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19.06.28
문재인 정부, 경찰국가로 가는가?
민주노총 위원장의 6일간 구속 사태에 대해
6월 27일 법원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 6일 만에 석방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으로 지난 5월 30일 민주노총 간부 3인을 구속 기소한 것에 이어 6월 21일 위원장까지 구속한 것이다. 지난해 5월 21일과 올해 3월 27일, 4월 2~3일 총 4차례에 걸쳐 ‘노동법 개악 저지’ 집회를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혐의였다. 도주 우려가 있다는 근거로 구속했다가보석금을 조건으로 석방했다. 간부 3인은 여전히 구속 중이며 위원장과 다른 간부들도 불구속 기소 상태로 재판이 진행될 것이다.
이번 구속 사태는 단지 일회적인 해프닝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전략, 정치행태를 시사하는 중대한 계기인가?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사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세적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사법개혁인가, 제왕적 대통령의 검찰 지배인가
구속 사태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경찰 전략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이라는 명분으로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신설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의 검찰 지배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
대대적인 조직개편, 인적개편으로 사법부를 압박하면서 ‘적폐청산’은 사실상 인적청산이 되었다. 현 검찰총장(사법연수원 18기)보다 다섯 기수 아래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23기)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했다. 게다가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조국 민정수석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의 검찰 장악이 너무나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을 미끼로 검찰과 경찰의 충성경쟁을 유도하나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과 검찰은 개혁보다는, 자신들의 권한과 권력을 강화하거나 지키려는 데 관심이 쏠려있다. 서로의 부실수사 의혹 사건을 언론에 흘리고 여론몰이를 하고 재수사하는 식으로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에서 상대 조직을 견제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기득권층을 혐오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포퓰리즘적 정치에 적극 활용한다.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을 검찰·경찰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이 한 예다. 이러한 대응은 경찰과 검찰에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을 주는 동시에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을 하게 만든다. 언제든 부실수사를 빌미로 자신들이 적폐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경찰국가로 회귀하는가
이번 위원장 구속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자유한국당의 검찰과 경찰 항의방문이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5월 28일 경찰청을 항의 방문해, 민주노총 불법 시위에 대해 경찰이 무능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같은 날 서울남부지검과 동부지검 또한 방문하여 정치적 중립 의무 훼손, 편파적인 야권수사(여권 봐주기)라며 항의했다.
이에 대해 검찰, 경찰은 민주노총 집회도, 국회 패스트트랙 관련 물리적 충돌 사태도 모두 원칙적으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패스트트랙 사태 관련 현재 고소·고발된 국회의원만 108명이고, 민갑룡 경찰청장은 ‘패스트트랙 사태’ 관련자가 2000여 명에 해당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곧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민주노총도 똑같이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수사는 자유한국당을 협박하는 동시에 구슬리며, 국회정상화를 압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자유한국당이 상식 이하의 행동을 했더라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경찰청장이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표인 국회의원을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더 발전된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가시적인 경찰 폭력이 존재해야만 경찰국가인 것은 아니다.
환상에서 벗어나자
집권 중반기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경제·노동정책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정책은 스스로도 실패를 인정할 정도로 파산상태다. 일자리 정책은 아무 효과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ILO핵심협약 비준과 같은 ‘노동존중정책’은 폐기했고,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노동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종 부패스캔들에 대한 엄정수사 촉구는 문재인 대통령을 ‘정의의 사도’로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적대세력을 견제할 수 있도록 칼을 쥐어주는 꼴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보다 더 나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부정적 정당화의 과정, 부패스캔들을 통한 이미지 선동, 대립의 극단화로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위기를 덮을 수는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대중이 또 다른 원한의 대상을 찾고, 새로운 구원자를 찾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한국경제의 위기와 이에 따른 자본의 공세, 문재인 정부 개혁정책의 본질이 드러나는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우리 편이라는 환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