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유럽사회포럼을 평가하며 10월 15-17일, 런던 알렉산드라 궁 '운동들의 운동'이라 불리기도 하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WSF)'이 2001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시에서 처음 개최되었을 때, 참가인원은 1만 2천명이었다. 그 인원은 2002년에는 6만 명, 2004년 인도에서는 10만 명 정도였다. 세계사회포럼은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구호 아래 전 세계의 사회운동 진영이 모여, 운동의 이슈, 대안전략, 행동계획 등을 치열하게 토론하고 아래로부터 연대를 맺으면서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힘을 키워나가는 열린 공간이자 운동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도 세계 지배세력들에게 위협을 주고 운동들이 공동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이다. 세계사회포럼 운동은 탄생 이래 급속히 퍼져 나갔고 각 대륙, 국가, 도시별 포럼도 개최되면서 하나의 운동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그 중 유럽사회포럼은 2002년 이태리 플로렌스(피렌체)에서 시작되어, 2003년 프랑스 파리를 거쳐 2004년 영국 런던 알렉산드라 궁에 도착하였다. 올해 유럽사회포럼을 런던 포럼 공식 홈페이지(www.fse-esf.org)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70여 나라에서 온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런던 유럽사회포럼에 모였다. 또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500개가 넘는 회합에서 2500명 이상의 연설을 듣고 열정적으로 토론했다. 핵심 6개 주제는 1)평화 2)민주주의와 기본권 3)사회적 정의와 연대-사유화, 탈규제에 반대하여 노동권, 여성권, 사회적 권리를 위하여 4)기업주도의 세계화와 지구적 정의 5)인종주의, 차별, 극우파에 반대하여 평등과 다양성을 위하여 6)환경위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등이었다. 포럼은 전쟁, 인종주의, 사유화 종식과 평화,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유럽을 요구하며 런던 중심부와 트라팔가 광장에서 7만 명이 결집한 강력한 국제시위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2002년 플로렌스 유럽사회포럼의 '사회운동 총회'에서는 이라크 전쟁 중단을 위한 2003년 2월 15일의 역사적인 국제 행동의 날을 호소했고 올해의 '사회운동 총회'에서도 중요한 국제 행동들이 호소문에 담겼다. 유럽사회포럼을 통해 맺어진 네트워크와 동맹은 이후 더욱 강화될 것이다. 다음 번 유럽사회포럼은 2006년 봄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고, 세계사회포럼은 2005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다." 표면적으로 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토론, 사회운동 총회, 호소문, 대규모 폐막행진 등 여느 사회포럼처럼 활력이 넘치고 다양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몇 년간 계속되어 온 사회포럼이 보다 새로워지고 보다 건설적이고 대안적인 과정으로 되어야 한다는 요구들이 많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번 사회포럼을 계기로 짚어 볼 점이 없지 않다.{{) 더 많은 번역된 자료들은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www.pssp.org) 자료실의 '유럽사회포럼 관련 글모음' 참조 }} 또 다른 세계는 어떻게 가능할까 아탁(ATTAC, 시민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연합)의 베르나르 카상은 "이제 세계의 지배자들에 대해 항의하는 사회포럼을 조직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대안세계화 운동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계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제안과 논의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회운동 총회의 호소문도 비판한다. "부당한 것들을 길게 나열한다. 이라크 점령,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점령, 기후변화, G8 권력, 시장주도 경제, 유전자조작식품,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유럽연합 헌법초안, 사유화, 보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 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11월 9일~16일 분리장벽(팔레스타인)에 반대하는 국제행동주간'과 '유엔 인권협약 비준일인 12월 10-11의 유럽 행동의 날'에 지지를 모으기로 결정했다. 내년 1월 니스에서 열리는 북태평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 대한 항의계획도 발표되었다. 우리는 2005년 7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 대한 대규모 시위 조직을 결의한다는 선언도 덧붙여졌다.... 그러나 '대안세계화'로 운동이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은 거의 제안되지 않았다."{{) 샌재이 수리, "유럽사회포럼 : 또 다른 세계, 그런데 어떻게?" (www.ipsnews.net)에서 }}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내용이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사회포럼 - 세계사회포럼의 미래와 전망'이라는 토론에서 이태리 활동가인 라파엘라 볼리니는 "생각 없이 같은 길을 따라가지 말아야 하고 올바른 목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민중의 의식 속에 있는 이데올로기를 깨야 하고 시민들이 보다 적극적일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한다"면서 "운동 사이에 더 많은 연계를 맺기 위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로 전망을 대신했다.{{) 마티유 러프티, "유럽사회포럼의 미래 : 운동간에 더 많은 연계를 맺기 위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출처 미상 }} 운동을 더욱 성장시켜서 힘을 크게 하는 것 자체가 유력한 경로라는 주장이다. 물론 많은 회합 속에서 제3세계 부채 탕감이나 빈곤 감축, 식량주권, 기업 폐쇄, 경제개혁 등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와 행동계획이 제안되었고, 이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행사가 열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회포럼 운동은 불과 4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실험적인 사건이었다. 아무도 무슨 일이 뒤따를지 몰랐다. 전 세계에 걸쳐 국제적인 수준에서 도시 수준에 이르기까지 포럼들의 대규모 폭발이 뒤따른 것이다. 모든 포럼은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또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된) 행사이다. 사회포럼은 항의시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 변혁과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것이다. 5년도 되지 않아서 사회포럼은 지구적 현상이 되었고, 중대한 변화를 바라는 세계 사람들의 실질적이고 성장하는 욕구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잘 증명하게 되었다...그것은 여전히 유럽 전역으로부터 거대한 규모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아마 가장 중요하게는 미래에 어떻게 함께 운동할 것인지 계획하는 특별한 행사였다."{{) 폴 킹스노스, "유럽사회포럼-심각해져야 할 때", (www.opendemocracy.net)에서 }} 더욱이 사회포럼이라는 것 자체가 기존에 일국 단위에서 권력 장악을 통해 사회 변혁으로 나가고자 했던 20세기 전략 이후에 새로이 시도되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전쟁이라는 '위로부터의 세계화' 조건 속에서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세계적 변화를 추구하는 상징이 사회포럼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어떻게'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아마도 이러한 상황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전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렇다고 당장에 '세계 변혁전략'을 제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끊임없이 운동을 개척하고 혁신하는 가운데에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고 전망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이 아닐까? 운동 내의 민주성과 아래로부터의 참여보장 문제 이번 런던 유럽사회포럼 평가에 있어 조직화 과정에서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이 비민주이고 폐쇄적이며 수직적이라는 것이다. 대규모 사회포럼이 열릴 때, 통역 자원활동가들의 국제 네트워크인 '바벨(Babel)'은 성명서에서 "그러나 이번 포럼 조직화 과정에서 많은 실험과 혁신 기회가 사라졌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 조직들, 네트워크들, 그룹들, 심지어 나라들까지 배제되었다. 이것은 포르투 알레그레 헌장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그 대신 조직, 관리, 서비스 공급에 있어 고전적인 신자유주의적 수단이 채용되었고 그 결과 포럼은 전적으로 국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 운동의 자기발전에 있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활동가들과 자원활동가들을 포함시키는 것은 대안 건설에 있어 최대로 가능한 사람들을 모을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자들-사회운동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조직화 동력을 창출하는-을 포함하게 한다. 이번 포럼은 참가자 숫자뿐 아니라(작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공적인 포럼을 위해 도움을 주는 자원활동가가 만성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에서도 조직화 실패를 드러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주로 사회주의 노동자당(SWP)과 런던시 당국(GLA)이 주되게 개입한 영국조직위원회에 가해졌다. 비판의 내용은 첫째, 포럼이 지나치게 상업적이었다는 것이다. 영국집권당인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소속인 런던시장 켄 리빙스턴이 대략 40만 파운드(약 8억)를 지원했고 포럼 등록자 2만 명에게 런던 무료 교통권을 지급했다. 등록비는 1인당 20파운드(약 4만원)에서 40파운드(약 8만원)에 이르렀다. 식사나 편의 서비스도 기업을 채용했다는 비판이 있다. 둘째, 준비과정이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참석자들의 적어도 1/3이 SWP회원인 준비회의에 많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다양한 형태로 가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저항의 세계화(Globalise Resistance), 영국반전연합(Stop the War Coalition), 프로젝트 K로 불렀다. 그러나 항상 같은 사람들이었고 시종일관 회의장을 채웠고 자기네 사람들이 의장이나 연사, 조직가로 되도록 투표했다.", "SWP 등은 항상 실질적인 대화로 나아가기를 꺼려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을 강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미 몇 시간 전에 내려진 결정이나 명칭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것을 반복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조직화 과정을 개방하고 모든 이들을 참여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SWP는 토론을 그만두고 그들만의 행사를 하고싶어 했다."{{) 폴 킹스노스, "극좌파의 낡은 속임수", (www.paulkingsnorth.net)에서 }}는 것이다. 일부 활동가들은 '수평주의자들'이라는 그룹을 형성하기도 했다. 셋째, 이 연장선상에서 몇몇 행사 또한 비난을 받았다. 런던시장 켄 리빙스턴이 연설하기로 되어 있던 반인종주의 회의와 시위에서 일군의 활동가들은 단상을 점거하고 "켄의 정당은 전쟁정당"과 같은 현수막을 펼치고 발언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라크 전쟁 관련 회의에서는 연사로 나선 이라크노총(IFTU) 대표에 대해 참석자들은 그가 임시정부에 찬성하고 있고 점령군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항의했고 결국 회의가 중단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탈리아 준비위의 활동가들은 입장을 내어 "유럽사회포럼이 열려진 대중적 공간이고 모두를 포괄하고 다문화적이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의 임무는 최근 우리의 경험에 의해 강화되었다. 우리는 12월에 열릴 평가회의에 이러한 확고한 신념을 제출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깊은 토론을 통해 지난 2년간의 경험을 제기해야 하고 미래에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논의해야 할 것이다... 운동은 그 단일한 결집과 기본원칙, 의제들을 통해 점점 더 '운동들의 운동'이 되고 있다. 이를 각 포럼 조직이 존중하고 강조해야 하며 그들의 소통과 네트워킹을 촉진시켜야 한다. 포럼 조직은 개방적이고 차이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하며, 보다 참여적인 방식으로 포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부갈등을 예방하거나 적어도 처리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참가단 활동가들은 "유럽사회포럼에서 이러한 난점들을 극복하는 방식은 토론과 포용을 통해서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회포럼 과정 내에서 충분한 다양성과 토론 보장을 생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영국조직위의 활동가들은 포럼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았고 참가자들은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시위도 성공적이었다면서 반박하기도 하였다. 무릇 다종다기한 집단들의 논의에서 충분한 토론과 소통, 민주적인 절차의 보장, 개방성 등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이다. 상호 존중하는 것을 통해 신뢰를 쌓고 단결할 수 있으며 더 큰 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일방이 주도하려 한다거나 영향력을 행사해 장악하려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문제가 되고, 이는 훨씬 나쁜 사태로 귀결될 수 있다. 사회포럼은 정치적 입장을 '선동'하는 공간이나 '조직체'가 아니라 운동의 경험을 교류하고 공통의 문제에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행동으로 연대하는 '공간'이자 '과정'이다. 따라서 위로부터의 통제나 주도성 경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제한없이 보장되고 운동의 역동성이 구현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사회포럼의 생명력이 있다고 본다. 앞으로 2005년 1월 26일~31일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리는 5회 세계사회포럼 조직위는 지금까지의 포럼에 대한 평가를 통해, 백화점식 논쟁의 장을 넘어서고 운동간의 대화를 통해 활동이 융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며 같은 주제에 대한 활동중복을 피하기 위해, 심화된 토론을 이끌어 내고 공동행동과 캠페인을 촉진하며 논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안을 만들고 창출"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로 세계사회포럼을 만들기로 했다. 그에 따른 새로운 조직방식을 도입했는데, 우선, 세계사회포럼의 기본정신인 자율성의 원칙과 중심주의 배제의 원칙을 유지하면서, 11개 영역을 정하고 각 주제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나누어 각 영역별로 관심 있는 조직들이 인터넷을 통해 제안서을 낸다. 그리고 이 제안서는 웹 상에서 공개되어 관심있는 조직들 간의 논의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운동조직들이 스스로 조직하게 한다는 것이 그 취지이다. 11개 주제는 다음과 같다. 1)지구보호와 민중의 공공재-상품화와 초국적 지배에 대한 대안 2)예술과 창조-민중의 저항문화 건설 3)커뮤니케이션: 대항 헤게모니, 권리, 대안 4)다양성, 다수와 정체성의 보호 5)정의와 평등을 위한 인권과 존엄성 6)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주권경제 7)종교, 우주적 전망(cosmovisions), 정신-새로운 세계를 위한 저항과 도전 8)사회투쟁과 민주적 대안-신자유주의적 지배에 반대 9)평화, 비군사화와 반전투쟁, 반전, 자유무역반대, 외채반대 투쟁 10)자율주의적 사고, 재전유, 지식과 기술의 사회화 11)국제적 민주질서와 민중통합의 건설 부시가 당선되어서 많은 이들은 허탈해한다. 세계 사회운동에게는 앞으로 더 힘든 시기가 다가올 수도 있다. 미국의 '정의평화연합(UFPJ)'은 "한탄하지 말고 조직하라"라는 성명을 통해 "우리의 길고 긴 희망은 풀뿌리 민중의 상승에 있고,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우리는 이라크 전쟁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가 접촉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조직할 것이다...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변혁 운동에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게 했다. 앞으로의 시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공동의 노력이 정의와 평화의 승리에 더 가깝게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회포럼을 변화 발전시키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PSSP
미국의 2004년 대선 논평 149, 2004. 11. 15 이매뉴얼 월러스틴 (http://fbc.binghamton.edu/commentr.htm) 조지 W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 그는 상하 양원에서도 지지의 격차를 늘렸다. 미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무슨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떤 분석이라도 부시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부시는 대공황 이후 가장 우익적인 대통령이다. 그리고 미국 역사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반동적인 대통령이다. 나는 고전적인 정치적 의미로 “반동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시는 그의 첫 재임기간에 이미 그의 프로그램을 추진하는데 있어 타협가나 온건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그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불도저같이 밀어붙이고 반대세력을 억누르고 심지어 자기 사람을 약화시켰다. 이미 그는 재선에 대해 그가 정치적 자산을 얻은 것이고 그것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내부에서 부시는 세가지 다른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우파, 거대 기업가, 군사주의자들이 그들이다. 그 각각은 날뛰고 있으며 스스로의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부시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매우 다르고 서로에게는 명목상의 지지 이상을 보내지 않는다. 기독교 우파는 기본적으로 미국 내부 이슈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두가지 이슈에 집중했는데 동성 결혼과 낙태이다. 그들은 동성 결혼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그들은 헌법 수정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들은 낙태를 불법화하고자 한다. 이는 최고법원이 로 對 웨이드(Roe v. Wade)라 불리는 사건을 번복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최고법원 판사를 새로이 임명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러한 번복을 위해 4-5 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3명의 판사가 이미 그렇게 투표했는데 그 가운데 한명은 퇴임할 예정이다. 따라서 부시는 그 사건을 뒤집기 위해 3명의 판사를 임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 우파 의제의 시작일 뿐이다. 그들은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세계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 20세기의 징표가 되었던 완전히 자유화된 관습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미국에서 그들이 동성결혼과 낙태를 그들 마음대로 하게된다면, 그들은 다음으로 피임금지, 동성애 불법화, 이혼 제한이나 금지를 추진할 것이고 그들 중 일부는 여성을 작업장에서 몰아내고 심지어 투표에서도 몰아내려 할 것이다. 그들의 또 다른 의제는 인종주의로 회귀하는 것이고 백인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지배되는 국가로서 미국을 다시 세우려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형태의 역차별 조치(affirmative action)를 폐지함으로써 이를 시작할 것이고 이로부터 이민 문제로 나아가고 그리고나서 아마도 선거권 문제로 나아갈 것이다. 이는 20세기초 이래 미국의 사회적 진전의 전체를 뒤집게 될 것이다. 이는 물론 가장 극단적인 그룹의 의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주의 그룹이 기독교우파의 정치구조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고 공화당에서 매우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인식되어야 한다. 그들의 정치적 전략은 이러한 결정의 제도화를 보장할 만큼 충분히 젊은 사람을 [법관으로] 임명하고 그러한 입법부를 선출하여, 입법부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법원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것을 할 수 있을까? 기독교우파는 확실히 그들 부류의 판사를 임명하는데 이전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 헌법 개정이 상원 2/3의 득표와 각 주의 3/4의 비준을 얻어야 하지만 그들은 이를 할지도 모른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부시가 힘을 실어준다면 말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러한 노력은 정치적으로 논쟁될 것이고 여전히 중요한 소수인 소위 공화당 온건파를 당황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부시가 경제 전선에서 원하는 바-이는 부시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고 물론 그의 거대 기업가 지지층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기독교우파를 지지할 것이다. 경제적 보수파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들 역시 세금, 환경규제, 그들에 대한 소송, 의료보험 비용 등에 있어서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한다. 세금문제는 간단하다. 그들은 세금부담을 부자들에게서 가난한 자들에게로 이전시키기를 원한다. 그들은 많은 방식으로 이러한 목표를 추구해왔다. 상층을 위한 세율인하, 배당금에 대한 세금 삭감, 소위 사회보장과 의료보험 개혁이 그것들이다. 즉각적인 목표는 1기 부시행정부의 주요 감세를 영구적으로 만들고, 소위 개인 계정을 통해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부터 탈퇴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후자는 더 젊고 잘사는 사람들이 현재 퇴직계정[퇴직연금]에 지불되는 기금 납부자가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전체 사회보장(1935년 루즈벨트행정부의 업적)과 소득세(1913년 헌법개정으로 합법화된)가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정부 수입은 일률세(flat tax) 또는 판매세로 충당될 것인데 이 양자는 매우 퇴보적이다. 환경문제에 관해 부시 정책의 대부분은 행정명령에 의해 추구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입법부를 통해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획득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을 저지할 수 없는 변형된 법원을 계산하고 있다. 이는 거대 기업의 악행에 책임을 지우는 소위 집단 소송을 제한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부시는 “불법행위 수정”을 규정하려 할 것인데 이는 법원이 부과할 수 있는 벌금의 액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시는 실제 혜택을 사실은 삭감하는 소위 의료보험 개혁을 하고자 하더라도, 물론 거대 제약회사가 더러운 이익을 취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정치적으로 논란될 것이다. 부시행정부에 대한 주요한 견제는 민주당에서 오기보다는 보다 약아빠진 자본가 계층에서 올 것이다. 그들은 최근 달러가치 급락과 급속도로 증가하는 막대한 정부 부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 두가지는 주식시장에 재앙으로 결과할 수 있다. 그들중 일부는 만약 이러한 변화가 진행된다면 미국 정부는 재정을 삭감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상당한 규모를 삭감할 수 있는 유일한 부문은 군사예산이다. 세번째 지지층인 군사주의자(네오콘을 포함해서)로 넘어가자. 군사주의자들은 보다 최근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즉 미국이 의심의 여지없이 세계에서 헤게모니 파워를 가지고 있었고, 모든 곳 또는 거의 모든 곳에서 무슨 일이 발생해야 하는지 명령할 수 있었던 시기를 말한다. 이들은 부시행정부 1기에서 최상층을 형성했다. 문제는 그들이 2기 행정부에서도 그러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이다. 이라크 전쟁은 군사주의자들과 네오콘들이 희망하고 예상했던 길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 명확하다. 그리고 그들은 국내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비단 반전 운동때문이 아니라 어리석은 침략전쟁의 비용을 탄식하는 보수파들과 중도파들 때문에 그러하다. 군대는 그들의 무기를 위해 더 많은 돈을 가지게 되면 항상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확실히 이길 수 없는 군사분쟁에서 다시 한번 붙잡혀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성질나 있다는 것 또한 명확하다. 그들은 철군이 자신들에게 초래할 반발을 두려워한다. 군대 수뇌부는 그들이 하위 장교였던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 군사주의자들은 빨리 전진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란과 쿠바를 침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부시 정책이 거의 성공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또는 시도조차 되지 않을 것 같은 영역이다. 세계적으로 미국을 “불량국가”로 적대하는 것을 제쳐놓고도 (헝가리는 이라크로부터 철군한다고 발표하는 날로 미국 선거 다음날을 선택했다), 군대 수뇌부가 발을 빼는 것은 거대 기업가 지지층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의 지속적인 재정 소모에 깜짝 놀라 있고 이는 그들이 원하는 경제적 변화를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시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최고속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로부터 철수를 요구받는 세계에서의 낭패 상황뿐만 아니라 자기진영 내의 분열에 걸려넘어질 위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의 순수한 결과는 두가지일수 있는데, 좌파를 소생시킬 수 있는 미국내의 강력한 반전운동과, 역사적으로 좌파와 우파 양자에 기초하는 고립주의의 강력한 부활이다. 따라서 결국 부시정책은 세계체제에서 전망이 초라하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내에서 국내문제에 대해 매우 충분한 전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인 삶을 강제로 후퇴시키는 사법체계를 실제로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모두가 말하는 정치적 삶의 양극화는 심각한 국내 갈등을 가속화시킬수도 있다. 미국은 2004년 대선에서 큰 실패자이다. 세계가 실제 승리자일지도 모른다.
부시의 승리, 팔루자 그리고 세계 평화운동에 대한 공화당 우파의 도전 (2004. 11. 8 www.focusweb.org) 월든 벨로 (Walden Bello) (*방콕 소재 ‘남반구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 대표, 필리핀대학교 사회학 교수)
부시 재선을 돌아보며 부시의 재선 확정으로 마무리된 2004년 미 대선 직후인 지난 11월 4일, 미군은 저항세력의 소탕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대적인 공습을 퍼부었다. 일주일 새 최소 600여명 이상의 이라크인이 사망했으며, 1천2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심지어 휴전협정이 맺어진 11일에도 이라크인 11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부상당하는 등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공격은 무차별총기난사 수준이다. 부시는 10일 연설을 통해 "일부 소수 그룹이 이라크의 민주화를 좌절시켜 권력을 잡으려 하고 있다"며 "이같은 민주주의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은 향후 수주간에 걸쳐 공세를 계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 시민의 1/4 가량의 선택을 통한 재선이 마치 9.11테러 이후 일관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전 세계의 공인이라고 선언하는 듯 하지만, 그 이면의 부시정부의 초조함이 드러난다. 이번 팔루자 공습을 계기로 이라크 내 반미여론이 고조되고 미군이 창설한 이라크군 4개 대대 중 일부는 미군의 공격지원명령을 거부하는 등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부시는 동맹국의 힘을 협박 어린 호소로 요구하고 있다. 2004 미 대선은 베트남전쟁 중이던 1968년 닉슨의 재선이래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 그리고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나 총득표수 논란 같은 사태가 불거지지 않은 깔끔한 승리와 승복이었다는 점 등에서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와 부시체제로의 강력한 결집이라는 양상을 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력한 양당체제를 유지해오며 한편으로는 지배엘리트간의 합의와 견제로 지탱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와 다양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보편주의의 담지를 포함하는 미국정치체제가 돌이키기 힘든 균열의 조짐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번 대선이다. 한계에 봉착한 미국 정치체제의 '민주성' 미국의 자유주의와 그것을 방어하는 외피로서 보수주의적 성향간의 불균형은 미국적 정치원리의 내부 긴장관계를 크게 흔들고 있다.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을 관리하는 가운데, 지방분권화와 중앙집중적 성격의 조화를 목표로 창안된 미국의 선거제도는 강력한 양당체제를 뒷받침해왔다. 이러한 미국의 정치체제는 공화주의적 덕성관념과 자유주의적 사익관념의 대립을 현상으로 하면서 주기적으로 개혁의 이념을 형성하였으며, 미국 건국의 정신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아가서는 구래의 정신으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한계 내에서 지속되어왔다. 80년대 '스태그 플레이션'과 경제불황 등으로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뉴딜연합이 해체된 이래 민주당 내 급진화와 보수화 사이의 경합은 1992년 클린턴의 중도보수로 일단락되었다. 유색인종, 여성, 소수자들의 권리라는 자유주의적 쟁점을 포괄하는 이질적인 집단들의 연합으로서 과거의 민주당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냉전의 해소와 함께 평화, 인도주의적 개입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선봉장으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자주의적 개입의 틀(UN과 국제법)을 초과하는 일방주의적 대외정책 구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과정에서 미국적 보편주의의 균열은 가속화되었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는 분명한 선거조작과 플로리다의 수백 표가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을 결정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자의 패배의 승복으로 일단락되었다. 레이건-부시/클린턴-고어의 합작품인 '범죄와의 전쟁'은 흑인남성의 상당수를 범죄자로 낙인찍어 공민권의 박탈을 초래했다. 투표자의 다수가 모든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선거제도는 미국 자유주의의 몰락을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결집으로 은폐하고 있을 뿐이며, 공민의 지위로부터 추방되거나 이탈되는 광범위한 세력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이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지의 종식을 뜻하는 '일하는 복지'와 보편주의적 성격을 상실한 자유주의의 앙상함은 미국정치의 '민주성'의 환멸로부터 이탈하는 광범위한 세력들을 더 이상 조직할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9.11이후 군사개입의 확대로 재정적자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인 2억9천만명 중 4천5백만 명이 의료보험으로부터 소외되고 8백만이 실업상태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내건 의료보호확대와 재정적자 해소 등은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하였다. 이를 정치적, 법적 기회의 평등을 자유의 동반자로 인식하면서도 경제적, 결과적 평등은 자유와 상반되는 것으로 보는 미국 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회의와 불만으로 파악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 동성애자 결혼반대, 사형제도 찬성, 낙태 불법화 등에 있어 종교적 가치로 환원되는 '도덕적 가치' 중심의 표-조직화는 미국 정치체제의 '민주성'이라 일컬어지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균형의 균열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자유주의의 몰락(지지기반의 회의와 환멸)의 상황에서 적어도 보수주의라는 외피의 옹호만이 강조되는 것은 미국 지배계급이 대중의 정치의식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체제의 위기상황을 전쟁과 종교의 상호방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관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9.11이후 확장된 미국의 소명의식과 특수주의. 9.11은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의 확대에 대한 소명의식과 미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사고의 변형을 낳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본과 국방의 심장부에 가해진 예측불허의 테러는 '우월성과 모범성'을 가진 구원자로서의 나라, 그 점에서 미국이 타락한 구대륙과도 전혀 다르고 미개한 나라에 대해서는 인도자가 되어야 할 대단히 '예외적'인 나라라는 미국적 경험과 체제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시와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천명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는 행복한 제국의 기획으로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따라서 항존하는 '테러'위협으로부터 강력한 보호망을 형성하는 요새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더불어 이는 자신과 타자에 대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개념의 강화를 의미한다. 이라크전은 이러한 변화의 첫 수순이었으며, 부시의 재선은 결정된 대외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그 목적을 철저히 추구하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도덕적 절대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 미국인이 선택한 '도덕적 가치'란 소명의식과 미국적 특수성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한 화답이며, 4130억 달러라는 엄청난 재정적자와 취약한 경제구조를 안고 있는 미국의 채권을 6984억 달러가 넘게 사들이는 각 국의 중앙은행에 대한 미국적 보답인 셈이다. 한편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북한과 이란 등 불량국가에 대한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케리의 패배는 자유주의의 몰락을 저지하는 길이 다양한 이익집단(흑인, 환경, 여성, 동성애자)의 이해를 포괄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것을 1980년대 선거이래 공화당과 보수주의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제국'적 기획의 판정승이라 결론짓기보다는 세계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민족국가로서 미국의 선택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제국의 신민에 의한 보편성의 승인은 이제 미국의 목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자국적 이해를 보호하는 것, 미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요새를 수호해내는 것이 미국과 여타의 종속국과의 관계가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수호하는 전 세계 국가들의 과제는 FTA 등의 도입을 통한 관세철폐로 미국대외무역적자를 감축하고 미국 경제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보호해야 할 요새에는 미국 부의 40%를 가진 상위 1%가 존재하며 이에는 전세계 지배엘리트들이 포함되어있음은 분명하다.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이 요새에 대한 저항과 공격은 물론 모두 테러로 간주된다. 이 때, 현실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대응력을 갖춘 신보수주의적 쟁점은 이라크, 북한, 이란 등과 같은 위협요인을 미리 제거하고 예방전쟁을 항구적으로 전개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더 나은 미래(위협요인의 제거의 수순을 밟아나가는)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전파하는 합의적 미국정치체제가 복원될 것은 요원하며, 세계는 더욱 야만적인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미국의 위기는 증폭되고 있다. 미국헤게모니의 쇠퇴와 금융적 팽창이 새로운 헤게모니 출현의 전조를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미국의 헤게모니가 쉽게 지속된다거나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이 무난히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은 절대적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개입을 펼치기에는 군사력과 재정적 여력이 충분치 않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에서 지금의 이라크전이 동맹국의 동의를 광범위하게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케리의 비판은 그다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이라크저항군에게 무참히 깨져나가며 친미정부 수립과정에서 미궁에 빠진 미국에 대한 이라크와 전 세계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으며 요새 아메리카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동맹국들의 불만과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9.11이라는 역사를 돌려놓기 전까지, 그리고 다자주의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일방주의적 군사개입을 상시화했던 미국의 역사를 돌려놓기 전까지는 해결불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15억 달러씩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로 표현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은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 지게되는 정치적, 사회적 비용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이를 오래 지탱하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유동성과 규제철폐의 경향 속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미국으로 집중되는 금융분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있어 분명한 난점이다. 더구나 선거에서 드러나듯 요새 내에서의 공민의 지위마저 협소화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보편주의의 상실은 미국 내 인민들 그리고 전 세계 인민들과 민족국가들의 끊임없는, 그리고 보다 확장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미대선 직후 개설된 'sorry everybody(모두에게 미안)' 라는 싸이트에는, 노력은 했지만 부시를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들이 '아메리카의 절반의 이름'으로 게재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몰락의 징후를 분명하게 보여준 이 대선의 결과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은 아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미국의 폭력과 야만의 선택에서, 이전의 반전반세계화 그리고 반미투쟁의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반미란 전쟁과 세계화에 대한 보다 냉철한 비판과 폭넓은 저항을 조직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 또한 모든 사회운동적 쟁점의 연대를 통한 저항의 세계화라는 과제 즉, 전 세계 인민의 보편적 민주주의의 창출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반전반세계화 투쟁이 반부시로 수렴되는 구호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0월 15-17일에 열린 유럽사회포럼에 대한 글들입니다. 1. 유럽사회포럼 : 또다른 세계, 그런데 어떻게? 2. 유럽사회포럼의 미래 : 운동간에 더 많은 연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3. 유럽사회포럼 4. 바벨(Babel) 성명서 5. 사회운동 총회 호소문 6. 유럽사회포럼 - 심각해져야 할 때 7. 극좌파(Hard Left)의 낡은 속임수 8.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유럽사회포럼을 망칠 것이다 9. 런던 유럽사회포럼의 몇가지 문제점들에 대하여 10. 런던 유럽사회포럼에 대한 몇가지 평가
민주노총에서 나온 '총파업 승리! 조합원/간부 교양자료집'입니다. - 민주노총 4대 요구 - 재앙이 시작된다 : 한일 FTA - 신자유주의 세계화 WTO / 도하개발의제 - 비정규 노동자도 인간이다 - 파병은 미친짓이다 - 국가보안법 - 하반기 입법과제 - 하반기 총파업 투쟁 이렇게 합시다
9/11 위원회 보고서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에 관한 국가위원회의 최종보고서 요약본 * 한글번역
10월 15-1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3회 유럽사회포럼의 사회운동 총회에서 나온 호소문입니다.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고구려사의 해석문제가 한국과 중국 사이의 뜨거운 논란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학술 해석의 문제인 것처럼 시작한 이 쟁점은 급속히 정치적 쟁점으로 변했고, 어느덧 중국은 대외팽창을 추구하는 위험한 패권세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있다. 역사의 자의적 해석과 그에 뒤이은 사회의 우경화와 군사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의 그림자가 중국이 현재 걷고 있는 발걸음에 겹쳐지면서 한반도가 좌우로 협공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편승하여 역시 중국에 과도한 신뢰를 보낸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우리의 영원한 ‘우방’인 미국에 좀 더 적극적으로 기대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뿌리깊은 수구적 논리나, 간도도 우리 땅, 만주도 우리 땅이라는 반사적 대응논리 또한 돌출하고 있는데, 좌우파를 구분할 수 없이 뒤섞여 나타나는 이런 독특한 민족주의의 이면에 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실정이다. 동북공정과 고구려사의 문제를 살펴볼 때 우리는 몇가지 측면을 나누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동북공정과 고구려사의 자의적 해석은 중국의 중앙정부차원에서 진행되는 국가정책 노선을 반영하는 것인가? 두 번째로 고구려사의 재해석은 동북공정의 핵심인가? 세 번째로, 왜 이 시기 동북공정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가? 네 번째로, 이런 동북공정과 관련된 변화들은 중국사회의 어떤 변화들을 반영해주고 있는가? 다섯 번째로 이후 이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고, 우리는 최소한의 어떤 대응태도를 갖추어야 하는가? 우선 첫 번째 문제와 두 번째 문제를 묶어서 살펴보자.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문제가 한국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2003년 6월 24일 중국공산당 선전부 기관지인 ??광명일보??에 삐엔중(邊衆)이라는 필명으로 “고구려 역사 연구의 몇가지 문제 시론”이라는 글이 실리면서부터였다. 물론 동북공정과 관련있는 중국학자들이 제기하는 고구려의 중국지방정권설이 그 전부터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 때까지는 문제가 아직 학계 내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광명일보에 그런 입장의 글이 게재되자, 이것이 중국정부의 공식적 입장을 대변한다고 해석되면서, 고구려사 재해석 문제는 한국언론의 대대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광명일보에 게재된 글은 동북공정을 주관하는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의 공식입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변방의 군중’이라는 뜻의 삐엔중이라는 이 글 필자의 필명은 변강사지연구중심의 간략명칭인 ‘邊中’과 발음이 같다는 점에서, 동북공정의 기본 입장이며, 이 입장이 당 기관지에 실렸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일정한 합의를 거친 글로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고구려사의 재해석은 곧 동북공정의 핵심사업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가, 이미 고구려사 재해석 작업은 그보다 한참 전인 1980년대부터 시작된 장기기획이며, 이런 식의 고구려사 해석은 이미 중국 역사교과서를 왜곡시키고 있고, 이런 작업을 진행하는 동북공정에는 3조원이 넘는 돈이 투입되었다는 등의 각종 확인되지 않는 사실들이나,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동북공정과 직접관련이 적은 일들까지 한데 합처져 실상을 부풀리는 작용을 하였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갈등의 잠재성이 커지고 있는 중국 변경지역 문제에 대한 정책과제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동북공정 이전에 이미 티벳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남공정과 위구르족이 살고 있는 신장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북공정이 진행된 바 있는데, 양 지역 모두 분리운동이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서남공정이나 서북공정은 모두 이 지역의 현황과 발전전망, 역사적 유산, 통합의 방향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종합연구이며, 이 연구에 기반해 이 지역의 잠재적 갈등요소를 없애기 위한 정책처방을 추진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의 연구였다. 동북공정은 같은 맥락에서 동북지역의 불안정성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과제로 추진되었는데, 이 경우 주요한 정책적 초점의 하나는 북한의 동요와 조선족 사회의 동요가능성에 대한 장기적 대책마련이었다. 그런 점에서 다른 두지역과 마찬가지로 동북공정 또한 해당 지역의 중요성에 대한 각종 평가와, 이 지역의 발전전략의 마련, 그리고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주도권을 인정받기 위한 역사적 정당성의 마련 등의 작업이 진행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해당지역의 역사나 현황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면서 같은 역사-문화적 유산을 공유하는 인근 지역과의 잠재적 갈등의 소지를 키워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사해석의 문제는 그런 실용적 목적이 역사적 해석을 좌우하면서 발생한 대표적인 갈등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지금까지 확인된 동북공정의 진행과정에서는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해석하는 입장을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왔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동북공정은 동북지역의 현황과 역사문제에 대한 정리하는데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의 계획에 따라 중국돈 1500만위안(약 23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야기되는 3조원에는 이와 별도로 동북지역의 경제개발 및 하부구조 재건설에 투입되는 각종 자금이 모두 포함된 액수인데, 동북개발 전체와 동북공정을 구분해야하기 때문에 23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투입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대적 국가사업의 추진으로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투입된 액수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사 문제가 정부의 핵심적 의제가 아니었다는 점은 이 문제가 한국 내에서 일으킨 파장에 비교해 볼 때, 중국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동북공정에서 고구려사 문제는 반드시 핵심적인 쟁점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동북공정의 진행과정에서 고구려사 문제가 부각된 것은, 이것을 정부가 의도적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동북지역의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등록 문제 등과 관련하여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일군의 중국 학자들의 영향력 확대 시도 및 지방정부의 사업확대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쪽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이러면서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문제가 하나로 얽히면서 파장은 증폭되었다. 다만 이 경우에 중국의 중앙정부가 고구려사 문제의 재해석에 대해 시인도 부정도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이 문제가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고자 하는 학자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설사 이 과정이 계획된 의도의 결과는 아니더라도, 이후 유사한 추세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수민족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자기중심적 태도는 1980년보다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가 1950년대부터도 나타난 바 있는 지속적 흐름이다. 이전과 달리 이번의 경우는 이에 대한 중국공산당과 중앙정부의 입장이 매우 모호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 번째로, 그럼 왜 이시점에 동북공정이나 고구려사 문제가 부각되는 것일까? 우선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배경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개혁개방기 변경지역의 소수민족의 동향에 대한 중앙정부의 우려를 들 수 있다. 개혁개방기 들어 소수민족 거주지역이 지닌 각종 불만은 이전과 다른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이는 소수민족 지역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기반하고, 국경을 접한 인근지역과 공유하는 역사적 자원의 공통성에 근거한 분리주의가 발생할 가능성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티벳이나 신장지역의 분규에서 그런 조짐들은 지속적으로 관찰되었다. 동북지방의 경우는 여기서 특수하게 더 중요한 변수가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북한의 동향이다. 북한의 경제가 붕괴상태로 치달으면서 탈북자가 증가하자 북한과 국경지역의 불안정성은 중국에게 점점 더 큰 정치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동북지역에 1백만명 이상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국가구조의 약화와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이 지역의 조선족과 한반도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시사해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조선족의 이주사가 불과 100년 정도에 지나지 않음을 고려하면, 이 지역 조선족의 중국에 대한 통합력이 한반도 지역에 대한 통합력보다 강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며, 이 때문에 동북지역을 중국역사 속으로 통합해 들이려는 정치적 열망은 앞으로도 더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사의 재해석은 계획되지는 않았더라도 이런 정치적 배경을 지닌 통합의 열망의 한 시도가 돌출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북한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중국에 대한 북한의 위상 또한 바뀌고 있는데, 특히 이는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중국의 국경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에 대한 완충지역이 사라졌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시기 중국과 북한은 냉전의 국제정세 속에서 이른바 ‘형제국’으로서 특수한 연대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잠재적 갈등요소가 있는 국경의 문제에 대해 논쟁의 가능성을 봉합하는 타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이야기 되는 것처럼 쩌우언라이(周恩來)가 고구려사가 한반도의 역사에 귀속됨을 인정한 것이나, 백두산의 국경선 획정 문제 등이 그런 방식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은 북한을 완충지역으로 하여 중국과 직접적으로 이런 근대적 민족국가 형성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경선긋기나 민족동일성 형성상의 갈등문제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더불어 완충지역이 사라지면서, 한반도 전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의 사이에서 앞으로도 점점 더 유사한 형태의 다양한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음을 이런 문제들이 예시해 주고 있다. 중국 내부로 눈을 돌려 볼 경우, 이런 한반도의 정세변화와 맞물린 민족동일성 문제는 중국의 내적통합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근대사회로의 전환기에 과거의 (역사적)제국이 동일한 외연을 유지하면서 민족국가로 전환한 드문 형태인 중국의 경우, 그것을 ‘민족국가’로 정당화하는 민족적 동일성의 토대는 사실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중원’으로 대표되는 한족과 거기서 조금 더 외연을 확장해 외부로부터 유입되었지만 한족 문화에 깊이 동화된 여타 지배민족(예를 들어 만주족)의 경우는, 그 역사적 공통성을 기반으로 동일한 ‘민족’ 동일성을 표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주변의 흩어진 ‘소수민족’의 경우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제기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대중화민족’의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강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시기 사회주의적 ‘개혁’을 통해 그 구심력이 일정정도 확보된 것은 사실이지만, 티벳과의 관계에서 보듯이 그 구심력에도 늘 한계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회주의적 개혁이 폐기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주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민족적 동일성에 구심력을 주고 있는 것은 발전주의적 국가주의라고 할 수 있을터인데, 이것은 그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강한 강도의 원심력이 외부에서 작용할 경우 쉽게 허물어질 수 있고, 또 설사 구심력이 어느정도 유지되더라도 내부에서 그 혜택에서 배제되는 층들이 늘어날 경우 구심력으로부터 이탈하는 원심력의 요소가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는 곧바로 네 번째 질문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처럼 취약한 구심력과 다양하게 존재하는 원심력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중국은 구심력을 강화하기 위한 애국주의적 민족주의에 점점 더 의존하려하는데, 그것은 허구적 민족적 동일성의 신화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민족이라는 범주 자체가 ‘상상된’ 또는 ‘허구적’ 동일성에 기반한 것임은 많이 지적되는 것인데, 특히 이것이 억압에 대한 대타적 이미지나 타민족에 대한 확고한 우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닐 경우 더더욱 그 취약성은 심해질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중국의 민족주의는 그 진보적 성격을 계속적으로 탈각해 오면서 서구선망적인 형태로, 소비주의에 포섭된 민족주의, 발전주의적 민족주의의 특징을 점점 더 강하게 키워오고 있다. 강력한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선망의 민족주의는 그런 맥락에서 형성되는데, 강한 구심력을 가진 중국만이 더 큰 소비력과 더 높은 소득, 그리고 사회적인 안정성을 보장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 현재의 중국의 민족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취약한 측면을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 가공 작업을 통해서 보완하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모순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전설의 3황5제시기까지 역사와 고고학에 포함시키려는 무리한 노력은 과거 제국과 조공질서를 중국중심주의의 실현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으로 넓혀지게 되며, 현재의 강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모든 자원들을 소급해석하려는 무리한 요구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중국 민족주의가 지닌 모순적 성격의 독특성은 한쪽 측면에서 한족을 중심으로 한 문화의 우월성이 민족통합의 요소로 동원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한 다민족간의 통합과 공존을 중국의 역사로 설명함으로써 대중화주의가 정당화되는 논리가 공존한다는 점에서도 관찰된다. 20세기 초 신해혁명과 그 이후 시기 쑨원(손문)은 한편에서 반청 한족혁명의 기치를 내세운 반면, 다른 한편에서 오족공화(五族共和)의 민족공존의 대아시아주의를 제창한 바 있는데, 중국 민족주의의 이런 모순은 이미 그 시기에도 드러난 바 있다. 문제가 중국의 내부적 통합과 갈등의 딜레마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파장이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온전하게 해결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또한 허구적 동일성이라는 특징을 지니는 민족동일성의 역사적 뿌리에 대한 논쟁은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주제라는 점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고구려사가 한국사로 귀속되는가 아니면 중국사로 귀속되는가라는 문제 이전에, 역사를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지, 그리고 과거의 어떤 시기가 현재의 특정한 시공간에 귀속되는 것이 타당한지의 문제 또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역사의 근거로 삼아 현재와 미래의 상황을 정당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구려사의 경우도 비중으로 보건대 중국사보다 한국사에 귀속될 수 있는 자원이 많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고구려사를 기술하는 온전한 방식일 수 있는가의 질문은 끊임없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후세의 어떤 시점의 어떤 국가로 모든 역사는 귀속되어야 하는 것인가? 최근에 중국에서 회자되는 이야기중 하나는 송나라 때 민족영웅으로 칭송받는 웨페이(岳飛)에 대한 평가이다. 금나라의 침입에 맞선 웨페이는 화평론자인 친후이(秦檜)의 모함으로 일찍 죽었고, 웨페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는 역사의 배신자로 모멸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 기존의 중국의 역사기술이었다. 그런데 최근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웨페이를 민족통합을 방해한 인물로 평가절하 하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에서 재단한 과거는 여러 가지 희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현시점에 설사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전면적 기획의 산물은 아닐지라도, 현재의 중국의 민족주의가 보여주는 특징들을 보건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더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역사기술이나 행동양식들이 강화되고, 문제의 지평을 공통의 영역으로 확대하기보다는 논의와 소통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귀결점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인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즉자적 대응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기술을 역사화하는 노력 속에서 현재 중국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지점의 근원에 대한 뿌리를 찾아보려는 노력과 공동의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를 상이한 시간대 속에서 자리매김하고 현재의 문제를 현재의 시간대 속에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