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2 여름.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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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이 사라진 자리에서 발견하는 불평등

『커리어와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소개

허지선 | 광주전남지부 조직국장
“제도적 성차별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 불평등 — 성별임금격차와 여성의 경력단절은 어디서 오는가?” 클라우디아 골딘의 책 『커리어 그리고 가정 —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이하 『커리어』)이 던지는 질문이다.

골딘은 미국의 사례를 통해, 제도적 성차별이 해소된 덕분에 숨어있던 차별적 요소가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100여 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사회제도상의 성차별은 대부분 사라졌다. 여성의 학업과 경력을 제한하던 입학 제한, 채용 제한 등 성차별적 제도가 거의 모두 폐지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학교에 가고 직장을 가지고 커리어를 쌓는다. 남성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높은 숫자와 비율의 여성들이 전문 직종에 진출한다. 성별에 근거한, 동일 노동에 대한 임금 차별도 대체로 사라졌다. 이상한 것은 제도적 평등, 기회와 경쟁의 공평이 이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인생 초기 단계에서 여성들이 보여주는 약진에도 불구하고, 성별소득격차(gender earnings gap)와 커리어의 격차가 명백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커리어와 가정의 시간 상충이라는 문제와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s)”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가정과 커리어가 모두 ‘온콜(on-call, 긴급 호출에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상태)’ 임무를 요구한다. 가정은 시간을 특정해서 돌봄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전 열한 시에 학교에서 아이가 다쳤다는 연락을 받으면 사무실을 떠나 아이에게 가야한다. 평일 오후 세 시에 나이든 부모님의 병원예약이 잡힌다면 출근 일정을 조정해야한다. 한편 많은 직장이 시간 외 근무, 주말 근무, 저녁과 밤에도 걸려오는 업무상 연락과 미팅에 응하기를 요구한다. 가정의 시간과 직장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일이 탐욕스럽다는 말은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노동시간을 두 배 늘리면, 소득은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다. 이 말은 곧 부부 사이에 가사와 직장생활을 분업하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부가 공평하게 가정에 참여하는 것보다, 회사와 가정의 온콜 노동을 각각 전담하면 가구 소득이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리어상의 이득이 누적되면 그 차이는 더욱 확대된다. 따라서 부부가 가정과 커리어를 하나씩 맡는 것이 합리적이다. 

균형과 평등이 가구소득 확대라는 지극히 합리적 선택으로 인해 무너진다. 게다가 잔존한 성별역할규범 속에서 여성이 가정의 몫을 맡을 확률이 훨씬 높다. 일상 커리어와 가정의 균형을 이루려는 여성은 시간 충돌의 문제에 부딪힌다. 물론 남성이 가정을, 여성이 커리어를 맡더라도 부부간 공평성이 깨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것이 110년간 “평등을 향한 여정”을 걸어온 여성들이 최후로 발견한 장애물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노력과 사회변화 등으로 대부분의 제도적, 문화적 차별이 사라지면서, 남녀 간 경제적 격차의 명백하고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또 다른 원인이 드디어 드러났다는 것이다. 

저자 클라우디아 골딘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로 2013년 미국경제학회 회장, 2000년 경제사협회장을 지내기도 한 경제사학자 겸 노동경제학자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경제에서의 젠더(Gender in the Economy)’ 연구그룹의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1946년생으로 하버드대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에 임명된, “평등을 향한 여성의 기나긴 여정”의 중간세대 성취(뒤에서 다룬다)를 이룬 여성이기도 하다. 경제, 노동, 젠더를 아우르는 저자의 이력과 경험은 『커리어』의 종합적인 접근으로 이어진다. 골딘은 커리어와 가정을 추구하려는 여성들의 일대기를 노동과 경제의 관점에서, 그리고 역사의 관점에서 살핀다. 

저자는 이 책이 “커리어와 가정, 그리고 공평한 관계에 대한 열망이 지난 한 세기간 어떻게 생겨났으며 오늘날 어떻게 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서두를 시작한다. 『커리어』는 지난 1세기 동안 여성이 경제, 노동, 커리어와 가정 측면에서 획득한 변화와 성취를 꼼꼼히 살핀다. 이어서 여성들이 마지막으로 마주한 장애물, 성별소득격차를 만드는 노동구조가 무엇이고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를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저자가 정리한 미국 여성들의 100여 년간 여정과 현시대의 장애물인 온콜노동과 커리어 시스템이 무엇이며 대안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저자의 고찰과 대안을 간략히 평가한다. 저자는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성차별이 아닌 노동에서 짚어내며, 임신, 출산, 양육이 어떻게 노동과 상호작용하여 격차를 유발하는지 제시한다. 이 같은 분석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로서 임신, 출산에 대한 권리의 보장이 성평등에 반드시 필요함을 암시한다. 이 글은 이상의 분석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확인하는 한편, 골딘의 분석에 구조적 시야가 부족함을 확인한다.
 
 

1. 100년의 여정

 
 
골딘은 책의 많은 부분을 190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의 인구통계적, 사회경제적 데이터와 그 의미를 해설하는 데 할애한다. 그동안의 의사결정과 성취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현 세대가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나은 더 경로를 만들지 고민하는 데 통찰을 제공한다.

이 분석의 대상은 미국의 대졸 여성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삼은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졸 여성이 커리어 성취의 기회가 가장 많았다. 지난 세기, 여성 내에서도 이들이 가정과 커리어의 공존을 시도하기 가장 유리한 그룹이었음은 당연하다. 나아가 전문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경우는 여성 내에서도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집단이다. 이들의 성취가 상승한 것은 (커리어와 가정 두 부문 모두에서) 여성이 이룰 수 있는 성취 꼭대기가 더 높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학력에 기반한 금전적 이득은 일자리와 커리어를 유지할 계기로도 작용했다. 따라서 대졸 여성을 통해, 여성이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커리어와 가정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둘째, 대졸 여성은 숱한 다른 장애물을 피해온 덕에 상대적으로 공평한 그라운드에 서있고, 그 덕분에 교란요인 없이 시간 충돌의 문제를 확인하기 적합하다. 셋째, 대졸자에 해당하는 인구가 크게 증가하며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갖게 되었다. (2020년 기준 여성 중 45%, 남성은 36%) 

골딘은 이 책에서 커리어를 자아정체성 구성에 큰 역할을 하며, 성취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또 고용과 소득이 일정 기간 유지되는 일 또는 경력으로 규정한다. 소득을 얻는 수단에 국한되는 경우는 일자리로 표현한다. 가정은 배우자 유무와 무관하게 아이가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골딘은 1910년부터 1970년 말까지 대학을 졸업한 여성을 “고용 영역과 가정 영역에 대해 여성들이 어떤 열망을 가졌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어떤 선택이 장려되었으며 어떤 선택의 역량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다섯 개 집단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연생으로는 1965년생까지를 포괄한다. (가장 최근 그룹에서도 55세 미만 여성들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생애주기상 커리어나 가정을 이루는 와중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10년 처음으로 사회를 진출한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여성들은 커리어와 가정 모두를 성취하기 위한 경로를 개척해왔다. 여성들은 각자가 당면한 조건에서 가정과 커리어를 조합하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앞선 세대가 남긴 성과와 교훈을 발판 삼아, 또 사회와 과학기술의 변화를 계기 삼아 조금씩 평등을 쟁취했다. 골딘은 첫 번째 그룹의 여성들은 커리어와 가정, 둘 중 하나만을 얻었지만 마지막 그룹의 여성들은 (어렵사리라도)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1) 집단1: 가정 혹은 커리어


집단1은 1878~1897년생으로, 1900~1920년대에 대학을 졸업했다. 골딘은 이 세대의 선택을 두 갈래 길이라고 표현한다. 이 시기 대졸 여성의 혼인율과 출산율은 모두 낮은 축에 속했다. 특히 높은 커리어를 달성한 ‘위인’ 그룹에서는 혼인율과 출산율이 상당히 낮았다. 이는 커리어와 가정의 결합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집단1의 대졸 여성 전체 중 30%는 결혼하지 않았고 50%는 아이를 갖지 않았다. ‘위인’은 50%가량이 결혼하지 않았다. 70%가량이 아이를 갖지 않았다. 커리어와 가정을 모두 이룬 여성은 9%, 커리어와 결혼을 모두 이룬 여성은 17% 정도다.

원인은 고용에서 제도적 제약과 사회적 규범에 있었다. 결혼이 커리어를 제도적으로 방해했다. 기혼 여성 고용 제한 제도는 기업과 정부가 특정 직종에 기혼 여성을 고용하지 않거나, 여성이 결혼을 하면 퇴사하도록 했다. 가족 채용 금지(anti-nepotism) 규칙은 아내가 남편과 동일한 기관, 부서 기업에 일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이 규칙은 여성의 커리어를 중단시키거나 높은 성취를 방해했다. 같은 기관에 종사하던 커플이 결혼을 계기로 남편이 더 우수한 기업(기관)에 남고, 여성이 낮은 수준의 직장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2) 집단2: 중간다리


집단2는 1898년생부터 1923년생들로, 1920년부터 1945년 사이 대학을 졸업했다. 이들은 가정과 커리어를 모두 원했다. 가정과 일자리를 성공적으로 동시에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각각을 어느 정도는 달성하면서 가정과 일자리(때로는 커리어)를 연쇄적으로 살았다. 결과적으로는 양자택일의 길을 걸은 1세대와 둘 다를 쟁취하는 3세대의 중간다리가 되었다.

2세대의 변화는 사회경제적 요인에 크게 힘입었다. 1910~20년대를 거치며 “사무실에서의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기업이 확장되고 조직 내 분업이 강화되면서 노동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단순 사무를 수행할 화이트칼라 노동자(사무원, 타자수, 경리부기원 등)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위험하고 고된 이전의 일자리와 달리, 화이트칼라 노동은 아내가 나가서 할 만한 일로 여겨졌다. (아내를 일자리로 보내는 남성들이 더 이상 ‘게으르고 무능한 놈팽이’로 여겨지지 않았다.) 덩달아 증가한 여성의 고등학교 진학률과 졸업률은 교육에 대한 여성의 수요가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문해력과 수리력이 금전적 수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은 8배 넘게 늘었다. 여성은 결혼 전에 더해 출산 전까지 상당 기간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고, 아이가 크고 나면 유사한 일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2세대의 중간 즈음인 1910년생 기혼 대졸 여성의 경우 일하는 비율이 20대 후반에서 20%대였지만, 30대 후반에 40% 이상, 40대 후반에는 60% 정도로 상승했다. 여성의 삶에서 경제생활의 비중이 커졌고 이들은 다른 유형의 삶으로 장면을 전환하며 살 수 있었다. 대학—일자리—결혼, 출산, 육아—일자리 혹은 커리어로의 복귀가 그것이었다. 고등학교 진학률과 졸업률이 올랐다.
 

3) 집단3: 가정에서 일자리로

 
집단3은 1924년생부터 1943년생으로 1940~50년대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들은 집단2와 유사하게 가정 후에 일자리를 차례대로 살았지만 좀 더 주체적으로 삶을 계획했다. 이들은 미래계획의 일환으로 대학 졸업장과 교사 자격증을 획득한다. 1920년생 여성들은 5.8%만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1940년생 여성들은 12%가 대학을 마쳤다. 대졸 여성 10명 중 4명은 교육학을 전공했고, 10명중 6명은 교사 자격증을 땄다. 이들은 노동시장 복귀 계획을 염두하고 전공을 선택했다. 주로는 가정과 양립할 수 있는 일자리에 취직할 수 있는 전공, 예를 들어 교육학 외에도 간호학, 아동발달학, 영양학이 선호되었다. 이들은 일자리를 가질 계획, 또 복귀할 계획을 세웠고 계획대로 되었다. 40세 즈음에는 대졸 여성의 70%가 전일제 일자리로 복귀했다. 한편 베이비붐의 영향으로 혼인율과 출산율이 크게 증가했다. 

다만 이런 대대적인 경제활동 참여가 커리어 성취로 즉각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선은 사회적 통념이 일자리보다 가정을 최우선에 두게 했다. 많은 사람이, 그리고 여성 스스로 엄마의 바깥일은 아이에게 부정적이라고 보았다. 여성들은 직업에서 자아정체성을 찾지 않았다. “나는 주부이고 엄마입니다. 커리어 우먼 같은 유형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르치는 일을 좋아합니다.(1964년 대졸여성 인터뷰 중)” 1964년 조사에서 기혼 여성 36%가 자신을 주부라고 묘사했고, 또 다른 조사에서는 여성 3/4이 “아내는 자신의 커리어를 갖는 것보다 남편의 커리어를 내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또 이 정도 비중의 여성이 “결혼한 여성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남편의 커리어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언명에 동의했다.
 

4) 집단 4: 일자리를 넘어 커리어로

 
집단 4는 1944년부터 1957년생으로,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에 졸업했다. 이 세대도 앞선 세대를 보고 자랐다. 1970년대, 이들의 ‘이모’ 절반은 전일제로 고용되어 있었다. (1980년대에는 80%가 고용된다.) 단,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이모’를 보고 자란 집단4 여성들은 일자리는 물론 커리어를 계획했다. 1967년 대학 신입생 중 “결혼한 여성의 활동은 가정과 가족으로만 한정되어야 한다”는 언명에 반대한 사람은 41%에 불과했는데, 1974년에 이 수치는 83%로 올랐다. 자신의 일이 커리어의 일부가 될 것이며, 직업이 삶의 핵심 부분이라고 사고했음을 보여준다. 이제 60~70대가 된 해당 세대 여성들이 (은퇴할 재산이 충분하고, 남편이 은퇴한 경우에도) 여전히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비율이 높은 점 역시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결혼을 미루고 학업과 경력에 더 긴 시간을 투여했다. 1950~72년 대졸 여성 결혼 연령 중앙값은 23세였는데, 1972년부터 상승해 1977년에는 절반이 25세 이후 결혼한다. (이 시대 내내 첫 결혼 연령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며, 다음 세대들도 이 경향을 물려받아 최근 결혼 연령은 28세 정도가 되었다.) 대학진학률과 졸업률도 더욱 상승해 남성보다도 높아진다. 진출하는 직종도 변호사, 의사, 학자 등 전문 직업군으로 이동했다.

1960년, 경구피임약의 탄생이 커리어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빠르게 결혼했던 여성들은(1700~1950년까지 혼인 중에서 혼전 임신한 경우가 적어도 20%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피임을 남성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결혼과 출산을 미룰 수 있었다. 여성들은 경력 초기에 대단히 많은 시간을 커리어에 투자할 수 있었고, 이를 요구하는 전문직(법조, 의학, 학계, 금융계, 경영계 등)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밖에도 이혼제도의 변화, 여성해방운동 등의 영향으로 경제적 독립과 커리어가 삶에서 더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을 미루는 데는 비용이 있었다. 결혼을 미루는 것은 대개 출산을 미룬다는 것이다. 이는 더 적은 아이를 갖거나, 때로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집단3 마지막(43년생) 대졸 여성 중 40대 초반에 아이가 없는 사람은 19%였는데, 4년 뒤인 1947년생은 25%가 아이가 없었다. 1955년생은 28%가 아이가 없었다. 대학원 학위가 있는 여성들 중 33%가 아이가 없었다. “출산을 미뤘던 많은 이들에게 생물학적 시간이 다하고 말았다.” 
 

5) 집단5: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는

 
집단5는 1958년 이후 출생자로,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다. 이들은 커리어를 위해 가정을 미루다가 영영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당연히 커리어를 추구하였고, 동시에 커리어를 위해 가정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생식 테크놀로지(시험관 아기, 생식세포 자궁관내이식, 난자 냉동, 염색체 검사)가 있었다. 1980년대에 불임에 대한 인식이 처음 확산되었고, 그 대응책도 차례로 개발되었다. 기술 발전은 당연하게도 여성의 생애 계획에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2018년 출산한 40세 이상 대졸여성 중 26%가 한 가지 이상의 불임시술을 받았다. 26세에 아이가 있는 여성 비중은 31%에서 22%로 줄어들고, 30대 중반과 그 이후에는 이전 세대보다 비중이 높아졌다. 대졸 여성 중 아이 없는 여성의 비중은 1955년 생(집단4)에서 가장 높은 28%를 기록한 이후 감소해 1975년생에서 20%로 낮아졌다. 대부분, 35세 이상에서의 출산 증가가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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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현재까지의 5세대에 걸친 변화를 보자. 대졸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에서 83%로 상승했다. 커리어의 확대와 함께 혼인율(68%→88%)과 출산율(50%→79%)도 상승했다. 여성 개개인의 역량 증가와 사회적 변화가 모두 작용한 결과였다. 골딘은 “커리어와 가정을 모두 성취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이 명백하게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골딘이 시도하는 분석의 미덕은 객관적이고 엄격한 근거를 토대로 한다는 데 있다. 골딘은 세세한 통계값에 근거해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을 꼼꼼히 추적하였다. 진학률과 졸업률, 혼인율과 출산율, 연령대별 특성, 세대별 전공구성, 당대 진행된 사회인식 설문 결과 등 폭넓은 자료를 토대로 여성들의 경로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제시한다. 구체적인 통계값의 유기적 종합은 과거 여성들의 삶을 개연성 있게 구체적으로 사고하도록 한다. 이런 상세한 이해는 독자로 하여금 당시 여성들이 겪은 차별의 양태와 원인, 해결된 경로를 지금 시대에도 참고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숨어있던 장애물: 탐욕스러운 일자리

 
 
지난 100년간 여성의 삶과 성취를 상상하는 즐거움만으로도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하지만, 골딘은 한발 더 나아가 종합적 데이터에 근거해 논지를 발전시킨다. “아이가 있는 여성이 아이가 어릴 때와 성장했을 때 보이는 차이, 아이가 없는 여성과 있는 여성 간의 차이가 무엇이 여성의 커리어 진전을 늦추는지를 드러내며, 이것이 소득과 승진에서 나타나는 성별격차의 진짜 문제다.” 

골딘은 두 가지 데이터에 주목한다. 첫째, 연령대별 ‘커리어와 가정’ 성취도에 있어 40대 후반, 50대에 커리어를 성취하는 경우다. 이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 양육을 마친 후 뒤늦게 커리어를 발전시킨 것, 다시 말해 어린 아이를 가진 여성이 커리어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두에서 지적하였듯이 아이와 커리어가 모두 시간을 요구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아이의 유무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와 상호작용하는 사회구조는 무엇일까? 

둘째, 남녀소득격차의 변화 양상이다. 남성과 여성의 연소득 격차는 1970년부터 2020년까지 상당히 줄어들었다. 구체적인 양태를 보면 1980년대에 급격히 줄었고, 1990년대부터는 완만하게 줄어든다. 1980년까지 임금격차는 교육, 훈련, 경력 등과 관련되어 있었다. 2000년부터는 그런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격차는 여성들이 받는 부당한 차별에서 기인한다는 의견이 일반적이었다. 골딘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골딘은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성차별(직장 내 부당대우, 유리천장, 여성의 소극성, 성차별적 인식 등)은 소득격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차별을 모조리 다 없애도 여성의 소득이 별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어서 많은 연구자들이 더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직종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 직종별 성비에 따른 격차)를 조정하는 것으로는 최대 30% 정도밖에 개선되지 않는다는 계산을 내놓는다. 

골딘이 보기에 문제는 직종 내, 특히 대졸 남녀 간 소득격차에 있다. 대졸 남성 대비 여성의 연소득 비율은 1990년부터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전체 노동자에서는 남성 임금 대비 80% 수준까지 개선되었지만, 대졸 노동자에서는 70% 수준에 정체되어 있다. 골딘은 생애주기에 따른 성별소득격차를 살펴야한다고 지적한다. 나이대별 비율을 계산해보면, 여성의 연소득비율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낮아졌다. 남성의 90% 수준에서 시작한 여성의 연소득 비율은 50대가 되면 70% 수준으로 하락한다. 골딘은 이런 변화를 생애주기, 특히 아이의 유무를 통해 해석한다. 

골딘은 늦은 시기 커리어 달성의 형태와 대졸자 내 임금격차, 이 두 사실을 토대로 커리어와 가정의 양립이라는 여성들의 목표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을 해소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달리 말해 제도적 성평등으로 해결되지 않는, 잠복한 문제를 만났다고 주장한다. 바로 양육자(대부분은 여성)에게 극도로 불리한 노동구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콜 요구가 높은 (대졸자들이 종사하는) 전문 직종에서 성별임금격차와 커리어 격차가 강화된다. 이런 노동구조가 여성의 낮은 임금과 커리어단절의 유발 요인이자, 부부의 불평등하되 합리적인 선택의 원인이고, “평등을 향한 여정”의 마지막 장애물이다. 

온콜(on-call)이란 무엇인가? 긴급호출에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상태다. 돌봄에서 온콜은 아이가 다치거나 아픈 것에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고, 학부모 일정이나 아이와의 이벤트가 직장 스케줄을 고려하지 않고 끼어든다는 의미다. 직장에서 온콜은 클라이언트와 회사가 평일과 주말,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업무를 지시하고 출근을 요청하며, 저녁 늦은 시간과 주말 아침의 연락에도 즉각적인 답변을 기대한다는 의미다. 기업은 물론 규칙적인 노동보다 온콜 노동에매우 높은 보상을 제공한다. 문제는 이런 추가임금이 부부간 공평성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선 온콜 요구와 임금격차는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펴보자. 골딘은 MBA(경영학 석사 학위) 취득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의 사례에 주목한다. MBA 직종에서는 취득 후 햇수에 따라 성별소득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된다. MBA 취득자들에 대한 조사를 보면, 취직 첫 해에 여성은 남성소득 1달러당 95센트를 벌었지만, 13년차 시점에서는 64센트를 벌었다. 그런데 이런 격차는 아이가 있는 여성에게만 발생했고, 연령이 올라갈수록 커졌다. 다시 말해, 생애주기 중에서도 아이의 유무가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다음으로, 온콜노동의 프리미엄, 즉 시급과 커리어에서 득실이 양육과 상호작용하여 격차를 유발하는 방식을 보자. MBA 직종에서 임금격차의 직접적 원인은 주당 평균노동시간과 경력년수 차이였지만 실상 노동시간과 경력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13년차 지점에서 여성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겨우 8시간 짧았고(남성 57시간, 여성 49시간), 쉬는 기간은 10개월 반 길었다(남성 6주, 여성 1년). 업무에서 작은 차이가 큰 소득격차로 이어진 이유는 MBA 직종에서는 온콜노동에 시간당 임금 프리미엄(업무시간은 n배, 임금은 n배 이상)을 크게 제공하고, 아주 짧은 기간의 경력단절도 큰 손실을 남기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는 경우 대체로 여성이 양육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게 되고, MBA 직종의 노동과 임금구조는 이에 큰 불이익을 부과했다. 이 결과가 남녀임금격차였다. (골딘은 책에서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가정에서의 책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느냐는 젠더규범에서 원인을 찾아야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형태의 불이익은 MBA 직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골딘은 전문 직종 내에서도 남녀임금격차 수준이 상이한 데 주목하며, 임금격차 수준과 노동구조(온콜여부)를 연결한다.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 비율을 비교한 결과, MBA(1달러당 64센트)와 금융 분야(77센트), 의학과 법학(약 74센트)에서는 낮고, 테크(94센트), 약사(94센트), 그밖에도 공학과 과학 분야에서는 높은 경향을 보였다. 골딘은 업무에서 시간을 요구하는 강도의 차이에서 두 그룹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해석한다. 임금격차가 큰 전자 그룹은 시간과 관련한 요구 수준이 높다. 즉 온콜노동을 강하게 요구한다. 반면 후자—공학, 과학, 컴퓨터-수학 분야에서는 시간에 대한 요구나 압박이 낮다. 노동 특성에 따라 여성(주로 양육담당자)에게 차별적 효과를 낳는다는 의미다. 

직종 내 임금격차를 유발하는 또 다른 요인은 커리어다. 어떤 직종들은 온콜노동 여부가 커리어적 성취와 깊게 연관되어있다. 이 중에서도 승진여부가 “올라가거나 나가거나(up-or-out)”로 이어지는 직종이 심각하다. 회계, 법, 금융, 컨설팅, 학계 등 직종에서는 경력 초기에 막대한 시간 투자를 요구하며, 승진에 성공하면 큰 보상(테뉴어, 학위, 파트너 직위 등)을 얻지만 실패한 사람은 업계를 떠난다. 이것이 바로 ‘올라가거나 나가거나’ 시스템이다. 보통 30대 중후반, 양육과 겹치는 시기에 승진 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러한 시스템은 여성과 남성에게 차별적인 영향을 미친다. 골딘은 통계적으로 이런 경향을 확인한다. 경제학 분야에서 박사학위취득자의 30~35%가 여성이지만 조교수는 25%, 정교수는 15%만이 여성이다. 공인회계사 중 50%가 여성이지만 대형 회계법인의 여성비율은 21%, 고위급에서는 16%다. 

정리하면, 온콜노동은 시간 대비 더 큰 임금과 커리어의 보상을 제공한다. 부부의 합리적인 선택은 한 명이 직장에서 온콜노동을 수행하며 임금과 커리어의 프리미엄을 확보해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하고, 다른 한 명이 가정에서 온콜노동을 전담해 돌봄을 커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합리적으로 “부부간 공평성이 버려지고”, “일터에서의 성평등도 버려진다.” 

골딘은 원인 분석에 이어 다음과 같은 변화를 제안한다. 우선, 온콜노동 프리미엄을 줄이고 유연한 노동이 가능하도록 노동조건을 개선해야한다. 대체·교대가능한 노동자들을 늘려 온콜노동의 부담과 필요를 낮추고, 가정에서 온콜에 대응할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다. 골딘은 노동내용과 구조를 표준화하고 팀 단위 업무를 지향한 약사의 사례를 근거로 한다. 과거 약사들은 의사처럼 온콜노동을 수행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의약품 표준화와 기업약국 도입, 처방전 시스템의 전산화를 계기로 대체와 교대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온콜로 오는 임금 프리미엄도 사라졌다. 20세기 남성 약사의 임금 1달러당 여성 약사의 임금은 64센트였지만, 오늘날에는 94센트다. 

또한, 커리어 성취에서 온콜노동의 압박과 “살아남거나 나가는” 문화를 줄여야 한다. 골딘은 숙련된 여성노동자가 승진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현상으로 인재 손실을 겪는 회사들이 대안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휴식기를 보장하고, 경쟁이 덜한 직위를 만들고, 자체적으로 과도한 업무량을 조정하는 식이다. 골딘은 이것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노력과 진전이 있다고 주장한다.
 
 

3. 단단한 분석과 희망 섞인 대안

 
 
골딘은 『커리어』에서 데이터에 기반하여 가정과 커리어 두 가지 목표를 향한 여정과 현재를 밝힌다. 구체적인 근거로 뒷받침되는 단단한 분석은 여성이 지금 발 딛고 선 조건에 대해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시야를 제공한다. 성차별적 현상에 직관적인 ‘악당’(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관리자, 성차별적 문화, 여성의 소극성 등)을 지목하는 것은, 옳은 길이라기보다는 쉬운 길에 가깝다는 골딘의 지적은 책의 이런 강점에 기반한다.

골딘은 역사와 데이터에 기반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골딘은 성별임금격차가 성차별이 아니라 온콜노동과 관련된 노동 관습들, 양육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노동구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았다. 이는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요소를 제거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노동구조 속에서 양육담당자는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되어있다는 의미다. 그 의미를 숙고해본다면, 노동시장에서 불평등한 젠더 규범과 차별을 철폐하고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는 것만으로는 여성과 남성이 진실로 평등해질 수는 없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임신, 출산, 양육에서의 권리, 재생산의 권리는 “동등한” 권리에는 포괄되지 않는다. 재생산권에 대한 보장 없이는 부당한 대우가 대상을 바꾸어 옮겨갈 뿐이다. 골딘의 분석은 남녀의 평등을 넘어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반영하는 권리의 발견으로 연결된다.

골딘은 부부 중 가정에서의 역할을 맡는 사람에게 불리한, 탐욕스러운 일자리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왜 하필 여성이 그 역할을 하게 되는가를 면밀하게 분석하지는 않는다. 그저 ‘여성이 더 유연한 일을 많이 선택하는 원인은 젠더 규범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커리어에서의 욕심도 많았던 여성들이 가족에서의 역할만을 전담하게 되는 조건을, 잘못된 인식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여성의 고유한 능력, 즉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있는 재생산 능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골딘의 분석에 따르면, 두 사람이 모두 적당히 일을 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온콜 노동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소득을 획득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은 노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의 역할에서 언제나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최초에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짧게나마 경력 단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가정에서의 역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기 쉽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바꾸는 것을 넘어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여성의 고유한 능력과 관련된 권리 발굴이 필수적이게 된다. 

같은 이유에서 페미니즘 운동에도 골딘의 분석과 통찰이 필요하다. 참된 여성해방과 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확장된 요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골딘의 단단한 분석과 빛나는 통찰은 희망 섞인 전망과 수동적인 대안으로 축소된다. 골딘은 “탐욕스러운 노동”을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으로 짚고 있지만, 이런 “탐욕”, 이윤을 최대화하는 속성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는 점은 간과한다. 기업은 노동자의 온콜노동을 통해 노동비용 대비 이윤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가능한 긴 시간 동안 클라이언트를 상대해 가능한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대체인력을 두기보다는, 노동자가 24시간 응하길 요구해 인건비를 절약한다. 모두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기업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탐욕을 원리 삼아 작동하는 자본주의 구조에서, 탐욕을 자제하라는 요청은 무력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자본주의 저성장 국면이라는 오늘날 조건에서 저자의 대안은 더욱 보편성을 잃는다. 골딘은 노동자의 온콜시장 이탈이나 노동조건 개선요구, 그리고 기술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심각한 저성장과 불황 국면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기업 간에는 매우 격렬한 이윤 경쟁이 발생하고 있으며,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수익에 반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기각될 공산이 크다.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협상력도 약화된다. 기술발전은 노동조건 개선이 아니라 노동력과 노동비용 절감에 편중된다. 이 같은 조건에서 골딘이 기대하는 개선은 중심부 국가의 지불능력이 있는 기업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극히 일부의 노동자에게만 국한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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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는 100여 년 간 여성들의 여정을 구체적으로 스케치하며 커리어와 가정이라는 두 키워드로 분석한다. 나아가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노동에서 짚어내는 통찰을 보여준다. 긴 여정을 흥미롭게 제시하는 데이터와 분석, 기존 인식에서 한걸음 나아가는 성차별에 대한 고찰은 이 책의 훌륭한 성과다. 

다만 사회구조 분석이 부재하면서 대안이 소박한 수준에 머무른 점은 아쉽다. 돌봄 문제에서 비롯하는 여성의 임금격차는 기술발전의 자연스러운 결말이나 탐욕의 제거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분석과 페미니즘의 시야, 둘 다가 필요하다. 이것은 『커리어』가 아니라 변혁운동으로서 페미니즘 운동이 대답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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