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6.26호

노무현이라는 배에 동승해서 서로 딴 생각하는 사공들

김예니 | 편집부장
연일 계속되는 TV방송, 그리고 기획 토론회, 성대한 축제를 방불케 하는 국민경선제와 양당의 후보를 비교 분석하는 신문지면, 그리고 정치인지지 모임들. 무엇보다 눈에 틔는 것은 ‘노사모’를 비롯한 정치인 팬클럽과 노풍으로 불리는 노무현의 세력화다. 노무현을 지지하려고 대중을 스스로 조직하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노사모”와 조직적인 기반 없이 혜성처럼 나타나 국민경선제를 통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노무현”, 이 둘이 주는 신선한 이미지는 정치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언론은 수선을 피웠다. 그리고 드디어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민주당은 국민경선제를 통해 집권 말기 집권여당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경제위기, 정치위기를 당장은 모면한 듯 보인다. 하지만 어차피 국민경선제의 핵심은 누굴 후보로 추대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그 과정에서 당선가능성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미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없었다. 정치 무기력증을 극복할 대안이라도 찾은 듯 떠들어대는 언론도 이제는 투표율을 걱정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의 지지도는 나날이 그 거품이 빠지고 있다. 결국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 정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없어 보인다.
사실 국민경선제 승리는 당의 지지일 뿐, 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의 지지가 아니다. 우선, 누가 국민경선제 투표과정에 참여하느냐의 문제이다. 국민경선제 투표과정에 참여하여 투표권을 행사한 사람은 당원이었고 국민이 이 투표과정에 참여한다고 해도 그것은 무척 제한적이었다. 이것은 분명 대선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당선 가능성을 놓고 가늠할 때 노무현의 우세를 민주당이 인정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조직적 지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애초에 국민경선제가 국민의 정치참여의 폭을 넓힌다는 것은 사실무근이었다. 다만 더 빨리 대선체제에 돌입하여 더 많은 언론을 통해 더 많이 보이는 것뿐이다.
일시적인 인기에 영합한 바람일 뿐인가, 아니면 개혁적인 이미지에 보내는 국민의 지지인가. 그가 주는 진보적 표상은 무엇이며 왜 노풍으로 인해 진보진영마저 술렁이고 있는가. 또한 현시기 대중에게 정치의 희망은 무엇이기에 노풍과 노사모로 대표되는 활동이 부각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이 당의 지지를 국민의 지지로 만들었던가, 이것을 밝히는 과정에서 노무현 열풍의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노무현의 진보적 표상의 본질

국민경선제의 최대 수혜자가 노무현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심지어 한나라당에서조차 노풍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면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무현이 주는 정치적 대안이 무엇이며 왜 노무현이 지지를 얻는지, 그 이유를 하나하나 분석해보아야 할 것이다.
첫 번째로 노무현이 주는 87년 대투쟁 이미지의 문제다.
그는 현재 정치 청사진으로 87년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민주/반민주 구도 속에 민주대연합을 복원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는 87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그의 전력과 함께 노무현을 진보적인 인사로 만들고 있다. 노무현은 신민주대연합의 세력으로 YS가 이끄는 구 민주계와 한때 야권통합을 주창했던 통추(통합추진회의)그룹, 그리고 한나라당 개혁세력을 지목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마자 3당 합당시절 변절자로 공격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들 비리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서 실제로 탈DJ를 시도하는 듯하면서도 겉으로는 차별화 같은 야박한 정치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 그가 말하는 87년 투쟁의 정신은 87년 DJ와 YS의 결별로 대선투쟁에서 패배하면서 남은 미완의 과제, 민주화와 지역극복이다. 그렇다면 신민주대연합의 의미는 현재 한국사회에 민주화와 지역극복이 꼭 이루어야할 과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김영삼으로부터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집권초기 이니셔티브는 언제나 중도개혁이었고 신자유주의 개혁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 노무현이 이들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자로 스스로를 지목했다는 것은 바로 그 정당성을 87년으로부터 부여하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지속하겠다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특정지역을 거점으로 지역패권을 형성하고 있는 기존의 정치를 바꿔내는 것이 바로 세대교체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노무현은 그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판단이다. 노사모에 의해 적극적으로 홍보되었던 바,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세대교체의 표상을 획득했다. 특히 이번 국민경선제를 통해 얻은 영호남을 축으로 한 정치적 지역주의를 탈피해 정치적 지역통합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당의 평가가 노무현에게 오버랩 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지역적인 불균형과 그에 기반을 둔 지역주의는 과거와는 또 다른 형태로 극심해지고 있다. 다만 영, 호남의 대결이 아니라 더 다양한 형태로 지방예산이 넉넉한 지역(세금 수익이 많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지역적 불균형 발전과 그에 따른 주민들의 갈등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노무현이 지역극복에 적절한 이유는 다만 그가 부산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없다. 지역주의가 한 사람을 지지하는 것으로 극복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또한 삼김시대를 극복한다는 이미지가 노무현을 표상하는 것은 부당하다. 왜냐하면 이미 삼김시대는 자연히 소멸하게 되어 있으며 오히려 노무현은 이미 그 유효를 다한 YS와 DJ를 신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려하고 있다. 결국 현재 몰락한 DJ의 생존을 보장하는 대목에서 노무현이 삼김정치와 단절할 수 없을뿐더러 DJ의 후계자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으로 노무현의 결말을 DJ의 오늘 속에 검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울산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저지투쟁과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 저지투쟁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노무현이 노동자와 기업가의 화합을 위해 애썼다는 점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노사화합주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노사화합주의의 본질은 작년 여름 노무현이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대우자동차 문제를 묻는 기자에게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살려낼 방법이 없다. 노동의 유연화 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젠 도식적인 논리, 그런 것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대답했다.
그가 말하는 노사화합주의란 바로 그가 말했던 것처럼 ‘구태의연한 사고’로 노동자와 기업가가 적이 되는 것을 중재하고 노동자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설득하는 것이다. 사실 계급대타협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누굴 위한 화합이고 무엇을 위한 대타협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미 확인하였다. 그리고 노무현이 현재 제안하고 있는 정책에서 꼼꼼히 따져보고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과 보다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구조조정을 수행하겠다는 입장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임을 알아야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문제는 평화와 화합 속에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갈등적으로 느끼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누구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노사화합주의란 있을 수 없으며 노사화합주의로 국면을 모면하려는 노무현의 정치는 결정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 위기를 관리하고 지연하는 신자유주의 정치공학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자, 그들의 동상이몽

노사모는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노사모는 이미 역사 발전의 주인, 주체다. 노사모는 충분히 강하다. 노사모가 나아가는 길은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쫓아가는 길이기에 승리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념적 지향을 밝히지도 않은 채 노무현이 옳기 때문에 다른 것도 옳다는 식이다. 노사모는 다만 하나의 예일지도 모른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다양한 흐름, 그리고 그 위험한 징조에 대해 살펴보자.
첫 번째로 Anti 조선류의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이다.
현재 노사모를 비롯하여 Anti조선 운동을 하던 시민운동단체들은 방송의 중립성 확보와 이에 따른 신문권력의 약화, 인터넷의 등장이라는 변화가 정치지형을 바꾸고 언론권력의 몰락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주된 형태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노무현 지지활동과 함께 조선일보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노무현과 교감하는 부분은 단지 노무현이 과거에 조선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는 전력뿐이다. 노무현은 언론개혁에 대해 ‘신문 국유화’를 주장하다가 ‘술자리에서 한 말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번복했다. 이에 노사모나 Anti조선은 노무현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보수세력의 반동적인 공세 때문이지 노무현의 의지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고 믿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은 현재 민주당과 정책협의를 진행하면서 당선 가능한 선에서 타협하고 온건적인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려고 고심하고 있다. 노무현의 한계는 이미 DJ에서 검증했다. 결국 문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대중투쟁 속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지로 포장된 몇 마디의 과격한 발언이 그 무엇도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두 번째로 비판적 지지를 입장으로 밝히는 세력이다.
민주노동당이 당 안팎의 ‘노무현 비판적 지지’논란으로 동요하고 있다. 지난 3월 ‘노무현 바람’과 함께 시작돼 노무현 고문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후 더욱 거세진 이 논란의 핵심은, 지역주의 청산 등을 위해 노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진보정당의 독자적 대선후보 당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의 대립이다. 비판적 지지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은 87년 민주정부수립을 위해 DJ를 ‘비판적 지지’했던 것처럼 일반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노무현을 ‘비판적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비판적 지지는 87년의 비판적지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세적 조건의 차이 때문이다. 당시 87년 폭발적인 대중투쟁을 바탕으로 DJ를 견인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함이 배반당한 오늘, 대중투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대중투쟁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노무현을 비판적 지지하겠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현재 비판적 지지의 핵심적인 근거는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는 것이다. 이 근거의 바닥에는 당선가능성이 깔려 있다. 또한 이회창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심리가 전제되어 있다. 얼마 전 이회창 후보가 615선언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이는 자기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하듯 김대중은 노무현의 리트머스지이다. 노무현의 한계란 김대중을 벗어나기 어렵다. 87년과 현재의 정세의 차이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2년 대선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 없이 후보전술에 한정하여 당선만을 목표로 움직여 낸다는 것은 또 한 번 배반당할 것을 자초하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시장은 이문옥! 대통령은 노무현’이라는 주장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소위 젊은 지식인을 비롯한 386세대이다.
30, 40대 386세대가 모여 노무현 지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이미 386세대의 다수가 기성정치계에 뛰어든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현재 386으로 표상되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그들은 대개 노무현 지지를 중심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386세대를 포함한 젊은 지식인층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노무현을 지지하고 있다.
우선 그들의 경우 87년의 경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그때부터 지금까지 더 좋아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386은 변혁을 포기하고 퇴행하는 역사 앞에서 좀 더 나은 개혁을 찾기 위한 모색으로 신자유주의 시대 합리적 개혁세력으로 스스로를 표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87년 민주화투쟁의 적자를 민주당으로 설정하면서 그것을 지키고 완성하기 위해 노무현을 지지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획득한 80년대 학생운동의 도덕성을 이미지화하고 박제된 80년대 운동의 기억을 무기로 그들은 여전히 그들이 도덕적이며 민중에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이미 대중투쟁의 폭발적인 경험을 다만 몇 몇 정치인사의 성과로 가두고 그 후광을 등에 업고 스스로 세력화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반이회창 정서를 중심으로 노무현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묶여 있지만 이회창을 반대하는 것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문제는 젊은 지식인을 비롯한 386세대가 운동과 변혁을 포기하고 기성정치 안에서 개혁세력으로 동원되고 현실에 눈과 귀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기성정치인들과 별반 달라질 바 없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최고 수혜계층이 있다면 그것은 386세대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서민적인 이미지에서 과격할 정도로 과감한 정치색까지. 하지만 아직 노무현은 단 한 번도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대답한 적이 없다. 사람들은 아직 노무현의 전력 속에 다만 상상하고 추측할 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들의 소망을 노무현에게 투사하고 있고 노무현이라면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미 대중은 어떤 형태의 이데올로기에 동원되든 나름의 정치활동을 펼치고 있다. 핵심은 다만 그 팬클럽사이트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욕구는 대리충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욕구의 충족, 해소라는 점은 불만을 대중적으로 조직하고 대중운동을 활성화시켜 변혁에 복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고 다만 인터넷 앞에서 자족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들의 순수함은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민주당에 적극 이용되면서 대중조작이 이루어지고 그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결국 민주당의 뜻대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핵심적인 문제는 정치가 지배계급의 이해에 충실한 정치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중의 정치로 대중투쟁을 일구어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 동력과 내용으로 대선투쟁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면, 현재 진보진영이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점이다.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노무현이라는 배, 노무현은 차선일 수 없다.

현재 노무현은 김대중과 특별한 변별점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이 당선되던 당시 처음에는 IMF와의 재협상을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몇 차례 스스로의 입장을 번복하였다. 그는 자신의 진보적인 이미지를 위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발언했다가 번복하였던 것이다. 현재 노무현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했던 말들이 색깔공세로 되돌려질 때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과거를 부정하거나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것 이상일 수 없다. 노무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현재 노무현의 정치구도는 김대중을 살리면서 노무현이 필승할 수 있는 구도로 신민주대연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대선투쟁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책임을 묻고 민중의 정치를 아래로부터 만들어 대중투쟁을 만들고 민중운동진영의 단일한 행보를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을 포기하고 또 한번의 배반의 역사를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대선은 DJ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공세적으로 비판하고 경제위기를 비롯한 현재의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는 길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뿐임을 대중적으로 공유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런 대선에 대한 전반적인 의의를 공유하고 대중투쟁의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후보전술과 대선전술이 논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노무현 지지(아무리 비판적인 지지라고 하더라도)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으로 대중운동을 대체하는 무모함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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