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2 여름.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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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운동의 쇄신으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자

문설희 | 사무국장, 페미니즘팀

들어가며

 
 
지난 3월 8일 청와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늘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가부의 연혁과 성과를 되돌아보는 것은 꼭 필요하다”라며 “분명한 것은 여가부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든 여가부가 관장하는 업무 하나하나는 매우 중요하고 더욱 발전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국무회의 중 대통령 발언을 상세히 보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여성의 날 이슈를 코로나19 시기 드러난 ‘돌봄공백’도 아니고 경제위기 심화에 따른 ‘여성고용’도 아닌 ‘여성가족부 발전’으로 꼽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국민의힘 ‘여성가족부 폐지’ 대선공약에 대한 입장표명으로, 하루 앞으로 다가온 선거를 염두에 둔 까닭이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띄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는 대선을 뜨겁게 달구었다. 선거 시기에 차기 정부의 여성정책 및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의 역할이 어떠해야 할지를 둘러싼 사회적 공론화는 물론 필요하다. 여성가족부가 여성단체 활동 경력을 발판삼아 정부 고위관료나 정치인으로 입문하는 통로가 되었고, 페모크라트(femocrats, 국가관료조직 내 여성) 집단이 민주당의 성비위 문제를 감싸고돌 정도로 타락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가부 폐지 공약은 여성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론 제안이 아니라 페미니즘에 반감을 품은 이들을 부추겨 지지율을 높이고자 하는 것에 불과했다. 국민의힘이 논쟁을 제기한 방식은 합리적이고 대안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성별·세대별 편 가르기를 심화시킬 뿐이었다. 민주당의 대응도 여성가족부의 대중적 위상이 심각하게 추락한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회피한 채,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방패 뒤에서 득표를 위한 동원에 몰두했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가부 폐지 대 강화’를 둘러싼 문제는 대통령 당선 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되고 인수위 국정과제에서도 해당 공약이 포함되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으나,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발의로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개정안에 대해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가부의 기능을 다른 부처에 모두 이관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통합 및 일원화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해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상당한 질타를 받았다. 여가부를 폐지한다면서 실제적인 역할과 기능을 보완·강화하겠다는 것은 모순적 입장이며 기회주의적 태도라는 지적이었다.

여성가족부는 대선공약대로 폐지되는가? 혹은 컨트롤타워로 거듭나는 개편인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개편인가? 여러 의문과 혼란이 존재한다. 새 정부의 국정 방향 및 정책과 사업을 예의주시하는 것이 필요할 텐데, 이를 위해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은 여가부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든 여성운동의 향방을 그것과 일치시킬 필요는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20년간 여성들이 만들어 온 우리 사회의 진전은 여성부라는 정부 부처의 출범과 여성가족부로의 확대에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여성부가 출범한 역사적 해로 꼽히는 2001년에 김대중 정부는 모성보호를 앞세워 근로기준법을 개악했다. 또한, 당시 산전후휴가 기간 90일로의 확대(늘어난 30일에 대한 임금은 무급화)라는 직접적인 모성보호 강화의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야간·휴일근로 금지규정을 폐지하고 시간외근로 제한 규정 역시 완화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되어 부처 권한이 강화된 2005년에 노무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시대 신 성장 동력 산업으로 사회서비스에 주목하며 질 낮은 여성 일자리를 양산했다. 이는 가족 내 여성의 돌봄 부담을 일부 완화하는 동시에 시간제·비정규직 여성 일자리 양산, 노동시장 내 성별분업 강화, 여성 내부 격차 확대라는 문제를 초래했다. 

자본의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은 대다수 평범한 여성들에게 이중, 삼중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었고, 신자유주의 통치성 확보를 위해 제한된 기회를 제공할 뿐이었다. 여성운동의 발전은 바로 이러한 기만을 폭로하고 여성의 권리를 새로 쓰기 위한 실천에서 비롯되었다.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뭉쳐 비정규직철폐를 외쳤고, 대학청소노동자들은 세계 여성의날 공동파업으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외쳤다. 임신여성에게 유해한 환경에서 교대제 근무로 과로에 시달리다 집단으로 유산하거나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들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끈질기게 투쟁한 끝에 여성의 노동권과 건강권, 나아가 재생산 권리에 대해 사회적 경종을 울렸다. 한편 여성의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동시에 요구하며 거리에서, 일터에서, 사회 곳곳에서 싸운 여성들은 끝내 ‘낙태죄’ 폐지와 임신중지 비범죄화라는 변화를 만들었다. 여성의 힘은 바로 여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여성운동의 발전은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모아내고 연대와 단결을 강화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20년간 분명히 밝혀왔다.

그런데 최근 여가부 존폐 논란 과정에서, 대다수 여성단체와 일부 사회운동 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가 곧 여성의 권리 후퇴와 직결되는 양 주장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지난 3월 25일 전국 643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여성가족부 폐지 안 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성평등 정책 전담 독립부처를 중심으로 총괄·조정 기능 강화한 성평등 추진체계 구축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후 〈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이 출범하여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되던 5월 10일 국회 앞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윤석열 정부에게 경고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철회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담당하던 사업을 타 부처로 이관하는 것이 곧 여성 권익증진과 관련한 정부조직의 기능 축소·상실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새 정부가 여성의 권익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어떠한 방향의 정책을 펼쳐나갈 것인가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냐 존치·강화냐라는 찬반구도에 갇혀서는 새 정부 출범 시기 여성운동이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문제를 보지 못한다. 새 정부의 여성정책 전반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너른 시야 확보가 필요하다.

토론의 공간을 연다는 차원에서, 본 글에서는 여가부 존폐 논란의 배경과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여성부를 포함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변화 과정을 개괄하고, 여성부의 기능과 역할 및 여성운동의 전략을 확인한다.
 
 

‘성 주류화’ 전략과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의 변화과정

 
 
남한 최초의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는 1983년 12월에 설치된 〈여성정책심의위원회〉이다. 국무총리 소속 정책자문기관으로써 각 부처 간의 정책 조정을 통해 여성정책의 집행력을 제고하기 위해 설치된 심의·의결기구였다. 이는 전쟁미망인과 빈곤 여성 등 ‘요보호 부녀’ 대상 여성정책이나 경제발전 및 지역개발을 위해 여성노동력 관리에 중점을 두던 이전의 정책과 차별화된 양상이었다. 변화의 배경에는 UN여성차별철폐협약 비준 및 국제 여성정책 패러다임의 수용이 있었다.  한국은 1983년 5월 UN여성차별철폐협약에 90번째로 서명한 국가로 1984년 8월 여성정책심의위원회에서 협약의 비준을 심의·의결하는 과정을 거쳐 세계 61번째 협약 당사국이 된 바 있다. 협약은 1985년 1월 26일부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한편 1998년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신설된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는 여성정책이 국가정책의 핵심 분야로 다루어지도록 주류화하겠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성정책의 주류화와 집행체계를 갖추기 위해 행정자치부, 교육부, 농림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6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설치·운영되고 기타 각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에 여성정책 협조부서가 지정되어 특위 업무를 지원하는 정책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이처럼 성평등 정책의 추진체계가 확립되어 성주류화 전략 달성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국무회의 의결권과 입법제안권이 없는 등 한계가 제기되는 가운데 2001년 법률의 발의권과 준사법권을 갖춘 〈여성부〉가 출범한다. 독립된 부처로서 완결된 구조를 지니게 된 여성부는 기존의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의 조정기능에 더해 정책의 집행기능을 보완하게 된다. 

시기별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전담기구 변화과정을 조정기능과 집행기능으로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표1]과 같다. (*표가 포함된 원문은 첨부한 파일을 참고하세요.)

2001년 신설된 〈여성부〉는 2004년 영유아보육업무가 추가된 후, 2005년 가족 정책 기능까지 이관 받아 〈여성가족부〉로 개편된다. 2008년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지원 사무로 기능이 조정되며 〈여성부〉로 개편되었다가, 2010년 청소년·가족 업무를 다시 이관 받아 〈여성가족부〉로 개편된다. 2005년과 2010년 정부조직법 개정 사유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가족해체 및 다문화 가족 등 현안 사항에 적극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시기별 개편에 따른 업무 및 소관법률, 규모와 예산 등의 증감은 [표2]와 같다.

[표1]과 [표2]를 통해 확인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부가 확대·개편되는 과정에서 성평등 정책의 조정·기획 기능이 오히려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2003년 국무총리 소속의 〈여성정책조정회의〉를 신설하고 45개 중앙행정기관에 〈여성정책책임관〉을 지정하여 각 부처 정책 및 사업의 조정 권한을 부여했으나 형식적 제도운영의 한계를 보였고, 해당 기구들이 2015년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에 따라 〈양성평등위원회〉와 〈양성평등정책책임관〉으로 개편된 후 기대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정책통합과 조정 등의 안건을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가 적극적으로 생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또한 2005년 개편 당시 여성부에서 관장하던 남녀차별금지 관련 업무가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되었는데, 남녀차별이 많은 차별들 중의 하나라는 인식을 수반하게 되어 여성정책의 핵심을 놓치게 되었다는 지적 등이 따른다.

여성부 출범이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강화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결과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떠한 이유에서 이러한 문제가 초래되었을까? 관련하여 ‘성 주류화’에 대한 개념적 합의 부재, 상당히 짧은 기간 동안 여성정책 패러다임이 응축적으로 수용되어 빠른 속도로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가 설치되는 과정에서 정책의 국민수용성을 높이지 못한 한계, 성주류화 전략의 방법론적 요소가 단편적으로 소개되면서 여성이 권력 집단에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으로 왜곡된 여성정책 등에 대한 평가가 있다.

그렇다면 성평등 정책 조정기능이 여성부가족부와 함께 강화되는 것이 대안인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됨에 따라 2016년 여성정책 추진체계 발전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하고 양성평등위원회와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모두 강조한다. 성평등 정책 조정기능과 집행기능의 동시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2021년 여성가족부 출범 20년을 맞아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여성가족부를 확대하는 방안으로 입장이 선회한다. “성평등정책 조정 기구가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로 설치될 경우 여성가족부와 자문기구 간 위상과 역할을 둘러싼 갈등이 예상되고, 대통령의 성평등에 대한 정치적 의지 여부에 따라 자문기구의 역할이 가변적일 수 있”기 때문에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집행과 조정기능을 통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무총리 소속의 양성평등위원회를 여성가족부 산하에 두는 법 개정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성평등위원회 설치’가 흐지부지 무산된 것과 지난 5년간 여성가족부의 행보가 매우 실망스러웠던 점을 설명하기에는 궁색한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성평등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익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임기 동안 성평등 정책 조정 기구의 역할은 어째서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성가족부 강화를 강조하는 정책적 필요는 무엇이었나? 이처럼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발전을 두고 여성단체 내부에서도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여성가족부의 위상은 계속하여 침식된다. 
 
 

재생산 위기관리 기구로 기능한 여성부와 길 잃은 여성운동

 
 
사실 여성가족부의 역할 및 위상에 대한 질문은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기능 통합 문제를 초과한다.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국가의 통치성 강화에 다름없었다는 사실, 즉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 87년 이후 여성운동이 국가를 압박함으로써 여성정책을 제도화하고 여성을 주류화하고자 한 전략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지점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남한 사회 여성단체들에게 ‘민주화 운동에 복무하는 사회변혁적 여성운동’이라는 지향은 즉시 모호한 것이 되었다. 직선제 개헌 이후 진보적 여성운동의 과제는 기층여성들의 요구와는 분리된 법제화와 정치세력화가 된다. 하지만 호주제 폐지, 성매매 방지법 제정, 성별영향평가 확대·성인지 예산 제도 도입·성별분리통계 마련 등 성주류화 전략의 기반 마련, 비례대표 여성 50% 할당제 시행과 이에 따른 여성 국회의원 수 증가 등과 같은 가시적인 변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한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의 문제를 은폐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면화되는 것과 동시에 성주류화 전략이 추진되면서 여성의 인권과 지위가 향상되었다는 관념이 확고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 비정규직 여성일자리 확대를 통한 노동시장 전반의 유연화와 출산 및 보육 지원 정책을 통한 사회적 재생산 위기관리라는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를 과연 여성운동의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 국가의 통치성 강화 및 재생산 위기관리 기능을 다름 아닌 ‘여성부’가 애초부터 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관련하여 경제위기 속에서 형성된 국가페미니즘 재고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대다수 여성의 노동력이 주변화되고 여성 내의 차이와 분화가 심화되었지만, 동맹관계를 형성한 김대중 정부와 여성운동이 이를 공공정책이나 공공부문 노동시장 정책으로 접근하며 한계를 노정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여성정책의 방향을 가족 의제로 전환하는 것 역시 여성운동과 함께 기획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성운동이 국가와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이 요구된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 국가와 거버넌스 형성을 목표로 하였던 성주류화 전략의 한계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로 이어지지 못한다.

2006년 여성가족부가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통합하여 여성청소년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정부조직 개정안을 추진하자, 여성운동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례로 2016년 11월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전화연합은 〈여성정책기구로서의 정체성 찾기 토론회: 여성+가족+청소년 통합, 무엇이 문제인가?〉를 개최하고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개편되면서 전체 예산은 크게 증가하였으나 대부분이 보육과 가족업무에 집중되어 여성정책·인권사업은 우선순위에 밀려나고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여성정책을 수행할 기반이 약화되었다”고 비판하며 몸집불리기용 통합이 여성정책의 보수화를 가속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여성가족부 정체성 찾기’가 아니라, 바로 ‘여성운동 정체성 찾기’가 아니었을까? 성주류화 전략을 앞세운 여성운동의 진보성은 신자유주의가 추구한 개혁에 불과했다. 사회변혁에 대한 지향을 상실한 여성운동은 여성 내부 분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실을 직면하지 않고, 일부 여성에 대한 포섭의 기획을 운동의 진전으로 여기게 된다.

경제위기와 인구감소라는 정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법과 ‘성주류화 전략’을 추진한 여성운동의 실천이라는 교집합에 여성부가 존재했다. 재생산 위기관리 기구로 기능한 여성부를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이 적극적인 여성노동력 활용 및 저출산 대책을 통한 자본주의 위기 지연 전략에 일조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쇄신의 기회를 놓친 여성운동

 
 
한국여성운동이 직면한 문제는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통합성 제고에 대한 것도 아니고, 여성부 정체성 강화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1980년대 이래 확산되어 온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견고해지고 있는 여성들 간의 계급적 차이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는 비판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여성운동 진영은 운동의 입지가 좁아진 까닭을 보수 정부인 이명박 정부 집권 탓으로 돌리며 쇄신의 기회를 상실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기에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정부 부처들의 통폐합을 추진하였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구현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국가청소년위원회를 통합하여 보건복지여성부로 확대 개편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된다. 그러나 여성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국회 심의를 거쳐 보육·가족 업무만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되고 여성부는 존치된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시기 성평등 정책은 얼마나 후퇴했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명박 정부 역시 이전 정부의 ‘여성인력 활용’과 ‘일·가정 양립 지원’이라는 정책의 큰 틀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는 여성의제, 여성정책이 신자유주의 정책과 전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심화되는 빈곤과 가족 해체, 재생산의 위기를 관리하는 주요한 도구로서 성평등 정책이 활용된 것이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성정책이나 그 효과들이 아니라 바로 여성정책을 둘러싼 역관계로, ‘협치’(governance)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면서 여성정책을 추진했던 여성단체들과 여성(가족)부, 그리고 여성 국회의원의 삼각 협력체계가 와해되었을 뿐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및 일·가정 양립’을 명분으로 비정규직의 유연한 일자리를 확대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가정 내 의무를 전제한 가족 정책을 강화했다. 여성부로 개편 이후 2008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 이 제정되고 여성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다시일하기센터’의 시범 운영이 시행된다. 2010년에는 다시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되면서 청소년 및 다문화가족을 포함한 가족기능이 이관된다. 이 시기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사업기관을 지정하고 ‘감시증’을 교부하는 주무부처였는데, 청소년의 심야시간대 인터넷 게임을 금지했던 ‘셧다운제’ 실시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이 여성의 권리를 오히려 후퇴시킨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를 비단 보수 정권의 집권으로 인한 여성부 권한과 기능 축소 때문으로 여기는 것이 적절한가?

정권 교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앞선 노무현 정부 시기를 살펴보면, 여성운동이 직면했던 문제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경제위기·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이 본격화된다.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에 이어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고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족한다. 여성부 역시 2004년 보육업무 이관에 이어 2005년 “가정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한다는 사유로 가족 정책까지 담당하면서 여성가족부로 확대된다. 일례로 2007년부터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아이돌보미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중·고령여성을 대상으로 한 시간제·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산될 뿐만 아니라 돌봄서비스 수요충족이라는 명목 하에 여성 내부 분할과 격차를 야기하는 사업을 여성가족부가 책임지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여성의 노동권과 여성권을 분리하고 의무로서의 모성을 더욱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방향은 여성가족부가 여성부로 축소·개편되었을지언정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변함없이 지속된다.

여성운동은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 심화, 가족 내 여성의 이중부담 증가를 야기한 원인을 성찰하고 대안적 운동으로 거듭나야 했다. 여성의 공적 영역에서의 지위 향상 및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고용형태, 임금 수준, 가족 내 역할 등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규범과 불평등 구조와 더불어 가족 내 위계적 성별분업을 동시에 변형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나 한국의 여성정책은 노동시장의 개혁은 제쳐두고 ‘건강 가족’과 출산 장려 그리고 보육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은 여전히도 참고할만하다. 하지만 이 시기 주류적 여성운동 진영은 여성부 강화를 요구하며 거버넌스 회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의 원인을 보수적인 정부 성격에 두고 쇄신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문재인 정부와 ‘젠더 갈등’, ‘여성 혐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성평등 강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앞서 짚었듯이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공약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의 비전과 경로가 분명치 않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투 운동 확산으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교육부·법무부·국방부·문체부·복지부·고용부·대검찰청·경찰청 8개 기관에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신설하기도 하였으나, 부처별 정책 능력 편차가 크고 성희롱 성폭력 사건 처리업무에 치중되었다는 등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대신 문재인 정부가 성과로 내세운 것은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계획’ 조기목표 달성이다. 20대 대선 전후로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의사결정 직위에 해당하는 중앙부처 본부·지자체 과장급, 공공기관 임원의 여성 비율이 20%를 넘는 등 여성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공무원의 고위·관리직 여성 임용 확대와 공공기관의 임원·관리자 임명 및 국립대학의 여성 교원 비율 향상, 정부위원회의 위촉직 여성 참여율 강화 등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부문의 성과를 민간부문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으며,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공공부문의 고위직 여성 비율 확대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더욱 곤궁해진 여성의 현실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수 여성의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고위직 여성 할당은 오히려 특수한 집단에 대한 혜택으로만 여겨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둘러싸고 터져나온 공정성 논란과 유사한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다.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하는 구조에 대한 대책이 아닌 공공기관별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 성과 달성에 집착하는 동안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갈등이 극심해진 것처럼, 정부가 “여성의 대표성이 개선되고 있다”라고 선전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소위 ‘젠더 갈등’은 날로 첨예해졌다.

‘젠더 갈등’ 분석을 위해 경제위기와 가족의 위기 문제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자. 남한 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에는 아동 양육은 물론 부모 부양 등 사회적으로 부재한 복지의 기능을 전적으로 도맡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근검절약을 통해 노동력 재생산비용을 최소화했던 가족, 특히 어머니의 역할이 있었다. 대다수 남성 노동자 임금은 핵가족모델의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운 저임금 수준이었으므로, 어머니의 비공식 부문 노동과 생계 전선에 뛰어든 딸들의 노동이 있어야만 가족은 유지될 수 있었다. 

1987년 3저 호황은 경제위기와 가족의 위기를 잠시 지연시켰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본격화되고 위기는 심화된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모성보호관련 법 개정 후 배포자료를 통해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가계보조자’에서 ‘가계동반자’로 변화하고 있다며 21세기 여성고용환경의 변화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이 동반한 여성의 불안정노동과 재생산노동 이중부담이라는 고된 현실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가족 내 여성의 위치는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는 자애로운 어머니였지만, 실제적 차원에서는 가계의 생존 책임을 짊어진 여성노동자였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해법이 위기 해결이 아닌 위기 심화로 귀결되면서,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여성의 유연하고 탄력적인 노동이 한계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청년고용의 위기는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든 실제적 차원에서든 여성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하기 곤란하게 하는 객관적 조건이 되고 있다. 한편 남성들의 경우 연애와 결혼 과정에서 전통적 성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현실에 기인하는 박탈감과 좌절을 체감한다. 이처럼 ‘젠더 갈등’이라고 일컬어지는 문제의 배경에는 저성장 시대에 그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하고 표류 중인 청년세대의 고통이 있다.

이러한 재생산의 위기, 즉 ‘남성생계부양 가족모델’이라는 이상의 실현이 가능하지 않은 가족 구성·유지의 위기, 서로 다른 성 간의 관계 맺음의 위기가 필연적으로 성간 적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사회를 책임지는 정치세력이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떠한 개선방안을 제시하는가, 사회의 변혁을 추구하는 운동세력이 위기를 넘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이념과 방향을 어떻게 제시하는지가 관건이 된다.

재생산의 위기에 직면한 청년세대가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다른 성별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퇴행적 증상을 보이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선 여성에게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부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 했다. 그런데 여성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성평등을 실현한다는 문제설정과 정부 정책의 효과로 여성 대표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선전은 여성의 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성이 공적인 영역에서 상당한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에 여성들의 성취는 개인적 능력 여하에 달렸다고 보는 입장은 “페미니즘이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입장과 공명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구조에 대한 분석이 부재한 한 채 성평등을 ‘기회의 평등’으로 여기는 한, 여성에 대한 적극적인 기회 보장은 일종의 혜택으로 여겨져 불공정한 처사가 된다. 이처럼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20대 남성의 좌절이 여성에 대한 분노와 적대로 이어지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 시기 오히려 심화되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여성폭력방지 정책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추진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2021년 11월 발표한 관련 향후 과제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젠더폭력방지기본법’으로 법명 변경하여 사각지대 없는 대응체계 구축”이다. 법의 명칭과 용어를 변경하는 것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감소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2019년 12월 시행), 성폭력방지법(2021년 7월 시행), 스토킹처벌법(2021년 4월 제정),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등 성폭력 근절을 목표로 최근 시행된 일련의 법·정책이 어떠한 문제의식에 기초해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성폭력을 남성의 폭력성에서 기인한다고 전제하고 엄중한 법적 처벌로 행동을 예방·교정하려는 전략은 피해자로서의 여성과 가해자로서의 남성이라는 구도를 변화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남성도 피해자’라는 거울상을 초래한다. 이는 성폭력 감축과 동시에 서로 다른 성별 간의 새로운 관계맺음을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오히려 곤란하게 할 뿐이다.

한편 여성의 성·재생산 권리를 억압해 온 ‘낙태죄’ 폐지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는 비겁한 태도를 보였다. 조국 민정수석을 앞세워 낙태죄 폐지라는 역사적 변화에 일조할 것처럼 이미지 관리에 치중하더니, 정작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대안 입법 마련을 위한 공론화가 필요했던 시기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임신중지 허용 요건을 신설하며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는 입법예고안을 발표한다. 처벌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청와대를 향해 규탄의 목소리를 높인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탄압으로 응수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주최로 2020년 9월과 10월 각각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개최된 기자회견에 대해 경찰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을 위반했다며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였다. 필자를 포함한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 2인은 2021년 4월 기소유예 결정을 통보받는다. 당시 여성가족부는 전반적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했는데, ‘위기임신’이라든지 ‘임신갈등’과 같은 관점 아래에서 출산과 양육을 유도하는 사업에 치중할 뿐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내로남불’ 식의 진영 논리에 따른 원칙없는 정치 행보를 보였고, 이는 페미니즘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문제에 입장이나 원칙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여론을 관리하는 수준의 기만적인 대응을 해왔고, 막상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할 수 있는 갈등적인 사안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여권 주요 광역단체장의 성폭력 폭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여성가족부의 위상은 완전히 추락한다. 

더욱 큰 문제는 여성운동의 정당성마저 함께 흔들렸다는 점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영순 상임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을 통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피소 사실이 유출된 사건은 여성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 입법부와 행정부로 대거 유입된 86세대와 공식·비공식적으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온 여성운동, 성주류화 전략을 추진하며 정권의 하위파트너 역할을 자임한 주류 여성운동의 기간의 행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되었다. 여성운동 진영이 20대 대선 시기 목소리 모은 ‘여성가족부 강화’가 쇄신의 방향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는 토론해 볼 문제다.
 
 

여성운동의 새로운 전략 모색이 절실하다

 

“중도·보수에선 여가부가 역사적 기능을 이미 다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젊은 사람들은 여성을 약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남성이 약자일 수도, 여성이 약자일 수도 있다.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 얘기다. 사회적 약자를 국가가 실질적으로 보호해 주면 된다.”
(2022년 2월 7일 《한국일보》 인터뷰 중)

“젠더,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이 없다. 다만 이 남녀의 양성의 문제라고 하는 것을 집합적인 평등이니 대등이니 하는 문제보다는 어느 정도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불공정 사안들에 대해 국가가 관심을 갖고 강력하게 보도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쭉 가져왔다.”
(2022년 3월 10일 《여성신문》 일문일답 중)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전후 언론사 인터뷰를 살펴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성차별 문제와 관련하여 ‘구조’와 ‘제도’를 혼동하는 모습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줄 공약을 띄워놓고는 밑도 끝도 없이 남녀불평등이 해소되었다고 하는 것은 일견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는데, 대통령 발언에 깔린 ‘여성의 집단적 권리는 달성되었으며 남녀 따지지 않고 자기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논리는 우리 사회에 제도적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는 입장으로 여겨진다.

물론 여성의 사회참여를 가로막아왔던 제도적 불평등은 상당히 제거된 것이 맞다. 가족 구성원의 생존을 위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했던 딸들의 모습은 70년대의 이야기이다. 결혼퇴직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던 젊은 여성들의 모습은 80년대의 이야기이다. 공공보육기관은 언감생심 맞벌이 부모가 일 나간동안 집에 불이나 어린 아이들이 숨지는 일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것도 90년대의 일이다. 앞서 짚은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도 공공기관 임원 및 고위직 공무원, 국립대학 및 각종 정부위원회의 여성 비율이 두루두루 개선되고 있다고 지난 5년간의 성과를 선전하지 않았는가. 성평등을 기회의 평등으로 여기는 입장에서는, 이렇듯 여성의 사회참여를 보장하는 법·제도적 조치가 일정하게 이루어졌을 때 이제 차별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된다. 그리고 국가의 역할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처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주는 것이 된다.

문제는 형식적·기계적 평등이 보장된다하여 실질적인 성평등 사회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성가족부로의 확대개편 이래 일·가정 양립을 목표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 및 보육공공성을 위한 법·제도가 지속적으로 확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활동은 돌봄이라는 가정 내 책임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 대유행 위기의 ‘돌봄대란’이 확인시켜주었다. 한편 학업과 일자리라는 자신의 기회가 제한되지 않도록 출산을 위한 최적의 시점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하는 동시에, 배란 유도 치료부터 시험관 아기와 난자 기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식의학 상품을 섭렵해야 하는 것이 2020년대 여성의 모습이다. 대선을 전후로 여성운동이 목소리 모아 질문해야 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제도적 불평등이 상당히 제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성평등한 미래는 더욱 요원한 일로 여겨지게 되었는가.

하지만 여성운동은 윤석열 후보가 여성혐오를 조장하고 여성유권자를 배제한다고 비판하며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규탄하는 데에 머물렀다. 국민의힘이 20대 남성들의 표심을 주되게 공략하는 전략을 취한 것은 성별·세대별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혐오반대’로 대응하는 것은 마주보는 거울이 대상을 끝없이 반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을 뿐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관련을 여성혐오로 규정하고 반대에 전념하기보다는, 성평등이 법·제도적 개선으로 달성되었다고 여기는 인식의 한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필요했다.

페미니즘의 시효가 만료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은 여성과 남성의 성적 차이에도 남성을 표준으로 함으로써 여성이 표준에 미달하거나 표준과 다른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르면 여성으로서의 보편적 권리와 여성의 노동권을 확장하기 위한 페미니즘은 불필요한 것이 된다. 현시기 여성운동은 법·제도적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성평등을 가로막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운동적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새 정부의 여성정책 전반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논란 끝에 임명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5월 17일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보다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처로 전환”을 강조하며 가족 구성원의 일·가정 균형,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 삶의 여건 보장,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 지원, 젠더갈등·세대갈등 해결 및 사회통합 등 사업 방향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아이돌봄 서비스 정부 지원 확대 등 촘촘한 돌봄지원체계 마련, 저소득 한부모가정 아동양육비 지원 강화 등 다양한 가족 지원, 권력형 성범죄 등 5대 폭력 피해자 지원, 학교 밖·가정 밖 청소년 등 청소년의 위기 유형별 맞춤형 지원과 같은 과제를 밝혔다. 

저성장·인구감소 심화라는 정세에 대응하는 국가의 전략, 즉 가족 내 돌봄 기능 일부를 사회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여성 인력 활용을 용이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가족의 유지를 위한 제도적 지원에 새 부처의 기능과 역할을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견 재생산 위기관리 기구로 기능해 온 여성가족부의 기존 역할과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주목해야 할 문제는 여성가족부 폐지냐 아니냐는 게 아니라, 새 정부가 목표하는 ‘지속가능한 미래’가 과연 여성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인가라는 부분이겠다.

여성가족부는 신자유주의 개혁 정부의 하위파트너 역할을 하면서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진전을 향한 대중의 열망과는 전혀 다른, 신자유주의 국가의 재생산 위기관리 기능을 전담해 왔다. 또한 민주당 성비위 문제를 감싸고 돌면서 스스로 위상을 추락시킨 여가부가 반드시 존치되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대중적 설득력이 없다. 여성가족부가 설령 폐지되고 타 부처로 사업이 이관된다하여 기능이 축소·상실될 것으로 단정내리기도 어렵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여성혐오를 강화한다고 규정하며 여가부 존치 혹은 강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을 기회의 평등으로 여기며 제도적 성차별이 없다고 하는 입장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여성의 현실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또다시 반보수전선에 경도되어 쇄신의 기회를 놓칠 것인가? 오늘날의 현실은 사회운동의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새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토론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자. 여성의 현실과 괴리된 ‘성주류화 전략’의 재탕이 아니라, 경제위기·인구감소 심화라는 정세에 부합하는 새로운 운동 전략을 모색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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