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7-8.27호

김대중 정권의 여성정책 평가

호성희 | 편집부장
문제제기 -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여성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2001년 여성부의 출범과 최근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장상 총리서리 인준 논란은 김대중 정권 아래에서 추진된 여성정책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구조조정이 심화시킨 노동의 불안정화와 가족의 위기에도 김대중 정권을 평가할 때, 여성정책만큼은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상황은 여성정책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질문하게 한다.
이를 위해서 국제적인 발전기관들이 발전의 과정에서 젠더 평등을 강조하게 되는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여성을 인식하고 활용하려는 자본의 전략은 지금 신자유주의가 여성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유주의 여성운동이 이런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국내 여성정책과 공명할 수밖에 없는 조건 또한 살펴볼 것이다.

국제적인 여성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 새로운 젠더 정체성의 출현

여성들을 발전에 통합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를 특징짓는 또 다른 관심사였다. 노동시장에 참가하는 여성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여성노동이 통상적으로 수용하는 열등한 조건들로 모든 산업의 고용조건이 일반화되는 ‘노동의 여성화’현상은 기존의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해체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발전의 편익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보세럽(『경제발전에서 여성의 역할』)의 우려를 일부 수용한 국제발전기관은 여성을 생산자로 규정하고 발전과정에서 적극적인 경제적 주체로 정의하는 접근을 발전시켰다(Woman In Development-발전으로 여성의 통합, 이하 WID 접근). 이러한 접근은 여성들이 발전의 편익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개선하도록, 여성의 훈련, 신용, 고용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여성이 ‘왜’ 노동시장에서 불리한 조건을 수용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여전히 육아와 가사부담이 여성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자본의 위기에 대응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여성들은 감소한 가계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우선 집안에서 재생산노동을 늘리고, 자신의 노동력을 ‘출혈판매’하였다. 또한 여성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 지출의 감소로 사회서비스가 줄어든 만큼 재생산 노동을 증가시켜야 했다. 구조조정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저항하기 쉽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이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은 여성의 희생을 통해서만 지속될 수 있다.
85년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제3차 유엔 세계여성대회는 WID접근의 이러한 ‘생산주의’적 편향을 평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장과 여타 제도들이 전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하였다. 이런 자각 하에 ‘전향적 전략’(Gender And Development, 이하 GAD)을 새롭게 제출하는데, 이는 10년 뒤(95년 북경 제4차 세계여성대회) ‘젠더 주류화 전략’ 즉, 모든 정책결정, 프로그램 설계와 실행 단계에서 명시적으로 젠더 쟁점들을 고려하는 체계적인 절차와 매커니즘을 요구하는 전략으로 체계화된다.
구조조정 정책으로 인한 ‘재생산의 위기’는 이를 설계하였던 국제발전기관들 사이에서도 일정정도 자각되며, 이는 90년대 초반 ‘인간중심적’인 발전모델에 선별적으로 통합되었다. 발전도상국에서 제기된 강력한 정치적 저항,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연구 등은 구조조정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우려를 증가시켰고, 이런 맥락에서 젠더주류화 전략이 전면화된다.
우리나라도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 제정을 시작으로 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이하 특위) 설립, 99년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제정, 그리고 2001년 1월 여성부 신설까지 이어오는데, 젠더주류화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여성정책 변화

1990년대 이전

미군정 시기인 1947년, 보건후생부 산하에 부녀국이 설치되었는데, 여기서는 요보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주된 업무였다. 80년대엔 UN의 여성정책 관심으로 형성된 국제적인 여성발전과 여러 조약에 대한 비준은 한국정부가 피할 수 없는 외부적 압력이었고,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가족법개정과 출산억제를 내용으로 하는 인구정책이 정부의 여성정책에서 주류였고 여전히 요보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사후적 복지에 중점을 둔 시기였다. 87년 민주항쟁 과정에서 여성들은 고용에서 여성차별금지와 모성보호를 요구한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여성운동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여성관련행정기구인 정무장관(제2실)이 발족하는 한편, 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과 89년 동법 개정, 89년 모자복지법 제정이 되는데, 모두 여성인력을 국가와 사회발전에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추진되었다.

1990년대 이후

93년 성폭력 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정, 95년에는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여성의 신체적 조항을 명시하는 모집 및 채용을 금지)된다. 95년에는 젠더 주류화 개념을 수용하면서, 평등사회 구현, 여성의 사회참여촉진, 여성 복지의 증진을 목표로 하는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된다.
김대중 정권이 집권한 이후, 98년에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정무장관(제2실)이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이하 여성특위)로 개편되면서 6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설치된다. 여성특위 소관 법률로 사회전반 및 공공기관에서의 성희롱과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이 99년 제정된다.
여성담당 단위의 독립된 정책 총괄과 집행력을 요구했던 주류 여성운동의 요구는 2001년 여성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여성부는 여성문제가 국가정책 영역에서 핵심분야로 다루어지도록 여성정책을 주류화해 나간다는 기조를 설정하고, 여성정책의 목표로 남녀평등을 전면에 표방하기 시작했다. 법률안 제출권과 업무 집행 권한이 주어진 독립된 부서로서 여성부는 현재 여성특위에서 이전된 남녀차별개선 업무와 노동부에서 이관된 여성인력개발센터, 보건복지부에서 이관된 여성에 대한 폭력업무를 대표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여성정책-‘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

이렇게 출범한 여성부는 주류여성운동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고 있다. (부족한 점이 있다는 단서를 달더라도) 김대중 정권의 여성정책은 여타의 정치․경제적 성과와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권리신장과 남녀평등 실현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이며, 통로를 마련했다는 것이 주요한 평가인 듯 싶다. 더 나아가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개선하기 위해, 연구하고 마련한 정책을 아낌없이 제시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러한 공동의(!) 노력으로 드러난 총적 방향이 ‘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다.
비판에 앞서 과거 누구나 전제하고 있는 여성의 현실과 공동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 역시 1960~1990년 동안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3.5%에서 74.4%로 별 차이가 없는 반면, 여성의 참가율은 같은 기간 거의 2배에 달하는 급상승을 보이며 50%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 수치에는 경제활동단위로 잡히지 않는 비공식부문과 가내공업이 제외되어 있다. 이제 여성의 취업은 삶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가 여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것은 아니었다. 세계 공식 노동력의 1/3이 여성이고 비공식 노동의 4/5를 여성이 수행하지만, 여성이 받는 소득은 세계전체소득의 10%에 불과하며, 전 자산의 단 1%만을 여성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이혜경, 1998) 오히려 여성은 점점 빈곤해지고 있다. 또한 여성들이 진출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여성은 성매매나 서비스 산업으로 대거 유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로 인한 재생산노동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왜 여성은 가난한가?

이는 「한국여성의 삶과 일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보고서⌋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결혼여부와 여남(女男)의 차이가 있겠지만, 여성의 취업동기를 묻는 질문에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고 답한 것이 1위다. 여성의 삶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부담'과 '육아와 자녀교육'이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기혼여성이 가사의 80%이상을 담당하고 있는데, (미혼남성의 경우)여전히 여성이 가사를 담당할 것을 기대하는 상황임에도, 여성은 가정보다 직장에서 불평등을 더 많이 체감하고 있다. 이는 여성부가 선전하고 교육(!)하듯이 남녀평등'의식'은 확산되었을지 몰라도, 여성의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불리한 지위를 감내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애써 눈감으려는지 여성부는 조선일보와 함께 (남편들에게) ‘아이 함께 키워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 정책은 8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추진되었다. 그것은 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과 89년 1차 개정을 거쳐 모두 네 번의 개정작업으로 이어져왔고, 2001년 여성부 출범과 모성보호법 개정으로도 어어져왔다.
김대중 정권은 정권교체와 IMF 외환위기의 힘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축적의 위기에 대응한 부르주아지의 정책이자, 이데올로기다. 그것은 현단계 자본주의 발전전략인 금융세계화, 노동의 불안정화가 핵심이며, 축적위기가 수반하게 되는 통치성의 위기에 대한 정치전략을 동반한다.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추진한 구조조정은 위기의 비용을 저항하기 쉽지 않은 사람에게 더 많이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한국 가족의 특수성이란, 가족이 복지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고, 가족 내에서 여성이 이를 전담함으로써 한국 자본주의 축적이 가능했음을 확인한 바(사회진보연대,2001.7/8) 있다. 즉 한국 자본주의 발전은 여성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신자유주의가 위기 비용을 민중에게 전가할수록 가계의 생존전략은 더욱더 가계에 의지한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가족의 대응은 아버지(가장)만이 아니라 가족구성원 모두(특히 여성)가 일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감소한 실질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노동시장으로 진출하고, 양육과 병행하기 위해 시간제나 비정규직을 선택하거나, 비공식부문으로 진출한다. 여성부가 말하는 것처럼 파트타임 등의 신축적 근무조건은 여성이 좋아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출혈판매’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부는 여성이 경험해야 하는 빈곤-여성의 이중부담 강화현상-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부가 불충분해서 문제가 아니다. 모성보호법이나 양육문제에 대한 여성부의 정책은 여성의 실질 요구나 필요가 결합된 문제지만, 이는 신자유주의의 파멸적 영향을 은폐하기 위한 효과다. 자본과 정권은 더 이상 여성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지 않는다.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것을 요구한다. 여성들이 위기의 비용을 흡수하는 능력에 따라 위기를 지연하는 구조조정 정책이 유지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 여성들은 최악의 선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래도 김대중 정권의 여성정책이 개중 낫고, 여성부가 여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는 역할도 하지 않았냐고 반문할 것이다. 더구나 부족하지나마 이 작은 변화조차, 여성운동의 요구가 정부정책에 일정정도 반영된 것이기에 이런 평가가 더더욱 지배적이기 쉽다.
여성부의 가장 비극적인 지위는 바로 구체적인 정책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데 있다. 눈을 반만 뜨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고작해야 여성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현재 위기의 부담을 가족의 책임(여성만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도 함께)으로, 가족 생계의 위기를 죽이지 않고서 여성이 전담하도록 독려하는 일 뿐이다.
정부의 여성정책과 여성부의 실효성을 가지고 논한다면, 신자유주의의 분할과 배제의 논리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가정과 직장에서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는 자본이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 여남의 임금격차가 축소된 것은 여성의 지위상승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의 불안정화로 남성의 임금이 하락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빈곤의 여성화’는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일반적인 조건이 인민 모두에게 일반화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작년 모성보호법 논쟁이 보여주듯이, 여성 일반의 노동조건이 후퇴하는 것을 전제로, 수혜의 대상을 한정함으로써, 찬반의 논리를 여성과 여성의 갈등으로 내부화 하고, 정권은 정책의 실현 범위와 상관없이 정책수립의 효과를 보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양육문제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도 국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서비스의 질을 가진 사립 양육시설을 육성하는 것이다. 즉, 양육을 사회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화’하는 것이다.(여성부는 현재, 모범 사립양육시설을 공모하고 있다.) 물론 여성들은 이러한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전환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비극은 (여성운동의 시작이었던 가족법 개정운동을 핵가족 논쟁(이미경,1999)과 연결시켜 보면) 여성운동이 핵가족제의 완전 쟁취라는 역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데 있다. 불행히도 이런 목표는 대량소비 없이 핵가족 모델이 이식된 반주변(세계경제의 종속적 조건)에서는 성취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여성운동의 목표 자체를 개량화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성부의 논리대로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진출한 여성들이, 지위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남성노동자의 임금을 요구하고 그들과 경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의 변증법을 가동시켜야 한다. 구조조정에 의한 경제위기가 자본축적의 전환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제도와 실천의 전환점이 됨을 주목하자. 복지 기능을 가족에게 전가하려는 국가의 시도는 국가 차원의 서비스 비용을 줄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여성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전략이다. 육체를 가진 유한한 인간으로서 여성이 제공할 수 있는 무급노동은 무한 탄력적일 수 없다. 따라서 여성 인적 자원의 재생산과 유지 능력은 붕괴될 수도 있다. 특히 남한 가족처럼 이미 여성에 대한 압력 위에 형성된 가족은 심각한 재생산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은 현재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안을 반대/무력화하고 자본주의 축적체계의 구조적 위기를 비판하고 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여성의 욕구’가 중요해진다. 현재는 자본주의 발전과 그 위기대응의 비용을 여성이 감내할 수 있도록 보조하거나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판하고 전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운동을 평가해보자면, 노동운동의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퇴행적인 방어만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 있다. 이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는 ‘밥․꽃․양’의 사례에서 뚜렷이 드러났는데, 식당아줌마들의 희생(배제)을 전제로 합의했던 것만이 아니라 정리해고 반대의 전선을 사수하려 했던 식당아줌마들의 입을 틀어막고 스스로 귀를 막았다는데 초점이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전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위기의 진실이 무엇이며, 이에 절규하는 여성의 요구를 과제로 하여 어떻게 새로운 주체와 전선을 형성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여성의 요구를 어떻게 보편적 과제로 형성할지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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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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