위한 조직 내적 역량 구축과 노정교섭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한계를 인식하면서 개선을 위한 조직적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우선적 과제는 지자체 노정교섭의 위상과 목적에 대한 조직 내 분명한 합의다. 지역본부 노정교섭은 지역별로 노정교섭, 노정협의, 정책간담회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법이나 조례상의 근거가 없는 임의적 교섭이라 현재 조건에서는 명칭을 무엇이라고 하든 엄밀한 의미에서 교섭이 아닌 일종의 정책협의에 가깝다. 따라서 합의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마땅히 강제하거나 제재할 수단도 없다. 

취약한 조건, 지역별 차이가 큰 상황에서 노정교섭이 추진되는 만큼 지역의 전체 노동자, 특히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요구를 제기하는 통로로서 노정교섭의 위상을 분명히 합의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요구안의 원칙과 성격에 대해서도 통일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당장의 일률적 적용은 어렵겠지만 통일성을 높이며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연맹의 사업 관장력과 함께 산별노조의 조정 역할이 필수적이다.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제도 개선, 정책도입 요구, 이를 보완하는 지자체를 상대로 한 정책요구가 체계적으로 정선되어야 한다. 

지역적 정책역량 제고 방안도 중요하다. 앞서도 언급했듯 지역본부가 지역 노동자를 위한 보편적인 정책요구를 구성해본 경험과 역량은 매우 빈곤하다. 지금까지 민주노총 지역조직(총연맹 지역본부, 산별지역 조직)에 ‘정책사업’ 영역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지자체 노동정책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노정교섭의 경험이 쌓여 갈수록 정책요구 개발이 긴요한 과제로 제기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후 지자체 노정교섭은 더욱 조직노동의 현안 요구 위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총연맹 지역본부와 산별지역조직들이 협력적으로 지역 정책역량을 제고해 나갈 방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제반 상황을 고려한다면 총연맹 집행부가 선거 공약부터 올해 사업계획까지 제출해온 전국의 시·군·구 단위 지부 건설과 시·군·구청과의 노정교섭은 현재 지역본부의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 지역지부를 두고 있는 도 단위 지역본부들도 조직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온 지 오래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지역본부 인력과 재정이 지역지부로 많이 할당되어 지역본부 운영이 원활하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뿐 아니라, 지역지부의 위상과 역할이 매우 모호하고 산별 지역조직과 사업장의 결합력도 극히 낮다. 

또한 지역본부의 노정교섭 수준과 조건이 앞서 살펴본 바와 같기 때문에 시·군·구 단위까지 지역지부가 주관하는 노정교섭이 실행된다면 지자체와 관련되는 노조들의 실리적 현안 요구를 제기하는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돌봄서비스를 비롯한 지자체의 다양한 부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확대가 이뤄지고 있는데 대체로 조직력과 교섭력이 매우 취약하다. 교섭과 투쟁이라는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과 노조의 조직력 강화, 이를 위한 조직적 지원 확대가 우선적 과제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과제 

 

지자체 노동정책 개입의 기본 관점과 방향   


지금까지의 정책 시행 과정을 보면 지자체 노동정책은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선의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불안정노동 확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극대화, 산업재편 등의 변화가 급격히 나타나는 이 시기에 지자체 노동정책이 왜 갑자기 등장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가 강화되며 노동운동의 약화, 자본의 재량권 확대, 노동정책·고용정책 및 (산별)교섭구조 분권화 조건 속에서 지역 노동정책이 확대되어 왔다. 불안정 노동층이 확대되는 조건에서 생활임금 정책, 취약노동자 보호사업 등으로 지역 차원의 일자리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게 된 것이다. 

실제 지자체 노동정책을 선도한 서울시와 관련 입론을 만들어온 주요 단체들이 정책을 만들어온 배경을 보면 주로 ILO가 제시하는 노동표준,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미국의 노동자센터, 독일 브레멘, 함부르크, 뮌헨, 스웨덴 예테보리, 미국 위스콘신 등 다양한 국가에서 시행된 여러 노동정책과 고용정책을 취해 와 한국의 지자체 노동정책 패키지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의 지자체 노동정책은 주로 ▲ 연방정부의 지역고용정책의 직간접적 지원(법령, 예산, 조직 등)을 통한 지역 일자리 창출 및 직업훈련 ▲ 최저임금, 생활임금, 공공조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규제 등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 ▲ 지역 특색에 맞게 노동시장 취약계층을 범주화한 맞춤형 지원사업 ▲ 지자체 주도의 고용·일자리 사업 등이다. 한국에서 확대되고 있는 정책과 매우 유사하다.  

현재 지자체 노동정책의 확대는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전체적인 한국의 노동정책·고용정책의 변화 흐름 속에서 정책의 위상을 설정하고 발전전망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정부의 법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그 한계를 보완하는 위상으로서 지자체 노동정책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디지털 산업전환에 따른 플랫폼 노동 확대, 비전형 노동자 급증 등의 노동시장 구조변화 속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는 매우 더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법상 권리가 아닌 지자체 노동정책 차원의 지원·보호정책만 확대되는 방향은 우려스러운 측면 또한 존재한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일하는 시민의 기본법’이 이런 쟁점을 반영하고 있다. 고용인이 없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일부의 프리랜서 등에 대해 기존 노동법과 별도의 법적 보호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에서 은폐된 사용·종속관계를 드러내고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상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기본 입장이다. 물론 법적 보호 방안은 노동자들의 결사 형태와도 연결되는데 ‘일하는 시민의 기본법’ 부류는 노조가 아닌 협동조합, 자조모임, 공제회 등 다양한 조직형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법의 모태가 된 것이 서울시, 성남시의 ‘일하는 시민을 위한 조례’이다. 취약노동자, 비전형노동자 노동권 보호 사업이 정부가 아닌 지자체 노동정책 차원에서 먼저 시작되며 이런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상정 의원 뿐 아니라 이번 대선의 노동공약으로 이와 유사한 방안이 다수 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법제도 개선, 정책과제가 우선 정식화되고 그 한계와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위상으로서 지자체 노동정책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 정책 도입 초기인 만큼 민주노총이 적극적인 정책 모델, 정책과제를 개발하여 제출하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도 있다. 


지자체 노동정책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인식 필요 


민주당이 수권하고 있는 지자체에서 노동정책이 시행되었다는 사실은 이 정책의 당파적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최근 지방행정의 정치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자체 노동정책의 출현도 이런 경향성과 무관하지 않다.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어 자치단체장이 선거로 선출되기 시작된 이후 지방행정의 정치화 경향은 늘 있던 일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타난 지방행정의 분명한 특징 몇 가지가 있다. 대선 도전 계획이 있는 정치인들이 자치단체장을 거쳐 가는 하나의 경로로 사고하기 시작했고, 역으로 자치단체장들의 대선 도전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지금은 다수의 인사가 조건이 달라졌지만) 이재명, 박원순, 안희정, 김경수 등이다. 전통적으로 지자체의 역할은 국가의 정책과 법을 지역에서 집행하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자치단체장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정치적 논쟁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이 목격된다.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 이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제안하여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재난기본소득’이다. 이 정책은 이재명 도지사에 앞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제안했던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정치가형 자치단체장’의 등장이 빈번해지고 있다. 
 
비정규직 공정수당 도입, 플랫폼 배달노동자 산재보험료 지원을 포함한 ‘경기도 노동정책’은 언론을 통해 ‘이재명표’ 노동정책 모델로 전국에 소개된다. ‘정치가적 자치단체장’이 지자체 노동정책의 주도권과 성과를 독점하려는 경향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노총의 원칙과 방향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지자체 노동정책도 이런 ‘지방행정의 정치화’, ‘정치가형 자치단체장’ 출현 경향 아래서 나타난 변화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기존에 지자체가 담당하던 사업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정책영역을 만들어 타지자체 행정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정치적 성과를 내는 것이 목적이다. 정부에 요구할 것이 딱히 없으니 지자체 간 협력의 필요성도 없다. 정책을 전국화하기 위한 법 제도적 개선 과제를 제기하거나 당론 차원에서 정책이 추진되도록 노력하는 자치단체장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지역별로 민주당 주도의 노동정책, 지역본부 노정교섭이 정착되고 제도화될수록 민주노총 지역본부(지역 노동운동)와 민주당 집행부와의 관계에서 많은 정치적 쟁점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물론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지역본부와 지자체가 필요에 따라 협력하고 견제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정책의 역진을 막고 노정교섭에 우호적인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민주당과의 암묵적인 지지·협력 관계가 형성될 우려 또한 존재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지역본부들에서는 벌써 민주당 자치단체장의 (재)집권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자체 노동정책의 시작은 긍정적 변화이고 민주노총 지역본부 운동에도 의미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런 만큼 정책의 지속과 발전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원칙과 방향은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자치단체장의 선의에 의존하는 노동정책, 그로 인한 지역별 격차 확대의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진단하여 지자체 노동정책의 전국적·통일적 시행을 위한 법제도 개선 과제를 정식화하고 노동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지역에 대해 정치적 압력을 높이는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미 노동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지역적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역 노동운동과 시민의 힘으로 정책이 역진 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활동에도 주력해야 할 것이다.
 

지역 단위 노사정 협의 쟁점에 대한 조직적 입장 마련  


지역본부 노정교섭은 ‘지역 노사민정협의회’를 우회한 교섭전략이다. 그러나 지자체 노동정책이 제도화되면 될수록 법으로 제도화된 ‘지역 노사민정 협의회’ 문제 외에도 노사정 협의 관련 쟁점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지자체 노동정책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정형화된 정책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지자체 노동정책은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시행하면 되는 정책과제뿐 아니라 이해당사자(노·사·정)들의 협의와 조정을 통해 정책을 만들거나 정책실행 수준을 높여가는 사업의 비중이 높다. 또한 외국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다수 사례를 보아도 지역 노동정책은 지역 고용(서비스)정책과의 연계 속에 진행되기 때문에 지역 경제주체 간의 협의를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지역 파트너십이 내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최근 정부, 경사노위, 한국노총 등에서 지역 노사정 파트너십 재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 배경에는 지역 노사민정 협의회의 낮은 논의 수준과 성과, 사용자 단체 및 노총의 낮은 조직률과 구조화 수준, 지역 상생형 일자리의 확대 전략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지자체 노동정책 확대, 중앙(노총 및 산별노조)보다 지역 단위의 파트너십 재편 및 활성화가 용이하다는 판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역대 정부의 반노동정책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대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지역 노사민정 협의회’도 불참의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정부나 한국노총 등의 평가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 지역 단위 각 주체의 수준과 실정을 고려하면 ‘지역 노사민정 협의회’의 실효성은 크게 없다. 그러나 지역의 변화하는 두 가지 조건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의 조직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자체 노동정책의 개입 과정에서 제기될 여러 형태와 사안의 노사정 협의에 대해서 어떤 조직적 입장을 가질 것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주로 제조업 산업재편, 구조조정 등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지역 단위 노사정 협의 문제이다. 이 쟁점은 주로 비수도권 지역에서 제기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인데 지역본부들의 고민이 현재도 매우 깊다. 이러한 쟁점들에 민주노총 차원의 조직적 입장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역에서 많은 혼란이 발생할 것이고 민주노총 내의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조직적 입장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지역의 산업·노동시장 구조변화에 지역본부가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적 대응계획과 조직적 지원계획을 포함하는 문제다.


지역 노동운동 주도력 강화를 위한 운동전략 수립 


이런 일련의 과제는 결국 지역 노동운동의 주도력을 강화하기 위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새로운 운동전략을 수립하는 문제다.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지역에서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벌이는 대표 조직 중 하나였다. 민주노총이 1 노총이 된 것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라 지역의 1 노총으로서 어떻게 책임성을 높여 갈 것인지가 지역본부의 최근 고민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자체 노동정책이 도입되면서 지역본부가 해오던 역할의 상당 부분이 지자체의 사업으로도 시행되고 있다.

노동정책이 시행되는 지역 대부분에 설립되고 있는 노동권익센터, 비정규직센터 등의 중간지원 조직이 이런 쟁점을 잘 드러낸다. 지자체 노동정책 중 상담사업, 실태조사, 다양한 취약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맞춤형 지원정책 상당수가 이 중간지원조직을 통해서 시행되고 있는데 많은 지역본부가 이를 수탁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역본부가 지자체 노동정책 시행 주체의 일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본부의 중간지원조직 운영은 취약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민주노총의 접촉면 확대, 이를 통한 미조직사업의 경로 확대, 지역 노동시장에 대한 실태 파악 경로 등 지역본부 운동을 확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유의해야 할 여러 위험성 또한 제기된다. 중간지원조직을 매개한 미조직 노동자 사업이 노조 조직화 사업과 충돌하는 경로(자조모임 등)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다. 이는 서구의 노동운동 활성화 전략을 국내에 적용해온 단체들이 기존의 노조 조직화 전략을 상대화하며 사회협약이나 제도를 활용한 조직화 전략을 추진해온 흐름의 지역적 판본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노동조합의 독자적 역할에 대한 분명한 판단과 계획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지역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중간지원 조직으로 흡수되는 문제 등 지역노동운동의 인적, 정책적 역량 이전·유출이 불가피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제기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민주노총의 분명한 원칙과 대응계획이 없다면 지역 내 노동운동의 주도력이 약화되고 독자성이 침식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지자체 노동정책 시행이라는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역 노동운동의 주도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 새롭게 구성될 시기이다. 지자체 노동정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입하는 동시에 변화된 조건에 맞는 노동조합의 역할과 과제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조직 내적으로도 미조직 노동자와의 연대정신 강화를 위한 사업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나아가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디지털 산업전환, 인구감소와 지역적 산업 재배치에 따른 ‘지방소멸’과 지역균형발전의 문제 등 새롭게 제기되는 노동운동의 과제에 대한 지역적 대응전략 수립도 늦출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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