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43호 | 2011.11.23

죽음을 부르는 이주노동자 단속과 고용허가제 개정안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새로운 조직화가 필요하다

정책위원회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죽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으로 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한 달 전 광주에서 베트남 노동자 2명이 경찰과 출입국의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죽었는데, 11월 8일 출입국의 단속 과정에서 중국 이주노동자 H(남, 44세)씨가 사망했다. 출입국 단속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H씨의 죽음은 특별히 비극적이다. 지난 11월 8일 H씨와 다른 중국노동자 3명이 김포에서 출입국 단속반원의 불심검문에 걸려 연행되었다. H씨는 200m가량을 도주하다 다시 붙잡혔다. 수갑 채운 상태에서 단속차량에 실렸는데 타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이 있던 이주노동자가 단속반 직원에게 상황을 알렸지만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심폐소생술을 진행했고, H씨를 차량에서 내려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은 증상이 나타난 지 1시간~1시간 반 후였다.

반성할 줄 모르는 출입국

부검결과 H씨는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는 H씨가 심장질환이 있었으며, 그 상태에서 수백 미터를 달렸으면 심근경색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즉 단속으로 인해 도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심근경색이 와서 사망한 것이다. 아마도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 H씨를 병원에 데려갔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H씨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입국은 책임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경찰이 범죄자 잡다가 범죄자가 도망가다 사망하면 경찰이 사과하냐’는 식으로 책임과 사건의 비극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출입국의 잔인함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출입국의 비인권적인 태도만이 H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경시는 출입국관리제도와 외국인인력관리제도에 구조화되어 있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본질

출입국관리법, 고용허가제 등 한국의 전체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는 근본적으로 출신국가와 계급 차이의 차별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온 동포와 거액을 투자할 능력이 있는 자에게 장기 체류할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제3세계에서 이주하고자 하는 자를 ‘외국인근로자’고 규정해 체류기간과 국내 활동범위를 엄격히 제한한다.
‘외국인’이라는 지칭은 민족국가의 외각에 있다는 뜻으로, 국가가 필요에 따라 관리하고 배제할 수 있는 존재다. ‘근로자’는 노동력 필요에 따라 국경 안쪽으로 도입된 자로, 고용주의 편의에 맞게 제공된 인력인 것이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는 제3세계에서 온 이주민을 정부가 선정한 산업과 사업장에서만 일하게 하고, 고용주에 종속시켜서 속박된 노동으로 만든다. 법제도는 이주노동자를 권리나 자유의 주체 아니라 상품이나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전제를 두고 있다.

한나라당의 고용허가제 개정안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10월에 발의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한나라당 개정안)에도 잘 드러난다. 법안은 △기업에는 숙련인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주노동자로부터 ‘성실근로’를 유도하면서도, △‘정주화 방지’와 ‘단기순환 원칙 견지’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고용주가 신청할 경우 사업장을 이동하지 않은 노동자에 한해 추가 체류기간을 부여한다.
추가 체류 자격을 얻으려면 여러 요건이 필요한데, 핵심은 현재 허용된 3번의 사업장 번경을 포기하는 것이다. 개정안의 추가 체류 기회는 기존 4년 10개월의 체류 기간 중에 사업장 변경(폐업, 휴업이나 비슷한 불가피한 상황은 제외)을 하지 않은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즉, 이미 현행법 하에서 엄격히 제한된 사업장 선택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한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추가체류가 허용된다. 사업장을 이동하지 않는 것을 ‘성실근로’와 연결시키지만, 이는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게 보다 심각하게 종속시키고 온갖 학대와 착취에 노출시킬 것이다.
개정안은 또한 이주노동자가 기존 체류기간이 끝나면 추가체류기간을 시작하기 전에 1개월 동안 출국하도록 규정한다. 이 규정은 ‘정주화 방지’를 위한 수단이다. 현재 한국 국적법은 합법적으로 5년 연속 체류한 자에게 귀화할 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일부 이주노동자는 최대 9년 8개월 동안 체류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출국 요건을 전제로 하여 합법적정착을 방지한다. 사업장 변경 포기와 1개월 출국이라는 두 요건은 이주노동자를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고용주가 보다 손쉽게 다룰 수 인력으로서의 취급을 영속시킨다.

개정안의 모순

개정안은 추가 체류기간을 규정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이주노종자의 장기체류 필요성과 필연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점점 긴 체류기간을 허용하는 것은 출입국 정책의 최근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 체류기간은 벌써 3년에서 4년 10개월로 연장되었다. 올해 상반기에 시행된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은 일부 미등록 동포에게 F-4 체류자격(영주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제 국제사회는 이주노동자 체류가 장기화될수록 취업국 사회로의 통합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많은 국가는 장기 체류한 이주노동자에게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은 장기 이주로 인해 서로 떨어진 이주민 가족의 결합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취업국가에 요구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개정안은 이주민의 장기 체류의 필연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주노동자를 원칙적으로 단기방문객으로 취급해 영주권 획득의 기회나 가족결합 등의 권리 보장은 아예 언급조차 않는다. 이 모순은 (제3세계에서 온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는 이 법안의 인종주의적 본질을 드러낸다.

단속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기능

단속은 개정안이 영속시키는 차별적인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주축이다. 물질적으로 쉽게 관리되지 않은 노동자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정부가 지정한 사업장 외에도 취업하고 정부가 정한 체류 기간을 초과해 한국사회에 정착함으로써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차별에 기반 한 출입국․외국인력 제도 전반을 위협한다. 그래서 정부가 단속을 통해서 내보내려고 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단속은 국가가 외국인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국가가 외국인들을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배제하는 권리를 강조함으로써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의 규제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단속은 차별적인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를 유지하는 데에 물질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필수적이다. 그리고 출입국․외국인력 제도가 전제로 한 차별은 인간 아닌 관리할 노동력과 관리체계 바깥에 있을 때 제거하면 되는 존재, 단속으로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단속으로 인한 또 다른 비극적인 죽음을 방지하려면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조직화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화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단속반대 투쟁, 개정안 반대 투쟁도 시급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내고 운동을 직접 건설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 단속을 막을 힘, 제도 개선을 쟁취할 힘을 키울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고용허가제 개정안에 당연히 관심이 많고 의견도 많다. 많은 이들은 추가체류 기회에 대해 큰 희망을 가질 것이다. 개정안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 이주노동자 대중들과의 토론이 중요하다. 개정안 발의를 많은 이주노동자를 접촉하고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할 기회로 삼자.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수렴하고 그 요구를 바탕으로 제도개선투쟁을 점차 조직하는 것은 현재 시기에 제일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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