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2 겨울.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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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와 팽창주의가 확대되는 세계

진영논리를 벗어나 세계의 반권위주의 투쟁들과 연대해야 한다

김진영 | 정책교육국장
2022년을 되돌아보면, 올해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데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이 전쟁이 그저 하나의 전쟁이 아니라, 길게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부터, 짧게는 1991년 냉전의 종식에서부터 이어져 온 세계사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시기 속에서, 세계 사회운동 또한 과거와 분명히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03년 당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크 전쟁)이 전 세계 사회운동의 비교적 통일적인,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과 달리, 세계 사회운동 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해석과 대응은 침공 직후부터 크게 갈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했다. 예를 들어, 전쟁 발발 직후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좌파 활동가들은 영국의 《뉴 레프트 리뷰》와 ‘핵군축캠페인’(CND), 미국의 《자코뱅》과 ‘코드핑크’와 같은 영미권의 대표적인 좌파언론, 평화운동단체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세계적인 논쟁의 양상을 보면, 이러한 논쟁은 현재 국제정세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의 차이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핵심적인 문제는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와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그리고 이를 판가름할 핵심적인 쟁점은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통치와 대외전략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실제로 국내외 사회운동 중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침공 행위자인 러시아보다 미국과 서방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의 근간에, 중국공산당은 미국 헤게모니 하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대안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래에서 확인할 민주노총 노동자 통일교과서다.) 혹은 중국공산당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적어도 미국이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나쁘진 않다”라는 논리를 강력한 방어 기제로 삼는다.

그러나 10월 16일 막을 내린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는 여러 불문율을 깨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과 1인 통치 체제, 당 내 파벌 간 세력 균형 무력화를 분명히 하며 세계적으로 많은 우려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1월 24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주민들이 사망하자 3년간 지속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발이 폭발하면서, 1989년 ‘천안문 항쟁’ 이후 33년 만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시위의 물결이 중국 전역에서 나타났다. 일명 ‘백지(白紙) 시위’에는 코로나19 봉쇄 정책 해제 요구를 넘어 오늘날 중국에 민주주의와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는 제기와,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직접적인 규탄까지 등장했다. 20차 당대회 사흘 전 펑자이저우가 베이징 시퉁대교에 걸었던 현수막의 구호들, 즉 “PCR 검사 대신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 거짓말 대신 존엄을, 문화혁명 대신 개혁을, 영수 대신 투표를, 노예 대신 공민(公民)을”이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시진핑 물러나라, 공산당 물러나라”, “민주주의와 법치, 표현의 자유”와 같은 구호도 자주 등장했다. 그 결과, 중국 정부는 12월 7일 그간 고수하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강력한 방역 정책을 완화할 것을 발표하였고, 중국 내 시위는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백지 시위를 통해서 중국 사회의 저변에 정치적 불만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존재했으며, 그 주축이 그간 ‘신시대 애국주의’ 교육과 동원의 주요 대상이었던 청년층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의미는 심대하다. 

한편, 최근 한중정상회담, 미중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난 시진핑 주석의 엄호에 따라, 북한의 7차 핵실험 전망은 더더욱 기정사실화되었다. 9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핵은 우리의 국위이고 국체이며 공화국의 절대적 힘이고 조선 인민의 크나큰 자랑”이라고 육성으로 밝혔다. 이날 채택된 핵무력 정책 관련 법령은 북한이 공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북한 당국의 판단에 따라 선제 핵공격이 가능하다는 교리를 법제화했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월 18일에 진행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7형 시험발사가 “핵 선제타격권이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며 다시 한 번 핵 선제공격을 언급했다. 시험발사 당시 이를 지켜보는 김정은 위원장 자녀의 모습(둘째 딸인 김주애로 추정된다)이 최초로 공개되었는데, 앞으로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2018년 4월 김 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말했다고 전해지는 “나는 내 아이들이 핵을 이고 평생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다”라는 기조를 분명히 뒤집고, ‘3대 세습’을 넘어 그 다음으로까지 이어지는 세습권력과 이를 보증하는 핵무장 고수를 시사한 것이다. 

이와 같이 현존 국제질서를 흔드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 중국, 북한의 동향 외에도, 2022년 하반기에는 여러 상징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9월 25일 이탈리아 조기총선에서 무솔리니가 세운 국가파시스트당(PNF)의 후신 격인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이 26%를 득표해 원내 1당이 되고, 창당인인 조르자 멜로니가 유로존 3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의 새 총리가 되었다. 멜로니는 ‘여자 무솔리니’, ‘파시즘의 후예’라고도 불린다. 반면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탈환하기는 했으나, 여당인 민주당이 크게 선전했다. 중간선거는 역사적으로 집권당에 불리한 선거일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공화당이 압승할 것이란 당초 예상을 꺾은 것이다. 이러한 선거 결과는 ‘트럼프 책임론’으로 설명되는데, 도널드 트럼프로 대표되는 극단주의에 대한 반대가 친트럼프 공화당 인사들의 참패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러시아, 북한과 함께 ‘반서방연대’를 형성하는 주요 국가인 이란에서, 9월 중순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어 12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쿠르드계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되어 의문사를 맞은 사건이 계기였으나, 전국적 시위와 동맹휴업, 파업의 진행은 1979년 수립된 이란 이슬람혁명 체제와 신정일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권위주의, 여성억압, 경제실패에 대한 대중적 불만의 폭발을 담고 있다. 이란 정부는 이것이 ‘미국과 이스라엘이 사주한 시위’라며 초강경 진압을 선포하고, 12월 8일 ‘신에 대한 반란’ 혐의로 반정부 시위자에 대한 첫 사형을 집행했으며, 12일에는 시위자를 공개 교수형에 처하고 그 사진을 공개했다. (올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시민은 최소 500명 가량으로 추정되며, 구금자는 최소 1만 4천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사회진보연대는 이와 같은 국제정세를 ‘인민주의와 팽창주의의 세계적 위협’으로 규정하였다. 국제질서를 이끄는 미국의 헤게모니는 약화되고 있으나, 20세기 초 러시아혁명과 같은 사회주의적 대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안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적 국제질서의 유산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유산을 유실하지 않으면서 이를 넘어선 더 나은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운동은 권위주의 국가들의 팽창주의와 인민주의가 세계질서를 세계대전 이전으로 후퇴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에 단호히 맞서는 국제적 민중연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의 중국, 북한 핵 위기의 현황과 전망을 확인하고, 이를 둘러싼 국내외 사회운동 내 논쟁을 소개한다. 논쟁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소위 ‘반서방 연대’ 권위주의 국가들을 ‘반(서방)제국주의’ 대안세력으로 인식하고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반서방 국가’의 권위주의·팽창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할 것이냐다. 이 질문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민중, 중국공산당의 민주주의 억압에 맞서고 있는 홍콩, 대만, 중국 민중, 신정일치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고 있는 이란 민중을 통해, 이미 세계 사회운동에 던져졌다.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운동이 선택해야 할 길은 권위주의, 팽창주의에 맞서는 국제연대 건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그것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온 진보적 사회운동의 기치에 더욱 부합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무장과 중국, 러시아의 권위주의 확대에 둘러싸인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에 적합한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정세 인식이 왜 중요한가?: 민주노총 통일교과서의 사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표되는 세계정세에 대한 인식이 왜 결정적인 문제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민주노총의 최근 정세인식을 살펴보자. 이번 10월 민주노총과 겨레하나가 공동으로 발간한 『노동자 통일교과서③: 패권의 종말과 대전환, 우리 노동자는』은 현재 민주노총의 국내외 정세에 대한 관점을 집대성하는 소책자다. 민주노총 통일위원회의 공지에 따르면 발간 의도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대전환의 시대를 노동자들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노동자들의 역할을 찾아보고자 함이다. 현 정세란, “미국의 패권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고”, “세계는 이제 미국의 일극 패권에서 벗어나 다극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때다(김은형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발간사). 

통일교과서의 구성은 1부 우크라이나 전쟁, 2부 새로운 전쟁의 시대, 3부 전쟁과 미국, 4부 미국과 한국이다. 최대한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 요약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큰따옴표 안은 직접 인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2008년 미국 부시 정부의 우크라이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추진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반정부시위(‘유로마이단 혁명’)가 발생하자 미국이 나토 가입을 추진할 친미정권을 세우기 위해 개입한 것이 2014년 돈바스 내전으로 격화되었다. 2019년 당선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극우성향”으로 인해 돈바스 내전은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과 돈바스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인종탄압”으로 이어졌고, 그러자 돈바스의 2개 자치공화국(루한스크, 도네츠크)이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하여,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것이다. 나토의 동진과, 그에 “못지않은 위협”인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의 득세도 러시아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와 동시에 전쟁하는 것을(“2개 전선”)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시켜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패배시키는 것이 목적인 반면, “러시아는 돈바스 해방과 우크라이나 중립을 목적으로 전쟁을 수행한다.” 

“새로운 전쟁의 시대”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중 나토 정상회의와 <국가안보전략 잠정지침>을 통해 사실상 “신냉전”을 선언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중러에 맞서 단일 전선을 형성하고, 이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단일 전선을 형성하면서, “사실상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핵무기를 보유한 미중러 사이에 직접적인 충돌은 아직 없으나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핵 대치를 하고 있다. 

“머지않은 시점에 미중 GDP가 역전되는 것은 기정사실”인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돈바스 지역의 대부분은 사실상 러시아 군대에 의해 장악되었고, 이미 러시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군사 문제에서건, 에너지 문제에서건 러시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단극체제 고수 진영(미국측)은 축소되고 있다. 이에 반해 다극전환 진영(중러측)은 공고화되고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 푸틴의 지지율은 60%대에서 80%로 치솟았다. 루블화의 가치 역시 치솟았다. 루블(ruble)이 ‘돌무더기’(rubble)가 되었다고 바이든은 비웃었으나 돌무더기가 된 것은 달러였다.”

그렇다면 “신냉전”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통일교과서는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보여주듯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할 때 한반도는 전쟁기지가 되어 왔으며, 냉전 시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탈냉전 이후에도 한국은 미국의 전쟁기지로 남았다고 설명한다. “신냉전이 트럼프 정부 때 시작되었는지, 바이든 정부 들어와 시작되었는지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으나, 한반도가 신냉전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에 부합하는 군사기지로 변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통일교과서 3부, 4부는 미국은 역사적으로 전쟁과 공작, 기축통화를 통해 부정의하게 패권을 유지해왔으며,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부터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한반도를 기만하고 ‘배신’해왔다는 내용이다. 신냉전은 이러한 “전쟁국가 미국의 귀환”으로, 미국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편 2022년 9월 북한의 핵정책법령은 북미 협상 실패의 결과물이며, 북한이 “자신의 핵무기 정책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현재의 북미대치 상태가 핵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2022년 3월 핵선제공격 교리가 포함된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공개한 것, 우크라이나에 개입한 것, “대만의 우크라이나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대응이다. 미국이 “임의의 시작에 조선을 공격할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 핵정책법령을 마련하고 공개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통일교과서는 종장에서 “그래도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권위주의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협력해야 할 국가는 미국밖에 없는 것인가?”라고 묻고, 이러한 “선택의 프레임, 사대주의, 예속의 프레임을 버려야 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자주정치가 그동안 가능하지 않았던 것은 보수양당 체제 속에서, 4.19, 유신반대, 5월 광주, 87년 6월, 2016~17년 촛불혁명과 같은 투쟁의 열매를 결국 보수정당이 모두 가져간 탓이다. 따라서 결론은, 미국 편도, 중국 편도 들지 않는 자주정치는 오직 노동자의 힘의 결집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통일교과서의 내용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통일교과서의 전체적인 메시지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하는 대신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고, 이것에 “미국 패권의 종식과 다극체제로의 전환”을 앞당긴다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일교과서가 당연한 사실처럼 언급하는 미국의 유로마이단 개입설(그러나 유로마이단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의 입장은 그것이 이 운동의 근본적 원인이라거나 핵심적인 요소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와 “극우정권”에 대한 주장이 침공 직후부터 반박되어 왔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또한, 그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연합(UN) 헌장과 국제법, 기존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맺은 합의와 조약에 위배되는 전면적인 적대행위이며, 이것이야말로 이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는 문제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내용은 후술하겠지만 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좌파들의 입장과 완전히 다른 것이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즉각적인 휴전과 군사행동의 중지, 철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힌 민주노총 성명과도 배치된다(민주노총,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중단하고 즉각 철군하라!”, 2022.03.30.).

소책자의 결론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그 자체로 남한 노동자운동의 오랜 목표다. 그러나 민주노총 통일교과서의 내용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자주정치’를 반영한다면, “미국 편도, 중국 편도 들지 않는 자주정치”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이미 중국과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 소책자의 논지를 따라가면, 직접적으로 선언하지만 않았을 뿐,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이것이 러시아의 승리와 그에 따른 중러 주도의 다극체제 확대로 이어지는 것을 지지해야 하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더라도 마찬가지이며, 북한의 선제핵공격 법제화도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실천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 소책자에서는 한국 노동자가 침공의 피해국인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지할 필요를 전혀 찾을 수 없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다극체제’에는 거듭해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 패권의 종말과 중러 주도의 ‘다극체제’의 부상에 결정적인 계기로 파악한다.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미국이 “대만의 우크라이나화”를 시도한다고, 즉, 맥락상 우크라이나에 이어 대만까지 대리전의 전장으로 삼고 전쟁을 유도한다고 비판한다. 올해 9월 북한이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선제 핵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핵 교리를 법제화한 것 또한, 오히려 핵전쟁을 막는 관리책이라고 주장한다. 

통일교과서는 위와 같은 논지를 전개하는 중요한 대목들 곳곳에, 사실관계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 현 우크라이나 정부의 대대적인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탄압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2020년 9월 “공공기관, 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 외의 언어 사용을 금지”한 것과, 2021년 7월의 ‘우크라이나 원주민법’을 예시로 든다. 그러나 언어 관련 법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취임(2019년 5월)하기 이전의 회기에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통과된 것으로, 효력이 발휘된 시점이 취임 이후였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최대 좌파단체 ‘사회운동’(Sotsialnyi Rukh, SR)의 활동가 타라스 빌로우스는 이 점을 지적하며, 오히려 젤렌스키 정부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법들을 누그러뜨리려 하였으나 그때마다 민족주의 시위에 부딪혔다고 평가했다. (젤렌스키의 모어는 우크라이나어가 아니라 러시아어이며, 그가 기획하고 주연을 맡은 드라마 ‘인민의 종’도 러시아어로 제작되었다.) 한편 ‘우크라이나 원주민법’은 우크라이나 국외에 별도의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3개 튀르크계 소수민족(크림 타타르인, 크림 카라이트인, 크림차크인)을 다른 소수민족(러시아인,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들과 구분하여 ‘원주민’(Indigenous People)으로 규정하고, 이들 원주민 공동체의 문화와 민족성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의 골자는 “오직 스칸디나비아에서 기원한 우크라이나인만이 ‘인권과 모든 근본적 자유를 향유한다’는 것”이라는 통일교과서의 서술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통일교과서의 정확한 작성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이나 러시아 내 상황에 대한 서술도 발간 시점의 현실과는 다르다. 12월 초 현재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기를 잡고 있다거나, 러시아 내에서 푸틴과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대한 지지가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주지하듯, 올해 하반기 우크라이나는 공세 작전으로 전환하여, 동부 하르키우 주에서 이지움, 쿠퍈스크 등 요충지들을 잇달아 탈환했다. 무엇보다 침공 초기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남부 거점도시 헤르손을 11월 11일 수복한 것은, 전쟁 발발 이후 최대 전과로 여겨진다. 12월 1일 러시아의 유명 독립 인터넷 언론 《메두자》(Meduza)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경호국(FSO)이 비공개로 실시한 11월 여론조사에서 평화협상 지지가 55%, 전쟁 지속 지지가 25%로 나타났다. 올해 7월 당시에는 같은 조사에서 평화협상 지지가 32%, 전쟁 지속 지지가 57%였는데, 여론이 크게 변한 것이다. 이는 러시아의 독립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 센터’의 10월 조사에서 57%가 평화협상을 지지하고 27%가 전쟁 지속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과도 거의 유사한 결과다. 

미국이 3월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선제핵공격 교리를 먼저 포함했기에 9월에 북한 당국이 선제핵공격을 법제화했다는 주장도 사실과는 다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오랫동안 미국의 ‘핵선제불사용’(No First Use, 핵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먼저 핵을 쓰지 않는 것) 정책을 지지해왔다. 대선 공약에서는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단일 목적”(Sole Purpose), 즉 적대국의 핵 공격을 억지하거나 반격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명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계획에 대해 미국의 동맹국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결국 3월 30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제출된 5차 NPR 요약본(10월 최종 발간)에는 ‘핵선제불사용’이나 ‘단일 목적’이 명시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오직 미국과 동맹국의 사활적 이익을 지켜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핵 사용을 검토한다”란 문구를 포함했는데, 통일교과서의 언급은 여기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바마, 트럼프 행정부 시기 NPR에도 거의 같은 문구가 있었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여기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즉,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NPR에 ‘핵선제불사용’이나 ‘단일 목적’을 추가할 계획을 세웠다 철회한 것이지, 이전 정부들보다 더 호전적인 내용을 추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발간한 4차 NPR이 “핵 공격 억지가 핵무기의 단일 목적은 아니다. 미국의 핵 전력은 핵 및 비핵 공격 억지, 동맹국과 파트너의 안전 보증, 억지가 실패했을 경우 미국의 목표 달성,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역량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라고 명시한 것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의 NPR에는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따라서 이러한 동향이 북한의 선제핵공격 교리 법제화를 유발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2023년에도 이어지는 전쟁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2월 5일 발간한 『2023년 세계대전망』에서, 2023년에도 세계 정치, 경제의 핵심 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전망한다. 전쟁의 전망에 대해서는 ‘끝없이 계속되는 교착 상태’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으나, 푸틴이 승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에드워드 카 《이코노미스트》 부편집장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 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은 서방은 러시아에 굴복하면 다음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란 점을 깨달았다”며 “우크라이나가 전진하는 한 유럽의 결의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 서술했듯, 우크라이나군이 9월부터 공세 작전을 펼치면서 영토 탈환에 속도가 붙어, 전쟁의 판도를 바꿀 요충지로 여겨겨 온 남부 핵심지역 헤르손을 11월에 수복하였다. 겨울을 앞두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각지의 발전소 등 사회기반시설을 대대적으로 폭격하여 정전, 단수를 유발하는 ‘겁 주기’ 전략을 택한 결과, 인도적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민중의 항전과 영토 수복 의지가 꺾일 것이란 전망은 찾을 수 없다. 

헤르손에서 물러난 뒤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점령지 재탈환을 목표로 바흐무트 등지에 공격을 집중하면서,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12월 중순 현재 바흐무트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참호전이 벌어지고, 하루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겨울은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 양자에게 전투를 수행하기에 좋지 않은 계절로, 이러한 대치가 계속되나 전황 자체는 어느 쪽으로든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겨울을 나게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비교하자면, 보급과 사기에 있어서 러시아군의 상황이 더 좋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전쟁이 다음 해로 넘어갈 조짐에 ‘평화협상’의 전망에도 다시 관심이 모였으나, 단기에 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월 7일 러시아 인권이사회 연례회의에서 “‘특별군사작전’의 기간에 대해서 말하자면, 긴 과정이 될 수 있다”라며, 전쟁 장기화 전망을 스스로 밝혔다. 여기에 매우 비싼 비용이 들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동안 “새로운 영토를 얻는 중대한 성과”를 거뒀다고, 즉,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의 병합을 통해 러시아 연방의 확대를 달성했다고 평가한다. 푸틴은 이를 러시아 제국의 초대황제 표트르 1세가 아조우해(크림반도와 러시아에 둘러싸인 내해)에 접근하기 위해 싸운 것에 비교했다. 그는 지난 6월에도 “표트르 대제는 영토를 되돌리고, 강화했다. 이 운명이 우리에게 떨어졌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1월 15일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러시아는 참석을 거부했다)에 화상으로 참가하여 “지금이 러시아의 파괴적 전쟁이 중단돼야 하고, 또 중단될 수 있는 때라고 확신”한다며 ‘평화 공식 10개 항’을 발표했다. 이는 ① 핵 안전, ② 식량안보, ③ 에너지 안보, ④ 모든 수감자 및 추방자의 석방, ⑤ UN 헌장의 이행과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 및 세계 질서 회복, ⑥ 러시아군 철수 및 적대행위 중지, ⑦ 정의의 회복, ⑧ 생태계 파괴 대응, ⑨ 긴장 고조 방지, ⑩ 종전의 확인이다. 12월 12일, 주요7개국(G7) 정상은 종전 협상과 관련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장에 지지를 표명하는 성명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발표했다. G7 정상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은 끝나야 하지만, 지금까지 러시아가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노력을 결의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무조건 완전히 철수해 전쟁을 즉각 종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UN 헌장에 담겨 있는 근본 원리들에 기반한 정의로운 평화는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러시아 정부 측은 전쟁이 영토 확장의 목적으로 장기화되고 있음을 인정하며 이를 지속할 계획을 드러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정부 측은 UN 헌장을 준수하는 평화협상을 요구했다. 러시아의 침공 자체가 어느 정도 ‘정당한 우려’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면, 젤렌스키의 평화 공식을 반대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면 곧 종전이라는 타당한 지적도 전쟁 직후부터 지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회운동’(SR)이 발표한 「평화협상 전망에 대한 좌파의 견해」(12월 12일)도 평화 협상이 진행 중이지 않은 사실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러시아 연방에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종식에 대한 협상은 공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까지 진군하여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낼 생각이 없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며, 러시아군의 자발적인 철수도 요구해왔다. 그러나 러시아는 대다수 우크라이나 민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제안도 공개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러시아 당국은 결국 최종 결정의 주체는 우크라이나 민중이며, 그 외에는 심지어 바이든 미국 대통령조차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민중이 찬성하지 않을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직 공개적이고 우크라이나 민중이 받아들인 협상만이 정의롭고 영속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 (SR, 솔리더리티 컬렉티브 등 우크라이나 사회운동단체들은 만약 젤렌스키 정부가 우크라이나 민중이 동의하지 않는 협상안에 서명하면 의회 통과가 어려울 것이며, 반러시아 기조에 있어 비교적 온건한 젤렌스키 정부의 붕괴와 강경 민족주의, 극우 세력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해왔다.) 

또한, 어떤 타협도 합의가 이행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푸틴은 러시아가 1994년 서명한 부다페스트 각서를 파기했고, 작년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지난 9월에는 “러시아 연방에 동원령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9월 21일 ‘부분적 동원령’을 선포하고 예비군을 징집했다.) 

‘사회운동’(SR)은 현재 우크라이나 시민사회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정부의 대응을 크게 신뢰한다고 밝힌다. (이는 젤렌스키 정부의 신자유주의, 반노동 정책에 대한 투쟁과는 별개의 문제다.) 우크라이나의 NGO 여론조사기관 ‘레이팅’(Rating)의 조사에 따르면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대체로 10~20%였던 것에 반해, 올해 70~80%로 증가했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회의 ‘올바른 방향’이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에서 몰아내고, 적어도 다시 우크라이나 도시를 폭격하고 전력, 물, 난방을 끊어버리지 못할 정도로 러시아를 ‘탈군사화’하는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키이우 사회 연구소에 따르면,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일부 영토 양보에 동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비율은 지난 5개월 동안 10%에서 7%로 감소했으며, 현재 인구의 87%가 어떠한 영토 양보도 원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전 지역, 주요 민족·언어 집단에서 압도적 다수가 이러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기간시설에 대한 광범위한 미사일 공격은 러시아와의 협상이 무의미하다는 의견을 강화했다.
 


‘바보들의 반제국주의’ 대 약소국 민중의 ‘자결권’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이후 세계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임을 예고했다면, 침공 바로 다음 날인 25일 발표된 한 우크라이나 활동가의 글은 세계 좌파 진영에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들을 예견했다. ‘사회운동’(SR)의 활동가이자 우크라이나 사회비평저널 《커먼스》(Commons)의 필진인 타라스 빌로우스가 쓴 「키이우로부터 서구 좌파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 글의 부제는 “‘바보들의 반제국주의'란 러시아의 행동에 눈감는 이들을 뜻한다”이다. ‘바보들의 반제국주의’란 표현은 시리아 활동가 레일라 알 샤미가 2018년 썼던 것인데, 서방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반대했지만 [“반미 반제국주의 국가”라는 근거로] 러시아와 이란의 개입은 무시하거나 심지어 지지한 서구 ‘반전’운동의 활동은 시리아에서의 전쟁을 멈추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빌로우스가 이를 인용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비슷한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그는 서구 좌파 일각이 반서방 ‘진영주의’(campism)에 빠져, 러시아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을 꺼릴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돈바스 전쟁 개입과 우크라이나 침공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키이우로부터 서구 좌파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서두에서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러시아 규탄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은 나머지 서구 좌파에 대한 것이다”라고 밝힌다. 예를 들면, 대규모의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1월 말의 상황에서도 성명에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단 한 단어도 포함하지 않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 그룹 국제위원회가 있다. 또한 침공 발발 직전에,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주의 세력(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한 상황에서도, 거의 전적으로 미국만을 비판한(푸틴에 대해서는, “온건하지는 못한 야망을 가지고 있다”고만 썼다) 《자코뱅》 지의 내부 필진 브란코 마르체티치와 같은 이들이다.

이러한 서구 좌파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 ‘나토의 동진’에 대하여, 빌로우스는 “나는 나토의 팬이 아니며, 나토의 동진이 핵 군축과 공동 안보 체제 형성을 저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며,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면 현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서구 좌파는 미국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에게 한, 나토에 대한 비공식 약속[‘한 치도 동진하지 않겠다’]을 수없이 언급하는 동안, [러시아가 서명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보장하는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는 과연 몇 번이나 언급했는가? 서구 좌파는 세계 2위의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의 ‘합법적인 안보 우려’를 지지하는 동안, 미국과 러시아의 압력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이미 2014년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전쟁 개입으로] 결정적으로 짓밟은 종이 한 장[부다페스트 각서]을 받아들어야 했던 우크라이나의 안보 우려는 몇 번이나 떠올렸는가?”라고 묻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위선성이 문제라는 주장들에 대해서도, “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팬이 아니다. 사회주의자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비판해야 한다”라고 밝히며 논지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세력권’ 분할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좌파는 두 제국주의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는 대신, 국제 안보 질서의 민주화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적 정책과 국제 안보의 세계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는 후자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UN이다. 그렇다, UN은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고, 종종 공정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비판은 무언가를 부정하기 위한 것일 수도, 개선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UN의 경우, 우리는 후자의 비판이 필요하다. 우리는 UN의 개혁과 민주화에 대한 좌파적 전망이 필요하다. 물론 좌파가 UN의 모든 결정을 지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UN의 무력분쟁 해결 역할이 강화되면, 좌파가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최소화하고 희생자의 수를 줄이는 데 기여할 여지가 커진다. 결국, 기후 위기와 다른 세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UN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행동에 눈감지 말 것”을 호소한 그의 편지에 응답한 서구 좌파들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연대 유럽 네트워크’(ENSU, European network for solidarity with Ukraine)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연대 캠페인’(Ukraine Socialist Solidarity Campaign)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제4인터내셔널’ 계열의 트로츠키주의 단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11월부터는 여기에 유럽, 북미 밖의 단체들을 포함하여 ‘우크라이나 글로벌 연대 네트워크’(Ukraine Global Solidarity Network)로 확장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사회진보연대가 참여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사회운동’(SR), ‘페미니스트 로지’(Feminist Lodge), ‘솔리더티리 컬렉티브’(Solidarity Collectives) 등의 단체들, 주요 노총인 우크라이나노동조합연맹(FPU)과 우크라이나자유노조연맹(KVPU)과 같은 우크라이나 사회운동과 연대하며, 이들이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자결권’과 ‘저항권’을 지지한다.
 
 

러시아 내부에서 전쟁 중단과 러시아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러시아 사회운동도, 우크라이나 좌파의 입장과 요구를 대체로 공유한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만들어진 러시아 좌파 반전 매체 《포슬레》(러시아어로 ‘이후’)는 푸틴 정권의 준파시즘성과 팽창주의, 대러시아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우크라이나 사회운동과의 공동 웨비나 등을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반전 이니셔티브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은 5월 8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성명에서 낸시 프레이저, 실비아 페데리치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미권 페미니스트들이 조직한 「전쟁에 맞선 페미니스트 저항」 선언문(3월 17일)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왜 자신들이 우크라이나의 대러 무장항쟁을 지지하는지 밝혔다. “우리는 군사주의 확대가 낳을 결과를 이해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러시아 국가를 그 내부에서부터 알고 있다. 우리는 오직 무력의 언어만을 사용하고 이해하는 정권과의 협상 가능성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없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용감하고 강력한 저항을 치하하며, 그들이 러시아 국가라는 괴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무기를 갖기를 원한다.”

서구 좌파의 유명 이론가 중에서 우크라이나의 저항권을 가장 강력히 옹호한 이는 프랑스의 에티엔 발리바르다. 발리바르는 전쟁이 시작된 직후 인터뷰에서 “평화주의는 선택지가 아니다”라는 과감한 주장을 통해, 가장 절대적으로 시급한 것은 푸틴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이 치를 대가를 감수하면서라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경제 제재나 우크라이나의 무장저항 지원은 전쟁을 장기화할 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흐름, 대표적으로 미국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기도 했다.

발리바르는 이 전쟁의 중첩된 성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베트남 전쟁, 알제리 전쟁 등의 민족해방전쟁과 비견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전쟁”이라며,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무조건” 지지해야 할 즉각적인 긴급성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러시아가 부정해 온 우크라이나 민중의 자결권이며, 현재 우크라이나 민중은 범죄적 전쟁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특히 영미권의 좌파, 평화운동의 주류는 정확히 빌로우스가 예견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러시아의 부당한 침공을 규탄하기보다 나토의 동진, 미국과 서방의 역사적 위선 등을 규탄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하는 대신 미국과 서방의 추가적인 ‘개입’을 막는 것을 최우선시하는 활동을 펼친 것이다. 코드핑크, CND, 앤서(ANSWER) 등 영미권의 대표적인 평화운동단체들이 그 예시다. 이들은 침공 직후 “침공 반대, 나토 반대”를 양대 구호로 들고 나왔다. (앤서와 코드핑크가 준비 중인 2023년 1월 14일 집회의 기조는 “나토 확대 반대! 우크라이나에 평화를!”로 순서가 바뀌었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전쟁이 아니라 협상”, “즉각 휴전”이라는 요구를 통해 평화주의적 색채를 더하려 했으나, 휴전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책임은 종전 의지를 보이지 않는 러시아에 있으며 러시아에는 협상보다는 전쟁의 장기화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의도가 존재한다는 지적을 무시했다. 대신, 젤렌스키의 영토 수복 목표와, 미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전쟁을 장기화하고 세계 민중을 희생시킨다는 주장으로 점차 나아갔다. 

이에 빌로우스는 「자결권과 우크라이나 전쟁」(5월 8일)에서, 이러한 서구 좌파가 우크라이나 민중의 ‘자결권’(Self-determination)을 무시하고, 우크라이나 민중을 주체가 아닌 희생자, 서방의 꼭두각시로 보는 것에는 제국주의적 함의가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며, 죽음과 파괴를 막기 위해 어떤 타협을 해야만 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미국 정부는 여기에 [즉,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에] 동의하고 있다. 나는 왜 많은 좌파가 서방이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 정부보다] 더 제국주의적인 접근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우크라이나 전쟁, 국제 안보, 좌파」(5월 26일) 또한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잡지 《뉴 레프트 리뷰》 2022년 1-4월호에 실린 수잔 왓킨스 편집장의 「피할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반박이다. (그는 원래 이 글을 《뉴 레프트 리뷰》가 운영하는 블로그 ‘사이드카’에 기고하려 했으나, 《뉴 레프트 리뷰》 측에서 글 분량을 절반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여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그가 보기에 왓킨스의 글은 나토 회원국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나라(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나토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이라고 부르며 우크라이나의 주체성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게다가, 왓킨스는 바이든이 “군사적 국경에 대한 진지한 합의를 기꺼이 협상했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침략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즉각 동유럽 좌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동유럽 국가들이 자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아 자발적으로 나토에 가입했으며, 나토 확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보통 무시하는, 동유럽의 안보 우려를 감안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뉴 레프트 리뷰》 2022년 9-10월호에서 왓킨스는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이 민주적, 민족해방적 혁명으로 파악하는 2013~14년 (유로)마이단 시위에 대해 부정적인 서술(러시아어 사용 탄압과 극우 세력의 폭력, 미국의 개입과 그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 등)을 이어간 뒤,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는 [러시아의 개입에 따른 것이 아닌] 민주적 자결권으로, 마이단의 ‘미러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푸틴이 돈바스 지역의 해방 대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만을 목표로 민스크 협정에 응한 것이 오히려 유보적이었다는 뉘앙스의 서술로 이어진다. 최종적으로 바이든과 젤렌스키의 잘못으로 민스크 협정이 깨지고 전쟁이 난 것이고, 만약 젤렌스키 정부가 자신의 공언처럼 “크림반도 해방”에 나서게 된다면, 그것은 크림반도를 억압하는 신제국주의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호에서 예란 테르보른의 「세계와 좌파」도 우크라이나의 중립성을 보장하여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 외교를 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며, 경제제재란 수단은 이란과 러시아의 정책을 결국 바꾸지 못했으며, 서방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돈을 써서 안 그래도 부족한 기후위기 대응 재원이 더 부족해졌다고 주장했다.

코드핑크, CND, 앤서 등 역시 우크라이나의 헤르손 탈환 직후인 11월 17일 “우크라이나의 평화로 가는 진정한 길: 협상”이라는 행사를 공동 개최하여, 나토 반대와 우크라이나 지원 중지를 해법으로 재차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연대 유럽 네트워크(ENSU)와 미국 우크라이나 연대 사회주의 캠페인은 이에 대한 규탄 성명을 조직하고 행사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규탄 성명은 현 상황에서 푸틴의 침략을 협상으로 끝내자는 요구는 실제로는 푸틴이 훨씬 더 많은 우크라이나인을 짓밟는 것을 지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푸틴의 승리는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러시아가 헤르손에서 이미 패배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여기서 멈추라”라고 요구하는 것의 저의를 묻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제 노동자 계급의 연대란 제국주의 침략자를 몰아내려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결의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오히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을 비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결권, 저항권과 자기 방어권을 분명히 지지한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바보들의 반제국주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진영논리’란 무엇인가? 뉴질랜드의 사회주의 매체 《반격》(Fightback) 지의 대프니 로리스는 「새로운 국제주의를 위하여」(12월 8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진영논리란 세계가 여러 개의 군사적 “진영”로 나뉘고, 그 중 가장 큰 것은 미국이 이끄는 서방 진영이라는 비유다. 따라서, 미국의 외교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아무리 억압적이거나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에 아무리 집착하더라도, 좌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이 정부들은 심지어 “반제국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마치 세상의 제국주의가 서구 제국주의 하나뿐인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진영논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도 세계 좌파 일부가 시리아 정부의 잔혹한 민주화 운동 탄압을 지지하고, 중국의 홍콩 시위 탄압과 위구르인 대량학살(genocide) 시도를 지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진영논리는 오직 서구 제국주의를 중심적인 문제로 놓기 때문에, 미국, 서방에 적대적인 국가에 대한 봉기나 투쟁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노골적인 음모나, 적어도 서구 제국주의 계획의 일부로 간주한다. 

로리스가 보기에 이러한 진영논리는 세계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에 근거한다. 즉, 세계 자본주의가 서구 제국주의의 근간이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가 세계 자본주의의 근간이라는 오해다. 일단 이렇게 오해하면, 서구 제국주의의 약화, 그리고 이를 통해 모스크바나 베이징이 워싱턴, 런던, 브뤼셀(유럽연합 본부)보다 우위에 서는, 일종의 “다극성”이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된다. 이는 모든 투쟁을 “서방”의 지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진영논리의 또 다른 심각한 오해는, 서구 활동가들의 활동은 “자국” 지배계급에 반대하는 것 외에는 전부 “식민주의” 또는 “백인 구원주의”(saviourism)라는 주장이다. 로리스는 반대로, 진영논리야말로 사실 서구 우월주의의 위장된 형태라고 주장한다. “자국”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압제자에 맞서 싸우는 피억압자들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잘 먹고 잘 사는” 미국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무장저항할 권리를 요구하는 우크라이나 사회주의자들을 “제국주의자” 혹은 “나치”라고 비난하는 현실이 생겨났다. 이는 전 세계의 억압받고 착취당한 사람들의 눈앞에서, 서구 좌파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개념 자체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보리스 존슨(영국 보수당 소속의 전 총리)과 같은 반동분자들은 우크라이나를 도우러 오는 반면, 제레미 코빈(영국 노동당 전 대표, CND 활동가)과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분쟁을 ‘양측의 책임’으로 만들며 러시아의 파괴와 약탈은 나토가 유발한 것이라고 변명하는 모습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한 진영논리에 대한 전쟁 당사자들의 비판이 얼마 전 한국 사회에서도 있었다. 12월 6일~7일, 국제전략센터, 정의당 배진교 의원실 등의 주최로 일련의 행사가 <국제진보포럼: 미국이 벌이는 신냉전>이란 이름 아래 열렸다. 여기에는 노엄 촘스키, 비자이 프라샤드와 같은 유명 해외 좌파 인사들이 연사로 초청되었다. 이들은 미국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의 평화로 가는 진정한 길: 협상” 포럼의 주요 참가자였다. 이러한 행사에 대해 재한 러시아인 반전단체 ‘보이시즈 인 코리아’(Voices in Korea)와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 한국 모임은 주최 측에 공식 항의 공문을 보내고, 행사장 앞에서 피케팅을 진행했다.

재한 러시아인 반전 커뮤니티의 비판은 다음과 같다. 행사의 주제와 초대된 강연자들을 보았을 때, 이 행사는 일부 서구 좌파의 진영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러시아의 활동가들과 페미니스트들은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의 반전운동과 우크라이나의 저항운동을 지원하는 반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들의 일부 좌파는 미국과 나토를 비판하기 위해 러시아의 끔찍한 행동에는 눈을 감는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냉전 시기에도 진영논리는 일부 좌파가 소련, 중국 및 기타 미국의 적들이 저지른 범죄를 합리화하거나 무시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전쟁에 반대하고 러시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러시아 시민은, 러시아는 반제국주의,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이 소련 서기장에게 한 약속(“나토는 동쪽으로 1인치도 이동하지 않을 것”) 때문에 다른 주권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미국 좌파들이 빠져있는 미국중심주의(Americentrism)다. 미국중심주의는 우크라이나 민중이 마이단 운동과 대러 항쟁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미국의 개입에 따른 결과로 해석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푸틴이 이 전쟁에서 이긴다면 러시아 민중은 더 많은 전쟁과 더 많은 고통에 내몰릴 것이므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것은 러시아 민중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와 권위주의의 강화 

 
 
민주노총 통일교과서가 러시아와 함께 ‘다극전환 진영’을 주도한다고 규정한 중국의 근황은 어떠한가? 시진핑 하 중국정치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본격화된 종신제의 폐지, 집단지도체제, 당정분리 등의 일련의 정치개혁이 역행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0월 22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전국대표대회)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고 시 주석의 측근들로 정치국 상무위원을 꾸렸다. 주석 3연임 제한이나 격대지정(현 지도자가 한 대(代)를 뛰어넘어 그다음 세대 지도자를 미리 정해 권력승계를 투명하게 하는 방식)과 같은 관행이 파괴되고 파벌간의 권력 균형도 상실되었다. 기득권 세력을 타파한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반부패 운동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고, ‘사회신용체계’와 고도화된 디지털 감시로 상징되는 사회통제와 신장 위구르의 대규모 ‘노동수용소’로 상징되는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도 강화되고 있다. 

시진핑 정부의 권위주의적 성격 강화는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반면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면서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국내적인 요인과,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대립 심화라는 배경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정치엘리트들은 미국에 맞서기 위해 정치적 단결이 필요하고, 경제성장의 열쇠인 첨단기술 혁신을 국가가 주도하기 위해서도 권한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중국이 미국에 맞서 강대국으로서 위상을 확립하고 지속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당과 시진핑의 권력 강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는 만약 성과를 증명하지 못하면 정당성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같은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정치 무대에서 퇴장한 후 중국에 확립된 ‘집단지도체제’는 시진핑 시기 점차 변화해왔으며, 그 방향은 시 주석 개인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2012년 집권한 이래로, 시진핑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닦았다. 정권 장악 초기에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제기하고, 지속적인 반부패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군대의 개혁과 강화(‘강군몽’),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의 현대화, 일대일로 구상 등 종합적인 통치 전략과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2016년, 시진핑은 당 중앙과 전 당의 ‘핵심’이 되어 권위와 책임을 높이고자 했다. 중국공산당이 총서기에게 ‘핵심’ 지위를 부여한 것은 처음은 아니다. 혁명 원로지배 이후 처음으로 집단지도체제를 시작하는 장쩌민 총서기에게 부족한 권위를 보완하기 위해 덩샤오핑이 ‘핵심’ 칭호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 ‘핵심’이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이를 통해 시진핑은 정치국 상무위원보다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뒤이어,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당의 지도 사상으로 당헌에 포함시켰다. 중국공산당이 국가를 영도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의 지도 사상으로 시진핑 사상을 확립한 것은 시진핑이 당과 국가를 모두 지도한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차기 최고지도자로 결정될 시진핑의 후임을 지명하지 않고, 뒤이어 개최된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여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포함시키고 국가주석직의 3연임 이상 제한 항목을 제거함으로써 장기집권으로 갈 수 있는 제도적 기초를 확보했다.

시 주석은 그다음 단계로 각종 조례와 규정을 개정하여, 자신의 위상을 더욱 강화했다. 첫째로, 정치국 회의에서 규정을 제정하여 정치국 상무위원을 포함한 정치국 위원들의 중국공산당 중앙과 시진핑 총서기를 향한 서면 직무수행보고를 규범화했다. 집단영도력을 누렸던 정치국 및 정치국상무위원들이 시진핑 총서기에게 직무를 보고하게 된 것은 시진핑의 ‘핵심’ 지위를 공고화하고 제도화했다. 둘째로, 조례를 개정해 당 총서기가 국가의 중요 의제 및 의결의 범위와 내용을 결정하는 최고 권한을 공식화했다. 이로써 총서기를 ‘동급자 중의 일인자’로 규정했던 집단지도체제의 의미가 약해지고, 총서기 1인이 사실상 중앙정치국 전체와 맞먹는 위상이 되었다. 

2021년에는 장기집권을 위한 정당성 강화를 시도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의 3차 역사결의가 이뤄진다. 3차 역사결의는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통해 중국의 부상을 위한 제도적 기초를 확보한 마오쩌둥, 경제발전을 통해 중국의 부상을 위한 경제적 기초를 확보한 덩샤오핑, 그리고 시진핑의 신시대로 구분한다. 시진핑은 신시대에 진입한 중국특색 사회주의가 전면적 소강사회건설을 이룩하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건설’을 달성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여정을 시작하도록 이끈 지도자로 규정한다. 즉, 시진핑을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도자로 확립하여, 장기집권의 정당성, 합법성, 필요성을 뒷받침하려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시진핑 시기 집단지도는, 일정한 임계를 넘으면 시진핑 1인지배로 역행할 수도 있다. 그 조건은 집단지도를 지탱하는 각종 규정과 규범을 1인지배에 유리하도록, 혹은 정당화가 가능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첫째, 공산당과 국가기관의 연령제와 임기제를 고쳐야 한다. 그래야 과거 마오쩌둥처럼 오랫동안 최고권력 권좌에 머물러 충분한 권위를 확보할 수 있다. 둘째로, 당·정·군의 요직에 자파 세력을 채우고, 견제를 제거하기 위해 반대 세력을 억압하거나 처벌해야 한다. 셋째로,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 총서기는 공산당의 사무총장 신분이므로 이를 통해서는 1인지배를 실현하기 어렵다. 공산당 총서기는 정책 조정자이나 당 주석은 최후 정책결정자다. 그리고 당 주석제가 부활해야 최고지도자와 정치국 상무위원 간의 권력 관계를 주종관계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시진핑은 1인지배로 향하는 과정에 있다. 이는 이번 20차 당대회에서 단적으로 확인되었다. 첫째로, 2017년 국가주석직의 중임제한을 수정하면서 시진핑의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위 주석 직위의 임기 제한이 사라졌다. 따라서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할 수 있었다. 또한 정치국 상무위원을 구성하면서 집단적 권력승계의 암묵적인 제도적 기초로 작용해 온 ‘7상8하’(67세까지 유임, 68세부터는 퇴임) 나이 제한도 파기되었다. ‘격대지정’의 관행도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시 주석이 3연임 이상을 노리고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일찍이 차기 총서기 후보자로 거론된 천민얼은 정치국 상무위 진입에도 실패했으며, 후춘화는 중앙위원으로 강등되었다.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50대가 없는 것은 2인자를 두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다.  

둘째로, 시진핑은 집권 초기부터 당·정·군의 요직에 자파세력을 채우고 대대적인 반부패 운동으로 경쟁세력을 제거했다. 20차 당대회에서는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 및 정치국상무위원회를 ‘충성파’ 중심으로 편제하고 최고위급 인사 배치까지 장악하여 당내에서 ‘1인 우위’ 지위를 공고화했다. 리커창 총리와 왕양 등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을 퇴각시키고, 옛 부하거나 비서, 동향 출신으로 충성도가 높은 4명을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배치하였다. 중국공산당 3대 파벌 중 지난 10년간의 반부패운동에서 집중적인 타격대상이 된 장쩌민계(상하이방)의 몰락과 함께, 시진핑과 갈등을 보여온 공청단파도 완전히 밀려났다. 40년 만에 정치국에 공청단파가 부재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공청단파를 대표하는 전임 최고지도자 후진타오는 회의 도중 회의장에서 미심쩍게 퇴장당했다. 이와 같이 당내에서 시진핑 친위세력(태자당)을 제외한 다른 파벌들이 몰락함으로써 최고 지도부 내 파벌 간의 견제와 균형은 어려워졌다. 

마지막으로, 이번 당 대회에서 당 주석 직위가 부활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1인지배로 이행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으나, 당 주석 직위의 부활을 제외한 집단지도체제의 규범은 이미 상당부분 훼손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공산당은 내부단속을 강화했다. 당 기관지는 “전(全) 당이 반드시 당에 충성”할 것과 “당내 정치적 갱단, 소그룹, 이익집단에 가담하는 자들을 엄정하게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이처럼 내부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여전히 장기집권의 기반이 공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한 권력 집중을 정당화할 경제적 성과는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애국주의를 고취시켜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펼치는 한편, 사회적 억압과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장기집권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중국 정치체제의 경직성이 높아질 것이며, 정치, 사회, 경제, 영역에 대한 통제 강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국 정치체제 내에서 점점 더 강화되는 시진핑 개인의 지위와 위상은 정책 대안과 방향 수정을 더 어렵게 할 것이며(예를 들어, 1인지배에 가까운 러시아의 권력 구조 속에서 푸틴 개인의 판단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 장기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임기 제한의 제거와 무기한 통치의 전망으로 인해 중국이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시진핑 정부의 공세적 대외정책 

 
 
시진핑 정부가 체제 정당성과 안정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경제발전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제고하는 것이 대안으로 부각된다. 시진핑이 집권 이후 내세워 온 ‘중국몽’에는 그러한 함의가 있다. 중국 경제성장의 성패를 좌우할 자체적인 기술혁신이 성과를 낼지는 불투명하다. 만약 경제성장이 지체되면,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위상을 높이고 과시하여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 부응하는 것을 체제 정당성 강화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에 따라 향후 중국의 대외정책은 대단히 공세적인 성격을 드러낼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20차 당대회 개막식에서 대만에 대해 “무력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으며 조국의 완전한 통일은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번째 대면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중국의 핵심이익 중의 핵심이익이며 중미 관계의 정치적 토대이자 중미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만의 중국의 핵심 이해관계인 이유는, 남중국해라는 전략적 지역에 위치하고, 첨단 반도체 생산기지로 미중 대립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적 역사관에서 비롯된 영토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이 중국의 국가적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현대사를 두 개의 100년으로 구분하여, 지금까지의 100년은 식민주의에 희생된 ‘굴욕과 분투의 100년’이었다면 앞으로의 100년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만들어 갈 것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아편전쟁으로 빼앗긴 홍콩과 청일전쟁으로 빼앗긴 대만은 굴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데에 핵심적인 상징이 된다. 현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서구 중심성을 대체하는 ‘신형국제관계’, ‘중국특색의 대국외교’, ‘인류운명공동체’ 개념에 따라 추진된 ‘일대일로’ 사업도 수익성 악화와 채권국들의 상환 불능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12월 시 주석의 중동 순방은 원유 대금 위안화 결제와 일대일로 사업 확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공산당은 과연 서구의 대안인가? 

 
 
중국공산당은 20차 당 대회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주창했다. 이는 “현대화는 서구화의 동의어가 아니다”(11월 3일)라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이 보여주듯, 경제·정치·문화에 있어 ‘중국 모델’은 서구식 체제와 다르며 더 우월하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의 시대인식과 연결되는데, “백년에 없는 대변동의 국면”이라는 시대규정을 주요 문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발전하고 부상하고 있는 데 비하여, 미국의 패권은 쇠퇴하는, 세력전이의 시기라는 의미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6년 트럼프 정권의 등장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퇴조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예가 된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은 미국과의 첨단기술 경쟁이나, 아태지역에서의 강대국으로서 세력권을 확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중국식 경제성장’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다른 국가들이 따라올 수 있는 대안적인 길로 제안한다.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식 성장모델을 전파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사회주의 이념과 중화문명의 내용을 결합하여 서구 문명과 구분되는 새로운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서구와의 체제 대립구도를 형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식 현대화’ 개념 이전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개념이 있었다. 이는 다른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 중국식 사회주의는 성공할 수 있다는 소극적 규정이었다. 그러나 ‘중국식 현대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공세적이고 적극적이다. 현대화에는 서구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식도 있으며, 중국의 길이 더욱 옳을 수 있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은 경제, 안보, 이데올로기를 포함하여 전방위적으로 한층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는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담론을 서구의 내정 개입 수단, 기만, 위선이라고 주장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변화한 기조 하에서는 오히려, 중국공산당의 통치야말로 서구보다 더 나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한다는 주장이 부각된다. 10월 24일, 중국 국영방송 중국국제텔레비전(CGTN)은 20차 당 대회 결과를 분석하는 차원에서, 장웨이웨이 푸단대학 중국연구원장과의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진핑 주석의 ‘책사’ 중 하나로 알려진 장 교수는 작년 중국 최고지도부(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의 30차 집단학습 강사를 맡기도 하였다. 장 교수는 당 대회에서 제출된 ‘중국식 현대화’는 곧 ‘중국 모델’이라고 명명하며, 중국 모델의 우월성을 설명한다. 그는 서구식 다당제 모델은 당파(partisan) 정당이 유권자들의 이익에 끌려 다니는 정치를 하게 되는 반면, 중국 모델은 통일된 정치권력이 진정으로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가 보기에 서구식 정치 제도의 핵심인 선거 제도는 필연적으로 저급한 인민주의로 귀결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무경험, 자격 미달의 지도자가 당선된 것이 바로 예다. 반면 중국에서는 당 지도부에 오르고자 한다면 적어도 1억 명의 시민을 관할에 두고 지역 행정을 맡은 경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도부를 향한 경쟁이 서구보다 더욱 치열하며, 유능한 정치인을 키워내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서구식 정치 제도의 시대는 지났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측 불가능해지는 세계 속에서, 중국의 정치제도는 훨씬 더 많은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중국공산당을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대안처럼 여기는 모습은 중국 밖의 사회운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소위 ‘자주민주통일’(자민통) 진영 일각에서도 이러한 중국식 ‘민주주의’, ‘인권’ 개념에 대한 친화성을 드러내고 있다. 7월 27일, 소통과혁신연구소 주최로 진행된 기획토론 “미중 전략경쟁 전망과 한국의 선택” 발제문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서구의 규정으로부터 해방시켜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타의 간섭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소극적 자유(개인자유지상주의)를 넘어, 더불어 향유하는 공동체적 자유와 인간의 자아실현이라는 적극적 자유(공동체주의)로, 신자유주의·세계화 시대 무력화한 국가에서 주권·보호·통제 기능이 강화되는 신국가주의로, 절차·형식 중심의 대의민주제에서 실질적인 인민의 주인화·통제화 중심의 전면적 민주화로, 시민·정치권 중심의 국제인권 담론에서 생명권 중심의 인권 담론으로 가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환을 가장 잘 실천하고 예증하는 사례를 중국공산당의 “국가사회주의”로 든다. 

앞서 확인한 미국 평화운동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코드핑크는 ‘중국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FAQ) 웹페이지를 개설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변을, 중국공산당이 운영하는 인터넷 뉴스 《인민망》, 국영방송 CGTN 기사 등을 인용하며 게시했다.  인도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비자이 프라샤드 또한, 중국과 세계 각지에서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고, ‘제로 코로나’ 봉쇄에 반대하는 시위가 진행되던 중인 11월 29일, 트위터에 마르크스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제로 코로나♥’라고 적힌 종이를 든 자신의 사진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크라이나 좌파의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중국공산당의 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대만, 홍콩 좌파 활동가들로부터도 찾아볼 수 있다. 대만 좌파매체 《뉴 블룸》(New Bloom)의 웬 리우와 브라이언 히우는 「대만으로부터 우크라이나로: 전시의 지정학적 재편과 반식민지 연대」(5월 24일)에서, 우크라이나와 대만이 놓인 상황의 유사성을 비교한다. 2019년 홍콩 시위가 “오늘은 홍콩, 내일은 대만”이라는 긴장감을 준 것처럼, 현재 대만 사회는 “오늘은 우크라이나, 내일은 대만”이라는 위기의식을 초당파적으로 공유한다. 우크라이나를 같은 뿌리를 가진 더 우월한 모국 러시아의 품으로 되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푸틴의 전쟁 명분은 대만을 점령하고 중국의 “영토적 통합”을 완성해야 한다는 중국의 주장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에 대한 국제적 담론도, 이 두 나라의 자체적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강대국의 요구나 강대국 간 합의에 순응할 것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즉,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대만에 지정학에 있어서의 식민주의에 대한 교훈을 주었다. 서구 좌파의 일부는 이러한 식민주의를 재현하며,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대응의 초점을 러시아가 아닌 서방에 돌렸다. 그들은 푸틴 정부의 공식 입장을 모방하여 ‘나토의 확대’가 러시아 정부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야기했다고 주장함으로써,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중국 제국주의의 옹호자들도 러시아를 옹호하는 서구 좌파들에서 힌트를 얻어, 서방을 유일한 비난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대만 민중이 자신들을 제국의 종속국으로 보는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과 협상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만은 어떻게 중국과의 전쟁을 억제할 것인가? 대만은 중국의 압도적인 군비, 보안기구와 절대 맞붙을 수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풀뿌리 동원을 통해, 국제연대가 ‘억제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2010년대 중반 이후 대만이 중국의 제국주의 침략과 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지역 내 풀뿌리 운동을 촉진하는 중요한 장소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만, 홍콩, 미얀마, 태국을 묶는 “밀크티 동맹”이 그 예시다. 필자들은 이러한 초국가적 연대가 아시아 지역, 나아가 세계에 더 많은 전쟁이 예상되는 현시점에 절박하며, 국경을 초월한 공통의 조직을 구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밀크티 동맹’은 중국의 개입과 민족주의적 압박을 받는 대만, 홍콩, 태국 청년의 반권위주의 온라인 연대로, 세 나라에서 흔히 마시는 밀크티를 상징으로 삼았다.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지지를 표했다. 2021년 6월 21일,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에 밀크티 동맹이 동남아 국가 한류 팬 클럽을 선동하고 여러 한국 기업과 미얀마 군부와의 연계설을 퍼뜨리며 반군부인사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한다는 주장이 실렸다.) 

8월,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두고 코드핑크, 앤서 등 미국 평화운동의 주된 대응은 미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합의를 준수하고 중국 적대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뉴 블룸》의 브라이언 히우는 이러한 미국 진보진영의 기류를 비판했다. 그는 8월 3일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방송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에 출연하여, 중국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하나의 중국’ 합의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퀸시연구소의 마이클 스웨인과 논쟁을 벌였다. 이때 그의 발언을 진보진영 내의 ‘징고이즘’(공격적 대외정책의 형태를 띠는 극단적 애국주의)에 비유한 《자코뱅》의 브란코 마르체티치를 비판하는 글도 발표했다. 히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미국 진보진영은 대만 민중의 자결권이나 대만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존중하려는 노력 없이, 대만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강대국인 미중 간에 논의된 ‘하나의 중국’을 절대시하고, 미중 간 직접적 전쟁의 가능성을 “최전선인 타이페이에 있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보다 지나치게 과장하여, 미국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이해관계를 수용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2년 11월 출간된 『중국 문제: 좌파의 관점을 향해』에 실린 글에서, 히우는 펠로시 대만 방문 사건에 대해 “대만인들은 미국 활동가들이 바이든 정부가 대만을 지지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을 목격하였고, 이는 국제 좌파에 대한 회의주의로 이어졌다. 즉, 국제 우파가 그러하듯이, 국제 좌파 또한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협상책으로 대만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같은 책에서 홍콩 출신의 윌프레드 챈도, 홍콩 시위대 일부가 미국 성조기를 들고 나와 “미국이 아니면 누가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을 막을 것인가?”라고 되묻는 현실은 국제 좌파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설명한다. 그가 보았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국제 좌파가 21세기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 있는 행위자가 될 수 있도록 이념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운동을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개발하는 것뿐이다. 

홍콩 출신 디아스포라 활동가 모임 ‘라우산’(Lausan, 流傘)의 프로미스 리도 「아시아인 혐오 폭력에 맞서는 것은 중국 정부에 대한 변론을 포함할 수 없다」(2021년 4월 4일)란 글에서 미국 진보진영의 중국 문제 대응을 비판한다. 서구의 많은 좌파들은 중국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자신들의 침묵을, 자결권 개념을 뒤틀어 정당화해왔다. “중국인들이 그들 자신의 모순과 투쟁을 관리하도록 놔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틀랜타 아시아인 대상 총격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볼 수 있듯, 미국 내 ‘친중’ 좌파와 ‘반전’단체들은 아시아인 차별 철폐와 자신들의 담론을 결합한다. 예를 들어, 앤서는 “아시아인 혐오 폭력 중단”과 “중국 적대시 중단”을 하나의 구호로 결합시킨 전국 행동의 날을 조직했다. 그러나 리가 보기에 이러한 운동은 미국의 침략에만 초점을 좁히고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기 위해 참사를 무기화하여, 사실상 [중국공산당] 옹호 입장을 강화했을 뿐이다. 그는 앤서와 같이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 반전운동을 주도하는 단체가, 미 제국에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국가들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는 조직화를 무력화해왔다고 비판한다. 중국공산당의 탄압에 저항하는 아시아인 및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폭력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중국 각지에서 ‘시진핑 퇴진’ 요구가 등장하다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는, 세계에서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에 대한 논쟁이 오가는 동안 고요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이던 중국 사회조차 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당 대회 개막 사흘 전이었던 10월 13일, 베이징 시 교통의 중심지인 시퉁대교에 중국 사회로서는 그간 공개적으로 찾아볼 수 없었던 문구의 현수막 2장이 내걸렸다. 현수막의 내용은 “PCR 검사 대신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 거짓말 대신 존엄을, 문화혁명 대신 개혁을, 영수(우두머리) 대신 투표권을, 노예 대신 공민(公民)을”, “독재자 시진핑을 파면하라”였다. 현수막은 즉시 철거되었으나 많은 사진과 영상이 SNS에 제보되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현수막을 건 사람은 중국 시민 펑자이저우로 밝혀졌으며, 그는 현수막 게시 직후 체포되어 현재까지 구금중이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제한된 중국에서, 당 대회를 불과 사흘 앞두고, 수도 베이징의 한복판에서 이러한 시위가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다. 당시에는 당 대회 진행에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내외 곳곳에서 시진핑의 장기 집권과 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소규모 시위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각지 중국인 유학생들의 호응이 있었는데, 10월 22일 당대회 폐막 시점까지 펑자이저우의 현수막과 비슷한 구호를 담았거나 시 주석을 비판하는 포스터가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 320개 대학에서 목격됐다고 집계되었다. 특히 제로코로나 정책에 따른 억압적 봉쇄로 인해, 폭스콘 공장, 광저우 시 등에서는 폭력적 저항도 분출되었다.  

11월 24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주민 10명이 사망하는 사건은 반정부 시위 확대의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따라 건물 입구에 설치된 구조물로 인해 주민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해 생긴 사고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3년 간 지속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발이 폭발했다. 이 사건이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탄압 정책의 대표적인 대상으로 알려진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발생했고 희생자 대다수가 위구르족이라는 점, 11월 20일 개막한 카타르 월드컵 중계 방송을 통해 중국 밖 세계에서는 ‘마스크 착용 해제’를 포함하여 자유로운 방역 정책이 이뤄지고 있음이 중국 내에도 널리 알려진 점, 10월 22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가 시진핑 주석의 3연임과 권력 강화로 귀결된 점이 전부 맞물렸다. 이에 따라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우한, 청두와 같은 중국 주요 도시들과 중국 전역의 50개 이상의 대학, 홍콩, 대만 및 세계 각지에서의 추모 시위가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란 구호를 내건 재한 중국인 시위가 처음으로 11월 30일 서울에서 열렸다.

시위의 상징은 아무 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 ‘백지’가 되었는데(‘백지 시위’, ‘A4 혁명’) 그 자체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일상이 검열의 영역인 중국 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 중국 당국은 이에 대응하여 우루무치 지역에는 약간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대도시에서는 거리에서 시민들의 휴대폰, 소지품 등을 검사하고 시위가 일어날 만한 장소들을 봉쇄하거나 영업 조기 중단 조치를 하면서 시위의 확산을 차단하고자 했다.  

세계가 이번 백지 시위에 주목한 것은, 중국 내 이러한 시위의 물결이 1989년 ‘천안문 항쟁’ 이후 33년 만의 광경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봉쇄 정책 해제 요구를 넘어 오늘날 중국에 민주주의와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는 제기와,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직접적인 규탄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차 당대회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주창한 지 한 달 만에 이러한 시위가 터져 나온 현실은, 민주주의와 법치, 표현·집회·이동의 자유가 결여되어 있으며 그 결과 생계와 안전 보장에도 실패하고만 ‘중국식 현대화’에 대한 중국 인민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영논리로는 한반도·동아시아 핵전쟁 위기를 막을 수 없다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권위주의, 팽창주의가 확대되는 세계정세는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남한 사회운동 내에서는 중국공산당과 푸틴 정권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이 어떻든 간에,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 러시아 정권의 적극적인 협조(특히, 중국의 경우)가 필요하고, 이 국가들과 경제적으로도 크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들과 척을 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미일군사동맹의 ‘북중러 적대정책’에 반대하고, 대만 문제 등에 한국이 최대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은 3연임이 확정된 뒤, 11월 15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에 대해 “한반도는 한국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응수하고, 11월 14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대면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강조하며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나 한미군사훈련을 먼저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 당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북핵을 미중 전략적 경쟁과 동아시아 내 중국의 영향력 제고에 활용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11월 18일 ICBM 발사 시험을 놓고 21일 열린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도, 중국 대사는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재차 언급하였으며,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올해 10번째로 열린 북한 미사일 관련 안보리 회의가 또 합의 무산으로 끝난 것은, 적어도 북한 문제에 대한 UN 안보리 공동 대응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한 7차 핵실험이 실현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전망이다. 

즉, 향후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핵 위기에 있어서 북한의 비핵화(이를 통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어떠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주지하듯, 시진핑, 푸틴 정부는 북한의 UN 대북제재 우회에도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중 간 전략적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북한이 핵 개발 노선을 고수할 여지를 넓히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하반기 북한의 연이은 무력시위와 ‘선제핵공격’ 법제화 등 핵 위협이 두드러졌다. 북한은 9월 25일부터 11월 18일까지,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10월 13일~14일, 18일~19일과 같이 수백 발의 포병 사격을 통한 무력시위도 있었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군사행위는 한미군사훈련에 따른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위 ‘북미 모라토리엄’, 즉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과 북한의 핵, 장거리 미사일 실험 중단이라는 암묵적 합의는 올해 3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으로 인해 파기되었다. 이때 이미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 정황도 포착되었다. 이후 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극초음속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실험이 이어졌는데, 8월 22일 한미연합군사훈련(‘을지 자유의 방패’)을 시작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올해 총 18차례의 미사일 발사(8월 17일 기준)가 있었다. 최근 몇 년 간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7차 핵실험 준비 흐름은, 전술핵무기의 실전 배치라는, 자체적인 핵 개발 시간표에 따른 행보로 보아야 한다. 

특히 북한 당국은 자의적인 안보 이해를 바탕으로 선제 핵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하는, 대단히 호전적인 핵 태세를 법제화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4월부터 북한 당국은 남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과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발언했으며, 9월 25일부터 2주간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는 ‘전술핵부대 운용훈련’이었다고 밝혔다. 9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의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다”(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라는 선포와 함께, 이러한 흐름은 핵무력 정책 관련 법령으로 ‘법제화’되었다. 이 법은 핵이 아닌 재래식 무기 공격이 있거나, 혹은 그런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만으로도, 김 위원장의 판단에 따라 선제 핵공격을 가하는 것을 합법화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러한 동향에 있어 근본적인 배경은 무엇보다도 “핵은 우리의 국위이고 국체이며 공화국의 절대적인 힘”(9월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설)이라는 북한 당국의 인식이라고 파악한다. 북한 당국은 일가와 정권의 생존을 핵무기라는 반인도적 대량살상무기 확보와 동일시하고, 남한과 일본 민중을 위협하여 정권의 안위를 보장받고자 한다. 북한 핵 개발의 역사를 상세히 검토하면 북한의 핵 개발은 모두 미국 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으며, 북한은 스스로 공언한 비핵화 약속을 거듭해서 어겼다. 단적으로, 북미 제네바 합의의 붕괴가 전적으로 미국 탓이라는 남한 사회운동 일반의 이해와 달리, 이미 북한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네바합의를 무시하고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2010년에 드러났다. 

북한의 핵 개발 의도가 무엇이든, 그것은 북한의 핵무장 해제를 요구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다. 다른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북핵 역시 존재 자체로 핵 전쟁 유발 요인이므로 규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반미, 반제국주의를 위해서 인류의 생존을 걸고 핵전쟁을 불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갔다고 평가받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피델 카스트로 수상을 비롯하여 쿠바인 일부가 소련에 핵무기 사용을 호소하며 “쿠바는 사라져도 사회주의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소련이 정말로 반미, 반제국주의를 기치로, 쿠바 내 핵미사일 배치를 끝까지 밀어붙이거나 심지어 핵무기를 사용했다면 세계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수억 명의 인구가 핵전쟁으로 죽더라도 그 모든 게 미 제국주의자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회주의인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 7차 핵실험 전망은 남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굉장히 물질성 있게 부상할 것이다. 올해 3월, 2017년 이후 5년 만에 북한은 ICBM 발사 시험을 재개하여, 12월까지 ICBM만 8발 발사했다. (한반도 핵전쟁 위기가 최고조였다고 여겨지는 2017년 당시에는 ICBM을 3차례 발사했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남한 핵무장 주장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은 한반도,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는, 즉 미국 핵우산의 무력화를 꾀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10월 12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파기하고 “우리 스스로 핵 능력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는데, 김기현 의원,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조경태 의원 등 여권 정치인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주장을 최근 수년 간 반복해온 이들이기는 하나, 실제로 북핵 위기가 심화하고 있으므로 여당의 당론과 윤석열 정부의 정책 변화에 이러한 목소리가 반영될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핵무장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한반도에 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와 약속한 바가 있기 때문에 [핵무장은] 약속을 깨는 게 될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고 있고 한미가 공동대응 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 핵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북한의 ICBM 개발은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하므로, 이러한 정부 기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 핵무장론 관련 동향은 갈수록 심상치 않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작년 칼럼에서는 남한 핵무장은 미국이 허용할 리 없으므로 “논리적이나 불가능한 꿈”(《매일경제》, 2021년 11월 3일)이라고 쓴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이번 8월 칼럼에는, 올해 처음으로 워싱턴 조야에서 남핵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썼다. 최근 남한 엘리트층 사이에서 핵 개발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생긴 것을 미국에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조선일보》 사설도 전술핵 공유 혹은 핵무장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강조했다. 4월 19일 사설은 “北 전술핵 미사일까지, 실질 군사 대비 않는 건 안보 포기”라며,  “핵은 핵으로만 억지할 수 있을 뿐이다. (중략) 우크라이나가 핵 보유국이면 애초에 침략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김정은도 걸핏하면 한국을 향해 핵 공격을 위협할 것이다. (중략) 정치 외교 협상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화한 북핵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적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안보 포기일 따름이다. 평화를 지키려면 북핵과 동등한 억제력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어떤 논의도 현실 회피와 눈속임일 뿐이다.”라고 썼다. 북한의 ICBM 고각발사 사흘 뒤인 11월 21일 사설은 “韓 전술핵’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북·중에 메시지 될 것”이라며, “미국은 핵우산과 연합훈련의 강화, 추가 제재를 말하지만 이는 한국이 맞닥뜨린 실존적 위협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북핵의 효용을 ‘0’으로 만드는 방법은 하나다. 한국이 핵을 갖는 것이다. 핵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지 않기 위해서다. 정치권 일각에서 미국 전술핵의 공유 또는 재반입, 자체 핵무장 주장까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비확산을 중시하는 미국이 수락하긴 어렵겠지만 계속 두드려야 한다.”라고 썼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같이 문재인 정부 시절 기관장을 지냈으며 ‘햇볕론자’로 여겨진 인물도 최근 핵무장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정확히는 한국이 즉시 핵무장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바라지 않고, 대만 침공을 감행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핵무장이라는 옵션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韓, 핵 없으면 중국 ‘천하’ 밑으로 들어간다”, 《신동아》, 2022년 11월 19일 / 이근, “나는 왜 핵무장을 말했나-①”, alookso, 2022년 11월 22일 / 이근, “핵무장과 ‘진짜 국익’ - 나는 왜 핵무장을 말했나-②, alookso, 2022년 11월 23일) 

이 교수의 전제는 다음과 같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 등장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인류에게 익숙한 강대국 국제질서와 아주 다른 근본적 도약이었고, 작은 국가인 한국도 이 속에서 안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말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는 이전의 낡은 국제질서로 되돌아가자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때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실제 국가에 대한 호불호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어떤 국제질서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이다. 그런데 강대국들이 제국이 되어 각자의 세력권에 ‘천하’를 건설하고 서로 다투는 국제질서에서는 한국이 설 자리가 없다. 이 교수는 그런 세계 속에서 한국은 아마도 중국의 속국, 소국이 될 것이라고 본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미국의 확장억지가 더는 작동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므로, 그런 상황에서는 “[남한에] 핵이 없으면 북한과 협상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 이는 진보 진영도 납득해야 한다. 핵은 보수 진영만의 어젠다가 더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대만에서 중국을 억지하지 못하면 아시아는 끝”이며, 대만이 침공당하고 남한에 핵이 없는 상황에서, 남한이 지금까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릴 방도는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핵 위협이 시시각각 실체적 위협으로 떠오르고, 이에 대한 반발로서 남한 독자 핵무장론이 부상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사회운동은 기이하다고 느껴질 만큼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번 9월 북한의 선제핵공격 법제화를 명시적으로 비판하고 폐기를 요구하는 사회운동단체는 사회진보연대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정도다.([2022년 5차 워크숍] 2022 북한 신 핵법령의 문제점과 평통사의 과제)

반면 민주노총 통일교과서는 100만 명 이상의 조합원이 가입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중조직이, 북한의 선제핵공격 법제화를 사실상 합리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0월 27일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참여연대 등이 참여한 <한반도 위기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전쟁을 부르는 군사행동을 멈춰야 합니다> 는 “어떤 나라도 핵무기 사용에 대해 법령으로까지 발표하는 경우는 없다”(평통사)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선제핵공격 법제화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미군 전략자산 전개와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의 강행이 있었고, “이에 따른 북측의 대응”도 강경해지고 있으므로 한미 대규모 연합군사훈련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요구다. “2018년 이루어진 남북·북미 합의, 북측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은 군사훈련과 군비 증강, 제재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한미동맹의 행동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는 기조, 그리고 북한의 선제핵공격 교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7차 핵실험 준비 등에 대한 선택적 침묵은 11월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와 같은 대규모 대중집회에서도, 한미일 정상의 프놈펜 성명에 대한 민주노총 규탄 성명(“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프놈펜 성명 지금 당장 폐기하라!”, 2022년 11월 17일)에서도 이어졌다. 
 
 

사회운동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반서방 연대’라는 인식틀은 ‘바보들의 반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의 권위주의 정부는 정상회담과 친서 교환 등을 통해 반서방 연대를 공언하고 과시한다. 올 초 UN 긴급총회에서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기권(중국, 이란) 혹은 반대(북한)를 하고,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UN 안보리의 규탄과 추가 제재를 막고(중국, 러시아),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돕고(중국, 이란, 북한)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듯이 실물의 연대도 오간다. 

하지만 이러한 권위주의 국가 연대에 저항하는 세계 민중의 연대도 이미 시작되었다. 중국 각지에서 ‘백지시위’가 시작되자 홍콩의 라우산과 ‘국경 없는 운동’(無國界社運, Borderless Movement)은 「우루무치에서 상하이까지: 중국과 홍콩 사회주의자들의 요구」라는 글을 발표하여 연대를 표했다. 11월 9일, SR, 페미니스트 로지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의 페미니스트 단체들은 「이란 여성과 연대하는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 선언문」을 발표했다. 지난 8개월 동안 우크라이나 민중이 푸틴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해왔다면, 지금 이란 민중은 독재적이고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자국 정권과 엘리트만 배불리는 경제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언문은 “이란에 자유를! 우크라이나에 자유를! 우리는 함께 승리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11월 24일 이후 중국 민중의 시위 속에서도 대만, 홍콩, 우크라이나, 이란 민중을 지지한다는 발언이나 피켓이 목격되었다. 한국에서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전쟁과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재한 러시아인 커뮤니티와 이란 반정부 봉기를 지지하는 재한 이란인 커뮤니티, 11월 30일 ‘백지 시위’에 참가했던 재한 중국인 일부의 공동 집회 <우리는 연대한다>가 열렸다. 이들은 비슷한 민주화 요구를 공유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원유 수입, 무기 지원으로 이를 돕는 이란, 중국 정부를 규탄한다는 점에서 연대했다.
 

우리 사회운동은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 북한의 핵무장이 미국 패권의 붕괴와 세계 자본주의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는 일부 좌파의 믿음은, 세계 곳곳에서 침공과 국가폭력으로 일상이 무너지고 생존을 위협받는 수많은 이들, 신변의 위협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수많은 민중을 외면하고 이들에게 ‘네오나치’, ‘서방의 대리인’이라는 잘못된 딱지를 붙이는 데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중국, 러시아, 북한의 권위주의와 핵무력에 둘러싸인 남한 민중이 그러한 ‘서방의 대리인’ 처지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마지막으로, 진영논리는 사실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한 러시아인 활동가들이 지적했듯, “냉전 시기에도 진영논리는 일부 좌파가 소련, 중국 및 기타 미국의 적들이 저지른 범죄를 합리화하거나 무시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즉, 세계 좌파는 소련의 1932~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홀로도모르’), 1956년 헝가리 혁명 진압, 1968년 ‘프라하의 봄’ 진압,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같은 사건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비판하지 못했을뿐더러, 스탈린 시기 소련의 ‘대숙청’과 ‘속삭이는 사회’, 중국 문화대혁명의 참상도 보지 않으려 했다. 이는 결국 현실 사회주의의 허망한 붕괴와 환멸로 이어졌다. 따라서 진영논리를 벗어나, 민중의 민주주의, 자유, 인권, 자결권이라는 가치에 입각하여 우크라이나, 대만, 홍콩, 이란 및 세계 민중의 반권위주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패배’ 뒤 지금 21세기에 다시 마르크스주의적 실험을 전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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