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1 겨울.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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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 근무제 주장에 대한 비판적 검토

현장에 기반한 실질적 노동시간 단축방안을 모색해야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회 |
대선을 앞둔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의 고용·노동 관련 정책공약, 요구안 중 주 4일제가 특히 부각되고 있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삶의 질 향상을 주된 필요성으로 제시하며 주 4일제를 대표적인 노동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고, 진보당 김재연 후보도 주 4일제 공약을 포함했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의 이백윤 예비 후보는 더 나아가 주 30시간제 도입을 주장한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주 4일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거나,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민주노총의 대선 요구에도 ‘주 4일제 및 적정 노동시간 보장’이 포함되어 있고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서비스연맹 등 주요 산별의 대선요구안에도 포함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노동의 위기’인 현재 정세에서, 특히 ‘주 4일제’가 진보정당과 노조가 제시하는 정책공약, 요구안으로 부각되는 것 자체부터 평가가 필요한 쟁점일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우선 ‘주 4일제’ 정책이 적절한 주장일지부터 검토해보자.

각 정당이나 노조는 아직 대부분 주 4일제 추진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 수단과 추진 일정을 제시하지는 않은 상태다. 다만 심상정 후보는 주 4일제 추진로드맵(2021.11.12.)을 발표하여, 1단계(2022) 사회적 공론화, 2단계(2023) 시범운영, 3단계(2025~2027) 국회 입법 추진으로 이어지는 추진 일정까지 제시했다. 구체적인 추진방안에 대해서는 각 정당, 노조의 정책이 아직 모호하지만, 최근 보건의료노조의 “새로운 미래, 시대전환의 키워드 이제는 주 4일제 시대!”(2021.11.24.) 국회토론회 발제와 토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의 「주 4일제와 다양한 노동시간 단축 모델 – 시간의 정치를 향한 실험들」(2021.12.06) 보고서 등과 대체로 유사한 입장일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은 임금인상이나 고용안정처럼 노동조합운동의 일반적인 요구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은 당시 정세에 따라 적합한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노동시간 관련 요구 중 하필 ‘주 4일제’라는 방식이 제시되는 것이 적절할지는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정치권과 노동조합의 급격하고 일률적인 노동시간 단축 프로그램으로서 ‘주 4일제’ 요구는 정세적으로 적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실노동시간 단축이 시급한 부문의 제도개선 과제를 흐릴 우려가 크다고 진단한다. 더구나 노동시간 단축의 대안은 ‘주 4일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경제 영향: 총 노동투입 감소


노동시간은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주는 변수다. 한 국민경제가 생산한 부가가치의 합을 국내총생산(GDP)라 할 때, 결국 그 부가가치는 모두 노동자의 노동으로 생산된 것이다(마르크스주의의 접근). 즉 다른 요인들과 함께 노동의 투입량은 GDP, 따라서 경제성장률에 직접 영향을 준다. 노동투입이 줄어들면 성장률도 낮아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노동투입을 늘릴 수는 없으므로,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국민경제의 생산성 향상과 함께 점차 노동시간을 개선해가야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만약 주 4일제를 노동주(32시간으로) 감축 방식으로 일률적으로 시행하면 어떻게 될까. 고용률이나 노동시간 규제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국민경제의 총노동 투입시간은 20% 감축될 것이다(물론 고용률·생산성 등이 함께 변동될 여지가 있으나, 노동투입 변동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간접적이다. 또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간 규제를 비롯한 다른 고용·노동 제도가 변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경제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 따라서 GDP 역시 노동시간에 비례하여 감축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잠재성장률에 큰 마이너스 요인이 발생하면 심각한 실질성장률 하락과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경제위기로 인해 한국경제는 2020년에 –0.9%로 역성장했다. 그 이전에는 제2차 석유파동이 터진 1980년 –1.6%, IMF 외환위기 당시 1998년 –5.1%로 역성장한 바 있다. 이때마다 심각한 경제적 고통과 함께 정치적 위기가 발생한 경험이 있다.

물론 일부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생산성이 향상할 수 있어 충격을 만회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주 4일제 도입이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도 경제에 주는 충격은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산성 향상은 (추가적인 고정자본 투입 없이) 노동시간 단축만으로 생산직에서 실현되기는 쉽지 않고, 연구개발·사무직 등 일부 직무에만 효과가 집중될 것이다. 주 4일제 논의가 애초 부각된 영역도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무이기도 했다. 이러한 직무는 대부분 정규직 일자리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주 4일제를 주장하면서 탄소배출 감축 효과를 들기도 한다. 주로 제조업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총생산 자체를 줄이자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제조업 설비가동률도 하락할 것이므로, 투자된 고정자본이 덜 활용되고, 고정자본의 운전 기간이 길어져 투자 회수 속도가 지연된다. 이렇게 되면 애초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하락에 더해 기업의 수익성 저하로 인한 추가적인 임금 하락 혹은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쉽게 이해하려면 특수고용 화물노동자와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화물노동자는 고정자본(트럭)을 노동자 본인이 소유하는 경우다. 이때 예를 들어 운임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운행시간(노동시간)을 20% 감축한다고 할 때, 먼저 ① 총수입이 같은 비율로 저하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에도 ② 여전히 고정자본비용(차량할부금)은 그대로 나가기 때문에, 이를 공제하고 화물노동자가 실제 얻는 수입은 노동시간이 줄어든 20%보다 훨씬 더 감소하게 된다. 일반 기업에서도 노동자는 ①의 영향을 직접 받은 후, 기업의 생산 비용 증가로 인한 ②의 영향을 이어서 받게 된다.

한국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이미 시작되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 이는 매년 경제성장에 부(負, 마이너스)의 요인이다. 따라서 이후 자본투입과 총요소생산성(기술, 노동생산성 등) 향상을 통해 경제성장 하락 속도를 늦추는 것이 관건인 상황이기도 하다. 노동시간의 일률적 단축은 노동투입을 감소시키고, 자본 수익성 하락도 가속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미 저성장에 돌입한 상황에서 경제성장률 하락이 가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과거 주 40시간제 도입 이후에도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는 반론이 있다. 노동생산성도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경제가 IMF 구제금융 위기를 벗어나고 세계시장에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며 성장이 회복되던 시기다. 당시에는 노동인구가 증가하고 자본투입과 생산성이 향상되던 성장기였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이 미치는 부(負, 마이너스)의 영향이 최소화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단계적인 법정 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 미비로 인해 주 68시간까지 시간 외 근무를 통한 노동투입도 계속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침체만이 아니라 이미 장기 저성장기에 들어선 시기의 노동시간 단축과는 조건의 차이가 있다. 한편, 주 40시간제는 도입 당시 7년에 걸친 단계적 도입의 결과 기업 규모별로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과 노동시간의 격차가 더 커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런 점은 이후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할 때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이다.

경제성장률의 하락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낭만적인 ‘탈성장론’의 희망과는 달리, 저임금 취약층 노동자에게 가장 먼저 타격을 준다. 경기침체, 성장률 하락 시에 기업은 비정규직을 가장 먼저 감축하며, 수익성이 낮은 중소·영세사업장이 먼저 폐업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일감도 줄어들어 소득에 즉각적인 영향을 준다. 새로운 고용 창출도 축소되어 최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다른 정책 수단(사회보장, 공공일자리 등)의 대폭 확충을 병행하면 된다고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정책들의 도입이 먼저 어느 정도라도 현실화될 때 노동시간의 급격한 단축을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노동자 개인에게 유리한가: 소득 문제


주 4일제의 필요성은 대부분,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이 시급하다는 식으로 제시된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여가가 늘어나면 후생이 증가한다는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적 분석은 ‘소득’을 고려할 때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학에서는 임금이 상승할 때 노동자의 노동공급 선택에서 대체효과와 소득효과가 발생한다고 본다. 전자는 임금 상승 시 여가보다는 더 많이 노동을 공급하게 되는 것(여가를 노동으로 대체, 저임금 상태 시)을 의미하고, 후자는 임금 상승 시 여가를 더 원하게 되는 것(소득이 늘어 여가를 늘림, 고임금이 되었을 시)을 의미한다. 즉 시간당 임금수준에 따라 노동자가 노동을 더 하고 싶어 하는지 여가를 더 갖고 싶어 하는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증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대체효과 구간(다음 쪽 그래프의 아래쪽, 우상향하는 구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스스로 노동을 더 길게 하고 싶어 한다. 이 구간에서는 노동자는 임금 감소를 의미하는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게 된다. 반면 일정한 임금 수준 이상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선호할 수 있고(그래프의 위쪽, 후방굴절 구간), 시간 외 근무로 소득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해도 굳이 노동시간을 연장하려 하지 않게 된다. 바로 공기업·대기업·정규직·고임금 노동자들에 해당한다. 금융노조가 주 4일제를 먼저 주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전체 노동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중소·영세·비정규직·특수고용 부문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오히려 어느 정도까지는 늘리는 것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총소득이 감소한 경우 더욱더 그렇다. 더구나 이들 부문에서 강제적인 노동시간 단축은 작동하기가 더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강제로 해당 직장의 노동시간을 규제한 결과, 소득이 함께 감소하여 투잡, 쓰리잡, n잡 알바를 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문에 시간당 임금을 높여, 노동시간 단축을 선호하는 고임금 구간으로 옮겨가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맞다. 그렇다면 급격하고 일률적인 주 4일제 추진 이전에 지금의 심각한 임금격차를 줄여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또 이들 중소·영세 사업장, 자영업 부문은 이미 한계사업장인 경우가 많아 노동시간 단축 시 임금 감소분을 사용자가 보전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즉,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는 정작 이것이 가장 필요할 수 있는 저임금 부문에서 실현이 쉽지 않다. 시급제, 일급제, 실적급제 등으로 임금을 받는 사업장이 많아, 임금 총액의 저하로 직접 이어지기 쉽다. (비정규직의 임금체계의 절반 정도가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 삭감으로 직결되는 시급제, 일급제, 실적급제 형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20년 12월에 발행한 「통계로 본 한국의 비정규노동자」를 참고했다.) 또한 임금삭감 없는 주 4일제가 실현된다고 해도 이는 큰 폭의 시급 인상 효과가 되는데, 그러면 한계사업장은 아예 폐업으로 내몰릴 수 있다. 이러면 오히려 전체 고용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호황기가 아닌 경제위기 상황에서 부정적 영향은 더 커진다. 인건비 부담이 다소 커지더라도 이를 감수하면서 사업을 지속하는 선택을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을 비교해보아도 시사점이 있다. 비정규직의 평균 노동시간은 정규직보다 짧다. 그런데 단시간 노동자 비중의 증가로 평균 노동시간은 오히려 더 빨리 단축되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표지라 할 수 있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탈법적인 52시간 근무 비중은 여전히 정규직 노동자보다 높고 절대적인 규모도 크다. (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21.8〕결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슈페이퍼》2021-18호, 2021.) 노동시간이 비정규직 안에서도 양극화되는 것이다. 단시간 비정규직의 경우 투잡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장기임시직과 특수고용, 파견노동자에게서 이런 현상은 더 뚜렷하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만으로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노동시장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보전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들은 임금 하락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있을 뿐 아니라, 사업장 특성상 집중근무제와 같은 방식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시간 단축분을 메울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일부 사업장과 직종에서만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노동시장 상황에서 주 4일제 도입을 강행한다면,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과 그 외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를 더욱 커지게 할 우려가 크다. 노동자 간 심각한 격차 축소·해소가 가장 중요한 고용·노동 정책의 과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뜬금없다고 할 수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 가속


한편, 신자유주의 이후 역사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정에서는 반드시 노동시간 유연화(신축화)가 병행되어왔다는 경험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3년 주 40시간제 입법 과정이나, 2018년 주 52시간 제한 시에도 공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연장되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자본 측은 노동시간 단축 이슈에 대해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시간 유연화를 위한 시도를 더욱더 강하게 추진하기 때문이다.

주 4일제의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시행 방법으로 집중근무제와 선택근무제, 2주 단위 근무시간 정산(7일/2주=3.5일) 등 다양하고 유연한 노동시간 설계방식이 예시된다. 그런데 이들 방안은 민주노총이 그간 반대해왔던 ‘유연근무제’의 다양한 유형과도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기존 노동시간 제도를 유연화하는 흐름이 가속될 수 있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 입법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해 노-자 혹은 여-야 간 제도를 ‘교환’하는 거래가 일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각 사업장에서도 현실적으로 주 4일 근무를 도입할 경우, 설비 가동률을 낮추기 어렵거나, 쉬는 날 없이 상시 근무가 필요한 사업장(공공부문, 상업, 서비스업종 등)에서는 근무형태를 크게 유연화하지 않으면 도입 자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 주 5일 근무 사업장에서도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개편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기존 노동시간 제도 전체가 유연화(신축화) 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우려가 크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노동시간 유연화(신축화) 과정이 노동자 개인의 시간 선택권 혹은 시간 주권이라고 해석하며, 오히려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시간 주권이란 노조를 통해 집단적으로 노동시간과 노동과정을 규율할 때 가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노동시간 형태로 파편화되면 사용자의 주도권이 관철될 수밖에 없다.
 

단시간 노동 확산과 연간 노동시간 감소


‘주 4일제’를 통한 급격한 노동시간 단축이 제기되는 것은 한국의 노동시간이 길다는 진단 때문이기도 하다. 2020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국제적으로도 긴 수준이다. 그러나 2016년 2,052시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0년 OECD 평균은 1,687시간, EU 27개국은 1,513시간으로 한국은 OECD 43개국 장시간 서열 4위로 진단되고 있는데, 2016년에는 2위였다가 개선된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간 단축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역시 중요하다. 알바와 같은 단시간 노동자가 늘어 노동시간이 단축되었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

최근 몇 년간의 연간 노동시간 단축에는 주 52시간제 도입, 노동시간 특례업종 축소, 공휴일 민간사업장 적용 등의 정책 효과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2010년대 이후 꾸준히 단시간 노동자가 늘어왔다는 점,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일제 고용은 줄어들고 단시간 고용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대기업에서조차 단시간 노동자 채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 「2021년도 고용형태공시 결과」, 2021.08.19.) 특히 이미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정부가 저소득층 생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일종의 복지정책으로 확대한 노인층 등의 공공일자리도 단시간인 경우가 많다.

한편, 단시간 노동자의 증가가 전체 노동시간 평균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와 연간 노동시간 비교 대상인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주 30시간 미만 단시간 노동자가 OECD 평균 15~17%, 독일 25%에 이르는 것을 보면 연간 노동시간 평균치만 봐서는 평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도 단시간 노동이 늘어나는 방식이라면 그러한 연간 노동시간 감소가 긍정적인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단시간 노동자의 경우에는, 안타깝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당면 과제가 아니다. 적정 노동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소득 확보를 위해서 오히려 중요하다. 이를 고려하여 심상정 후보는 15시간, 민주노총은 16시간 이상 노동시간 보장제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시장 상황에서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민간 사업자에게 단시간 아르바이트 일자리에서 15~16시간 이상 고용할 의무를 부여하는 규제를 새로 도입하려면 많은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용자에게 이를 강제할 방법을 마련하기도 마땅치 않다. 기껏해야 취약층 공공일자리만 15~16시간 이상으로 설계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주 4일제가 아니라면 노동시간 단축은 포기해야 하는가


물론 ‘주 4일제’ 방식이 아니라도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동시간의 지속적인 단축은 필요하다. 이는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되는 부문에서부터 노동시간 단축을 진행하고 그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미 도입된 주 52시간제를 제대로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더 현실적이고 더 공정하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부문은 장시간 노동과 노동안전(산재 위험)이 문제가 되는 영역이다. 위험한 업무, 교대제(야간노동 자체가 발암 요인)에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과 근로시간 특례업종 폐지 등을 우선순위로 들 수 있다. 보건의료, 운송업 등의 업종과 위험업무에서의 개선이 시급할 것이다. 교대제를 개편하면 일근제 사업장과 달리 일자리 증가 효과를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전태일3법’으로 제안되기도 했던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도 필요하다.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이 거의 규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사업장에 현재 적용되지 않고 있는 노동시간 관련 규제를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아직 적용되고 있지 않은 주 40시간제, 주 52시간 규제는 물론, 연차휴가 및 생리휴가, 공휴일 적용도 확대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저임금-장시간 노동 부문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 자신도 노동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가 소득 감소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촉진하여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연대임금 정책,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초)단시간 노동자나 저소득 가계의 생계지원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노동시간 단축 효과가 있는 여러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 민간사업장에도 적용되는 공휴일을 확대하고(참고로 지난 주 40시간제 도입 이후에도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휴일·휴가 확대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임신·출산에 따른 휴직·휴가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특수고용노동자 적용방안 마련), 교육훈련 휴가 확대 등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들을 병행할 수 있다. 다양한 노동시간 운영 개선 정책, 예를 들어 최근 공무원노조가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점심 휴무 보장 혹은 근무시간의 9시~17시로 개편, 11시간 연속휴식시간 보장, 포괄임금제도 개선 등도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자동화와 (탈탄소 등으로 인한) 산업구조 개편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이 발생하는 사업장에서는 고용에 대한 충격을 ‘주 4일제’ 도입으로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부문에서는 해당 사업장과 산업의 성격에 따라 해고·고용 축소보다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보장과 일자리 나누기를 노사 합의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해당 사업장과 산업의 실제 상황에 맞는 구체적 방법을, 노사 교섭(산업 수준의 경우 초기업 교섭)과 투쟁으로 마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모든 사업장과 산업·업종 노동자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주 4일제’를 노동법 개정으로 도입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훨씬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해당 산업·사업장에 적합한 방식으로 도입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 문제의 해결은 노동운동의 지속적인 과제다. 그런데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노동조합의 요구도, 다른 요구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제기해야 한다. 또 양극화, 이중노동시장 등으로 표현되는 노동자 간 격차와 같이 우선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를 염두에 둔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임금인상에서도 경기침체 상황에서 대기업에서 높은 인상률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보다는, 산별노조와 총연맹이 저임금 노동자의 처우개선과 격차 축소를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 것과 비슷하다. 현실의 조건을 무시하는 급진적 요구를 한다고 그것이 진보적인 정책으로서의 정치적 정당성을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노동시간, 근무형태 등에서) 가장 열악하거나 위험한 노동조건에 처한 영역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도 존재하는 만큼, 정부와 사용자의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해결해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한 준비과정 없이 대선을 맞아 정치적 구호로 제시되는 ‘주 4일제’는 상당히 위험하다. 당장 듣기 좋고 선명해 보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현 가능성도 없고, 만약 준비 없이 섣불리 강행한다면 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정책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러 경제 정책에서 그런 식의 접근을 보여주었고, 집권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이를 더 극단적으로 밀고 가고 있다. 더욱이 정의당 등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은 이재명식의 “화끈한” 포퓰리즘 공약 남발 방식으로 민주당과의 경쟁력, 차별성을 만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국가운영을 책임질 수 있는 세력으로 진지하게 인정받기도 힘들다.

민주노총이 주 4일제를 대선 요구안에 포함한 것은, 진보정당들도 이를 언급하는 상황에서 선명한 요구를 내세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아가려면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격차 축소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방안을 현장에 기반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체 노동자의 임금·노동조건과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쟁점인 만큼, 민주노총은 선명성을 앞세우기보다 전체 노동시장 상황과 노동자들의 조건의 차이를 고려하여 정책을 준비하고 책임감 있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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