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故 허세욱 열사의 49재 집회가 열렸다. 연단에 오른 많은 이들이 죄스럽다는 얘기를 했고 나 역시 그랬다. 메이데이나 5·18 집회 등이 있긴 했지만, 허세욱 열사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한미 FTA 반대를 내걸고 개최한 사실상 최초의 대중 집회였기 때문이다. 협상이 어떤 식으로든 타결되고 나면, 이미 지난 일인데 시비를 가려봐야 뭐하느냐 하는 분위기 때문에 투쟁의 파고가 일시적으로 잦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정부가 협상문 공개를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에서, 협상문이 공개될 때까지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지지 못한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객관적 이유를 헤아린 다음에도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었으니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논리로 빠져나갈 수 있는 죄책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한미 FTA 폐기, 노무현 정권 퇴진’이라는 열사의 유지를 실현하지 못하는 우리 운동의 가난함, 그 무력함에 대한 서러움이 이 죄책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한미 FTA를 둘러싼 갈등과 민중의 몫소리가 정치적 논쟁의 장에서 밀려난 다음, 청와대와 보수언론이, 노무현과 한나라당이, <참평포럼>과 ‘중도통합세력’이 권력을 둘러싸고 벌이는 이전투구만이 연일 언론을 뒤덮으면서, 발본적이고 정치적인 갈등에 대한 동참과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대중들에게도 우리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회운동』 75호에서는 74호에 이어 FTA와 신자유주의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실었다. 이번 호에서는 특히 사례를 중심으로 한 비판을 담았다. 특집에서는 5월말 6월초에 산별 출범 이후 최초의 임단투를 앞두고 있는 산별 노조의 현실과 쟁점을 다뤘다. 이번 호부터 몇몇 꼭지가 신설되었다. 다른 사회운동들과의 대화와 토론을 적극적으로 벌이는 공간으로 <기획>을 신설했고, 그 첫 번째 순서로 농민운동의 전망과 식량 주권 문제를 다뤘다. 또 독자들이 『사회운동』의 글에 관해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의 하나로 <독자평>을 신설했으며, 지금까지 주로 집행위원들 중심으로 작성되었던 <갈월동 기행>도 회원들이 『사회운동』과 <사회진보연대>, 그리고 민중운동 전반에 대한 의견을 담는 꼭지로 성격을 변경하였다. <책과 나> 역시 회원들이 기획하는 꼭지로 재출발하고, <사회진보연대>의 일상적 활동을 보고하는 <갈월동 통신>을 신설하였다. 이와 함께 조만간 그동안 요구가 많았던 교육 관련한 꼭지를 신설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협상문은 공개되었고, 6월 말 부시와 노무현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으며, 한미 FTA 반대를 핵심 기치로 하는 금속노조 파업과 한미 FTA 전면 무효화 총궐기 등 대중투쟁 계획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논쟁과 투쟁을 일으킬 때다. “민주주의의 정통은 노사모에 있었다.”는 오만방자한 노무현과 지배계급에게서 민주주의를 되찾아 오자.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들, 그리고 시민들 간의 너른 대화와 토론 공간을 만들어 내자. 그 길에서 『사회운동』이 자그마한 몫이라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장 진 범 | 편집부장
20년 전 6월 10일, 명동성당 청년단체 연합회 소속 조그만 단체의 회원이자 증권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던 나는 시청에서 열리기로 했던 6·10 국민대회(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결성 이후 첫 국민대회)에 참가하려 했다가 하루 종일 최루탄과 백골단을 피해 이리저리 쫓겨 다녔다. 물론 국민대회는 보지도 못했다. 당시엔 오늘날처럼 합법적으로 집회신고를 하고 성대하게 국민대회를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어서, 중간에 성공회교회 안에서 국본 주요 지도자들 몇 분이 모여 국민대회를 치렀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도 대회는 치렀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을지로 입구 근처에서 텅 빈 거리를 보며 오늘 투쟁도 이걸로 끝나나 하며 아쉬워하고 있던 차, 퇴계로에선 아직 싸움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급히 퇴계로로 달려갔다. 깨진 돌과 돌을 실어 나르는 데 쓰인 리어카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많은 시위대들로 거리는 어지러웠지만 퇴계로는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그리고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진압경찰을 격퇴시키기 위해 여기저기서 날아다니는 화염병으로 거리는 오히려 환했다. 여길 못 들르고 집에 갔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뒤 시위대는 조금 더 싸운 뒤 자연스럽게 명동성당 안으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명동성당이 퇴계로와 거리도 가까운 까닭도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명동성당과 천주교회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발언과 행동을 곧잘 했기 때문에 시위대가 명동성당을 자연스럽게 농성 장소로 선택한 듯하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니던 복음주의적 개신교회를 대학에 온 후 어렵게 작파하고 교회를 한동안 다니지 않다가 군대에서 ‘졸병’의 권유가 있었긴 하지만 부대 근처 가까운 천주교회인 명동성당엘 나가기 시작한 데에도 천주교회와 명동성당의 이런 모습이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6월 항쟁의 시작은 이랬다. 물론 이 날이 있기까지는 광주항쟁 이후 야당과 재야 및 학생운동 세력의 지속된 투쟁이 있었다. 굵직굵직한 것만 꼽아보아도 김영삼 26일 단식사건, 미 문화원 점거 투쟁, 신민당 결성 및 2·12 총선 투쟁과 개헌현판식 투쟁, 인천 대우자동차 투쟁, 구로 동맹파업 투쟁, ‘서울대 연합시위 사건’, ‘인천 사태’와 이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일어난 권인숙씨 성고문에 대한 규탄 투쟁, 대학생 전방입소 거부 투쟁, ‘건대 사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투쟁’ 등 무수하다. 이런 투쟁이 있을 때마다 정권이 텔레비전 특집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장과 학원가에 침투한 좌경용공 세력’ 운운하며 반공이데올로기를 전 국민에게 주입시켜도 투쟁은 연이어 일어났다. 그리고 많은 조직이 생겼으며, 꼭 열혈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투쟁 과정에서 경찰서와 감옥엘 들락거려야 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투쟁은 두 차례(1987년 2월 7일, 3월 3일) 열렸는데 이 때 경찰에 잡혀 들어간 시위대 숫자가 각각 3~4천 명을 족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운동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서 조직내외를 오가는 중요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어서 정확한 이야기는 아닐 수 있겠으나, 명동성당 농성은 요즘의 농성처럼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물론 농성자들 중에 일부 그런 생각을 가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당시에는 심야 투쟁이 일반적이어서 그 자연스러운 연장으로 농성 투쟁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리고 이후 중요한 투쟁 시기까지 투쟁 에너지를 이어간다는 정도로 농성 투쟁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농성 첫날을 함께 했는데, 선전홍보나 농성단 뒷바라지 등을 명동성당 청년단체 연합회원들이 분담했던 것만 보아도 농성 주체들이 사전에 튼튼히 준비된 것은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명동성당 농성을 지속하여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를 철회시키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지 않았나 싶다. 당연히 국본 주요 관계자들이 결합하거나 결합하게 하려는 노력조차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농성 시작 초기에는 성당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긴 했지만 들어오려고 마음만 먹으면 들어올 수는 있었고, 명동성당 안에 들어온 사람들도 ‘문화관’에서 농성을 하는 농성대오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다. 지나가는 이야기이지만, 명동성당 농성 대오에서 한 명의 ‘스타’를 배출했는데, 바로 아직도 활동을 하고 계시는 ‘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선생이시다. 그는 젊은 사람들 속에 있는 몇 안 된 나이 드신 분이었고 머리가 하해서 쉽게 눈에 띄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연설 솜씨나 발언 내용이 빼어나 농성단 안에서 유명해졌다. 그 분은 농성단 첫날 회의에서부터 매우 조리 있고 내용 있는 발언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는데, 초자 활동가인 나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명동성당 청년단체에서 배정받은 선전홍보팀의 일원으로 밤에 잠깐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난 첫날 농성을 하고 아침에 명동성당을 나와 을지로 입구 근처 회사에 출근했다가 퇴근 후 비밀스러운 길을 따라 명동성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선명한 사진으로 박혀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당시 명동성당 주변 을지로 등지에는 명동성당으로 들어가려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낮부터 공방이 있었고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다. 당연히 길거리에는 사람들도 평소보다 적었다. 그런데 어렵게 성당 안으로 들어갔더니 성당 마당의 하얀 돌과 벽돌들 위로는 아직 채 지지 않은 6월의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앉거나 혹은 서거나 각자 자유로운 포즈로 약간의 승리감에 젖어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거기다 여기저기서 지원을 해서인지 성당 마당 여기저기 빵이 널려 있거나 쌓여 있거나 했다. 자욱하고 매캐한 최루탄 연기로 뒤덮인 바깥 거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성당 안의 평화롭고 안온한 분위기. 한마디로 명동성당은 또 다른 해방구였던 것이다.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에서 오현우와 한윤희가 숨어살던 갈뫼의 분위기와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시끄러운 세상과 격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지극한 평화와 안온이라는 면에서 말이다. 아무튼 투쟁으로 쟁취한, 그리고 투쟁열기가 가득했던 해방구 퇴계로와 명동성당 안의 평화로운 해방구, 둘 다 87년 투쟁에서 잊지 못할 장면이다. 앞에서도 약간 비쳤지만, 당시의 투쟁은 요즘처럼 몇 시에 시작해서 몇 시에 정리 집회를 하는 식의, 일정한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의식(儀式)처럼 진행하는 박제화된 집회나 투쟁이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경찰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싸웠고, 을지로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퇴계로나 종로에서도 열심히 싸우고 있겠지’ 하며 싸웠고, 퇴계로나 종로에 있는 사람들은 ‘을지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하고 싸웠다. 그리고 결의에 차 있었지만 신나게 싸웠다. 멀리 있는 백골단에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흡사 멋들어진 춤사위였고, 얼굴 표정은 자기가 세운 계획에 따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표정, 즉 결의와 성취감이 교차하는 표정 딱 그것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신나게 열심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확실히 최루탄과 백골단의 공이 컸다. 싸우다 운이 없으면 잡히기야 하겠지만 앞에서 날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과 그 책임자인 파쇼 전두환을 그냥 두고 뒤돌아 집에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87년 이후 도입된, 신고만으로 합법집회가 가능하게 된 집회신고제, 백골단 해체, 최루탄 미사용 등의 제도 변화나, 문민정권의 등장과 같은 일들은 민주적 공간을 넓힌 계기이기도 하지만 운동세력을 순치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후자의 측면이 훨씬 더 커 보인다. 그런데도 운동세력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분위기 속에서 별 생각 없이 순치의 길을 달려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당시의 집회나 투쟁은 이렇다 할 의식(儀式)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의식을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거리낌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요즘, 조직원만의 모임이 아니라 대중 집회나 대중투쟁이 의식(儀式)처럼 진행되는 것은 문제다. 의식(儀式)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수단이 되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연단, 연설, 노래, 동작, 행진, 깃발, 투쟁방식 등 모든 부면에서. 대중 집회나 대중투쟁이 의식을 집전하고 의식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의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명동성당은 촛불집회, 점심시간을 이용한 인근 지역 직장인들의 방문, 명동 일대에서 벌어진 화이트칼라의 시위, 농성단 해산, 6월 18일 대규모 2차 국민대회 등으로 이내 뚫렸다. 인천 답동 성당과 부산의 어디에선가도 농성이 진행되었지만 국면은 분명 농성 국면은 아니었다. 6월 18일과 6월 26일의 2, 3차 국민대회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민중들의 대거 진출이 있었던 것이다. 6월 18일 대회에서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장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신세계 앞 분수대 사건. 신세계 앞 분수대를 사이에 두고 남대문 시장과 신세계 앞 일대의 시위대와 최루탄 발사기로 무장한 채 소공동 쪽에 포진해 있던 전경들 사이에 돌과 최루탄으로 일진일퇴의 공방이 있었는데, 순간 전경들이 분수대까지 밀고 들어오자 시위대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돌과 육탄전을 이용해 상당히 많은 수의 전경들을 고립시켜 장비도 회수하고 전경들을 분수대에 빠뜨려 버렸다. 그 때까지 만날 전경들에게 쫓겨 다니기만 했던 시위대들은 분수대에 빠진 전경들을 보고 무척 통쾌해 했다. 우리가 이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조금 있다가 더 많은 전경들이 와서 다시 쫓겨나긴 했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부산 시위 소식. 한참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저녁 네다섯 시 무렵이었을까? 식사를 하러 들어간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식당 안 텔레비전에서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노도와 같은 시위대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어디 몇 천, 어디 몇 만’ 하는 보도가 이어졌는데, 부산 시위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규모도 10만 명으로 가장 많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인상적인 것은 화면으로 전해진 시위대의 분노와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부산 시위대의 모습을 보고 ‘이 정도면 이제 우리가 승기를 잡은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신세계 앞 분수대에서의 일시적이나마 작은 승리와 부산의 노도와 같은 시위대로 인해, 6월 18일은 6월 항쟁의 결정적인 날이 되었다. 6월 18일 이후 6월 26일에 다시 한 번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마침내 지배세력이 6·29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연이어 7월에서 9월 사이에 세계 역사상 그 유례가 드문 대규모 노동자 파업투쟁이 일어났다. 그러면 당시 민중들은 왜 그렇게 떨쳐 일어났을까? 지금은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인명진 목사가 대변인이었던 국본이 결성되자마자, 국민대회를 몇 번 개최하지도 않았는데도 지배세력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민중들이 대대적으로 진출한 이유를 허약하디 허약한 국본의 지도력과 조직력에서 찾을 수는 없다. 국본은 대대적으로 진출할 결의에 차 있는 민중들에게 판을 열어주었을 뿐이다. 민중들은 분명히 그 이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2·12 총선과 개헌 현판식에 몰려든 민중들, 그리고 경찰서에 끌려가는 것을 불사하고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투쟁에 몰려든 민중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이유로는 우선 전두환 등 지배 세력의 파쇼 통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자유는 전혀 없었고, 오로지 최루탄, 경찰력, 군대, 정보기관의 사찰 등 억압적 국가기구에 의해 정권이 유지되었고, 정권이 불러주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떠벌이는 관제 언론 및 어용 지식인만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숱한 사람들이 군대에서, 학원가에서, 공장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민중들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이런 파쇼 통치를 참을 수 없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둘째로는 경제적 모순의 심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파쇼통치의 많은 부분도 이 경제적 원인과 연관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한국 자본주의는 이윤율이 하락하고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게 된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뒤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강력한 경제위기 극복책을 시행해나간다. 노동법 개악, 정부 부문에서 대규모 해고 단행, 퇴직금 제도 개악, 임금 억제 정책과 같은 노동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였고, 물가를 강력히 통제하였다(전두환 정권이 벌인 ‘3대 부정심리 추방운동’ 목록에는 ‘물가오름세 심리’도 들어있었다). 1986~7년에는 이런 공격과 1986년부터 불어 닥친 3저로 인해 자본의 이윤율이 급격히 개선되고 있었는데도, 이전부터 진행된 노동에 대한 공격과 임금 억제책은 지속되고 있었다. 내수침체로 자영업자들의 상태는 매우 안 좋았고, 수출대기업은 조출, 잔업, 노동 강도 강화로 노동자들을 혹사시켜 컬러텔레비전과 VCR을 계속 실어내 떼돈을 버는데 정작 그것을 만든 노동자는 빈털터리였다. 자영업자들과 사무 관리직들이 시위에 참가하였고, 노동자들도 7월~9월에 작업장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투쟁을 벌이기 전, 6월 항쟁 거리시위에도 개별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민중들의 대대적인 진출에는 이런 정치적·경제적 배경이 있었고, 1986년 2월 진행된 필리핀 민중혁명과 마르코스 축출도 한국 민중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1987년 투쟁에서 민중들은 무엇을 원했는가? 그리고 그것을 쟁취했는가? 부산 시위대의 투쟁에서부터 얘기를 풀어보기로 하자. 우선 1987년 6월 항쟁에서 부산 시위대 규모가 커진 것은 김영삼과 연결해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김대중을 빼고 광주 개헌 현판식에 몰려든 사람들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데 이 부산 시위대들이 김영삼을 지지하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통해 김영삼을 대통령 시키려고 대거 시위에 나섰을까? 난 그랬을 수 있었다고 본다. 아니 그랬다고 이야기하는 게 사태를 더 정확히 보는 것일 테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아가 보자. 그러면 이들은 단지 김영삼을 대통령을 시키는 것 그 자체을 목적으로 삼았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 답은 ‘아니오’다. 그들은 김영삼을 통해서 자신들의 특정한 요구를 실현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파쇼 세력과 기구의 일소를 비롯한 민주주의의 신장 및 제 권리의 확대와 경제적 형편의 개선과 억압과 착취의 제한 및 철폐 등이었을 것이다. 김영삼은 이들의 요구에 부응했는가? 그 이후 정치적 과정을 보면 김영삼은 이들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물론 김대중도 6월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자신의 지지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전두환의 정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정책을 실시했고, 민중 생활의 어떤 측면에서는 전두환 때보다 더 못해지기까지 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카드는 노동자 민중들의 희생 하에 자본의 이윤율을 회복시키자는 ‘신자유주의’라는 카드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6월 항쟁에 참여하였을 민중들은 김영삼에게 실망한 뒤에는 김대중을 지지하고, 김대중에게 실망한 뒤에는 노무현을 지지하고, 이젠 노무현에 실망하고 이명박을 지지하려 하고 있다. 왜 민중들은 계속해서 배반당하면서도 비슷한 정치인을 계속해서 지지하고 있는가? 혹은 속을 줄 알면서도 지지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왜 그렇게 생명력이 강한 것인가?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을 알면 이 글의 제목에 넋두리라는 단어가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넋두리삼아 몇 마디 해 본다면 그 이유는 대안적 이데올로기, 즉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실질적 부재 때문이 아닐까? 이번 프랑스 선거를 보면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치세력의 몰락은 그 끝이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강력하던 프랑스 공산당이 2%의 지지도 못 얻었으니…. 임시변통은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 또는 다른 좌파 후보가 일정한 지지를 얻고 더 나아가서 그 이후 선거에서 오늘날 이명박의 자리를 넘겨받을 수도 있을지라도, 그것이 대수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민중들의 해방의 열망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없다면 민중들의 봉기를 맞이해서도 민중들의 해방의 열망을 여기저기로 흘려버릴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1987년 6월의 퇴계로와 명동성당의 해방구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 즈음에 1987년을 경험한 ‘87년의 자식들’ 중의 하나로 ‘운동’에 뛰어들어 20여 년이 흐른 지금, 답답해 자문해 본다.
산별 제도화인가 계급주체 형성인가 [좌담]산별노조와 지역운동, 시작과 경로를 찾아
들어가며 2007년은 작년 산별전환 투표를 통해 대규모 사업장을 산별체계로 전환시킨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금속노조)’의 첫해다. 그만큼 노동운동 내외적으로 많은 주목과 기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금속노조는 전노협 시절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부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그 성과와 한계가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산별운동을 평가할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려할 만한 상황이 연달아 발생했다. 하나는 하이닉스 사내하청 노동자투쟁에 관해 사측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금속노조 중앙이 과도하게 개입하여 위로금을 받는 것으로 합의한 사건이다. 이는 즉각 활동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노동자의 자존심을 돈받고 팔아넘겼다”, “금속노조 중앙의 일방적인 직권조인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대책위까지 만들어져 현장에서 ‘하이닉스 직권조인 합의서 폐기 서명’에 들어가는 등 비판과 항의가 지속되고 있다. 이 사건은 금속노조 집행부의 핵심이라고 할 수석부위원장의 직권조인 때문에 불거진 것으로,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협약체결 원칙과도 전혀 어긋나는 행동이다. ‘산별교섭’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별교섭을 위한 최소한의 내부적인 절차를 어기는 이중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현 금속노조 집행부가 몰두하는 “산별교섭”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다른 하나는 대표적인 투쟁사업장인 이젠텍 문제로 개최된 ‘민주노조 사수, 이젠텍 자본 응징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투쟁방침을 바꾼다며 “앞에서 열심히 싸우고 뒤에서는 노동부와 정례회의를 통해 하나하나 풀어가겠다”, “평화집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해 금속노조 위원장으로서 엄벌하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금속노조가 임단협을 수행하고 있고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노동조합이 사소한 것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충돌을 벌이게 되면 산별교섭에 부담이 되니 행동은 자제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꺾었다”, “금속노조 투쟁의 역사를 부정했다” 등 여러 가지 비판이 이어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통합 금속노조 지도부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현재 산별노조 운동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쟁점들, 즉 산별노조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산별은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산별에서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등의 문제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가 지나치게 교섭에만 치중하여 투쟁성, 변혁성을 고취하는데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다. 산별전환 과정의 문제 2006년 말 현재 민주노총의 산별 조직률은 76.7%이고, 조합원 769,218명 가운데 589,637명이 산별노조 소속이라고 한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통합금속노조, 공공노조, 운수노조, 건설노조 등 속속 산별전환 노조가 생겼다. 그리고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화학섬유, 민간서비스 등 미전환 조직을 중심으로 6월 18일~29일 사이에 산별전환 총투표를 추진할 예정이며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90% 이상의 조합원이 산별노조 조합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인 전환과는 달리 질적인 운동의 발전은 아직 더디다고 할 수 있다. 산별전환이 촉진된 배경에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투쟁이 패배해온 상황(실질적인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상태의 지속, 사회적 타협주의의 유혹, 지배계급의 여론 공세, 민주노총 계급 대표성의 위기 등)과 복수노조 및 전임자 문제에 대해 기업별 노조 체계가 가지는 위기감이 있다. 이러한 지난 몇 년의 산별추진 과정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산별을 ‘규모 확대’ 중심으로 접근한 점이다. 복수노조나 노사관계로드맵 도입 등으로 인한 노동조합의 환경변화로 인한 불안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로 인한 산업구조조정과 산업공동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덩치를 키워 교섭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고용에 대한 노동자의 전반적인 불안감에 기반하여, 규모를 확대하자는 논리로 산별전환을 성사시킨 것이다. 물론 노동자는 하나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단일한 노조로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규모를 키우는 것이 곧바로 투쟁력의 확대와 운동성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떠한 투쟁과 운동을 할 것인가에 더 큰 무게중심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둘째, 산별의 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 조직 내 민주주의 문제 등이 드러났다. 이는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10장 2조’의 문제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사업장 교섭에서 산별협약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어서 커다란 논란이 되었다. 또한 문제제기 된 내용이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되지 못했고 결국 조직이 분리되었다. 셋째,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 체계를 만드는 데 미흡했다. 이는 기업지부 인정 문제로 드러났다. 연대운동을 활성화하고 노동자들이 기업의 담장을 넘어 사회운동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중심이 되어 주변의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금속노조에서는 한시적인 기업지부를 인정하는 것으로 조직체계가 만들어졌고, 공공노조에서도 업종본부와 지역본부로 이원화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넷째,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에 대한 계획이 부족했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인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계급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조직화에 우선적인 중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낮고, 그마저도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조직화는 사활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별전환 과정에서 전환 자체에 초점이 대부분 맞춰진 까닭에 새로운 조직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오히려 산별전환을 하면서 재정이 줄어 활동가들을 줄이는 경우도 있었다. 제도화 전략의 위험성 현재 민주노총은 산별교섭의 법제도적 보장과 사용자단체와의 교섭 성사를 실질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총연맹의 경우 이를 ‘입법과 협상’ 양 측면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며 산별노사관계의 안착과 산별교섭의 제도화를 위한 민주노총 차원의 총괄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노사간 또는 노사정간 협상을 통해서 산별교섭의 제도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산별교섭 제도화와 관련하여 △산별교섭 및 교섭대표단 구성 의무화, △단협 효력 확장제도 개선, △산별협약의 최저기준 명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6월 임시국회에 입법안으로 제출하여 사회적 논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또한 국회 입법 추진과 함께 노정, 노사, 노사정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제도화를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법제도적으로 사용자들을 산별교섭에 나서게 할 아무런 강제장치가 없어서,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거부하면 노조가 실력행사로 압박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자동차 같은 대사업장이 교섭을 거부하면 기아, 쌍용, 대우 등 다른 자동차 사용자들도 교섭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산별교섭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 있기 때문에 제도화를 더욱 사활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도화 전략, 이를 달성하기 위한 협상 중심 전략은 문제가 있다. 한편으로 이는 산별노조의 존재 목적에 대한 것인데, 즉 산별노조가 산별 중앙교섭 달성을 최대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물론 노조가 교섭과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 혹은 교섭과 협상 자체의 목적은 노동자간 연대와 단결을 통해 노동자를 계급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제도화된 틀, 제도적 공간 확보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순간 노동자운동의 역동성과 운동성을 강화하는 것은 부차화되고 교섭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을 동원하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산별 중앙교섭 쟁취를 절대적 과제로 부각하는 논리가 이러한 제도적 공간의 확보를 현 시기 노동운동의 최대목표로 잡는 입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할 것이다. 안정적인 제도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언제나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취약한 노동조합운동으로서는 매력적인 노선으로 여길 수 있지만, 계급주체 형성전략의 뒷받침 없이 심지어 그것과 반대로 진행되는 제도화는 노동조합운동을 쇠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 제도화를 위한 협상 중심성의 문제가 있다. 노동자운동에 있어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 간의 힘 관계가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라는 점은 모두가 동의한다. 아무리 작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은 단결하고 연대하여 스스로의 힘을 극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별교섭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갈등만 적절히 관리하려고 하는 정부나 사용자들에게 협상을 통하여 산별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적다. 또한 그러한 설득 논리라는 것도, 산별체계를 정착시키면 파업이 줄어들고 노사관계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 따위이다. 그러나 이는 지난 시기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을 둘러싼 노사정 협상에서도 확인했듯이 상층 중심의 타협적 과정이 될 우려가 높다. 특히 민주노총 위원장이 올 초 파업을 남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정부 협상창구 마련에 골몰하는 가운데, 언론에서는 이로 인해 파업건수가 작년에 비해 39% 감소하고 근로손실일수도 59% 감소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게다가 노사화합선언도 132건이나 된다고 한다. 산별교섭 성사가 최대 목표?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대표적인 산별노조의 2007년 최대 목표는 사용자단체 구성과 산별교섭 성사인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중앙 산별교섭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밝히고 있고, “현대차가 올해 실질적으로 중앙산별교섭에 처음부터 결합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조건”이므로 “현대차 임단협에 직접 내려가서 사측으로부터 최소한 내년에는 산별 중앙교섭에 결합하겠다는 약속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섭 성사와 교섭구조 마련이라는 형식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산별교섭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별 교섭을 통해서 기업 내 제한된 범위의 조합원들의 이해를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 미조직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요구로 노동조합의 요구를 일반화하고 쟁취하는 투쟁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노동조합의 교섭구조를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산별교섭 쟁취는 이러한 운동적 목표를 실현하는 투쟁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산별교섭 성사를 절대적 목표로 앞세우는 것은 걱정스러운 점이 많다. 이러한 사고와 사업방식은 목표와 수단을 전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금속노조의 경우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대사업장에 대한 압박이 우선시되어 대사업장 중심의 임단협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중앙교섭 성사를 위해 지부나 지회의 투쟁이 봉쇄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이닉스나 이젠텍을 둘러싼 문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타결 가능한 교섭을 위해서 요구안의 수준도 조정될 수 있다. 예컨대 지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사내하청노조 단체교섭 체결 당사자가 원청사용자임을 명시 △총고용인원 유지와 결원 시 조합원 우선채용 △성과급 축소와 임금피크제 도입 저지 △실노동시간을 2008년부터 2,500시간으로 제한 △사내하청노동자에 기업지부, 지회의 단협 동일적용 △장기투쟁사업장 관련 민형사상 소송 금지와 부당해고 판정 시 즉각 복직 등을 교섭 요구안에 넣자는 수정안들이 부결된 바 있다. 결국 산별교섭을 물신화하거나 교섭 성사 자체에 최대의 방점을 찍다 보면 정작 중요한 지역과 현장이 소외될 수 있는 것이다. 계급주체 형성 전략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공세와 노동의 불안정화, 이에 대한 기존 노조운동의 대응 실패는 광범위한 혁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별노조가 조직적 대안으로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조직 자체가 대안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대안적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틀거리를 갖추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때,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계급적 단결,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 노조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 복원 등이 혁신의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고 산별노조 역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복무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조운동의 본령은 노동자의 단결이므로, 기존 노조로 조직된 정규직 중심의 노동자를 넘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목적의식적인 계획 수립과 실천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제도화보다는 계급주체 형성 전략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권력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이 권리를 실현하고 나아가 노동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밑바탕은 바로 단결에 기반한 집단적 조직화다. 따라서 산별교섭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산별노조의 완성이 아니며, 교섭 모델 중심은 노동자 사이의 연대 강화와 계급형성이라는 의미를 가리게 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과제는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지역 연대운동의 강화, 사회운동과의 결합 등으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사실 산별전환의 가장 큰 대의명분이 되었던 것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였다. 실제로 작년에 통과된 비정규 악법이 오는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비정규직들에 대한 광범위한 해고와 계약해지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다양한 저항과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가 비정규직에 대해서 이전 기업별 노조와는 뭔가 다른 형태의 운동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바도 크다. 이에 사실상 “비정규직 관련 활동이 산별노조의 ‘산별성’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가 산별노조의 계급적 대표성을 가늠하는 문제” 등의 분석이 많다. 금속의 경우 160만 금속노동자 가운데 양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30만 명이 안 되고 비율로도 20%가 안 된다. 이에 금속노조는 500인 이상의 지회에 반드시 담당자를 두게 하고, 중앙에 미조직․비정규 특위를 구성하여 지역과 중앙사업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지역의 공단을 중심으로 전략조직화를 추동하고 삼성과 LG 등 무노조사업장에 대한 조직화 방안을 세운다. 보건의료노조와 공공노조 역시 각 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차별철폐, 노동기본권 보장을 주요한 과제로 앞세우고 있다. 민주노총의 2007년 산별의제에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임금 및 근로조건 균등처우,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불법행위 근절, 산별 최저임금 등이 주요하게 제시되어 있고 그 방안으로 산업별 실태조사, 차별철폐 3개년 계획 수립, 비정규직의 산별노조 가입운동 등을 내놓고 있다. 산별의 비정규직 문제는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 가능하다. 첫째, 비정규직 조직화이다. 기존의 노조활동에서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전략조직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관건은 노조활동의 무게중심을 이 방향으로 옮기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조직화는 단지 몇몇 활동가들과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별이 기존 기업별 노조의 통합 수준을 넘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노조활동의 비중, 사업의 중심성에 있어 조직화 사업이 확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력과 재정의 투입, 적절한 전략조직화 사업, 지부 차원의 지역적 일상적 조직화 활동이 필요하다. 둘째, 조직된 비정규직의 조직편제 문제다. 금속노조 방침으로는 1사 1노조를 원칙으로 하되, 해당 단위(비정규노조)의 결정에 따른다고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비정규직 지회를 따로 두는 것보다는 같은 사업장에 포함시키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노조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해가 일반적이지만, 같은 노조로 편제되었을 때 비정규직의 독자성이 침해되거나 발언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고 정파에 따른 견해 차이도 있어서 쉽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 사정이 반영된 결과로 금속노조 방침에도 1사 1노조 원칙 외에 위와 같은 단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노동자 간 단결을 최대한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예컨대 비정규직의 독자성을 살리면서 정규직과 통합하는 방안, 당분간 비정규직 지회 체제에서 공동사업을 하면서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방안 등이 모색될 수 있다. 셋째, 산별노조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과 요구 측면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중앙교섭 요구에 비정규 노동자 조합활동 및 고용보장, 불법파견 및 용역사용 금지, 임시직 정규직화, 사내하청 처우개선,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업안전, 산별최저임금(936,320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도 비정규 노동자의 산별노조 가입, 비정규직 사유제한과 정규직화, 차별철폐, 고용안정,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인상, 산별최저임금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공공노조는 비정규악법 폐기, 공공부문 민간위탁과 외주용역 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감시단속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완전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서 있어서도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고 단결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중앙교섭 요구 가운데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동일 단협 적용 등이 부결된 것은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계급 내 단결을 위한 운동과 투쟁이 관건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운동 활성화 산별전환에서 노동자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중심 방안으로 업종이나 기업 체계를 넘어서는 지역 중심 체계가 제기되고 논쟁되었다. 금속노조는 지역지부로의 재편을 결의했지만 결국 기업지부를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안을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논쟁도 컸다. 이러한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은 현재의 단결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9년까지 대사업장 기업지부를 해소하기 위해 금속노조는 조직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업지부가 지역지부 사업에 결합하게 하고 기업지부 해산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하자는 것은 첫째, 여러 사업장이 포함된 지역지부가 지역의 중소영세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유용하고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미조직된 지역의 공단 등 밀집지역에 대한 조직화 논의도 진행 중이다. 특히 공공노조의 경우 지역의 환경미화, 청소용역, 시설관리 등 공공부문, 지자체의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면서 지역 공공서비스노조 투쟁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최저임금 쟁취투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의 저임금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둘째, 지역 차원의 공동투쟁의 질을 높이는 것이 연대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지역 중심으로 조직구조를 가져간다고 해서 연대가 잘 되는 것은 아니고, 산별로 전환했는데 오히려 지역 차원의 연대투쟁에 잘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같은 생활적 지리적 조건을 공유하면서 노동자 연대를 실현하는 것은 기업 단위에 갇힌 노동자 의식을 넘어설 수 있는 유력한 계기이다. 금속 지역지부에서 공동투쟁, 지역파업 등의 경험은 이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자본유치를 명분으로 노동조건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반대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셋째, 지역 민중들의 보편적 이해에 기반한 투쟁으로 운동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개발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지역 환경파괴와 오염, 상수도 사유화 등 지역적 사안에 대한 대응을 통해 지역의 민중운동, 사회운동과 결합하고 지역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을 위해서는 산별의 지역지부 뿐 아니라 민주노총의 지역본부가 일차적으로 강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차원에서의 노동자 공동교육, 학습 역시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기업별 체계를 넘어서서 정규직 대사업장 노동자들을 단위사업장 내의 이슈만이 아니라 더 확장되고 더 사회적인 운동과 투쟁으로 이끌어 내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역운동의 강화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투쟁, 사회운동과의 결합 산별노조의 투쟁, 파업은 사회적인 투쟁과 결합되었을 때 더 위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산별이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하고 계급형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을 때, 전반적인 사회변혁 투쟁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는 없다. 갈수록 신자유주의 공세가 격화되고 한․미 FTA 등 노동자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와 생존을 위협하는 정권과 자본의 압박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금속노조에서 한․미 FTA 총파업을 현장 대의원들의 발의로 결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은 금속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노조에서 받아안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과의 결합에 있어 현재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회운동포럼’도 하나의 유력한 형태다. 노조조직과 당 지역조직을 비롯하여 사회운동 단체, 학생운동 단체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운동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연대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키고 운동을 혁신하려는 시도가 추진되어야 한다. 노동운동 차원에서 보아도 현장의 노동자,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노동자들을 새로운 운동의 주체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계기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호 교육과 운동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에 있어서도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요구된다. 지역의 단체, 당의 지역조직, 노조 등이 연합하여 지역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연대의 힘을 발휘하면서 조직화를 확장하는 것이 성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운동의 전환을 위하여 산별에 거는 기대만큼이나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산별전환이 운동을 바꿔주는 것은 아니며 근본적인 혁신이 있어야 운동이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산별노조 전환은 단지 하나의 운동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에 불과하다. 산별전환이 자동적으로 기업의 울타리에 갇힌 노조운동을 산업으로 지역으로 계급적 연대로 끌어내는 것은 아닌 만큼 더 많은 노력이 산별전환 과정과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사회적 투쟁과 사회운동과의 결합 등은 산별이라는 형식을 떠나서 노동자 운동의 본령으로서 제기되는 것으로, 모두 노동자 운동이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도화 전략보다는 계급형성 전략을, 노조의 생존을 위한 제도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교섭을 우선하기 보다는 운동중심을 지향하는 방향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박스1%] 들머리 이승철: 작년부터 민주노총의 소속 연맹들이 대대적으로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산별시대가 열렸고 현재 국회에 관련법안도 계류 중이다. 본격적인 산별중앙교섭을 앞두고 산별노조와 지역운동 관련한 고민들이 초벌적이나마 시도되고 있는데, 오늘은 대표적인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공공노조, 그리고 지역운동에 대한 고민을 선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일반노조와 좌담을 진행해 보고자 한다. 먼저 산별노조 건설을 둘러싼 각 조직별 활동개요 및 건설․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조직 내 주요쟁점을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 김혁: 쟁점이 굉장히 많다. 산별을 만들어 갈 때의 쟁점과 임단투를 하면서의 쟁점이 있는데 먼저 산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쟁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금속노조의 건설은 2001년이다. 이 때 대공장의 경우도 전환투표를 했지만 부결되었고, 약 3만 명으로 시작했다. 2004년에 한 번 더 (대공장에서 전환투표를) 했지만 부결되고 작년에서야 가결되었다. 현재 몇몇 조선 사업장을 제외하고 자동차 등 대기업이 전환하여 14만 5천 명 금속노조가 되었다. 첫 번째 쟁점은 지역지부로 편제할지 한시적 기업지부를 허용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대의원대회 준비소위를 10차까지 했는데 상당히 치열한 격론이 있었다. 이는 (금속 산별이) 형식이냐, 내용까지 포괄하느냐의 문제였다. 금속노조에 기존에 있었던 단위들은 정파를 떠나서 지역지부를 옹호했다. 2001년에 만도가 한시적 기업지부였고, 이후 규약에서 기업지부를 삭제했던 전례가 있기에 지역지부를 옹호했다. 반면, 대공장의 경우 지금 당장 지역지부에 맞출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정파를 떠나서 대공장의 집행부를 하고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이런 입장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내용적으로도 여러 편차가 있었다. 결국 대의원대회에서 2009년까지 한시적 기업지부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 현장조직위원안과 현장전문위원안이 통과되었는데, 현장조직위원안은 산별로 전환하면서 소위에서 발의했던 안이고 현장전문위원안은 현장에서 발의한 안이었다. 이는 현장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현장을 살려야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정파를 떠나 공감을 했기에 통과가 된 것이었다. 소수자할당제는 대의원에 여성, 비정규직, 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여 실시하기로 했다. 언제부터 실시할 것인가는 이후 개정을 통해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서로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같은 궤로 봐야 하는 것이 있다, 첫 번째로 교섭권 관련해서 기업별 교섭을 인정하지 않고 지역으로만 교섭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서 해당 단위에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대공장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서 나온 것이며, 후자는 집행부로 권력이 집중되었을 때 관료화 등을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배치전환 같은 문제에 있어서 현장의 투쟁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교섭은 중앙집중을 인정하되, 현장의 파업권까지 인정하는 것은 일견 모순되는 듯 보이지만 중앙으로의 집중성과 현장에서의 투쟁을 모두 인정하기 위한 방법이다. 건설과정에서의 쟁점은 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박준형: 논란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대부분의 쟁점이 논쟁이 되기보다는 정치적 타협 내지는 절충으로 마무리되었다. 과정을 말해보자면, 공공연맹 시절에 산별추진 움직임이 있었지만 힘을 받지 못하다가 작년에서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 등을 비롯한 긴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 쟁점이 된 것은 공공 전체를 산별로 갈 것이냐, 업종별 소산별을 거쳐 대산별로 갈 것이냐 였다. 여기서 핵심이 된 것은 운수부문이었다. 운수는 공공연맹 외에도 택시, 버스, 화물이 같이 운수부문 통합논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다가 결정이 난 것은 운수와 공공을 따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적 절충의 성격이 강한 결정이었다. 운수노조는 공공연맹 내의 철도, 지하철, 항공과 연맹 밖의 택시, 버스, 화물이 운수산별노조를 만들기로 하고 공공연맹안의 나머지 부문은 공공노조를 만들기로 절충이 되었다. 이에 따라 작년에 공공노조와 운수노조가 출범하게 되었다. 공공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금속의 경우 지역지부냐 기업지부냐의 논의가 있었지만, 공공의 경우 한 층 낮은 논의였다. 기업지부는 당연히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지역본부 골간으로 갈 것이냐 업종본부 골간으로 갈 것이냐가 논쟁이 되었다. 운수노조의 경우는 현재의 노동조합들을 그대로 업종본부로 인정을 했다. 철도가 철도본부 , 화물이 화물본부가 되는 식이다. 공공의 경우 이 역시도 다시 정치적 절충의 대상이 되었는데, 지역과 업종을 모두 골간으로 인정한다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다만 이 과정에 지역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에 예산과 인력의 배정, 의결단위 배정을 가중치를 두어 적용하기를 결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런 논의를 따라 작년 말에 (공공노조가) 출범했는데 현재 3만 2천 명 정도 밖에 안 된다. 운수와 공공을 합치더라도 예전 공공연맹의 반이 좀 넘는 수준이다. 운수의 경우 서울지하철, 도시철도 등이 전환 못한 것이 있고, 공공의 경우 발전이나 과기노조가 전환을 못 한 이유가 있다. 건설과정까지는 이러했다. 건설과정에서 부각되지 못했던 다른 쟁점들이 이후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논란이 상당히 많고 정리가 안 되고 있다. 조합비의 경우도 출범 이후에 결정이 되었고, 교섭의 틀이나 교섭권한 문제, 지부간의 구획문제, 지역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논쟁이 되고 있다. 이승철: 금속과 공공만을 봐도 시간차가 있는 듯하다. 공공의 경우 중앙교섭을 준비하는 상황은 아닌 것인가? 박준형: 요구안만 제기하고 있고 교섭 자체는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이승철: 일반노조는 산별보다 앞서서 일반노조의 형태를 통해 지역차원의 운동을 해왔는데, 2001년부터 만으로 6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나타난 한계나 과제가 있을 듯하다. 또한 산별논의가 되면서 다양한 논의가 되었을 텐데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임재경: 과제부터 말씀드리겠다. 출발부터 지역을 중심으로 출발했고, 기존의 노조들이 있는 상황에서 중소·영세·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위해 출발했다. 이 자체로서 한계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재정과 인력이 많이 부족하고, 기획 단계까지는 잘 되더라도 조직화가 힘들다. 일반노조는 어차피 신생이고, 기존의 전통이 없기 때문에 조직확대가 조직의 사활을 좌우하다시피 한다. 여전히 재정과 인력이 발목을 잡고 있고, 그러다보니 활동가들의 성실성에 의존하는 구도이며, 간부들의 재생산이 잘 안 되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과제들이 있다. 중소·영세·비정규직을 조직하고자 출발을 했는데, 이러한 노동자들은 조직을 하면 투쟁은 하지만 조직으로 잘 남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정규직 중심으로 하고자 하는 유혹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사업장이나 직종이 굉장히 다양하고 각각의 조건이 있어서 노동조합활동으로 끌어내기가 굉장히 어렵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은 지엽적인 것이고 극복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일반노조가 지역운동, 비정규운동, 산별과 업종을 뛰어넘는 운동을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기존의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운동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논의되고 있다. 물론 충남지역노조나 경남지역노조에서는 지역지부를 세우기도 하지만 이것은 아직 시험 단계이고 성과라고 말하기엔 성급한 부분이 있다. 아무튼 출발 시의 목적을 성취하고 못하고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산별과 관련한 쟁점은 우선 굉장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산별전환이 매우 빠르게 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큰 흐름으로 인해 일반노조 운동이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질서가 완전히 산별로 고착화되면서 일반노조에 대한 부정적, 배타적 흐름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여러 안을 논의했다. 단일노조로 출범해서 직접 총연맹에 가입하는 등의 안을 논의하기도 했다.[%=사진1%] 하지만 아직까지 산별이 형식적 전환은 했지만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고, 최근 몇 년간에는 산별노조가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미조직사업장을 조직하는데 커다란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는 그릇으로서 일반노조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산별구조로 가기까지는 여전히 지역일반노조가 의미 있기 때문에 조직전환의 문제는 차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현재 상황에서 유의미한 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런 과정 속에서 여전히 불투명하고,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점 등이 논의가 되기도 했지만, 산별이 내용이 제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대안 제시, 중소·영세 사업장,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당분간은 체계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이승철: 2005년에 연맹등록이나 단일노조화 논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임재경: 논의는 꾸준히 해왔지만 지역기반의 활동을 지향하는 운동으로서 연맹 혹은 단일노조의 건설은 중앙집중성의 강화로 이어져, 지역 운동의 중심성이 탈색될 수 있다. 아직까지 하나의 연맹이나 단일노조를 건설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부분이 있으며, 산별전환이라는 변수를 맞아 본격적인 논의를 했고 그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결론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다. 첫 번째 주제: 산별노조와 비정규직 조직화 이승철: 산별노조하면 비정규직을 조직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고 이런 지향이 천명이 되었기 때문에 일반노조에서도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던 듯하다. 특히 금속의 경우 대공장도 많고, 기존의 기업별 노조라는 것이 임단투를 중심으로 하는 1년 주기의 활동을 지속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한계 속에서 금속노조가 산별건설 이후에 비정규직 조직화의 성과를 가져온 사례가 있는지의 여부와 현재 어떤 경로의 비정규직 조직화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지를 말씀해 달라. 김혁: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약간 애매한 측면이 있다. 지금 현재 전환한 금속노조 차원의 비정규직 과제가 있을 수 있고, 이전에 2001년에 전환한 금속노조가 있는데, 이 금속노조의 사업은 금속연맹의 사업과 중첩된 경우가 많았다. 대체적으로 2001년 이후에 보자면 사내하청, 특히 자동차 중심으로 건설이 되었다. 조직형식과 관련해서 보면 금속연맹 시절, 울산 현대차 사내하청만 연맹소속이고, 나머지는 모두 금속노조 지역지부 소속이었다. 하지만 대공장 사업장이다보니 지역지부에서 관장이 잘 안되고 오히려 현대차 원·하청 연대회의를 통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우차 창원공장 경우 역시 경남지부를 통해서 사업이 되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금속노조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사업하고 투쟁한 곳은 하이닉스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금속연맹 시절에는 형식은 지역지회 소속이지만, 사업과 관련한 내용을 받는 것은 원청 노조와 긴밀하게 되는 상황이었고, 그러다보니 지역사업은 다분히 형식적으로 가게 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부터 사내하청 노조가 활성화되었고 이들이 지역지부로 편제되었던 것은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조선의 경우 사내하청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고, 철강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나마 자동차의 경우만 움직임이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성과는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집중적인 모습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금속노조로 전환한 시점에서 인력과 재정을 집중해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이냐가 중요할 것이고, 조직해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기업별 노조의 비정규직 지회로 건설이 되었는데, 조선의 경우 좀 다르다. 조선은 플랜트나 건설이 맞물리면서 고용이 복잡한데 이런 경우는 오히려 지역으로 조직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있고 이 부분들은 면밀하게 실태조사 등을 통해서 (적합한) 방식들을 만들어가야 할 듯하다. 아까 일반노조 이야기도 했는데 (조직화 관련해서) 굳이 노조의 틀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산별노조 지역지회로 조직하는 것이 좋겠지만 일반노조로 조직할 수도 있는 문제이고, 나아가 노조라는 형태를 고집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조직하기 용이한 형태에 따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주노동자의 경우일 것이다. 경남의 경우 노조가 아니라, 협의회나 공동체 등으로 조직이 되고 있는데, 그런 형식이 명칭만 노조가 아니지 언제든지 노조로 그들을 조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여기서 노조의 고유한 측면인 교섭 등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교섭보다는 어떻게 노동자들이 어떻게 뭉칠 것인가, 권리를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모색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금속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1사 1노조의 문제이다. 산별완성 대의원 대회에서 1사 1노조를 원칙으로 하되, 해당단위의 결정에 따른다고 결정이 되었다. 이는 비정규직 뿐만 아니라 사무직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차의 경우 대의원대회에서 부결이 되었다. 정규직 노조 대의원들이 부결시킨 것인데, 여기서 해당단위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에서 해당단위는 정규직 노조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조, 사무직 노조를 말하는 것일 텐데 현대차는 정규직 노조가 부결을 시킨 것이다. 반대로 기아차에서는 이번에 단협을 바꿨는데, 단협은 규약 다음의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금속노조 규약에 따라 모든 사람들을 조합으로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조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조에서는 자신들의 조직을 깨뜨리려는 것이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상황이다. 이렇듯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그동안의 갈등으로 인해 조율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인해 대우차 부평공장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1사 1노조를 결정을 했지만 이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는 상당한 진통이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승철: 아까 예를 들었던 하이닉스의 경우 원청이 한국노총인 경우니까 다른 노조와는 약간 다른 경우였던 듯하다. 말씀하신 내용 중에 자동차의 경우 기업단위 중심으로, 조선의 경우 지역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금속노조 차원의 조직화 방침인가? 김혁: 그렇지 않고 개인적인 의견이다. 아직 금속노조 차원에서는 모색을 하는 단계이고, 미조직 비정규실에서 일차적으로 8월 달에 전체사업장을 대상으로 1차 실태조사를 진행할 것이고, 여기에 입각해서 조직화 방침을 정할 것이다. 이승철: 그간 비정규직 조직화의 대표적 유형이 바로 지역본부와 지역일반노조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산별노조나 연맹과의 구획문제나 조직대상문제 등이 갈등의 소지가 된 적이 있었던 던 듯한데, 일반노조가 바라보는 지역차원의 올바른 비정규직 조직화 전략은 무엇인가 임재경: 올바른 전략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고, 효율적인 전략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씀드리겠다. 지역일반노조들이 지방에서는 일정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서울에서는 가장 성과를 못 내고 있다. 이것은 각 연맹이 서울을 가장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연맹에서 인력, 재정 투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하기 때문에 틈새를 찾기가 힘들다. 다른 지역의 경우 조직 상담이 들어오면, 일반노조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의 경우는 규모가 작더라도 곧바로 연맹으로 넘긴다. 그리고 연맹에서 일일이 신경을 못써주는 것으로 인해 조직이 와해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일반노조의 경우도 전략적인 지점은 서울일 수밖에 없다. 서울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가 가장 많기도 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이다. 중소·영세·비정규직 사업장에 대해서 지역운동은 지역투쟁을 담보해야 하는데, 서울의 경우 각 연맹의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지역 차원의 투쟁이 잘 안 되고 있다. 심지어 지역본부가 장기투쟁사업장 투쟁을 중심성을 가지고 벌일 경우에 견제가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서울의 모습은 지역운동, 지역투쟁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서울지역에서 저녁에 열사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려도 20만이나 되는 조합원이 있는 서울에서 다해야 200명 정도 나오는 상황이 바로 그렇다. 퇴근하고 100명 중 한 명씩만 결집해도 쉽게 2,000 대오는 된다. 이론적으론 너무나 쉬운데 현실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운동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단위가 선봉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서울지역에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조직은 지역노조에 전략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최근 총연맹 서울지역본부 차원에서 서울지역 백만 조합원 시대를 선언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와 맞물려서 일만 지역노조 조합원을 선언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운동의 기풍을 세우는 것이 서울지역에서 지역운동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꼭 일반노조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서울경기 공공서비스노조와의 통합논의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 단위가 지역운동에 대한 고민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지역운동에 대한 고민이 있는 단위에 대한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만 지역노조 건설이라는 선언을 하고 지역운동의 중추부대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울지역의 연맹이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중소영세 비정규직 사업장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들을 조직하겠다고 나서는 지역노조에는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지역적 투쟁, 지역적 교섭, 지역적 활동, 지역적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답을 내리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조직했던 미국의 사례가 한국에 온전히 맞는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참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이승철: 비정규직 조직을 둘러싼 쟁점 중 하나가 바로 ‘비정규직 독자지부(지회)’ 문제인데, 산별노조의 원칙과 현실에 비춰볼 때 과연 어느 방식이 올바르고 효과적이라고 보는지 여부와 공공노조의 비정규직 조직화 계획을 소개해줬으면 한다. 박준형: 사실 이 문제는 공공에서 금속만큼 쟁점이 되지 않았다. 금속은 제조업에서 사업장 내 존재하는 비정규직이 많은데 비해, 공공부문은 사업장 외부에 외주의 경우가 많다. 사업장 내부의 경우에는 규모도 작고 조직화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분산되어 있다. 이제까지 공공부문에서 조직되었던 사업장은 대부분 지자체가 위탁을 하고 있는 시설관리, 환경미화 혹은 외주화 된 사업장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정규직 노조와 같이 갈 것이냐의 문제보다는 독자적으로 노조를 꾸리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이는 공공연맹 하에서 지역조직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논의와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공공연맹 하에서는 지역공공서비스노조, 공공노조 안에서는 초업종 지역지부를 만드는 논의와 관련이 있다. [%=사진3%] 금속과는 다르게 공공은 업종이 다양하다. 서울지역만 해도 학교 비정규직, 시설관리 노동자, 지자체 비정규직, 보육노동자, 자활기관, 사회복지기관 등 다양한 업종이 있고, 이들은 각기 특성이 다르지만 지역을 중심으로 모여보자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사업장의 경우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도 문제지만 지역에서 이들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어떻게 독자적인 대오를 형성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있어서 일정 부분 일반노조와 비슷한 상황이 있다. 이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과제다. 그런데 정작 산별을 만들어 놓고 보니 지역운동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계기로서 산별이 기여하고 있다거나 효과적이라고 보기 힘든 조건이 나타나고 있다. 차라리 옛 공공연맹의 시절에는 조직이 느슨하다보니 틈새가 있어서 재정적, 조직적 지원이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공공노조 전환 이후는 인력과 재정이 모두 타이트하게 통제가 되면서 집행부가 매우 의식적이지 않으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투자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투쟁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근자가 줄기도 하고 재정지원이 줄기도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산별을 왜 만들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상황이다. 공공노조 안에서는 비정규직 조직화의 문제가 대부분 지역조직을 어떻게 만드느냐, 지역 비정규직 조직을 독자적으로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의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사업장이 지역에서 어떻게 독자적인 대오를 꾸리냐에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공공부문은 제조업과 산업적 특성, 노동과정이 다르므로 정규직 사업장과의 결합문제보다는 지역에서 독자적인 대오를 구축하고 발언력을 획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든다. 그렇지 못하면, 재정이나 인력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승철: 김혁 동지에게 질문이다. 1사 1노조 원칙을 관철한다고 하면, 기업 중심의 관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위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김혁: 1사 1노조라고 할 때 기업지부가 존속할 때는 위험이 있을 수 있는데, 2009년까지 한시적으로 기업지부 인정하고 이후 지역지부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내부로 들어가면 쟁점이 있다. 현대차에서 (통합이) 부결된 가장 큰 요인은 대의원에 대한 문제이다. 대공장에서 대의원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권력이다. 대의원 선출에서는 선거구가 중요한데 비정규직 지회가 통합이 되면, 선거구에 큰 변화가 생기고 대의원 선출에 변화가 생긴다. 이로 인해 부결이 된 것이다. 기아의 경우도 단협 개정을 선거구를 같이 한 것이 아니라 IP지회로 비정규직 지회 자체를 하나로 몰았다. 제대로 하려면 선거구를 같이 하면서 동일 단협을 적용해야 한다. 그랬더라면 비정규직 지회가 진통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까 잘못된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1사 1노조 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어떻게 같이 융합할 수 있는 공동의 틀을 만들어 내느냐일 것이다. 두 번째 주제: 산별노조와 지역연대운동 이승철: 일반노조는 그 특성 상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를 포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나타난 투쟁의 경험과 성과가 어떤 것이 있었는지 공유했으면 좋겠다. 산업적 연관이 적은 다양한 사업장 소속의 노동자들을 '지역‘을 매개로 묶어 싸워오는 과정에서 나타난 성과 및 비판적 평가지점은 무엇인지 간략하게 말해 달라. 임재경: 서울일반노조를 예를 들면 투쟁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노조 틀거리 내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지역은 열려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다. 지역은 노동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공동체의 공간이고, 단지 노동조합만의 고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근본적으로는 좀 더 열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투쟁 자체도 노조 중심이긴 하지만 노조만의 투쟁을 고민하지 않는다. 예로써 학원 지입차주 투쟁의 경우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지역단체와 같이 만들어 갔다. 상급단체인 서울지역본부의 재정적, 인력적 역량상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역단체와의 공동투쟁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지역단체와의 공동투쟁과 같은) 성과는 일정 정도 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성동지역의 경우 지입차주 해고자 복직 투쟁이었는데 지역민중연대와 민주노총의 지구협이 결합했다. 민주노동당, 전노련, 철거민, 노동조합 등이 결합했는데, 지역에서 같이 투쟁하다보니까 노동조합에 한정되지 않고 투쟁이 지역적으로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 투쟁에 결합했던 성동지역의 민주노동당 한 분회의 경우, 원래 잘 되던 분회가 아니었는데, 이 투쟁에 결합하면서 집회 책임 등을 같이 하게 되면서, 투쟁도 승리하고, 해당 분회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노원지역의 경우도 역시 학원 지입차주 투쟁이었다. 특수고용과 간접고용이 중첩된 사업장이었는데, 중간용역업체의 개입이 특히나 악랄한 사업장이었다. 여기도 처음부터 지역민중연대와 지구협 차원에서 지역투쟁을 의식적으로 만들었다. 역시 승리한 투쟁을 만들었고, 지구협 차원에서 성과가 나타났다. 지구협에 자주 참여했던 운영위원들은 지역투쟁으로 단위사업장을 뛰어넘어 투쟁에 승리한 것을 처음 경험했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에도 지구협 사업에 열심히 하게하는 동인이 되었다. 특이한 경우라고 한다면, 경남일반노조이다. 이곳의 방식은 서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중소도시에서는 가능한 방식이다. 말하자면, 조직된 노동자가 생활 속에서 다른 노동자들을 조직해오는 경우이다. 업종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술자리 등에서 투쟁 성과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노조에 조직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경우 투쟁이 진행되면 자연히 지역적 투쟁이 된다. 생활공간이 같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06년 지자체 선거에서 보여준 조합원들의 선거운동의 참여이다. 처음에는 목적의식적으로 조합에서 참여시키고자 하여 시작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활동을 수행했다. 정치에 있어서 사각지대에 있었던 중소·영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의미부여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평가도 역시 존재한다. 기업별이나 산별 노조에 비해 너무 업종이 다양하므로 집중성이 떨어져서 크게 한 방향으로 모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기업별, 산별을 뛰어넘고 노동자의 다양성을 뛰어넘자는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자기사업장 중심성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고 현재 노조법에서 사문화된 지역적 구속력 등을 살려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비판하는 기존의 기업별, 산별의 구조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승철: 공공부문의 경우 ‘지역 차원의 공공서비스’를 생각해 볼 때, 다른 산업에 비해 노동자간 연대와 공동투쟁이 용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건이 오히려 연대의 폭을 좁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공공노조 내의 노동자연대는 물론이고, 산업간·업종간 지역연대운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전제돼야 하고, 어떤 활동이 펼쳐져야 할지에 대해 말해 달라.[%=사진2%] 박준형: 지역에서는 이런 문제제기를 할 때 노동조합 독자적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회단체나 당 지역위원회 등과 연대가 만들어지고, 지역 차원의 운동이 활성화 된다. 이런 측면에서 공공 부문의 경우 공공서비스라는 것이 매개가 된다. 공공서비스를 쟁점으로 하는 것이 지역 안에서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일정한 기제가 되는데 이것이 공공노조 안에서도 그런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된다. 공공노조가 지역에서 공공서비스라는 것으로 조직 이데올로기를 만들려고 하는데 아직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공공성을 쟁점으로 한다는 것은 지역에서 연대를 확장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생각된다. 사업장 문제와 결합된 단일한 해당 쟁점에 있어서는 연대가 형성이 되는데 이를 넘어서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데 있어서는 아직 어렵다. 이는 노동조합이 자기투쟁에서 지역운동을 동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를 어떻게 공공노조의 지역조직들이 자기문제의식으로 체화시켜서 꾸준히 가져가게 만드느냐가 관건일 듯하다. 산업간·업종간 지역연대의 경우에는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금속, 보건도 마찬가지지만 산별 건설이후 지역연대를 안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지역에서 기업별 노조도 있고 전국사업장 지역본부도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어떻게 지역으로 끌어내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그럴려면 서울지역의 공공노조 조직들을 서울지역 차원에서 끌어내야하는 것이다. 이는 나름의 틀을 갖추고 강화하는 과정에서 가능하다. 문제는 지역운동에 결합하는 것이 항상 동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총연맹 서울본부에도 지구협이 있고, 공공노조 서울본부에도 지구협이 있다. 총연맹 서울본부 입장에서는 공공노조 서울본부가 지구협 강화 이야기하면서 총연맹 지구협 사업에는 결합을 안 한다고 타박한다. 공공노조 입장에서는 지구협을 강화하지 않으면 지역연대투쟁에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현 시점에서 총연맹 사업에 나가는 사업장은 지부장이 의식이 있는 극히 일부 사업장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에 있어서 조율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지역운동을 강화한다는 전망이 공유된다면, 각 조직의 활동가들 간에 역할 배분을 하고, 중장기적으로 어떤 로드맵이 필요할지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산별노조 지역조직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만 앞세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승철: 지역차원의 공공서비스가 연대투쟁을 끌어내기 위한 명분으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표적으로 물 사유화 투쟁의 경우 해당 사업장의 고용안정 문제가 해결이 되고 나니 문제제기 했던 노동조합이 뒤로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험이 반복이 되면 지역 내에서 신뢰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활성화되고 제기되어야 될 쟁점은 맞지만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고용안정 투쟁과 결합될 때는 변형될 우려가 있는 것 같다. 박준형: 활동가들이 의식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말씀하신 경우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만들어보려는 흐름도 있다. 광주 같은 경우 지역의 환경문제 등을 같이 투쟁하면서 조직 내의 문제로 풀기 위해 월례강좌를 진행해 조합원을 참여시키고 연대했던 사회단체를 계속 결합시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내용적으로도 지속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고민이었다. 이승철: 김혁 동지에게 질문이다. 앞서 지역연대를 말하면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지역운동의 경우 일상적 정치활동과도 그 궤를 달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정치운동과 노조활동과의 결합수준을 높여가는 문제일 텐데, 의미 있는 정치활동을 위해서는 현재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넘어 다양한 진보적 정치조직과 연관 맺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한 의견 부탁드린다. 김혁: 현실적으로 한·미 FTA같은 정치적 사안의 경우 민주노총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여타의 정치조직과 같이 하고 있다. 물론 연대사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연대에 있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민주노동당도 노선이 있을 것이고, 다른 조직들도 노선이 있을 텐데, 그것이 민주노조 운동의 정치적 방향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특정한 한 단위와 연계를 가지다 보면 노조가 특정한 노선만을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민주노동당이 한국사에서 가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의 모습은 갈수록 선거주의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세력과 관계를 갖고 서로가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박준형: 실제로 지역에서 연대를 하다보면 민주노동당도 여느 사회단체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노조 입장에서는 연대를 하는 데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대단위로 들어오는 단위는 민주노동당 이외에도 사회당도 있고 다양한 사회단체도 들어오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문제는 실제 지역에서 연대하는데 있어서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역에서의 흐름과는 별도로 상층에서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김혁: 부연 설명을 하자면 금속노조에서 한·미 FTA 총파업을 일주일간 하기로 대의원 대회에서 결정이 되었는데 이것이 중앙위와 상집을 거치면서 총회에서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변경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는데 한편에서는 이미 대의원 대회에서 결정한 것이고 정치적 사안인데 조합원들의 한·미 FTA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한다면 총투표 할 시간에 조합원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과 다른 한편에서는 어쨌든 조합원의 의사를 물어야한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총투표로 결정이 났는데, 그렇게 치자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방침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역시 정치적 사안이고 이것도 대의원 대회에서 통과된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배타적 지지에 관해서 부르주아 정당들까지 모두 해서 총투표를 통해 지지를 물어야 될 문제이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방침에 대해 대중조직에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세 번째 주제: 산별노조와 지역운동의 의제 이승철: 결국 문제는 ‘무엇’을 중심으로 싸울 것인가 인데, ‘지역’을 ‘공장담장 밖․행정구역’으로 협소하게 해석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공통 질문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산별노조의 지역운동 의제는 어떤 것이 있을지를 말씀해 주시고 박준형 동지께 드리는 질문으로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지역운동의 의제로 제기하는 동지들도 있는 바,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가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데 운동과 주체형성의 과정으로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운동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한 입장을 말해 달라. 박준형: 이것이 부각되는 맥락은 노무현 정권이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내면서 부터다. 정권은 사회서비스를 시장화 된 방식으로 확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회서비스의 주체가 지방자치단체이고 이것이 지역과 연관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역운동의 의제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라는 의제가 과연 지역의 핵심적 의제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유의미한 의제이지만 절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같은 경우도 정책적인 측면에서 연대회의를 구성하는 등의 논의는 하고 있다. 하지만 한계로 지적되는 것은 실제로 늘어나는 사회서비스 관련 일자리에 종사하게 될 노동자를 조직하는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고 역량도 투여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질문에서 지적한 대로 주체형성 과정으로 운동을 같이 진행해야 된다는 제기가 있다. 예를 들어 간병이라는 사회서비스라면 간병노동자를, 보육이라고 하면 보육노동자를 조직하는 것과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해당 주체들이 자신의 고용을 지켜내고, 비정규직으로 인한 낮은 임금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과 함께 자신의 일자리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같이 하는 식이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라는 사회운동과 확대되는 해당 비정규직 일자리의 주체들이 함께 결합하는 방식의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제기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의미 있는 모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려면 정책적인 대응 수준을 넘어서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결합할 필요가 있다. 공통질문과 연계하여 보면, 지역에서 운동의제가 무엇이냐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지역에서는 이러한 운동의제를 통해서 운동이 만들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이고 또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다. 지역연대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혼자서는 도저히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사발전재단의 경우, 조합원이 합쳐봐야 10명 남짓이다. 이래서는 독자 지부를 건설하기 힘들고 건설하더라도 큰 힘을 만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역연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대부분의 중소 영세 비정규직 사업장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지역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대공장이나 정규직 사업장 같은 경우는 다르다. 이런 사업장의 경우 지역연대가 핵심적인 관건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공노조의 사회보험지부의 경우 전체가 6천 명 정도 되는 조직인데 임단협도 중앙에서 노동조합이 회사랑 하고, 지역에서도 딱히 싸울 의제가 없다. 이런 사업장들을 어떻게 지역운동으로 나오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아직은 명쾌한 답은 없는 풀리지 않는 고민이지만, ‘의제’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하고, 오히려 투쟁사업장의 연대로 조직할 때에 나오는 경우를 경험적으로 많이 보았다. 이승철: 옳은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업장을 중심으로 연대투쟁을 구성해 나간다고 한다면, 단위 사업장에서 어느 정도 여건이 좋은 사업장 같은 경우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사회보험지부 같은 경우 민간의료보험 같은 문제 등과 연동하여 끌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용이한 방법이 아니냐는 것이다. 박준형: 실제로 그것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제는 어차피 정치적인 의제고, 정치적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이는 지역을 넘어서는 문제다. 사실 지역연대라고 해보았자 이런 대규모 투쟁을 하기에는 함께 할 수 있는 인원도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건의료노조와 연대하는 중앙판의 차원으로 사업이 되는 방식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약간 맥락이 다른 문제인 듯하다. 이승철: 금속노조에서 정말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가 산별최저임금을 제기하고 관철시켰다는 것인데, 이것은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 말하자면 이주노동자들에게까지 단협의 성과를 확장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런 산별최저임금과 같은 사업이 금속노조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이 있는지, 그 외에 생각하고 계시는 지역 차원의 의제는 무엇이 있을지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김혁: 이와 관련해서 산별최저임금의 한계와 의의, 그리고 이후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산별최저임금을 중앙에서 의제로 했던 것이 2004년이다. 처음에는 단위사업장의 조합원에만 적용이 되었는데, 작년에 비로소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까지 적용이 되는 성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결정적 한계는 중앙교섭의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투쟁의제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민주노총에서 최저임금 실천단을 구성하고 있는데, 금속에서 이런 사업들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으로 예산이나 인력 등을 집중해서 꾸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업들을 구상하고, 선전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사업들을 지역에서부터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의 경우 미조직 비정규실에 이런 사업들에 예산 배정해서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최저임금 같은 경우는 민주노총 사업 따라가면 된다고 하더라. 이것은 최저임금 심의위원회 열릴 때 한번 투쟁했다가 이후 중앙교섭 차원에서 따내는 수준 이상으로는 고민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단위 현장에서부터 제대로 된 투쟁을 하려면 조직과 예산, 기획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한 데 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한계라고 생각된다. 말 그대로 조직화에 대한 무기로 사고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자면, 금속노조 사업장 외에도 미조직 사업장들까지 어떻게 단협의 효력을 적용시킬 수 있겠는가도 중요한 의제이다. 그 밖의 의제로는 예를 들어 STX 조선의 경우 해외공장 이전의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려고 하자 노조가 진해시를 압박하여, 진해시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해 줄테니 공장이전하지 말라고 해서 안가기로 한 상황이 있었다. 이것을 그 자체로 모범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단위노조 차원에서의 문제로 밖에 되지 못했고, 이것이 지역 지부로 연결되었다면, 지부의 고용 의제가 어떻게 되어야 하냐의 관점에서 지자체와 교섭하고 관철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다. 또한 대표적으로 하이닉스의 경우도 지속적으로 충청북도와 이런 부분을 가지고 교섭을 한 것이었다. 이처럼 고용과 관련되어 지역 차원의 교섭 등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금속에서는 올해 사업 초안에서 고용안정위원회와 고용안정기금을 하자고 했었지만 폐지가 되는 과정이 있었다. 하는 것은 좋지만 고용안정기금을 노사공동으로 조성하자고 했기 때문에 그것은 의미가 없지 않느냐라는 이유로 폐지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용과 관련한 문제에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승철: 그런데 공장이전 문제와 관련해서 고민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노총이 중국의 노동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미국 공장의 대규모 중국이전이었다. 이것을 중국의 노동조건을 상승시킴을 통해 막아보려고 하는 시도였던 것이다. 의도는 그랬지만 사실 이것이 중국의 노동조건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다. 일국적 관점에서 보면 STX 조선 같은 경우는 당장에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긴 하겠지만, 넓혀서 생각해보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김혁: 이 문제는 상당한 고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미 FTA 같은 경우에서도 환경노동기준 문제가 있다. 타국의 노동기준을 높여서 자국의 기업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시도로서 NAFTA에서부터 적용이 된 것이다. 갈수록 산업이 글로벌화 되는 과정에서 이런 고용 문제를 일국적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냐는 상당히 고민이 된다. 하지만 현재 아직 우리 수준은 단협의 차원에서 해외공장 증설 문제 등을 합의하는 등으로서 일국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 고민할 과제이긴 하겠지만 현 상태에서는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승철: 이러한 전지구적인 산업 구조조정에 관해서는 차후에 더 논의를 해봐야할 문제인 듯하다. 금속이나 화학섬유노조에서도 관련한 연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텐데, 차후 별도의 주제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박준형: 비슷한 맥락은 아닐 수도 있지만, 지역 차원의 일자리 창출에 관련한 경쟁이 우리나라 안에서도 존재한다. 지자체마다 더 싼값에 일자리를 만들려는 상황이 바로 그렇다. 국제적인 부분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바닥을 향한 경쟁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광주에서 있었던 마사회 투쟁이 예가 될 수 있겠다. 광주시가 광주에 마사회를 좋은 조건으로 유치하는데, 여기서 좋은 조건이라고 하는 것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방식으로 갔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유치한다고 하더라도 바닥을 향한 경주가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가 되도록 해야 하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하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들이 어떻게든 비정규직과 같이 ‘싼 값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하는 시점에서 최소한 바닥으로 가는 경주를 막아내는 운동은 유의미하다고 보인다. 이승철: 조직형태를 떠나서, 지역연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노동기본권 및 생존권 쟁취를 위한 지역연대투쟁이다. 같은 금속노조 안에서도 지역총파업이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편차도 있고, 원·하청 노조 연대파업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품앗이 집중집회’ 이외의 어떤 지역연대투쟁의 모델이 가능할지에 대해 일반노조의 고민에 비춰서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 임재경: 지역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지역 단위노조의 연대투쟁, 그리고 사업장 단위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별 시기에는 넓은 의미의 지역운동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역운동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일과 삶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노동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일관되게 연관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그리고 사업장 내에서의 운동은 고립을 낳을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도 민주노총이 어느 정도 고립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는가. 예전에는 노동자 투쟁이 자연스럽게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적 파급효과를 내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정규직들이 파업하면 그다지 호응이 없고 고립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노동조합만의 운동이 아닌 함께 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존에는 조금 강화된 협의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인 연맹 체계여서 이런 운동을 강력하게 하기에 힘들었다면, 일단은 이제는 각각 하나의 노조로서 산별 체계이므로 좀 더 집중력이 생길 수 있어서 어느 정도 가능할 수는 있다고 본다. 지역사회에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정치적 활동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들이 이러한 지역사회 현안에 대한 정치적 활동들을 많이 펼쳐야 하고, 그래야 지역운동이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노동조합 내의 의식변화만으로는 결국 노동조합만의 변화이고, 이것은 고립되고 이기적으로 흐르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운동은 근본적으로 생활 속에서의 의식변화를 동반하는 운동이므로 자연스럽게 사회변혁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운동을 산별 시대에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좀 더 운동의 범위를 확장하고 지향점을 확장하는 운동이 필요하고, 그것이 성과를 거둬야만 노동자가 고립되고 보수화되는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 내에서는 열심히 활동하지만 집에 가서는 내 자식 교육문제만 고민하는 등의 모습들이 현재의 우리 모습이다. 조합활동을 하는 사업장에서와 현실 생활에서의 성향이 괴리되는 분열 양상을 보인다. 조합에서는 진보적이고 계급적이지만, 생활에서는 보수적이고 자본가적인 의식의 이분화를 깨뜨리기 위해서 지역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의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울산 등지의 대공장이 있는 곳은 대공장에서부터 하청으로 계열화 되어있는 경우가 많고, 하청으로 갈수록 노동 조건이 열악해지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이 저해되는 것을 깨뜨리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 수 있냐는 것은 해당 노동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진정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활동가들이 강변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들이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되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운동의 정형이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는 고민인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당장 시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제시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현재 노조법에 있는 지역적 구속력이라는 조항이다. 하나의 지역에서 힘있는 대공장노조의 단협이 지역 전체에 적용되도록 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것이 3분의 2 이상을 조직해야 한다거나, 동종업계여야 한다는 등 조항이 매우 까다롭지만, 이러한 조항들은 투쟁을 통해서 완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문화된 법조항을 투쟁으로 살려내어 지역 내에 전체 노동자가 하나의 단협을 적용받게 한다면 지역에서의 단결은 말로 선언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지 않겠는가. 작년 시월에는 경주 동국대에서 환경 미화원 28명이 해고된 것과 관련하여 경주 지역의 노동자들 2,500 여 명이 지역 총파업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것이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총파업이 어렵다면, 울산에서 시도되었던 소비파업도 한가지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이다. 결국 산별의 틀을 넘어서 지역운동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고, 지역 ‘연대’를 넘어 지역 ‘운동’ 주체로서의 모색이 전반적으로 필요하지 않느냐는 고민이다. 박준형: 울산의 소비파업은 논란이 많은 사업인 듯하다. 임재경: (울산에서 시도된 소비파업이라는) 방법이 옳다는 차원에서 제기했다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자는 차원에서 이야기 한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 등지의 나라에서도 소비 파업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운동으로 시도되고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제기한 것이다. 소외되고 차별받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소비를 통한 자본에의 타격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이승철: 몇 해 전 브라질을 방문했었는데, 비정규직에 대해 질문했더니, 브라질에서는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으로 사업하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이고, 더 나아가 노점상 같은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까지 확대해서 사업을 하고 지역 차원으로 운동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다. 이런 부분도 일맥상통하는 문제의식인 듯하다. 임재경: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전에도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자신이 자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노동자라고 믿는 사람은 누구라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세 자영업자 같은 경우도 특수고용직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보면 이들과 함께 자본가 정권에 대항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이탈리아 같은 경우 은퇴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있고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이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네 번째 주제: 산별노조와 관련한 그 밖의 쟁점들 이승철: 산별노조 건설과정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비판지점 중 하나가 바로 ‘관료화’를 우려하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이를 위해 협약위원회 설치를 대의원 대회에서 부결시키고, 현장의 자유로운 파업과 신분을 보장하는 내용을 채택하기도 했던 반면, 소환권 관련조항이 부결되고 사무처 내 ‘단체협약실’이 신설되며 사실상 협약위원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산별노조의 관료화를 막기 위한 방안과 실천은 무엇이 있을지 이야기 해주셨으면 한다. 김혁: 하이닉스와 이젠텍 투쟁을 통해서 말씀 드리겠다. 하이닉스의 쟁점은 우선 직권조인 문제이다. 직권조인과 관련해서 직권조인이 아니라는 입장은, 합의서를 쓰긴 했지만 합의서가 실질적으로 조합원 총회를 통해서 물었다는 것과 위원장 사인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직권조인이라는 입장은, 대공장에서는 잠정합의 같은 경우 사실상의 합의서이며, 날인까지 들어가 있고,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이닉스가 5월 11일자로 32억 원을 통장으로 입금을 시켰다. 여기에 대해서 금속노조가 중집에서 불승인하기로 결정했는데, 해당지회에서 그럴 수 없다고 했고, 그렇다면 징계하겠다고 했는데도 32억 원을 받겠다는 상황이다. [%=사진4%] 두 번째로 실제로 날인한 사람은 수석부위원장인데, 장투사업장 쪽은 담당 부위원장이 따로 있었고 수석 부위원장이 담당자가 아니었다. 하이닉스 같은 경우 지회에서는 부사장, 그리고 충청북도와 교섭을 진행했는데, 부사장과의 교섭은 부사장이 악질적인 사람이라 잘 진행되지 못했고, 충북도와 교섭을 자주 했었다. 그러나 충북도에서 책임을 져줄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라서, 금속 중앙 차원에서 노동부와 교섭을 했고, 지회에서도 그것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문제는 이번 합의가 위로금 뿐 아니라 고용문제까지도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지회에서는 위로금에 대해서는 몰라도 고용에 대해서는 교섭을 위임한 적이 없다고 하는 상황이고, 이를 합의한 것에 대해서 사실상 이것이 직권조인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합의 이후 수석 부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큰 흐름으로 있는 상황인데, 현재는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사과문은 제출되었고, 사퇴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직무정지까지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후 대책으로 합의서는 불승인하고 이후에 대책은 장투사업장 쪽에서 마련을 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 있는데. 현재까지도 뜨겁게 쟁점이 되고 있다. 이것은 관료화의 표본이 되는 것이다. 담당 부위원장이 존재하는데도 내부적인 논의를 거치지 않고 직권조인이 되었던지, 잠정합의가 되었던지 합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위로금을 받고 합의하는 사례가 추후 금속노조에 전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젠텍의 경우는 집회 전에 상집수련회에서 공장진입투쟁을 하기로 결정했었다. 그 차원에서 경기지부와 조직 본조 차원에서 조직담당자회의가 소집이 되었다. 그리고 당일에 진입을 위한 준비가 다 되어있는 상황에 금속노조위원장이 연설 도중 진입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하자 위원장은 진입투쟁이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면서, 이후 중앙교섭이 있는데, 여기서 힘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조직실장 사이에 실제로 진입투쟁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수위였는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느냐 등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런 두 가지의 사건을 보았을 때, 이후에 집행부나 위원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금속노조가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문제제기 등이 활발하게 되지만 갈수록 이런 문제들은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기존의 금속노조와 대공장 노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는데, 대공장 노조의 경우 실제로 상층 중심의 활동이 중심이 되었던 듯하고, 현재까지는 금속노조에서 그러한 상층 중심의 논의에 대해 아래로부터 제기하는 등의 활동이- 예를 들어 현장 발의를 통해 FTA 총파업이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되었다는 것이 있을 수 있겠다.- 이런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조심해야할 문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초반에도 이야기 했지만 현장에서의 쟁의권을 인정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결정된 것이고, 앞으로도 상층 중심의 논의를 현장으로 되돌리고 현장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이승철: 산별구획과 지부설치 기준 역시 주요한 쟁점 중 하나이다. 특히 공공노조의 경우 기업지부-지역지부를 둘러싼 논쟁이 적지 않았고, 내부에 보건의료노조와 조직대상을 함께 하는 단위도 설치돼 있는데, 이러한 ‘산별구획’ 및 ‘지부설치 기준’에 대한 입장 및 그간 논쟁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린다. 박준형: 산별 구획 문제는 내부에서 지부 구획 문제가 있고, 민주노총 안에서의 산업간 구획 문제가 있다. 당면한 문제는 올해 말까지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통합문제다. 특히 운수 안에서 공공성이 강한 철도의 경우, (통합에 대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통합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통합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문제다. 운수노조의 경우 하나의 산별노조로 보기 힘들 정도로 조직적 질이 느슨한 것이 현실이다. 지역조직이 아직 전무하고, 기존의 단위 노조가 업종본부로 바뀌어 실제로 연맹 형태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상태다. 그러다보니, 공공노조 안에서는 이 상태에서 통합을 하게 되면, 하향평준화 될 수밖에 없지 않나하는 우려도 있다. 통합 때문에 논쟁을 통해 만든 조직발전 전망에 대한 성과까지 깨느니 통합을 안 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그나마 현재 내부논쟁을 통해 지역에 예산과 인력, 의결권을 가중치를 두고 조직발전 전망을 세워나가는 과정인데, 이 상태에서 통합해서 조직의 확대만을 노린다면, 이는 오히려 운동에 역행한다는 고민이 있는 것이다. 구획 문제에 있어서는 애초에 산별을 만들려고 했던 고민들이 중요하다. 기업을 넘어서서 노동자운동의 일반화를 꾀해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 있는 틀에 대한 고민들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공공연맹에 가입신청했던 단위 중에 ‘육밴연대’라는 조직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콜밴 택시를 하시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서 민주택시연맹에서 반대한다는 것 때문에 민주노총과 공공연맹 모두에서 가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의 이유는 실질적으로는 택시와의 영업권 다툼 문제 때문이었다. 이처럼 노동조합이 자신의 배타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서 움직이게 된다면, 운동의 후퇴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들에 대한 평가가 없이 모든 것이 통합만을 목적으로 진행될 경우 우려되는 점이 너무 많다. 때문에 현재 공공과 운수를 중심으로 한 산별 구획의 문제는 산별운동의 원칙을 세우는 방향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통합도 그것을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부설치는 금속보다 공공에서 쟁점이었다. 기업지부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역지부 관련한 흐름이 있다. 현재 공공노조의 지역조직은 지역본부 체계이다. 공식적인 골간으로서 지역본부 외에 지역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초업종․초기업 지역지부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서울지역의 경우에도 시설용역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부터 시작해서, 학교비정규직, 보육, 사회복지, 통신비정규직지부 등이 조직통합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운동을 통해서 지부설치 기준이라는 논의를 넘어서는, 지역운동을 강화하려는 실질적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다. 이승철: 산별노조가 ‘중앙교섭’을 물신화하며 현장투쟁력 약화를 부추기는 ‘제살 깎아먹기 식 제도화 전략’의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역시 있다. 산별노조 밖에서 이 논쟁을 지켜봐온 ‘지역노조 활동가’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다. 임재경: 산별노조를 만든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시기적 요구이기도 한 것이 중앙 집중이 아닌가 한다. 규모를 키워서 중앙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것이 하나의 요구가 아닌가. 물론 여러 가지 지향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반대로 현장, 아래로부터의 운동 역시 양대 축으로서 고민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정치 조직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정치가 형성이 되는데, 산별 중앙 교섭을 물신화 한다는 것 등은 결국 지역, 현장이 배제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활동가들이 현장에서부터의 운동을 강조하고 있고, 산별 전환하는 과정에서 투표도 거치고 했지만, 내용적인 부분들까지 담보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고,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는) 그런 과정들이 현장을 배제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장에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하고, 그것이 지역으로 확장되고, 또 그것이 산별 본조와 연맹으로 확장되고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지금의 산별 전환은 산별 전환이 아닌 산별 건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산별 전환은 혹시 계급적 단결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 운동의 중심점은 중소·영세·비정규직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집중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기존의 노동자운동의 관성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목적의식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공장과 중소·영세 사업장, 원청과 하청 간의 노동자들이 단순히 지원하고 연대한다는 의미가 아닌 정말로 노동자가 하나가 되는, 산별 내용을 담아내는 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금속노조를 보았을 때 하이닉스의 문제,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 문제, 전주 현대차의 2교대 근무 이야기 등 굉장히 경계해야 될 문제들이 많은 듯하다. 물론 아직까진 건강해 보인다는 것과 앞으로 건강한 산별노조가 건설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오늘 좌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들은 바로는, 금속의 장기투쟁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현재 해결하려는 방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위원장이 오히려 비정규직 사업장의 투쟁을 통해 남긴 것이 무엇이냐는 핀잔을 주었다고 들었다. 이것은 굉장히 우려할 만한 일이라 생각되고, 이러한 관료화의 문제 등은 앞으로 금속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승철: 마지막으로 각자 한마디 씩 해주셨으면 좋겠다. 박준형: 오늘 이야기한 것 중 산별노조와 지역운동이 핵심인 듯하다. 애초에 산별노조로 가자고 하면서의 중요한 근거가 지역운동, 비정규직 조직화였다. 그것으로 비정규직 노조는 물론이고 정규직 노조들도 설득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 건설과 별도로, 또는 산별노조 건설과 평행하는 별도의 조직적 노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배들의 지적이 많이 있었지만, 최근에 다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임재경: 산별 건설이든 전환이든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문제일 것이다. 기업, 업종, 산별 등을 구분하는 의식을 벗어나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범위를 한정하게 되면, 그 안에 갇힐 수밖에 없고, 이는 한계의식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좌담을 준비하면서 공공노조와 금속노조의 홈페이지를 가보았는데, 공공노조에서는 ‘우리 노조’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더라.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관념을 낳을 수 있다고 보고, 구획을 한정짓게 하는 의식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예전 금속연맹 시절, 금속에서도 ‘왜 우리만 파업을 하느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는데, 이것 역시 경계해야한다고 본다. 내 자신이 민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라는 관념에 갇히게 되면, 보다 너른 연대와 활동은 점점 힘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일상에서의 운동, 삶으로부터 시작하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그런 (우리라는 관념에 갇히는) 의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산별 역시 그렇게 가야할 것이고, 그러한 의식의 변화와 함께하는 운동을 동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산별 교섭에 있어서 사용자 단체 구성을 노조에서 찾아가서 이것이 이렇게 좋으니 하자라고 마치 구걸하듯이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승철: 덧붙이자면, 산별 노조라는 것이 인력과 재정을 중앙집중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것이 성공하려면 세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집권 가능한 사민주의 정당이 있어야 하고, 노조의 조직률이 매우 높아야 하고, 통제 가능한 사용자 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용자 단체는 강제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인데, 나머지 두 가지 전제는 한국 상황에는 맞지 않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산별노조로 가려고 하는 것은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라면, 위기에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할 텐데, 외국의 사례만을 끌어오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재경: 오늘 주제 중의 하나로 교섭이냐, 운동이냐도 있었는데, 사실 유럽의 산별노조가 유의미한 것이 그것을 지키는 노사 간의 전통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물론 그것 역시 치열한 투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금속이 중앙교섭한지 3, 4년이 되어가지만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다반사이다. 중앙교섭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중앙교섭에만 매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혁: 지난 대의원 대회에서 미조직 비정규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것을 이야기 드리면서 시작하겠다. 금속노조 2009년까지의 사업에서 올해 제조 산별의 기반을 만들고 2009년 제조 산별을 완성한다는 기조로 이야기를 하자, 한 대의원이 지금 현재 금속 내부의 차이를 줄이고 특히 미조직 비정규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한 지역지부의 전환 과정을 어떻게 하고 강화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이것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이 양적인 확대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을 하였다. 이런 비판과 관련하여 그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되지 않았지만, 비정규직 개악법 관련 투쟁을 내년부터 하자는 내용에 대해서 올해부터 하자는 것으로 수정이 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실제로 금속노조 집행부의 방향은 대체로 양적인 확대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산별노조에서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한계는 많이 이야기 되었듯이 과도한 중앙 집중성이 있을 수 있겠고, 관료화 등의 우려가 있는 것이고, 그에 반해서 가능성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는 현대차 지부장은 금속연맹 위원장보다 더 권한이 크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기업별 교섭이 인정이 되지 않으니 지부장의 권한이 예전과 비교할 수도 없어졌다. 이것은 대공장의 상대적인 영향력 축소의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1사 1노조, 중앙교섭 요구안 등이 각 지부에 가서 지속적으로 설명회가 되면서 실제로 지부의 간부들 차원에서는 단위노조 교섭은 이제 확실히 아니고, 이제 금속노조로 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금속노조라는 공동운명체를 일정 수준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배타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더라도 현재는 정규직, 비정규직, 대공장과 중소영세 사업장이 모두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다고 보는데, 가능성이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쟁점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느냐가 중요할 텐데 이런 과정에서 접점을 찾아나가고 하는 것이 말 그대로 건설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이 가능성을 어떻게 최대한 현실화 시킬 것인가가 활동가들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 이승철: 지금까지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와 지역연대운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오늘 이야기가 산별운동에 대한 고민도 풍부하게 하고, 오늘날 처한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의 단초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내용이 각자 활동하시는 공간에서 더욱 풍부하게 풀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