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운동의 위기와 페미니즘 노동자 운동과 페미니즘 결합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이 오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노동운동이 어떠한 상태인가를 진단할 필요가 있는데, 노동운동의 상태에 대해서는 대부분 위기라는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처음의 질문과 결합되어 주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은 노동운동의 위기는 페미니즘을 수용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여성운동을 고민하는 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의 만남으로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은 단지 눈에 보이는 문제 해결만을 위해 제시하는 것도 아니며 노동운동의 위기를 대충 땜질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러한 질문은 하나(노동운동)에 하나(페미니즘)를 더 보태자는 것이 아니라 운동 전반의 성찰과 이념을 재구축하자는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노동운동이 왜 페미니즘을 고민해야 하는지, 현재 노동운동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 노동조합 운동에서 그 인식의 수준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노동운동의 위기를 무엇으로 진단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현재 노동자 운동이 위기라는 진단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 계급성이 탈각되는 문제, 노동조합으로 조직률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 제대로 된 이념이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 등 다양한 진단이 있다. 그 중에서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떨어지는 것이 위기라 진단하는 경우는, 문제를 단지 수적인 열세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 노동자들이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구호를 외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이들이 자신들의 실리적인 이익만을 위해 조직되어 있다면 이는 운동이 아니라 이익집단에 다름이 없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 조직률이 낮았을 때에도 운동의 보편성과 대표성을 담보하는 상황에서는 위기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노동운동의 위기는 운동의 보편성과 대표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의 정세는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어 노동자들의 경쟁과 분할의 양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는 법․제도적인 압박부터 운동의 노선까지 변화시키며 급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아니 늘어나다 못해 제도화되어 일반화되고 차별이 고착화되는 등, 임금 구조와 고용 관계가 점차 변질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그 비정규직의 70%가 여성 노동자라는 현실은, 그 동안 생소했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공백으로 남아 있던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1) 비정규직 철폐 운동 역시 이처럼 변화된 정세와 지형 속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그 초기 문제의식은 노동운동 혁신, 비정규직운동 주체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출발했다. 그러나 몇 년이 경과하면서 비정규직 철폐 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체화에 대한 고민만 남았고, 그 역시 단순한 조직화나 기술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나마도 정규직 운동의 모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인데, 비정규직 투쟁은 전체 투쟁에서 부문적인 문제, 비정규직 당사자만의 문제로 치환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 역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민주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이러한 경향은 전체 운동의 문제를 구조조정 저지(신자유주의 저지), 노동운동의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사고한다기보다 기존의 운동 방식에 비정규직 문제를 외삽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여기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까 언급한 대로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라면 여성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역시 고민되어야 하는데, 여성 노동자에 대한 문제의 해법 역시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서 많은 여성을 조직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방법적인 면에서 여성 친화적 조직화라는 접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 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피해 받은 여성 노동자의 수가 많다는 것으로만 집중되거나, 여성 당사자만의 문제로 치환되어 왔다. 이는 기존의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조직화를 부각하는 입장으로, 여성 노동자에 대한 면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미조직 노동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시각이다. 여성을 주체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원해야할 대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부차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문제, 여성 노동자의 문제가 전체 운동 안에서 하나의 의제로 외삽 되어 오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 여성 노동자의 문제는 여성 노동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것이 필요하다. 2) 노동운동이 왜 페미니즘을 고민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보편화된 여성에 대한 공격을 인식해야한다. 비정규직에서도, 빈곤층에서도 여성이 더 많다는 것도 심각하지만,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양상이 모든 사람에게도 직면해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안에서도 이러한 양상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화 된 비정규직 문제만을 보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들은 불안정한 노동 형태에 직면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의 불안정화가 전 노동의 문제로 퍼지고 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여성은 더욱 고통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도 여성들 먼저 비정규직화하고 그 이후에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 내의 다양한 분할선과 공백지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데, 그 분할을 방관하면 우리 모두의 기본선이 무너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측면에서도 여성문제에 대한 방관은 여지없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저임금․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며 이중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타파하고, 여성 노동자가 당당한 권리의 주체가 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가 온전히 노동자로 자신의 권리를 갖기에는 현실의 상황은 무척 척박하다. 노동운동은 페미니즘 문제에 있어서 공백이 존재하고, 주류 여성운동은 노동운동과 분리하여 운동을 만들어 가고 여성을 조직화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에게 페미니즘과 노동자운동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이처럼 양자가 분리된 현실은 여성 노동자의 주체화를 어렵게 만들고 여성 노동자를 갈등적 상황에 놓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특히 비정규직 철폐운동은 더더욱 면밀히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여성운동 역시 이러한 분리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처럼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이 결합을 위해서는 양자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3) 노동조합내의 페미니즘 인식 수준 - 여성 할당제, 성폭력 대책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 그렇다면 노동조합 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보면, 대부분 여성 할당제 문제에 대한 접근이나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 정도로 그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사회와 운동의 구조를 변혁시키는 문제로 고민하기보다는 단지 여성의 의제로만 접근하다 보니 단일 이슈 중심의 활동을 한다. 하지만 여성 할당제나 성폭력 논의마저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 활동가들의 활동력 소진은 계속되고 있다. 성폭력 문제는 개별 사건을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처리하는 데에 급급해하고 있기에 페미니즘의 확산이라는 측면으로 발전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처리 위주의 성폭력 문제 해결 과정이 여성 의제에 대한 남성 노동자들의 무관심과 침묵을 더 가중시킬 뿐이다. 할당제 역시 이로 인해 여성 대표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조직 내 여성 사업이 그 할당비율만큼 확대되고 있지 못하고, 여성 대표는 여성의 이해와 요구보다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 내에서의 모든 페미니즘 논의가 할당제만으로 좁혀질 우려가 있다. 현재 노동조합운동의 변화를 위해 어떤 여성 사업이 필요한가라는 고민과 과제는 미뤄진 채 할당제 시행을 위한 토론과 할당제를 채우기 위한 여성 조합원 교육과 사업에 모든 역량을 소진하고 있고, 앞으로도 소진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안에서 할당제에 집중된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왜 페미니즘을 흡수하지 못 하는가 1)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 부재, 구조조정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고, 구조조정이 전면화 되었을 때를 살펴보자. 이 과정에서도 신자유주의는 성별화 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해 왔다. 경제위기 초기에는 여성은 정리해고 일순위로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지거나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으며 구조조정의 안전판으로 활용되어왔다. 최근에는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전제로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인력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저출산․고령화라는 상황에 직면하자 정부는 여성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가 성장 동력으로 양성하기 위해 여성 인력활용 방안을 도입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지원하여 더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보육․가족 정책으로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보육과 가사를 용이하게 한다는 명분 하에 파트타임, 변형시간 근로제 등의 유연한 노동형태를 제도화하고 여성에게 장려(?)되고 있는 상황은 노동 유연화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성 노동자의 문제는 구조적으로 접근되지 못하고 단지 수치상으로 비정규직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많기 때문에 문제라고 취급되거나 여성 당사자만의 문제로 치환되어 왔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의 문제는 여성 노동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어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성별화 된 구조조정의 측면을 인식하고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에도 여성에게 먼저 시작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청소용역업무, 철도공사의 승무업무를 보더라도 업무의 외주화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비핵심업무라는 이유를 들어 여성들이 집중되어 있는 업무부터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처럼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성별화 된 공격 양식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함께 제대로 된 대응 양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여성 노동의 무제한적 착취의 강화 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 민중의 권리 후퇴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2)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수용하고 있는 상황 성별화 된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하지 못 하는데 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는 노동자운동이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라는 부르주아적 가족 모델을 적극 수용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근간이 된 것은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인데,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란 자본주의가 한참 발달하면서 산업화와 도시화 등의 변화와 함께 나타난다. 이 때부터 가족 모델은 핵가족화 방식으로 진행되고, 일부 대공장 중심의 기업별 노조가 가족임금 이라는 물적 기반을 성취하면서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전업주부)라는 관념이자 이데올로기가 노동자계급에게도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실제 가족임금은 현실에서는 없지만, 이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는 곳곳에서 잔존하며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남성의 고용이 불안정할 때에는 여성을 가정으로 유폐하는 방식으로(경제위기 초 여성은 정리해고 일순위), 여성인력을 활용할 때에는 저임금․비정규직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이처럼 노동조합운동 역시 자본주의가 가족형태를 통해 구조화한 성별 분업의 영향으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방안은 무엇인가 1) 노동조합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해체하고, 노동권과 여성권을 결합하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의 이념과 전략 구축해야 한다. 기존의 노동권과 여성권을 분리하여 대응해온 방식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 하고, 여성권과 노동권을 결합할 수 있는 실질적 전략과 실천이 필요하다. 우선 현재의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있어서 여성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의 불안정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비판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로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접근하는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성적차이에 기반 한 여성의 보편적 권리로서 노동권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2) 그리고 실질적인 재생산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는 재생산노동의 상품화를 통한 사회화(사회서비스 확충전략, 각 종 상품 개발 등)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이에 종사하는 재생산노동 노동자 (간병, 보육 등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 역시 요구해야 한다. 2) 아래로부터의 여성 노동자 주체화에 대한 기획 필요 현재 노동조합에서의 여성 노동자 주체화는 할당제 등 간부 중심으로 밖에 존재하지 못하고 있다. 할당제가 여러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할당제의 제한적 성과를 확대하는 방식을 통해 여성 할당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 노동자의 아래로부터의 주체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이 여성위원회-여성국, 여성대표들에 의해 제안되고 노동조합의 주요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자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노동조합의 주요 요구로 만들고, 기존의 교육내용과 방식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에서 전반적으로 교육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여성들을 위한 교육도 모성보호․성폭력․할당제 등의 주제에 국한되어 있고 일회성에 그치고 있는데 기층 여성 노동자들까지 일상적으로 토론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다양한 고민과 내용으로 확대해야 한다. 3) 여성 활동가들 간의 사회운동적인, 초 정파적인 열린 네트워크 구조 마련 여성 활동가들 사이의 연대를 확장하고 노동조합 내외부의 여성 활동가들이 상호 지지대가 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노동조합의 상황에서 단지 여성위원회를 둔다고 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교류, 환류 할 수 없으며 그 지속성도 담보할 수 없다. 또한 외부 여성 활동가들도 노동조합 현장과의 괴리가 심해질 수도 있다.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실리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운동적인 고민을 한다면 더 많은 열린 구조를 가져야 할 것이고, 더 많은 열린 의제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여성 활동가들 간의 열린 네트워크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4) 2008년 100주년 3․8 여성의 날을 대중적 공동투쟁의 날로! 2008년 3․8 여성의 날은 100주년을 맞는다. 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 수만 명의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루저스 광장에 모여 10시간 노동제와 안전한 작업환경과 모든 이에게 참정권을 요구하였다. 그 이후에도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고 고통받고 있다. 이에 2008년 3․8 여성 노동자의 날을 맞아 3․8 여성의 날을 단지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라 좀 더 대중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3․8 여성의 날은 10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여성의 문제를 내부에서 다양하고 근본적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비정규직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안에서도 여성 노동자가 다수이고, 여성 노동자 안에서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상황이지만, 현재 노동자 운동 안에서는 (정규직이 대다수인 노동조합에서는) 이 두 가지를 연결하여 고민하지 못하고 있거나, 연결하더라도 낮은 수준에서 고민할 뿐이다. 또한, 비정규직 철폐 운동 역시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고 있고, 비정규직 철폐 투쟁만 열심히 하면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이 쟁취될 수 있다고 본다. 본문으로 2) 만약 여성 노동자의 완전한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사회라면 출산휴가는 주휴일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노동 기본권의 목록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출산휴가가 비록 여성만 사용하는 휴가라고 해도 여성 노동자가 노동자인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그 보편성은 조금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임신․출산을 직․간접적인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사용주의 죄는 진정 사회의 기본 상식에 어긋나는 죄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 김원정, 사회운동포럼 노동자 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 2차 워크샵 발제문「일․가정 양립 논의에서 한국사회 노동자운동의 한계와 과제」중. 본문으로
노동자 운동의 위기와 페미니즘 노동자 운동과 페미니즘 결합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이 오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노동운동이 어떠한 상태인가를 진단할 필요가 있는데, 노동운동의 상태에 대해서는 대부분 위기라는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처음의 질문과 결합되어 주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은 노동운동의 위기는 페미니즘을 수용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여성운동을 고민하는 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의 만남으로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은 단지 눈에 보이는 문제 해결만을 위해 제시하는 것도 아니며 노동운동의 위기를 대충 땜질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러한 질문은 하나(노동운동)에 하나(페미니즘)를 더 보태자는 것이 아니라 운동 전반의 성찰과 이념을 재구축하자는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노동운동이 왜 페미니즘을 고민해야 하는지, 현재 노동운동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 노동조합 운동에서 그 인식의 수준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노동운동의 위기를 무엇으로 진단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현재 노동자 운동이 위기라는 진단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 계급성이 탈각되는 문제, 노동조합으로 조직률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 제대로 된 이념이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 등 다양한 진단이 있다. 그 중에서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떨어지는 것이 위기라 진단하는 경우는, 문제를 단지 수적인 열세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 노동자들이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구호를 외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이들이 자신들의 실리적인 이익만을 위해 조직되어 있다면 이는 운동이 아니라 이익집단에 다름이 없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 조직률이 낮았을 때에도 운동의 보편성과 대표성을 담보하는 상황에서는 위기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노동운동의 위기는 운동의 보편성과 대표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의 정세는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어 노동자들의 경쟁과 분할의 양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는 법․제도적인 압박부터 운동의 노선까지 변화시키며 급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아니 늘어나다 못해 제도화되어 일반화되고 차별이 고착화되는 등, 임금 구조와 고용 관계가 점차 변질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그 비정규직의 70%가 여성 노동자라는 현실은, 그 동안 생소했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공백으로 남아 있던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1) 비정규직 철폐 운동 역시 이처럼 변화된 정세와 지형 속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그 초기 문제의식은 노동운동 혁신, 비정규직운동 주체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출발했다. 그러나 몇 년이 경과하면서 비정규직 철폐 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체화에 대한 고민만 남았고, 그 역시 단순한 조직화나 기술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나마도 정규직 운동의 모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인데, 비정규직 투쟁은 전체 투쟁에서 부문적인 문제, 비정규직 당사자만의 문제로 치환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 역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민주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이러한 경향은 전체 운동의 문제를 구조조정 저지(신자유주의 저지), 노동운동의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사고한다기보다 기존의 운동 방식에 비정규직 문제를 외삽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여기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까 언급한 대로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라면 여성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역시 고민되어야 하는데, 여성 노동자에 대한 문제의 해법 역시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서 많은 여성을 조직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방법적인 면에서 여성 친화적 조직화라는 접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 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피해 받은 여성 노동자의 수가 많다는 것으로만 집중되거나, 여성 당사자만의 문제로 치환되어 왔다. 이는 기존의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조직화를 부각하는 입장으로, 여성 노동자에 대한 면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미조직 노동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시각이다. 여성을 주체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원해야할 대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부차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문제, 여성 노동자의 문제가 전체 운동 안에서 하나의 의제로 외삽 되어 오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 여성 노동자의 문제는 여성 노동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것이 필요하다. 2) 노동운동이 왜 페미니즘을 고민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보편화된 여성에 대한 공격을 인식해야한다. 비정규직에서도, 빈곤층에서도 여성이 더 많다는 것도 심각하지만,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양상이 모든 사람에게도 직면해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안에서도 이러한 양상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화 된 비정규직 문제만을 보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들은 불안정한 노동 형태에 직면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의 불안정화가 전 노동의 문제로 퍼지고 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여성은 더욱 고통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도 여성들 먼저 비정규직화하고 그 이후에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 내의 다양한 분할선과 공백지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데, 그 분할을 방관하면 우리 모두의 기본선이 무너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측면에서도 여성문제에 대한 방관은 여지없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저임금․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며 이중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타파하고, 여성 노동자가 당당한 권리의 주체가 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가 온전히 노동자로 자신의 권리를 갖기에는 현실의 상황은 무척 척박하다. 노동운동은 페미니즘 문제에 있어서 공백이 존재하고, 주류 여성운동은 노동운동과 분리하여 운동을 만들어 가고 여성을 조직화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에게 페미니즘과 노동자운동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이처럼 양자가 분리된 현실은 여성 노동자의 주체화를 어렵게 만들고 여성 노동자를 갈등적 상황에 놓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특히 비정규직 철폐운동은 더더욱 면밀히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여성운동 역시 이러한 분리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처럼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이 결합을 위해서는 양자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3) 노동조합내의 페미니즘 인식 수준 - 여성 할당제, 성폭력 대책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 그렇다면 노동조합 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보면, 대부분 여성 할당제 문제에 대한 접근이나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 정도로 그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사회와 운동의 구조를 변혁시키는 문제로 고민하기보다는 단지 여성의 의제로만 접근하다 보니 단일 이슈 중심의 활동을 한다. 하지만 여성 할당제나 성폭력 논의마저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 활동가들의 활동력 소진은 계속되고 있다. 성폭력 문제는 개별 사건을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처리하는 데에 급급해하고 있기에 페미니즘의 확산이라는 측면으로 발전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처리 위주의 성폭력 문제 해결 과정이 여성 의제에 대한 남성 노동자들의 무관심과 침묵을 더 가중시킬 뿐이다. 할당제 역시 이로 인해 여성 대표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조직 내 여성 사업이 그 할당비율만큼 확대되고 있지 못하고, 여성 대표는 여성의 이해와 요구보다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 내에서의 모든 페미니즘 논의가 할당제만으로 좁혀질 우려가 있다. 현재 노동조합운동의 변화를 위해 어떤 여성 사업이 필요한가라는 고민과 과제는 미뤄진 채 할당제 시행을 위한 토론과 할당제를 채우기 위한 여성 조합원 교육과 사업에 모든 역량을 소진하고 있고, 앞으로도 소진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안에서 할당제에 집중된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왜 페미니즘을 흡수하지 못 하는가 1)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 부재, 구조조정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고, 구조조정이 전면화 되었을 때를 살펴보자. 이 과정에서도 신자유주의는 성별화 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해 왔다. 경제위기 초기에는 여성은 정리해고 일순위로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지거나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으며 구조조정의 안전판으로 활용되어왔다. 최근에는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전제로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인력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저출산․고령화라는 상황에 직면하자 정부는 여성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가 성장 동력으로 양성하기 위해 여성 인력활용 방안을 도입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지원하여 더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보육․가족 정책으로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보육과 가사를 용이하게 한다는 명분 하에 파트타임, 변형시간 근로제 등의 유연한 노동형태를 제도화하고 여성에게 장려(?)되고 있는 상황은 노동 유연화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성 노동자의 문제는 구조적으로 접근되지 못하고 단지 수치상으로 비정규직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많기 때문에 문제라고 취급되거나 여성 당사자만의 문제로 치환되어 왔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의 문제는 여성 노동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어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성별화 된 구조조정의 측면을 인식하고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에도 여성에게 먼저 시작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청소용역업무, 철도공사의 승무업무를 보더라도 업무의 외주화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비핵심업무라는 이유를 들어 여성들이 집중되어 있는 업무부터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처럼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성별화 된 공격 양식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함께 제대로 된 대응 양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여성 노동의 무제한적 착취의 강화 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 민중의 권리 후퇴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2)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수용하고 있는 상황 성별화 된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하지 못 하는데 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는 노동자운동이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라는 부르주아적 가족 모델을 적극 수용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근간이 된 것은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인데,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란 자본주의가 한참 발달하면서 산업화와 도시화 등의 변화와 함께 나타난다. 이 때부터 가족 모델은 핵가족화 방식으로 진행되고, 일부 대공장 중심의 기업별 노조가 가족임금 이라는 물적 기반을 성취하면서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전업주부)라는 관념이자 이데올로기가 노동자계급에게도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실제 가족임금은 현실에서는 없지만, 이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는 곳곳에서 잔존하며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남성의 고용이 불안정할 때에는 여성을 가정으로 유폐하는 방식으로(경제위기 초 여성은 정리해고 일순위), 여성인력을 활용할 때에는 저임금․비정규직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이처럼 노동조합운동 역시 자본주의가 가족형태를 통해 구조화한 성별 분업의 영향으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방안은 무엇인가 1) 노동조합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해체하고, 노동권과 여성권을 결합하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의 이념과 전략 구축해야 한다. 기존의 노동권과 여성권을 분리하여 대응해온 방식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 하고, 여성권과 노동권을 결합할 수 있는 실질적 전략과 실천이 필요하다. 우선 현재의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있어서 여성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의 불안정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비판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로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접근하는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성적차이에 기반 한 여성의 보편적 권리로서 노동권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2) 그리고 실질적인 재생산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는 재생산노동의 상품화를 통한 사회화(사회서비스 확충전략, 각 종 상품 개발 등)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이에 종사하는 재생산노동 노동자 (간병, 보육 등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 역시 요구해야 한다. 2) 아래로부터의 여성 노동자 주체화에 대한 기획 필요 현재 노동조합에서의 여성 노동자 주체화는 할당제 등 간부 중심으로 밖에 존재하지 못하고 있다. 할당제가 여러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할당제의 제한적 성과를 확대하는 방식을 통해 여성 할당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 노동자의 아래로부터의 주체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이 여성위원회-여성국, 여성대표들에 의해 제안되고 노동조합의 주요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자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노동조합의 주요 요구로 만들고, 기존의 교육내용과 방식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에서 전반적으로 교육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여성들을 위한 교육도 모성보호․성폭력․할당제 등의 주제에 국한되어 있고 일회성에 그치고 있는데 기층 여성 노동자들까지 일상적으로 토론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다양한 고민과 내용으로 확대해야 한다. 3) 여성 활동가들 간의 사회운동적인, 초 정파적인 열린 네트워크 구조 마련 여성 활동가들 사이의 연대를 확장하고 노동조합 내외부의 여성 활동가들이 상호 지지대가 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노동조합의 상황에서 단지 여성위원회를 둔다고 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교류, 환류 할 수 없으며 그 지속성도 담보할 수 없다. 또한 외부 여성 활동가들도 노동조합 현장과의 괴리가 심해질 수도 있다.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실리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운동적인 고민을 한다면 더 많은 열린 구조를 가져야 할 것이고, 더 많은 열린 의제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여성 활동가들 간의 열린 네트워크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4) 2008년 100주년 3․8 여성의 날을 대중적 공동투쟁의 날로! 2008년 3․8 여성의 날은 100주년을 맞는다. 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 수만 명의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루저스 광장에 모여 10시간 노동제와 안전한 작업환경과 모든 이에게 참정권을 요구하였다. 그 이후에도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고 고통받고 있다. 이에 2008년 3․8 여성 노동자의 날을 맞아 3․8 여성의 날을 단지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라 좀 더 대중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3․8 여성의 날은 10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여성의 문제를 내부에서 다양하고 근본적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비정규직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안에서도 여성 노동자가 다수이고, 여성 노동자 안에서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상황이지만, 현재 노동자 운동 안에서는 (정규직이 대다수인 노동조합에서는) 이 두 가지를 연결하여 고민하지 못하고 있거나, 연결하더라도 낮은 수준에서 고민할 뿐이다. 또한, 비정규직 철폐 운동 역시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고 있고, 비정규직 철폐 투쟁만 열심히 하면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이 쟁취될 수 있다고 본다. 본문으로 2) 만약 여성 노동자의 완전한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사회라면 출산휴가는 주휴일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노동 기본권의 목록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출산휴가가 비록 여성만 사용하는 휴가라고 해도 여성 노동자가 노동자인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그 보편성은 조금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임신․출산을 직․간접적인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사용주의 죄는 진정 사회의 기본 상식에 어긋나는 죄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 김원정, 사회운동포럼 노동자 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 2차 워크샵 발제문「일․가정 양립 논의에서 한국사회 노동자운동의 한계와 과제」중. 본문으로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참가보고
[%=사진1%]
배경
사유화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미 지난 IMF 위기 직후부터 정부는 외환위기와 재정위기를 빌미로 공공부문에서 돈 될 만한 공기업을 앞뒤 가리지 않고 팔아치워 왔다. 그러나 공공부문 사유화는 소유권의 이전을 넘어, 민중이 값싸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에 접근하여 이를 누릴 권리를 제한,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통신부문은 민간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며, 그 결과 사람들은 높은 통신요금과 잦은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력부문은 사유화 시도가 발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부딪쳐 제동이 걸렸으나 최근 다시 주식상장 방식으로 사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철도, 상수도 등이 사유화 단계를 밟고 있다. 특히 상수도는 최근 정부가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긴급한 이슈로 떠올랐다. 먹는 물까지 민간자본의 손에 넘기는 것은 많은 해외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요금 폭등과 수질저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07년 7월 8일~12일 태국에서는 ‘필수서비스(물과 전력)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간 생존의 기본 권리인 물과 전력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현황을 분석하고 공동의 전략과 운동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JS-APMDD)> 주최로 개최되었다. <주빌리사우스>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외채에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운동체이며, 제국주의 지배와 외채, 국제금융기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등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주빌리사우스 아시아태평양>은 특히 IMF, 세계은행과 WTO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강제하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 지역의 반사유화 노동자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투쟁의 핵심 주체로 세우고자 한다. 국내에서 전국공무원노조(이하 공무원노조)와 공공연맹은 2004년부터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참가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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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유화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미 지난 IMF 위기 직후부터 정부는 외환위기와 재정위기를 빌미로 공공부문에서 돈 될 만한 공기업을 앞뒤 가리지 않고 팔아치워 왔다. 그러나 공공부문 사유화는 소유권의 이전을 넘어, 민중이 값싸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에 접근하여 이를 누릴 권리를 제한,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통신부문은 민간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며, 그 결과 사람들은 높은 통신요금과 잦은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력부문은 사유화 시도가 발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부딪쳐 제동이 걸렸으나 최근 다시 주식상장 방식으로 사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철도, 상수도 등이 사유화 단계를 밟고 있다. 특히 상수도는 최근 정부가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긴급한 이슈로 떠올랐다. 먹는 물까지 민간자본의 손에 넘기는 것은 많은 해외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요금 폭등과 수질저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07년 7월 8일~12일 태국에서는 ‘필수서비스(물과 전력)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간 생존의 기본 권리인 물과 전력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현황을 분석하고 공동의 전략과 운동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JS-APMDD)> 주최로 개최되었다. <주빌리사우스>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외채에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운동체이며, 제국주의 지배와 외채, 국제금융기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등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주빌리사우스 아시아태평양>은 특히 IMF, 세계은행과 WTO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강제하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 지역의 반사유화 노동자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투쟁의 핵심 주체로 세우고자 한다. 국내에서 전국공무원노조(이하 공무원노조)와 공공연맹은 2004년부터
국제노동자협회 - 설립, 조직, 정치·사회적 활동, 그리고 성장394)
<번역> 장진범 |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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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협회의 창립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의 직접적 동기가 된 것은 최근 벌어진 폴란드 봉기였다. 런던 노동자들은 파머스턴 경(Lord Palmerston>)에게 호소문을 지닌 대표자를 보내 그가 폴란드 편에서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동시에 그들은 파리의 노동자들에게 연설문을 보내 공동 행동을 취할 것을 요청했다. a파리인들은 런던에 대표자들을 보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1864년 9월 28일 롱 에이커(Long Acre) 성 마르틴 회관에서 공식 집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참석했다.
이 집회에서 국제노동자협회가 탄생했다. 집회를 소집한 정치적 목적 외에도 일반적인 사회적 조건이라는 주제가 제기됐다. 집회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동일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기본적 악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폭로했다. 집회는 모든 노동자들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집회를 통해 임시 중앙 평의회를 선출했는데, 이는 뒤에 총평의회a로 개명되었으며, 소재지는 런던이었고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되었다. 평의회는 장래에 결성될 협회의 중앙 집행부와 (일종의 강령인) 창립 연설의 출판, 그리고 임시 규약의 기초를 임시로 위임받았다.b만장일치와 열광이 집회를 지배했다. 각 나라에서 신망을 얻은 사람들이 대표로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입법부가 노동자들에게 결사의 권리를 부여하도록 강제받았던 1824년 이래.395) 유럽의 다른 지역의 정치·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와 독립적으로 지배계급과 싸웠던 영국노동자들은 이제 처음으로 국내적 고립에서 벗어났으며,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과의 공동 행동 필요성에 동의했다. 열광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회합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것이 노동자운동에서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2. 협회 초창기의 어려움들
새로운 운동들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긴급한 시대적 요구에 응할 것을 요청받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우선 이전부터 새로운 조직들을 그렇게나 자주 좌초시켰으며, 최소한 애초의 진정한 목표에서 벗어나게 한 암초들을 피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왜냐하면 쇠퇴하는 운동 형태의 대표자들이 새로운 운동에 가담하여 이를 낡은 운동의 수단으로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시 중앙 평의회의 이탈리아 구성원들은 마찌니(Mazzini)의 추종자였다. 그들은 마찌니 스스로 입안한 창립 연설과 임시 규약396)초안을 중앙 평의회에 제출했다. 이 연설에서 마찌니는 약간의 사회주의 문구로 꾸며진 그의 낡은 정치 강령을 되풀이했다. 그는 계급투쟁(class struggle)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의 규약은 비밀 정치 결사에 어울리는 엄격히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규약은 애초, 운동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분산된 다양한 나라들의 계급 운동을 단결·결합시키는 것을 구상했던 국제노동자협회의 토대 자체를 파괴했을 것이다.
마찌니는 당시 영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는데, 특히 런던으로 가리발디(Garibaldi)가 개선 방문을 한 이래로 그랬다.397) 따라서 마찌니는 자신이 국제노동자협회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대한 점을 빠뜨렸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성 마르틴 회관의 집회에서 임시 중앙 평의회에 선출된 그는 마찌니에 맞서 자신의 창립 연설과 임시 규약 초안을 제출했다. 마르크스의 초안 두 편은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출판되었으며, 임시 규약은 훗날인 1866년 제네바 대회에서 최종적으로 승인된다.a
따라서 한 독일인이 국제노동자협회에 분명한 방향과 조직적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또 런던의 중앙 평의회가 그 역할을 재차 승인받았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칼 마르크스의 창립 연설.398)
이 연설을 영어 원본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하면, 이하와 같다.
노동자 여러분,
노동자 계급의 비참이 1848년에서 1864년 사이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 반면 이 때가 산업 발전과 상업 성장 면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시기였다는 점은 중대한 사실입니다. 1850년 당시 평균 이상의 정보를 갖고 있는 것 같았던 영국 부르주아지의 온건 기관지는, 만일 영국의 수출입이 50% 오른다면 영국의 극빈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399) 아아! 1864년 4월 7일 영국 재무상 글래드스턴(Gladstone)씨b는 영국의 무역 총 수출입이 1863년에 443,955,000파운드까지 성장했다고 발표하여 청중a을 크게 기쁘게 했는데, 이 액수는 비교적 최근인 1843년 무역의 약 세 배에 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회적 비참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기아의 경계에 있는 이들,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은 임금, 십중팔구는 나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b그는 아일랜드 인민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북부에서는 기계로, 남부에서는 목양장(牧羊場)으로 점차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 불행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양조차, 사람만큼 빠른 속도로는 아니지만, 줄어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는 상위 일만명의 최고위급 대표자들이 갑자기 겁에 질려 막 누설한 사실을 되풀이하지는 않았습니다. 교살강도에 대한 공포(garotte panic)400)가 일정한 수준에 달했을 때, 상원에서는 유형(流刑)과 징역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여 이를 보고서로 출판했습니다. 1863년401)의 두꺼운 청서(Blue Book)에 살인 내용이 실렸는데, 공식적 사실과 수치로 증명됐다시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최악의 범죄자들과 유형 농노들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농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덜 고생하고 훨씬 더 나은 음식을 대접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뿐이 아닙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문에 랭커셔와 체셔의 직공들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동일한 상원이 공장지대에 의사를 보내 기아로 인한 질병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값싸고 형편없는 형태로 공급되던 탄소와 질소의 최소량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의회의 의료 위원인 스미스 박사(Dr. Smith)는 28,000 그레인의 탄소와 1,330 그레인의 질소가 평균적인 성인이 기아로 인한 질병을 겨우 면할 수 있는 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나아가 이 양은 극단적인 곤궁의 압력 때문에 가난한 면직공들이 실제로 처하게 된 빈약한 영양 상태와 아주 근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다가 아닙니다. 동일한 이 박식한 의사에게 정부a는 훗날 다시 노동자 계급의 가장 빈곤한 계층의 영양 상태를 조사하는 임무를 위임했습니다. 그의 조사 결과는 "공중 보건에 관한 6차 보고서"에 실려 있으며, 올해(1864))b 의회의 명령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의사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견직공들, 재봉 여공들, 장갑제조공들, 양말 제조공들 및 여타의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볼 때, 면직공들의 궁핍한 음식조차, "기아로 인한 질병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탄소와 질소 분량조차 얻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보고서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더욱이 조사된 농업 주민 가족들을 보자면, 1/5 이상이 탄소 함유 식품의 추정 적정량 이하를, 1/3 이상은 질소 함유 식품의 추정 적정량 이하를 섭취했으며, 3개 주(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세트셔)에서는 불충분한 질소 함유 식품이 평균적인 지역 식단이었다." 공식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명심해야 할 사실은, 식량 부족은 매우 참기 어렵다는 점, 따라서 대체로 형편없는 식단은 다른 것이 부족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는 점이다." … "심지어 청결조차도 값비싸거나 어려운 일로 판명될 것이며, 만일 청결을 유지하려는 자존(自尊)적인 노력이 남아 있다손 치더라도, 이 같은 모든 노력은 굶주림의 격통이 추가된다는 점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더구나 언급된 빈곤이 게으른 자들이 마땅히 겪어야 할 빈곤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모든 경우가 노동 인구의 빈곤이다. 정말이지, 보잘 것 없는 식량을 얻기 위한 노동이 대개의 경우 과하게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고서는 이상할 뿐더러 예견하지도 못한 사실을 드러냈는데,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의 4개 지역,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중 가장 부유한 지역인 잉글랜드의 농업 인구가 가장 영양상태가 형편없다는 것, 그러나 심지어 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세트셔의 농업 노동자들조차 런던 이스트 엔드 실내의 숙련 직공들 대다수보다 영양상태가 낫다는 게 그것입니다.
국제노동자협회 - 설립, 조직, 정치·사회적 활동, 그리고 성장394)
<번역> 장진범 | 편집부장
[%=박스1%]
1. 협회의 창립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의 직접적 동기가 된 것은 최근 벌어진 폴란드 봉기였다. 런던 노동자들은 파머스턴 경(Lord Palmerston>)에게 호소문을 지닌 대표자를 보내 그가 폴란드 편에서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동시에 그들은 파리의 노동자들에게 연설문을 보내 공동 행동을 취할 것을 요청했다. a파리인들은 런던에 대표자들을 보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1864년 9월 28일 롱 에이커(Long Acre) 성 마르틴 회관에서 공식 집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참석했다.
이 집회에서 국제노동자협회가 탄생했다. 집회를 소집한 정치적 목적 외에도 일반적인 사회적 조건이라는 주제가 제기됐다. 집회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동일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기본적 악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폭로했다. 집회는 모든 노동자들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집회를 통해 임시 중앙 평의회를 선출했는데, 이는 뒤에 총평의회a로 개명되었으며, 소재지는 런던이었고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되었다. 평의회는 장래에 결성될 협회의 중앙 집행부와 (일종의 강령인) 창립 연설의 출판, 그리고 임시 규약의 기초를 임시로 위임받았다.b만장일치와 열광이 집회를 지배했다. 각 나라에서 신망을 얻은 사람들이 대표로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입법부가 노동자들에게 결사의 권리를 부여하도록 강제받았던 1824년 이래.395) 유럽의 다른 지역의 정치·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와 독립적으로 지배계급과 싸웠던 영국노동자들은 이제 처음으로 국내적 고립에서 벗어났으며,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과의 공동 행동 필요성에 동의했다. 열광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회합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것이 노동자운동에서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2. 협회 초창기의 어려움들
새로운 운동들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긴급한 시대적 요구에 응할 것을 요청받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우선 이전부터 새로운 조직들을 그렇게나 자주 좌초시켰으며, 최소한 애초의 진정한 목표에서 벗어나게 한 암초들을 피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왜냐하면 쇠퇴하는 운동 형태의 대표자들이 새로운 운동에 가담하여 이를 낡은 운동의 수단으로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시 중앙 평의회의 이탈리아 구성원들은 마찌니(Mazzini)의 추종자였다. 그들은 마찌니 스스로 입안한 창립 연설과 임시 규약396)초안을 중앙 평의회에 제출했다. 이 연설에서 마찌니는 약간의 사회주의 문구로 꾸며진 그의 낡은 정치 강령을 되풀이했다. 그는 계급투쟁(class struggle)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의 규약은 비밀 정치 결사에 어울리는 엄격히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규약은 애초, 운동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분산된 다양한 나라들의 계급 운동을 단결·결합시키는 것을 구상했던 국제노동자협회의 토대 자체를 파괴했을 것이다.
마찌니는 당시 영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는데, 특히 런던으로 가리발디(Garibaldi)가 개선 방문을 한 이래로 그랬다.397) 따라서 마찌니는 자신이 국제노동자협회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대한 점을 빠뜨렸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성 마르틴 회관의 집회에서 임시 중앙 평의회에 선출된 그는 마찌니에 맞서 자신의 창립 연설과 임시 규약 초안을 제출했다. 마르크스의 초안 두 편은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출판되었으며, 임시 규약은 훗날인 1866년 제네바 대회에서 최종적으로 승인된다.a
따라서 한 독일인이 국제노동자협회에 분명한 방향과 조직적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또 런던의 중앙 평의회가 그 역할을 재차 승인받았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칼 마르크스의 창립 연설.398)
이 연설을 영어 원본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하면, 이하와 같다.
노동자 여러분,
노동자 계급의 비참이 1848년에서 1864년 사이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 반면 이 때가 산업 발전과 상업 성장 면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시기였다는 점은 중대한 사실입니다. 1850년 당시 평균 이상의 정보를 갖고 있는 것 같았던 영국 부르주아지의 온건 기관지는, 만일 영국의 수출입이 50% 오른다면 영국의 극빈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399) 아아! 1864년 4월 7일 영국 재무상 글래드스턴(Gladstone)씨b는 영국의 무역 총 수출입이 1863년에 443,955,000파운드까지 성장했다고 발표하여 청중a을 크게 기쁘게 했는데, 이 액수는 비교적 최근인 1843년 무역의 약 세 배에 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회적 비참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기아의 경계에 있는 이들,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은 임금, 십중팔구는 나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b그는 아일랜드 인민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북부에서는 기계로, 남부에서는 목양장(牧羊場)으로 점차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 불행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양조차, 사람만큼 빠른 속도로는 아니지만, 줄어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는 상위 일만명의 최고위급 대표자들이 갑자기 겁에 질려 막 누설한 사실을 되풀이하지는 않았습니다. 교살강도에 대한 공포(garotte panic)400)가 일정한 수준에 달했을 때, 상원에서는 유형(流刑)과 징역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여 이를 보고서로 출판했습니다. 1863년401)의 두꺼운 청서(Blue Book)에 살인 내용이 실렸는데, 공식적 사실과 수치로 증명됐다시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최악의 범죄자들과 유형 농노들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농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덜 고생하고 훨씬 더 나은 음식을 대접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뿐이 아닙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문에 랭커셔와 체셔의 직공들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동일한 상원이 공장지대에 의사를 보내 기아로 인한 질병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값싸고 형편없는 형태로 공급되던 탄소와 질소의 최소량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의회의 의료 위원인 스미스 박사(Dr. Smith)는 28,000 그레인의 탄소와 1,330 그레인의 질소가 평균적인 성인이 기아로 인한 질병을 겨우 면할 수 있는 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나아가 이 양은 극단적인 곤궁의 압력 때문에 가난한 면직공들이 실제로 처하게 된 빈약한 영양 상태와 아주 근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다가 아닙니다. 동일한 이 박식한 의사에게 정부a는 훗날 다시 노동자 계급의 가장 빈곤한 계층의 영양 상태를 조사하는 임무를 위임했습니다. 그의 조사 결과는 "공중 보건에 관한 6차 보고서"에 실려 있으며, 올해(1864))b 의회의 명령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의사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견직공들, 재봉 여공들, 장갑제조공들, 양말 제조공들 및 여타의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볼 때, 면직공들의 궁핍한 음식조차, "기아로 인한 질병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탄소와 질소 분량조차 얻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보고서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더욱이 조사된 농업 주민 가족들을 보자면, 1/5 이상이 탄소 함유 식품의 추정 적정량 이하를, 1/3 이상은 질소 함유 식품의 추정 적정량 이하를 섭취했으며, 3개 주(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세트셔)에서는 불충분한 질소 함유 식품이 평균적인 지역 식단이었다." 공식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명심해야 할 사실은, 식량 부족은 매우 참기 어렵다는 점, 따라서 대체로 형편없는 식단은 다른 것이 부족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는 점이다." … "심지어 청결조차도 값비싸거나 어려운 일로 판명될 것이며, 만일 청결을 유지하려는 자존(自尊)적인 노력이 남아 있다손 치더라도, 이 같은 모든 노력은 굶주림의 격통이 추가된다는 점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더구나 언급된 빈곤이 게으른 자들이 마땅히 겪어야 할 빈곤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모든 경우가 노동 인구의 빈곤이다. 정말이지, 보잘 것 없는 식량을 얻기 위한 노동이 대개의 경우 과하게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고서는 이상할 뿐더러 예견하지도 못한 사실을 드러냈는데,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의 4개 지역,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중 가장 부유한 지역인 잉글랜드의 농업 인구가 가장 영양상태가 형편없다는 것, 그러나 심지어 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세트셔의 농업 노동자들조차 런던 이스트 엔드 실내의 숙련 직공들 대다수보다 영양상태가 낫다는 게 그것입니다.
독자평을 덥석 쓰겠다고 말하고 나서 여간 후회한 것이 아니었다. 매번 편집위원회 회의를 통해 『월간 사회운동』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고 편집위원인 내가 제대로 된 독자평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여간 망설여지지 않았다. 한참 고민 끝에 쓴소리를 포함한 제대로 된 독자평은 포기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읽었던 글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이게 무슨 독자평이냐고 불평과 불만을 터뜨릴 분이 계시겠지만 양해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이번 『월간 사회운동』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글은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칼럼 및 인터뷰,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이랜드-뉴코아 투쟁까지 우선 이번 호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소중한 칼럼과 인터뷰가 실렸다. 이 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노동자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노동자라는 점이었다. 정경원의 칼럼과 노옥희의 인터뷰는 87년 노동자들이 왜, 어떻게 싸웠고, 무엇을 성과로 남겼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현재적 의미와 현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87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조직인 민주노조를 결성하거나,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는 등 온전한 노동 3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87년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단결의 무기로 민주적 노동조합을 만들어냈고, 노동자 스스로 '불순세력'이 되어 '외부세력'과의 연대의 정신을 실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바로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이며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글 모두 87년에 대한 이러한 기록과 기억들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에 머무르기보다는 87년의 단결과 연대의 정신의 복원을 통해 현재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데 자양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 모두 경청하고, 고민하며, 실천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남신의 인터뷰는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곧바로 극히 취약한 고용 관계에 노출된다. 노동자는 고용 안정성의 상실에 더해 사회적 안정성까지 상실당한 상태에 처한다.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노동 기본권을 집단적으로 대변하고 방어할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당한 상태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런 상태가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그 실상이 그대로 소개된다면, 아마도 모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저렇게 되지는 말자"고 혀를 찰 것이다. 이번 이랜드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제 노동단체의 주요 관계자가 하나같이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라. 이번 이랜드 사태는 단순히 악덕한 개별 자본과 힘없는 개별 노동 간의 대립이라는 협소한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이 사태는 현 정부 내내 지난한 진통을 겪으며 겨우 입법화를 이룬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의 내용이, 실상 '보호'를 명분으로 한 번지르르한 입법 취지와 달리 현실적으로 상당한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비정규직도 2년 후에 반드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규정은 2년이 되기 전에 마음껏 해고의 자유를 누리는 사용자들의 해고 남용을 제어할 수단이 없고서는,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고용 시작 단계에서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입법 과정에서 이런 경고가 계속 나왔으나 모르쇠로 일관한 정부는 뒤늦게 허둥대는 꼴이다. 또한 이번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핵심 노동이 아니라 주변화된 노동,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가 아닌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는 여성노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몰려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이랜드 사측은 핵심적인 업무로 생각하지 않고, 외주화로 더 낮은 임금의 여성노동자를 고용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1)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전반의 지배적인 관념과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 변화시켜내지 못하면 이랜드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한편 인터뷰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다. 이랜드 뉴코아 투쟁의 쟁점과 기본적 내용을 좀 더 설명해주는 글과 인터뷰가 같이 실렸으면 인터뷰에서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바라보는 사회진보연대의 색다른 시각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갈증이 남는 인터뷰였다.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와 인터뷰이께서 소중한 시간을 내고 발로 뛰어 만든 현장감 있는 인터뷰인데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비정규 투쟁의 전망에 대한 보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민족주의는 인민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적 정치이념의 주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인민주의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취약한 상황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기도 한다.2 민족주의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 임필수 집행위원장의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다? - 남북한의 종족적 민족주의와 '단일민족'의 환상」이다. 이 글은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진로> 3월호에 실린 글로 인해 촉발된 논쟁을 계기로 남북한을 비롯한 동북아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과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민족 고유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혼혈과 이주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유럽의 극우세력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민족의 기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며, 민족의 순수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철저히 '야만적 이상'에 불과"하다.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민족, 즉 민족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의 민족에 주목하면서 특히 종족적 신화와 상징이 민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민족의 종족적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 이전의 민족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구성될 따름이다. 국경(border)이 아니라 변경(frontier)만 존재할 따름인 세계제국에서는 다종족주의가 일반적인데 '민족의 순수화(정화)', '종족적 순수성'이라는 반동적 해결책은 '야만적 이상'인 것이다.3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서며 민족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각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우경화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미국의 패권주의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의 민족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는 이 글은 민족주의 이론에 천착할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월간 사회운동의 힘찬 도움닫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게 해 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서평이 7/8월호에서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9월호부터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기획 서평이 실린다고 하니 큰 기대를 걸어본다. 또한 2007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얻게 될 사회진보연대의 운동적 고민과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회원들과 함께 사회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월간 사회운동』 9월호를 기대해 본다. 1)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한 크리스 틸리(Chris Tilly) 교수는 8월 21일「Wal-Mart and Its Workers」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캐셔(계산원) 외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캐셔를 외주화한다고요? 월마트 주요 관리자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겁니다. 돈을 다루는 업무를 외주화 하겠다니…. 한국 유통업체들이 캐셔 외주화에 성공한다면, 월마트 관계자들이 한 수 배우러 찾아오겠는데요. '비용절감을 위한 일자리 악화'로 대표되는 월마트식 모델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조차 유통업종 내 외주화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통업종의 핵심 업무인 계산업무의 외주화는 전혀 시도된 바 없습니다." 본문으로 2)윤소영, 2007, 「민족주의 비판」,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본문으로 3)위의 글.본문으로
독자평을 덥석 쓰겠다고 말하고 나서 여간 후회한 것이 아니었다. 매번 편집위원회 회의를 통해 『월간 사회운동』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고 편집위원인 내가 제대로 된 독자평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여간 망설여지지 않았다. 한참 고민 끝에 쓴소리를 포함한 제대로 된 독자평은 포기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읽었던 글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이게 무슨 독자평이냐고 불평과 불만을 터뜨릴 분이 계시겠지만 양해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이번 『월간 사회운동』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글은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칼럼 및 인터뷰,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이랜드-뉴코아 투쟁까지 우선 이번 호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소중한 칼럼과 인터뷰가 실렸다. 이 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노동자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노동자라는 점이었다. 정경원의 칼럼과 노옥희의 인터뷰는 87년 노동자들이 왜, 어떻게 싸웠고, 무엇을 성과로 남겼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현재적 의미와 현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87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조직인 민주노조를 결성하거나,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는 등 온전한 노동 3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87년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단결의 무기로 민주적 노동조합을 만들어냈고, 노동자 스스로 '불순세력'이 되어 '외부세력'과의 연대의 정신을 실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바로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이며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글 모두 87년에 대한 이러한 기록과 기억들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에 머무르기보다는 87년의 단결과 연대의 정신의 복원을 통해 현재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데 자양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 모두 경청하고, 고민하며, 실천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남신의 인터뷰는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곧바로 극히 취약한 고용 관계에 노출된다. 노동자는 고용 안정성의 상실에 더해 사회적 안정성까지 상실당한 상태에 처한다.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노동 기본권을 집단적으로 대변하고 방어할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당한 상태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런 상태가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그 실상이 그대로 소개된다면, 아마도 모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저렇게 되지는 말자"고 혀를 찰 것이다. 이번 이랜드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제 노동단체의 주요 관계자가 하나같이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라. 이번 이랜드 사태는 단순히 악덕한 개별 자본과 힘없는 개별 노동 간의 대립이라는 협소한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이 사태는 현 정부 내내 지난한 진통을 겪으며 겨우 입법화를 이룬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의 내용이, 실상 '보호'를 명분으로 한 번지르르한 입법 취지와 달리 현실적으로 상당한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비정규직도 2년 후에 반드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규정은 2년이 되기 전에 마음껏 해고의 자유를 누리는 사용자들의 해고 남용을 제어할 수단이 없고서는,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고용 시작 단계에서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입법 과정에서 이런 경고가 계속 나왔으나 모르쇠로 일관한 정부는 뒤늦게 허둥대는 꼴이다. 또한 이번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핵심 노동이 아니라 주변화된 노동,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가 아닌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는 여성노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몰려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이랜드 사측은 핵심적인 업무로 생각하지 않고, 외주화로 더 낮은 임금의 여성노동자를 고용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1)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전반의 지배적인 관념과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 변화시켜내지 못하면 이랜드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한편 인터뷰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다. 이랜드 뉴코아 투쟁의 쟁점과 기본적 내용을 좀 더 설명해주는 글과 인터뷰가 같이 실렸으면 인터뷰에서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바라보는 사회진보연대의 색다른 시각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갈증이 남는 인터뷰였다.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와 인터뷰이께서 소중한 시간을 내고 발로 뛰어 만든 현장감 있는 인터뷰인데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비정규 투쟁의 전망에 대한 보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민족주의는 인민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적 정치이념의 주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인민주의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취약한 상황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기도 한다.2 민족주의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 임필수 집행위원장의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다? - 남북한의 종족적 민족주의와 '단일민족'의 환상」이다. 이 글은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진로> 3월호에 실린 글로 인해 촉발된 논쟁을 계기로 남북한을 비롯한 동북아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과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민족 고유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혼혈과 이주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유럽의 극우세력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민족의 기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며, 민족의 순수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철저히 '야만적 이상'에 불과"하다.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민족, 즉 민족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의 민족에 주목하면서 특히 종족적 신화와 상징이 민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민족의 종족적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 이전의 민족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구성될 따름이다. 국경(border)이 아니라 변경(frontier)만 존재할 따름인 세계제국에서는 다종족주의가 일반적인데 '민족의 순수화(정화)', '종족적 순수성'이라는 반동적 해결책은 '야만적 이상'인 것이다.3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서며 민족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각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우경화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미국의 패권주의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의 민족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는 이 글은 민족주의 이론에 천착할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월간 사회운동의 힘찬 도움닫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게 해 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서평이 7/8월호에서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9월호부터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기획 서평이 실린다고 하니 큰 기대를 걸어본다. 또한 2007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얻게 될 사회진보연대의 운동적 고민과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회원들과 함께 사회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월간 사회운동』 9월호를 기대해 본다. 1)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한 크리스 틸리(Chris Tilly) 교수는 8월 21일「Wal-Mart and Its Workers」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캐셔(계산원) 외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캐셔를 외주화한다고요? 월마트 주요 관리자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겁니다. 돈을 다루는 업무를 외주화 하겠다니…. 한국 유통업체들이 캐셔 외주화에 성공한다면, 월마트 관계자들이 한 수 배우러 찾아오겠는데요. '비용절감을 위한 일자리 악화'로 대표되는 월마트식 모델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조차 유통업종 내 외주화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통업종의 핵심 업무인 계산업무의 외주화는 전혀 시도된 바 없습니다." 본문으로 2)윤소영, 2007, 「민족주의 비판」,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본문으로 3)위의 글.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