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2022.01.27
부평공단지회, 사업장 담벼락을 넘어 공단에서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가다
부평공단지회는 고용 불안이 만연한 공단에서 2020년 5월 10일 설립된 금속노조 인천지부 소속 지회이다. 인천 부평 4공단에 위치해있으며, 자동차 부품(칵핏)을 한국GM에 직서열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설립 당시에는 ‘크레아부품사지회’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가려져있는 노동자들이 원청인 (주)크레아의 도급업체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전면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조합이 설립된 이후 당시 도급업체가 바로 폐업공고를 내게 되었고, 새로 인수했던 (주)글로리오토마저 작년 여름 폐업되었다.
2번의 폐업 과정과 명칭 변경, 3승계(고용·근속·노조)를 위한 싸움과 쟁취까지. 녹록치만은 않은 과정이었을 테다. 그러나 부평공단지회는 지치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헤쳐 나갔던 경험들을 주변 노동자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와 비슷하게 부당한 일들을 겪는 공단의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변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글로리오토부품사지회 시절의 자세한 이야기는 “icpssp newsletter 지역포커스, 글로리오토부품사지회 인터뷰” 를 참고.)
2022년 1월, 부평공단지회의 사무실에서 이재영 지회장을 만나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배경부터 ‘부평공단지회’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2년간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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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공단지회’로의 명칭 변경은 우리 사업장 담벼락을 넘어 공단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한다는 것이었죠.”
공단에는 불법파견, 임금체불, 강제 연차, 휴업수당 미지급 등과 같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문제들이 만연하게 깔려 있어요. 게다가 사업장 내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던가, 식단엔 김치만 나온다던가, 주말에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던가, 관리자들의 폭언 등 기본적인 상식에 벗어나는 일들도 많고요. 그런 일들을 많이 겪다보니 당시 조합원들이 가졌던 불만들이 모여서 노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노조를 만들 수 있을 까 걱정도 되었는데, 사람들이 점차 모이더니 현장직 190명 모두 가입하게 되었죠.
사실 처음 폐업했을 때는 조합원들 사이엔 ‘과연 이 싸움이 가능할 까’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아웃소싱 노동자로 살면서 물량이 떨어지면 해고당하고, 연차 요구했다가 잘리고, 여성이라고 해고당하고, 나이 많다고 해고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회사가 안 해주면 그만 아니냐.’는 인식도 깔려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한번 쟁취하고 나니깐 그 다음부턴 조합원들이 더 뭉치게 되었어요. 작년 (주)글로리오토가 폐업하고 나서 들어온 업체가 지금 있는 (주)DGF오토모티브인데, 합의서 작성한 이후에 사측에서 말을 바꾸는 바람에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노력 끝에 3승계(고용·근속·노조)를 쟁취할 수 있었죠. 사실 1년 사이 2번이나 업체가 폐업한 사례는 금속노조 안에도 별로 없다고 하는데, 저희는 오히려 그 과정에서 단결이 되었어요. 신기한 것은 이탈자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 부평공단을 모르시는 분들에겐 ‘부평공단지회’라는 명칭이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실 텐데요. ‘부평공단지회’로 명칭을 짓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부평공단만 놓고 보면, 기본적으로 100인 이상 사업장이 많지 않아요. 50인 언저리에 있는 사업장들이 굉장히 많고 5인 미만 사업장들도 널렸죠. 이런 사업장들의 주요한 특징은 아웃소싱을 통해서 사람들을 채용한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이 아웃소싱은 연차도 없고, 4대 보험도 못 들어요. 경제활동 인구에도 잡히지 않죠. 6개월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하지만, 그때 가선 다른 아웃소싱 업체와 사인하게 해요. 일시·간헐적 사유가 아님에도 불법파견인 경우가 만연하죠. 물량에 따라 해고되기도 하고, 재고용되기도 하면서 근속이 쌓이지 않고 불안한 고용 형태로 계속 공단을 돌아요. 이게 공단의 현실인데, 이러한 특성들을 저희 조합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공단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고, 부유하는 노동자들이다.’ 라고 표현하곤 해요. 이처럼 잦은 해고와 고용불안이 만연한 공단에서 어떻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있을 수 있을지, 이런 고민에서 부평공단지회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어요. 미조직 사업(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통해 공단에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만나고, 같이 미조직 활동을 해보자는 지회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죠. 그리고 우스갯소리이지만, 저희끼리는 이런 얘기를 하곤 했어요. ‘아예 부평공단지회로 명칭을 정하면, 폐업해도 바꿀 일 없겠다고요.’ (웃음) 한번 폐업하고 나면, 깃발도 명찰도 다시 맞춰야하는데 벌써 두 번 가량 바꿨거든요.
- 조합원들이 본인 사업장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공단이라는 지역적인 차원으로 의식이 변화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네요. ‘부평공단지회’로 명칭 변경 후 지회 내부적으로 달라진 지점들이 있을까요?
사실 인식의 변화가 가장 커요. 그동안은 사업장 내 노동자 조직화나 문제 개선을 목표로 잡았었는데, 이제는 부평공단 미조직 노동자들의 문제로까지 넓게 바라보는 조합원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또 이번에 집행부 부서별로는 미조직사업에 대한 계획들을 세우게 되었어요. 교육·선전부는 ‘공단소식지를 내보자’, 노동안전부는 ‘공상처리조차 받지 못한 채로 해고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우리가 찾아가는 원스탑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이처럼 노조 내부적으로 조합원들 사이에 ‘노동조합은 미조직사업을 하는 곳이다’라는 인식이 강해졌어요.
그리고 총회나 대의원 대회에서는 ‘전 조합원이 미조직 활동가라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춰보자’고 얘기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최근에 임금명세서 교부가 의무화되었는데, 이 사실을 조합원들이 주변 동료나 친척, 친구들에게 조금씩 알려나가게 된다면 공단에 변화가 조금씩 생겨나지 않을까요. 나아가서는 지회가 직접 주변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조직하고, 노동조합 설립까지 지지해주는 활동들을 해볼 수 있는 거죠. “공단에서 겪었던 불합리한 문제들이 노조에서 해보니깐 해결되네, 우리 사업장이 바뀌었는데 그럼 너도 할 수 있어” 본인이 겪은 경험들을 주변 가족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실제로 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장기적으로 미조직 사업을 하나의 금속노조 강령처럼 여기는 노동조합들이 하나둘씩 생겨난다면, 공단 내 노동조건들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올해는 본격적으로 공단의 노동자들과 친밀감을 쌓아보려고 해요.
- 조합원들이 직접 미조직 사업에도 아이디어를 내고 있군요. 미조직 사업이라고 해서 단순히 당위적인 사업들만 하는 차원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구체적으로 더 듣고 싶어요.
결국엔 ‘상담을 어떻게 추동하고, 어떻게 잘 끌어갈 것이냐’가 첫 출발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선전전을 통해 알려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전전 이후엔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 다음엔 상담까지 연계되어야 노조 설립이든 노사 대응이든 실질적인 대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지부 내에 상담 인력은 한정적이고 부족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지회 차원에서 상담 역량을 길러내어 상담 구축 망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축으로는 <부평공단소식지>를 통해 공단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지 주기적으로 배포하려고 해요. 노동자들의 일상적이고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얘기해보면서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부평공단판 <바지락>(서울남부 '노동자의미래' 소식지) 같은 느낌인 것이죠.
- 부평공단소식지 기대해보겠습니다. 상담 역량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인데요, 지회에서 주변 노동자들의 상담을 접수받는 형태일까요? 상담을 진행한 사례도 궁금합니다.
상담으로 접수되는 내용들은 주로 노동자들이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문제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직장 내 괴롭힘, 휴업 수당 미지급, 연차 강제 소진, 관리자들의 폭언 등이요. 이런 문제들은 지회 조합원들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에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 지, 기본적으로 사업장에서 지켜져야 하는 사항들은 무엇인지 얘기해볼 수 있는 거죠. 지부로 상담을 연결해줄 수도 있고요. 물론 그러려면 지부와 지회 간 업무 분장이 잘 나뉘어져야하는데, 서로의 역량을 잘 보완해나갈 수 있다고 봐요.
최근에는 조합원의 지인이 노조 설립 상담을 요청한 적도 있어요. 노조가 설립되고 나서 바뀌게 된 경험을 지인에게 말해줬던 거죠. 인원 수, 공정 등 구체적인 정보들을 파악하면서, 지속적인 끈을 이어가고 있어요. 게다가 공단에 비제조 업종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종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업종을 국한하지 않고 지역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상담 역량을 구축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부평 **까페에서 만나자, **사무실에서 만나자’처럼 노동자들이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도 목표 중 하나이지죠.
- 상담을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에게 문턱을 낮춰서 다가갈 수 있겠네요.
결국 상담을 하다보면 그 노동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굉장히 커요. 그리고 본인의 사업장과 비슷해 보이는 곳에서 답변을 해주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기도 하고요. 전문적인 상담 역량까지 갖출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은 시시콜콜한 기본적인 상담사례들을 많이 구축해나간다면 점차 공단에 좋은 사례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아가서 새로운 지회들이 생겨난다면, 같이 상담 매뉴얼도 만들 수 있겠죠.
- 12기 노동조합의 주요 활동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시나요?
미조직 사업을 전면에 두고, 지회 체계나 운영을 잘 안착시켜서 조합 활동이 일상적으로 잘 이뤄지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조합 활동 시간을 확보해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선거구 실천의 날’, ‘미조직 사업의 날’을 지정해서 실천 행동과 교육을 많이 하고 있어요. ‘5분 노동법’이라고 조회 때 기본적인 노동법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조합원들이 직접 위험한 공정에 유인물을 붙여보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들을 발견해보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들을 토론해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올해 2공장 생산 차량이 단종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고, 임단협 시즌이기도 해요. 뿐만 아니라 코로나, 반도체 문제로 인해 휴업이 걸린 적도 많고요. 결국 휴업이 지속되면 일자리 불안이 생기는데,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간부들과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마 올해는 작년보다 더 힘차게 싸우지 않을까 싶습니다.
- 지역 및 금속노조 투쟁, 확대미조직위원회 결합 등 여러 활동에서도 부평공단지회가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데, 계기점이 있을까요?
참여하게 된 계기는 명확해요. 그동안 우리가 부당한 문제들을 많이 겪어왔기 때문이에요. 과거에 겪었던 경험들을 떠올리면서, 공단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는 거죠. 사실 공단에 필요한 것은 정말 무수히 많아요. 그런데 지금 현실적으로 지회가 할 수 있고, 변화까지 기대해볼 수 있는 사업은 미조직사업이에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우리 스스로가 직접 해나갈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최대한 힘나는 데까지 참여하면서 지역의 사례들도 많이 듣고, 배우고, 더 폭넓게 경험해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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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해오고 있는 부평공단지회.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진지한 고민들과 미조직 사업에 대한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끝으로 그간 활동하면서 느꼈던 보람이나 소회를 들었다.
“‘고맙다’, ‘수고했다’ 조합원들의 한마디면 힘들었던 기억이 싹 잊혀요.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온 성과들은 우리만 갖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있는 동료이던, 친척이던 경험들을 많이 나눌 수 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는 조합원들 스스로 우리가 잘하고 있고, 잘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으면 해요.”
공단에 미조직 사업이 필요하다는 성찰은 지난 조합원들과 함께 거쳐 온 고민의 산물일 것이다. ‘미조직사업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활동’이라는 이재영 지회장의 말처럼 부평공단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올 수 있는 새로운 활로가 더욱 넓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