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5차 각료회의 저지 투쟁과 남겨진 과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추석은 풍요를 기원하고, 그것을 나누는 우리나라의 고유의 명절이다. 그러나 금번 추석은 그 출발전부터 민중들에겐 녹록치만은 않은 소식들로 시작되었다. 정부는 양대 노총의 반대에도 근로기준법을 개악하는 주5일제를 통과시키더니, 노동자의 단결권과 행동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사용자의 대항권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들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이니 추석을 보내는 노동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을리 없다. 추석이 문제랴. 위도에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며 투쟁해왔던 부안군민들은 군수의 입원으로 집단이기주의라는 지탄을 넘어 폭도로 비난받고 있었다. 고향으로 떠나는 차안에서는 미국이 한국정부에게 이라크에 대규모의 전투병을 파병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게다가 추석연휴 내내 뉴스에서는 태풍 매미의 북상과 피해소식들을 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은 WTO 5차 각료회의가 열리고, 또한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있었던 멕시코 칸쿤에서 들려온 고 이경해씨의 죽음이다. 이경해 한국농업경영인 전 회장은 국제공동농민행동의 날 집회에서 경찰과 대치한 바리케이트에 올라가 WTO가 한국농업을 죽인다는 구호를 외친 후 할복자살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하였다. 칸쿤에 있던 투쟁단은 즉각 이경씨의 사망은 단순 사고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결코 아니며, 민중의 생존권을 말살하는 WTO협정과 한국정부의 농업포기 정책이 이 죽음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WTO 5차 각료회의 농업협정 초안이 발표되기까지 WTO는 GATT의 8차 무역협상 라운드인 '우루과이라운드(1986년~9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95년 출범한 새로운 무역규범이다. 우루과이라운드는 농업을 관세를 통해서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 이에 뒤이은 WTO에서의 농업협상은 이렇듯 농산물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을 하는 관세마저도 점차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5차 각료회의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농업협정은 관세를 대폭 낮추고, 수출보조금을 폐지하도록 하며, 추곡수매제와 같은 국내보조를 감축하는 것이 협상의 3대 목표였다. 이는 각료회의 이전 비공식 회의에서 농산물 관세율의 대폭적인 삭감을 주장하는 미국을 비롯한 수출국과 유연한 관세인하를 고집하는 EU외 수입국들과 입장 대립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후 8월 제네바 회의에서 EU가 감축대상보조금을 줄이는 것을 전제로 합의함에 따라 이번 각료회의에서 농업협정 초안이 제출되었던 것이다. WTO 협상이 가져온 결과 우루과이라운드 출범 이후 세계 농산물 시장의 90%를 10개 농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 기업들은 사업 영역을 확장하여 종자나 생명공학 분야, 농약 등을 생산하는 화학분야, 식품 가공 및 유통 분야 등 농업 및 식량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손에 넣고 있다. 이들은 대규모 경작으로 식량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제 3세계에 덤핑으로 수출함으로써 전세계의 농산물 가격을 폭락시키고 있다. WTO 농업협정은 관세와 보조금의 철폐를 통해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국적 농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대량의 보조금과 덤핑 없이는 세계 농산물 시장을 장악하기 어렵다. 미국을 위시한 수출국들은 보조금으로 4천억 달러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 이 보조금은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생산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는 초국적 기업농업의 연구비, 시장거래에 들어간다. 따라서 녹색박스와 청색박스 등의 보조금은 WTO 보조금 감소협약에서 전적으로 제외된다. 실제로 미국은 신 농장법을 통해 오히려 보조금을 확장시키고 있다. 더군다나 WTO의 결과로 덤핑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덤핑은 밀의 경우 23%에서 44%로, 콩 9%에서 29%로, 옥수수 11%에서 33%, 면화 17%에서 57%로 증가하였다. 진실은 덤핑이 국내시장을 파괴하고 시장을 붕괴시키며 소득과 생계를 파괴하고 농촌소득을 붕괴시키며 구매력을 마모시킨다는 것이다. 피폐화된 농부들은 기아계층에 합류한다. 빚을 진 농부들이 자살을 한다. 기아로 인한 사망과 농부들의 자살이 식량체계의 무역자유화의 결과이다. WTO 농업협정의 목적은 무엇인가? 따라서 금번 5차 각료회의의 가장 큰 쟁점으로 알려지고 있는 농업협정은 농산물의 효율적인 생산과 투명한 무역거래와는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그것이 농산물의 수입, 수출국에게 어떤 이해득실이 되는가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현재 WTO에서 논의되고 있는 농업협정이 강제하고 있는 것은 식량이 어떻게 생산되고 누가 식량생산을 통제할지를 결정한다. 그것은 세계농산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초국적 농기업들의 이익만을 철저해 대변할 뿐이다. 남반구의 시장을 개방하고, 농민농업을 기업농업으로 바꾸는 것이 지금의 농업협정의 주요목표이다. 따라서 이러한 농업협정은 농민들의 생계를 봉쇄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족적인 식량경제를 식량의존적 경제로 변화시키는 것이 WTO의 전략이다. 이미 인도와 베트남 사람들은 수입의 반이상을, 중국사람들은 수입의 1/3이상을 식량구입에 쓴다. 이곳은 식량 생산의 독점권이 실현된다면, 초국적 농기업에겐 무한한 이익이 보장 될 것이다. 그것은 생태계파괴, 가족농장의 유린, 그리고 시민의 건강을 황폐화시키는 처방이다. 농민의 추방과 토지와 물, 생물다양성의 파괴는 이러한 미국 식량체계의 두 가지 부정적인 특징이다. 공중의 건강에 대한 위협은 공업화되고 기업이 통제하는 식량체계의 또 다른 치명적 측면이다. 빈국들이 부국에 의한 높은 보조금 지급과 높은 수준의 덤핑이 행해지는 상황에서 수입제한을 철폐하고 관세를 줄이도록 강요당할 때 가난한 농민들은 절멸되며 그들과 함께 남반구의 식량주권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이게 된다. 피폐화된 농민들은 WTO가 말하는 것처럼,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사지 않는다. 그들은 절망에 빠져 자살하거나 기아상황에 놓이게 된다.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네팔과 방글라데시 등의 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사례를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네팔은 WTO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을 도입한 이후 가난한 농부들의 경작지는 68.6%에서 30.5%로 급격히 감소했고, 또한 이러한 농민 각각은 1헥타르 이하의 땅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장 부유한 농민계층의 소유는 2.51%에서 18.7%로 증가했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땅은 대부분 가장 비옥한 토지이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2000년, 2001년 통계에 따라) 필리핀의 37%, 자바의 36%, 로미니카공화국 77%, 엘살바도르의 41%의 농민들은 땅을 전혀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또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은 다량의 비료 사용, 상품 작품 재배, 현대적 기술사용을 강요한다. 이것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땅, 물, 산림을 파괴하고 황폐화시켰다. 이렇듯 남아시아로의 거대 식품기업들의 진출은 식량자급률을 떨어뜨리고, 산림, 물 등의 핵심자원을 기업들이 독점하고 오염시켰다. 또한 이러한 토지와 산림의 파괴는 남아시아 국가들이 외채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정부가 토지와 산림 개발과 재비옥화 계획을 세우기 위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계획들을 위한 기금은 남아시아 나라들에게 대출 형태로 들어오고 이 국가들의 채무가 증가하게 된다. 채무의 증가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더욱더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농민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초국적 기업의 더 가난한 농업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지만, 그들이 먹는 쌀이 아닌 상업작물(예를 들면 설탕)을 생산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식량 자급국가였던 네팔, 인도, 파키스탄 등은 현재는 식량 수입국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WTO 농업정책은 생계의 상실, 생태계의 파괴, 비옥한 토지의 손실, 소농(빈농)과 국가의 채무를 증가시켰을 뿐이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한국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의 경우 UR 협상의 결과로 한국의 모든 농축산물이 전면 개방되었으며, 쌀만이 유일하게 최소시장접근물량 방식으로 수입되고 있다. 2001년 현재 사료용을 포함한 전체 식량자급률은 31.1%이며,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가하다. 정부의 식량감산정책-사실상의 농업포기 정책으로 곡물재배면적 계속 하락하였다. 또한 추곡수매제와 같은 국내 농업보조금의 매년 감축은 농가소득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정부 통계로도 지난 10년 동안 농가부채는 250%나 증가했으나, 소득은 65%정도만 상승했을 뿐이다. 그나마 이것도 UR 협상에서 '개도국'의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WTO농업협상 초안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더라도 농산물 관세를 대폭 감축하고 농업보조금을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어, 농업시장을 사실상 전면 개방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환경이변에 따른 수혜와 태풍 매미의 피해까지 겹쳐 1980년이래 최악의 흉작을 예고하고 있고, 지난 2000년 발효된 '농가부채탕감특별법'에 의해 유예된 상환기간이 올해 말로 만기가 된다. 이번 5차 각료회의가 무산되었더라도, 제출된 초안을 기준으로 각 국의 물밑협상과 양자간 협정 체결은 이루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올 정기국회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이제 농민들에게 남은 길은 강제이농이냐, 야반도주냐의 선택일 뿐이다. 한국정부의 대응은 어떠하였는가?: 금융과 초국적 자본의 충실한 대변자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을 제외한 여타의 나라들 중 최선두에 서서 금융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가장 성실히 대변해왔다. 1998년 IMF의 차관을 대가로 노동유연화, 기간산업 사유화, 탈규제화, 금융시장 자유화 등 일련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외자유치만이 살길'이라며 한국 정부는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철도, 통신, 교육, 의료 등 공공부문과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고자 한다. 노동자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와 생존이 달린 쌀(식량), 교육, 문화 등의 공공부문을 반도체, 가전제품처럼 취급하였고, 민중의 기본권과 공공성은 기업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협상 카드로 전락시켰다.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경제자유구역과 동북아경제중심지계획을 통해 한국의 체질을 본질적으로 외자유치형으로 만들고, 보다 집중적인 개방화, 자유화가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양자간 투자 및 자유협정을 체결하고, 전세계를 아우르는 신자유주의 첨병 WTO에 충실함으로써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노무현 정부는 지난 3월 31일 개방계획서(양허안) 제출하였는데, 이렇게 양허안을 제출한 국가는 WTO 146개 회원국 중 10개 국가도 채 안되었다. WTO 5차 각료회의가 있기 전에도 각 국가별 이견들을 조율하기 위한 준비회담들은 꾸준히 진행되었는데, 각료회의 직전 제노바 회의에서 한국정부는 지적 재산권 협정에서 의약품을 수입할 수 있는 강제실시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의료에 대한 권리조차 스스로 포기한 23개국 중에 하나가 되었다. 또 한-일 투자협정 체결,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 체결 등 양자간 협정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각료회의가 무산된 직후 평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은 WTO와 같은 다자무역체계를 통한 시장개방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앞으로 양자간 협정을 더욱 활발히 추진하고, WTO협상 진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따라서 정부가 말하는 '국익'은 국민의 생존권도 생명권도 포기할 수 있는 '금융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인 것이다. WTO 5차 각료회의 결렬, 그러나 멈추지 않는 WTO 칸쿤에서의 WTO 5차 각료회의는 도하개발의제(DDA: 농업, 서비스, 지적재산권, 싱가포르 이슈) 협상의 '중간합의'의 성격을 갖는 회의였다. 그러나 칸쿤 현지와 각 국에서의 민중들의 저항과 투쟁, 각 국가간의 이견 차이로 선언문이 채택되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그러나 이번 각료회의의 결렬이 전세계를 단일한 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WTO의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01년 카타르도하에서 DDA협상의 출범은 2005년 이 의제들의 실행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칸쿤 각료회의의 결렬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이번 각료회의 이후로 더욱 활발히 협상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WTO는 칸쿤회의에서 오는 12월 15일 이전에 제네바에서 고위급 일반이사회를 열어 협상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결정'을 하다는 내용의 각료성명을 채택했다. 따라서 이후 WTO는 제출된 초안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관세 감축률 수치협상, 각국별 이행계획서 제출, 양자간 협정의 체결 등을 활발하게 추진할 것이다. 특히, 각료회의 결렬의 외부적 쟁점으로 드러났던 싱가포르 이슈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아프리카연맹(AU),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ACP) 그룹 등 주로 최빈국들은 이 협상 개시 자체를 반대해 왔으며, 이것이 외관상 각료회의 결렬의 이유로 드러난 것이다. 9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2차 WTO 각료회의에서 제기되어 '싱가포르 이슈'로 명명된 이 협상은 무역원활화, 투자촉진, 정부조달 투명성(국책사업 등의 국제 공개입찰), 경쟁 및 경쟁정책(공종거래 국제규범)에 관한 것이다. 이 주제들은 2001년 4차 각료회의에서 DDA협상 의제로 포함되어, 원래 이번 각료회의에서 정하는 방식에 따라 구체적인 협상이 개시될 예정이었다. 미국, 일본 등은 이 이슈를 통해 OECD내에서 추진하려다 실패한 'MAI(다자간 투자협정)' 수준의 투자자유화 협정을 WTO내에서 체결하는 것을 목적하고 있다. 즉, 단기성 투기자본까지 포함하여 투자를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국내 투자와 해외투자를 차별하지 않고, 해외투자간의 동등 대우를 보장하며, 투자 설립 전 단계부터 보호하는 조치들을 규범화하려는 것이다. 또한 자유로운 경쟁을 가로막는 독과점, 카르텔 등의 관행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며, 통관, 수출입허가 등 모든 수출입 절차와 운송형식, 대금지불 절차를 간소화하며, 정부조달 분야에 있어서 국내 자본과 해외자본의 차별 금지와 투자 정보 등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하는 조치들 역시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완전히 자유화된 투자와 금융거래의 틀을 확립하는 것이 이 이슈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바이다. 주로 반대한 국가들은 이런 금융과 투자에서 아예 배제되어 있는 지역이거나, 일방적인 개방만을 요구받는 곳이다. 그러나 IMF는 각료회의 직후, 협상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개도국들에 대한 차관을 늘인다는 발표를 했다. 이는 WTO체제를 위협하는 개도국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IMF, 세계은행 등이 적극적인 행보를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익이 없는 지역의 배제도 당연히 동반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WTO협상에서 각 국들의 지위는 동등하지 않으며 이는 각료회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간의 갈등으로 드러났다. 이번 각료회의 결렬 배경이 되는 반세계화 운동과 국가간 갈등은, 민중 삶의 모든 부분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고, 이를 세계적 규범으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WTO가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축으론 재앙의 세계화를 막아내고 새로운 대안세계화를 모색하는 운동들을 성장이 그 위협 요소이다. 또한 '배제와 강압'에 의한 WTO의 비민주성이 국가간의 갈등을 촉발시켜, 스스로 WTO 실패를 드러내고 있다. WTO 반대투쟁의 의미와 과제 WTO 반대투쟁의 의의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시장 개방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초국적 자본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처들이 공격하는 민중들의 제반 권리를 옹호해 내는 것에 있다. WTO 농업협정의 문제점에서 볼 수 있듯이, WTO는 농민의 몰락과 농촌의 붕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WTO의 재앙은 앞으로 우리가 먹을 식량과 무엇을 먹을까하는 선택권까지 돈을 지불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WTO 반대 투쟁은 민중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내고 삶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투쟁이다. 따라서 우리는 식량, 물, 의약품, 에너지, 교육, 보건의료 등 필수 서비스에 대한 민중들의 접근권을 박탈하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부추기며, 농촌을 붕괴시키고 빈곤을 심화시키는 WTO의 반-민중적, 반-사회적 성격을 충분히 폭로해내고, 민중들의 완전한 삶을 보장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최소한이나마 보장하고, 환경 파괴를 규제하며, 민중들의 삶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공급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해체시키며 외자유치를 경제성장의 유일한 동력으로 삼으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노무현 정권의 발전전략의 한계를 분명히 비판해야 한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한-칠레, 한-일, 한-미 등 양자간 투자협정, 자유구역협정 반대 투쟁은 농민 투쟁의 지지가 아닌, 민중 스스로의 권리를 옹호하는 연대투쟁이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을 전개할 때 WTO에 반대하는 전 세계 민중들과 연대의 지점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이경해씨의 죽음을 진정 애도하는 방식일 것이다.
한겨레21 2003년09월17일 제476호 [아시아의 분쟁] <목차> 9·11이 아시아 분쟁지도 바꿨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인도네시아] “파푸아엔 얼씬도 마세요” 자카르타=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의 10월이여 찬란하라” 마닐라=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 칼럼니스트·필리핀대 언론학과 강사 [버마] 다시 ‘버마’는 잊혀진다 버마-타이 국경= 정문태 |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인터뷰 | 우 틴 옹(U Thin Aung)] 민족민주동맹 해방구(NLD-LA) 의장 버 마] 버마-타이 국경= 정문태 | 국제분쟁 전문기자 [네팔] ‘히말라야’가 조난당했다 카트만두= 쿤다 딕시트(Kunda Dixit) | <네팔리타임스> 편집인 겸 발행인 [스리랑카] 타밀은 2005년 선거를 기다린다 콜롬보= 수마두 위라와르네(Sumadhu Weerawarne) | <아일랜드> 기자 [카슈미르] 카슈미르, 선택의 시간! 델리=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 핵 전문 칼럼니스트 · 전 <타임 스 오브 인디아> 편집장 [아프가니스탄] 대담한 탈레반, 부활하는가 페샤와르= 라히물라 유수프자이(Rahimullah Yusufzai) | <뉴스> 편집이사 [팔레스타인] 진정한 로드맵, 그 길을 찾아라 라말라=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 알쿠드스 교육방송국장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 WTO의 5차 각료회의에 부쳐 오는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멕시코의 호화 휴양지 칸쿤에서 WTO의 5차 각료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성과로 95년 출범된 WTO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영역을 확장하며 민중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5차 각료회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WTO는 다양한 자태변화를 통해, 민중들의 삶과 직결된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유무역 안으로 포괄하고 이를 초국적 자본의 이윤놀음 대상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이번 WTO 5차 각료회의는 '자유무역'이라는 미명 하에 전세계 민중의 제반 권리를 박탈하고 미국과 초국적 자본의 금융적 팽창과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계획의 완성판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 특히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2001년도에 시작된 도하개발 의제(DDA)라는 새로운 무역제체를 출범시키기 위한 막바지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다자간 투자자유화협정을 핵심목표로 추진하고자 한 밀레니엄 라운드의 실패 이후, 미국중심의 자유무역질서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그런 만큼 이번 각료회의 준비작업도 치밀하게 진행되어 왔다. 우선 밀레니엄 라운드 실패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개도국의 불만을 무마하고 끊임없는 ‘자유뮤역’의 환상을 작동시키기 위해 몇 차례의 비공식 각료회의, G8 정상회담의 조율 등을 시도했다. 또 이번 WTO 5차 각료회의가 911테러 2주년을 맞는 시점에 진행되는 탓에 미국정부는 테러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칸쿤으로 향하는 교통편을 차단하고 단속을 엄격히 하는 등 시애틀 투쟁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전세계 민중들의 투쟁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초국적 자본의 완전자유화를 위한 민중의 권리 박탈협정, 도하개발의제(DDA) WTO는 각 국간의 무역장벽을 없애고 무역 자유화의 틀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을 비롯한 WTO 협상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상품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관세를 낮추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수 공공서비스를 완전히 시장화하여 초국적 자본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한편, 해외 투자와 국내 투자를 차별하는 요소를 없애고 손실의 여지가 없도록 하는 등 투자 자유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조처들을 국제적인 규범으로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서 IMF와 세계 은행이 주변․반주변 국가들이 처한 외채․외환위기를 매개로 하여 차관을 지급하고 그 대가로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 탈규제화, 민영화, 긴축재정 등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했다면, WTO 도하개발의제는 이러한 정책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틀을 갖추고 ‘분쟁해결메커니즘’을 두어 이를 강요하는 셈이다. 이번 각료회의의 핵심 쟁점인 도하개발의제에서는 농업협정, 서비스협정을 통하여 민중들의 삶과 직결된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유무역의 영역 안으로 포괄하고 이를 초국적 자본의 이윤놀음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또한 실패한 시도로 끝났던 다자간 투자자유화 협정을 WTO 내에서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국 ‘자유무역’을 완성한다는 WTO가 민중의 삶 곳곳을 초국적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만들며 삶의 기반을 파괴하고 불평등한 빈곤을 확산시키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첫째, 농업협정(AoA)은 시장접근의 실질적 개선/수출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한 감축/국내보조의 실질적 감축 등 3대 협상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초민족적 식량 기업과 농산물 수출국으로 하여금 과잉 생산된 식량을 생산비 이하의 가격으로 덤핑하여 주변․반주변국의 농촌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식량 생산을 붕괴시키고 전세계 식량 소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둘째, 교육, 보건의료, 에너지 공급, 상수도 공급, 통신, 금융서비스, 시청각서비스, 법률서비스, 건설, 유통, 환경 등 모든 형태의 서비스를 협상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협정(GATS)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상업화하고 외국인 지분소유한도를 철폐하도록 하여 공공서비스영역을 초국적 자본이 침투하여 활동할 수 있는 영역으로 탈바꿈시킨다. 실제로 유럽연합이 한국정부에 제출한 양허안 요청서에 따르면 각종 공공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요청하고 특히, 한국통신을 직접 지목하면서 해외 개인 투자자의 소유제한을 완전히 철폐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처럼 이 협정이 다룰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는 제한이 없고,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것 역시 언제든 가능하다. 때문에 이 협정은 개별 회원국이 특정 회원국을 대상으로 개방 요청을 하고 그 요청에 근거해서 개방의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한다. 게다가 ‘자발적 자유화 조치’에 대해 특혜를 부여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셋째,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은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지적재산권 협정을 총망라하여 초민족적 자본이 영토의 한계를 넘어 무제한적인 독점적 권리를 향유하도록 보장한다. 특허에 의해 보장되는 배타적/독점적 권리를 강화하고 20년간 연장할 수 있게 하며, 미생물과 식품, 의약품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해, 농민들의 종자에 대한 접근권, 가난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접근권 모두를 박탈하고자 한다. 그런데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의 진정한 문제점은 세계적인 무역질서 내에서 각 민족국가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거나, 중심부국가 및 초민족적 자본의 상품 판로를 확장하기 위한 것에 있다기보다는 초민족적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위한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자본 이동의 완전한 자유화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일례로 싱가포르 이슈(싱가포르에서의 2차 각료회의를 통해 제기)를 통해 미국, 일본 등은 OECD 내에서 추진하려다 실패한 “MAI(다자간 투자협정)" 수준의 투자자유화 협정을 WTO 내에서 체결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제한 없는 경쟁을 보장하고 국내․외 자본간 차별을 삭제하며 완전히 자유화된 투자와 금융거래의 틀을 확립하겠다는 의도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WTO 체제와 남한 사회의 위기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전략은 기존의 중화학․수출중심 발전 국가에서 '자본유치형' 국가로 변모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진행된 구조조정은 기업들의 부실을 처리하여 남한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부실확대를 막고, 공적자금 조성을 통해 위기에 빠진 재벌, 금융사들을 구제함으로써 경제위기가 폭발하는 것을 막았으며, 금융부문의 규제를 없애고, 금융시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초민족 자본을 다시 유인하는 것이 김대중 정권이 이야기했던 경제위기 극복이고, 경제성장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권에게 남겨진 과제는 분명한데, 계속해서 외국인 투자자본을 유치함으로써 '자본유치형'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이 계속해서 ‘신흥시장’으로서의 매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저금리, 연기금 주식투자 등의 증시부양 정책과 금융 및 서비스 분야의 개방, 자유화 조치 등이 연달아 추진되는 것이다. 금융부문에 있어서의 자본의 진입 및 이탈에 대한 규제는 이미 상당 수준 자유화되어있는 상황이며, 양자간 투자 및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행의무부과금지’ 와 ‘내국민대우’조항 등의 초가조치와 경제자유구역법의 실시 등이 이루어져왔다.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이러한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의 연장선에서 초민족 기업의 활동영역을 더욱 확대시켜주는 조처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교육, 에너지, 의료 분야를 추가적으로 개방하는 한편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이미 개방된 금융, 통신, 건설, 유통, 환경, 해운 등의 분야를 서비스 협정 양허안에 반영하여 지난 3월 31일 서둘러 제출해 다른 회원국들의 개방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남한 자본주의의 이러한 전략은 기존 산업의 파괴―특히 농업의 포기―를 동반한다. 대신 IT, BT 등 외국자본 유치에 매력적이고, 주식시장 부양책과 연관되어 있는 산업들이 적극 육성된다. 합리화의 명분으로 공공분야의 비효율성, 소비자만족도의 저하를 내세우며 적극적인 시장자유화조치를 취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시장자유화조치는 효율성과 만족도, 경쟁력을 높인다는 담론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이러한 외자유치를 위한 조처들이 초국적 자본에게는 최적의 투자 환경을 만드는 반면 노동권, 환경권, 교육권, 건강권 등 민중의 제반 권리를 해체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존의 위기와 민중들의 권리의 박탈 앞에서 전사회적인 기생성과 투기성을 증가시키고 막대한 부를 해외 기관투자자가와 재벌에게 집중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선 투쟁이 조직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그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자 WTO 출범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관철시키기 위한 중심부 국가와 자본의 노력은 끈질기게 민중들의 삶을 파괴해왔다. 그러나 WTO의 영역의 확장만큼 민중들의 투쟁 역시 성장하고 있다. 1999년 시애틀의 WTO 3차 각료회의에서 기획되었던 새로운 자본의 세기를 위한 뉴라운드의 출범은, 시애틀 거리를 완전히 점거하고 WTO 각료회의장을 포위하면서 강력하게 투쟁을 전개했던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의해 저지되었다. 시애틀 투쟁의 성과를 이어 세계사회포럼 구성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대안세계화를 위한 국제행동의 논의가 불붙고 있으며, 지난 2월 15일 전세계적인 반전시위의 기획과도 같은 전지구적 행동 또한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 WTO 5차 각료회의가 진행되는 칸쿤에서도, 농업, 무역과 전쟁, 서비스 사유화, 환경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한 “WTO 대안 마련을 위한 민중포럼“과 부문별포럼, 911과 군사주의 희생자 추모대회, 대규모 시위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AIDS와 각종 질병이 창궐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비극과, 죽지 않을 정도의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초과착취지대의 여성의 비참함, 생계인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소규모 농민들의 비애, 수도산업 민영화 이후 전국민의 1%도 안되는 사람만이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는 상황 등이 단지 남반구 혹은 주변국․반주변국 일부에서만 일어날 문제가 아니며 전세계 민중들 모두에게 곧 닥쳐올 미래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현재 남한에서도 FTA․WTO 반대 국민행동(KoPA)와 전국민중연대에 소속된 200여명의 활동가들이 칸쿤 현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9월 1일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투쟁선포식과 기자회견을 비롯, 릴레이 선전전과 9월 6일 WTO 각료회의 저지 범국민대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칸쿤에서 열릴 ‘무역과 전쟁포럼’에서 9․11테러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무장한 세계화에 대항하는 전세계 사회운동의 대응이라는 주제에 대한 공동의 논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군사주의적 팽창이 현재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조장하는 것임을 밝히고 올 한해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반전과 평화의 외침을 전하고 나아가 전세계 사회운동 활동가들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연대를 호소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WTO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계사회운동들의 논의와 행동이 언론과 자본에 의해 ‘반세계화’,‘자유무역 반대’로 표상되면서 그 스스로를 민족국가간․계층간 보호주의와 ‘거울유희’하는 오류도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 예컨대 농민들의 농산물 개방 반대 투쟁이 자유무역론자들의 ‘비교우위론’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공부문의 해외매각․사유화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 교육․보건의료 시장 개방에 맞선 투쟁이 ‘자유무역 반대’라는 퇴행적․국수적인 이미지로 매도되는 것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놓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WTO 협상의 본질과 목표가 자유무역을 강화하여 상호보완적인 지구촌 경제체제를 수립하려는 방향이 결코 아니라, 전세계의 단일시장화와 그것을 지배하는 금융의 주도권의 무한확장이라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이것이 경제위기와 무한전쟁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질서를 유지․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향후 세계사회운동의 핵심과제가 미국과 초민족적 자본의 금융-군사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PSSP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논리, 누구를 위한 것인가 8월 19일 오전9시, 태국 방콕의 출라롱콘 대학 세미나실에는 40여명의 아시아지역 활동가들이 모였다. 옥스팜(OXFAM)과 남반구포커스연구소(Focus on the Global South)에서 주최한 <Regional Briefing for Cancun>회의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일본, 태국, 필리핀 등 각국에서 도착한 이들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ATTAC, Greenpeace, 농민연합, WTO반대연합, OXFAM 지부의 활동가로서 코앞으로 다가온 WTO각료회의에 대한 아시아지역의 대응을 모색하고 토론하기 위해 함께 한 것이다. 회의는 이틀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무역관련지적재산권 협정, 농업협정, 서비스협정, 뉴이슈 등에 대한 쟁점을 확인하고, 질의와 응답 속에서 토론이 진행되었다. 특이할만한 것은 UN과 EU측, 그리고 멕시코, 베트남 등의 정부대사관에서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한 것이었다. 우선 EU는 농업협정이 미국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에 반대하고 있으며 EU도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보장하기 애쓰고 있다며, 투쟁의 대상은 EU가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려 했다. 또한 베트남 정부, 멕시코 대사관 등은 각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WTO 내에서 개발도상국의 협상력을 강화하고 비민주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정부측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3년전만 해도 베트남은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개방화정책으로 지금은 경제성장기에 있다. 3년 후를 생각해보라. 베트남의 경제는 더욱 급격한 성장국면에 들어설 것이다. 운동단체들도 각국 정부가 협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는 3년 아니, 30년이 지난 후를 예상해보았는가? 노동자민중의 건강과 삶은 오직 초국적자본과 소수선진국의 손아귀에 유린당한 채, 물과 공기마저 팔아먹을 그 정부에 국민이 온전히 남아있기나 할 것인가? TRIPs협정이 급격하게 진전되고 있다 태국에서 열렸던 위의 회의에 참석할 당시만 해도, TRIPs협정(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 : 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은 농업협상과 함께 이번 각료회의에서 가장 협상하기 어려운 의제 중 하나였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WTO각료회의, 여기에서는 TRIPs협정과 공중보건에 대한 선언문이 제출된 바 있다. 이 선언문을 통해 각국은 ‘제약회사의 특허권보다 의약품의 접근성 보장이 우선’이라고 합의했다. 따라서 2003년 제5차 WTO각료회의는 이 도하선언문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TRIPs협정과 공중보건에 대한 선언은 주로 지적재산권에 관한 TRIPs협정이 공중보건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며, 또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도하선언 4항)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와 더불어, 제약부문의 제조기술이 불충분하거나 제조기술이 없는 WTO회원국들이 TRIPs협정하에서 강제실시를 효과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해법을 찾기로 했다(도하선언 6항). TRIPs 31조(f)에 따르자면, 강제실시는 국내 수요를 주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어 강제실시된 의약품을 타국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도하선언 6항에 대해 의약품 생산 시설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는 선진국과 국내에서 의약품 생산이 불충분/불가능한 개발도상국/최빈국의 대립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사실 이미 2002년 말까지 TRIPs이사회에서 해결책을 찾기로 규정했으나, 미국과 다국적제약자본은 강제실시를 적용받는 국가범위를 몇 개 국가에 제한하려 했고 질병범위 또한 축소시키려고 고집을 부렸다. 이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강제실시의 범위나 대상국에 어떤 제한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미국은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저지하려고 질병범위 및 수혜국 대상을 축소시키기 위한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그럴수록 개발도상국간의 협상은 좀처럼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2003년 6월, 이집트 WTO비공식 각료회의에서 미국이 더 이상 질병범위는 문제가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공식적인 입장으로 천명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제네바 현지시각으로 지난 8월 30일 WTO(세계무역기구)회원국들은 공중보건 부문의 이른바 '도하선언 6항'에 관한 합의를 결정하였다. 언론은 떠들기 시작했다. “이번 합의는 WTO 146개국 각료회의에서 도하라운드를 보다 빠르게 진척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8월 30일 결정문은 기만에 불과하다 자, 이렇게 되면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 이번 결정문은 1)에이즈와 말라리아, 결핵등 심각한 질병의 치료를 위한 의약품의 특허권을 인정하되, 2)인도적 차원에서 자체 의약품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최빈국들에 한해 이를 저가에 공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얼핏 보면 특허권은 인정한 채, 빈국의 의약품 접근권까지 포함하여 타협점을 찾은 듯이 보인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이 합의안이 어떤 의도를 갖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이 결정문은 인도적 차원에서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일 것이며,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쓰일 수 없고, 의약품 역수입 방지가 중요하다는 단서 조항을 전제하고 있다. 인도적 차원의 최빈국 및 개발도상국의 공중보건 문제는 현재 국제적 원조단체와 각종 기금, 그리고 각국의 원조 차원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도하선언문 6항은 단순한 원조 차원을 넘어서서 최빈국 및 개발 도상국 스스로가 '권리'로서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적 차원'이라는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표현은 최빈국 및 개발 도상국이 강제실시를 실시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산업․상업적 목적이 아닌 방법으로 복제약(제너릭)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생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나마 강제실시가 적용될 수 있는 복제약을 만들 수 있는 제너릭 회사가 국영(내지 공공)제약회사인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이며, 최근 글리벡의 복제약인 비낫을 생산한 인도의 낫코사도 민간제약회사였다. 결국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단서를 만족시키는 공공제약회사는 거의 없으며, 이번 결정에 따라 의약품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가 실제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을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해지고 말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결정문에 의하면, 제약회사가 별도의 생산시설을 설치하는 문제 이외에, 강제실시를 위한 조건과 의무조항은 매우 까다롭다. 최빈국 및 개발 도상국으로 수출된 복제약의 역수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다지만, 이 까다로운 조건들 때문에 실제 원활한 복제약 생산이 가능할지 의문시되고 있다. 둘째, 이 결정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실상 의약품을 수입할 수 있는 강제실시권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였다. 이번 합의와는 별도로 WTO일반이사회 의장 성명을 통해, WTO회원국 중 23개국은 의약품을 수입할 수 있는 강제실시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들 23개국은 '비상사태나 극히 긴급한 상황하에 한해서만‘(!) 의약품을 수입할 수 있는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중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되어 있다. TRIPs 협정 어디에도 강제실시를 '비상사태나 극히 긴급한 상황하에서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함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23개국은 스스로 자국의 주권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비상사태나 극히 긴급한 상황이란 대단히 제한적인 규정에 얽매여, 향후 민중의 건강상태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국내에서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불충분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지난 글리벡 강제실시를 불허한 것처럼 환자들에게 약도 먹어보지 못하고 죽으라는 말인가? 23개국 국가의 민중들은 초국적 제약자본과 미국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기목숨을 저당잡혀야 하는 것인가? 한국정부가 국민의 의약품 접근권을 위협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고, 철저히 제약산업의 특허권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미 지난 2002년 1월 31일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청구되었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강제실시 청구가 1년도 넘게 끌려왔고 2003년 3월 기각하기로 결정한 데서도 한국 정부의 입장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야말로 자국민의 의약품 접근권 및 건강권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최빈국 및 개발도상국과 선진국간의 조화로운 번영을 약속하며 시작되었던 '도하개발라운드(DDA)'는 이번 8․30 결정을 계기로 또 한번 그 의미가 퇴색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결정은 WTO내에서 제약자본을 위시한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으며,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민중의 의약품 접근권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TRIPs협정의 합의 결정을 투쟁으로 반전시켜야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전세계에서 HIV 감염자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다. 2003~2005년 사이에 1500만 명 이상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이 에이즈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모로부터 감염된 HIV 보유 아동은 매년 13만 명 이상이며 2010년까지 2백만 명의 남아프리카 아동이 고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 중 한명 혹은 모두가 AIDS로 인해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제약 산업과 정부가 바로 지금 치료가 가능하게 행동한다면 이런 무수한 죽음은 피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TAC(Treatment Action Campaign;치료 접근성 운동본부)은 지난 4월, TAC은 대규모 장례 투쟁을 조직하였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남아공 정부가 제대로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하지 않는 동안 하루에 600명의 사람이 죽었고, 단 2주 동안에 운동본부의 활동가 7명이 사망했던 것이다. TAC은 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고 더 이상 약을 먹지 못해 죽어가는 민중이 없도록 하기 위해 HIV/AIDS 예방 및 치료 정책 실행을 요구하였다. 이미 2002년, 남아공 정부는 '네드락 기초협정(NEDLAC framework agreement)'에서, 보편적인 에이즈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뜻을 천명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유감스럽게도 현재 구체적으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에이즈의 유행은 남아공의 재건과 발전을 위협하는 위기이다. 따라서, TAC은 남아공 정부가 조속히 네드락 기초협정에서 협상된 국가적 에이즈 예방 및 치료 계획을 이행하도록 요구하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다. 전세계적으로 TAC에 연대하여,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남아공 대사관에 600켤레의 신발(한 켤레는 에이즈로 죽은 한명의 목숨을 상징한다)을 보내고, 일본에서는 600장의 종이를, 네덜란드는 600송이 튤립을 남아공 대사관에 보내는 등의 연대 행동이 조직되었다. 그 외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항의서한을 남아공 대사관에 전달하고, 집회를 열어 TAC에게 연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TAC의 행보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의약품 접근성 운동이 국제적 수준에서 논의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아공이라는 한 나라 안의 의약품 접근성 문제를 국제적 연대를 통해 해결하는 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일국 내에서의 싸움이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민중의 공통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TAC은 가난하고 의료보장이 취약한 나라에 더 많은 의약품을 공급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하는 차원을 넘어서, '값싸고 양질의' 의약품을 먹게 해 달라는 권리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태국의 사례는 어떠한가? 태국 국경없는 의사회(MSF)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알려주고 있다. 에이즈 환자 2명과 태국 AIDS ACCESS Foundation은 BMS사에 대해 법적 소송을 걸었고, 승리했다. 에이즈 환자 두 명과 ‘접근성’ NGO는 BMS를 주범으로 지적재산부(DIP)와 중앙지적재산 및 국제무역법정(CIPIT)을 공범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태국에는 천만 명의 에이즈 환자들이 있는 데다가, 1984년 이후 30만 명의 에이즈환자들이 사망했다. 이들이 임금노동자이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노동력이란 점 때문에 이러한 사망소식은 전반적인 보건의료전반의 위기로 인식되었지만, 그러나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은 너무 비싸서 약을 구할 수 없었다. 당연히도 이러한 높은 가격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독점권과 관련이 있고, 이 독점권은 또한 특허와 관련이 있다. 국영제약기구(GPO)는 1992년 이래로 두 개의 항레트로바이러스 제너릭(캅셀형태의 AZT(zidovudine), 정과 가루형태의 ddI(didanosine))을 생산했다. AZT는 1995년 생산되기 시작했으나, ddI정은 특허가 브리스톨마이어스(BMS)사에 1998년 1월 22일에 승인되었으므로 생산할 수 없었다. 국영제약기구는 BMS사의 특허소송을 피하기 위해 ddI 가루만 생산할 수 있었는데, 실제 가루약은 부작용이 더 심하고, 복용하기 불편해서 환자들의 순응도가 떨어졌다. 2000년 5월 7일, 태국의 3개 NGO[TNP+, AIDS ACCESS Foundation, Centre for AIDS Rights]는 법률협회(Law Society)에 에이즈환자의 ddI 접근권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고 법률협회 의장은 2000년 6월 법조인 워킹그룹을 구성했다. BMS 사에 부여된 ddI특허에 대한 분석결과 특허적용에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처음 특허를 적용할 때 BMS의 요구는 5~100mg에 제한되어 있었는데, 3년후 BMS사는 지적재산부에 이를 수정요구하면서 용량범위에 대해 상술하는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 BMS는 이 요구서 덕분에 지적재산부에 수정된 특허를 발행하여, ddI정을 생산하는 독점권을 획득했고 다른 제약회사는 100mg 이상의 ddI정조차도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에이즈 환자들은 특허로 인해 비싼 약을 사먹게 된 것이다. 2001년 5월 9일 ddI정 용량에 대한 법적 조치가 방콕의 중앙지적재산 및 국제무역법정(CIPIT)에서 열렸다. 소송에서 고소인은 법정에 두 피고인들이 불법으로 BMS의 요구를 수용했으며 무제한적 특허권을 부여한 것을 판결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2002년 10월 1일 CIPIT는 에이즈의약품접근단체와 환자 고소인이 피해를 입었으며 손해배상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 내렸으며, 그 근거는 의약품이란 생명에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법정은 DIP와 BMS는 특허 7600번째를 초기에 제출했던 대로 수정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이 분쟁은 태국법정이 BMS사의 배타적 판매권을 빼앗기로 결정한 것으로서, 에이즈환자의 첫 승리로 평가된다. ddI는 정당 40바트(0.923 달러)로 판매되고 있지만, 국영제약회사가 이를 생산할 경우 반값으로 판매가능하다. 칸쿤 각료회의의 TRIPs협정 타결을 저지해야 한다! 더이상 두고보고 있을 수는 없다. 경제발전 논리를 앞세우며 시민단체들도 WTO내에서 협상력을 강화하게끔 개발도상국 정부를 도와야 한다던 바로, 그 정부가 행한 작태는 무엇이었는가? 대만, 홍콩, 중국, 이스라엘, 한국, 쿠웨이트, 마카오, 멕시코, 카타르, 싱가포르, 터키, 아랍에미레이트 등 이들 개도국들은 이번 결정을 통해 스스로 자국의 의약품 접근권을 포기한 국가들이다. 국가 비상사태와 극도의 긴급한 사건에만 강제실시를 시행하겠다면서 스스로, 미국과 초국적제약자본의 편을 들고 선 나라들이다. 이들이 행한 TRIPs협정 합의결정은 오직 노동자민중의 이해와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고 말았다. 이번 제5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칸쿤에서 8․30 결정이 협의에 부쳐지게 될 것이다. 각료회의가 열리는 바로 그 곳에서 민중의 거센 저항으로 '공중보건 협상 타결의 전기 마련'이라는 미사여구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투쟁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TRIPs협정이 온전히 제기능을 하도록 WTO내의 민주성을 확보하고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WTO와 TRIPs협정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WTO의 압력과 개도국의 경제논리에 내팽개쳐진 민중의 생명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길, 바로 칸쿤에서 열리는 각료회의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과 투쟁만이 현시기 민중의 건강과 삶을 지켜내는 유일한 경로이자 해결책이 될 수 있다.PSSP
*편집자 주 : 아래 글은 9월 11일 테러 2주년을 맞아 WTO 5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칸쿤에서 진행될 무역과 전쟁 포럼에서 발제할 글입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1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반전투쟁의 성과를 모아내고 또한 9․11테러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군사적 세계화 즉,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반대투쟁을 호소하는 목적으로 아래글을 칸쿤 현지에서 발제할 계획입니다. 911 사건을 애도하는 적절한 방식 먼저 2년 전 오늘 뉴욕에서의 불행한 사고로 희생을 당한 모든 분들에게 애도를 보냅니다. 이러한 끔찍한 일은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시 행정부를 비롯한 세계의 지배세력들이 이들의 희생을 ‘테러와의 전쟁’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으면서 세계를 더욱 커다란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슬픔을 표하는데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나 군사력의 증강이 아닌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통해서만 그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애도를 표하는 적절한 방식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곳 칸쿤까지 오는 길은 매우 험난했습니다. 지배세력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의 결집을 막아 보려 했습니다. 테러의 위험을 내세워서 자국을 경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비자를 요구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는 그들의 ‘테러와의 전쟁’이 세계평화를 테러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폭로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해도 우리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였다는 이 작은 승리는 우리의 투쟁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희망은 이라크침략에 반대하여 조직되었던 세계적인 반전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첫 걸음일 뿐입니다. 침략 이후, 이라크 민중들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에 고통을 받고 있고 자기-통치를 위해 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소위 ‘악의 축’이라 불리는 다른 나라-이란, 시리아, 북한-에게로 자신의 목표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부시가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무한한 전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쟁에 대한 지속적인 그리고 전지구적인 저항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쟁들을 분석하고 반전운동의 공동의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한전쟁: 무장한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와 군사주의의 세계화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담론과는 반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세계에 평화가 아닌 폭력, 파괴 그리고 전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신의 내재적인 한계와 자신에 대한 저항에 직면하여 위기에 처하게 되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보다 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911 이후의 소위 부시독트린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교리는 이러한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부시독트린은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을 세계화의 보호로 정의하였고 잠재적인 적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자본의 세계화와 군사주의의 관련이 더 밀접해 지는 세계화의 새로운 단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를 ‘무장한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통치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세계를 절멸의 위협으로 빠뜨린 두 차례의 세계전쟁의 원인은 19세기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식민지의 분할과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의 격화였습니다. 이와 비교해서 21세기 초에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 속에서 ‘새로운 전쟁’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전운동이 ‘테러와의 전쟁’과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주의화에 대한 반대를 조직해야 하며,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총체적인 반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의 핵의혹 사태의 본질 무장한 세계화의 시대에 나타나는 전쟁위협의 증대와 군사주의의 강화는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의 강화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주장과는 다르게, 미국 정부에게 한반도의 위기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 정부가 미국의 대북특사가 북한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제시했고 이를 북한이 시인했다고 발표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측은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근거 없는 의혹을 제시하여 북한과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핵문제의 역사적인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한반도에서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계획을 수립해 왔고 핵무기를 한반도와 그 근방에 배치해 왔습니다. 76년 당시에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 총수는 대략 600-700개로 추산됩니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데탕트의 물결을 타고 한반도비핵화의 문제가 제기가 되었으나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회의적으로 일관하면서 93년 북한의 핵시설의 사찰을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첨예화되어 심지어 전쟁 발발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습니다. 1년여의 공방 끝에 94년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북미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전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수로를 제공하는 내용의 합의가 채택됩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제네바합의를 고의로 위반하였습니다.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해야 하나 공사는 의도적으로 지연되었고, 관계정상화의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크게는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보장하는 한편 안전을 보장해야 했음에도 군사력 증강과 체제 위협은 계속되었습니다. 클린턴 정부 후반기에 본격화된 북한에 대한 ‘접촉(engagement)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로의 경제적 통합을 목표로 하여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하여 평화공존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북아 내에서 한미일 군사공조체제의 강화를 전제함으로써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자극할 여지를 가졌기 때문에 모순적 측면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911 이후의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 더욱 강경하게 변화해 왔습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옵션’을 재차 천명했으며 북한의 정권교체를 대북정책의 목표로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제시하여 제네바합의의 이행을 방기해 온 자신의 책임을 북한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이익을 더욱 관철할 수 있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부시 정부의 강경책에 북한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과 이에 따른 강경한 대응은 당연한 것이며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이후 한편으로는 정당한, 하지만 매우 위험한 대응을 계속 해 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한반도의 위기의 일차적인 원인은 제네바합의의 고의적인 위반 이후에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여 계속해서 북한에 대한 위협을 높이고 있는 미국의 태도이며, 이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전쟁위협의 증대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주의의 강화 미국은 북한의 어떤 요구와 행동도 ‘무시’하는 전략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라크 침략 전쟁 이후에는 각 국 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북한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조체계를 갖추어 나가며 외교적,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외교적 해결을 중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적인 협상이 평화를 보증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6자 회담을 통해서 양측의 대화가 재개된다하더라도 미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회담을 성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중국이 6자 회담 이후에 ‘미국이 걸림돌’이라며 불만을 터뜨린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더구나 6자 회담의 이면에서 미국은 9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봉쇄를 대비한 군사훈련을 계획하는 등 경제제재나 군사봉쇄의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더구나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구실로,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확장과 일본 및 남한의 군사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21세기 안보의 중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지역 내의 미국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있고,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는 군사전략을 수행하기 적합한 체계로 재편이 되고 있습니다. 미군 기지와 미 주둔군의 활동영역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팽창은 한-미-일 3국의 동맹의 강화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의 목표가 ‘무장한 세계화’에 적합하도록 변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유사시에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유사법제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전쟁포기를 규정한 헌법조항을 개정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남한은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확장을 보조하기 위해 군사력 증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국방예산을 무려 20% 이상 증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 3국은 선제공격력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혁신을 위한 선제공격 당한 그룹의 반격을 예방하기 위해 MD를 구축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미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전운동을 위한 몇 가지 제안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미 제국주의를 제어하는 것에서부터 그 해법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미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무장한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각 국의 지배세력은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따라서 전쟁과 군사력증강,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남한 민중, 그리고 전 세계 민중의 투쟁을 통해서 전쟁을 조장하는 정치, 군사적 체계를 실질적으로 해체,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미국이 선제공격옵션을 실질적으로 폐기해야 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에서의 군사력 증강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지만 이는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미국의 수많은 핵무기의 폐지를 포함하는 한에서만 그렇습니다. 또한 우리의 투쟁은 동아시아 전역에서의 전쟁반대와 평화군축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고 군사주의의 강화를 막기 위한 투쟁이 세계 반전운동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빠르게 동아시아 전역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오랜 검열을 뚫고 이제 막 반전운동이 조금씩 꿈틀대며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작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의 열기는 이라크 전쟁반대와 한국군 파병반대 운동을 거쳐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대중적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을 조장하는 세력들의 압도적인 무장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이 민중들의 연대 속에 있음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무장한 세계화’의 폭력에 맞선 당신들의 투쟁과 우리 모두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알리고 한반도 전쟁위협과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 및 군사주의의 강화에 반대하여 평화와 군축을 주장하는 운동을 조직하기를 제안합니다. 우리는 이 것이 포럼에서 반전운동의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공동의 행동의 방향을 제안하려 합니다. ∙ 한반도 전쟁위기의 현재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그 진실을 널리 알립시다. ∙ 북한에 대한 어떠한 제재나 봉쇄에도 반대하고 만약 강행 될 경우 이를 무력화시키는 운동을 조직합시다. ∙ 미국에게 ‘선제공격전략’을 포기하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합시다. ∙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는 미 제국주의 및 한국과 일본의 군사주의의 강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합시다. 동아시아에서의 군축과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운동을 건설합시다. 평화는 그것을 염원하는 행위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단지, 전쟁을 조장하는 세력과 제도들, 가공할 전쟁도구들을 제어하기 위한 민중의 권력을 형성하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장한 세계화’를 패배시키고 또다른 세계를 위해 나아갑시다.PSSP
6자회담이 끝났다. 한-미의 언론들은 각 국이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과정의 계속 추진을 원했다는 점을 들어 대체로 회담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이번 회담이 ‘탁상공론에 불과’했으며 ‘북의 무장해제를 위한 마당으로 되고 말았다’는 비관적인 평가를 제출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전제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북한의 핵계획 포기를 일괄타결 하고자 했던 의도가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 이르기까지 부시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은 ‘반테러 전쟁’을 경과하며 사실상 페리 프로세스의 중단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문이 북한의 ‘핵 공갈과 그에 따른 착취’라는 악순환만 조성했다고 간주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클린턴 행정부 4년 동안 이루어진 북미 협상의 교훈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미국에 먹혀 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지으면서 앞으로 북미 협상에서 절대로 보상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북미 양자간의 직접적인 협상을 거부하고 대신 ‘다자적 압력구조’를 활용, ‘북핵문제’를 국제문제화하고 북한을 고립․굴복시킬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대북강경론이 득세하면서 북한과는 외교 수단을 통한 핵문제 해결이 난망하기 때문에 봉쇄 정책이 필요하며, 나아가 북한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신빙성을 얻어갔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클린턴 행정부의 ‘접촉정책’과 남한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소위 ‘온건파’들의 정책방향이 점차 ‘봉쇄정책’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북한과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되 만일 실패로 돌아갈 경우, 군사적 제재를 포함한 ‘의미심장한 제재’를 취하거나 핵이나 마약 등의 수출을 막기 위해 봉쇄정책을 부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북한의 궁극적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제 제재와 같은 비군사적 방법으로 체제교체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월에 열린 북중미 3자회담에서도 미국은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을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 교체’와 ‘북핵문제 유엔 상정’ 등을 운운하며 대화 거부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오히려 미국은 3자회담 직후 한미, 미일 정상회담 등 국제 외교무대를 적극 활용, 북한에 대한 다자간 압력틀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해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봉쇄에 돌입했다. 그리고 주한미군 전력 증강을 시도하고 스트라이커 부대를 편성하는 등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력시위를 전개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또 미국은 대규모 탈북-기획망명을 유도하는 법안을 기획하고 ‘작전계획 5030’을 발표하는 등 ‘전쟁 없는 체제 교체’라는 시나리오를 수립한 상태다. 남한과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에 적극 호응하면서 각각 ‘자주국방론’과 ‘보통국가화’를 병행 추진했다. 미국의 진심이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성실히 임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핵문제의 평화적인 종식을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주변국들이 북한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미일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가운데 특히 중국을 설득시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도록 다자간 협의틀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양자회담을 거부하고 다자회담의 틀로 북을 유도한 것을 외교적 승리로 평가하고 있다. 비록 북한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협상이 성사되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향후 외교 무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이 경우 국제적인 대북 제재(특히 경제적 제재)를 유도하기에도 훨씬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광범위한 이슈와 의제들을 함께 제기하며 핵개발을 지렛대 삼아 미국으로부터 직접 체제보장을 받아내겠다는 북한의 의도를 분산시키고자 했다(럼스펠드 미 국무부 장관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확대하라”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으로 한정되지 않는 많은 이슈를 동시에 제기할 것을 주장했다). 예컨대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과 랜드 연구소의 마이크 모치츠키 등은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핵개발을 궁극적으로 막는 방법이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관련 5개국의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경제위기를 거론한 것은 경제난을 매개로 하여 대북 식량․경제지원 등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서 북한과 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한 책략일 뿐이다(이들은 이를 일컬어 ‘(전쟁 없는) 체제 교체’와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덧붙여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제거에 소요되는 비용(경제협력 및 지원과 인도적 차원의 식량 및 에너지 지원 등)을 주변국들에게 분담시킬 수 있다는 것도 다자회담의 부수물이었다. 따라서 6자회담은 한반도 관련 6개국이 ‘대화와 타협’으로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외피에도 미국이 ‘진심’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는 한, 그리고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객관적으로 완화되지 않는 한 사실상 ‘추가적 조치’를 단행하기 위한 단계적 수순에 불과했다. 그러나 회담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도 미국은 보란 듯이 을지포커스렌즈 훈련 등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도발을 지속했고, 심지어 제임스 울시 前 CIA 국장, 존 볼톤 국무부 차관 등 대북강경세력은 최근 북한과의 협상을 일체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며 차라리 전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결국 미국은 6자회담에서 북한의 일괄타결 제안을 무시하고 북한의 선핵포기를 거듭 요구했고, 그 후 재래식무기, 테러, 인권, 납치, 마약문제 등을 협상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미국은 6자회담 도중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이라는 전제조건을 생략하고 북한의 핵관련 발언만을 미 언론에 흘림으로써 회담을 경색국면으로 몰아갔다. 이에 북한이 “기존의 선핵포기 주장보다 더 후퇴한 날강도적인 요구조건”이라고 크게 반발하며 ‘핵억제력’을 불가피한 조처로 제시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북한의 위협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며, 북한은 모든 회담에서 그런 위협을 해왔고 이번에도 그런 말들을 하리라고 예상했었다’라는 조엘 위트 ‘전략 및 국제 연구센터(CSIS)’ 선임연구원의 언급은 결국 이번 6자회담의 ‘결렬’이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미국의 강경 대응과 위기의 심화 6자회담에서 미국은 핵 포기 전까지는 어떤 대북 지원도 있을 수 없다는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 고지를 선점하려 했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를 ‘정치적 강제 없는 합의’로 보기 때문에 6자회담에서 핵포기의 대가로 대북 체제 서면보장과 경제지원 등을 약속하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했다. 또 미국은 6자회담이 끝나자마자 9월 3, 4일 프랑스에서 11개국이 참가하는 PSI 3차 회의를 열고 이번 달 중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회담 재개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핵이나 마약, 미사일 등을 수출하는 ‘악의 축’ 북한을 봉쇄하기 위해 ‘의심선박’에 대한 해상검색과 나포를 강화하겠다는 PSI는 사실상 준군사행위에 해당한다. 이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추가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6자회담 문항을 위반한 조처로서, 사실상 후속회담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에 제공키로 한 한국형 경수로가 플루토늄을 ‘몰래’ 재처리하기가 어렵지만, 북한이 ‘드러내 놓고’ 재처리할 경우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빌미로 경수로 사업의 전면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는 현실적으로 군사적 수단과 경제 지원을 ‘채찍과 당근’처럼 활용할 수 있는 한미일 3각 동맹의 역할분담 전략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특히 경제적 제재를 위해서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을 설득하는 한편 남한의 대북 현금지원의 불투명성을 문제삼고 일본으로부터의 대북 송금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이 북한에 뇌물을 주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각종 경제사업이나 식량지원 등에 엄격한 조건을 붙이고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미국은 자신의 대북 선제공격을 남한 정부가 두려워한 나머지, 대북 압박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을 지극히 염려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한미일 3국이 통일된 입장을 취하지 못했는데, 동맹국이라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며 재차 고삐를 다잡고 있다. 이들은 미일중러 등 주변국들이 공통적인 한반도 정책을 추진함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그 정책에 반대하면서 북한의 호의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은근히 협박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미 남한은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수용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전략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고 있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따른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및 재배치와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함께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의미한다. 일본 역시 미국의 MD 계획에 적극 부응하면서 재무장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만일 미국이 대북 봉쇄에 초점을 두고 사실상 북한의 핵을 ‘무시’하는 정책을 취할 경우 이는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설사 북미간의 교착상태가 일시적인 협상국면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그대로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공고화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의 고조를 낳고 이로 인한 군사력의 편중은 북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변수들 따라서 한반도와 동북아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지 않는 한, 장기간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한다면 북한의 핵보유선언과 핵실험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당초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낮게 점쳤던 미 의회 산하 싱크탱크 외교관계협의회도 6자회담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미국의 봉쇄정책의 성공과 한반도에서의 실제적인 군사 분쟁의 가능성을 속단하기에는 아직 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 우선 북에 대한 선제공격을 미국의 단기적 정책 목표로 선언하는 것은 한반도 주변의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중국과 일본의 협력을 잃게될 뿐 아니라 남한을 자칫 ‘반대편’으로 만들 소지가 있다. 6자회담을 주선하고 ‘주최국 요약’을 발표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온 중국의 수석대표 왕이 부부장이 ‘미국의 대북 정책이 한반도 핵위기 해결의 최대 걸림돌이며 미국이 대북 입장을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또 경제 불황과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조작 의혹 등이 겹치면서 부시 행정부가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걸림돌이다. 무엇보다 최근 이라크 재건 과정이 난항을 겪음에 따라 ‘대테러정책’ 등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적․군사주의적 편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강경파-온건파, 혹은 국무부-국방부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는 것도 변수다. 가령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미국 편에 설 것인가, 테러리스트 편에 설 것인가’를 중심으로 세계를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녀는 9․11 이후 국방부가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이 이슬람 온건파와 유럽을 소외시켰다며 범대서양 동맹을 회복하고 미국을 정점에 둔 다자주의로 복귀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테러와의 전쟁’이나 ‘부시 독트린’ 등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책실현의 경로와 방법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백악관이 2002년 공개한 ⌈대량살상무기 대응 국가전략(NSCWMD)⌋ 보고서는 ꋲ잠재적인 적들에게 대량살상무기의 부품이 이전되는 것을 막고, ꋲ부품이 조립되기 전에 파괴할 수 있도록 군사력과 비밀병력을 이용해 선제공격을 실시하며, ꋲ적들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복을 단행한다고 적고 있다. 9․11 이후 정확히 1년 만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은 미국과 그 우방에게 위험스러운 세력에 대해 ‘선제예방’과 ‘방어적 개입’을 선언하고 있는데, 이것이 탈냉전 이후 당파를 초월한 미국의 중장기적 대외전략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합세하면서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당분간 ‘맹동’을 자제할 수는 있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정국면에 불과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미국은 당분간 한미일 3국의 군사력 증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대북 봉쇄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 나갈 것이다. 동시에 북한이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벌기용’으로 회담을 낭비할 여지를 좁히면서도 북한을 협상국면에 유도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에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중국과의 파트너쉽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공갈’이 비가역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핵개발을 중단 혹은 포기시키는 선에서 당분간 상황을 유지하고 추후를 도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의 일이다. 모든 문제는 열려 있다 결국 현재 한반도의 위기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제어하기 위한 현실적 힘으로서 국제적 반전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재건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정치적 위험’을 국제적 반전운동이 어떻게 영유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9월에 칸쿤에서 펼쳐질 WTO 반대 투쟁은 반세계화와 반전이 서로의 결합선을 찾아나가는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남한이 미국의 군사전략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쟁점들 -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및 재배치, 미국산 첨단 무기 도입과 국방예산 증액 등 - 에 긴밀히 대응하면서 반전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군축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미국의 호전성에 대한 반전평화의 정당성의 우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아직, 모든 문제는 열려 있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