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2 여름.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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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러시아, 1999년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2014년 크림합병까지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임필수 | 정책교육실장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두고 국제적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큰 틀에서 보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두고 제기된 토론의 반복이다. 즉 크림반도 합병 당시에도 대체로 지금과 유사한 분석과 입장이 제기되었다. 첫째, 러시아의 팽창주의적, 민족주의적 경향이 합병 사태를 낳았다는 입장. 둘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서 분리하려는 서방의 시도가 오히려 실책이라는 입장. (크림반도 합병 때도 지금처럼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가 미어샤이머가 자주 언급되었다.) 셋째, 우크라이나는 오렌지 혁명이라는 사례처럼 권위주의 질서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반해,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권위주의적 질서가 강화되면서 양국의 충돌이 빚어졌다는 입장. 넷째, 푸틴이 국내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대외정책을 활용했다, 즉 푸틴 정권이 경제적 성과에 기초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나타나면서 민족주의적 정서를 활용할 필요가 커졌다는 입장.

이러한 분석과 입장 중에서 일부 국내언론은 유독 두 번째, 즉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고, 나토 가입에 대해서도 완전히 문을 닫지 않아서 러시아의 강경한 대응을 유도하는 실책을 저질렀다는 입장에 주목하는 듯하다. 그런데 두 번째 입장이야말로, 사실은 러시아가 가장 바라는 입장일 것이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이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편리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러시아 때문이 아니라, 서방 때문에 합병이나 전쟁이 발생했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러시아가 나쁘다고 하더라도 서방도 나쁘다는 도피처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합병과 전쟁을 개시한 러시아라는 일차적 행위자의 내적인 요인은 무시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질문할 필요가 있다. 푸틴 정권이 아니었어도 크림반도 합병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을까. 합병이나 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나. 러시아 옐친 정부 때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 즉 크림반도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양국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양국 의회에서 비준도 했는데, 왜 푸틴 정부는 전쟁을 선택했는가.

필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크림반도 합병이 벌어질 당시의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푸틴 정권의 성격이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그 정권이 구축되어온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 글은 푸틴의 대통령 집권 이전까지의 간략한 전사를 포함해서, 푸틴의 대통령 권한대행(1999년) 취임부터 크림반도 합병(2014년)까지 푸틴의 행보와 러시아의 변화를 다루게 되었다.

이 글의 결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러시아의 내적인 측면에서 찾는다. 푸틴 집권 초기는 경제개혁과 경제성장, 정치안정, 개방적 외교정책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기대와 어긋나게 푸틴 정권은 점차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른바 ‘실로비키’(군대, 비밀경찰 출신 인사)라는 푸틴의 측근 그룹이 수직적,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을 구축하고, 거대 국유기업을 사적 소유물로 전락시켰다. 또한, 푸틴과 연고를 지닌 ‘친구’들이 거대 국유기업과의 수상한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푸틴과 ‘경제공동체’를 구성하였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성장 잠재력을 갉아 먹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 경제는 장기저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두 번의 대통령, 한 번의 총리를 한 후, 2012년 푸틴이 다시 대통령에 나서는 일은 국내에서 상당한 저항에 직면했고, 2011~2012년에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푸틴 집권 후 초유의 대규모 시위 사태가 벌어졌다. 푸틴은 한편으로는 저항세력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면서도,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호소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자 했다. 이미 푸틴의 정치 담론을 지배하고 있던 ‘대러시아 애국주의’가 한층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본인 덕분에 러시아가 소련의 해체 후 극심한 혼란을 이겨내고, 서방과 맞설 수 있는 강대국으로 부활했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 역사의 가용한 자원을 모두 동원했는데, 차르 시대 제국의 거대한 팽창뿐만 아니라 스탈린의 대조국전쟁 승리를 위대한 업적으로 내세우며 민족적 추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푸틴 본인이 무명의 총리에서 대통령이 되는 길을 열었던 2차 체첸전쟁과 같은 길을 찾기 시작했다. 즉 대러시아 애국주의를 폭발시킬 현실의 이벤트가 필요했다. 즉 위험과 비용이 아주 크지 않은 ‘소규모의 승리하는 전쟁’이 필요했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 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과 같은 러시아 이웃국가에서 벌어진 민주화 ‘색깔혁명’은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국내 저항을 촉발시킬 수 있는 현실적 위협이기도 했다. 크림 합병은 푸틴이 추구하는 바에서 볼 때, 모든 측면에서 최적의 케이스였다. 러시아는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군비증강과 현대화를 추구했는데, 러시아의 군사력은 우크라이나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러시아는 서방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했는데, 즉 서방은 개전 초기, 크림에 러시아군이 직접 투입되었는지 여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2014년 크림 합병은 러시아 내에서 ‘크림 컨센서스’를 창출해, 푸틴과 여당 통합러시아당은 그 후 두마 선거나 대통령선거, 개헌투표에서 승승장구했다. 개헌에 따라 푸틴의 초장기 집권의 길이 열렸고, 푸틴은 2024년에 다섯 번째 임기에 도전하게 된다. 그렇지만 크림 합병과 동시에 단행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작전은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에서 장기화되었고, 그에 따라 전쟁의 경제적 부담도 가중되었다. 푸틴의 인기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던 ‘크림 컨센서스’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희미해졌다. 그렇다면 푸틴은 결단해야 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개입을 중단할 것인가, 아니면 확대할 것인가. 푸틴은 크림 합병 당시 서방의 무력한 대응을 분명히 확인했다. 푸틴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선택했다. 

요약하면, 이 글은 크림 합병,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으로 러시아의 국내적 원인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즉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크림 합병이 발생한 원인으로 ① 러시아의 팽창주의적, 민족주의적 경향, ②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러시아 이웃 국가에서 나타나는 탈권위주의적 흐름과의 충돌, ③ 공격적 대외정책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성을 꼽은 입장을 종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푸틴 정권의 성격과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푸틴 권력의 구축과정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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