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14일, 노동운동의 거센 반발을 무시하고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자유구역법'은 노무현정부의 출범을 전후로 발표된 12대 국정과제(2월 21일), 경제운용방향(3월 27일)등에서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실현과제를 주요하게 언급함으로써 공식화되었다. 이로써 올 상반기 중의 시행령 마련 작업을 거친 이후 하반기부터는 법안의 실행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지난 21일, 7월 경제자유구역법 발효와 함께 인천공항, 부산항, 광양항 인근 지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우선 지정할 것이라 발표하였다. 주지하다 시피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 방안은 물류중심지, 첨단산업클러스터, 비즈니스중심지 구축이라는 크게 세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류중심지의 경우 인천공항, 부산항, 광양항을 개발하여 동북아 물류의 중심거점화 한다는 것인데, 보다 장기적으로는 남북철도의 연결을 통해 유라시아대륙과의 연계 교통망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첨단산업클러스터 조성 계획은 IT/BT등의 첨단산업과 동북아의 부품·소재 공급기지, R&D기지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부분의 경우 김대중 정권 당시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구상에서는 없던 것이 추가된 것으로, 국내 재벌들의 '역차별' 주장과 투기성 금융자본의 진출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결과라 예측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 중심지 구상은 금융 비즈니스 센터를 건설하여 초민족기업과 금융기관의 아시아본부를 유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07년까지 OECD수준으로 금융관련제도를 선진화하고 기업경영 및 생활환경을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한다. 대략의 구상이 드러난 시점에서, 그리고 법안이 이미 통과되고 시행령 제정, 기획단 구성 등 법안 실행을 위한 제도정비라는 매우 어렵고 불투명한 투쟁지형을 앞두고 이 투쟁의 방향과 의미에 대한 재정리가 필요하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구상의 허구성 김대중 정권 당시의 경제개혁을 통해 자본유치형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는 남한 경제에 있어, 새로운 성장동력의 창출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러한 가운데 제시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구상의 배경은 결국 다음의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초민족자본(기업)의 경제전략, 즉 세계 자본시장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적응·편입하는 방식만이 남한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보장한다는 판단이다. 이에 현재 미국과 EU를 위협할 만큼 높은 성장잠재력을 평가받고 있는 중국시장을 고려한 가운데, 남한의 지정학적 이점을 적극 활용하여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둘째, 이러한 구상 하에서 경제자유구역과 같이 특정 지역을 집중 육성하는 방식이 왜 필요한가의 문제인데, 이미 나라전체가 경제특구라 할 만큼 개방이 진전된 동아시아 다른 국가(대만, 홍콩, 싱가폴 등)들에 비해 남한 경제가 가지는 취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적 투자, 이에 따라 특정 지역, 특정 산업에 대한 집중육성책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의 현실가능성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인데, 자본유치형 국가들의 경제적 불안정은 작년 초 아르헨티나 사태를 비롯하여 에콰도르, 브라질 등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경제위기를 통해 증명된다. 다른 한편 경제자유구역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사례들로는 멕시코의 마낄라도라, 아일랜드의 IT밸리, 네덜란드의 물류중심지, 중국의 푸동 등이 있는데, 각각의 나라들의 세계시장 내 위치나 국내 경제상황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남한의 모델로서 적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사례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특구의 지정이 개방과 착취의 전국화·제도화를 위한 전초전이라는 사실뿐이다. 미국의 제조업 조립작업의 '도피공장' 역할을 하기 위해 1960년대 경 설치된 멕시코의 마낄라도라의 경우 애초 북부 국경지역의 20km이내로 한정되어 있던 것이 1972년 국내 전체로 확대되었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체결 이후에는 거의 무관세 지역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이는 저임금을 찾아 멕시코에 진입했던 미국의 초민족기업에게 영구적인 수탈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경제자유구역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구상이 가져올 파괴적 효과에 대해서 운동진영 내에서는 이미 많은 분석들이 진행된 바 있다. 정리하면 크게 세가지 측면인데, 먼저 전적으로 외자유치를 위한 이러한 정책이 남한경제의 불안정성, 초민족금융자본에 대한 종속성을 더욱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2002년 제경부에서 발표한 외자유치 관련 통계를 보면 2002년 외국인투자가 전년대비 19.4% 감소한 9,101백만불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감소의 이유를 전세계적 경기침체와 국내 대형 M&A물량 감소에서 찾고 있다. 1998년 외국인투자촉진법이 제정된 이후 외국인직접투자가 활성화되었던 1990-2000년 당시 주요 실적이 부실기업에 대한 M&A에 따른 것이었으며, 2000년 초반 들어서면서 직접투자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대부분이 증권시장으로 유입되었다는 당시 언론보도 등을 통해 뒷받침된다. 문제는 이러한 외국인투자의 불안정과 투기성이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특혜성 조치들로 점철된 구상을 통해 극복될 것인가인데, 현재까지 드러난 사례들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 할 수 있다. 지난 2월 초, 인천 경제자유구역 내에 생명공학산업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백스젠, 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인 게일컴퍼니가 이미 본계약을 맺고 각각 올 3월, 내년 10월에 공장과 비즈니스센터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고, 국제적인 물류기업인 디에이치엘(DHL)이 홍콩에 있는 동북아센터를 영종도로 옮기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불과 한 달도 안되어 게일사와 계약의 전제조건인 2008년까지의 제2연륙교(송도와 신공항 연결) 건설이 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영국 건설업체인 AMC측의 자금조달 계획이 마련되지 못함으로써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또한 인천의 경우도 송도와 김포 등지에 이미 들어와 있던 몇몇 외국기업들 조차 경제자유구역의 지정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기업철수를 추진중이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았을 때, 동북아중심국가 구상이라는 것은 외자유치를 내건 위험한 곡예에 불과하다. 두 번째는 지역간 경쟁과 불균형발전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의 우선 지정이 확실시되고 있는 지역은 인천, 부산 광양 세 곳이지만,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12대 국정과제 내의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신국토관리전략" 등에 따르면, 지역특화산업의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대도시들에 대한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의 실행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렇듯 남발되고 있는 계획에서 배제된 지역들의 반발과 경쟁적인 특성화전략의 입안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이미 서울의 금융중심지 조성, 경기도의 IT밸리 중심의 자유구역의 지정이 해당 지자체의 적극적인 요청 하에서 확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인천 송도에 IT단지를 조성하는 것에 대해 대덕산업단지에서 강하게 반발하면서 특혜지역으로 추가 선정해 줄 것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신국토관리전략' 등에서 제시하고 계획의 대부분이 인천, 부산, 광양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자유구역과 연관이 되어있는데(서해안 벨트, 중국진출의 교두보 마련), 장기적으로 경제자유구역의 전국적 확산을 예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은 경제자유구역의 실행이 노동자·민중들에게 미칠 파괴적인 효과에 대한 것이다. 작년 말 민중운동이 경제자유구역법안의 제정되던 당시 이에 대해 강도 높은 투쟁을 벌였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먼저, 노동권은 심각하게 후퇴할 것인데, 월차휴가 폐지, 주휴·생리휴가 무급화, 파견대상의 확대, 단체행동권 제약, 장애인·고령자 의무고용 회피 등의 조항이 경제자유구역법안에 명시되어 있다. 월차휴가, 생리휴가의 경우 주5일제와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에 대한 공격이라 할 수 있다. 파견제의 경우 현재로써도 비정규직투쟁의 중심과제인데, 경제자유구역 내에서 이에 대한 무제한적 사용이 허용된다면 전국적으로 더욱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조치들이 결국에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명분 하에 저임금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교육과 의료 부문에서 외국민간자본 진출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WTO 서비스시장 개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선시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함으로써 개방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 밖에도 소득세, 법인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종토세 등이 2년에서 3년간 50%에서 100%가 면제되는 등 매우 파격적인 조세감면 혜택이 주어지며, 환경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적 투쟁과 지역의 투쟁이 결합되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 지역이 확실시되고 있는 인천, 부산, 광양의 지자체는 2003년 주요업무계획의 많은 부분을 이에 대한 계획으로 채우고 있다. 인천의 경우만 하더라도 IT산업의 전략적 육성, 지식정보산업 기반 육성, 인천국제공항 2단계 건설 사업, 컨테이너 정기항로의 개설과 확충 등의 정책제시와 함께 해외 기업 투치유치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다른 지역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인데, 지정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각종 정책과 아이디어를 발굴하는데 주력하고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들에게 있어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구상은 2020년에 이르러 그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매우 장기적인 플랜이다. 실지로 광양시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정이 고시되는 것이 대략 2004년 상반기, 재경부의 승인이 2005년 경, 개발사업 시행을 2005년경 이후로 전망하고 있다. 작년 말, 법안의 제정을 저지하는데 실패한 민중운동이 올 상반기 투쟁을 얼마나 강력하게 벌이냐가 이 20년의 계획을 좌우한다 하겠다. 부산과 경기 지역의 경우 작년 말에서 올해 초에 걸쳐 지역차원의 투쟁기구를 구성하여 경제자유구역법 폐기, 지정반대를 위한 투쟁을 진행중이다. 그러나 광양, 인천지역의 경우 우선 지정대상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직까지 이렇다할 투쟁의 흐름을 만들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의 허구성과 경제자유구역 실행이 가져올 노동자·민중에 대한 파괴적인 결과를 적극적으로 폭로하는 것을 중심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 경제자유구역 투쟁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 투쟁과 해당 지역차원의 응집된 투쟁이 상호 결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노동운동, 민중운동 차원의 조직적 대응이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의 직접적 폐해가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는 결국 경제자유구역의 전국화, 노동권의 하향평준화로 결과할 것이 명약관화하기에 노동운동이 일차적인 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를 중심으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의 논리 하에 사실상 新지역이기주의를 추동하면서 추진중인 동북아중심국가 건설 구상의 실상을 지역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폭로해 나가야 한다. 요컨대 경제자유구역 투쟁은 하나의 법안 폐지 투쟁을 넘어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발전전망, 그것의 요체로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투쟁으로서 보다 확대·강화되어야 한다.
[편집자주] 세르파티의 다음 글은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는 마르크스주의 저널인 <붉은 스카프>(Carr Rouge)에 실렸다. 세르파티는 최근 <군사세계화: 공포의 불균형>(La mondialisation arme: le dsquilibre de la terreur)이라는 저서를 발간하였다.{{) Collection La Discorde, Editions Textuel. }} 저자는 미국이 어떻게 자본의 세계화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군사력을 사용하고 사용하는지 분석하고 있다. * * * 미 의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미 영토 밖의 지역에서 미국 군대의 개입은 1945년에서 1990년까지의 기간에 비해 1990년대에 훨씬 자주 일어났다(미군의 개입은 1945-90년 기간 50회 미만이었지만 1990년대는 대략 60회였다). 가장 최근 기간만 언급하더라도, 예를 들어 1998년 12월에 영국과 함께 이라크를 폭격한 사례와 같이, 미 행정부는 UN의 어떠한 위임결의도 받지 않고 군사작전들을 조직해왔다. 1998년 8월 케냐 나이로비의 대사관이 폭탄 공격을 받은 후, 클린턴은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카르툼의 한 의약품 공장을 폭격할 것을 명령했다―이 공장에서 생화학무기를 제조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해에, 냉담한 어조로 미 행정부는 카르툼의 공장에 대한 공격은 실수였음을 인정했다(<인터내셔날 해럴드 트리뷴> 1999년 10월 28일자 기사 참조). 같은 시기 미국은, 자신이 서명한 것이든 안한 것이든, 관여했던 국제협약들에서 탈퇴했다. 미국 의회가 대인지뢰의 사용을 금지했던 1997년 협약과 핵실험완전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나, 본토 미사일방어(NMD) 프로그램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중요한 사례다. NMD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은 1972년의 ABM 협정의 명백한 위반이다. 핵무기 통제시스템의 중심축 중 하나인 ABM 협정은 각 가맹국들이 전략적 공격에 대한 방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며, 방어미사일의 개발과 배치를 강력하게 제한한다. 전략적 이론의 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1990년대 말, 대여섯 개의 위원회들이 세계화 시대의 '국가 안보'를 재정의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미국 국익위원회>는 2000년 6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The Commission on Americas National Interests, July 2000, Washington, D.C. }} 이 위원회에는 의회의 유력 인사들과 유명한 경제학자들(폴 크루그먼), 이후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콘돌리자 라이스가 참여하였다.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군사 개입에 관한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미국의 이익인가, 무엇이 안보에 관해 결정적인가를 정의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안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틀에서, 불안전(insecurity)은 기업들의 사회적 계획들과 실업의 폭력에 직면한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내부적 안보는 오직 사적 소유권의 보호를 의미하며, 외부적 안보는 오직 외부의 침입에 대한 영토의 보호를 의미한다. 그 보고서는 미국의 국가이익의 위계를 확립하는 것, 즉 사활적인 것, 매우 중요한 것, 덜 중요한 것, 부차적인 것으로 구별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 보고서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지역에 개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떨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위원회는, 그러한 주장이 이끌어 낼 논쟁들을 의식하면서도, (1994년 르완다에서와 같은) 대량학살들을 예방하는 것은 미국의 사활적인 목표를 구성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선언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 행정부는 국무부와 국가안보위원회의 아프리카 전문가들로부터 대량학살이 몇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개월 전부터 계획되고 있다는 경고를 수차 받았던 것이다. 세계화의 방어,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 위원회는 [미국의 이익에서] 사활적인 항목들에 관해 한정된 목록을 작성했다. 그것은 물론 미국과 세계 곳곳에 배치된 미군을 위협하는 핵무기 및 생화학무기와 같은 실제 군사적 위협을 열거했다. 계속해서 그 보고서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경제이며 미국이 가장 이득을 얻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의 방어는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 중에서 반드시 부각되어야 하며, 미군은 그것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점은 상당히 영향력있는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이자 <뉴욕타임즈>의 편집인인 토마스 프리드만이 무뚝뚝하게 설명했던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자유 무역에 시장을 개방하도록 강제하는 가장 강력한 행위자는 바로 엉클 샘[미국]이고, 세계화 시대에 세계 곳곳에 배치된 [미국의] 군대는 시장을 유지하고, 19세기의 세계화 시대에 영국 해군이 그랬던 것처럼, 해양 교통로를 개방한다. 실제로, 맥도날드는 F-15 전투기를 생산하는 맥도넬 더글라스가 없다면 번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장은 오직 소유의 권리가 보장되고 보호되는 조건에서만 기능하고 번영하며, 시장은 군사력에 의해 엄호되는 정치적 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Harper Collins Publishers, 2000, 특히 381페이지와 464페이지를 참고. }} 의회에 제출된 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화의 방어는 주요한 세계적 시스템들―상업, 금융, 물류 및 에너지 네트워크와 그 환경―의 안정성과 실행가능성의 유지를 의미한다. 다른 보고서들에서, 미국 군부의 최고위 구성원들은 다수의 시스템들(천연자원, 에너지, 자본, 기술, 정보, 지식의 시스템들, 그리고 이 시스템의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하부구조들, 또한 그것들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들)의 세계화는 점점 더 각 국가들에게 결정적이며, 북대서양 민주주의(sic)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세계화는 안보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국가 안보는 수세기에 걸쳐 국가 영토의 불가침을 의미했지만, 이 결과로 이제는 세계적 시스템들의 실행가능성(적절한 작동)을 의미한다.{{) D.C. Gompert, R.L. Kluger, M.C. Lubicki, Mind the Gap: Promoting a Transatlantic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National Defense University press, Washington, D.C., 1999. }} 대체로, 이 전문가들은 자신의 에너지 네트워크들(석유)의 보호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미국이 항상 실행해왔던 군사적 개입의 권리를, 금융시장의 보호를 포함해서 일반화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것은 NATO를 위해 정의해왔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전쟁의 사유화, 책임의 경감 우리는 위에서 아프리카는 미국 의회가 볼 때 중요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인용했던 전문가들은 아주 분명하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유토피아라는 복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적 소유권과 부의 독점의 방어를 사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세계화의 불평등성과 불완전성을 인식하는데 있어 어떠한 어려움도 없다.{{) Gompert et al., op. cit., P. 24. }} 그들에게 긴급한 우선 사항은 스페인어 또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지역이다. 이 곳에서 NAFTA와 곧 출범할 범-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는 이처럼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과정을 수반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나타날 위협들은 미국의 바로 목전에 와 있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그 짐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수단에서 군사 개입의 커다란 실패라는 매우 나쁜 기억들을 남겼던 아프리카가 특히 그 대상이 된다.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독립은 이전의 식민 권력들이나 또는 투자나 금융투자를 원하는 사적 자본에게 방해물이 아니다. 허약한 국가 장치는 군부에게 포위되어 있거나, 서로 라이벌 관계이면서 무장 집단들의 지지를 받는 주요 분파들에게 분점되어 있으므로, 이전의 식민권력에게 어떠한 장애도 아니다. 국제경제기관의 통제를 받는 이 국가들은 자신의 천연자원을 착취하는 기업과 이들 과다채무국가의 유가증권을 쥐고 있는 채권 기관의 소유권을 보호하고 그들이 맺은 계약을 지킬 것을 보장한다. 이는 단지 (어떤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의사(擬似)-국가(quasi-state)라고 부르는) 국가의 지배계급들이 정치적 권위를 유지하고 경제적 자원들을 통제하고 약탈물에서 자신의 몫을 챙기는 데 국제적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분석에 의해 지역 강국인 것처럼 조장되는 나라들은 내부 분쟁들로 인해 침식되고 있다. 식민 상태로부터 형식적 독립이 이루어지면서, 지배 국가는 과거 식민지배 시기에 물어야 했던 식민지 운영비용을 면제받았지만, 식민지에서 얻었던 이윤을 잃지는 않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부들은, 젊은이의 교육과 같이, 생존의 재생산과 유지에 필요한 재정 지출을 부담할 책임을 면제받게 된 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유일한 목표는 천연자원에 관한 우선권의 확보이며, 채권자들은 오로지 외채 지불의 흐름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는데 몰두한다. 만약 우리가 세계화를 세계적 규모에서 기능하는 하나의 총체로 본다면, 오늘날 자본의 재생산 양식은 아프리카에 관해서는 매우 선택적인 요구가 있을 뿐이다. 선진국가들은 경제성장의 침체에 직면해 있고, (높은 수준의 실업률을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새로운 생산 기술의 확장에 기초한 새로운 생산성의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선진 국가들에게 아프리카는 더 이상 저임금노동이라는 매력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외국자본의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 정부들에게 주어진 주권과 합법성은, 자본이 경제적 비용이나 사회적 부자유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이들 나라에서 제공한 이득을 완전히 얻을 수 있게 하였다. 르완다에서 조직된 대량학살은,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이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결코 다국적 기업들이 채굴과 석유생산을 위한 활동을 추진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주민을 절멸시키는 사회적 천형(天刑)들, 특히 식량 결핍, 기아와 전염병(AIDS는 가장 최근의 그리고 가장 악화된 판본일 뿐이다)은 내부 원인에 의한 산물이 아니다. 탈-식민운동의 틀에서, 이러한 천형은 1960년대 초반 르네 듀몽이 강조한 것처럼 나쁜 출발의 반영일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러한 천형이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관계들의 구조에서 불가역적인 구성 요소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야만 한다. 이러한 주민의 인구 수는 너무나 많다. 끌로드 메이야수는 인구학적 수단(출산 제한, 피임 등등)을 통해 착취 받는 인민들의 인구를 통제하는 게 실패했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굶주림, 질병 그리고 죽음을 통한 통제 형태는 더욱 효과적이고 잔혹하지만, 현재 경제적 합리성과 구조조정이라는 구실로 확립되었다: 맬서스의 교훈이 너무나 잘 이해되었던 것이다. 메이야수에 따르면, 맬서스의 법칙은 인구성장의 과잉을 피하기 위해서 노동하는 인구가 반드시 영구적으로 아사 직전의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 Meillassoux, Leconomie de la vie, Demographie du travail, Cahiers Libres, Editions Page Deux, 1997, pp. 108-109. }} 또한 새로운 전쟁은 맬서스의 법칙이 적용되도록 하는 비극적 기능을 하고 있다. 나토, 유럽 부르주아의 종속의 도구 미국에서 논쟁이 고립주의자들과 개입주의자들 간의 분할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면, 논쟁에서의 문제는 국가안보에 관한 이해의 위계이며, 특히 무엇이 미국이 군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는 사활적 이해인가라는 문제다. 분할된 모습을 띠더라도, 소유권의 수호와 결합된 문제들에 다루기 위해서는 어느 곳이든 미군이 개입해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 이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인의 인명 피해가 제로여야 한다는 목표가 (얼마간) 우선순위에 남아있으며, 위협들이 점점 더 분산되고 다변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군의 개입은 미국의 과업이며, 또한 심각한 경쟁자들의 부상을 막고 자신의 전략적, 전술적 목표들에서 우선 순위들을 결정하는 것도 그러하다. 게다가 미국의 정책 결정을 책임지는 일부 인사들이 몇몇 특정한 분쟁들(유럽의 분쟁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분쟁까지도)의 관리를 유럽의 군대에게 떠넘길 것을 제안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논쟁의 구조 내에서였다. 오늘날, 자신의 군사력으로 인해 세계적 역할을 지속하겠다는 유럽의 강국들 특히 프랑스와 영국의 야망은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군사 교리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유럽 정부들은 1990년대의 경제적, 지정학적 전환들에 의해 취해진 기회와 위험들에 대해 동일한 전망을 가진다. 현재 부상중인 유럽의 방어체계는 '범대서양 동맹'(transatlantic alliance)의 구성요소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2000년, 나토 사무총장이었던 하비에르 솔라나는 유럽연합 외교정책 및 공동안보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었다. 몇 개월 후, 니스 정상회담(2000년 12월)에서는 신속대응군의 창설을 결정했다. 유럽 방어의 형성은, 이미 나토 회원국 다수의 사례와 같이, 앞으로 유럽 국가들이 국방예산을 증액하도록 더욱 압박할 것이다. 유럽의 방어 체계가 나토에 종속되는 것은 경제적 수준에서 범대서양 통합의 진전에 동반된다. 경제적 통합은 동-남아시아의 붕괴로 시작되어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로 확산되기 이전인 1997년 위기 이후 강화되었다. 경제위기는 한편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다른 한편으로는 신흥국가들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들과의 경제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미국에 의해 지배되는 범대서양 통합은 미국과 유럽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 간의 금융적, 상업적 결합의 확장이라는 상황이 반영된다.{{) 1997-99년의 기간에 다국적 기업들간의 초국경적 인수-합병의 60%가 미국과 유럽의 산업집단들간에 이루어졌다(UNCTAD, 2000). }} 주주들의 요구에 완전히 기운 기업 경영의 동일한 규칙들이 채택되며(기업지배구조), 양 대륙에서 시행되는 거시경제 정책의 수렴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상호간의 제국주의적 경쟁을 억누르지는 않지만, 오히려 근본적인 공동 이해와 어떤 유럽 국가도 도전할 수 없는 미국의 지배 구조 내부로 경쟁을 제한한다. 범대서양 통합은 특히 군수산업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의 군사 예산 규모, 이라크와 세르비아와의 전쟁에서 과시한 기술적 진보, 그리고 각 나라의 군사장비를 나토의 작전상 요구에 맞춰야 할 필요성은 산업 차원에서 무기의 연구, 개발과 생산 프로그램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미국 그룹은 그 프로그램을 주도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또한 펜타곤이 남-동 아시아에서 구축해온 방어 구조에 일본이 더욱 적극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몇 개월 전 조지 부시 행정부의 무역 대표로 임명된 로버트 젤릭은 여기에 역사적 변화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그는 일본, 미국, 남한, 호주가 군사관계를 강화하여, 아시아 미군 내부로서 일본 자위대로 대통합되는 방향으로 진전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R.B. Zoellick, A Republican Foreign Policy, Foreign Affairs, vol.79, no. 1, p. 74. }} 세계화가 낳은 위험 계급들이 눈앞에 있다 앞서 전문가들의 보고서에 언급된 것처럼 미국에게는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는 문제는 미국의 경계 부근에서 유력한 적대 권력이나 실패한 국가들이 부상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다.{{) The Commission, op. cit., P. 6. }} 미 전략가들의 용어법에서 실패한 국가라는 개념은 1991년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는데, 이는 내전(혹은 국가-이하적인 전쟁)의 영향으로 국가가 해체되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행복한 세계화와 그것의 귀결로서 민족들 간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수렴에 관한 담론은 오직 그것을 신봉하는 자들만을 결속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미 행정부와 전략가들은 (이전에 현존 사회주의라고들 말했던 것처럼) 현존 세계화가 초래하는 해악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전략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저술은 암울한 각본들로 넘쳐 나는데, 그에 따르면 국가의 해체가 세계화와 뒤섞일 때 끔찍한 사회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미국 군 당국의 고위 인사들이 세계화의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특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미 지도자들 편에서 봤을 때, 세계화는 그들의 안보에 과중한 위협을 부과한다.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세계화가 유발하는 주된 위험 중에는, 막대한 초극화의 구성이 있다. [오늘날의]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19세기 유럽 국가들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이농의 결과 초래된 것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들의 마을에서 내몰린 농민과 장인의 존재 조건이 비록 비극적이긴 하였으나, 이러한 이탈은 산업화를 수반하는 것이어서 자본주의의 팽창이 종국에는 이 인구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오늘날 상황은 전혀 다르다. 발전도상국의 상황은 도시에 살러 온 수천만의 인민들에게 아무런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천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들의 숫자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어림컨대 2010년 즈음이 되면 발전도상국 인구의 45%가 소도시와 대도시에 살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을 근심에 빠뜨리는 것은, 자신의 영토 근처에 위치하거나 미국의 주요한 경제적 이해와 연루된 나라 안에 있는 도시들이 나타내는 위험이다. 멕시코 시티(인구 200만), 상 파울로(인구 260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리오 데 자네이루(각각 인구 100만 이상)는 그것에 맞서 대비할 필요가 있는 위험을 나타낸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 = 19세기의 위험 계급>의 현대적 판본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 지도자들이 목격하는 위험은 인민 대중들의 프롤레타리아화로부터 초래되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임금노동의 전망이 어떻게 손써볼 수 없을 정도로 폐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위험은 인민들이 절망에 휩쓸린 나머지, 미국이 그것의 수립에 일조한 특히 미 대륙에 있는 허약한 국가 장치들을 뒤흔들려 드는 것이다. 또한 미 지도자들은 절망과 극빈 때문에 인민들이 불법적인 행동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 역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베네수엘라, 카리브해 지역과 콜롬비아가 <미국 국익위원회> 보고서에 인용됐는데,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대상은 멕시코다. 보고서는 거리낌없이 말한다. 북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함으로써 이 나라는, 이전에 암묵적으로 그랬다면, 이제는 명시적으로 미국의 전략 범위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캐나다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The Commission, op. cit., P. 29. }} 보고서는 경제 붕괴와 정치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남-서 국경에 대규모 이주 물결이 밀려 올 경우 미국이 위협에 처할 수 있다는 공포를 언급한다.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할 책무라는, 위에서 정의된 의미에서) 사활적 이해가 연루된다. 한 연구자는, 다소간 동일한 분석을 채택하면서, 총 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멕시코 투자가, 그 대부분이 석유 수출인 1560억 달러 가량의 양자간 교역과 마찬가지로, 위협받을 것임을 지적한다. 장차 벌어질 [멕시코의] [내]전에는, 멕시코에 가족을 둔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가담할 것이고, 미국 내부에서 폭력을 부추길 것이다.{{) S.R. David Saving America from the Coming Wars, Foreign Affairs, vol. 78, no. 1, 199, p.116. }} 위원회 보고서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멕시코의] 사회적 고통의 주된 책임이 미국이 멕시코에 강제한 경제 정책에 있다는 사실이다. 범죄 과정을 잘 입증하고 있는 한 책에서 길렘 파브르는, 시장 경제의 범-지구적 팽창, 금융화의 동학, 무수한 역외 금융 센터를 통해 활동하는 자들에게 보장된 익명성, 그리고 (은행과 정치가들의) 부패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이 틀 안에서, 국제 기구들과 미국이 멕시코에 강제한 대규모의 사유화 프로그램은, 상업적 거래와 자산 투자와 함께, 마약왕들에게 알짜배기 트로이 목마를 제공했다.{{) G. Fabre, Les prosperites du crime, Editions de LAube, 1999, p. 116. }} 앞으로 살펴볼 것이지만, 미국이 '플랜 콜롬비아'에 착수한 것은 바로 마약 거래에 대한 전투라는 명분에 따른 것이다. 이는 자신의 사활적 이해의 방어를 수행하는 첫 번째 단계임에 분명하다. 미국은 다가올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략 전문가들은 도시가 의미할 수 있는 새로운 전장에 대해 주목해 왔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군사 교리는 이러한 개입에 연루되는 것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근년간에 미군은 이런 식의 개입을 배가시켜 왔다. 평화유지 작전을 위한 것이든(소말리아, 라이베리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 자신들의 분명한 정치적 필요를 위해서든(파나마에서처럼) 말이다. 지난 10년 간 이런 종류의 군사력 배치의 수는 250 차례를 헤아린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전투에 부합하는 무기를 개발·생산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관련한 요구들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연구 집단 중 하나로서, 공군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랜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에 열거되어 있다: 소형 광섬유 미사일, 나토가 세르비아에 개입할 당시 시험적으로 사용되어 비교적 성공을 거둔 유형의 탄약을 발사할 수 있는 무인기(소형 무인 비행기), 소음탄이나 다른 비-살상 무기들을 배치하는 임무를 지닌 소형 로봇 따위들. 냉전이 끝난 이래, 미 행정부는 이런 종류의 무기에 관심을 가져 왔는데, 이는 (문서상의) 정의에 따르자면 군인, 무기, 보급품 또는 설비를 무력화하되, 죽음 내지 심각하거나 영구적인 무력화를 유발하지는 않는 의도를 갖는 무기다. 한 마디로 깨끗한 무기, 마치 대이라크전에서 이른바 정밀폭격이 깨끗한 것으로 가정됐던 것처럼, 혹은 세르비아에서의 열화우라늄 무기의 사용이 그랬던 것처럼. 연구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은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예산을 심의하는 의회에 배분된 감사의 내용은 상세하지 않다). 그렇지만 1994년에 착수된 프로그램인 고주파활성오로라 연구프로그램(HFAARP)은 고주파 전자기 광선으로 자연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세르비아는 아마도 전기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흑연 폭탄의 시험장 노릇을 했을 것이다. 비-살상 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대단한 미래로 향해 있다. 이로 인해 미군 혹은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군대는, 자신들의 이해(심지어 비-사활적인)가 위협받는다고 미국이 판단할 때라면 언제든지 [다른] 나라에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목격할 수 있듯, 이른바 비-살상 무기 프로그램은 분쟁 와중에서 민간인과 전투병 간의 구별을 약화시키는데, 이 구별은 문명상태로의 일보전진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비-살상 무기 프로그램은 또한 불가피하게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사회의 적) 간의 차이를 환원시키는 바, 뤽 맴피는 이런 유형의 무기 생산이 억압의 내부적 무기고를 강화시켜 조만간 사회를 영구적 통제 하에 두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Mampey, L. Les armes non letales. Une nouvelle course aux armaments, Rapports du GRIP, 1/99, p. 8. }} 이것이 말하는 함의는, 비-살상 무기는 그것을 생산하는 선진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내전의 무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업과 빈곤, 수백만 청년들에게 거의 희박한 영구적인 직업이라는 희망의 부재 따위는 발전도상국들에 고유한 현상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재앙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압력 하에서 사회보호 제도가 해체되는 것과 결합하면서 배제와 주변화의 과정을 창출한다. 게다가, 부유한 나라에서 안전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은 위험 계급이 발전도상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비-살상 무기 프로그램들이 발전하는 것은, 이와 같은 국가-이하적인 전쟁의 특수한 다양성과 대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과 대량살상 화학무기 현재 전략적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준비 중에 있는 첨단 우주 기술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인데, 이것의 목적은 미국에 핵 방어막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연원이 되는 레이건의 스타워즈처럼, 이 프로그램은 이중적 목표를 갖고 있다. 대(對)중국 차원에서 목표는 실제로 전략적이다. 미국의 동맹국들 및 동반자들과 연관시켜 보자면, 목표는 기술적이고 산업적인 지배다. 하지만 이 같은 가시적인 프로그램에 더하여, 다른 것들이 추가되어야만 한다. 동시에, 펜타곤은 생물학무기와 화학무기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착상은 새롭지 않다. 염소와 겨자 가스를 사용하는 화학무기는 1차 세계 대전 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결과는 아주 비참한 것이어서, 화학무기는 1925년 제네바 의정서에 의해 금지되었고, 금지된 이후 널리 사용됐다. 따라서 생물학·유독성 무기에 관한 협약이 1972년에 채택됐다. 화학무기의 개발, 제조, 보관과 사용을 금지하고, 그것들의 폐기를 결정한 또다른 협약이 파리에서 채택됐다(1993년 1월 13일). 협약은 1997에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1999년 말이 되면 129개국이 이를 비준했고 21개국이 거부했다. 거부한 나라에는 이집트, 이스라엘, 북한, 리비아 및 시리아와 함께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포함됐다. 장기간의 토론을 거친 후, 미국은 화학 무기에 대한 협약을 비준했다. [하지만] 생물학무기의 확인-통제 조치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훨씬 꺼려했다. SIPRI가 지적하듯, 이 의정서의 존재 자체가 서구 국가들의 침묵 때문에 위협받았는데, 만일 생화학 군축 체계가 실제로 적용된다면 이 나라들의 산업이 가장 심대한 위협을 받을 것이었다. 이제, 미국의 의약 산업은 어떤 통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적의를 드러낸다. 클린턴의 상무장관이 이들을 지지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불시의 방문, 정기적 방문은 물론 공개 방문에 대해서도 반대해야한다고 계속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는 미국 산업체에게 그들의 장소로의 불시의 또한 정기적인 방문을 반대한다고 일관되게 반복해서 말해야 합니다."{{) Quoted in the SIPRI, op. Cit. P. 525. }} 자신의 산업을 만족시키기 위해, 미 행정부는 불시의 방문에 대해서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이 타협안으로 제시한 공개 방문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우리는 미국이 행동하는 방식과 다른 나라들에 강제하는 방식 사이의 괴리를 측정할 수 있다. 이라크 주민에게 10년 동안 부과된 치명적인 조치들은, 사담 후세인이 자신의 인민들을 자유롭게 잔인하게 억압하도록 내버려둠과 동시에, 최강자가 만든 법이 곧 법이고,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계 질서가 기초하는 것은 바로 이 법 위에서라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다. 새로운 전쟁의 훈련장으로서 콜롬비아 불평등한 세계화로부터 초래되는 새로운 전쟁은 또한 지상에서도 대비되어야 한다. 콜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미국의 직접적 개입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약 거래에 맞선 전투를 명분 삼아,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행동 계획을 강화했고, 플랜 콜롬비아를 실행에 옮겼다. '정당한 명분'(Just Cause)라는 이름으로 파나마에서 수행된 작전[1989.12]은, 그 목표가 노리에가를 제거하는 것으로, 미국 미디어가 널리 채택한 것처럼 마약 거래에 대항하며 민주주의를 재건한다는 것을 그 구실로 이미 사용하였다. 확실히 소련이 사라진 이래, 공산주의의 위험을 읊조리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 같은 개입에 대해 국제연합(UN)이 비난하더라도 미국의 전략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 콜롬비아는 1985년과 1998년 사이에 외채가 140억 달러에서 330억 달러로 증가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공세로 인해 인구의 대부분은, 30%에서 35%(보고타(Bogota)에서는 60%)로 증가한 실업률에서 [짐작할 수 있듯], 최근 몇 년동안 더욱 악화되는 극빈 상태에 처해 있다. 공공기업은 사유화되어 외국 그룹에 헐값에 매각되었고, 연금체계는 사적 연기금으로 넘겨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13억 달러에 달하는 플랜 콜롬비아는 그러나 주로 군사적 억압에 연관되어 있다. 어림잡아 250명 가량의 군사자문들이 있는데, 또한 미국의 사적인 안보 대행업체 소속의 군사자문들도 있다. 유럽연합은 파스트라나 대통령의 평화 노력에 대한 지원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지만, 동시에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으리라 추측되는] 군대에서 직접 갈라져 나온 준-군사적인 무장세력이 수년간 체계적인 민간인 학살 정책을 수행해 왔을 뿐만 아니라{{) See the investigation by Maurice Lemoine, Cultures illicites, narcotrafic et guerre en Colombie, Le Monde Diplomatique, January 2001. }}, 현재에는 노동조합 활동가가 암살된 사건에도 연루되어 있다. EU가 미 군사 계획에 추가한 이 같은 사회적 부가물은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다. 볼리비아를 돕기 위해 EU가 채택한 같은 종류의 계획처럼 말이다. 이는 미 행정부의 목표를 감추기 위한 진부한 외피로, 그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전쟁을 급속히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콜롬비아에서의 미국의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개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접경국가의 경계를 크게 초과하고, 대륙 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곧 2005년을 목표로 계획된 전미자유무역지대(AFTZ)를 건설하려는 전망과 연관된 요소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알래스카에서 티에라 델 푸에고에 이르는 이 지대는, 자신의 경제 번영과 자유 교역을 보장해 주는 새로운 안보 구조의 창출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마약과의 전쟁은 또한 펜타곤의 계획과 군산복합체 특히 록히드의 요구를 강화해야 하는 바로 그 시점에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전에 남부 사령부를 책임졌던 장교 써먼 장군이 말했던 것처럼, 당분간은 마약에 맞선 전쟁이 우려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전쟁이다.{{) The only war we've got. Quoted by NACLA, Reports on the Americas, New York, November-December, 2000, vol 34, no.3. }} 결국, 미국의 개입은 그들의 사활적 이해에 대한 재정의의 구성적 요소인데, 왜냐하면 콜롬비아 농민에 맞서 벌어지는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주장 이면에서, 이 계획은 위험 계급에 맞선 전쟁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위험 계급은 농촌에서 발견되지만 도시에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노동조합 조직의 주도로 매우 강력한 저항 운동이 존재하며, 이 운동은 노조원들과 활동가들에 대한 준-군사적 그룹의 체계적 암살로도 중단되지 않았다. 플랜 콜롬비아의 목표는 또한 전 대륙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 대륙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결과에 직면해 있고 그 미래는 이미 몇몇 국가에서 현실화된 것처럼 경제의 달러화다.{{) See R. Acosta, La lutte sociale dans le difficile contexte colombien, In ATTAC, Les peoples entrent en resistance, CADTM, CETIM, Editions Syllepse, Geneva, 2000. }} 콜롬비아에 관한 한, 콜린 파월 같이 미국의 군사 개입이 또 다른 베트남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상무 장관 젤릭은 (게릴라에 맞선) 대항-봉기적 투쟁과 마약 거래에 맞선 투쟁 사이의 구별을 폐기해야 한다고 여긴다.{{) Quoted in Business Week, Bush Worlds, January 29, 2001. }} 내가 여기에서 제공한 성찰의 소재가, 독자로 하여금 논쟁의 와중에서 군사적 간섭을 지지하는 복음주의적 입장에 맞설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너무나 자주, 그런 것들은 오직 군사적 개입을 위한 이데올로기적인 겉치장에 불과하다. 그 기본적 목표가 사적 소유 및 그것을 통해 부가 이미 가장 부유한 자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약탈 통로를 보호하는 것일 뿐인 개입 말이다. [끝]
제 1막: 모하메드 아타(Mohammed Atta) 아타는 이집트의 한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재였던 그는 카이로에서 건축학교를 마친 후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가서 도시계획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1995년 '이슬람 도시' 카이로를 관광지로 전환하려는 이집트 정부의 도시계획에 관한 연구를 위해 독일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 받고 다른 두 동료 학생들(독일인)과 함께 이집트로 돌아왔는데, 거기서 그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도시계획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내쫓고, 양파와 마늘 상인들을 근절시키고, 문자 그대로 그들을 대신해서 문화적 풍모를 갖춘 시민을 연기할 배우들을 데려와 거리를 꾸미려 했다. 아타와 그의 동료들은 이에 거부감을 느껴 이집트 정부에 항의했지만 정부 관료들은 이러한 그들의 반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타는 모든 것이 세습되는 족벌주의가 만연한 그곳에서 졸업 후에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당시 이집트는 자신의 경제가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고학력자를 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이로에서 연구를 계속할수록 아타는 정부에 대해 더욱 비판적이 되어갔다. 그는 정부의 계획이 유서 깊은 카이로를 이슬람식 디즈니랜드로 만들려는 것이며 이는 이집트 정부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으려는 데서 생긴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1년 9월 11일, 그는 비행기를 몰고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돌진해 들어간다. 그로 인해 3000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계는 경악했다. 그것은 비극(tragedy)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타가 이집트에 돌아갔을 때 가졌던,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던 경험의 예외적인 성격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지독한 진부함이다. 제 3세계 혹은 '주변'에 속한 국가에서라면 어디서나 발견될 수 있을 만한 흔한 일―정부에 의한 도시빈민촌의 철거, 노점상 탄압, 실업자 양산 등의 문제들―을 겪고 그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나는 그것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문제는 그것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점에 있다. 그가 '사회적' 운동과 결합하여 자신의 문제의식을 풀어나가는 대신 '반-사회적인'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결론만 제외한다면 마치 운동권 청년의 자기 고백을 듣는 듯 귀에 익은 아타의 뒷 이야기에는 따라서 무언가 설명되지 않은 것이 있다. 1952년 군주제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은 낫세르(Gamal Abdel-Nasser)의 지도 하에서 이집트는 진보적인 아랍 민족주의의 유례없는 부흥을 경험했다. 과거 군주제 하에서는 2차 대전 이후 급성장한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무슬림 형제단(50만 회원)―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는데, 낫세르는 집권 후 이들을 주변화시키는 데에 완전히 성공했던 것이다. 낫세르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암살기도가 있은 후 그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사정을 바꾼 것은 낫세르의 개혁정책이 가졌던 급진성이었다. 1956년 외국에 넘어가 있던 수웨즈 운하 소유권의 회복과 그에 이은 이스라엘-프랑스-영국 삼자 동맹의 이집트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낫세르를 제 3세계 해방 운동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는 토지를 재분배하고 외국 소유의 산업들을 차례로 되찾아옴으로써 이집트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교육 체계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서 이집트를 진보의 길로 안내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집트 내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약화시켰고, 더 나아가 아랍 및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들을 고무시킬 수 있었다. 한 편 친미적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그 당시 정치·군사적 권력을 쥐고 있던 사우드 왕가와 종교적 권력을 쥐고 있던 와하비족 사이의 뿌리깊은 분쟁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의 부흥과 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집트-소련의 동맹 형성이 이들의 협력을 강제했다. 이때부터 반민족주의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와하비족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는다. "아랍 냉전"이라고 불리는 친미-사우디와 친소-이집트 사이의 이러한 대결은 1962년에 절정을 맞이한다. 이집트는 반제국주의적 아랍민족주의와 결합된 "사회주의"를 선언하게 되고, 그 반대편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는 무슬림 세계연맹(Muslim World League)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던 무슬림 세계연맹의 목표가 민족주의,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반동적 이슬람주의를 선동하는 것에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결정적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은 67년 이스라엘이 거둔 6일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점으로 해서였는데, 이 사건은 아랍권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불을 지름으로써 사우디 아라비아의 입지를 획기적으로 강화시켜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1979년 호메이니에 의해 주도된 이란 혁명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호메이니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반공주의적인 사우디의 그것과 구별되는 반서구적 성격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세력이 약화된 이집트의 반-제국주의를 우익적으로 전위된 형태 하에서 다시 취하는 것이었다. 이란 혁명과 동시에 발발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지형의 변화를 완전히 굳혀버린 것은 당연했다. 아프간전에서 사우디와 이란은 누가 더 급진적인가라는 근본주의 경쟁에 연루되었고, 이러한 경쟁은 그 양자를 서로 대립시키면서도 끊임없이 닮아가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적보다 더 급진적이기 위해서는 적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 소련을 의식한 미국의 다양한 지원이 있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미국은 반-서구적 이슬람 근본주의의 창궐에 대해 이중적인 책임이 있다.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직접적으로 지원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랍권 내의 좌파적 운동 및 민족주의 운동을 붕괴시킴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 이외의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대안도 가질 수 없는 상황으로 대중들을 몰아넣었던 것이다. 사회적인 모순과 적대를 해결하지 않고 투쟁하는 진보적인 사회운동세력들만을 파괴했을 때, 불만은 전위된 다른 경로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며,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일그러지고 왜곡된 병리학적인 형태로 복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쌍한 '아타'가 잔혹한 테러리스트 '아타'로 변하게 된 것도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진보적인 운동세력의 총체적인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 전망을 찾을 길 없는 그의 분노가 반서구적 이슬람 근본주의에 자신을 결합시켰던 것은 거의 자연적인 필연성을 갖는 과정이었다. 제 2막: 크레온 테바이의 궁전 앞으로 이스메네를 불러낸 안티고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방금 왕[크레온]께서 테바이에 선포하셨다고 하는 새로운 포고는 무엇이냐? … 우리 친구들이 우리 원수가 될 운명이라는 것을 너에게는 감추더냐? … [전쟁에서 죽은 두 오빠 가운데] 에테오클레스 오빠는 바르고 법도에 맞는 정당한 의식으로 땅에 묻어 저 세상에서 고인들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거야. 그러나 폴류네이케스 오빠의 불쌍한 시체는 거리에 내놓고 매장도 못 하게 하고 조상도 금지한다는 소문이야."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서두에 나오는 이 몇몇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이미 무한한 테마(혹은 차라리 무한히 다르게 반복될 수 있는 테마)를 만난다. 전쟁, 통일된 삶(united life)의 파괴, 국가와 가족 간 갈등의 출현, 공동체 내부의 소속들의 경합, 즉 '전쟁의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일련의 테마를 말이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의 '진정한' 출발점(현실 역사의 출발점)에 위치시켜 분석했고, 레닌이 그의 눈앞에서 전개되던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분석하고자 활용했던 이 테마는 바로 '비극'의 테마였다. 그러나 비극은 '운명의 인과율'을 통해서만 비극이 될 수 있다. 폴류네이케스 오빠의 시신을 땅에 묻으려고 한 안티고네에게서 국가의 "정당한" 권위에 대항한 반-사회적 개인의 이미지만을 본 크레온이 주변의 모든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동굴 속에 산채로 '매장'하려고 했을 때, 그가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은 정확히 안티고네의 존재가 자신의 외부가 아닌 내부라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아들 하이몬의 약혼녀인 안티고네를 죽이면서 그것이 역으로 자신의 존재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은 채 깨끗이 사라져 주리라고 크레온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정당함만을 보게 되는 의식의 맹목성에 지배되는 내란(소속들의 경합)의 상황 속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이몬이 안티고네와 함께 자살하고 이어 자신의 아내 에우류디케가 자살한 것을 전해 들은 크레온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아, 이 죄는 도저히 다른 사람한테 전가할 수 없는 것이구나! 내가, 그렇다, 내가 죽였다." 비극 혹은 운명의 인과율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타자와 동일자의 차이가 언제나 '내적인 차이'라는 점이다. 양자의 존재는 단순하게 분리될 수 없으며, 그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동일성이란 과정으로서 차이화(differentiation)가 가져오는 상대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기자신과 내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타자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가 곧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타자의 존재가 억압될 수는 있다고 할지라도 파괴될 수는 없으며 다시 돌아와 동일자의 뒷덜미를 잡아채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와 분리 가능하다고 믿었던 타인의 존재('주체'란 이러한 착각을 우리가 이름짓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가 사실은 동일자 자신의 내부를 항상 이미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비극적인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들이 모종의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에 도달함으로써 일방성 없는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경우뿐이다. 발리바르는 최근에 쓴 자신의 글 「유럽: 사라지는 중재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극의 교훈 … 그것은 "내전"에 관련된다 … 장기 20세기의 "유럽적 내전"으로부터 하나의 교훈이 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절대적 승리"도 불가능하며, "적(敵)"에 대한 어떠한 최종적 억압이나 중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제든 "최종적"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당신은 더 많은 파괴와 자기-파괴의 조건들을 창출한다. 그러한 상호절멸에는 "끝"이 없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자. 그것은 오직 그 상호절멸의 적법성이 근본적으로 제거될 때, 그리고 제도화된 집단적 대항-권력들이 나타날 때에만 끝날 수 있다고." 제 3막: 어떤 이름 모를 요르단 남자 냉전 이후 미국은 지구상의 유일한 헤게모니 국가로 독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오래지 않아 이를 제국적 지배의 야심으로 전환시켰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1990년대 중반부터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클린턴 정권 하에서 제출된 1996년 Joint Vision 2010과 1997년 4년차 국방 보고서에 등장한 이러한 변화는 '방어'(defense) 개념을 대신하여 (사실상 지배(domination)의 완곡 어법인) US의 '우세'(dominance) 개념을 자신의 군사전략 목표로 설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적에 대한 '저지'(deterrence) 개념의 의미 자체가 변하는데, 과거에는 적들의 행동(acting)을 막는 것이 과제였다면, 이제 적들을 반응(reacting)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과제가 된다. 바꿔 말해서, 미국이 자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적들의 저항을 분쇄시키는 방향으로 군사정책이 이동한 것이다. 2001년 9·11 테러공격이 발발한지 며칠 후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에 의해 제출된 4년차 국방 보고서는 이러한 US의 '비대칭적 우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식별된 적들의 실제적인 위협에 기반한 대응전략(threat-based-strategy) 대신 가설적인 적들의 잠재적 군사 역량에 기반한 대응전략(capabilities-based-strategy)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방 전쟁" 및 "선제 공격" 개념을 정당화하기 시작하는 이러한 계획은 따라서 (테러리즘과 같은) '비대칭전'에 대한 허점을 커버하기 위해 기존의 군사·외교 정책들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강화하는 방향을 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윗의 작은 돌멩이를 걱정한 골리앗은 이제 자신의 미련한 덩치를 보다 더 크게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정책 상의 변화는 1999년이래 나타난 기하급수적인 국방비의 증가로 이어진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2002년-2003년 회계연도에 379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책정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강대국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금액과 맞먹고 EU 및 NATO의 회원국들의 국방비를 전부 합친 것의 두 배가 넘는다. 한 마디로 미국은 현재 제국으로 전환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으로의 전환은 경제적인 측면이 아닌 군사적인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초민족적인 금융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경제적인 수단을 통해 하나의 민족국가가 제국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이러한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으며, 미국은 아프간 침공을 필두로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2003년 3월 20일 마침내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한다. UN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전 세계 시민들의 반전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결국 이라크를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들이 석유에 눈이 멀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많은 전쟁의 비판가들은 이라크 침략전쟁의 목적이 단지 석유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사태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 석유는 탐나는 훌륭한 전리품임에 분명하지만, 미국이 그 모든 국제사회의 법들을 명시적으로 어기고 모든 반대를 무릅쓴 채 침략전쟁을 감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우익적인 인사들은 기만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언제나 다른 속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에 젖어있지만, 사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함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도 지배계급 스스로가 믿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익적 인사들도 자신의 올바름을 신실하게 믿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끝까지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들이 그것을 철저하게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며, 자신의 정당성만을 바라보려는 의식의 맹목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라크 침공 사흘째가 되던 날 미국의 ABC방송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요르단 남자와 가졌던 인터뷰를 방영했다. 미국 코네티컷의 한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을 뿐 아니라 미국식 생활 방식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에서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엄청나게 화가 나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TV를 통해 9·11 테러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나 자신이 그러한 테러리즘을 저지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역사의 행위자들은 종종 너무 늦게 비극의 교훈을 깨닫는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크레온 왕에게 거듭해서 안티고네를 용서해줄 것을 권유하다 마침내 이렇게 말하고 돌아선다. "왕께서는 저의 화를 돋우었기 때문에 노한 나머지 저는 왕의 심장을 겨냥하고 궁수처럼 화살을, 그 아픔을 피할 길 없는 빗나가지 않는 화살을 쏘았습니다." 크레온은 그제서야 자신의 결심을 바꾸면서, "운명과 공연한 싸움을 벌여서는 안되지"라고 말하고 안티고네가 갇혀 있는 동굴 쪽을 향해 달려간다. 이미 당겨진 화살이 자신의 심장을 향해 시시각각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오직 자신의 아들의 주검을 발견하기 위해서.
Second Thoughts on The Third World Social Forum:Place, Space and the Reinvention of Social Emancipation on a Global Scale 피터 워터만 Peter Waterman 출전은 아직 프린트 버전은 없는 것 같고 그룹 이메일로 날라 왔습니다. 원래는 3개의 파일들로 왔었는데 내용은 손대지 않고 하나로 만들어 올립 니다. 이 글은 WSF(World Social Forum)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키는 데 도 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워터만 자신의 입장에 동의하는가는 별개의 문 제입니다만... 아래는 각주 1번을 가져온 것인데 이 글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 다. 거기서 읽어보라고 권하는 첫번째 글('What's Left Internationally? Reflections on the 2nd World Social Forum in Porto Alegre')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참고문헌에 주어진 링크는 깨진 것이므로 관심이 있으신 분 은 Yahoo에 가셔서 GloSoDia라는 그룹에 가입하신 후에 자료실에서 POA Reflec - What's Left.doc라는 파일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그룹은 별로 크진 않지만 아마도 워터만 자신이 만들었고 지금도 활동하 는 그룹인 것 같습니다. i) Acknowledgements are due to Susana Checa and Jorge Carpio, who hosted me in Buenos Aires whilst I drafted the first version of this paper, and who provided me with information and documentation about a country devastated by neo-liberal globalisation, and the site of innovatory movements against such. ii) The current paper may assume a certain familiarity with the Forums that the reader does not possess. The puzzled-but-motivated can make reference to my reflections on the previous World Social Forum (Waterman 2002c). iii) This paper is updated and extended from the first version, which has been widely circulated on the internet. Particular appreciation, with respect to this rewrite, to my longtime compañera, Gina Vargas, who made justified objections to certain parts of the original paper, commented on others, and thus obliged me rethink it quite extensively. She cannot, of course, be held responsible for the outcome. For her own evaluation see Vargas (2003). Appreciation also to Teivo Tevainen for a read of the draft that was both fast and thorough.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이묘
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의 산하 연구소인 International Institute for Labour Studies에서 "Organized Labour in the 21st Century"라는 책의 PDF화일을 3월 31일자로 웹에 올렸네요. 한국의 노조 에 관해서는 송호근 교수가 글을 썼군요. 아래 주소로 가시면 그 외에도 많은 자료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PDF화일은 여기다 올려두겠습니다. www.ilo.org/public/english/bureau/inst/
* 전략안보프로젝트(Strategic Security Project)의 director 마이클 레비 라는 사람이 <New Republic>이란 잡지에 쓴 글입니다. (잡지 제목을 보아 하니, 미국 공화당 계열의 잡지가 아닌가 추측됩니다만...) *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는 계획에서 가장 큰 문제는 - 오히려 이 미 알려진 영변 지역에 대한 정밀 공격은 방사능 피해가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 북한 핵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교적인 방식으로 북한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 입니다. * 물론 이런 방식의 주장을 옹호해서 글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고요, 이런 문제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북한 핵시설 폭격 문제가 기술적인 방식까지 공공연하게 토론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여 올립니다.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많은 분석가들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은 치명적인 방사능 낙진 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94년 당시 북한의 핵 프로그램 은 단지 영변 지역의 하나의 재처리시설과 세 개의 원자로로 제한되어 있 어서, 효과적인 정밀 타격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이 비 밀리에 개발하고 있는 농축우라늄 문제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 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밀 타격이 불가능하다. - 정밀 타격의 첫 번째 목표는 재처리시설이다. 기술적인 문제는 방사능 낙진이 흩뿌려지는 것인데, 최근 분석에 따르면 방사능 낙진은 북한의 작 은 일부 지역에 한정되거나, 대부분은 영변 지역 내부에 봉쇄될 것이라고 한다. 봉쇄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재처리시설은 1992년까지 절반 정도 완 성되었고, 따라서 미국 정보 당국은 완성된 재처리시설이 어떤 모습인지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보에 따르면 주의 깊은 정밀 타격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의 고위 과학자는 "큰 화재의 발 생과 무거운 콘크리트 벽의 붕괴를 막아서 방사능 물질을 파편 속에 가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런 방법은 북한이 책물질을 재활용하는 것 을 방해하는 보너스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두 번째 목표는 원자로다. 대부분의 사람은 체르노빌을 기억하기 때문 에 파국적인 결과 없이 원자로를 타격을 가하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북한의 원자로는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 데 이는 물론 유독성 물질이지만 핵물질은 거의 아니다. 원자로가 작동하 면서 이 우라늄이 핵분열을 통해 방사능 물질로 전환된다. 북한의 원자로 는 재가동되기 전에 우라늄을 채우는데 거의 한 달의 시간이 걸리므로, 위험은 크게 감소된다. 클린턴 정부의 고위 과학자는 "새로운 연료로 매 우 오랫동안 가동되기 전에 공격을 감행하면 방사능 물질이 흩뿌려지는 일 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그런데 진짜 어려움은 2002년 10월 떠오른 농축우라늄 문제다. 먼저 미 국은 북한이 언제쯤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지 모른 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전혀 모른다. 이러한 방식 의 핵물질 생산은 전기 소모가 매우 적으며, 또한 그 시설이 차지하는 공 간도 매우 작다. - 또한 영변 지역 외에 재처리 시설이 존재하느냐의 문제도 심각한 의문이 다. 레온 시갈에 따르면, 이 문제는 1994년에도 심각한 논쟁을 낳았던 문 제다. 재처리시설도 전기 소모가 적고 차지하는 공간이 작기 때문에 찾아 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북한의 터널을 뚫는 기술을 볼 때, 지하에 설치했 을 수도 있기 때문에 찾아내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론적으로 플루 토늄 재처리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인 크립톤-85(krypton085)로서 감지가 가능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합법적인 재처리 과정에서도 그 가스 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1994년 위기 당시에 클 린턴 정부는 북한 내부에 최소한 12개 이상의 감지기를 설치하려고 시도했 지만, 미국의 협상가들은 그것이 너무 공격적이라고 여겨져서 폐기되었다. - 따라서 군사적 방식의 문제 해결은 큰 어려움을 내재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아랍 사회운동의 참가자들의 성명 > 2003.1.28 * 세계사회포럼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아랍 사회운동의 현황을 조 사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섯 가지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1) 제1회 아랍사회포럼을 개최할 것이다. 2) 이라크 인민에 대한 전쟁을 멈추기 위해 지역적 국제적 연합을 강화할 것이다. 3)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증하는 억압을 우려한다. 4) 아랍국가에서 인권, 민주주의, 발전의 악화에 대해 우려한다(특히 젠 더 평등, 약소자의 권리). 5) 세계화의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측면에 대항하는 세계사회운동을 적극 지원할 것이다. * * * 13/03/2003 Statement of the Arab Social Movements participating in the World Social Forum Porto Alegre, 23-28 january 2003 The World Social Forum taking place in Porto Alegre-Brazil gathered representatives of social movements from all over the world and from the different youth, union, women, and peasant sectors. The Forum constituted an important occasion for Arab civil society to meet and discuss different issues relating to the common future of civil movements in Arab countries. The Forum gave the chance for Arab representatives to meet with international delegations and to discuss with them different regional and international issues, mainly the question of war against the Iraqi people and the unfolding of the Arab-Israeli conflict. The Forum equally constituted an important occasion to reinforce networking, coordination, and consultation between different social movements and international organisations. After thorough dialogue and interaction with the participating groups, we, the representatives of Arab civil movements would like to emphasise the following points: First: We are utterly pleased with the important impact of the Moroccan Social Forum in further strengthening social movements in Morocco and in helping them to participate in the common struggle beside regional and world social movements. We were also glad that the Palestinian Social Forum, which constitutes an important instant in the history of the Arab and Palestinian struggle, was able to reinforce and reconfirm Arab and international support for the Palestinian people in its ongoing struggle against occupation and Israeli repressive actions. In that context, we also support the initiation of Social Forums in other Arab countries due to the importance of these forums in conceptualising and formulating important strategies on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levels. The participants discussed the importance of establishing and organising an Arab Social Forum in the shortest delay, which is considered an important step towards the reinforcement of common Arab struggle. This goes in parallel with empowering and strengthening ties with the world social movements that resist exploitation, injustice, hegemony, and colonialism. The participants agreed on the importance of expanding the consultation about this important idea that will prepare the launching of the first Arab Social Forum. Second: We call for the formation of the widest regional and international coalition to stop the war against the Iraqi people. This potential war poses catastrophic results entailing destruction and serious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 implications affecting the future of security, democracy, and social development in the Arab countries. We are also concerned that the Israeli government will take advantage of these circumstances to widen its war against the Palestinian people and to take repressive measures like mass deportation and transfer of the Palestinian populations. We would like to take this opportunity to call on all friends, allies, international and regional networks to secure direct international protection of the Palestinian people and to send different delegations to the occupied territories immediately. Third: We are greatly concerned about the danger of the growing Israeli aggression against the Palestinian people and Israeli policies of siege, displacement, endangerment, and house demolition in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We would also like to confirm our support of the Palestinian people and of its brave Intifada and its constant struggle to establish its independent state on its national soil and to secure the return of displaced Palestinians according to international laws and conventions. Fourth: We would like to express our worries about the deterioration of human rights, democracy, and development in the Arab countries. The UNDP Human Development Report refer to serious decrease of the levels of respect of public liberties in the Arab countries, especially concerning gender equality and the respect of minority rights. Therefore, we would like to reaffirm our commitment to the continuation of our struggle to secure justice, democracy, equality, freedom and the respect of human rights, and the equitable sustainable human development which we consider important conditions to initiate real and civilised change in the Arab countries. Fifth: We declare our support to all other social movements in their constant struggle to challenge the negative and damaging sides of globalisation, especially globalisation as defended by transnational corporations entailing marginalisation, colonialism, and utter hegemony. We therefore declare our unconditional support of the globalisation of common international human struggles that are based on forgiveness, diversity, democracy, and the right to choose. Another world is indeed possible. Arab social movements participating in the World Social Forum Porto Alegre, 28 January 2003
Frontline Issue 3 ( http://www.redflag.org.uk/main.html) The United States And Its Military Doctrine Of Imperialist Domination At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끌로드 세르파티 Claude Serfati The following article by Claude Serfati originally appeared in the Marxist journal Carr Rouge, published in Paris. Claude Serfati has just published a book, La mondialisation arm e: le d s quilibre de la terreur (Armed globalisation, The imbalance of terror)(1). In it and in this article, he analyses how the United States uses and intends to use its military might in the defence of capitalist globalisation, of which it is the principal beneficiary. 2003년 4월호 기관지 번역예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