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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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십년 활동 실수기

박하순 | 집행위원장
노동단체에서 활동하던 시절 노동조합 교육을 가서 진땀을 흘린 적인 한 두 번이 아니다.
약 8-9년 전, 그러니까 노동운동 초짜시절의 이야기다 - 지금도 초짜 아닌 초짜로 활동을 하고 있기는 매 한가지이지만. 어느 규모가 큰 백화점의 노조 대의원을 상대로 ‘신인사제도’를 교육하러 갔을 때의 이야기다. 참가자 숫자를 모르고 갔는데 현장에 도착해보니 울긋불긋한 색깔의 스포티한 옷차림을 한 150여명의 대의원들이 해변가 호텔의 커다란 강당에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약 3-40명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니지. 참석자 숫자를 전혀 파악하거나 예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 3-40명의 숫자는 그때까지 내가 나갔던 교육의 평균규모정도였던 것이다. 일단 그 숫자에 기가 질렸다. 둘째로 수수한 옷차림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형형색색의 옷차림에 놀랬다. 그리고 카페트가 깔린 호텔 강당이 날 놀라게 했다.
기가 질려 상기된 상태에서 교육이 시작되었다. ‘신인사제도는 노동자 사이 경쟁을 격화하고,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며, 소수 핵심 노동자군과 다수 주변 노동자군으로 노동자를 분할하며, 능력주의 인사제도로서 승진을 억제하고...’ 주절주절. 신인사제도의 일반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썰렁하다? 알고 보니 이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승진에 이해관계가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기껏 승진하는 사람들이 대리 과장까지 하고 참석자 다수를 구성한 여성들의 경우 승진사다리 자체가 아예 없는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헛발질을 한 것이다. 다행히 중간에 이 사실을 파악했으니 망정이지. 이제 실수를 만회해야지. 한 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兵家之 常事)’가 아니던가.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았다. 승진 문제로 채워야 할 시간을 다른 이야기로 채워야 하니 자연 아까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 사업장에 적합한 이야기인가 내 스스로 의문이 든다. 실수가 계속된다. 식은땀이 줄줄.
사자후를 토하면서 자본에 대해 폭로를 하고 선전선동을 해야 할 활동가가 얼굴이 상기되어 교육을 하다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교육을 마쳤으니 볼 장 다 본 교육이었다. 난 이후 교육을 갈 때면 최소한 참석자 숫자는 반드시 체크를 하고 교육장을 머리에 그려본다.
또 한 번은 금융노련 간부 교육을 갔다. 사무처 간부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단위 사업장 위원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신인사제도 교육.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내가 해야 할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다. 그것도 사업장의 구체적이고 풍부한 사례까지 덧붙여서. 내가 좀 막힌다 싶으면 참가자가 나와서 ‘강사님이 하고자 한 이야기가 이런 것 아니예요?‘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을 한다. 나와 참석자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면서. 아니 이렇게 잘 알면서 왜 교육을 요청한거야? 그 뒤로는 다리가 풀린 것처럼 힘없는 교육이 이어졌다.
난 이후 교육을 갈 때면 교육생들이 교육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대강 파악을 한다. 사전에 파악을 하지 않았으면 교육 첫머리에 이런 저런 질문을 통해 대충 파악을 한다.
교육은 아니지만 유사한 경험 한 가지. '투자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 주최 ’고이즈미 방한 규탄과 한일투자협정 체결반대 결의대회‘ 비슷한 명칭의 마무리 집회에서였다. 발언을 하나 하란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때 교내 웅변대회 2등, 동화구연대회 전교 4등의 자랑찬(?) 경력이 있는 ’나‘이긴 하지만 그 시절 그 때와는 달리 내가 대중연설에 젬병이라는 것은 내가 너무도 잘 안다. 오죽했으면 주위에서 발언을 하라면서 ‘교육 한번 하지요?’ 한다. 연설스타일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뭐 설명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해서 놀리는 말이다. ‘한일투자협정 체결 저지 책임자’라는 무게 있는(!) 직함을 가지고 발언을 절대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에라, 한번 해보자. 집회참석자 수도 얼마 안되고 마무리니까 짧게 해도 되겠지 뭐.
‘어쨋든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일자리도 늘리고 할 투자협정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얼핏 보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요? 그러나 오늘날의 외국인투자는 전부 금융투기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금융투기꾼의 이익보장을 위해서 구조조정을 강제해...’ 어쩌구 저쩌구. 그러다가 TV 방송사고 같은 정적이 수시간같은 수초동안 흘렀다. 제 딴에는 좀 세련된 논리를 전개해 보려다가 그만 말이 막혔다. 이를 어쩌나. 뒷말을 잇지를 못하겠다. 에라, 어떻게든 이어보자. 혀가 굳어지면서 테이프 꼬일 때 나는 소리처럼 말을 잇다가 서둘러 발언을 마치고 들어왔다. 대열 맨 앞에 있던 몇몇 안면이 있는 분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대열 후미로 들어왔는데 이제는 옆에 있는 동료들을 쳐다보지 못하겠다. 왜 나에게 발언을 시켰냐는 둥 자책성 농담성 이야기를 몇마디 하고 있는데 국민행동 일을 열심히 하는 한 동료 왈 “‘국민행동’에 사람 없다 없어”하며 탄식조로 약을 올리는데 그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난 이후 어떤 강압과 유혹이 있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발언은 절대 안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외에도 나의 실수나 치부는 많이 있지만 ‘오늘은 마 요기까지’.

노동운동을 한다고 단체활동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라 했던가.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게 없고 실수와 오류 투성이다. 누구나 어느 조직에게나 실수나 오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실수나 오류를 딛고 제대로 된 활동가나 조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의 민주노총 사태를 보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본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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