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잠자리는 후진을 하지 않는 다고 한다. 3만 개가 넘는 눈을 가지고 사방을 다 볼 수 있어도 후진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곤충들보다 뛰어난 비행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후진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후진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을 넘겨 또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멈출 줄 모르는 싸움에 잠자리도 함께 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초여름에 시작하여 한여름을 달구었던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이 선선한 가을에는 결실을 맺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아니 바램이 아니라 이 땅 비정규 노동자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열어젖히기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승리의 과정일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 내부를 정규직/비정규직, 여성/ 남성, 이주, 장애/비장애 등으로 나누어 단결을 가로막는 신자유주의 관리 전략을 보란 듯이 깨부수고, 특히 여성에 대한 이중, 삼중의 착취를 강화하는, 운동진영도 자유롭지 않은 가족임금이데올로기와 성별분업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통해 여성 노동권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 투쟁을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승리’를 할 것입니다. 이번 호 <특집>은 석 달째 지속되고 있는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영섭은 하반기 투쟁의 방향을 밝혔고,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의 쟁점토론은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다양한 쟁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이랜드 일반노조 여성국장 윤송단 씨 인터뷰를 통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한편으로, 8월 30일부터 4일 동안 성균관대학교에서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이 진행됐습니다. 다양한 운동들이 모여 논의하는 가운데 공동의 인식과 서로의 차이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칼럼>에서 박준형 회원이 4일 동안의 사회운동포럼이 남긴 것들을 갈무리 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부터 <책속의 책>이 새로운 주제로 시작합니다.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에 관한 작업을 번역하여 싣습니다. 이미 상당 부분 국내에 소개되어 있지만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거나, 다시 한 번 의미를 되새겨볼 만한 글들을 정선하여 싣겠습니다. 이번 호는 특히, 각 운동의 이슈와 쟁점을 알차게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원 및 독자들의 열독이 기대됩니다. 하지만 9월호부터 페미니즘 기획 서평을 시작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준비가 미진한 탓입니다. 더불어 이번 9월호가 매우 늦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8월 투쟁일정과 사회운동포럼으로 인해 일정상 어려움이 있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회원 및 독자여러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투쟁하기 좋은 계절, 다양한 운동의 공간에서 사회운동도 함께 하겠습니다.
나흘간 진행된 사회운동포럼, 참가한 분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충분히 소통하고, 연대의 의지를 다지고, 변혁의 전망을 발견했는가? 혹은 참가는 못했지만 관심 갖고 지켜본 분들에게 물어보자. 사회운동포럼에 대한 숱한 기사와 보고서, 메일, 무척이나 두껍고 무거운 자료집 속에서 답을 찾았는가? 솔직히 나흘간 일정에 참여한 나는 위의 대답에 모두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실망했을까? 아니, 천만에. ‘그렇지만’ 혹은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포럼은 가슴을 울리는 경험이었다. 가야할 길이 멀지만, 드디어 ‘길’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들의 소통, 대중과의 소통 사회운동포럼의 모토는 소통/연대/변혁이었다. 이번 포럼은 우선 사회운동 단체들 간의 소통을 증진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위해서 많은 운동단체들이 자신의 고민을 다른 단체와 다른 운동과 여러 가지 워크샵을 통해서 공유했다. 첫날 ‘사회운동 대토론회 1,2부’는 우선 그러한 소통을 위한 전제를 검토하고 쟁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여러 사업 속에서 연대하면서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던 셈인데, 같은 점만큼이나 차이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를 대화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확인한다는 것은 운동들의 연대를 확장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첫날 대토론회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평등을 향한 민중행동(대구)>의 활동가가 플로어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체들, 혹은 활동가들 간의 소통 이전에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해야 운동들 간의 소통이라는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 사회운동포럼은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충분히 나아갔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물론, 사회운동포럼은 그 형식 상 대중의 참여를 증진하는 데 이르기에는 힘든,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만, 활동가들이 토론하더라도 대중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운동노선의 토론, 공동의 대안이념의 형성을 위해서 상이한 운동들의 소통이라는 문제는 각각의 사회운동이 다른 장소, 혹은 어떤 토론회나 네트워크 이전에 대중 속에서 서로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혹은 부문운동들 간의 소통이라는 쟁점의 진실은 ‘대중’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회운동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관계망이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운동들이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고민을 할 때에야 비로소 대중운동이라는 공간 속에서 함께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쟁점은 또한 지적 차이의 감축, 지식의 민주화라는 쟁점, 시민교육이라는 문제를 동반한다. 또한 ‘미래를 돌아보라! 새로운 사회운동 활동양식(이하 새로운 활동양식)’ 워크샵에서 제기되었던 것처럼 민주주의의 내실화, 집회와 언어 등 각종 운동양식의 혁신도 필수적이다. 당과 노조, 운동들의 변화 이번 사회운동포럼의 ‘효과’라고 한다면, ‘사회운동’의 지향을 여러 운동들이 진지하게 다시 검토하고 공유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사회운동과는 마치 다른 것으로 이해되어온 정당운동과 노조운동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날 ‘사회운동대토론회’에서 제기된 것이기도 하고, ‘사회운동과 정치운동’ 워크샵에서도 제기된 ‘운동정당’, 혹은 ‘사회운동적 당’이라는 문제의식부터 말해 보자. ‘사회운동대토론회’에서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이하 전진)>의 장석준은, 운동정당은 사회운동과 제도정치의 긴장과 갈등 속에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긴장을 인식하고 정세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회운동이 국가에 진출하는 경로로서 당운동을 생각해야한다는 입장이며, 전체 사회운동의 전반적인 변화 속에서 이야기할 과제로 ‘운동정당’을 제기한다. ‘사회운동과 정치운동’ 워크샵에서 <전진>의 김종철은 정당운동이 구조적으로 가지게 되는 국가장치와의 결합, 선거정당화의 문제점 등을 언급하면서,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사회운동과 정당운동이 만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당운동의 변화가 ‘사회운동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 한편, 노동자운동과 관련해서도 ‘사회변혁적 노동운동’ 혹은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이 제안된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워크샵에서는 노동자운동이 사회운동의 일부로서, 해방을 위한 보편적 이념들을 받아들이면서 개조되고, 경제주의를 넘어서야한다는 점이 공유되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김진억은 이를 위해서 노동자가 사회운동을 할 수 있는 조직적 틀도 필요하다는 점을 제안한다. 그것은 물론 지역에 기반한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들은 정당운동, 노동자운동들이 ‘사회운동적 지향’이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검토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마치 사회운동들과는 다른 것들, 국가장치와 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조직으로서 정당이라거나, 경제적 이해를 지키기 위한 투쟁조직으로서 노조를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서 변혁을 위한 사회운동으로서 이 운동들을 다시 바라본다. 이 속에서 이 운동들이 자신의 위치를 다시 규정하고 운동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와 함께 기존의 사회운동단체들의 운동으로 협소하게 이해된 사회운동의 변모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되지는 못했다. 정당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변모와 함께 사회운동단체들의 운동도 변모될 필요가 있고 토론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대중과의 관계를 확장하는 것이 문제일 텐데, 사회운동포럼의 후속 프로세스로 제안되기도 한 시민교육과 같은 것이 의미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사회운동총회, 앞으로 더 나가기 사회운동총회는 총회 선언문과 사회운동과제를 토론하고 채택했다. 사회운동포럼 프로세스의 일부로 사전에 토론을 통해서 초안이 제출되었고 ‘심의’했다. 예상대로 다소 추상적인 선언문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없었고 세부적인 전략과제들에 대해서는 몇몇 의견이 나왔다. 다만 시간적 한계 등으로 인해 각 워크샵에 논의된 것들이 선언문이나 공동과제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못한 측면은 있다. 이는 이후의 프로세스를 통해서 더 토론되고 보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총회는 이 외에도 세 개의 행동제안을 채택했다. 10월 17일 빈곤철폐 행동의 날, 1월 22일 세계사회포럼의 글로벌 액션과 3월 8일 여성의 날에 공동행동 등을 결의했다. 단순히 다른 단체의 집회에 함께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운동총회의 결의에 걸맞게 그러한 공동행동의 준비와 실행도 하나의 과정으로서 함께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노동운동도 여기 결합할 수 있어야할 텐데, 이것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외에 사회진보연대 임필수 집행위원장은 이후 사회운동포럼의 성과를 지속할 수 있도록 후속사업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평가토론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성과를 확인하면서 아쉬움이 많았던 사회운동포럼이었던 만큼 문제의식을 계속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제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김주환 부소장은 예를 들어 사회운동의 소통의 공간으로 이랜드 투쟁의 공간을 사고해볼 것을 제안했다. 집회 투쟁의 열린 공간에서, 사회운동포럼과 같이 사회운동의 고민들이 소통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이처럼 사회운동들이 만나는 현장 여러 곳에서 소통과 연대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 연대, 변혁 ; 이제 겨우 쟁점들을 확인한 사회운동들 이번 사회운동포럼의 모토인 소통, 연대, 변혁은 사회운동 상호간에, 사회운동과 대중의 소통을 증진하고 이를 통해 연대를 강화하고 이제는 잊혀지거나 화석화된 것으로 보이는 변혁의 전망을 다시 구성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포럼에서도 확인한 것처럼, 이것은 한 번의 행사로 이루어질 수 없는 장시간의 과제, 끈기있게 인내심을 갖고 하나씩 만들어가야 할 가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에 기반한 연대를 하기에도, 대안세계의 상과 이에 조응하는 운동전략에 대한 변혁적 전망을 논의하기에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번 포럼의 의의는 오히려 최소한 소통과 토론의 전제가 될 수 있는 ‘서로 간의 쟁점’을 확인했다는데 있는 것 같다. 새로운 활동양식을 둘러싼 쟁점, 사회공공성 투쟁의 의미, 사회운동노조주의 혹은 노동자운동의 보편적 해방운동으로의 개조,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상이한 시각 등 합의를 이루거나 그를 위한 토론에 이르지 못하고 쟁점만 확인한 것들이 많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중요한 쟁점들을 도입하기고 사회운동 속에서 공론화하기도 했다. 운동들이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 보여주기 시작한 것들, 즉, 에이즈 인권운동, 비공식노동자 조직화, (당위가 아닌 현실로서) 풀뿌리 지역운동, 사회운동적 정당의 가능성 등, 이번 포럼을 통해서 더 가시화된 이런 운동과 고민들은 앞으로 사회운동 안에서 더 풍부하게 논의가 이루어져야할 것들이다. 사회운동들이 함께 만들어갈 대안세계의 전망, 운동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발전된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그것은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는 프로세스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운동총회에서 채택한 운동과제가 ver 1.0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속에 있는 많은 쟁점들이 이번 포럼에서 깊이 논의되지 못하고 사전에 준비된 한계도 같은 문제일 것이다. 소통의 난점들을 인내하고 넘어서기 위해서 운동 사이에 필요한 윤리 이번 포럼에 참가하면서, 쉽게 이야기하던 운동 간의 소통과 연대의 윤리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운동들 간의 시민윤리(시빌리테)가 필요한 것일 텐데 쟁점을 확인하기에 급급했던 이번 과정에서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던 측면일 수 있다. 이것은 이론/정치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의 운동(주로 노동자운동; 노조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을 포함해서)이 자신을 우월한 위치를 당연히 전제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주로 노동자운동이 다른 사회운동들과 관계맺는 방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 대화에서 필요한 윤리들도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참가자로서 여러 토론과정에서 ‘쟁점을 분명히 하는’ 방식으로 발언했는데, 이것은 어떤 생산적이고 면밀한 토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쟁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운동들이 제기한 입장에 어떤 합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자기 입장을 그저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는 점, 혹은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라는 점에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포럼의 대화과정과 이에 대한 자기반성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일 텐데, 운동들 간의 소통에서 필요한 윤리가 강조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소통의 난점들이라는, 그 크나큰 긴장들을 견디면서 노력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니라 이번에 어떤 소통의 벽을 느꼈다고 해서 대화에서 후퇴한다면, 오히려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실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오히려 쟁점을 확인한다면, 그것을 토론하기위한 노력을 인내심을 갖고 지속할 필요가 있다. 변혁에 이르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이번 사회운동포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많은 운동적 가치들을 언급해야겠다. 프로그램 상으로는 여러 워크샵으로 표현된 운동적 가치, 쟁점들은 대안세계를 만들기 위한 전망이 매우 단순한 어떤 것으로 환원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역사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을 지금 이곳에서 계승하는 대안세계의 전망은 단 하나의 슬로건으로 정리되기는 힘들 것 같다.(그러나 그것이 그리 좌절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운동들과의 대화, 갈등을 조정하는 민주적 과정들과 같은 것(말하자면 운동들의 운동)이 대안세계화운동의 필수적인 일부가 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포럼을 몇 번 열심히 해서 단일한 전망을 합의하고 앞으로는 이걸로 일로매진하자”, 이런 식으로는 앞으로 대안세계를 만드는 운동이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토론과 소통, 실천들의 연대를 통해서 매순간 대안을 새로 구성하면서 또한 그것을 실천해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었다. 20007년 사회운동포럼 속에서 비록 대안이념, 변혁의 길이 뚜렷이 드러내나는 않았더라도, 우리들에게 대안세계를 창출할 수 있는 어떤 운동, 어떤 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준 것 같다.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이 패배한 이후, 다른 대안은 없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공세에 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공동의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을 넓혀가고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인지, 운동‘단체’들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대중들과 공동의 전망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 학살 정권 ‘비정규직 대량해고 중단’, ‘외주화 철회’, ‘직무급제 반대’,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에 나선 이랜드-뉴코아 노동자 투쟁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두 번에 걸친 강제진압으로 화답했다. 7월 20일 홈에버 월드컵점과 뉴코아 강남점 점거파업에 대해, 7월 31일 뉴코아강남점 점거파업에 대해 해머와 도끼, 진압봉으로 무장한 경찰특수기동대와 전투경찰 병력을 앞세우고 군사작전 펼치듯 폭력 침탈을 했다. 각각 7천 명과 5천 명의 병력이 투입되었다. 두 번의 진압작전에서 연행자만 400여 명에 달하고 6명이 구속되었다. 이랜드 투쟁이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외주화 시키는 비정규직법 전반의 문제를 폭로하고, 전 사회적인 지지를 받게 되자 노무현 정권은 또 다른 비정규직 투쟁으로 번질 기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서둘러 무력진압에 나선 것이다.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비정규직을 맘대로 쓰다 버리게 하고, 임금 80만원 받는 여성비정규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지키고자 나선 투쟁을 군화발로 짓밟음으로써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 학살정권’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였다. 사법부 역시 사측의 손배 가압류, 영업방해 금지 가처분, 노조지도부에 대한 구속에 손들어 주면서, 자본의 소유권에 대한 수호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여성비정규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한 번 쓰다 버리는 일회용 취급한 이랜드 자본은 막대한 자금을 들이고 전 직원을 동원해 여론호도에 나섰고, 매장 입점업체 점주들을 동원해 연일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투쟁의 의미 첫째,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투쟁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으로 포장된 비정규직 ‘해고’법안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렸다. “도대체 누가 비정규직법의 보호를 받고 있나요? 이 자리에 누구 하나라도 그런 사람 있다면 나와 보세요.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절규하던 어느 이랜드 조합원의 목소리는 송곳처럼 핵심을 찌르고 있다. 석 달째에 접어든 이번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투쟁은 전체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이 걸려 있는 싸움이다. 애초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하에, 2년 이내에서 계약직과 파견직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하는 비정규직법을 만들고 통과시킬 때부터 비정규직이 대량 해고되는 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2007년 7월 1일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정권과 자본은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하지 않기 위해 해고를 일삼았다. 막대한 비정규직 사용으로 인해 사회적 영향이 큰 금융, 유통, 공공부문 등에서는 소위 ‘중규직’이라 불리는 분리직군(무기계약직)을 만들어 또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 고착화를 추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터져 나오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되었다. 이 투쟁으로 사람들은 이제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본 측이나 노동 측도 이 투쟁이 향후 비정규직 투쟁의 진로를 가늠하는 핵심 투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작년 비정규직법이 통과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한 무기력을 넘어서 이후 투쟁을 다시금 조직하고 기운을 형성하며 비정규직법에 맞설 수 있는 중대한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열린 사회운동포럼의 사회운동총회에서 이랜드 조합원이 “남한 땅에서 이랜드 투쟁이 불씨가 되어 전국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자”고 호소했듯이 이 투쟁을 발판으로 더 많은 비정규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여성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를 보여준다. 공권력의 탈을 쓴 무자비한 ‘자본의 사병’에 의해 끌려나오면서도 이랜드 노동자들은 “우리는 정당하다, 기필코 승리한다”, “몇 번이고 매장을 점거할 것”, “노동자가 아니라 박성수를 잡아가라”며 투쟁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투쟁을 통해 여성비정규노동자들이 ‘반찬값 버는 아줌마’가 아니라 투쟁의 주체로서 단련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식하며, 연대의 소중함을 깨닫고 스스로 단결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비정규직을 위한 싸움이다, 억울하게 구속된 조합원들이 풀려나고 해고된 비정규직 동료들이 복직되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랜드 투쟁은 주변부에서 값어치 없는 노동으로 내몰리고, 항시적으로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며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에서 동시적으로 착취당하는 여성비정규노동자들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이랜드 투쟁을 여성노동자의 투쟁으로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여성노동권에 대한 토론을 현장에서부터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나날이 힘든 투쟁의 과정에서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은 자녀들에게 소홀해지는 스스로에 자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남편이 불만을 터뜨리거나 말리는 것에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밥 한 끼 해주는 것보다 비정규직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 자식들에게 더 중요하고, 옆에서 같이 싸우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줌마, 아내, 엄마에서 여성노동자로서 스스로의 일자리와 권리의 중요성을 더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찰폭력 앞에 더 이상 당할 수 없어서 직접 여성사수대를 조직하여 공권력의 폭력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셋째,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지역연대 운동을 빛나게 만들었다.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6월 하순부터 무기한 공동파업에 돌입한 이후 매일 매장 봉쇄를 통한 매출 ‘0’투쟁, 20일이 넘는 점거파업과 농성, 전국적 매장 타격투쟁, 전 사회적인 불매운동 등으로 이랜드 자본은 실질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매출 손실액을 공개해야 하는데, 그러면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겨 이랜드 자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소 500억대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이랜드 노동자들의 과감한 투쟁과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민주노동당, 사회운동단체, 학생, 노점상, 철거민 등 연대 대오의 헌신적인 지원과 연대가 빚어낸 성과다. 이는 각 지역의 매장을 봉쇄하고 타격해야 하는 투쟁의 속성상 일산에서부터 순천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투쟁주체들을 결집시키고 연대의 폭을 넓히는 지역 연대운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홈에버 월드컵점에서는 작년부터 지원대책위가 결성되어 조합가입 사업을 진행하였고, 투쟁에 돌입하고 나서는 지역 선전전부터 연대투쟁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주체적 활동을 하고 있고, 서울 나머지 지역에서도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대책위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천에서도 지원대책위가 작년부터 매주 선전전을 진행하고 노조와 함께 조직화 사업을 하였고 그 성과를 이어 파업투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과의 아래로부터의 연대는 조합원들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고 연대 대오에게는 연대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인식시키고 주체적인 활동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정규직-비정규직 연대투쟁이다. 이랜드 일반노조는 비정규직이 대다수이지만 뉴코아노조 같은 경우는 조합원들의 대다수가 정규직이며 비정규직이 적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해고와 고용 문제, 외주화 문제 등을 내걸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곧 정규직의 문제라는 주체들의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정규직이 해고되고 그 자리가 외주 용역으로 채워지거나 더 짧은 단기계약직으로 채워지면 다음 차례의 해고와 외주화는 정규직에게 다가오는 것이고, 비정규직 활용을 위해 정규직을 전환배치하는 것과 같은 불안이 다가온다. 더욱이 자본은 전체적인 구조조정과 비용절약을 위해서 해고와 외주화를 손쉽게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를 더욱 갈라놓으려 한다. 이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문제를 공동으로 인식하고 단결하여 싸우는 것인데,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은 이를 실천하고 있어서 더욱 값지다. 비정규직법 폐기 투쟁으로 나아가자 이랜드 투쟁이 들불처럼 번지자 외주화를 계획하던 자본들은 이를 유보하거나 분리직군제 전환 등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부장관조차 “외주화를 주려고 했다가 이번에 이랜드가 당해서 기업들이 손쉽게 외주화하지 못한다”고 시인했다. 자본가들은 비정규직들이 집단적으로 저항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 투쟁은 소위 비정규‘보호’법이 오히려 비정규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비정규직법을 뿌리채 뒤흔들며 이에 대한 대중적 문제제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노동부 조사에서도 300인 이상 대기업의 30%가 계약직 업무를 외주화시킬 계획이고, 파견노동자를 쓰는 기업들의 59%가 2년마다 교체하겠다고 답하는 등 비정규직법은 실제로 ‘비정규노동자 해고·외주화법’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시정 제기 건수도 지금까지 몇 건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법 시행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비정규직법의 조기안착화’만을 부르짖고 있으며, 자본가들은 한 술 더 떠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자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킨 장본인들인 국회 환노위원들도 절반 이상이 법이 문제가 있다고 시인하는 형편에 말이다. 이랜드 투쟁의 승리는 비정규직법 폐기 투쟁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을 더욱 확대하고 역량을 집중시켜 비정규직법 철폐 투쟁의 활로를 열어가야 한다. 특히 노동운동 주체들이 비정규직법 폐기 투쟁을 새롭게 다시 결의해야 한다. 이것은 이랜드 투쟁을 각급 현장으로 확산하여 지원과 연대를 조직하는 것과 더불어 각 현장에서 비정규직법으로 인한 문제들을 발굴하고 주체들을 조직함으로써 또 다른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랜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법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 안고 투쟁에 나섰듯이 다른 곳에서도 그러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9월 총력투쟁으로 승리를 향해 이랜드-뉴코아 투쟁에서 승리하고 비정규직법 폐기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매장봉쇄 투쟁을 확대하고 파업투쟁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각급 산별연맹들과 지역본부, 단위노조, 민주노동당 지역조직과 제반 연대 단위에 이르기까지 역량을 조직하여 지역 차원에서 매장봉쇄와 점거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8월 21일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비록 연대파업이 결의되지는 못했지만, 이랜드-뉴코아 매출이 최대가 되는 추석 시기에 총력 투쟁을 해서 승부를 본다는 계획과 생계비 모금이 결의되었다. 9월 8일~9일 1차 상경투쟁과 서울지역 매장 봉쇄투쟁, 9월 15일~16일 2차 상경투쟁과 서울, 경기, 인천지역 매장 봉쇄투쟁,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전국 61개 매장 동시다발 타격투쟁 등을 반드시 실질적으로 성사시켜 이랜드 자본과 노무현 정권을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랜드 자본은 현재 발악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대하는 노동단체들까지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하고 점주들과 용역들을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등 치졸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 그만큼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최근에는 이랜드-뉴코아 노조와 민주노총에서 추석 이전 총력투쟁 계획을 내놓자, 교섭을 하자면서 교섭시기에는 투쟁을 중단하라면서 추석매출만은 지키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다시 말해, 9월 총력투쟁이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자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투쟁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투쟁과 연대의 공간을 열어나가고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기운을 북돋우는 소중한 과정으로 만들어가자.
: 윤송단 이랜드 일반노조 여성국장 인터뷰 [%=박스1%] [%=사진1%]사회운동 우선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소개해주시겠어요? 우선 저는 41살이고요, 남편이 하나 있고, 딸도 하나 있고, 시부모님과도 함께 살고 있어요. 저는 원래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았어요. 환경 쪽에는 관심이 조금 있어서 환경에 관한 책을 보기도 하고. 저는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생활 속에서 환경에 관한 실천을 해야 된다 싶어서, 세제 대신에 소다로 행주를 소독하거나 걸레를 빨거나 하는 실천을 했죠. 지금은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데, 원래는 환경운동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사회운동 이랜드에 입사하시게 된 계기는요? 시부모님하고 같이 살고 있는데, 아이도 어느 정도 크고, 시어머니께서도 제가 아직 젊고 놀기 아깝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제 개인적으로도 보고 싶은 영화나 책도 있는데 생활비에서 여자가 자기 용돈을 쓴다는 게 쉽지 않기도 했고. 원래 처음부터 제 취미 때문에 일을 한 건 아니고, 가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해서 맞벌이를 나갔는데, 벌다보니까 나한테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여자들도 자신만의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일이 자기 취미와 맞지 않고 단지 직업으로 하는 거라도, 일을 해야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어요. 평생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만 살수는 없잖아요. 여성이 결혼해서 가사나 육아에 묶여버리면, 아주 부지런한 사람 아니고서야 자기가 스스로 원하는 게 뭔지, 자신의 중심이나 가치관조차 흐려져요. 아무리 대학을 나왔어도 집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기껏 할 수 있는 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는 건데, 물론 그런 것을 통해서도 세상을 볼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세상은 밖에 나와서 봐야 해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은 현상만을 보여주는 것이지, 내가 피부로 느끼고 가슴으로 느끼는 세상은 다르다는 거죠. 실제로 세상과 부대끼면서, 그 안에서 내 모습도 찾고, 하고 싶은 거 하려면, 일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일이 취미이면서 직업이면 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까. 어쨌든 여성도 일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직장 생활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일을 하다 보니 남편이나 딸 등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이 있는 거예요. 처음 직장 생활 시작했을 때는 그게 아무리 적은 시간이라도 나만의 시간이 있는 게 행복했어요. 금액에 상관없이. 그런데 점차 직장 생활에 빠져들면서 일이나 성취, 보람, 이런 게 느껴졌죠. 내가 열심히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고, 완성시키고 했을 때 만족감이 생기고, 내가 흘린 땀에 대한 보람도 느끼고,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또 그걸 통해서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도 깊어지고, 이런 것들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래서 그 때 한 2년 동안은 일에 취해서 너무 행복하게 살았죠. 사회운동 노동조합 활동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셨나요? 이랜드 전에 까르푸였을 때 계약직으로 입사를 했는데, 9개월만에 정규직이 됐어요. 워낙 욕심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까르푸가 프랑스 기업이었는데, 프랑스 기업은 그 때만 해도 외주용역을 마구 확산하지는 않았거든요. 원칙적으로 생산직이든 소분작업이든 계산하는 일까지 직접고용을 하면서 2~3년 후에 소수는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어요. 제가 2000년에 입사했는데, 2002년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인 점장들이나 경영진들이 인사과에 포진하면서부터는 비정규직이 확산돼서, 원래 정규직이 60% 정도 되고, 비정규직이 30%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3년 안팎으로 이 숫자가 뒤바뀐 거예요. 정규직이 40% 되고, 비정규직이 60% 정도로 늘어났어요.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을 평상시에는 못 느꼈다가, 3~4년 후의 집계를 보니까 이게 바뀌었더라구요. 원래 노동조합의 가입조건이나 규약에 계약직이 포함되어 있어서 정규직, 비정규직이 노조에 같이 있었죠. 어쨌든 까르푸에서는 노조에 가입하면 그 자체가 회사에 압박이 돼서,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을 회사에서 함부로 하지 않으려는 태도 정도는 보였고, 그래서 그나마 눈치를 안 보고 다닐 수 있었어요. 이랜드로 바뀌면서는 이 판도도 바뀌었죠. 제가 노조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주5일제가 실시되면서 오히려 연장근로를 강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연장근로를 너무 무리하게, 주말 11시간 근무를 강요해서 노조에 가입했어요. 처음에는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죠. 사회운동 노동조합 가입하시면서 개인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요? 처음에는 그냥 일하는 게 너무 행복했는데 노동조합 가입하면서는 그 차원을 넘어, 사회적 모순을 더 분명하게 알게되었어요. 여성으로서 이 사회, 세상에 뛰어들어서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느꼈죠.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제도나 틀이 선진화 됐다거나 자유, 민주화 같은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아직까지도 이 사회가 여성이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사회는 아닌 것 같아요.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누릴 수 있는 제도는 아직 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지금 정치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의 주역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반쪽짜리잖아요. 교육이나 제도에 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그런 부분에서도 민주화를 이루었어야 제대로 된 토대가 되는 것인데, 호헌철폐하고 정권을 바꾸는 것까지만 성공했지, 그 이후에 한 일은 별로 없는 거예요. 사실 서민들의 입장에서 법은 여전히 멀리 있고, 경찰은 우리편이 아니고. 개인이 사회를 상대로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데, 아주 작은 자유, 취미 생활을 누리는 정도의 권리지, 진정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권리를 누리는 것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어차피 제도와 싸우는 것은 조직이 있어야 되고, 조직으로 모여 싸울 때만이 그 틀에 금이라도 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아무리 혼자 던져도 안 되는데 여러 명이 함께 하면 금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가 싸우는 상대가 사회의 제도나 견고한 틀이라고 한다면 조직이 있어야하고, 그것이 모여서 힘이 되어 시정할 것은 시정하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완전히 원하는 만큼 다 갖는 것은 아니라도, 건강한 사회라면 승자독식은 없어야 한다는 거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리고 그게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의 잘못이라도 힘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의를 제기하면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사례가 전혀 없잖아요.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경찰이나 물리력을 동원해서 정리하려는 사회가 사실 선진화됐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이 투쟁을 하면서 제가 깨달은 가장 큰 것이 있다면, 이 사회가 OECD 국가다, 성장을 얼마 했다, 이런 얘기하는데, 겉모습만 번지르르 한 것이지, 내용면에서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쟁의에 저렇게 경찰이 막고 폭력을 유도하는 것, 권력의 힘으로 개인과 집단의 문제 제기를 강제로 진압하려한다는 것 자체가 군사독재랑 똑같은 거예요. 사회운동 특히 여성국장을 하시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으셨어요? 여성국장 한 지는 6개월 됐고, 그 전에는 그냥 지부 사무장이었어요. 원래 간부를 안 하려고 했는데, 하실 분들이 없고, 추천을 받아서 했죠. 여성국장은 위원장이 임명하는 건데, 사실 위원장한테 많이 들이대고 싸웠던 사람이에요. 위원장이 남자라 성에 대한 문제 가지고 많이 싸웠어요. 그랬더니 위원장이 ‘한 번 당해봐라, 네가 그렇게 여성 문제 얘기했으니까 한 번 해봐라.’ 그래서 맡긴 것 같아요. 제가 여성문제로 싸울 때 있었던 일화 하나를 말하자면, 위원장이 육사 출신인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자신을 변호를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남자들이 사회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다, 여성에 대해 무지한 건 나도 인정한다, 여성에 대해서 제대로 판단 못하는 부분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몰아붙이는 윤송단 국장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했더니, ‘배울 기회도 없었고, 접할 기회도 없어서 몰라서 그러는데, 그걸 모른다고 야단을 치면 되냐, 비난하면 되냐?’고 변호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모른다고 비난한 것이 아니다, 모르면 최소한 알려고 자기가 노력을 하는 게 마땅한 것이지, 모르는 걸 모른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얘길 하느냐, 모르는 게 물론 죄는 될 수 없지만, 모르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권리를 주장하려면, 배우려는 노력을 하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맞지 않냐, 노력을 안 한 부분을 두고 얘기를 한 것이지 그 자체를 두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랬죠. 이러면서 많이 싸웠어요. 그랬더니 여성국장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노조가 올해 통합되고 임명받자마자 교섭 들어가고, 교섭위원이 돼서 교섭 준비하고, 5월부터 바로 본교섭 들어가고, 사실 제가 5월부터 지금까지 하루 온 종일을 쉰 날이 딱 하루에요. 교섭을 하고 바로 일이 터졌기 때문에. 제가 여성국장을 맡았지만 실제로 여성에 관한 일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개인적 욕심은 수유실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거고, 매장 내에 작게라도 탁아 시설 마련하는 거예요. 아이 있는 엄마들이 아이와 같이 출근해서 거기에 맡기고, 일하다가 점심 같이 먹고, 퇴근할 때 같이 데리고 가는. 쉽게 들어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목표로, 이룰 수 있도록 제기하고 싶어요. 수유실과 여성 휴게실, 제대로 된 수면실을 만들고 싶죠. 어떤 사람들은 회사에 와서 일이나 하지 잠을 자냐고 하는데, 여성들은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하는데, 개인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가 일률적으로 똑같지 않고, 그럴 때 배를 대고 눕거나 하면 좀 나아질 수도 있으니까. 여성으로서 남성과 다르게 겪는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원래는 휴게실이 있었는데, 그걸 반으로 줄여서 기도실로 만들었어요. 휴게실이 좁아지니까 기도실에 들어가 쉴까봐 기도실을 잠가요. 박성수가 오면 열거나, 일상적으로 열어놓는 데도 있는데, 그런 데는 기도실에 들어가서 쉬는 사람 보면 나오라고 하거나, 징계한다고 하면서 감시를 하죠. 사회운동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했을 때 정규직 고용승계가 된 건가요? 고용승계 됐어요. 지금 정규직, 비정규직 같이 싸우고 있는데, 정규직이 같이 들고 일어난 이유는 비정규직 문제가 비정규직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느낀 거죠. 실제로 이랜드가 신규점포를 내는데, 관리자 빼고 나머지를 다 용역업체를 통해 채용을 하는걸 보며, 이게 앞으로 우리의 문제가 될 거라는 점을 알게 되는 거죠. 사회운동 전에도 이렇게 파업을 하신 적이 있으세요? 사실 전면파업, 점거는 처음이에요. 작년에 하루 이틀씩 하는 파업을 몇 번 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파업을 해본 적은 없어요. 이런 투쟁 자체가 처음이거든요. 처음 하는 걸 이렇게 두 달씩 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파업을 하면서 학습도 겸하고, 그렇게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이번 파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셨을 것 같은데요. 40년 넘게 살았던 인생 중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진한 맛을 이번 파업투쟁과 점거를 통해 처음 느끼는 것 같아요. 이 투쟁하면서 순간 순간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흐르는데, 서러움 때문은 아니고, 정말 내가 사람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감동으로 흘리는 눈물이에요. 이런 경험이 생전 처음이고, 쉽게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가끔 중독성이라는 생각도 하는데, 예를 들어서 아무리 뜨거운 뙤약볕에 앉아 있어도 못 견디게 뜨겁지는 않아요. 보통 실내에서 근무하시던 분들이나 아무런 의식의 무장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런 뙤약볕에 6시간 앉아 있으라면 못 앉아 있죠.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그 장소에 앉아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데,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상암점에서 22일 점거투쟁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절실하게 느꼈는데, 사실 저는 노숙이라는 걸 그 때 처음 해봤고, 여행도 많이 다녀보지 않아서 바깥 잠자리가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리고 점거 농성도 준비된 게 아니었어요. 위원장이 비정규법안 시행령이 시행되면 정말 역사적인 해악인데, 그런 것이 시행되는 날을 눈 뜨고 맞을 수 없다 해서 그냥 무작정 들어간 거예요. 처음에는 1박 2일만 하자는 거였죠. 그런데 현장 조합원들이 ‘비정규 보호법 하에서는 우리가 무사할 수 없다. 제대로 회사를 다닐 수도 없고 노예처럼 살아야하고 내 권리도 찾지 못한다.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결의했어요. 사실 투쟁의 단계랄까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1인 시위나 선전전이나 집회처럼 중간에 거치는 단계가 있는데, 그런 것 전혀 없이 바로 점거 농성을 들어간 거고, 그렇다보니까 준비된 것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까 박스를 깔고 잘 수밖에 없는데, 조합원들이 자기가 가져온 점퍼나 수건 같은 걸 다른 사람 추울까봐 덮어주는 거예요. 또 한 쪽에서는 냉장고 돌아가는 거 시끄러울까봐, 끄면 물건이 상하니까 끄지는 못하고, 온도 낮출 수 없나 고민하고. 사실 그 자리에서 처음 본 얼굴들도 많거든요. 각 점에서 왔기 때문에, 경기도 사람도 있고 서울 사람도 있고, 뭐 서울도 중랑구, 마포구 다 틀리잖아요. 얼굴을 아는 사람은 위원장하고 간부들 소수밖에 없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람이 동지라는 이유만으로 챙기는 모습들이 참 감동이었어요. 그리고 솔선수범하는 모습들. 한번은 제가 밤 11시 엔가 화장실엘 갔는데, 박미경 문화국장이 혼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뭐 하세요?” 물었더니, “여자들이 몇 백 명이나 쓰는데, 화장실은 작고, 휴지라도 비워놔야지. 치우시는 분들도 노동자인데, 우리가 투쟁하면서 그러면 안 되지 않겠냐.” 하시면서 화장실의 모든 휴지통을 비우고, 집게로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고, 물을 뿌려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는 거잖아요. 점거파업의 일과가 그렇게 쉬운 건 아닌데, 사실 그건 누가 돈 주고 하라 해도 하기 힘든 일이거든요. 자기 월급 깎여가면서도 하는 거죠. 사실 남편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직장이 있어서 생활이 당장 크게 어려워지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생계형 가장들도 있거든요. 자식 있고, 부모 모시고 하면 그 달 생계비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운데도, 그래도 집에서 자기가 담근 김치 바리바리 싸와서 나눠 먹고, 청소하고. 월드컵 분회 사람들은 점거농성하면서도 거기가 자기 계산대라며 “여기 묶은 때 끼면 안 되잖아.” 그러면서 거길 닦아요. 전통적으로 파업, 점거하면 부수고 때리는 게 많이 떠오르는데, 이건 쓸고 닦고 하는 투쟁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보통 점거파업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수위인데, 조합원들은 그냥 내가 일하던 자리니까 내가 여기 앉아 있으면 이 자리 지키겠구나 하면서 쓸고 닦는 거예요. 그런 거 보면서 진짜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김진숙 지도위원도 슬리퍼를 끌고 김치 국물 흘리며 매장 바닥에 앉아있는 우리가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걸 정말 많이 느꼈어요. 자본주의, 선진화, 이런 것 때문에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지배하는 세상이 됐는데, 여기서 제가 본 것은 사람의 가치고, 사람 본연의 마음이었어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애정을 베풀 수 있고, 애정을 표현하고 실천할 수 있는, 그것도 자기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처음 본 조합원인데, 그 사람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보이지 않게 뒤에서 청소하는 사람, 보이지 않게 박스 치우는 사람, 밥 먹고 나면 누가 먹었는지 신경 안 쓰고 설거지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 거죠. 사회운동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많이 변하셨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사회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그냥 골치 아픈 거 신경 쓰기 싫은 거죠. 그냥 책이나 영화 같은 거 좀 보고, 관심 있는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 좀 보고. 저는 환경오염 중에서도 수질 오염처럼 가정에서 신경 쓸 수 있는 부분들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그리고 또 관심 있었던 부분은 자연을 파괴하는 거, 갯벌을 밀어버린다든지, 산을 뚫어서 터널을 만든다든지 하는 부분들이요. 사실 요즘 생활 많이 편하잖아요. 내가 보기엔 많이 편해진 것 같은데, 그렇게 몸이 편해지고, 그러다보니까 여유 있는 시간이 생기잖아요. 그런 시간을 가치 있게 쓰기보단 대부분은 향락 문화에 빠지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인간이라면 몸을 쓰고, 땀도 흘리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예 땀도 안 흘리고 인형처럼 기계처럼 항상 쾌적한 환경에 산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편하게만 살다보니까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고통에 무신경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것도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커다란 범죄라고 생각하거든요.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사는 세상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보다는 사람이 사람냄새 진하게 맡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볼 줄 알고, 그 아픔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그런 세상이요. 아무리 좋은 집과 차와 이런 것을 물려준다고 해도, 그 아이가 진정으로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못 느낀다고 하면 사람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나친 발전을 위한 발전이 인간성을 말살시킬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우리 세대만 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세대에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물려주고, 그를 통해 정서와 풍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죠.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랜드 스피릿이라고 해서 ‘돌파’라는 게 있어요. 이랜드가 강의할 때 그래요. 이 기업은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가다가 장애물, 시련이 있으면 그걸 뚫어야 한다, 그것을 돌파해야 한다고 강의를 하는데, 저는 사실 그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프랑스 어디엔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가 있는데, 산과 산 사이를 다리로 연결한 거예요. 산을 뚫지 않고 있는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서 다리를 놓은 거죠.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 기업가들도 자기 나름대로 철학이 있고, 경영원칙이 있고, 논리가 있겠지만, 돌파, 이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기업가로서, 사회 지도층으로서 최소한의 양식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윤추구도 목적이겠지만, 자기가 이윤을 추구하는 대상이 이 사회와 국민이라면 거기에 대해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이 사회에 대한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무조건 뚫어, 무조건 파헤쳐, 이건 아니잖아요. 이런 환경적인 측면에도 박성수는 위배되는 사람이죠. 사회운동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하면서 박성수 회장의 문제도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사실 앞서 말한 환경에 관한 문제도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종교에 관한 문제도 있죠. 신앙을 신과 나의 개인적인 문제로 삼아야지, 그걸 집단화하고, 그 속에서 이윤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건 벌써 신앙이 아니라는 거죠. 신앙을 그런 식으로 기업의 경영 원칙으로 적용하는 것, 그로써 종교를 훼손하는 것에서 박성수의 문제가 있고요. 또 하나는 여성에 대한 인식에도 문제가 많아요. 사실 이랜드가 여성 대졸자들이 들어가기 가장 좋은 기업이라고 하는데, 그건 극소수에 한한 것이고, 4~5,000명이 넘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박성수가 말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이랜드 홈에버 본사에는 수유실이 있어요. 물론 매장에도 있긴 하죠. 그런데 어떤 매장 수유실 팻말 밑에는 ‘거래처 접견실’이라고 붙어있어요. 저희 사이트에 사진도 있는데, 수유하면서 거래처 접견을 같이 하라는 건지. 거래처 사람들에게 수유하는 모습을 자랑하려는 건지 알 수 가 없네요. 형식적으로 만든 수유실과 휴게실은 그냥 이름뿐인 공간인 거예요. 아무리 현장에서 일하고, 80만원 받는 비정규직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너무하죠. 그 안의 열악한 환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그 발상 자체가 기가 막힌 거 아니에요? 그 발상 자체가 무개념이라는 거죠. 물론 회장 자신이 그런 조치를 한 건 아니지만, 회장이 최소한의 원칙과 양식을 갖고 여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밑의 현장 책임자가 그따위 발상을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사진2%] 사회운동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으세요? 우선 남편이 매우 힘들어하죠. 아이는 많이 울고, 왜냐하면 엄마가 싸우기도 하고, 상처도 많고 하니까. 남편은 그냥 앞에 나서지만 말라고 하는데 상황이 그런 상황이 아닌지라,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이번에 방학이어서 다행이었는데, 제 딸은 거의 국토순례를 했어요. 친척들 피서 갈 때마다 딸려 보낸 거죠. 초등학교 3학년인데, 우리 딸이 한 말이 있어요. “무슨 사장이 그 따위야. 그렇게 혼자 다 독차지하고 욕심부릴 거면, 혼자서 거기서 수박도 나르고, 돈도 받고, 청소도 하고, 불도 켜고 혼자 다 하라 그래, 같이 놀아주지 마.” 이러더라구요. 제 가족들은 다른 조합원가족들에 비하면 대놓고 반대하거나 그렇진 않아요. 얼마 전에 가족회의를 했는데. 연세 있는 분들은 잘 이해 안돼서 그런지 지금 투쟁이 남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남을 위해 하는 봉사도 좋지만, 내 가족도 챙겨가면서 해야지, 내 몸 다치고 가족 등한시하면서 그러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조금 절제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시작은 해놓고 중간에 멈출 수는 없다는 입장을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시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이 그렇다면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마련해서 가족들이 소외되지 않게 하라고 하셔서, 그래서 알았다고 했죠. 일단 알았다고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남편은 여성이 이런 투쟁하는 것 자체를 안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같이 살아야 하니까 반대를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는 입장이고, 제가 기질이 강하다고 느껴서 그런지 나서다가 몸 다치는 것만 없었으면 좋겠다, 유치장에 들어가는 것만 안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에요. 가족하고 큰 문제는 없어요. 사소한 갈등은 있는데, 그 정도 갈등은 가족 간에 있을 수 있는 거니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조합원이 현장 복귀할 때도 많이 힘들어요. 그리고 실제로 가장 힘들 때는 내 자신의 결의가 떨어질 때. 나도 사람이니까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간부든 누구든 의견이 안 맞을 때 내가 사람한테 너무 공격적으로 대하는 것 때문에 힘들어요. 사실 대화로 풀어가야 하는데,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 있다 보니까, 싸움으로 화해 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 내 자신을 보면서 힘들죠. 사회운동 투쟁이 길어지다 보니 조합원 분들도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 딱 한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에요. 여러 부류가 있어요. 경제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한두 달은 자기가 안 벌어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고, 자기가 못 벌면 약간 빠듯하게 돌려 써야 하는, 저축해 놓은 걸 헐어야 한다든지 그런 사람들도 있고, 또 하나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게 여러 부류가 있다 보니까, 자기가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생계비가 가장 큰 문제일 거고, 경제적으로 약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이런 투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길어지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족들이 자꾸 뭐라고 하면서 흔들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꼭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투쟁을 그만 둘 수도 없고 그런 갈등도 있죠.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도 있어요. 정규직은 어차피 잘려도 나는 나중에 잘리니까 들어가서 일하다가, 적당히 다니다가 말까 생각하기도 하고, 비정규직들은 어차피 비정규직인데 얼마나 다니겠어, 회사가 그렇게 악랄한데 이거 받아주겠나 생각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죠. 생계비부터 동료들 사이의 소통 문제, 가족과의 갈등 등등. 그리고 노동조합, 노동법, 근기법 이런 거 다 떠나서 일상 교육이 많이 안 되어 있던 사람들이다 보니, 노동운동이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지 노동자로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인간의 역사가 왜 투쟁의 연속이었는지에 대해 성찰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막연히 본능적으로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서 투쟁을 시작했고, 그 속에서 두서없이 공부하게 되는 부분들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투쟁을 끌어가려다 보니 어려운 점이 있기도 해요. 사회운동 그래도 조합원 분들 보면 늘 힘이 넘치시는 것 같아요. 사실 이 분들이 투사들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엄마들이에요. 그런데 이건 아니라는 거죠. 이 분들 생각에는 보호법 때문에 사람을 자르는 게 어이없고 기막힌 일이고, 그래서 합법적인 쟁의활동으로 투쟁하는 것인데 그걸 경찰이 짓밟는 게 또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거죠. 이런 사회는 우리 자식들이 살만한 세상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거예요. 자식에 대해서 느끼는 본능적인 감정으로 아는 거죠. 20년 전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을 때도 열일곱, 열여덟 소녀들이 오빠 대학 등록금, 노모의 병원비, 생계비 때문에 자기 학력을 포기하고 공장에 흘러 들어오고 그 속에서 투쟁하는 사진을 보면, 단지 남성들이 인정을 안 해서 그렇지, 한국 사회는 여성의 힘으로 크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남성들의 투쟁은 체계적이고 전투적이지만, 여성들의 투쟁은 전투적인 게 아니고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거예요.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은 어떤 틀이나 계산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봐요. 본능이 해결되어야만 끝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싸움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하지만, 그럴 수 있도록 전혀 교육도 안 되어 있던 1년도 안 된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파업을 하고 점거를 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위기감과 부당함을 느껴서 싸우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싸움을 두고 자본가들이 기획회의를 하고 공권력이나 노동부가 어떤 잣대를 들이대서 계산을 해도 답이 안 나올 거예요, 언제쯤 정리가 되고, 조합원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예측을 못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 그런 예측을 깨나가는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고, 결국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한국이 OECD 가입국가고, 발전했다는 수치가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회 속에서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세상을 향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우리 조합원들, 그것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아니다, 부당하다, 철폐해라,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저 용기들, 순수한 본능들이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권력이나 자본가들의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 없는 민중들의 투쟁들이 모여서 지금의 시대까지 왔잖아요. 우리를 스머프들의 투쟁이라고 하는데, 저희가 처음 매장에서 사복 투쟁할 때 저 파란 티셔츠를 입었어요. 그걸 보고 제가 우리 사이트에 스머프라고 올렸더니 그게 이제 우리의 이름이 됐어요. 스머프들이 되게 부지런하고 항상 웃잖아요. 아줌마들이 두 달을 월급도 못 받으면서도, 옆의 동료와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고 하고 작은 일에도 함께 울고 웃고, 진짜 스머프들을 많이 닮았어요. 피곤하니까 지쳐 보이는 건 있지만 표정이 밝아요. 두 달을 힘든 투쟁을 하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조합원들이 아주 순수하고 담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기득권층이 이런 사람들을 과연 이길 수 있는지 두고 볼 거예요. 사회운동 이 투쟁의 성과를 어떻게 보세요? 성과만 있을 수는 없고, 손실도 있겠죠. 의지가 약했거나 사회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다가갔던 사람들 중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조합원들이 현장에 돌아갔을 때 괴리감이 생겨서 고립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이 투쟁 전까지는 조합원, 비조합원 사이에 구분이나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 파업 중인 조합원들이 돌아갔을 때 강성으로 찍혀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현장에 먼저 복귀한 조합원들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조합원 아닌 사람들이 조합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생길 수 있는 괴리감, 이런 것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조직이 멈추는 거죠. 이런 것이 손실이 될 수 있겠죠. 게다가 나중에 또 투쟁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 때 이 분들이 선뜻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생각지도 못하게 여기까지 왔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저런 투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죠. 그래서 지금은 조합원 교육이나 그런 것들을 배치해서 일상적으로 이 사람들의 활동을 탄탄하게 묶어 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성과는 일단 주부들이 내 가족만 보다가 사회를 볼 수 있었다는 거, 사회 전반에 걸쳐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단적인 예로 이 분들이 기자들을 되게 싫어하게 됐는데, 전후 맥락 다 떼고 사진 한 장 딱 보여줬을 때 왜곡되거나 하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자본의 힘이나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지만 얼마나 우리를 옥죄고 있는가 하는 것들에 눈을 떴다는 것이 성과가 되겠죠. 그리고 노동조합 하면서 스스로는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연대나 동지애와 같은 것들을 알아 왔고, 그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투쟁이 끝난 이후에라도 우리 투쟁의 내용이 더 많이 알려지고, 확산되면 그런 것들이 성과라고 생각해요. 사회운동 마지막으로 이 책을 보는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이나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저는 진보라는 단어가 들어간 단체를 참 좋아하는데, 사실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그저 자기 배경으로만 내세우면서 진보라는 말에 부합하지 않게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봤던 사회진보연대 동지들은 정말 진정성 있고, 실천하는 운동가들이었어요. 사회진보연대 동지들 전부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본 사람들은 그랬어요.(윤송단 동지가 인천 구월점에서 근무하시는데,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활동가들이 인천 지역대책위에 결합하면서 윤송단 동지를 알아왔습니다.) 이런 동지들,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이들이 있어서 이 사회에 거름이 되고, 현장 노동자들도 그걸 바탕으로 살 수 있고, 현장이 건강하게 살아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할을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이런 동지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든든하고 힘이 됩니다. 이 동지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이 투쟁, 힘들지만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박스1%] [%=사진1%] 정영섭 지난 두 달 동안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전사회적인 주목을 받으며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점거투쟁과 활발한 지역연대 투쟁을 통해서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지지를 받는 투쟁으로 발전했습니다. 향후 이 투쟁의 발전과 승리, 나아가 비정규 악법 폐기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할 때, 현재 이 투쟁을 되짚어 보고, 이후 과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의 자리는 그런 논의를 해보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우선 투쟁의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특징과 투쟁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보죠. 7월 1일 비정규법안 시행령이 실시되면서 많은 비정규직 투쟁이 나타날 것이라 예측되었고,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투쟁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오상훈 동지가 이런 지점들을 포함하여 노조운동 내에서의 인식과 판단은 어떠한지를 우선 말씀해 주시지요. '여성',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투쟁으로서 이랜드-뉴코아 투쟁 오상훈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7월 비정규직법안 시행 이후 벌어진 비정규직 투쟁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것과 민간서비스 부문, 그 중에서도 특히 유통 부문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투쟁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투쟁이 이렇게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단지 이런 특징 때문만은 아닌 듯해요. 지난 7~8년 간 계속되어온 비정규직 투쟁이 작년 11월 30일 비정규직법안 통과 이후에는 상당히 무기력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법안 통과라는 결과로 보면 비정규직 투쟁은 실패한 것이었지만, 그 때 열심히 투쟁했던 성과들이 이번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단지 비정규직 투쟁뿐만 아니라 1996~97년 총파업 이후, 가까이는 2002년 발전노조 파업 이후 매년 패배하며 침체되었던 민주노조 운동이 이 투쟁이라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몸담고 있는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유통과 공공 부문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전략적으로 사고하며 사업을 펼쳐왔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조직화는 공공노조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함께 했고, 유통부문은 기존의 노조, 즉 이랜드, 까르푸, 뉴코아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가 작년에 구성되었는데 여기에 집중적으로 결합, 지원하는 것을 통해서 했었죠. 이전에는 투쟁사업장 결합방식이 당면 투쟁의 승리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 사업은 각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1~2년 이상 결합했던 거죠. 이러한 과정이 나름의 성과를 가져온 것이라 생각해요. [%=사진2%]김혜진 말씀하신 것처럼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상당히 고무적인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적인 연대와 운동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 투쟁을 통해서, 그리고 비정규악법을 계기로 터져 나온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지금 이런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아직 끝을 보지 않은 이 투쟁의 이런 의의들을 어떻게 살려내고 확대시킬 수 있을까하는 것일 겁니다. 특히 여성 노동권의 부분에 있어서도 현실에 존재하는 이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어떻게 여성권과 노동권의 결합이라는 실천적인 운동 형태로 발굴해낼 수 있을지가 정말 고민이 되는데,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들도 많이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안보영 저는 7월 8일부터 투쟁에 결합했어요. 결합했던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서 두 분이 말씀하셨던 투쟁의 의미들을 공유할 수 있었는데, 저에게는 투쟁 결합의 계기가 되는 부분에서 약간 다른 지점도 있었어요. 이랜드 조합원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느낀 부분들인데, 이 분들은 말 그대로 열악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죠.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대부분 기혼이라 육아와 가사도 맡고 있는 노동자들이에요. 이들이 점거라고 하는 높은 수준의 전술을 취한 데에는 단지 지도부의 말만을 열심히 따랐다기보다는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투쟁에 결합했을 때마다 느꼈던 주체의 역동성이라는 부분이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이 투쟁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영섭 이야기 한 것처럼 이 투쟁은 지역 차원의 조직화, 지역 차원의 연대가 매우 두드러졌죠. 유통사업장의 성격상 전국의 여러 지역에 매장이 흩어져 있고, 그래서 매장 점거 투쟁이든, 불매운동이든, 각 지역의 점포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죠. 그렇다보니 당, 노조, 학생, 사회단체 등 각 지역의 여러 단위들이 지역적으로 결집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죠. 이런 지역적 차원의 조직화, 연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지역 차원의 연대운동으로서 이랜드-뉴코아 투쟁 박준도 2006년 까르프·뉴코아·이랜드 3사 노조가 공동투쟁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투쟁의 성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가 까르푸 노조와 이랜드 노조의 통합, 즉 비정규직 모두를 포괄하는 이랜드 일반노조의 탄생이고, 다른 하나가 이 투쟁에 결합했던 단위들을 중심으로 지역 연대와 노동조합 조직화를 어떻게 동시적으로 전개할 것인가라는 문제였죠. 이 중 지역연대의 문제의식만 돌아보죠. 대표적인 곳이 서울 북부, 서울 상암, 그리고 인천입니다. 우선 서울 북부는 서울본부가 전략조직화라는 차원에서 주도한 곳이기도 하고, 지역사회단체들이 이런 조직화 사업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서 선전사업들을 진행한 곳입니다. 지역사회단체들과 함께하는 전략조직화 사업이 고민의 축이었던 셈이죠.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은 민주노동당 마포, 서대문, 은평, 용산 등 지역노동위원회가 주도한 점이 큽니다. 이곳은 전략조직화 사업이라는 맥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이 과정에서 활동 변화를 모색하려 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이 선거정당을 넘어 좀 더 운동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인천은 사회단체들이 주도했습니다. 지역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단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직화사업이다 보니 유통노동자들을 조직한다는 것의 의미, 지역운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둘러싼 공동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토론이 오랜 기간 진행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의 지역운동은 10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조합에 가입하는, 대대적인 조직화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의 역할은 결정적이었습니다. 국가시설이라는 이유로 노조활동에 제약을 두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하던데, 지역위원회의 지속적인 실천이 이를 깨뜨린 것입니다. 인천지역은 조직화라는 차원에서 성과는 뚜렷하지 않지만, 한데 모이기 힘들었단 다양한 정당·지역사회단체들 사이에 반신자유주의 운동으로서,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운동으로서 지역운동이라는 공통의 합의점을 찾고, 정파 간 벽을 뛰어넘는 신뢰와 호흡을 맞추었다는 점이 성과라 하겠습니다. 이 덕에 뉴코아·이랜드 공동투쟁이 지역차원에서도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양쪽 모두 가장 큰 성과는 두 지역 모두 비정규법안의 시행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논의 긴장이 먼저 형성되었다는 점이겠죠. 오상훈 민주노총의 지구협의회 차원에서 보자면, 이미 투쟁 전부터 조직화 과정에 개입했던 경험들이 있었고 노조와 연대의 틀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초기부터 활발하게 투쟁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북부지구협의회의 경우 북부 유통 조직화에 결합했었기 때문에 북부 이랜드 사업장을 중심으로 투쟁에 결합했고, 상암 월드컵지역은 이미 지역대책위가 있었죠. 남부는 애초 유통에 결합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투쟁이 일어나자 시흥점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어요. 다만 아쉬운 것은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민주노총 차원에서 이 투쟁을 받아 안았지만, 실제로 이 투쟁이 단위 노조나 지역 차원에서 일상적이고 안정적으로 진행되지는 못하였다는 거죠.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연대하고 그 성과가 향후 지역 연대의 흐름으로 남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은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남아야겠죠. 이런 연대 투쟁의 경험이 노조, 당, 단체를 망라한 지역 연대 운동의 흐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상암 월드컵지역의 경우 현재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지역 연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서부 지구협의회와 지역의 다른 노조가 적극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지요. 북부의 경우 지금까지 많은 것을 해왔는데, 이제는 어떻게 아래로부터의 흐름을 만들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안보영 저는 지역에 거점이 있다기보다는 지금 마포구에 살고 있기도 해서 사회진보연대 회원으로서 참가했어요. 요즘 이 투쟁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전 영상들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 영상에서 민주노동당 용산, 서대문, 마포, 은평 지역위원회 활동가들이 아무래도 지역에 뿌리박고 활동하는 사람들인 만큼 상암점에 긴밀하게 결합하고 투쟁을 지역의 의제로 풀어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학생 시절 여름 선봉대, 겨울 투쟁단 같은 식은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있었고, 지역 정당·사회단체의 결합은 훨씬 일상적이고 더 긴밀했었던 것입니다. 이 투쟁은 그런 저의 고민이 실천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저 말고도 사회진보연대 회원들 중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결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물론 사회진보연대가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처럼 지역에 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투쟁의 중요성이나 내용이 많이 알려져서 회원들이 결합할 요인들이 많았는데도 회원들의 결합은 그리 많지 않더라는 거죠. 상암점 근처에 살고 있는 회원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이번 투쟁에서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이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활동을 조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혜진 백번 동감하는 말입니다. 이랜드-뉴코아는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의도하지 않아도 위치 자체로 투쟁이 선전이 되고, 이슈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그 투쟁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저에게 연락해서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지역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내기에 좋은 기회인 것 같고, 실제로 이 투쟁의 의의에서 이런 부분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데 사회진보연대는 이런 지역적 운동을 만들어내는데 다소 취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울 상암이나 강남만 해도 상당수의 회원들이 있는데 그 회원들은 그 투쟁하는 공간을 지나치면서 분명히 관심이 많이 있었을 것으로 아는데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자리는 무엇인지 애매했을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한 회원은 노동자들이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열심히 챙겨보는 것밖에 일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회원 조직화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역동적인 투쟁 계획을 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도 고민이 많이 되네요. [%=사진3%]박준도 인천에서 처음 투쟁을 벌일 때는 이랜드 노동조합이 자신을 조직하고 뉴코아 노동조합과 공투를 성사시키고 단체가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파업전야제를 기점으로 단체·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산별노조들과 개별 노조들도 동참하였죠. 자발적으로 연대를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기반을 두어 독자적으로 봉쇄투쟁을 하기도 했죠. 물론 뉴코아·이랜드 노조가 활동의 중심에 서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전국동시다발 투쟁이후 사태가 조금 이상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국동시다발 투쟁은 인천지역에서 다른 지역 단체들, 개인들의 참가를 확산시켰지만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조직적으로 참여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역으로 지침에 의거한 활동풍토를 되살려 놓았던 거죠. 지역단체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적극적인 활동을 '단체들이 설친다'는 표현을 써가며 인천본부는 불편해했고, 개별적으로 참가했던 노동조합들 역시 지역본부 체계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역본부가 투쟁 기조를 낮추거나 왜곡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면 그나마 문제가 덜 했을 텐데, 지역본부가 뉴코아·이랜드 노동조합의 투쟁기조는 물론 총연맹의 투쟁기조조차도 부담스러워하면서부터는 봉쇄투쟁이 아주 힘들어졌죠. 이를 강제하려고 '총연맹의 지침'이라는 식으로 설득했는데 이는 논의 중심을 기존 노조체계로 되려 더 끌고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 이후 자발적인 투쟁계획 수립은 더더욱 어려웠죠. 투쟁주체들과 일체의 협의도 없이 지역본부가 일방적으로 투쟁전술을 바꿔 버리는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속수무책인 상황이 되고, 그러다 보니 자발적인 활동에 근거한 연대의 실현보다는 지도부 비판, 지도부 프락션과 같은 과거 정파활동 행태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독인 줄 알면서 현실의 투쟁일정상 어쩔 수 없이 먹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거죠. 이 경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연대운동에서건 사회진보연대의 회원활동에서건 말이죠. 지역연대운동이 체질을 바꾸려면 연대운동의 원리를 바꾸어야 하듯이 사회진보연대도 체질을 바꾸려면, 회원활동의 전개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공지와 집회 참가 방식보다는 토론과 교류에 기반을 둔 공통의 합의점 형성, 자기 결의에 기반을 둔 다층적인 실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형태들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거죠. 전국적인 봉쇄 투쟁 전술, 열린 논의 공간, 그리고 연대의 확장 박준도 지역차원의 운동, 그것도 비정규직 운동이 활성화 된 데에는 전국적인 봉쇄투쟁 전술이 매우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평택 투쟁이 대추리, 도두리로의 집결을 강조했다면 이랜드 투쟁은 전국적인 매장봉쇄투쟁을 요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겠지만 분명한 것은 대추리, 도두리로의 집결방식의 투쟁보다는 지역별 매장 타격 투쟁이 훨씬 많은 주체들의 참여를 가능케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당장 전술 주체만 놓고 보더라도 더 많은 주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매출 0 투쟁, 봉쇄 투쟁 전술은 지역사회에 투쟁의 공간을 열어놓았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그것도 거리 한복판에서 열린 투쟁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 것이죠. 지역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이를 능동적으로 기획하려는 주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매우 다양한 의견들과 투쟁의 경험들이 이 공간에서 교차했을 것입니다. 문화적 교류는 말할 것도 없구요. 이를 어떻게 가꿀 것이며 이런 발상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교훈점이 될 것입니다. 한편 저는 이랜드-뉴코아 노동조합이 연대 단체의 결합에 매우 열려있다는 점도 이런 투쟁이 가능하게 하는데 매우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노조가 파업 투쟁을 할 때 노동조합 쟁의대책위원회(이하 쟁대위) 회의에 연대온 모든 단체의 결합과 의견을 요청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랜드 노동조합은 이 점과 관련해서 특히 개방적이었습니다. 점거를 지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시점에서 지도부가 대의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과거 일면식도 없던 연대 단위의 의견을 경청하더라는 거죠. 이런 과정이 이 투쟁에 결합한 모든 연대단체들을 고무시킨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사회단체들로 하여금 책임 있고 힘 있게 결합할 수 있게 한 동력이 된 것이죠. 이는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지금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을 조직하는 데도 상당한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지도부의 판단력, 조합원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인데, 이 점 역시 최근 노동조합 투쟁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죠. 뉴코아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외주화 저지 투쟁을 준비하려 할 때, 잠시 정규직,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위원장이 직접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는 삭발을 함으로써 갈등을 투쟁의 힘으로 모아냈죠. 이랜드 노동조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합원들의 투쟁조직화가 늦어 6월 공동파업결의를 주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 이랜드 노동조합 지도부는 파업할 수 있을 때 파업 못하는 조직이, 조직하고 나서 나중에 파업 할 리가 없고 파업을 통해 열리는 교육토론 공간이 오히려 결의를 높일 수 있다며 조합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면서 파업을 결의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동파업이 조직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랜드 노조의 월드컵점 점거 역시 원래는 하루, 이틀 계획이었는데 조합원들의 요구가 빗발치면서 무기한으로 간 것이라던가, 점거 계획이 없던 뉴코아 노동조합이 강남점 점거 투쟁으로 이어간 것 역시 마찬가지였죠. 오상훈 보통 여론이나 언론에서 이랜드 홈에버가 높게 평가를 받는데, 저는 뉴코아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홈에버는 정규직, 비정규직 비율이 반반이고, 연봉 차이도 그리 크지 않고, 항상 같은 공간에서 일했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이 그리 크지 않아요. 게다가 까르푸 시절부터 정규직이 직접 비정규직을 조직하면서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하지만 뉴코아의 경우에는 조합원 1,500명 중 비정규직이 없었어요. 이 투쟁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년부터 비정규직을 조직한 거예요.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정규직은 강제 전환 배치, 비정규직은 외주화된다는 것을 파악하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힘의 측면에서나 상징적인 측면에서나 비정규직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처음 조직할 때만해도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못 믿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비정규직과 함께 하고 있잖아요. 실제 뉴코아 노조는 유니언숍으로 지금까지 쟁의에서 패배한 적도 없었고, 뉴코아에서 이랜드로 넘어올 때도 해고 없이 넘어올 정도로 상당히 강한 노조였어요. 이런 노조가 현재 파업참가율이 절반에 불과한 데도 계속하고 있어요. 1,500명 조합원 중 15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끝까지 가고 있는 것이죠. 현장은 투쟁 이후 다시 조직할 수 있지만, 이 투쟁에서 패배하면 조직할 수 있는 현장 자체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이에요. 이런 점들을 봤을 때 이 투쟁에서 뉴코아 노조의 결의와 마음가짐, 노력, 실천을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쟁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들의 투쟁 vs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불러오는 투쟁 김혜진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지켜보면서 신기한 점이 있어요. 지금까지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운동진영은 물론이거니와 여론상으로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죠. 이런 경우도 흔치 않은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욕 안 먹는 투쟁이 있었나 싶기도 해요. 그렇다면 이 투쟁이 이렇게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어떻게 분석하고 판단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사진5%]오상훈 80만원 받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대변되고 있죠. 그 동안의 노동자 투쟁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대공장 남성 중심의 투쟁이었다가 그 다음은 대공장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이었죠. 사실 이들은 이미 집단화 되어있거나 나름대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경우에요. 하지만 유통노동자의 경우 조직되기 힘들다고 여겨졌고, 실제로 지금도 조직이 잘 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유통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약 120만 명이고 그 중 대다수가 비정규직입니다. 이들 중에 조직된 인원이 지금 이랜드-뉴코아 2,700여 명 뿐인 거예요. 게다가 유통은 간접고용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조직화하기 힘든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조직하기 쉬운 부문에서 조직해서 투쟁을 만들고, 그 투쟁을 엄호하는 방식이 주였죠.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투쟁이 우리에게 운동의 원칙을 다시 상기시킨 것이 아닌가 해요. 가장 힘들고, 가장 열악한 단위부터 조직하고, 그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엄호하는 것, 그것이 운동의 원칙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향후의 운동도 그런 원칙 하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박준도 물론 이 투쟁의 의미를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지만, 저는 좀 더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노동자, 저임금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라서 이 투쟁이 호소력을 가졌다는 것은 절반만 맞는 해석이라는 거죠. 이전에도 최저임금투쟁과 같이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관심은 없었어요. 저는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6월 30일에 점거를 들어가서 비정규직법안 시행령이 실시되는 7월 1일에 무기한 점거를 선언한 것이 이 투쟁을 폭발적으로 만든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외주화를 통한 간접고용의 확산, 이를 위한 0개월 계약, 2년 이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해지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고용불안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것이 알량한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이더라는 것입니다. 비정규직법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엄청난 균열이 불거진 것이죠. 지배세력들은 비정규직 관련 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선전을 했는데, 6월 30일과 7월 1일 이틀사이 이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거죠. 이렇게 대중의 인식과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형성되면서 이 투쟁이 폭발력을 띤 것이죠. 이 과정에서 투쟁의 보편성이 획득된 것이라는 겁니다.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게 된 것이죠. 오상훈 자세히 따져보면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어요. 이 투쟁이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6월 30일 이전이고, 언론에서는 실제 뉴코아를 먼저 주목했죠. 그리고 비정규직법안으로 인해 해고가 일어날 것이라 했던 사업장은 뉴코아 말고도 부지기수였어요. 그렇다면 왜 언론이 뉴코아의 0개월 계약 등을 주목했겠어요? 그것은 단지 비정규직 법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거죠. 비정규법안 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한 달에 200만원 받는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였다면 과연 이만큼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겠어요? 저는 유통 부문이 전국에 퍼져있다 보니 할인마트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만한 사람들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더욱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박준도 그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상훈 동지처럼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민주노총이 그나마 이거 해서 욕 안 먹는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이런 식으로까지 평가가 나아간다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파업 초기 집회발언석상에서 금속노조의 FTA파업과 뉴코아·이랜드 파업을 언급하면서 금속노조의 파업은 욕먹지만 뉴코아·이랜드 파업은 욕 안 먹는다는 식으로 맞비교하는 식의 발언이 꽤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분위기가 있다 보니 심지어는 80만원보다 조금 더 받는 금속 노동자들조차 자신의 저임금을 딱히 호소도 못하더라는 것이죠. 김혜진 이 투쟁을 향후 대중운동으로 더욱 확산하려면 박준도 동지의 말처럼 대중의 균열을 끌어내는 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는 해요. 그런데 오상훈 동지의 말처럼, 사람들이 감정적 동일성으로 인해 어떤 충격을 받아서 그것이 정치적 각성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주변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사는 동네에 대형 유통업체가 생기면서 지역 전체의 화제가 되고, 지역은 청년층 대다수가 나중에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그 유통업체에 취직을 했어요. 그런데 이랜드-뉴코아 투쟁 이후로는 사람들이 그 투쟁의 내용을 자신의 일상과 떨어질 수 없는 이야기로 인식하면서 자주 대화의 소재에 오르죠. 그렇지만 비정규법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대중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계획이 필요하죠. [%=사진4%]안보영 저는 오히려 이데올로기적 균열이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싸고는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의견에 동의해요. 이제 사람들이 비정규직법안이 보호법이 아니라는 정도까지는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래서 이 투쟁이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의 양보를 통해 해결 가능하다는 식의 이데올로기까지 균열을 내고 있는가라는 점에서는 의문이 들어요. 투쟁 주체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함께 투쟁하고, 많은 활동가들이 이 공동투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대중적인 인식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김혜진 중요한 것은 아직 이것은 안됐고, 이것은 이루어졌고 등의 평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균열을 계속 확장시켜내는 것과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분할을 깨는 연대 투쟁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여전히 남겨진 과제인데 다만 중간 평가 수준에서 향후 방향을 찾기 위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죠. 박준도 한편에서 우리 어머니 같은, 우리 누이 같은, 저 분들이 쫓겨나게 생겼다, 도와 달라, 이로 인해서 대중들이 감정적으로 동화되어 움직였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면이 있죠. 하지만 이 보다는 이 사람들은 평소 내 하인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되든 내가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저들도 나와 똑같은 시민이고 노동자더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좀 더 깊게 파고들어가야만, 실제 지배 이데올로기에 파열을 내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상훈 향후 투쟁에 있어서 그런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욕을 그나마 안하는 것은 이들이 매우 열악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란 점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냉정히 평가할 것은 평가해야죠. 자기가 상대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다시 인식한다는 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노동자 의식이에요. 자신의 노동권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남한 사회에서 상대방의 노동권을 인식한다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인데, 단지 인식의 균열의 수준이라도 과연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냐는 거죠. 박준도 물론 오상훈 동지의 말이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운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려 한다면, 다른 면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초기에 점거할 때 많이 나온 이야기가 "고객님, 다음에 더 큰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였어요. 이런 방식은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대중의 통념에 묻어가는 거죠. 이런 방식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노동자로서 같은 시민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주장해야 이후 운동의 전망을 밝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보영 그와 관련해서 유의미하게 평가할 지점이 있는데, 최근 들어 조합원들이 "고객님, 다음에 더 좋은 서비스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발언을 거의 안 해요. 오히려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나는 노동자로서 주체고, 여기서 투쟁하는 것이 정당한 나의 정당한 권리이며, 이 문제에 있어서 당신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랜드 노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런 지점을 더 확대하고 강화해야 합니다. 정영섭 그렇다면 이번에는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서 의미를 살펴봤으면 합니다. 임금 80만원 받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라고 상징화되어 있죠.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시혜적인 연대를 넘어 여성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로 박준도 이 점에 관한한 뉴코아·이랜드 투쟁에 대해 조금 야박한 평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뉴코아·이랜드 투쟁에서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성별 편중이 있어요. 남성들이 앞으로 나오고 여성들은 뒤로 빠지는 식 말입니다. 뉴코아 노동조합이 이런 현상은 조금 더 심한 편인데, 조직 체계상 대표들의 성별만 보아도 그렇죠. 지도부는 별도로 치더라도 이랜드 노동조합은 분회장은 대부분 여성이지만 뉴코아 노동조합은 지부장조차도 대부분 남성이잖아요. 오상훈 뉴코아는 특성을 잘 봐야 돼요. 지부장이 다 관리자, 과장이에요. 회사 직제가 그대로 옮겨온 것이죠. 조합원들은 지부장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데, 회사에서 엄마, 아빠 역할을 하던 사람이에요. 직장에서 일할 때의 구조가 똑같이 옮겨 온 거죠. 그리고 현 단계에서 이제 막 조직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받아 안아서 싸우고 있는 모양새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박준도 지금 현재 이랜드, 뉴코아 투쟁에서 여성노동권 쟁취라는 차원에서 평가했을 때 문제가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라는 점을 봐야 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을 호명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요. 여성노동자라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 우리 누이라는 식이라는 거예요. 지나치게 동정심에 호소한다는 거죠. 물론 그거 필요 없다, 그런 식은 반동이다, 이렇게까지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의 호명이 너무 잦고 이런 식의 호명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을 주체화할 수 있는 호명 방식, 조직 체계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이 점에 관한한 너무 둔감하다는 거죠. 민주노총이 이 투쟁을 받아 안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체화방식은 더 문제고요. '우리 불쌍한 주부들, 가정에서 엄마 역할 해야 하는데, 여기 와서 싸우고 있다, 집에서 엄마 역할을 하도록 돌려보내줘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상급단체 간부들이라는 사람들이 이야기해댑니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엄마의 규정, 가정을 지키는 주부로서의 규정에 근거해서 일자리가 아니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은연중에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되죠. 안보영 제가 보기에는, 조합원들이 내가 엄마고, 자식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는 얘기를 하긴 하지만, 사실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주체로 호명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라면, 민주노총이나 연대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정서에 기대고, 동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너무 안 된 사람들을 도와 달라는 식으로 발언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주체인 여성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나는 노동자라고 어느 정도 주체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연대 단위들은 이런 주체의 의지나 스스로의 규정을 무시할까라는 생각을 투쟁에 결합하는 초반부터 했어요. 오상훈 민주노총이 맨 날 10점, 20점 받던 애였는데, 이번에 50점 받았어요. 그런데 왜 80점 90점 못 받느냐고 하면 좀 갑갑한 면이 있습니다. KTX 투쟁하고 비교해보자구요. KTX 투쟁은 정말 말 그대로 시혜적인 투쟁이었어요. 우리 어여쁜 여승무원들이 해고당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냐, 연대하는 단위들이 거의 다 그랬어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투쟁은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가장 결정적으로 '80만원 받는'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규정에서 이 각각의 주체성이 각각 강조됐던 부분이 있다는 거죠. 반면에 KTX 투쟁은 시혜의 대상으로서 '여성'승무원만 강조되었다는 거죠. 김혜진 지금 상징화되어 있는 이랜드-뉴코아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한 달에 80만원 받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에요. 그런데 현실을 폭로하고 상징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저임금 여성노동자'라는 호명과 그것을 폭로하는 방식이 어떤 사실의 어떤 면을 강조하느냐, 대중들의 어떤 정서에 호소하려 하는 것이냐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나 아내의 위치를 전제하는 '여성'이라는 호명이 사회적으로 시혜적 대상, 약한 대상, 신사적인 정신으로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와 맞물리는 게 된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 봐야 해요. 그리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운동의 효과를 낳을지도 고려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투쟁한다.'는 그 노동자들의 발언처럼 역사적인 자신들의 임무를 인식하고 투쟁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합니다. 바로 스스로의 주체성과 역동성으로 깨어나는 여성 노동자들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자의 학교라고 하는 파업 과정이 그러할 수 있도록 하는 연대단위들의 역할도 있을 것이고요. 특수하게 불쌍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니라 바로 그 여성들이 이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이 시대 노동자들의 모습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해나가는 운동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이것은 애초부터 우리뿐만이 아니라 여러 단위에서도 고민이 있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대단위들의 발언이나 최근 조금씩 줄어드는 연대단위들의 대오를 보면서 이 투쟁에 대한 의미 부여나 입장만큼 실제로는 잘 받아 안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개인적으로도 이후 계획과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저런 고민 중에 있습니다. 정영섭 모두가 이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서 주체화하고 노동권을 제기하는 부분을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외부에서 연대하는 단위나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이런 제기와 요구를 못 받아 안고 있다는 평가도 어느 정도 공통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주체화할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평가에 기초해보면 외부 연대단위가 막고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문제의식을 가진 연대단위로서 고민해야 할 지점도 있겠지요. 가족의 문제 안보영 조합원들과 만나다보면, 여성노동자들이 왜 이런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가는 많이 아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개입하고 싶은 점이 그 지점인데, 조합원들과 같이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가족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족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자신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가 이런 것들 말이죠. 그런데 이건 여기서도 개인사로 치부됩니다. 이랜드 노동조합과 뉴코아 노동조합이 총회했을 때 제가 조합원들 토론 자리에 낀 적이 있는데, 그 때 조합원들이 '지금은 그래 이판사판, 갈 데도 없고 계속 해야 하는데, 남편은 뭐 어떻게든 해야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가족은 각자 알아서 정리하자는 거죠. 장기 투쟁이 되면서 가족과의 문제가 다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가족이라는 공간이 사적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까 이런 얘기가 공개적으로 되기보다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 감내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워낙 상황이 힘들기 때문에 그런 얘기까지 못하는 거예요. 당장에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사항이, 일주일에 두세 번 보이던 조합원이 한 번도 안 보이는데 이 사람 어떻게 할 거냐, 그런 건데. 그래서 이게 논의의 대상이 안 되는 거죠. 저도 얘기를 하고 싶고 한데, 절실하게 필요한데, 어떻게 할 지, 우리들의 경험도 일천해서 얘기를 꺼내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박준도 7월 말 일부 조합원들이 사업장 복귀하면서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한 달만 투쟁하겠다는 남편과의 약속 때문이에요. 가족, 특히 남편의 불편한 시선으로 인한 동요가 컸던 거죠. 상황이 이렇다면 1차 소속 집단에서 동의를 구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조직적인 대안이 없으면 결국에는 여성노동자들 중 일부 소수만이 남아서 끝까지 가는 방식이 되고 말 겁니다. 가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조직적인 대안이 있어야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서 현실에서의 지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이론적인 논의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오상훈 가족들에게 7월 31일까지다, 8월 1일 자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온 것은 맞는데, 7월 말에 복귀를 많이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1, 2차 점거 농성이 침탈된 이후 지도부 공백 상태가 발생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것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7월 31일까지라는 남편과의 약속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설득도 못 한 거죠. 물론 저도 답이 안 나오거든요.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했을 때, 그냥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투쟁을 기획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투쟁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어떻게 주체로 거듭 나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사적인 영역이라는 가족의 문제를 어떻게 제기할 것이냐라고 했을 때 가족대책위 같은 방식으로 사적인 영역을 공식적인 영역으로 끄집어낼 것인지, 그렇지 않아도 조합원들은 그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하는 이 판국에 그 얘기를 공식적으로 끄집어내서 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얘기를 해보자고 해야 하는 건지, 답이 잘 안 나와요. 박준도 미국의 서비스 노동조합(SEIU)의 히스패닉 노동자 조직과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것이 있다면 인종차별문제를 제기했던 사회정의운동과 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유비를 해보면 여성노동자 투쟁이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서 의미를 띄려면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죠. 가족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차원의 운동 여성 억압에 비판을 제기하는 운동과 결합을 해야 해요. 안보영 이 문제는 인종차별 문제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인종차별 문제는 보편적인 정의로 동조할 수 있는데, 이것은 내 공간이라는 거죠. 당장 남편과 적대적인 전선을 그을 수가 없어요. 훨씬 조심스러운 거고, 사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이 투쟁을 두고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못하냐고 접근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하는데, 그것을 못 찾는 거고, 그것을 못 찾게 하는 조건이 상당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 누군가에 의해 교육받고 조직되지 않아도 여성조합원들 스스로가 주체화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변화가 보이기도 해요. 엊그제 상암 월드컵에서 투쟁을 할 때, 상암 직무대행 홍선영 동지가 발언을 하시는데, '사람들이 집에 가서 밥 하라고 그런다, 여기 나와서 뭐 하는 거냐고 하는데, 물론 나도 오늘 나오면서 자식한테 따뜻한 밥 한 끼 못해줬다. 그렇지만 밥 한 끼 못해준다고 해서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자식이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어머니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이 발언 들으면서 견고하게 구성된 모성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데, 이건 그런 이데올로기에서 비껴난 얘기구나 생각했어요. 엄마로서 역할이, 자신의 모성이 밥 해주고, 챙겨주고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고 모순에 맞서 싸우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이라고 조합원들 스스로 규정하시는 거죠. 당장에 활동가들이 안으로 들어가서 파열구를 내고, 그런 건 당연한 것인데, 그렇지 않은 지금 현재의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변화의 조짐이 없거나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오상훈 분리해서 볼 것이 있는데, 스스로 주체로 형성되고 있는 측면이 있죠. 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에 대해 저는 답을 못 내놓겠다는 것이죠. 투쟁의 계획은 낼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당장의 이혼 위기에 처해있는 일들, 애들이 비뚤어져 나가는 일들 이런 것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거죠. 극단적으로 질문을 던져요. '우리 남편이 낼 모레까지 투쟁 안 접으면 이혼하자고 그랬다, 실제로 그 갈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이혼하는 것은 좋은데,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하냐.' 연대단위에게 질문을 던져요.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이혼하세요, 그럴 거예요? 이건 그냥 사적인 대화로 오고 가는 것인데, 지금은 다 이렇게 풀고 있는 거예요. 대책을 못 내놓고 있는 거죠. 김혜진 투쟁에 결합하면서 여성노동권에 대해서 질문이 나오거나 뭘 해야 한다고 할 때 딱 부딪히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에요. 실제로 입장 외에 연대하는 단위가 뭘 할 것이냐가 굉장히 어려운 지점이라는 것이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있어서 이러한 여성 노동자들의 고유한 문제를 파악하고, 여성권의 맥락에서 현실의 뚜렷한 요구 사항을 찾아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박준도 사실 이런 문제는 남성 사업장도 마찬가지로 제기된 것입니다. 투쟁하다보면 남성들도 역시 이혼 당하고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기도 하죠. 남성 사업장에서 그것을 흔히 해결하는 방식은 가족대책위를 구성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방식은 여성억압이라는 가족의 문제와 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의 해법입니다.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 이 방식을 답습할 수도 없고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가족, 여성억압 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에서 가족을 민주화시키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여성해방운동차원에서 함께 고민되어야 할 문제죠.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이 1980년대 어려움을 겪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가족 문제였습니다.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조금씩 주체화되고 있는데,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겪었던 그 질곡과 장애를 지금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운동이 안 겪을 거라는 보장이 없거든요. 그때 이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못 내렸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내렸다면, 지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운동이 맞부딪히게 될, 지금 이랜드 투쟁에서 확인되고 있는 가족과의 쟁점, 이걸 어떻게 여성 노동자들이 해결할 것이냐, 구체적으로 접근할 것이냐가 중요하죠. 김혜진 저도 공감하는데, 발언이나 유인물로 선동하는 것 외에, 그 여성들을 주체화하는 데 있어서 장애나 한계로 작용하는 지점들에 있어서는 어떤 식의 계획이 필요한가 하는 거죠. 그것이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현실 운동의 과제인데, 지금까지는 입장은 있는데 과제로 남겨두자고 했다면, 지금은 과제로 남겨두자고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필요한 시기예요. 거기에 대해서 다양한 층위의 계획들이 나올 수 있는데, 어떤 계획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나 주체가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KTX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는 여성노동 네트워크 같은 것이 생겨서, 우리가 보기에는 왜곡된 해결방식을 제기했지만, 어쨌든 결합을 했었죠. 그런데 소위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쪽의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 자신은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여성문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대요. 그냥 노동자들의 투쟁이라 생각했다는 거죠. KTX 젊은 여성들은 여성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주류 여성운동이 그런 식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렇다면 진짜 현실운동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거기서 사회진보연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우선 짚어져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운동포럼이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을 고민하는 주체 형성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사회운동포럼 여성대회를 준비하면서 여성운동전략기획단이 꾸려졌는데, 거기에서 남한에서 주류 여성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한데, 이것을 위한 초동 주체들이 모일 수 있는 네트워크를 꾸려보자는 것까지는 합의가 됐어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진전이고, 이것을 잘 유지시키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남겨둔 것을 실제로 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영섭 이제 논의 주제를 바꿔서, 향후 투쟁계획이나 전술에 관해 얘기를 해보죠. 지금 동력이나 연대 단위의 축소, 사회적인 여론 악화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래서 나온 계획이 9월 추석을 앞두고 집중 타격 투쟁 등을 통해서 뭔가 계기를 만든다는 거죠. 이런 구체적인 계획을 염두에 두고 얘기를 해봅시다. 투쟁을 확산하기 위하여: 연대 파업의 조직과 전선의 확대 박준도 여기서 민주노총의, 기존 노동운동의 한계가 슬슬 나타난다고 할 수 있어요. 그 기세 높던 평택투쟁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던 시점이 바로 경찰폭력이 가시화 됐던 때였거든요. 인천지역의 특별한 경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투쟁 역시 직원과 점주들이 구사대로 조직되고 경찰 탄압이 가시화하면서 확실히 위축되고 있어요. 인천본부가 투쟁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문제는 다른 노조들조차도 인천본부 핑계를 대면서 뒤로 빠지고 있다는 거죠. 경찰과 점주의 폭력이 가시화하면서 당신이 나서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거든요. 내가 나서가겠다는 분위기가 아니라 말이죠. 어찌보면 이를 민주노총의 최대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럴 때 솔직히 답답한 측면이 있어요. 롯데호텔과 같이 가장 유사한 쟁점을 가지고 있는 노조가 연대파업을 하는 식으로 투쟁의 확산이 필요한데 그게 답보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랜드-뉴코아 노조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걸고 전선의 확대를 꾀하는 투쟁 말입니다. 이랜드, 뉴코아 노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뉴코아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로 파업을 결의한 것이나 이랜드 노조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본 적도 없는 뉴코아 노조와 공동 호흡을 맞추고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에 맞춰서 파업을 조직한 것처럼 그런 노조들이 두세 개만 더 나와도 지금 상황은 확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연대파업이 실제로 필요한데, 그것이 지금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민주노총의 한계구나 싶기도 해요. 오상훈 투쟁의 흐름을 볼 필요가 있어요. 6월 30일 이후에, 7월 8일, 7월 21일을 정점으로 쭉 치고 올라갔죠. 그런데 누가 이끌었냐는 거예요. 민주노총이냐, 민주노총 중앙이 한 거 아니거든요. 그러면 단체가 했냐, 그러면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가 했냐 아니라는 거죠. 당에 있는 활동가들, 민주노총 활동가들, 단체 활동가들이 이끈 거예요. 그 상황이 현재 그대로에요. 연대파업 조직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주 현실적으로 말하면 활동가들이 연대파업 조직하려 하지 말고, 활동가들이 그냥 나오면 된다고 생각해요. 연대파업 얘기를 하는데, 실제로 어느 단위, 어느 사업장이 지금 연대파업을 할 수 있냐는 거예요. 정말 냉철히 봤을 때, 민주노총에서 지침 내려서 현대자동차 연대파업하면 그 3만의 조합원들이 투쟁에 나오겠어요. 그냥 다 퇴근하지, 안 나와요 절대. 그런데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활동가들은 결합을 시작해서 지금 움직이고 있어요. 저는 정말 현실적으로 보면, 관성적이고 선언적으로 연대파업 지침 내서 되도 않는 조합원들 이끌려는 생각 말고, 실제로 결의된 활동가들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라는 계획을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민주노총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이석행 위원장 정말 잘 지르고, 만들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걸 실천하지 않았다는 거죠. '1000인 선봉대' 정말 잘 지른 건데, 1,0열린 공간이라는 점은 지하철도 마찬가지인데, 지하철 파업은 이랜드-뉴코아의 현재 투쟁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죠. 항상 시민들의 발을 볼모로 한다는 공세가 동반됐어요. 하지만 이 투쟁의 경우에는 주부들의 일상 공간을 묶어 놓는다는 공세는 찾아보기 힘들죠. 물론 파장이 지하철만큼 크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00인이 안 모이니까 문제인 거죠. 7월 21일 침탈되고 나서 민주노총이 뭐라고 했냐면, 7월 21일 서울지역에서 8개 매장을 봉쇄했는데, 앞으로 매일 이렇게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봉쇄하겠다, 그거 누가 봐도 안 될 것이었는데… 그게 그냥 안 되는 걸로 끝난 게 아니에요. 이랜드 조합원들의 집단 복귀를 불러왔어요. 왜? 민주노총 투쟁한다고 하니까 이랜드가 그 투쟁 일정 맞추느라 투쟁 계획을 못 잡고 우왕좌왕 한 거예요. 게다가 투쟁하러 갔더니 연대 대오가 없는 거예요. 여성연맹 열댓 명, 금속 한두 명 이렇게 다 합쳐서 50명도 안 온 거 조합원들이 보고는, 다음날 쟁대위 회의 때 연대하러 온다고 해놓고 그게 연대냐, 차라리 우리끼리 점거 들어가자, 그런 얘기가 나온 거죠. 괜히 되도 않는 거짓말로 조합원들 사기 떨어뜨리지 말고, 정말 제대로 된 계획이나 잡는 게 중요해요. 7월 21일 이후에 서울지역에서 한 개 매장이라도 제대로 막았으면, 그 투쟁이 꺾이는 기세는 없었을 거예요. 연대파업이든 총파업이든, 그게 연대파업해서 뭘 하겠다는 게 있는 거잖아요. 연대파업 해서 전국적으로 공장을 멈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홈에버, 뉴코아 매출을 타격하는 게 목적이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일각에서 얘기되고 있는, 이것이 비정규적 전면 폐기 투쟁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매장 앞에서만의 투쟁이 아니라 거리에서의 투쟁, 대정부 투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이 투쟁은 기본적으로 매장봉쇄 투쟁을 해서 매출을 다운시켜서 실질적으로 이랜드 자본을 굴복시킴으로써, 그 승리가 실질적으로 향후 비정규법 폐기 투쟁의 초석이 될 수 있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연대파업을 하든 뭘 하든, 실제적으로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의 투쟁 계획은 일상적으로 어떻게 매출을 0으로 만들어 갈 거냐, 각 지역본부 별로, 그래서 서울 같은 경우는 하루에 두 개 이상, 세 개 이상, 각 지역본부는 한 개 이상 반드시 매출을 0으로 만들어라,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상근 간부들은 4시 이후에 반드시 그곳으로 퇴근하고, 연대파업을 할 수 있는 단위는 연대파업을 하고, 총회 투쟁을 할 수 있는 단위는 총회 투쟁을 하고, 조합원 교육을 박을 수 있는 단위는 그렇게 박고, 연맹은 연맹 단위대로, 지역본부는 지역본부 단위 별로 각 단위 조정해서 배치한다는 계획이 제출됐어야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연대파업이 있어야지, 연대파업을 선언해놓고, 연대파업 자체가 목적인 양 가서는 안 된다는 거죠. 박준도 이 투쟁이 비정규법안에 대한 대중들의 태도, 이데올로기적 균열이 발생하면서 확산되었다고 본다면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에 맞서 싸우는 투쟁으로써 전선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측이나 지배세력이 철저하게 이랜드 개별 노사로 몰아가면서 제 3자가 끼지 말라고 하는 점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쟁점을 철저히 이랜드 개별 노사 문제로 축소하려하는 거죠. 더 이상 법안 얘기하지 말라는 거죠. 이 상황에서 문제는 이 투쟁이 제기한 중요한 쟁점 중 한 가지, 비정규직 법안·악법 폐기 문제가 잊힌다는 거죠. 지금 수준에서는 비정규직 법안을 전면 재개정을 하든지, 민주노총이 망하든지 둘 중 하나 해보자는 식으로 민주노총이 선언해야 하는데, 이석행 위원장은 이랜드가 망하든지 우리가 망하든지 둘 중에 하나여야겠다는 식이에요. 기세가 대단하긴 하지만 이는 말리는 것입니다. 연대파업 얘기할 때 중요한 것은 롯데호텔이나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등 유사한 쟁점을 가진 투쟁 당사자들이 다 같이 들고 일어나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거예요. 뉴코아, 이랜드 노동조합의 파업투쟁 돌입시점을 여러 활동가들이 함께 준비하고 설득했던 것처럼 말이죠. 오상훈 그건 민주노총이 결의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민주노총이 연대파업을 선언한다는 의미는 몇몇 단체가 롯데호텔과 공공부문 비정규직만 파업을 조직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건 파급력도 없어요. 롯데호텔 비정규직 이미 다 알려졌어요. 파업을 하든, 안 하든, 파업할 수 있는 대오가 10명도 안 되고, 파업해봐야 불법 파업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할 수 있는 데가 어디 있어요? 오히려 지금 연대파업을 할 단위는 정규직 노조죠. 이 투쟁의 후속타가 필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런데 그것은 이번에 있었던 대의원대회에서 제기된 연대파업하고는 다른 의미잖아요. 이랜드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 파업과 자기 투쟁을 승리로 가져가고 비정규직법안 폐기 투쟁의 후속타로서 롯데호텔이나 공공부문이나 서울대 병원이나 코스콤이나 이런 단위의 파업은 의미가 다른 거죠. 박준도 뉴코아가 결의를 할 때 이랜드가 뉴코아 투쟁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파업을 결의했죠. 뉴코아가 혼자 총파업을 하게 놔둘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1일 총파업이라도 한다, 그렇게 결의했던 거죠. 지도부의 결의도 결의였지만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서울본부 활동가들, 단체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이 굉장히 역동적이었고, 이것이 또 다른 역동성을 불러온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를 상기해야 합니다. 여기에 비추어본다면 활동가들이 온 노력을 기울일 때 연대파업, 동조파업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매장봉쇄 투쟁은 지속돼야 하고 확산돼야 해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투쟁의 공간을 넓히고 전선을 확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랜드 단사 투쟁으로 좁히고, 이랜드 연대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도로 고민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이랜드 투쟁이 이랜드 단사 차원의 투쟁으로만 사고되는 것은 무척 아쉬운 것입니다. [%=사진6%]정영섭 현재 상황에서 이후 투쟁의 방향에 대해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주체들의 결의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대가 확대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고, 그것이 첫 번째고, 그를 위해서는 매장봉쇄의 지속, 확대가 가장 기본적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총파업이든 연대파업이든 좀 더 수위 높은 후속타가 필요하다, 그것이 이랜드 단사 문제의 해결 만에 갇힌 방식이 아니라 어쨌든 현재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어쨌든 실물적으로는 지금 연대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를 고양시킬 수 있는 계획도 필요하죠. 이 정도로 정리를 하면서 마지막 발언들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확산과 연대의 확장, 이후 성과를 남기기 위한 과제 박준도 이 투쟁은 운동적인 의미에서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을 해요. 이 투쟁 자체를 어떻게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에서 실질적으로 세워낼 것인가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까지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비정규직 투쟁하면 생각나는 것은 다리 위, 공장 위에 올라가서 처절하게 외치다가 산화하는 방식인데, 이것은 그런 방식으로 가지 않았어요. 투쟁을 전국화하고 공간을 넓혔습니다. 지역 차원의 비정규직 운동이라는 엄청난 성과와 동시에 질문을 던진 투쟁이었다는 것이죠. 어떤 면에서 보면 이 투쟁은 성과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던진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후 평가 지점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후 이랜드 투쟁을 고민한다면 전혀 다른 투쟁 계획이 나올 수도 있겠죠. 이 투쟁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 투쟁을 조직하는 방식 말입니다. 여성노동권 투쟁,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라는 차원에서 말이죠. 오상훈 민주노총을 대변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저는 민주노총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가 문제인데, 1000인 선봉대도 1000인은 아니었지만 대오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연맹 단위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측면도 있고. 민주노총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여타의 단위들이 그동안의 모습과는 획기적으로 달라졌다는 생각을 해요. 향후가 중요한데, 어떻게 이 투쟁을 더 확산시켜내고, 제대로 된 투쟁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추석 이전에 어떻게 투쟁 계획을 낼 것인가가 고민이고, 그것이 선언적인 수준의 총파업, 연대파업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본에 타격을 주고 그 투쟁의 과정에서 주체들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투쟁이 향후에 과제로 남긴 것이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가 지역 차원에서 이 성과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주체적인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 이 투쟁을 엄호하고 향후에 자신의 성과로 남길 수 있도록 주체적인 계획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그 계획 하에서 추석 투쟁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이건 정말 향후의 과제인데, 이 투쟁이 연대가 확산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현장을 멈춘 것이 아니라 다른 단위들과 함께 현장을 멈췄다는 점이에요. 그동안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투쟁, 거기에 일부의 연대를 가지고 투쟁을 해왔던 방식이라면, 이것은 하나의 사안을 가지고 제 세력들이 모두가 결합을 하면서 운동을 만들어왔던 경험이라는 거죠. 이 경험이 향후 운동의 전략을 짜는 데 있어서 교훈으로 남기고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안보영 저는 결합해 오면서,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부분인데, 이제야 조합원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어떻게든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 어떤 의미고,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자기의 지역은 자기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의 이랜드 투쟁에 적극 결합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김혜진 이 투쟁에 계속 동력을 붙여 갈 필요가 있는데, 제가 사회운동포럼에 주되게 결합을 하다보니까 그 고민과 연결을 시켜보면, 거기에서 생겨나는 유의미한 네트워크나 연대에 대한 고민을 지속시켜 나가고 결합시켜 나갈 방안이 있어야겠다는 고민이 들고, 여성운동전략기획단 내에서 고민하는 네트워크가 얘기하는 것이 그냥 단지 모여보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 투쟁과 결합하는 가운데 향후 여성운동의 방향을 만들어 가보자는 건데,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투쟁을 시작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후 진정으로 보편적인 여성노동자의 투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