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1 겨울. 177호
첨부파일
04_특집_한반도전망_김진영.pdf

총체적으로 실패한 문재인 정부 한반도 정책과 후과

남북한 동시 핵무장의 위험

김진영 | 정책교육국장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반년 남짓 남았다.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대표 정책 중 하나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임기 2년 차인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초유의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이 글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북한 비핵화는 필수라는 원칙을 무시했고, 미중관계가 ‘전략적 경쟁’ 단계에 접어든 새로운 국제 정세를 인식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로부터 동떨어진 현실성 없는 정책을 고수했고, 실질적 성과는 얻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북한은 UN(국제연합)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 속에서도 핵·미사일 능력 강화에 성공할 시간을 벌었다. 명시적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은 중단했지만, 남한과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전술핵무기 개발로 전략을 틀어 핵·미사일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남한에서는 미국·일본과의 핵 공유 협정, 전술핵무기 배치와 같은 핵무장 방안이 공공연하게 부상했다. 남북한 동시 핵무장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민중에게 가장 암울한 미래다.

향후 한반도 정책은 차기 정부의 구성에 따라 기조가 크게 다를 것으로 보이나, 대선 결과는 지금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누가 당선되든, 차기 정부는 이와 같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후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운동은 ‘반핵평화’ 원칙을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이에 동의하는 아시아, 세계 민중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할 것이다. 
 

하노이에서 멈춘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 


문재인 정부 대선 공약에부터 ‘한반도 신경제구상’이 포함되어 있기는 했으나, 당시로써는 이를 추진할 경로가 마땅치 않았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한국인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개성공단 가동은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전면 중단되어, 문재인 정부 출범 시 이미 모든 남북경협이 중단된 상황이었다. 또한 2016~2017년은 북한의 4·5·6차 핵실험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실험이 연이어 벌어지고, 북한 당국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추진될 수 없었으며, 임기 첫해인 2017년까지 문 정부의 강조점과 세간의 관심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대폭인상,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에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계획 발표 직전인 2018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평창올림픽 휴전’이 끝나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대북 경제제재 강화, 일명 ‘코피 작전’과 같은 북한 선제타격 여론 고조와 같은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높았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극적으로 타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 2018년 3월 6일 대북특사 합의와 이어진 4월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이런 갑작스러운 ‘평화의 봄’은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회담이 결렬되면서 막을 내렸다. 그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가 있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남북·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마법’의 실상은 북미 양자에 각자가 듣고 싶은 말만을 하여, 결정적인 협상의 순간에는 결국 깨질 수밖에 없는 판을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북한에는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 곧 수평적-동시적 비핵화 협상을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에는 북한이 미국이 말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 방식의 비핵화에 동의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모순적 행보를 한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분주하게 노력했던 문재인 정부의 공을 인정하고, 차기 정부에서 이를 계승·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이재명 대통령이 위험한 이유』.) 

2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당시의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5건의 UN 대북 제재 해제를 맞바꾸자는 북한 측 안에 대해 “현 단계에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그대로, 이후 북한 당국은 그때보다 진전된 비핵화 계획을 제시한 바가 없다. 오히려 핵 물질 생산과 단거리 미사일 실험에 매진해 왔다. 미국에서는 하노이 회담 당시 민주당은 고사하고 여당인 공화당조차 북한과 ‘스몰딜’을 하기보다 ‘노딜’을 지지했다. 현재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강경하게 비판하고 북한 당국을 ‘불량배(thug)’로 인식하는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명확한 비핵화 로드맵에 동의할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북미대화가 극적으로 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도 한반도 정책에 있어 문재인 정부의 시간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에서 멈추어, 당시 실패한 협상안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제안을 지금까지 되풀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만 바라는 ‘종전선언’


북미정상회담 결렬 바로 다음 날인 2019년 3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행사에서 ‘신한반도 평화경제시대’로 통일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하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도 미국과 다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회담이 제재 해제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결렬된 상황인데도, 이전까지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문재인 정부가 공들여 온 양대 한반도 정책인 ‘종전선언’과 ‘남북경제협력’이라는 카드 자체가 그러하다. 

먼저 종전선언을 보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직전에 북미 간 사전 합의로 추측된 안은 ‘영변 핵시설 해체와 종전선언(혹은 평화선언)의 교환,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한국전쟁 미군 유해 송환 등’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공화당, 민주당 양당 모두 실질적 의미가 없는 ‘스몰딜’로 파악했으며, 실질적인 비핵화 로드맵 합의 없는 이러한 ‘협상을 위한 협상’보다는 회담 결렬(노딜)이 낫다고 주장했다. 북한 당국 역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종전선언 정도를 받아갈 생각이 없었다. 북한의 최대 관심사는 스스로 밝혔듯 경제제재의 해제에 있었다. 10월에서야 재개된 북미 실무협상에서도, 미국이 경제제재 완화는 영변 해체와 같은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는 할 수 없고 현시점에서는 종전선언과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와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밝히자, 북한은 논의를 거부했다. 

북한 당국이 종전선언을 열렬히 바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종전선언은 실질적,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말 그대로 ‘선언적’ 성격이라고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여러 차례 강조했다. 본래부터 국제정치에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이나 강화조약을 맺을 때 동반되는 것이지, 독자적인 물질성이 없다. 북한 당국이 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올해 9월 UN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재차 제안하자,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는 종전선언문을 들고 사진이나 찍으면서 의례행사를 벌려놓는 것만으로 조선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 “종잇장에 불과한 종전선언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철회로 이어진다는 그 어떤 담보도 없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 당국은 북미대화 재개의 선결 조건으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내세우고 있다. 이것이 정확히 어디까지를 요구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대규모 한미군사훈련의 중단, 대북제재 완화·해제,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에 미국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이다. 종전선언의 무게는 이러한 조치들에 한참 미달할뿐더러, 리태성 부상이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이라는 입장이 명확하다. 이처럼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부터가 종전선언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공세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도를 제외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또다시 북미의 불신만 키우고 끝날 것


그런데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인 올해 11월, 한국전쟁 종전선언 협의가 한미 간에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보도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9월 UN총회 연설 이후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 한미일 정보수장 회동 등을 통해 종전선언 논의 추진에 박차를 가해왔다. 11월 11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종전선언의 형식, 내용에 관해 한미 간에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밝혔다. 미국이 베이징 올림픽에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올림픽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실현한다는 정부의 구상이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에 대해서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내년 2월 4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 전에 “남북이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정리하면, 문재인 정부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내년 1월 초에 신년사를 계기로 화상 남북정상회담을 하여 종전선언 논의를 진전시킨 상태로, 베이징 올림픽에 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주석이 모이는 그림을 만들고(바이든 미 대통령은 올림픽 불참이 확정되었다), 3월 대선 전에 종전선언을 이뤄내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에 막바지 조율 중이라는 종전선언의 내용에 대해, 《동아일보》는 ‘복수의 정부 핵심 당국자’를 출처로 하여 단독기사를 냈다. (“韓美, 종전선언문에 ‘유엔사 해체 않고 정전체제 유지’ 담기로 가닥”, 《동아일보》, 2021.11.23.)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주둔 및 유엔군사령부 지위 등 쟁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종전선언이 현 정전협정 체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문안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반면,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종전선언 문안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문구를 놓고 교착 상태라고 보도했다. (“U.S. and South Korea finalizing end of war declaration text”, Politico, 2021.11.23.) 기사에 인용된 한 소식통은 “비핵화는 그렇게 문제가 되는 조항이 아니다. (한미) 양측 모두 동의한다”며 “단지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거부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보도를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에 “현 정전협정 체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명시해도 괜찮으며, 미국이 걱정하는 문제들, 즉 유엔사나 주한미군 지위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한미 간 협의가 진전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구상으로 미국은 설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또한 ‘비핵화’가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도 북한도 동의하는 비핵화의 개념, “북한이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거부하지 않을” 선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교착된 북미대화가 증명한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정전협정 체제 유지’에 더해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문구를 수용한다면, 북한은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종전선언을 미국이 최종적으로 동의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12월 7일, 미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35명이 북한의 비핵화 약속 없는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공동 서한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앞으로 보내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종전선언을 미끼로 북한을 내년 1월 안에 남북정상회담에 나와 앉히겠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이 가장 민감해할 ‘비핵화’, ‘정전체제 유지’에 대해 미국과 종전선언 문안을 만드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북미정상회담이 붕괴한 2년 전을 연상시킨다. 다만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바라는 ‘그림’ 자체가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하고 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일본 등도 여기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베이징 올림픽에 ‘평화의 잔치’ 이미지를 부여하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한국이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할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 12월 13일 한·호주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더해, 미국은 국제 인권의 날인 12월 10일, 북한, 중국, 미얀마 등의 단체 10곳과 개인 15명을 반인권 행위 관련 경제 제재 목록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새로운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북한 주민들은 강제 노동과 지속적인 감시,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이유를 들었다. 또한 이번 조치는 “국가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에 대항하는 전 세계 민주주의가 보내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위주의 독재 국가들에 맞서겠다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막 치른 미국도, 인권 문제 거론을 체제에 대한 직접적 도전으로 여기며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분류하는 북한 당국도 현 상황에서 종전선언에 합의하기 어렵다. 

나아가 이번 조치는 한미 간에 종전선언 협의가 막바지라는 문재인 정부의 발표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이 하루 이틀 만에 이러한 제재를 결정했을 리 없으니, 한미 간 정보 공유나 조율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반면 다른 동맹국과 달리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 선을 긋는 문재인 정부를 불신하고, 당장 다음 달에 남북정상회담과 종전선언 논의를 하자는 제안을 받는 와중에 인권과 제재 문제라는 ‘아킬레스건’을 찔린 북한도 문재인 정부를 불신하는 상황이다. 
 

종전선언이 중한가, 종전이 중한가


종전선언의 전망이 어두워진 상황이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달 11일, “종전선언 반대는 친일을 넘어선 반역행위”라고 발언했다. 종전선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이 후보의 발언은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것은 곧 평화를 반대하는 것이고 어불성설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프레임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낙인을 찍어 토론을 가로막고, 여론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다. 

일단,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이재명 후보가 옹호하는 종전선언은 실질적인 종전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을 반대한다고 곧 종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전쟁의 종결에는 적어도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의 성립이 필수적이다. 이는 평화운동의 오랜 요구다.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일반적으로 서문이나 1조에 종전의 선언이 들어가므로, 평화협정은 종전선언을 이미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 급이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며,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한미동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심지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고 까지 했다. ‘정전체제 종결 없는 종전’이나, 전쟁을 종결했다가 ‘여차하면 종결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과 내용일 까닭도 없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11월 20~21일 진행한 ‘2021년 4분기 국민·평화통일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종전선언의 당위성을 공감하면서도(67.2%),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에 대해 53.9%가 ‘불가능할 것’으로 답했다.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으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38.2%), ‘국민적 공감대’(28.6%), ‘국제사회의 지지’(13.9%),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13.0%)를 꼽고 있다. 즉, 종전선언을 원칙적인 의미에서 반대하지는 않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급하게 추진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며, 종전선언을 ‘비핵화의 입구’로 본다기보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보는 여론이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재명 후보의 말대로라면 ‘종전 반대 친일 반역세력’에 해당하는, 종전선언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도 27.6%가 있었다.

《중앙일보》가 ‘문재인식 종전선언’, 즉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북한 비핵화를 명시적 조건으로 설정하지 않는 종전선언에 대해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국민의당) 대선 캠프에 보낸 질의서 답변을 보면, 여당인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를 제외한 주요 야당 후보는 전부 이에 부정적이다.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지 않는 한, 문재인식 종전선언은 국내에서도 추진력을 잃을 것이란 뜻이다. (“이재명 ‘현 시점에 추진해야’ vs 윤석열 ‘국민적 합의 없었다’[대선후보가 본 종전선언]”, 《중앙일보》, 2021.12.07.)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종전선언은 시기상조이며 비핵화 진전이 선결조건이라고 답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미국과 북한의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기에 종전선언은 시기보다 내용 합의가 더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쟁을 법적으로 종결짓는 평화협정도 아니면서 많은 혼란과 비난을 초래하는 종전선언보다는, ‘평화선언’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입구로 더 적절하고 현실적이라고 제안했다. 평화선언에는 북한의 핵 동결 및 대북 제재 완화, 비핵화-평화체제 전환 원칙 등이 담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보다 종전선언을 우선하는 현 상황을 비판하며, “핵심 이해 당사국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라도 비핵화와 관련한 이해가 조정돼야 한다”며 “조건 없는 종전선언이 아니라 비핵화 및 평화체제 전환과 관련한 대화가 재개될 수 있는 평화선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전쟁을 진짜로 끝내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평화협정이며, 그 과정에서 70년 이상 지속된 정전체제의 변화를 위한 논의가 동반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핵무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전쟁의 종식이나 한반도 평화의 확립이 과연 가능하냐는 심대한 문제가 있다. 현실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 없이 문재인식 종전선언조차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종전선언을 위해서 북한의 핵 위협이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도 무시하자는 문재인 정부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되었으며, 진정한 종전의 방향과 무관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도, 국제 사회에서도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남북경협의 여지가 남아있는가?


그렇다면 종전선언과 같은 ‘정치’의 영역과 별개로, 남북경제협력과 같은 ‘경제’의 영역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여전히 ‘한반도 운전자’의 여지가 남아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도 남북경협 사업, 대표적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운영 재개를 꾸준히 주장해왔다.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르면 북한과의 신규 합작사업 또는 협력체를 운영할 수 없고(2371호 12항), 대북 무역에 대한 공적·사적 금융지원이 금지돼 있다(2321호 32항. 여행은 서비스 무역으로 분류되어 여기에 포함된다). 북한 정부와 조선노동당은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운영 재개를 정말로 추진하고자 한다면, UN 안보리와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 면제에 대한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미국은 이번 12월 10일에도 북한 노동자의 해외 노동을 도운 중국, 러시아 단체와 개인에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단체나 개인도 제재)을 적용했다. 

그러나 UN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여러 차례 지적했듯 북한에서 핵 물질 생산이 계속되고 있으며, 북한의 지속적인 탄도미사일 실험이 UN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탄을 받는 상황에서, 대북제재의 면제나 완화가 가능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세계 경제로부터의 탈동조화(디커플링)를 감수하고 독자 행동에 나설 것이 아니라면, 한국 정부로서는 이러한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남북경협을 포기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묘수’가 북한 ‘개별관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데 이어, 통일부가 한국 시민의 북한 개별관광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2021년 6월에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만나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면 금강산 개별관광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변함없이 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별관광 추진의 논리는, 단체가 아닌 개인이 개별적으로 북한을 관광하는 것은 UN 대북제재에 위배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 발표 직후부터 제재 위반 논란이 일었다. 무엇보다, 큰돈이 들어올 수 없는 개별관광 카드에 북한 당국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관광 규모를 키우면 제재 위반이 될 가능성이 그만큼 올라간다. (「북한 개별관광 허용, 신의 한 수인가? 총선용 쇼인가?」, 《사회운동포커스》, 2020.01.22.) 

문재인 정부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되는 현실 속에서도, 남북경협 추진을 위해 중국,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며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낳았다. 예를 들어, 2019년 말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 철도·도로 협력 사업을 제재 대상에서 면제하자는 유엔 결의안을 제출하자마자,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 결의안에 대해 논의한 데 이어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통한 동북아 철도공동체를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기념 토론회를 개최하고, 북한 개별관광 계획 발표와 ‘2032년 올림픽 남북공동유치 추진’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렇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의지’로도 문재인 정부는 결국 UN과 미국의 대북제재라는 벽을 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 2021-7월호에 실린 이석 KDI 선임연구위원의 글 「남북경협과 대북정책, 우리의 인식과 개념은 얼마나 현실적일까?」는 이러한 맥락에서, 남북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앞으로도 한국의 의지나 기대와는 무관하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남북경협의 중단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남북경협에 대한 기본 인식 모두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먼저, “남한의 의지로 실현 가능한가?”를 따졌을 때, 가능하지 않다는 답이 나온다. 1990년 처음 남북경협이 본격화되었다고 본다면 2010년부터 10년간 이미 남북경협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노력도 이를 바꾸지 못했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라는 상징적 사건이 보여주듯 북한도 부정적 태도다. 북한 관광이 중단된 2010년부터는 북한의 대중국 무역이 급증하면서 전체 대외거래가 매우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노력한다고 해서 북한이 언제나 남북경협에 적극적으로 응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 

두 번째로, 남북경협이 과연 북한의 개혁·개방과 남북한 동조화를 이끌어 낼 것인지도 비관적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남북경협이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 2021년 현시점에서 북한은 오히려 전통적인 국가통제 질서의 확립과 자력갱생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북한을 떠나, 기존 사회주의 경제의 개혁·개방이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이란 국제적 믿음 자체도 시험에 들어 있다. 사회주의 경제가 개혁·개방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이후, 권위주의적이고 통제적인 사회질서를 더욱 강화하면서 오히려 기존의 국제질서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필자가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이는 주로 중국 사례에 근거한 평가일 것이다. 

남북경협의 개념에서도 근본적인 도전이 존재한다. 국제사회의 결정에 따라 남북경협이 규정되는 상황에서 남북경협을 ‘민족 간 내부거래’로 개념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남북경협을 ‘국가 간 거래’로 규정한다면, 남북 간 거래에도 통상적인 국제적 질서·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쟁점이 생긴다. 남북관계에 난관이 단기적으로 생기더라도 경제협력은 길게 보고 지속해야 한다는 ‘정경분리’론에 대해서도, 국제 사회에서 ‘정경연계’, 즉 북핵으로 인한 경제제재가 이뤄지고 있으며 남북경협도 여기에 귀속되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마지막으로 “남북경협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 즉 ‘평화효과’ 역시 국제 사회가 결정할 일이라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만약 남북경협이 활발하고 남북한관계는 매우 좋은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문제가 심화하면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은 ‘조국통일대전’을 준비하는가?  


문재인 정부 한반도 정책이 하노이에 멈춰 총체적 난국으로 나아가는 동안, 북한의 전략은 어떻게 변화하였고, 북한의 핵 능력은 어디까지 왔는가? 결론부터 쓰자면, 5년 만에 열린 올해 1월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북한은 ‘선대선 강대강’과 ‘정면돌파전’ 전략, 즉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기 전까지 ‘사회주의 자급자족 경제’와 국방력·핵무력을 강화하는 노선으로 전환했다. 

남한에 대해서는 군사력을 통한 통일 노선과 대남 군사력 강화를 천명했다. 대남 군사력 강화에는 남한 전역과 일본 일부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 개발이 포함되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이러한 전략에 발맞추어 강화되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시장친화적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자력갱생’ 계획경제 노선을 다시 추구하고자 한다.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며, 남한 문화의 유입을 엄벌한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동맹국들과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맞서 중국, 러시아, 이란, 미얀마 등과의 협력 구도를 형성하려 한다. 결국 비핵화에서도, 개혁·개방에서도, 외교에서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보도한 8차 당대회에서의 당 규약 개정 내용을 보자. 북한 체제에서는 당 규약이 헌법보다 상위 규범이다. 《로동신문》은 이번 당 규약 서문의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것이 명확히 들어갔으며, 이는 “강위력(强偉力)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의 반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것은 7차 당대회 때 규약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이라는 문구를 대체하는 것이다. 

올 초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이 패널로 참여한 “민플TV 신년토론회 2021 진보하라: 2021년 진보진영 계획과 과제” 토론회(《민플러스》 주최, 2021.02.20.)를 보면, 서두를 떼는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의 ‘2021년 전망 및 대응계획 발제’에서 분석의 첫 번째 대상은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다. 여기에서 주제준 정책위원장도 8차 당대회는 국방력 강화를 통한 정면돌파전 전략이 핵심이며,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상기한 대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로 바꾼 뚜렷한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전국회의’) 부울경 그룹과 친화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언론 《민플러스》 또한 8차 당대회 결정내용에 대해 “대미 전략무기와는 별도로 다양하게 개발된 초정밀 전술핵무기, 현대화된 재래식무기 등은 북한의 국지전, 조국통일대전의 준비정도와 수준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새로운 격변기를 준비하는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 《민플러스》, 2021.02.01.) 여기서 ‘국지전, 조국통일대전’의 대상은 남한 말고 있을 수 없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8차 당대회에서 최초로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 무기화”를 지시했다. 전술핵무기란 통상적으로 단거리, 저 위력 핵무기를 말하는데, 북한이 이를 개발한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최근 여러 차례 시험 발사된 KN-23 전술미사일이나, 올해 10월 SLBM 잠수함 시험 발사에 쓰인 ‘미니 SLBM’은 사거리가 600km 가량이다. 미국이 아니라 남한 전역과 일본 일부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다. 북한은 2019~2020년 이러한 중·단거리 미사일 실험을 19차례나 진행했고, 올해에도 총 8차례(10월 20일 현재)의 미사일 발사 중에서도 한 번(9월 11~12일)만이 사거리 1000km 이상이었다. 이러한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것이 바로 전술핵무기 개발이다. (「북한 SLBM 발사의 함의」, 《사회운동포커스》, 2021.10.27.) 

핵무기 원료가 되는 핵 물질 생산도 진행 중이다. 특히 IAEA의 북핵 관련 연례 이사회 보고서는 북한이 올해 7월부터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의 핵심인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를 재가동한 사실을 보고하여 충격을 주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도 9∼11월 영변 핵시설 일대를 찍은 열적외선 사진을 공개하며, 원자로 냉각시설에서 온수를 배출한 정황을 근거로 북한이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핵 물질 생산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과 추가 생산 능력은 향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올해 6월 발표한 국제 군비·군축·국제안보 관련 연례 보고서에서 올해 1월 기준 북한의 핵탄두 보유 수를 40~50개로 추정했는데, 지난해 추정했던 30~40개보다 10개 늘어났다. 7월 미국 핵과학자회보에 실린 『2021 북한 핵무기』 보고서는 북한이 핵무기 40~50개분의 핵 물질을 생산했으며, 중거리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 10~20개를 보유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10~20킬로톤급 핵분열탄(히로시마급)을 기준으로 추산한 것인데, 실제로는 북한이 “다양한 폭발력을 갖춘 탄두에 적합한 강력한 핵폭발 기기들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의심이 없다”고 평가한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군사 전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RAND)의 공동 보고서 『북한 핵무기 위협대응』은 북한의 현재 핵무기 보유량을 67~116개로, 매년 추가 생산 능력을 12~18개로 평가한다. 따라서 2027년까지 151~242개의 핵무기와 수십 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할 것으로 전망한다. 

영변 핵시설을 직접 둘러본 경험이 있는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한국과 일본 대부분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전술핵미사일 수십 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미사일·핵 실험 경험과 핵 물질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Estimating North Korea’s Nuclear Stockpiles: An Interview With Siegfried Hecker”, 38north, 2021.04.30.) 헤커 교수는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연구소의 추정치는 너무 높으며, 북한의 핵 물질 생산능력을 고려했을 때 현재 핵무기 45개 보유, 매년 6개 추가 생산 능력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추정한다. 헤커 교수는 북한이 전술핵무기 개념에 ‘실전(전장) 이용’ 핵무기, 예를 들어, 포탄으로 발사되는 핵 발사체와 핵 지뢰 등을 포함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러한 실전용 핵무기는 기술 부족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폭발하거나, 현장 지휘관들에 전용되어 재앙을 초래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핵·미사일 능력 강화 현황을 통해, 북한의 장기 전략이 핵무기의 실전배치 체계를 갖춰 이를 바탕으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압박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KDI 《북한경제리뷰》 10월호에 실린 양욱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의 「남북한 무기체계의 발전 동향: 공세와 대응의 첨예한 대결」은 북한의 무기체계 개발에서 이러한 전략 설정에 따른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8차 당대회에서 선언한 핵무기 고도화 전략이란, 핵의 존재로 자국에 대한 위협을 억제하려는 것을 넘어, 본격적인 핵 사용을 상정하여 정치적 목적에 따라 위협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명목적으로는 핵 선제 불사용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한미연합군의 존재를 북한의 자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재래전에 대한 전술핵 사용까지 포함하여 핵 선제사용이 선택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핵 태세(nuclear posture)를 갖추기 위해 다탄두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핵잠수함, SLBM, 군사정찰위성 등 전략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것이 핵무기 고도화의 구체적 내용이다. 8차 당대회를 살펴보면 ① 전략핵의 고도화, ② 전술핵의 개발, ③ 운반수단과 플랫폼의 다양화라는 기조가 드러나는데, 2021년 있었던 KN-23 개량형 미사일 시험발사(3월 25일), 열차에서의 KN-23 미사일 시험발사(9월 15일), 화성-8형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9월 28일), 수중 잠수함에서의 KN-23 SLBM 시험발사(10월 20일)는 모두 이러한 맥락에 위치한다. 

이처럼 남한과 일본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실시간으로 강화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심각한 경제위기나 미국의 핵우산 등을 고려했을 때, 북한 당국의 대남용 무기 개발이 실제로 대남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분석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지나칠 수 있다. 본격적인 핵 실전 사용 태세를 갖추어 협상력을 최대화하겠다는 전략에 가까울 것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고강도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 속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핵무력 고도화와 첨단무기체계 개발에 쏟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 당국이 단거리 전술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전략무기를 구분하여, ‘비핵화’가 아닌 ‘핵 군비통제’를 중심으로 핵 협상에 임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대미용 전략핵무기는 포기하더라도, 동아시아 내에서 남한과 일본 등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 보유는 유지하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라는 민중의 꿈은 요원해진다. 
 

경제·사회 통제를 강화하는 북한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를 보면 북한의 경제 정책 전망에서도 변화가 눈에 띈다.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 사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 사업에서는 심중한 결함들”이 있었음을 사업 총화보고에서 시인하면서, ‘자력갱생’을 핵심으로 하는 새 5개년 전략을 내놓았다. ‘자력갱생’은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로 제시된 기조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8차 당대회를 통해 부동의 위상을 확보했다. 비핵화 대화를 포기한 북한의 ‘새로운 길’이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 이전까지 고강도 대북제재 속에서 상당 기간 살아갈 것을 결의하는 ‘정면돌파전’으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자력갱생 노선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자력갱생 경제의 실현에 있어, 김 위원장은 “경제 실패와 위기관리를 위해 새로운 규율 감독체계를 수립”하고 “국가의 통일적인 지휘와 관리 밑에 경제를 움직이는 체계와 질서를 복원하고 강화하는 데 당적·국가적 힘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대북제재 이후 북한 경제의 동향을 추적해온 벤자민 카제프 실버스타인 미 외교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이는 지난 몇십 년 동안 크게 성장하여 북한 인구 상당수의 생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장·민간경제활동을 당국이 제한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고 평가한다. (“Kim Jong Un’s Congress Report: More Economic and Social Controls on the Horizon”, 38 North, 2021.02.09.) 그는 북한 경제에서 국가가 더 강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더 강력한 사회 통제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1990년대에 계획경제가 붕괴하면서, 북한 정권은 경제의 많은 부분에 대한 관리력과 국경 통제 능력과 같은, 현대 국가의 중심적인 통치 수단 몇 가지를 사실상 잃었다. 그 결과 부패, 밀수, 불법적인 국경 넘기가 횡행했다. 그러나 통치력을 되찾겠다는 의도로 강화되는 사회 통제는,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난을 심화하고, 한국 드라마를 즐기는 무고한 이들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가혹한 처벌을 내릴 위험을 안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의 예측대로,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라 한국 드라마·영화 시청·보관에 대한 처벌이 ‘5년 이상, 1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으로 대폭 강화되어 시행되고 있다. 올해 김정은 위원장이 ‘비사회주의·반사회주의 현상’ 소탕전을 지시한 만큼 실제 집행은 더욱 혹독한데,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시청한 학생들이 적발되어 이를 수입하여 판매한 주민이 총살형에 처해졌으며, 구입한 학생은 무기징역, 함께 시청한 학생들은 노동교화형 5년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었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위기로부터 다시 반대로. 북한은 왜 경제개혁을 중단하는가」란 글에서, 이번 당대회 결정은 북한 당국이 김정은 시대 경제개혁을 중단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Из кризиса и обратно. Почему Северная Корея сворачивает экономические реформы”, Carnegie Moscow Center, 2021.1.14. 통일연구원의 《한반도 동향》 2021-1월호에 실린 요약 번역문을 참고했다.) 

그에 따르면 집권 초기 김정은 위원장은 농업 부문의 부분적 협동적 소유 및 가족 소유 허용, 공산품 이중가격제, 경제개발특구 지정 및 개인 사업 탄압 중단 등 1980년대 중국을 모방한 경제개혁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지만, 2016~2017년 채택된 UN 대북제재와 코로나19 확산으로 개혁을 제어할 능력을 상실했다. 당 역할 강화와 내각에 의한 경제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한 8차 당대회는 경제개혁 실험을 중단할 것임을 시사한다. 심지어 이미 20년 전에 사실상 민간에 넘어간 무역·서비스 분야에 대해서 국가의 지도 회복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 시기에도 성공하지 못한 경제 개입을 계획하고 있는 셈이다. 

란코프 교수는 이번 당대회에서 제시된 방안들이 시행된다면 북한 경제는 훨씬 더 심하게 후퇴할 것이며,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필연적으로 체제 안정성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동양경제일보》(도요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는, “향후 북한의 경제개혁이 중단 내지는 후퇴하고 그것이 장기화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예를 들어 2039년에 북한 체제가 붕괴한다고 하면 미래의 역사학자는 ‘북한 붕괴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사건은 2021년 제8차 당대회였다’고 기록할 것”이라는 평가까지 남겼다. (“北朝鮮「第8回黨大會」は歷史に殘らない大會”, 《東洋經濟日報》, 2021.01.22.)
 

‘남한 핵무장론’의 확산


문재인 정부의 남북미 대화 실패와 이를 틈 탄 북한의 핵무력 증강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는 불안감과 환멸이 확산하였다. 이는 남한 핵무장론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남한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가 길다. 그러나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옵션으로 논의되고 있고, 여론도 이를 뒷받침한다. 

아산정책연구원이 9월 13일 발표한 『한국인의 외교안보 인식: 2010~2020년 아산연례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남한의 독자 핵무기 개발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020년 무려 69.3%까지 늘어났다. 2010년(55.6%) 이래 핵 개발 지지 응답은 계속 50%를 넘겨 왔으나, 2018년에는 전 해보다 10% 감소한 54.8%가 되었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2019~2020년에는 각각 67.1%와 역대 최고치인 69.3%가 되었다. 전술핵무기 재배치도 찬성 응답이 지속해서 60%를 넘겨왔으나, 2017년과 비교하면 ‘재배치 반대’ 응답이 13.2%나 감소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그 대응으로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보고서는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에 북한이나 통일 관련 이슈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확연히 늘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한 응답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 2017년 70.8%, 2018년 66.2%, 2019년 64.7%, 2020년 64.4%로 연이어 하락했다. 남북관계 인식도 2018년을 전후로 변화가 뚜렷했다. 2019년 북미회담이 결렬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기대감은 실망감이 되어, 2018년에는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이 63.4%(부정: 36.6%)였으나 2019년, 2020년에는 부정 평가가 각각 73.9%, 84.1%로 치솟았다. 

내년 3월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남한 핵무장이 쟁점이 된 바 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홍준표, 유승민 후보는 미국, 일본과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나 전술핵무기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러한 옵션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독자 핵무장’ 카드를 협상에 활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여, 경선 토론에서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로부터 “홍 의원이 얘기하는 베네수엘라로 가는 직행열차는, 핵무장을 추진하는 순간 (국제 사회의 제제로 인해) 현실화된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홍준표 의원은 본경선에서 총 득표율 2위(41.50%)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에서는 48.21%를 득표하여 총 득표율 1위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총 득표율 47.85%, 여론조사 득표율 37.94%)을 제쳤다. 만약 ‘조국 사태’, ‘추-윤 사태’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윤 전 총장이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르지 않았다면, 홍 의원이 제1야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독자 핵무기 개발’은 한국이 가입한 NPT(핵무기비확산조약)에 위배되는 것으로, 국제 사회의 제재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 생산이 한미원자력협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의 첫 단계에서부터 미국과 마찰을 빚을 것이다. 2004년 8월, 한국원자력연구소가 1982년 진행한 소량의 플루토늄 실험이 15년 후인 1998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정기 사찰에서 (핵물질 사용을 명시하지 않은) ‘허위 신고’ 혐의에 몰려 해명과 사찰을 반복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일이 있다. 일명 ‘남핵(南核) 파동’이다. 2000년에 있었던 0.2g의 우라늄 저농축 실험도 뒤늦게 IAEA에 신고하여 IAEA의 사찰을 받았다. 이때 유럽 국가들이 한국을 UN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국 부시 행정부도 이러한 안을 검토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큰 파문이 일었다. 이러한 사례는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핵무기 개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핵무장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야기하고, 핵 공유나 전술핵 배치는 북한 비핵화 외교를 포기하고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이번 대선에서는 관련 쟁점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홍 의원과 같이 핵 공유와 전술핵 배치, 심지어는 ‘독자 핵무장’까지 거론하는 주장이 앞으로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단적으로, 10월 25일 《조선일보》는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미국 내 전문가인 다트머스대 국제학센터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 교수와의 인터뷰를 전면 기사로 실었다. (“NPT 어긴 北이 위협… 韓, 비상사태서 핵 보유 제재받을 이유 없다”, 《조선일보》, 2021.10.25.) 앞서 9일에 이들이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어야 할까?”를 소개하는 기사를 낸 뒤였다. 두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한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생각이 없고 미국은 고도화된 북핵의 위협을 감수하며 한국을 지켜주기 어려워 한미 동맹이 약화되고 있으니, 이를 방치하는 것보다 한국의 핵무장이 “최선의 방책”일 수 있으며 미국은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북한이 먼저 NPT를 탈퇴하여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므로, 한국은 NPT 10조의 ‘비상사태’ 규정을 활용하여 합법적으로 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미국 내에서도 극소수이며,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미 전문가 절대다수의 의견은 한국의 핵무장은 미국의 세계 핵확산 통제 기조에 위배되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미 국무부는 전술핵 배치나 핵 공유 방안에 대해서도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US Rules Out Redeploying Tactical Nukes to South Korea”, VOA, 2021.09.24.) 그러나 린드·프레스 교수와 같은 주장을 국내 주요 일간지가 적극적으로 소개한다는 사실과 그 파급력 자체가 중요하다. 또한 두 교수의 지적대로, 북핵 고도화와 중국의 군비증강이 계속되면 미국 내에서도 한미 핵공유나 한국 내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 등을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올해 실제로, 북핵에 대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자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한미 양국 싱크탱크의 공동 연구 결과로 제시되었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 랜드연구소가 4월 발간한 『북핵 위협,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보고서는 현재 추세에 따르면 2027년경 북한의 핵무기가 150개를 넘어갈 것이라는 예측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은 이에 대응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북한 정권을 궤멸시킬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하며, 모든 가능한 대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제(deterrence), 격멸(defeat), 방어(defend), 좌절(dissuade)의 네 가지 개념하에서 대응태세를 강화하고 능력을 증강할 것을 주문한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전쟁 시도를 억제하기 위해 ① 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핵무기와 전략무기 플랫폼을 지정하고, ② 한반도 혹은 인근 지역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며, ③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더하여 북한의 핵무기 보유 숫자가 80~100개를 넘어설 때,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해 지하 방호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B61-12형)와 핵 및 재래 이중용도 항공기 배치를 고려해야 한다고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위 제안 사항들을 검토하기 위해 NATO의 ‘핵기획그룹’과 같이, 핵전쟁 수행에 대한 자문, 교육, 훈련을 담당하는 ‘전략자문팀’을 한미 양국이 구성·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NATO 핵기획그룹(NPG)은 NATO 회원국 국방장관들이 참여하여 미국과의 핵무기 공유 협정을 관리하고 핵전략을 논의하는 기구다. ‘아시아판 핵기획그룹’ 창설은 홍준표 의원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으며,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 독일 등의 전직 외교안보 고위 관리들이 작성하여 올해 초 바이든 미 행정부에 보낸 『핵 확산 방지와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안전보장』 보고서에서도 제안하는 바다. 이 보고서는 한국, 일본, 호주를 미국의 핵 기획 과정에 포함하고 이들 동맹국에게 미국 핵전력에 관한 구체적 정책들을 논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참여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핵 보장은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고 말했다. (“아시아 핵기획그룹 창설하라... 美동맹국 前장관들, 바이든 정부에 건의”, 《조선일보》, 2021.02.11.)
 

원칙과 책임을 모르는 이에게 또다시 한반도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향한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의 핵무기와 공존할 수 있다는 기조로 움직였다. ‘반핵평화’ 원칙이 없는 한반도 정책이다. 북한 정권이 비핵화 대화에 임하는 대신 3대 세습 체제 유지를 위해 핵 고도화와 첨단무기체계 개발, 사회 통제 강화를 택하는 것에 사실상 침묵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원칙 없는 태도로 북한에 대한 협상력 또한 잃어버려, 2020년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남한 공무원 피살 사건과 같은 참사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또한, 중국의 패권적 행보와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의 돌입, 이를 구체화한 바이든 행정부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전선이라는 국제 정세를 엄밀히 인식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바라는 한반도 정책의 관철 그 자체만을 목표로 하며 ‘들어줄 가능성이 있으면 어디라도 간다’는 식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를 미국의 동맹국 중 약한 고리로 파악하고 견인하려는 중국으로부터만 호응을 얻었을 뿐, CVID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와는 유리되었다. 

이는 문 정부의 세계 정세관 자체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민족주의적 국제주의’(nationalist internationalism)의 확산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 구루’ 최장집 교수에게 대통령의 자격을 묻다”, 《월간중앙》, 2021.11.24.) 민족주의적 국제주의란 자기 민족과 국가의 이익만 중시하면서 그러한 기준으로 국제 정세를 판단하는 것으로, 이런 관점에서는 중국의 정치체제도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된다고 예시를 들었다. 이 추세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결합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는데, 같은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요소가 강하며 국가 중심의 민족주의적 이념을 현실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고 규정했으므로, 민족주의적 국제주의 비판은 결국 문재인 정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국제주의 개념은 이재명 후보의 대외정책 공약인 ‘국익중심 균형외교’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최 교수는 양극화의 심화, 포퓰리즘의 확대, 민족주의적 국제주의의 확산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이라며, 앞으로 이러한 경향을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정부는 국민 앞에 한반도 정책 실패를 책임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책임 회피를 위해 현실 직시 자체를 거부했다.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인식하지 않으며, 마치 이러한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남한 공무원 피살 사건과 같은 초유의 사태에서도 북한 당국에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를 어긴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의 ‘성과’로 꼽히는 남북군사합의가 무너졌다는 비판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법원이 피살 공무원 유족에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하자 항소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심장”이라고 부르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할 때마다 언급해왔던 영변 핵 시설이 올해 7월부터 재가동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 북한이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한 ‘성과’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북한이 전쟁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전략무기 SLBM을 시험발사할 때에도, “남북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다”, “도발은 아니다”라며 의미를 축소하기 바빴다. 종전선언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처럼 ‘반핵평화’ 원칙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도 저버린 행보를 보며, 한국 사회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것에 대한 환멸과 핵무장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었다.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한반도 운전자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보다 북한식 핵동결·핵감축 경로에 가까운 비핵화 해법 또한 현 정부와 동일하다. 따라서 문 정부 한반도 정책의 결함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용주의적 통일외교’, ‘국익중심 실용외교’를 내세우며 ‘이재명은 합니다’ 이미지를 덧붙이고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정책은 전혀 ‘실용주의’가 될 수 없다. (「남북관계를 실용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방향이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이재명 대통령이 위험한 이유』, 사회진보연대, 2021.) 이 후보가 최선의 해법으로 내놓는 ‘조건부 제재완화(스냅백)와 단계적 동시행동’도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궁극적 상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인식과 북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본질적 문제다. 스냅백 방식이란 원래 당연히 따르는 조건이므로 이재명 후보의 주장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최근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북한이 잘못하면 잘못한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인 비핵화와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한과 입장이 일치한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처럼, 문재인 정부와 다를 것이 없는 공약에 대해 결과가 다를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없다. 

이러한 이들에게 ‘한반도 운전대’를 계속 맡길 것인가? 북핵 고도화와 이에 대응하는 남핵, 그리고 만약 이것이 실현될 시 필연적으로 뒤따를 동아시아 ‘핵 도미노’의 전망이 가시화되는 속에서, 세계 평화세력이 염원해 온 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비핵지대는 점점 더 멀어지는 반면 핵전쟁이라는 ‘절멸’의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사회운동은 ‘반핵평화’의 원칙을 철저히 견지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
 
 
주제어
태그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이리가레 젠더 터프 래디컬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