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7-8.27호

노동자를 볼모로 팽창하는 금융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정지영, 최원탁 | 정책부장, 민중복지연대
들어가며

미국 발(發) 경제위기에 대한 논쟁이 신문 지상에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경제위기가 현실화될 것인가, 아닌가 여부를 떠나서 현재의 상황은 미국 증시의 움직임이 남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계속 떨어지고, 지난 한 달간 남한의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각종 일간지와 매체에서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진단하느라 부산하고, 경제학자들, 이데올로그는 정부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금융 부문의 팽창을 통해 이윤율 하락을 상쇄해보려는 자본주의의 몸부림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연시킬 뿐이라는 점, 결국 상시적 위기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을 상기할 때, 궁극적인 대책은 누구도 내놓지 못한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대책이라는 것은 또 다시 민중들에게 위기를 전가하여 좀 더 버텨보자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요구에 화답하듯이 6월 27일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한국은행 등을 모아 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공기업과 금융기관의 민영화, 연기금 조기투자, 기업연금 활용, 주식투자 자산활용방식 변화 등의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정부는 계속해서 금융정책협의회를 열어 이런 저런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세 번째 정책협의회에서는 ▲주식의 장기수요기반 확충 ▲자산운용산업(각종 투자신탁회사가 대표적이다)의 획기적 육성 ▲증권시장 운영체계 효율화 ▲주주중심의 경영과 공정거래질서 확립 등의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이 정책방향 하에서 자산운용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간접투자상품, 파생금융상품 개발을 확대하고, 기업연금제도들 법제화하고,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늘이기로 했다.
증시를 부양하기 위한 조치들의 핵심에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와 기업연금제도 도입이 놓여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금융화 국면에서 연기금은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노동자 민중들이 노후소득을 보장받기 위해서 모아두는 돈이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팽창하는 금융의 강력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 연기금은 아직 미미하다. 이는 현재 남한 자본주의에게 있어서 연기금이 새롭고도 거대한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다. 따라서 현행 퇴직금 제도를 적립 방식의 기금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며, 계속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의 주식투자 한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증시 하나에 요동치는 주식시장에 노동자 민중들의 생계원천을 내맡기겠다는 이런 조치들은 민중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본 글은 노후소득보장의 안정성 강화라는 허울 아래 가시화되고 있는 기업연금제도가 가지는 의미를 금융의 새로운 전략 속에서 찾아보려 한다. 이를 통해서 현 시기 논의되는 기업연금제도가 과연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인가를 밝힐 것이다.


금융의 자유화, 탈규제

남한경제에서 금융개혁은 금융시장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했던 각종 금융규제를 완화하여,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한편, 이를 통해 소유-경영의 분리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본시장(주식시장)의 자유화와 이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는 현 시기 남한경제 위기심화의 주된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쟁점을 제공하고 있다. 자본시장은 정부투자기금법에 따라 교육업 등의 일부투자금지항목, 공기업 등의 투자지분 제한항목 이외에 모든 부분은 완전개방 되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기업에 대한 개인소유, 외국인 투자지분의 제한정도를 완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공기업은 투기대상으로 전락했으며, 초민족적 기관투자가들의 포트폴리오 투기전략과 정부의 필사적인 주식시장 부양전략에 따라 사유화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WTO 도하개발의제에 따른 협상은 남한 경제의 개방 및 자유화를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정부는 이미 금융 분야에서 상당 수준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를 추진했으며, 그 결과 현재 남한 금융시장은 거의 완전 개방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에 맞추어 상업적 주재와 관련한 지분소유 제한, 사업형태 제한, 국적요건 등을 더욱 자유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 성격이 강한 교육과 의료 분야도 협상 분야에 포함되어 외국에 시장을 개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확장되는 개방화, 자유화 조치는 남한 경제를 금융화의 논리 속에 더욱 깊숙이 편입시키면서,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초민족적 자본의 투기적 활동이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현시기 DJ정권과 자본의 제반 정책 목표는 '주식시장 부양'에 맞춰져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기관투자가들의 주식운용 확대에 역점을 두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주식운용 확대는 한마디로 증시 수요기반의 확충, 수급개선, 증시의 효율화, 자본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촉발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에 금융기관들이 자본시장에서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늘려 시장의 기관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상 속에 사회보장체계로 불리던 의료시스템, 연금, 보험 영역의 개혁은 금융자본에게 집중된 화폐자본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화된 금융의 틀 속에서 가장 큰 결정력을 가진 기관투자가가 되는 것이다. 금융의 지속적 팽창을 위해서는 가능한 보다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자본을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하며, 그 대상이 바로 노동자 대중의 생계원천인 임금(봉급)이다. 이러한 자본의 요구는 노골화되어, 연금체계의 재편, 의료시장의 자유화와 금융화, 복합금융기업을 향한 국내 금융권의 통합흐름의 가속화로 이어지고 있다

퇴직금 제도에서 기업연금의 도입으로

남한에서 법정퇴직금제도는 국민연금(1999년 전 국민 확대)과 고용보험(1995년 도입)에 앞서 도입되어(1961년) 소득보장제도의 중심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었다. 국민연금 확대와 고용보험 도입은 법정퇴직금에게 새로운 기능 정립을 요구하였다. 이를 촉진시킨 것은 대법원이 1997년 8월 퇴직금 우선 변제에 대해 헌법불일치 판정을 내린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퇴직금은 기업 파산 시 우선변제 대상이었으며, 이에 노동자들은 기업이 파산해도 퇴직금은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퇴직금 우선변제 헌법불일치 판정으로 노동자들은 더 이상 퇴직금의 수급권이 거의 박탈되어, 근무기간의 최종 3년만을 보장받게 되었다. 이 판정은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이었다. 회사 파산 시 당장에 생계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더욱 심각했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기업은 자금 대출의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동안 금융기관들은 퇴직금 우선변제조항에 따라 기업이 파산할 경우 퇴직금 부분만큼을 받지 못하게 될 것으로 평가해왔는데, 당시 대법원의 판정을 계기로 기업들은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금융기관으로부터 더 많은 자금을 대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법정퇴직금제도에 대한 이 첫 번째 변화는 퇴직금 축소에서 비롯되는 문제에 직접 대처하는 방향이 아니라, 기업 파산과 상관없이 퇴직금이 보장되는 제도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정부는 근로기준법 개정(1997년 12월 24일)을 통해 법정퇴직금을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최종 3년 간의 퇴직금만을 보장하는 것으로 확정하고, 회사 파산 시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퇴직금 중간정산제와 퇴직보험 신설을 통해 무마하고자 했다. 즉 기업 파산에 대비해 노동자들이 고용 중간에 퇴직금 지불을 요구하거나 기업들이 퇴직 준비금을 사외적립 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치들은 기업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기업연금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퇴직보험이 신설되면서 이에 맞추어 99년부터 보험시장에서 기업연금상품이 시판되었지만,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이것은 퇴직보험에 대한 은행과 투신사의 접근을 사실상 제한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노후소득을 보존한다는 취지에 따라 위험이 높은 분야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것이다.
때문에 기업연금 활성화를 위한 전제조건은 기업주와 노동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기업연금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것으로 모아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연금제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2001년 5월 정부가 노사정위원회 협의를 거쳐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기업연금 도입은 구체화되고 있다. 아직 정부와 기업 사이에 지급방식, 자금운용에 따른 손실 문제, 강제성의 여부 등 많은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그러나 정부는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의 한 형태인 우리사주 신탁제도(ESOP)로 결론을 모아가고 있으며, 기업 또한 이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다.

정부와 전경련 그리고 여타 금융권의 요구

이제부터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자본분파 내부의 몇 가지 이견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해가 본질적으로 엇갈리는 것은 결코 아니며, 차이는 자신들의 이윤추구에 있어서 더 적합한 경로를 옹호하면서 생기는 차이일 뿐이다. 그들의 이해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 금융의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원천으로 부상할 기업연금에 대한 경쟁은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경쟁은 노동자 민중의 생계 기반을 둘러싼 공격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표1 넣어주세요!>

<표1>은 노동부와 전경련에서 발표한 기업연금제도 도입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비교한 것이다. 우선 양자 공히 현행 퇴직금 제도를 기업연금제도로 대체하고자 하는 결론을 가지고 있다. 차이를 보이고 있는 지점은 기업연금 도입 시기와 절차에 관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이것은 정부와 기업 양자가 지향하는 연금개혁 모델이 동일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OECD와 IBRD 등 국제기구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연금개혁 모델을 전 세계에 권고해왔다. 이들이 권고하는 모델은 이른바 “3층 보장체계(Three Pillars)"라 불리는 것이다. 이 모델은 기존의 공적연금이 담당하던 소득재분배와 저축기능을 다음과 같이 분리시켜서 정리한다. 1축(1st pillar)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는 기초연금으로 국가가 담당해야하는 공적연금의 역할과 범위를 극빈자들의 최소생계비 보장 수준에 한정하는 것이다. 2축(2nd pillar)은 저축기능을 담당하는 민간 강제적용연금이다. 3축(3rd pillar)은 자발적인 민간연금 및 저축가입이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3층 보장체계“에 유사한 연금체계를 확립하려는 전망 하에서 기업연금 도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다층보장체계까지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경련도 이와 유사한 전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국민연금을 기초부문과 소득비례부문으로 이원화하여, 기업연금과 국민연금 소득비례부문과의 효율적인 연계(적용제외방식)를 통한 다층소득보장체계 구축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도 기업연금과 국민연금과의 연계를 위해 관련부처간 정책조정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국민연금 개혁방안까지 염두에 두면서 기업연금제도 도입 시기나 절차를 결정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경영에 있어서 유리한 수단이라는 이유에서 즉시 도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정부와 기업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기업연금제도 도입이 가지는 다른 함의를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주장의 요지는 기존의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사적연금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극빈층 보호혜택을 축소해야 하고, 국가 및 기업의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는 효율성 논리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연금개혁 방향이 자본시장 중심의 구조를 더욱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부과방식의 연금에서 적립방식 특히 확정기여형 방식으로 전환되는 사적연금은 엄청난 연금적립금을 보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장기저축은 금융시장에 연결된다. 이는 기업이 전통적으로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던 구조가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거대한 연기금은 자본시장에 유입되어 시장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투자가가 되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더욱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고자 한다.
물론 이 거대 자금의 시장 유입은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기업, 금융권은 모두 기업연금제도 도입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여기에 표2 넣어주세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전경련은 현재 퇴직금과 국민연금 모두에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신규채용 등 기업활동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경감하고자 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기업연금 도입은 자금조달의 용이함, 부채비율 감소를 통한 재무건전성 도모, 사내 노동력관리, 기업의 금융화 촉진 등과 같은 이해가 걸려있는 사안이다.
보험회사와 증권업계가 직면한 이해는 더욱 직접적이다. 이들에게 기업연금제도 도입은 새롭고도 거대한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 시장을 둘러싸고 보험과 증권을 비롯한 비은행 금융권의 공세적인 활동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보험회사의 경우는 현행 법정퇴직금 제도의 개선 방안까지 제안하면서,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가 도입되면 보험회사가 기업연금 전문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전망을 수립하고 있다. 덧붙여 보험회사가 기업연금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 진출에 유리한 서비스 형태에 대해서도 이미 자세한 연구를 진행했다. 증권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채권투자를 증진시키기 위해 각종 상품을 개발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한다. 기업연금 상품을 선점하기 위한 각종 로비 등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기업연금시장을 둘러싼 이들의 치열한 경쟁은 민중들의 소득을 자본시장에 더욱 깊숙이 연계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표1> 노동부와 전경련의 기업연금 도입 안 비교




<표2>정부와 기업, 금융권의 논의 비교


기업연금제도 도입이 민중에게 미치는 영향

이렇게 기업연금제도를 둘러싼 자본 분파 내부의 이해관계는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수렴한다. 그렇다면 기업연금제도는 민중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현재 추진되는 기업연금의 제 형태가 노동자들에게 보다 많은 연금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고, 노후소득보장에 안정적이라는 이들의 근거가 과연 맞는 것인가? 기존의 퇴직금 제도가 기업 파산 시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일시금 형태로 주어지기 때문에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이들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기업연금제도가 그것을 보완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기업연금제도를 비롯한 사적연금 활성화가 가지는 중요한 시사점은 연금급여의 위험 부담이 국가와 기업에서 개인에게 이전되는 것임을 지적해야 한다. 특히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의 경우는 위험 전가가 더욱 심각하다.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은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매달 일정액을 불입하고, 그 자금을 기금화하여 운용한 뒤 그 실적에 따라 퇴직 시 원리금을 배당하는 제도를 말한다. 즉, 퇴직 후 소득을 위해 기업과 노동자가 적립하는 자금이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에 투자되고, 그 실적에 따라 노후소득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수시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에 노동자 민중의 소득을 맡겨놓고, 더욱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존의 퇴직금 제도에서는 퇴직급여와 관련된 위험을 사업주가 부담했다. 하지만 기업연금제도 하에서는 투자의 과정에서 부담해야하는 위험이 고스란히 노동자 개개인에게 넘겨진다. 결국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을 도입해서 부담을 줄이는 것은 기업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이 기금들이 집중시킨 저축이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이들은 비은행 금융기관의 지위를 획득하며, 그 기능은 유동성 원칙과 수익 극대화 원칙 하에서 그들이 보유한 대규모 화폐자본을 자체증식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금융자본의 중추 기관으로 등장하여 ‘투기금융’의 주력 부대의 역할을 한다. 연기금 제도에서 유명한 ‘주주행동주의‘가 등장한다. 이런 추세에 적극 편입하면서 ’노동의 자본‘으로 묘사되는 것이 우리사주 신탁제도(ESOP)이다. 우리사주 신탁제도는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안정적 자본조달, 안정적 노사관계에 기여한다. 노동자들이 ’우리사주‘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는 주주권리 강화와 채권시장 활성화를 통해 금융자본이 부상하고, 확대되는 과정과 부합하는 경로이기도 하다.
게다가 기업연금제도 도입은 노동자의 이해와 주주가치의 이해를 일치시킨다.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후소득 증가가 증시 부양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주가를 상승시키기 위한 구조조정, 고용 파괴, 노동 착취가 옹호되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기업연금제도와 그 논리를 거부하자!

퇴직소득을 자본시장에 투자하여 고소득을 노릴 수 있다는 매력적인 논리는 사실무근이다. 새로운 자금을 투여하여 주식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경제 전반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논리도 어불성설이다. 기업연금제도는 노동자들의 노후소득을 증가시켜줄 수 없다. 물론 경제발전을 촉진시키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불안정한 주식시장에 노동자들의 소득을 쏟아 부어 주식시장의 거품을 좀 더 유지할 뿐, 불안정성에서 기인하는 상시적 경제위기의 위험성을 없앨 수는 없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업연금제도는 급여소득에 대한 위험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노동자들의 이해를 주식시장에 종속시킨다. 자본에게는 금융적 팽창의 계기를 제공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요동치는 주식시장에 자신의 소득을 내맡기고, 증시 부양을 위해 더욱 자신을 강도 높은 노동에 내몰아야하는 현실뿐이다. 미국의 엔론 사태와 K마트 사태는 노동자들이 평생 투자한 자신들의 노후연금이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예이다.
문제는 퇴직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결정할 권리는 바로 노동자들에게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퇴직 소득을 가지고 기업과 정부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논리 자체를 거부해야 하고, 그들의 이해에 복무하는 기업연금제도를 거부해야 한다. 금융의 팽창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눈이 먼 자본의 전략은 민중들의 삶을 볼모로 삼고자 한다. 이 속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한 대안을 찾아보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발상이다.
최근 정부의 정책과 개정입법안은 자본시장의 활성화, 연금보험 시장의 활성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자본이 추구하는 금융의 새로운 전략의 방향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분명 이전 시기 기업활동양식의 금융화를 추구하던 이전 시기 금융구조조정의 성격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는 시장을 둘러싼 자본 진영간의 경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불안정한 금융시장의 운동에 전 민중의 생계를 맡기는 것이다.
온 민중의 삶을 볼모로 삼아 금융적 팽창을 추구하려는 자본의 전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기업연금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그들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투쟁이 절실한 때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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