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다녀와서 지난 6월 29일,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에서 주최하는 성노동자의 날 1주년 행사가 열렸다. '성매매여성을 위한다는' 성특법이 역설적이게도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낙인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2005년 6월 29일, 성노동자도 인간임을 노동자임을 선포하면서 성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하여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이하 전성노련)을 출범시켰다. 이후 지역차를 극복하고 성노동자운동의 활성화와 전망을 찾기 위해 전성노련에서 탈퇴하고 결성된 민성노련은 출범(2005. 8. 27) 이후 지금껏 '성노동자에게 횡행하는 오명과 낙인에 맞서 성노동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 글에서는 지금껏 전개된 민성노련의 성노동자 운동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쟁점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성노동자 운동의 과제 평택 집창촌의 성노동자들에게 성노동자의 날은 투쟁의 날이자 휴일이었다. 당일 모든 업소는 문을 닫고,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참여했다. 약 200여명의 성노동자와 <성노동자운동연대를 위한 네트워크>(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사회진보연대, 세계화반대 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 연구팀, 이성숙, 이하 네트워크) 회원 및 활동가들, <연분홍치마> 등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였다. 민성노련과 네트워크가 함께 성노동자의 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성노동자의 요구를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다양한 단위들을 결합시키려했던 애초의 기획은 다소 축소되었다. 평택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공동 투쟁은 진행되지 못하였고(다른 지역에서도 성노동자의 날을 기려 다양한 문화행사 등을 전개했다는 소식은 성노동자의 날 행사가 끝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네크워크 단위가 확대되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가 확대되지도 못했다. 성노동자의 요구와 외침을 여론에서조차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모인 성노동자들 중에 행사의 의의나 자신들의 조직인 민성노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성노련이나 민성노련의 활동을 함께 하지 못한 신규 조합원의 유입, 성매매가 불법적인 상황에서의 잦은 인원 변동, 장시간 야간 노동 등의 조건이 성노동자 조직화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성노련의 실천이 기동적인 성명전이나 집행부 중심의 논의와 활동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성노련은 내적으로 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의 부제 '성노동자여 단결하라'처럼 성노동자들의 요구와 의식을 조직화하는 것과 외적으로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들을 조직해야하는 두 가지의 과제를 안고 있다. 성노동자 운동 지지, 성특법 비판을 넘어서야 성노동자의 날 1주년 기념사에서 민성노련은, 연대하고 있는 네트워크 및 단체를 소개하고, 덧붙여 '성노동자운동을 지지하는' 인사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였다. 그런데 이 속에는 성특법을 비판하고 성노동자의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론한 이를 포함하여 '자활정책의 실패'를 언급한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 '집창촌에 대해 규제주의를 통해 양성화되길 바란다'는 민주당 김강자 의원, 2004년 국회 앞에서 성노동자들이 단식농성 했을 때 방문해 '격려'해주었다던 경기도지사 김문수 등이 포함되어있다. 이른바 성특법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개개인들의 발언이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나 성특법이라는 법이나 정책의 한계 내지 실효성을 지적하는 것이 모두 성노동자의 요구와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법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지 않는 성노동자의 인간 선언과 권리에 대해 그들이 지지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낫다. 소위 저명 인사를 거론하는 것이 성노동자 운동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데 이용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인사(?)들이 성노동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성노동자의 요구와 무관하게 법개정 논의를 끌고 갈 위험마저 존재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주의적 한계 성특법에 대한 비판의 한 축으로 성특법이 성인 남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공존하고 있다. 6.29 집회 연대발언에서, 평등연대 공동대표라는 헌법학자 곽순근은 '성매매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성특법은 위헌 소지가 많으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들이 말하는 성노동자의 권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지닌다'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대고 있다. 이는 성적자기결정권이 헌법에서 여러 자기결정권1)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곽순근 또한 성적자기결정권을 언급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국가 억압이 없어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성특법도 없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소유권, 노동, 계약적 동의 및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적 담론은 경제·사회·정치권력의 불균형을 은폐하거나 자연화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따르면 남성에게는 성을 구매할 권리가, 여성에게는 성을 판매할 권리가 제기된다. 그러나 왜 여성만이 성을 판매하는지, 왜 성노동자만 낙인과 차별에 시달리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와 보호를 누리지 못하는지 등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성노동자의 생존권을 빌미로 남성의 성적 구매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성노동자 운동이 지향해야 할 것과 배치된다. 우리는 성노동의 범죄화를 반대하지만, 남녀의 섹슈얼리티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성적 실천은 재생산과 연관된 것만 허용되고, 여성의 육체와 이미지가 대상화, 상품화되는 현재의 상황이나 담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성적 자유주의에 반대한다. 1997년 인도 꼴까따에서 열린 '인도 성노동자 전국회의'에서 채택된 '성노동자 선언'2)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에서 성노동자들이 '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남녀 불평등을 인식하고, 물질적이고 감정적이고 성적인 수요가 공정하고 행복하게 해결되는 이상사회에서는 성적 거래가 불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노동자 운동을 통해 여성의 성적 억압이라는 성적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집창촌 '합법화' 요구에 대한 우려 성매매 금지주의에 대한 법률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민성노련은 '비범죄주의와 합법적 규제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비범죄적 규제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성인 남녀를 비범죄화하되 '일정 지역 내'에서 성거래(성노동)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집창촌은 음성적 성매매나 일대일로 성구매자를 대해야하는 다른 형식들에 비해 안전하고, 업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성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쉬운 상대적 이점이 존재한다. 또한 성노동자들은 집창촌에서는 업주와의 관계가 착취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성특법 시행 이후 민성노련에서는 성산업인들과 단체협약을 맺어 휴가, 임금 협상 등에 있어 주도권을 획득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집창촌이 성노동자에게 안전하고 성노동자 조직화에 유리하다는 것이 집창촌만을 합법화시키자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현재의 성특법이 음성적 부문을 비대화하고 있으므로 이를 '대안적으로 축소'해갈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민성노련의 의견은 이를 위해 국가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특정 지역에서만 성노동을 허용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특법이 시행되고 경찰이 단속한 결과는 어떠한가. 경찰은 접근이 용이한 집창촌만을 단속하고 음성적 부문에 대해서는 방치하다시피했다. 결국에는 경찰력의 무능을 드러내며 시민감시단까지 운용하겠다고 나섰다. 오히려 합법적 규제주의는 허가된 지역이나 성노동자만을 손쉽게 통제하고, 음성적 부문은 다시 방치해버리도록 하는 빌미를 주게 될 것이다. 민성노련은 성매매의 비범죄화가 전국을 사창화할 것이고 그리하여 비범죄화가 국민적 설득력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기존의 금지주의자들이 성매매를 '나쁜 것'으로 보고,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고 요청한 것과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이러한 규제에는 허가된 성노동자의 수를 적절히 유지하고 그녀들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깔려있다. 성매매를 '축소'하는 게 특정 지역에서만 성노동을 허용하는 것으로 대치될 수 없지만 성매매가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성노동이 행해지는 공간에서의 성노동자의 안전과 노동조건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합법적 규제주의 하에서 허가된 업소나 격리 지역에 존재하는 성노동자는 제한적인 권리는 누릴 수 있겠지만 비허가된 업소나 지역에 존재하는 성노동자는 범죄화되며 음성화된 공간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른바 성노동이 아닌 인신매매나 노예제의 경우,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찰이 모두 단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여성이 낙인이나 범죄화의 우려 없이 법률에 호소할 수 있는 조건이 가능할 때 음성적 부문의 착취나 인권 침해가 해결될 수 있다. 강제된 성매매에 종사하는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여성단체의 무분별한 시도가 성노동자의 주체성과 생존권을 억압하듯이, 성노동자 일부만을 위한 전략이 성노동자의 분할과 착취를 지속시킬 수 있다. 대만의 타이페이에서 실시되던 '면허 매춘여성 관리 법률'이 폐지된 후, 생존권을 요구하는 (면허)성노동자들이 다시 제한적인 합법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범죄화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의 참조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반성매매운동을 넘어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자 지금껏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를 성적 노예제로 분석하며 '성매매여성'을 피해자화 했다. 물론 노예제, 그것과 유사한 실천이 성산업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여성이 납치되거나 판매되어 장기간 타인(대리인, 포주, 소개업소)의 소유물이 된다면 그 관계는 노예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성매매를 강요받는 여성은 육체의 어떤 부위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협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육체'를 판매하는 것으로 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적 견해는 이러한 노예제적 계급 과정을 통해 성매매가 조직되는 경우에 대한 설명만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부 성매매여성들이 노예제의 상태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모든 성노동이 노예제에 해당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신매매나 노예제, 그것과 유사한 실천이 성산업과 관련이 있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성산업은 사회의 주변에 법적·관습적 제한 외부에 존재하며, 성노동자들의 권리 및 경제적 기회를 방어할 권력은 이미 사회에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성노동자들이 겪는 착취와 폭력이 낮은 지위에 있는 여타의 직업에서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볼 때, 이른바 그 노동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라는 노동에 부과된 낙인이나 편견이 노동자의 취약성과 인권 침해의 원인이 된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Jo Bindman, 「국제적 아젠다에서 매춘을 성노동으로 재정의하기(Redefining Prostitution as Sex Work on the International Agenda)」, 1997, http://www.walnet.org/csis/papers/redefining.html) 성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노동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법 외부에 두는 것을 철폐하는 것, 노동에 부과된 낙인과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껏 여성단체가 주도해왔던 성산업 특히 집창촌을 없애버리려는 식의 반성매매 운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든 성노동자를 '피해자' 혹은 '노예'화하려고 했던 여성단체의 전략은 성매매를 '신체'와 '자아'를 파는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전제하는데 이는 성노동자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성노동 자체를 '폭력'이라고 간주하는 담론 안에서는 성노동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착취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폭력적인 성매매'에서 즉각 철수할 것만이 성노동자에게 요구되기에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성노동을 지속하거나 그만둘 권리조차 없게 된다는 점에서 성특법은 성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해왔다. 우리가 이른바 '성매매여성'을 성노동자로 정의하며 성노동자 운동을 펼치는 것은, 자본주의하에서의 성과 노동의 상품화를 막는 전략이 특정한 산업을 즉각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결성 등을 통해 조직화된 주체들이 그들이 직면하는 착취와 차별에 저항하는 것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를 조직화하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 지지지원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개인의 인권, 시민권, 노동권, 존중에 대한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그들이 어떠한 노동을 수행하는지와 상관없다. 성노동자들이 권리를 지니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성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도 기본적 인권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성노동자를 법치의 외부에 두는 모든 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매매를 금지하는 법률의 철폐,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동의에 기초한 성인의 성거래에 대한 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사기, 학대, 폭력, 강제를 금지하는 법은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성노동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성노동자 운동의 고유한 한계 및 쟁점에도 불구하고 제 운동단체 및 활동가들은 성노동자에 대해 갖고 있는 낙인과 편견을 깨고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기를 당부한다. 한국의 성노동자 운동은 이제 출발점에 있으며 그 힘이 미약하지만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침해되고 있는 성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나아갈 방향은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의 논의와 노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 김철수 헌법학 개론에 따르면 자기결정권은 자기의 사적인 사항, ①결혼, 이혼, 출산, 피임, 낙태와 같이 자신의 인생 전반의 설계에 관한 사항, ②생명연장치료의 거부, 존엄사와 자살, 장기이식 등 삶과 죽음에 관한 사항, ③개인의 생활양식이나 취미에 관한 사항, ④혼전성교, 혼외성교, 동성애 등 성인간의 합의로 이뤄지는 성적 행동에 관한 사항 등을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이를 '자기결정권'의 개념으로 파악하지만, 미국에서는 '프라이버시권' 개념으로 파악한다(신상숙, 「성폭력의 의미구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딜레마」,『여성과 사회』, 2001).본문으로 2) 성과 섹슈엘리티에 대한 사회규범은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출산 목적이 아닌 성적 욕구가 승인될 때는 그것은 오직 남자들에게 뿐이다. 공동체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근대성의 이름으로 습속이 조금씩 변했지만,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다수의 성적 파트너를 추구할 권리를 향유했던 사람은 거의 남자였다. 여성들은 언제나 한 남자에게 충실할 것이 기대되었다. (중략) 자율적인 섹슈엘리티에 대한 상상을 통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동등한 접근권을 가질 것이며, 동등하게 참여할 것이며, 'yes' 혹은 'no'라고 말할 권리를 가질 것이며, 심판이나 억압의 공간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이상적인 사회적 세계에 살지 않고 있다. 언제 이상적인 사회질서가 실현될지 혹은 과연 그렇게 될런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이상적이지 못한 세계에서 음식이나 건강에 대한 상업적 거래의 비도덕성이 용납된다면, 왜 돈을 받고 하는 섹스는 비윤리적이고 용납불가능한가? 물질적이고 감정적이고 지적이고 성적인 수요가 공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해결되는 이상 사회에서는 아마 그러한 거래가 불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탐색하고, 그 근본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들에 맞서고 도전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세계화에 불만있는 여성들을 위한 자료집: 여성적 사고, 지구적 저항』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펴냄-에서 발췌본문으로
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다녀와서 지난 6월 29일,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에서 주최하는 성노동자의 날 1주년 행사가 열렸다. '성매매여성을 위한다는' 성특법이 역설적이게도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낙인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2005년 6월 29일, 성노동자도 인간임을 노동자임을 선포하면서 성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하여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이하 전성노련)을 출범시켰다. 이후 지역차를 극복하고 성노동자운동의 활성화와 전망을 찾기 위해 전성노련에서 탈퇴하고 결성된 민성노련은 출범(2005. 8. 27) 이후 지금껏 '성노동자에게 횡행하는 오명과 낙인에 맞서 성노동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 글에서는 지금껏 전개된 민성노련의 성노동자 운동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쟁점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성노동자 운동의 과제 평택 집창촌의 성노동자들에게 성노동자의 날은 투쟁의 날이자 휴일이었다. 당일 모든 업소는 문을 닫고,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참여했다. 약 200여명의 성노동자와 <성노동자운동연대를 위한 네트워크>(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사회진보연대, 세계화반대 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 연구팀, 이성숙, 이하 네트워크) 회원 및 활동가들, <연분홍치마> 등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였다. 민성노련과 네트워크가 함께 성노동자의 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성노동자의 요구를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다양한 단위들을 결합시키려했던 애초의 기획은 다소 축소되었다. 평택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공동 투쟁은 진행되지 못하였고(다른 지역에서도 성노동자의 날을 기려 다양한 문화행사 등을 전개했다는 소식은 성노동자의 날 행사가 끝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네크워크 단위가 확대되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가 확대되지도 못했다. 성노동자의 요구와 외침을 여론에서조차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모인 성노동자들 중에 행사의 의의나 자신들의 조직인 민성노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성노련이나 민성노련의 활동을 함께 하지 못한 신규 조합원의 유입, 성매매가 불법적인 상황에서의 잦은 인원 변동, 장시간 야간 노동 등의 조건이 성노동자 조직화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성노련의 실천이 기동적인 성명전이나 집행부 중심의 논의와 활동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성노련은 내적으로 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의 부제 '성노동자여 단결하라'처럼 성노동자들의 요구와 의식을 조직화하는 것과 외적으로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들을 조직해야하는 두 가지의 과제를 안고 있다. 성노동자 운동 지지, 성특법 비판을 넘어서야 성노동자의 날 1주년 기념사에서 민성노련은, 연대하고 있는 네트워크 및 단체를 소개하고, 덧붙여 '성노동자운동을 지지하는' 인사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였다. 그런데 이 속에는 성특법을 비판하고 성노동자의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론한 이를 포함하여 '자활정책의 실패'를 언급한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 '집창촌에 대해 규제주의를 통해 양성화되길 바란다'는 민주당 김강자 의원, 2004년 국회 앞에서 성노동자들이 단식농성 했을 때 방문해 '격려'해주었다던 경기도지사 김문수 등이 포함되어있다. 이른바 성특법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개개인들의 발언이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나 성특법이라는 법이나 정책의 한계 내지 실효성을 지적하는 것이 모두 성노동자의 요구와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법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지 않는 성노동자의 인간 선언과 권리에 대해 그들이 지지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낫다. 소위 저명 인사를 거론하는 것이 성노동자 운동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데 이용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인사(?)들이 성노동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성노동자의 요구와 무관하게 법개정 논의를 끌고 갈 위험마저 존재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주의적 한계 성특법에 대한 비판의 한 축으로 성특법이 성인 남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공존하고 있다. 6.29 집회 연대발언에서, 평등연대 공동대표라는 헌법학자 곽순근은 '성매매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성특법은 위헌 소지가 많으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들이 말하는 성노동자의 권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지닌다'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대고 있다. 이는 성적자기결정권이 헌법에서 여러 자기결정권1)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곽순근 또한 성적자기결정권을 언급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국가 억압이 없어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성특법도 없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소유권, 노동, 계약적 동의 및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적 담론은 경제·사회·정치권력의 불균형을 은폐하거나 자연화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따르면 남성에게는 성을 구매할 권리가, 여성에게는 성을 판매할 권리가 제기된다. 그러나 왜 여성만이 성을 판매하는지, 왜 성노동자만 낙인과 차별에 시달리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와 보호를 누리지 못하는지 등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성노동자의 생존권을 빌미로 남성의 성적 구매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성노동자 운동이 지향해야 할 것과 배치된다. 우리는 성노동의 범죄화를 반대하지만, 남녀의 섹슈얼리티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성적 실천은 재생산과 연관된 것만 허용되고, 여성의 육체와 이미지가 대상화, 상품화되는 현재의 상황이나 담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성적 자유주의에 반대한다. 1997년 인도 꼴까따에서 열린 '인도 성노동자 전국회의'에서 채택된 '성노동자 선언'2)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에서 성노동자들이 '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남녀 불평등을 인식하고, 물질적이고 감정적이고 성적인 수요가 공정하고 행복하게 해결되는 이상사회에서는 성적 거래가 불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노동자 운동을 통해 여성의 성적 억압이라는 성적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집창촌 '합법화' 요구에 대한 우려 성매매 금지주의에 대한 법률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민성노련은 '비범죄주의와 합법적 규제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비범죄적 규제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성인 남녀를 비범죄화하되 '일정 지역 내'에서 성거래(성노동)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집창촌은 음성적 성매매나 일대일로 성구매자를 대해야하는 다른 형식들에 비해 안전하고, 업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성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쉬운 상대적 이점이 존재한다. 또한 성노동자들은 집창촌에서는 업주와의 관계가 착취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성특법 시행 이후 민성노련에서는 성산업인들과 단체협약을 맺어 휴가, 임금 협상 등에 있어 주도권을 획득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집창촌이 성노동자에게 안전하고 성노동자 조직화에 유리하다는 것이 집창촌만을 합법화시키자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현재의 성특법이 음성적 부문을 비대화하고 있으므로 이를 '대안적으로 축소'해갈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민성노련의 의견은 이를 위해 국가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특정 지역에서만 성노동을 허용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특법이 시행되고 경찰이 단속한 결과는 어떠한가. 경찰은 접근이 용이한 집창촌만을 단속하고 음성적 부문에 대해서는 방치하다시피했다. 결국에는 경찰력의 무능을 드러내며 시민감시단까지 운용하겠다고 나섰다. 오히려 합법적 규제주의는 허가된 지역이나 성노동자만을 손쉽게 통제하고, 음성적 부문은 다시 방치해버리도록 하는 빌미를 주게 될 것이다. 민성노련은 성매매의 비범죄화가 전국을 사창화할 것이고 그리하여 비범죄화가 국민적 설득력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기존의 금지주의자들이 성매매를 '나쁜 것'으로 보고,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고 요청한 것과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이러한 규제에는 허가된 성노동자의 수를 적절히 유지하고 그녀들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깔려있다. 성매매를 '축소'하는 게 특정 지역에서만 성노동을 허용하는 것으로 대치될 수 없지만 성매매가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성노동이 행해지는 공간에서의 성노동자의 안전과 노동조건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합법적 규제주의 하에서 허가된 업소나 격리 지역에 존재하는 성노동자는 제한적인 권리는 누릴 수 있겠지만 비허가된 업소나 지역에 존재하는 성노동자는 범죄화되며 음성화된 공간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른바 성노동이 아닌 인신매매나 노예제의 경우,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찰이 모두 단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여성이 낙인이나 범죄화의 우려 없이 법률에 호소할 수 있는 조건이 가능할 때 음성적 부문의 착취나 인권 침해가 해결될 수 있다. 강제된 성매매에 종사하는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여성단체의 무분별한 시도가 성노동자의 주체성과 생존권을 억압하듯이, 성노동자 일부만을 위한 전략이 성노동자의 분할과 착취를 지속시킬 수 있다. 대만의 타이페이에서 실시되던 '면허 매춘여성 관리 법률'이 폐지된 후, 생존권을 요구하는 (면허)성노동자들이 다시 제한적인 합법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범죄화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의 참조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반성매매운동을 넘어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자 지금껏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를 성적 노예제로 분석하며 '성매매여성'을 피해자화 했다. 물론 노예제, 그것과 유사한 실천이 성산업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여성이 납치되거나 판매되어 장기간 타인(대리인, 포주, 소개업소)의 소유물이 된다면 그 관계는 노예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성매매를 강요받는 여성은 육체의 어떤 부위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협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육체'를 판매하는 것으로 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적 견해는 이러한 노예제적 계급 과정을 통해 성매매가 조직되는 경우에 대한 설명만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부 성매매여성들이 노예제의 상태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모든 성노동이 노예제에 해당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신매매나 노예제, 그것과 유사한 실천이 성산업과 관련이 있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성산업은 사회의 주변에 법적·관습적 제한 외부에 존재하며, 성노동자들의 권리 및 경제적 기회를 방어할 권력은 이미 사회에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성노동자들이 겪는 착취와 폭력이 낮은 지위에 있는 여타의 직업에서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볼 때, 이른바 그 노동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라는 노동에 부과된 낙인이나 편견이 노동자의 취약성과 인권 침해의 원인이 된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Jo Bindman, 「국제적 아젠다에서 매춘을 성노동으로 재정의하기(Redefining Prostitution as Sex Work on the International Agenda)」, 1997, http://www.walnet.org/csis/papers/redefining.html) 성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노동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법 외부에 두는 것을 철폐하는 것, 노동에 부과된 낙인과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껏 여성단체가 주도해왔던 성산업 특히 집창촌을 없애버리려는 식의 반성매매 운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든 성노동자를 '피해자' 혹은 '노예'화하려고 했던 여성단체의 전략은 성매매를 '신체'와 '자아'를 파는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전제하는데 이는 성노동자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성노동 자체를 '폭력'이라고 간주하는 담론 안에서는 성노동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착취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폭력적인 성매매'에서 즉각 철수할 것만이 성노동자에게 요구되기에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성노동을 지속하거나 그만둘 권리조차 없게 된다는 점에서 성특법은 성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해왔다. 우리가 이른바 '성매매여성'을 성노동자로 정의하며 성노동자 운동을 펼치는 것은, 자본주의하에서의 성과 노동의 상품화를 막는 전략이 특정한 산업을 즉각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결성 등을 통해 조직화된 주체들이 그들이 직면하는 착취와 차별에 저항하는 것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를 조직화하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 지지지원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개인의 인권, 시민권, 노동권, 존중에 대한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그들이 어떠한 노동을 수행하는지와 상관없다. 성노동자들이 권리를 지니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성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도 기본적 인권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성노동자를 법치의 외부에 두는 모든 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매매를 금지하는 법률의 철폐,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동의에 기초한 성인의 성거래에 대한 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사기, 학대, 폭력, 강제를 금지하는 법은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성노동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성노동자 운동의 고유한 한계 및 쟁점에도 불구하고 제 운동단체 및 활동가들은 성노동자에 대해 갖고 있는 낙인과 편견을 깨고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기를 당부한다. 한국의 성노동자 운동은 이제 출발점에 있으며 그 힘이 미약하지만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침해되고 있는 성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나아갈 방향은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의 논의와 노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 김철수 헌법학 개론에 따르면 자기결정권은 자기의 사적인 사항, ①결혼, 이혼, 출산, 피임, 낙태와 같이 자신의 인생 전반의 설계에 관한 사항, ②생명연장치료의 거부, 존엄사와 자살, 장기이식 등 삶과 죽음에 관한 사항, ③개인의 생활양식이나 취미에 관한 사항, ④혼전성교, 혼외성교, 동성애 등 성인간의 합의로 이뤄지는 성적 행동에 관한 사항 등을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이를 '자기결정권'의 개념으로 파악하지만, 미국에서는 '프라이버시권' 개념으로 파악한다(신상숙, 「성폭력의 의미구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딜레마」,『여성과 사회』, 2001).본문으로 2) 성과 섹슈엘리티에 대한 사회규범은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출산 목적이 아닌 성적 욕구가 승인될 때는 그것은 오직 남자들에게 뿐이다. 공동체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근대성의 이름으로 습속이 조금씩 변했지만,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다수의 성적 파트너를 추구할 권리를 향유했던 사람은 거의 남자였다. 여성들은 언제나 한 남자에게 충실할 것이 기대되었다. (중략) 자율적인 섹슈엘리티에 대한 상상을 통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동등한 접근권을 가질 것이며, 동등하게 참여할 것이며, 'yes' 혹은 'no'라고 말할 권리를 가질 것이며, 심판이나 억압의 공간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이상적인 사회적 세계에 살지 않고 있다. 언제 이상적인 사회질서가 실현될지 혹은 과연 그렇게 될런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이상적이지 못한 세계에서 음식이나 건강에 대한 상업적 거래의 비도덕성이 용납된다면, 왜 돈을 받고 하는 섹스는 비윤리적이고 용납불가능한가? 물질적이고 감정적이고 지적이고 성적인 수요가 공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해결되는 이상 사회에서는 아마 그러한 거래가 불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탐색하고, 그 근본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들에 맞서고 도전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세계화에 불만있는 여성들을 위한 자료집: 여성적 사고, 지구적 저항』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펴냄-에서 발췌본문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2차 협상이 끝났다. 1차 협상에서는 상품무역, 원산지/통관, 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경쟁,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총칙/분쟁 해결,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등 총 15개 분과 중 총 11개 분과에서 통합협정문을 작성했고,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4개 분과에서는 이견이 커 통합협정문을 구성하지 못했다. 이에 이어 양국 정부는 지난 7월 초에 열린 2차 협상에서 서비스 분야에 대한 양허 유보 리스트를 교환하고, 상품, 농업, 섬유 분야에 대한 양허안을 일괄적으로 8월 초까지 교환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해 미국이 불만을 표하며 마지막 날 분과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의 사태가 빚어지긴 했지만, 최근 2차 협상의 마지막 날인 14일 미국이 몇 가지 조건을 내걸어 이미 이를 수용했음이 드러났다. 초민족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양국의 합의는 척척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섬유쿼터제, 농산물쿼터제, 개성공단 생산품의 한국산 인정 등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제기하는 입장이 한국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애초에 한·미 FTA 자체가 초민족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신성불가침의 합의였다. 한미 양국이 협상 전부터 굳건히 합의한 사항은 모든 것에 우선해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원칙이고, 이견이 있는 분야에서도 한국 협상단은 민중의 이해보다는 그 산업의 이해를 우선시한다. 제 아무리 언론이 한국 협상단에게 '국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을 주문하고 협상단이 '국익'을 위한 협상안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한·미 FTA가 노동자민중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명확한 것은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쟁점은 '한국이 더욱 잘 살 수 있을 것이냐'가 아니고 '초민족 자본의 이해와 이를 대변하는 지배 세력의 전망 때문에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삶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혀야 하느냐'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여성의 통합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처참한 빈곤을 경험하며, 엄청난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나라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지역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도 점차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이런 파괴적 효과를 보완하고자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기구들은 '인간적인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 빈곤 친화 정책이나 여성 통합 방안을 내놓는다.1)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등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기구에 여성 의제가 포함되고, 세계은행이 여성 참여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역, 투자, 금융의 자유화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여성 참여와 같은 포괄적 의제나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을 직접적인 의제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협정들이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통한 전반적 사회 변화에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는 한·미 FTA에서 직접 다뤄지지는 않지만, 여러 분과의 기본 전제로 인식되고 지배 세력 또한 한·미 FTA로 인해 글로벌 스탠더드가 확산되면 한국경제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여성 통합, 여성인력의 활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한·미 FTA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이라는 이슈로 가시화되거나 구체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입장은 산업별, 부문별, 협정 내용 별로 달라질 수 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3월 한국 여성경제인연합회 조찬 강연에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 덕분에 미국 여성들이 얻은 혜택들을 구구절절 설명한 후 ‘FTA로 인한 시장 개방과 경제정책 개혁이 촉진됨에 따라 기업 관행의 투명성이 증진될 것이고 이는 양국 경제 전반과 특히 양국 여성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1970년 대 이래 미국의 경제적 지위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탈산업화, 서비스 부문의 급격한 팽창,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초래했는데, 이런 전환은 모두 여성 고용의 팽창을 수반했다. 이는 여성들의 고용 확대를 가장 주요한 목표로 사고했던 미국의 여성운동과 맞물렸다. 동일 임금, 훈련과 승진에 대한 접근권, 성희롱에 대한 강력한 대처,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affirmative action), 동등가치 캠페인 등 미국 여성운동가들은 작업장 내 평등과 여성에 대한 모든 직종의 개방을 위해 싸웠다. 이런 운동은 의료, 법률, 건축, 학술과 같은 전문직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더불어 많은 여성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되었다.2) 사실 버시바우가 강조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은 이런 여성들의 성공에 빚진 바 크고, 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선전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국 식 자유화, 작업장 내 평등을 보장할 노동시장 기준이 여성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기대를 자극한다. 한국에서도 한·미 FTA가 여성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가 생겨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의 이중부담 강화 하지만 미국 여성운동이 거뒀다는 이런 성공이 무엇을 대가로 했는가는 그 후광에 가려 은폐될뿐더러, 이것이 오히려 세계화를 보완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양가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점,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에서 자본의 전략이 여성에 대한 이중착취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한·미 FTA가 여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윤율의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초민족자본이 1970년대 취한 전략 중 하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제3세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노린 값싼 노동력의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이 여성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노동착취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국가 발전에 복무했다. 한국은 분단과 대(對)사회주의권 쇼케이스라는 독특한 지위를 통해 미국 시장을 보장받았고, 섬유, 전자와 같은 산업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제3세계로 이전한 많은 공장들과 경쟁하면서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고, 미국의 역(逆)개방 정책 하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가족임금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현실화된 적은 없었다. 이는 몇몇 성장을 주도하는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제한된 혜택일 뿐이어서, 이 때문에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비공식 부문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벌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동은 '주부'라는 이름 뒤에 은폐되었다. 가정에서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자라는 지위는 이들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났다. ‘맞벌이부부’라고 불렸던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남성가장 모델에 입각해 해고 1순위가 되었으며, 악화된 경제상황은 가계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이 재생산노동의 강도를 더욱 높이게 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줄어든 가계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 여성들은 비정규직 노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했고, '노동의 여성화'라는 말처럼 유연한 노동을 확산시키는 데 여성의 노동이 바탕이 되기까지 한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급에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아이의 교육비와 가계의 소득을 담당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지배세력이 채택한 재벌 중심의 성장과 세계화, 그리고 적극적인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통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이라는 전략은 아예 농업 포기를 선언한다. 이에 여성 농민들은 재생산 노동과 농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에 더해 부족한 농가 소득을 메우기 위해 식당이나 인근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성매매에 나서기도 하는 삼중의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양가적 효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은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 여성 인력 활용 정책을 제시하면서, 여성을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극 통합시키려 한다. '직장과 가사의 양립'이라는 정부의 여성정책 기조와 최근 주요 의제로 떠오른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이 같은 정책은 이중 부담에 내몰린 여성들의 고통이 가중되면서 유연한 여성노동력의 활용이 여의치 않고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가는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가족 내 일차적인 가사 담당자라는 여성의 지위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보육이나 노인 부양의 부담을 정부의 보조를 받는 시장에 의해 사회화시키는 한편, 이런 노동을 저임금의 유연한 이른바 ‘여성적 일자리’ 형태로 재생산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이중 착취의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더구나 이는 여성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출혈판매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을 활용케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단결을 심각히 저해한다는 해악을 갖는다. 더불어 모성이라는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마저 '저출산'이라는 담론 하에 국가가 통제하고 여성의 의무로 할당하려는 시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정책이 여성의 실제 권리와 전혀 무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인식을 교정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본질적 측면인 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이 기본적으로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고 전제하면서, 다만 이를 좀더 여성친화적으로 개혁할 것을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의 모습은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불만과 현실을 관리하고 여성을 통합시켜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FTA는 여성의 문제다 한·미 FTA는 이런 여성의 현실을 한 치도 개선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미 FTA는 장기화된 한국 경제의 불황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재벌과 지배 세력이 택한 길이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회화시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화했지만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는 결국 외환위기라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IMF 구조조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편입했다. 한국의 지배 세력이 택한 이런 전략이 대다수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이익과 날카롭게 대립된다는 사실은 여러 현상을 통해서 이미 드러났다. 한·미 FTA는 세계화를 한 단계 구체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재벌과 지배 세력이 대다수 민중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한·미 FTA 체결 이후 대다수 여성들은 지금보다 더 악화된 현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당장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들도 크다. 예를 들어 한·미 FTA를 통해 농업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데, 이렇게 되면 이미 이중·삼중의 부담에 내몰린 여성 농민의 경우 삶의 극단에 놓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의 개방과 시장화는 가족 내 재생산 노동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여성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청소, 가사도우미, 간병, 전화 교환원 등의 기업 및 개인 서비스 직종에서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고, 이는 여성들을 더욱 열악한 노동 조건과 엄청난 노동 강도, 저임금 착취로 내몰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피해가 전부는 아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여성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재생산 노동의 부담도 가중시키며 이중적으로 활용하는 것인 한, 그리고 한·미 FTA가 이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한층 더 구체화시키는 지배 세력의 전략인 한 여성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한·미 FTA 반대투쟁 따라서 한·미 FTA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최근 많은 여성단체들이 한명숙 총리 지명을 촉구·지지했으며, 국회에서 비준되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한명숙 총리가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매진할 것을, 보육 등 돌봄 노동의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정책을 펼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한·미 FTA를 앞장 서 추진하는 여당의 총리에게,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같은 기대를 보내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가? 한·미 FTA는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여성의 재생산노동 문제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지배 세력의 적극적인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 따라서 한·미 FTA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정책이나 여성인력활용방안에 대한 비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여성들의 한·미 FTA 반대 투쟁에는 이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결합되어야 한다. 여성이 당당히 누려야 할 출산을 비롯한 재생산에 대한 권리조차 국가의 인구 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일환으로 통합하면서 여성에게 출산의 의무만을 지우는 현실, 여성이 부담하는 이중의 부담을 다른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덜어내도록 강요하면서도 마치 그것이 여성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는 현실은 현재 한·미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미 FTA가 세계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삶을 박탈하면서 초민족자본의 이윤과 살 길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투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성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농민, 빈민의 권리 없이 여성의 권리가 있을 수 없고, 여성의 권리 없이 노동자, 농민, 빈민의 권리가 있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미 FTA가 강요하는 미래가 세계의 노동자, 농민, 여성의 권리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번 한·미 FTA 저지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여성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1) 발전 과정에 여성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보세럽은 여성들이 지역에서 생산성 증가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이런 기여가 국가 통계나 개발 계획에서 무시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 연구들은 유엔이 '세계 여성의 해'(1975~1985)를 선포하고 '발전에서의 여성'(WID, Women in Development) 접근을 채택하는 기반이 되었다. WID 접근은 여성을 발전의 주체로 인식하고 이들을 생산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제기했다. 하지만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를 휩쓴 외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구조조정 정책이 심화되면서 WID 접근의 한계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대다수 여성이 재생산의 일차 책임자인 상황에서 구조조정 정책은 재생산에 관한 여성의 역량을 무한한 것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여성이 재생산 영역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생산 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은 여성의 실제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전혀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구조조정 정책이 재생산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인식이 대두된다. 이에 따라 WID 접근은 여성의 재생산 역할을 고려하는 '젠더와 발전'(GAD, Gender and Development) 접근으로 전화되며, 이는 이후 성주류화 전략으로 체계화되어 각 국 여성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제기된다. 유엔을 매개로 한 세계적 차원의 여성정책 변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재생산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지한 세계화 주창자들은 여성·빈곤 친화성 등을 주제로 한 여성 정책을 각 국에 권고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 여성인력 활용 등을 강조한다. 본문으로 2) 헤스터 에이젠슈타인, 「위험한 불륜? 페미니즘과 법인기업 세계화」, 『사회운동』, 통권 63호, 2006, 6.본문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2차 협상이 끝났다. 1차 협상에서는 상품무역, 원산지/통관, 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경쟁,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총칙/분쟁 해결,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등 총 15개 분과 중 총 11개 분과에서 통합협정문을 작성했고,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4개 분과에서는 이견이 커 통합협정문을 구성하지 못했다. 이에 이어 양국 정부는 지난 7월 초에 열린 2차 협상에서 서비스 분야에 대한 양허 유보 리스트를 교환하고, 상품, 농업, 섬유 분야에 대한 양허안을 일괄적으로 8월 초까지 교환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해 미국이 불만을 표하며 마지막 날 분과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의 사태가 빚어지긴 했지만, 최근 2차 협상의 마지막 날인 14일 미국이 몇 가지 조건을 내걸어 이미 이를 수용했음이 드러났다. 초민족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양국의 합의는 척척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섬유쿼터제, 농산물쿼터제, 개성공단 생산품의 한국산 인정 등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제기하는 입장이 한국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애초에 한·미 FTA 자체가 초민족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신성불가침의 합의였다. 한미 양국이 협상 전부터 굳건히 합의한 사항은 모든 것에 우선해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원칙이고, 이견이 있는 분야에서도 한국 협상단은 민중의 이해보다는 그 산업의 이해를 우선시한다. 제 아무리 언론이 한국 협상단에게 '국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을 주문하고 협상단이 '국익'을 위한 협상안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한·미 FTA가 노동자민중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명확한 것은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쟁점은 '한국이 더욱 잘 살 수 있을 것이냐'가 아니고 '초민족 자본의 이해와 이를 대변하는 지배 세력의 전망 때문에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삶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혀야 하느냐'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여성의 통합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처참한 빈곤을 경험하며, 엄청난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나라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지역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도 점차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이런 파괴적 효과를 보완하고자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기구들은 '인간적인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 빈곤 친화 정책이나 여성 통합 방안을 내놓는다.1)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등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기구에 여성 의제가 포함되고, 세계은행이 여성 참여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역, 투자, 금융의 자유화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여성 참여와 같은 포괄적 의제나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을 직접적인 의제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협정들이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통한 전반적 사회 변화에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는 한·미 FTA에서 직접 다뤄지지는 않지만, 여러 분과의 기본 전제로 인식되고 지배 세력 또한 한·미 FTA로 인해 글로벌 스탠더드가 확산되면 한국경제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여성 통합, 여성인력의 활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한·미 FTA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이라는 이슈로 가시화되거나 구체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입장은 산업별, 부문별, 협정 내용 별로 달라질 수 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3월 한국 여성경제인연합회 조찬 강연에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 덕분에 미국 여성들이 얻은 혜택들을 구구절절 설명한 후 ‘FTA로 인한 시장 개방과 경제정책 개혁이 촉진됨에 따라 기업 관행의 투명성이 증진될 것이고 이는 양국 경제 전반과 특히 양국 여성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1970년 대 이래 미국의 경제적 지위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탈산업화, 서비스 부문의 급격한 팽창,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초래했는데, 이런 전환은 모두 여성 고용의 팽창을 수반했다. 이는 여성들의 고용 확대를 가장 주요한 목표로 사고했던 미국의 여성운동과 맞물렸다. 동일 임금, 훈련과 승진에 대한 접근권, 성희롱에 대한 강력한 대처,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affirmative action), 동등가치 캠페인 등 미국 여성운동가들은 작업장 내 평등과 여성에 대한 모든 직종의 개방을 위해 싸웠다. 이런 운동은 의료, 법률, 건축, 학술과 같은 전문직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더불어 많은 여성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되었다.2) 사실 버시바우가 강조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은 이런 여성들의 성공에 빚진 바 크고, 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선전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국 식 자유화, 작업장 내 평등을 보장할 노동시장 기준이 여성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기대를 자극한다. 한국에서도 한·미 FTA가 여성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가 생겨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의 이중부담 강화 하지만 미국 여성운동이 거뒀다는 이런 성공이 무엇을 대가로 했는가는 그 후광에 가려 은폐될뿐더러, 이것이 오히려 세계화를 보완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양가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점,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에서 자본의 전략이 여성에 대한 이중착취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한·미 FTA가 여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윤율의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초민족자본이 1970년대 취한 전략 중 하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제3세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노린 값싼 노동력의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이 여성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노동착취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국가 발전에 복무했다. 한국은 분단과 대(對)사회주의권 쇼케이스라는 독특한 지위를 통해 미국 시장을 보장받았고, 섬유, 전자와 같은 산업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제3세계로 이전한 많은 공장들과 경쟁하면서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고, 미국의 역(逆)개방 정책 하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가족임금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현실화된 적은 없었다. 이는 몇몇 성장을 주도하는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제한된 혜택일 뿐이어서, 이 때문에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비공식 부문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벌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동은 '주부'라는 이름 뒤에 은폐되었다. 가정에서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자라는 지위는 이들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났다. ‘맞벌이부부’라고 불렸던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남성가장 모델에 입각해 해고 1순위가 되었으며, 악화된 경제상황은 가계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이 재생산노동의 강도를 더욱 높이게 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줄어든 가계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 여성들은 비정규직 노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했고, '노동의 여성화'라는 말처럼 유연한 노동을 확산시키는 데 여성의 노동이 바탕이 되기까지 한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급에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아이의 교육비와 가계의 소득을 담당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지배세력이 채택한 재벌 중심의 성장과 세계화, 그리고 적극적인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통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이라는 전략은 아예 농업 포기를 선언한다. 이에 여성 농민들은 재생산 노동과 농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에 더해 부족한 농가 소득을 메우기 위해 식당이나 인근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성매매에 나서기도 하는 삼중의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양가적 효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은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 여성 인력 활용 정책을 제시하면서, 여성을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극 통합시키려 한다. '직장과 가사의 양립'이라는 정부의 여성정책 기조와 최근 주요 의제로 떠오른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이 같은 정책은 이중 부담에 내몰린 여성들의 고통이 가중되면서 유연한 여성노동력의 활용이 여의치 않고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가는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가족 내 일차적인 가사 담당자라는 여성의 지위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보육이나 노인 부양의 부담을 정부의 보조를 받는 시장에 의해 사회화시키는 한편, 이런 노동을 저임금의 유연한 이른바 ‘여성적 일자리’ 형태로 재생산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이중 착취의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더구나 이는 여성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출혈판매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을 활용케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단결을 심각히 저해한다는 해악을 갖는다. 더불어 모성이라는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마저 '저출산'이라는 담론 하에 국가가 통제하고 여성의 의무로 할당하려는 시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정책이 여성의 실제 권리와 전혀 무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인식을 교정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본질적 측면인 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이 기본적으로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고 전제하면서, 다만 이를 좀더 여성친화적으로 개혁할 것을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의 모습은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불만과 현실을 관리하고 여성을 통합시켜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FTA는 여성의 문제다 한·미 FTA는 이런 여성의 현실을 한 치도 개선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미 FTA는 장기화된 한국 경제의 불황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재벌과 지배 세력이 택한 길이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회화시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화했지만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는 결국 외환위기라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IMF 구조조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편입했다. 한국의 지배 세력이 택한 이런 전략이 대다수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이익과 날카롭게 대립된다는 사실은 여러 현상을 통해서 이미 드러났다. 한·미 FTA는 세계화를 한 단계 구체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재벌과 지배 세력이 대다수 민중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한·미 FTA 체결 이후 대다수 여성들은 지금보다 더 악화된 현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당장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들도 크다. 예를 들어 한·미 FTA를 통해 농업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데, 이렇게 되면 이미 이중·삼중의 부담에 내몰린 여성 농민의 경우 삶의 극단에 놓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의 개방과 시장화는 가족 내 재생산 노동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여성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청소, 가사도우미, 간병, 전화 교환원 등의 기업 및 개인 서비스 직종에서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고, 이는 여성들을 더욱 열악한 노동 조건과 엄청난 노동 강도, 저임금 착취로 내몰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피해가 전부는 아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여성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재생산 노동의 부담도 가중시키며 이중적으로 활용하는 것인 한, 그리고 한·미 FTA가 이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한층 더 구체화시키는 지배 세력의 전략인 한 여성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한·미 FTA 반대투쟁 따라서 한·미 FTA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최근 많은 여성단체들이 한명숙 총리 지명을 촉구·지지했으며, 국회에서 비준되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한명숙 총리가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매진할 것을, 보육 등 돌봄 노동의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정책을 펼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한·미 FTA를 앞장 서 추진하는 여당의 총리에게,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같은 기대를 보내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가? 한·미 FTA는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여성의 재생산노동 문제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지배 세력의 적극적인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 따라서 한·미 FTA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정책이나 여성인력활용방안에 대한 비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여성들의 한·미 FTA 반대 투쟁에는 이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결합되어야 한다. 여성이 당당히 누려야 할 출산을 비롯한 재생산에 대한 권리조차 국가의 인구 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일환으로 통합하면서 여성에게 출산의 의무만을 지우는 현실, 여성이 부담하는 이중의 부담을 다른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덜어내도록 강요하면서도 마치 그것이 여성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는 현실은 현재 한·미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미 FTA가 세계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삶을 박탈하면서 초민족자본의 이윤과 살 길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투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성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농민, 빈민의 권리 없이 여성의 권리가 있을 수 없고, 여성의 권리 없이 노동자, 농민, 빈민의 권리가 있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미 FTA가 강요하는 미래가 세계의 노동자, 농민, 여성의 권리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번 한·미 FTA 저지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여성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1) 발전 과정에 여성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보세럽은 여성들이 지역에서 생산성 증가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이런 기여가 국가 통계나 개발 계획에서 무시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 연구들은 유엔이 '세계 여성의 해'(1975~1985)를 선포하고 '발전에서의 여성'(WID, Women in Development) 접근을 채택하는 기반이 되었다. WID 접근은 여성을 발전의 주체로 인식하고 이들을 생산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제기했다. 하지만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를 휩쓴 외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구조조정 정책이 심화되면서 WID 접근의 한계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대다수 여성이 재생산의 일차 책임자인 상황에서 구조조정 정책은 재생산에 관한 여성의 역량을 무한한 것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여성이 재생산 영역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생산 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은 여성의 실제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전혀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구조조정 정책이 재생산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인식이 대두된다. 이에 따라 WID 접근은 여성의 재생산 역할을 고려하는 '젠더와 발전'(GAD, Gender and Development) 접근으로 전화되며, 이는 이후 성주류화 전략으로 체계화되어 각 국 여성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제기된다. 유엔을 매개로 한 세계적 차원의 여성정책 변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재생산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지한 세계화 주창자들은 여성·빈곤 친화성 등을 주제로 한 여성 정책을 각 국에 권고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 여성인력 활용 등을 강조한다. 본문으로 2) 헤스터 에이젠슈타인, 「위험한 불륜? 페미니즘과 법인기업 세계화」, 『사회운동』, 통권 63호, 2006, 6.본문으로
오늘날 가족 책임 중심의 노인부양체계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노인에 대한 사회적 부양체계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복지제도의 기반이 전무한 한국 상황에서 이런 제도의 도입은 여성이 져온 부담을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서구 복지개혁의 ‘시장화’ 정책을 곧바로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병인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는 한국의 가족 전가적 복지부재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과정에서 여성노동에 대한 평가절하가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간병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인수발보험법>의 문제, 현재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노인수발보험법> 제정 경과와 쟁점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노인요양보장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제출한 바 있다. 정부는 급격한 출산율 하락에 대한 사회적 위기 인식을 확산하면서, 저출산·고령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에서 2005년 4월 임시국회에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2005년 10월 <노인수발보장법>을 입법예고하였고, 1차 시범사업).1)을 거쳐 2006년 2월 사회보험 방식의 <노인수발보험법>이 국무회의를 통과, 2008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법이 시행되면, 노인의 삶의 질 향상, 가족의 부양부담 경감, 여성 등 비공식적 수발자의 경제활동 증가,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고령친화산업 및 지역경제 활성화, 노인의료비 사용의 효율화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5월 마련된 기본안이 제도의 윤곽을 드러내면서부터,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제시한 법률안이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상(수급권자), 재원 확보에 있어서 국가 책임과 국민 부담률 문제, 제도 시행을 위한 인력·시설 기반이나 그 운영방식 등 제도의 핵심적인 내용에서 많은 문제점2)이 드러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인수발보험법>은 의료보험과 같이 전 국민에게 보험료를 부과하면서도,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65세 이상 노인과 노인성 질환을 가진 64세 이하의 국민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제공하는 서비스조차 실제 요양에 필요한 서비스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또한 정부의 재정부담률이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범위는 모호하게 명시된 반면에, 국민들은 보험료뿐만 아니라, 서비스 이용 요금의 20%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서비스 접근도 역시 낮을 것이 뻔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장기요양보장제도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요양보장연대회의>) 뿐만 아니라, 정부안과 다르게 추진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법안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하에서 일하게 될 노동자의 입장에서 제도 시행의 효과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흐름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간병노동자들의 현실과 <노인수발보험법> 2003년 말부터 8개월에 걸쳐 전개된 서울대병원 간병인지부 조합원들의 투쟁으로 간병노동자의 현실이 생생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간병노동자들은 매일 24시간씩 주144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8시간 기준 16,666원, 한편 2006년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3100원, 8시간 기준 24800원이다)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료소개소의 중간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간병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임금을 받고 일하지만, ‘사업체가 아니라 개인’에게 고용되었다는 이유로 노동자성 조차 인정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4대 보험의 적용제외 대상으로 그야말로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더구나 ‘간병인’은 26개 파견업 허용직종에도 속해 있어, 간병노동자는 파견노동자이자, 특수고용노동자, 비공식노동자 등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보건복지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4년 현재 간병인력은 19만이 넘지만, 현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간병노동자들은 실제 수요에 따라 병원이나 가정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제도 밖의 비공식적인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병노동자들은 간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법적, 제도적 조치들을 요구해왔고 그만큼 <노인수발보험법> 제정에 거는 기대 또한 컸다. 실제 <노인수발보험법>에 따르면 간병, 가사 및 일상생활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수발요원’이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요 인력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노인수발보험법>에는 재가수발, 시설수발 등 종사노동자들의 노동의 형태만 적시되어 있을 뿐, 종사노동자들의 법적 지위는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별도의 명시가 없을 경우 노동법의 적용을 받게 되지만, 문제는 정부법안의 구성이나 법안 설명에 따르면 특수고용, 파견 등 비정규 형태의 고용이 예상되는데 파견법 및 입법 준비 중인 기간제법, 특수고용법 등 비정규법의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인수발보험법> 6장은 수발기관의 지정과 휴폐업, 취소에 관한 상세한 요건을 다루고 있는데, 수발기관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요건(시설 및 인력)을 갖추고 공단으로부터 지정받도록 되어 있다. 즉 민간위탁으로 노동자들을 간접 고용하겠다는 것이다.3) 이는 <노인수발보험법> 설명에서 ‘다양한 주체의 참여’ 시스템을 확립하겠다는 목표로 민간부문(기업)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이 법이 ‘일자리 창출 정책’이 될 것이라고 적극 홍보하고 있는데, 그 효과는 정부가 나서서 비정규직을 확대 양산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일본의 개호보험은 한국의 <노인수발보험법>의 미래 일본은 사회복지기초구조개혁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개호보험을 실시하였는데, 개호보험의 실시로 일본의 고령자복지에서 나타난 최대의 구조변화는 노인요양서비스의 공급에 있어서 ‘복지의 시장화’라 불리는 규제완화이다4). 일본의 개호보험의 사례를 보는 것은, 정부가 사회보험제도의 방식을 택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참조점으로 삼고 있고 실제로 유사성이 높아, 시행한 지 5년이 넘은 개호보험의 결과는 <노인수발보험제도>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개호보험이 실시되면서 재가복지서비스를 중심으로 공급주체의 규제가 완화되어 의료법인, 주식회사 등과 같은 민간영리기업, 농협, 생협,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사업주체에 의한 서비스 공급이 가능해졌다. ‘복지의 시장화’로 불리는 변화의 핵심은 서비스의 이용과 제공이 행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구조에서 이용자와 제공자가 화폐를 매개로 하여 직접적으로 매매하는 구조로 바뀌고, 복지서비스의 이용 및 제공의 책임이 행정에서 이용자 및 제공자로, 즉 직접적인 당사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구조개혁의 목표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고령자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총량이나 국고부담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용자의 부담을 증대시켜 수요를 억제시키는 것이었다. 이용료의 10%에 달하는 자기부담은 서비스 이용억제 효과를 가져와 개호보험 서비스가 필요함에도 그것을 이용할 수 없는 다수가 생겨나는 계층화된 개호시스템이 구축된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수발을 가족, 특히 여성에게 의존하는 것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영리기업의 참여로 개호종사자의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재가서비스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홈헬퍼’의 경우는 효율화와 비용 삭감의 압력 속에서 시간단위의 서비스 제공과 파트타임 노동을 전제로 한 임금체계 때문에 개호보험 시행 후 노동조건은 급속하게 악화되었다. <노인수발보험법> 역시 일본의 개호보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앞서 서술했듯이 정부는 2004년 10월 민간투자법을 개정하여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를 열어놓고, 서비스 공급에 있어 민간기업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는 법 제정의 취지가 복지의 부재를 가족이 전담했던 현실을 변화하거나 특히 가족 내 여성의 부담을 사회화하겠다는 계획이라기보다는 복지서비스를 새로운 시장으로 만들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임금을 케이스 별(관리수 별)로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이동시간 및 보고서 작성 시간, 교통수단의 격차가 인정되지 않아 가사·간병 노동자의 현재의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가사·간병 서비스를 등급화하려는 것은 이미 ‘여성의 일’로 저평가되어 있는 가사·간병 노동을 차별적 임금지급을 통해 저임금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이다. 「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과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의 기만성 지난 6월 7일 정부는 「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월 [희망한국 21- 저출산 종합대책]이 거의 출산, 양육지원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기본계획’은 아동·여성·노인의 양육·고용·보건·복지 등 매우 포괄적인 정책 분야의 과제를 하나로 묶은 사회정책의 종합판이다.5) 그러나 이번 기본계획 230여개의 세부사업 중에서 <노인수발보험법>을 포함하여, 180여개 사업은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이 확정된 사업이고, 신규 사업은 비 예산 사업 20개를 포함하여 50여 개뿐이다. 즉 ‘기본계획’은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여러 정책들을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이라는 틀로 재구성한 것이며 이는 매우 정치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기본계획’은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의 결과로 나타난 노동의 불안정화, 대중의 삶의 위기를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성장의 위기’로 본질을 호도하고 그 책임을 개별 국민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본계획’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아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주체이자 부족한 생산가능 인구를 보충해야 하는 노동력이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여 있으며, 여성으로 하여금 어머니와 노동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육아휴직, 산전 후 휴가에 대한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일·가정의 양립은 근로형태 유연화를 전제로 하는데 이미 심각히 유연해진 여성노동시장의 상황을 고착화하여 저임금 불안정 여성노동자의 이중부담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여기에 여성가족부는 지난 7월 4일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여성인력 활용을 통한 선진경제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2010년까지 여성경제활동참가율 55% 달성, 여성일자리 약 60만 개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성일자리 창출 60만 개 중 44만 개는 간병서비스 개선 제도화, 노인수발보험제도 등의 실시로 창출될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가 차지한다. 이는 여성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기 보단 이미 비공식부문에서 일하는 가사·간병 노동자의 양성화, 제도화로 봐야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시행예정인 <노인수발보험법>은 가사, 간병노동을 하는 주로 중고령층의 여성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을 고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은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라는 성별분업에 기초한 성차별적 노동시장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가정에서의 이중부담을 증가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여성일자리 창출’로 포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노인수발보험법>과 여성노동자 노무현 정부는 <노인수발보험법>을 통해 국가가 노인부양을 책임지고, 그와 함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선전을 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보장체계로서 <노인수발보험법>에 대한 사회적 기대 또한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시범사업의 경과만 보더라도 이 제도는 노양부양을 사회적 책임으로 분담함으로써 주로 사적 부양체계에서 이 일을 전담하던 여성의 부담을 경감해주고 이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차 시범사업 결과 2차 시범사업에서 적용될 ‘노인수발서비스 수가 및 산정기준’(이하 ‘기준’)에 따르면, 1등급을 받은 수발대상자가 한 달 동안 받을 수 있는 재가서비스 한도액은 975,120원이다. 현재 환자나 환자가족이 1달 동안 간병인을 고용하는데 최소 120만원(이 역시 간병노동자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현실에서의 금액이다)이 소요되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부족한 서비스 제공일뿐더러,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월 20만원이 넘는 비용 부담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60%는 여성이 차지하고 있고, 빈곤계층으로 갈수록 여성노인비율은 높아진다.6) 즉 아프고 요양이 필요한 빈곤한 여성노인들은 높은 본인 부담 때문에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현재 가족 내에서 노인요양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아내나 며느리, 즉 여성인 현실7)을 감안할 때, 높은 비용 부담 때문에 이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여성의 부양부담을 줄어들지 않을뿐더러, 제도 시행에 따른 요양서비스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강해져 오히려 여성의 부담과 역할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준’에 따르면 재가 서비스의 경우,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 서비스 대상자의 등급별로 서비스 제공 시간에 따라 해당 수가를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시간당 급여의 경우 30분 단위로 금액이 책정되어 있는데, 서비스 제공시간 30분 미만인 경우는 지급하지 않고, 책정기준 30분 미만의 초과 서비스 제공8)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수가 체계에 따르면 노동자가 일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고려되어 있지 않고, 교통비, 식대가 모두 일하는 노동자의 부담이 되는 데 반해, 수가가 턱없이 낮고 대상자의 사정으로 일이 취소되어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또한 고용불안정이나 저임금 문제뿐만 아니라 재가서비스의 경우, 가정 내에서 일대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간병노동자들은 환자나 환자가족의 성적,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기 싶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시설서비스의 경우는 등급별 1일당으로 산정하는데, 가장 높은 등급 비율을 차지하는 3등급의 경우 25,280원이다. 이는 간병·수발 등의 일상생활지원, 수발관리, 간호, 기능훈련 및 기타 복지서비스 등 시설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제반 서비스 비용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저임금은 예상가능하다. 이렇듯 <노인수발보험제도>는 이 법의 제정으로 간병노동의 제도화를 통한 노동권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을 기대했던 현재 간병노동자의 기대와는 정반대인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구조의 고착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인수발보험법>의 목표는 중년·고령층 여성노동자를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하여, 높은 비용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데 있을 뿐이다. 이에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조는 노동권 후퇴와 사회복지가 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한 기조9)로 <요양보장연대회의>에 참여하여 현재 추진되는 <노인수발보험법>에 반대하면서, 간병노동자 전국 조직화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여성고용창출의 기회로 보고, 여성노동의 불안정화를 고착화시키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정책에 편승하는 ‘사회적 기업’ 흐름에도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성노동자를 이중적으로 착취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기만성을 폭로하면서 간병노동자의 노동권 쟁취 투쟁에 연대해야 할 것이다. 1) 1차 시범사업은 2005년 7월부터 2006년 3월까지 55개 시설을 중심으로 실시되었는데, 6개 시군구, 기초수급노인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2차 시범사업은 2006년 4월부터 1년 동안 실시되는데, 8개 시범지역, 일반노인까지 확대하여 실시할 예정이다. 본문으로 2) 최예륜, 「장기요양보장제도 도입의 쟁점과 노인수발보험법의 문제점①」, 『사회운동』65호본문으로 3) ‘요양노동자의 노동권 보장과 지자체의 역할’, 공공연맹 정책부장 이윤주 본문으로 4) 일본의 개호보험과 관련해서는 「노인요양서비스 시장화의 두 가지 길: 일본의 경험과 한국의 시도」(오세영, 2005)‘만’을 참조하였다. 본문으로 5) 「‘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주요 쟁점과 당의 대응: 여성관련 쟁점을 중심으로」, 김원정 본문으로 6) 2001년 현재 65세 이상 여성노인이 남성노인의 1.5배이며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에는 3배, 차상위 계층의 경우는 약 2배 정도이다.본문으로 7) 199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 조사결과에 의하면, 주 수발자의 80%가 여성이며, 남성노인의 주 수발자는 여성이 99%이고 배우자가 71.2%를 차지하고(또한 주 수발자의 54.9%가 65세 이상), 여성노인은 71.8%가 여성이고 장남며느리가 37.5%의 비중을 차지한다.본문으로 8) 예를 들어, 가정수발서비스의 경우 30분에 9560원인데, 59분의 경우도 같은 수가가 지급된다. 9) “노인수발보험법을 만들려면 반드시 당사자인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국민건강보험료로 간병료가 지급되고, 노인들은 환자는 무료로 간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간병노동자들이 특수고용에서 벗어나고 최저임금 적용받을 수 있어야지요. 그래서 환자가 정말 마음 편하게 간병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간병인도 불안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정부가 정말로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자 한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98주년 여성의 날 맞이 토론회에서 서울대병원지부 간병인분회장의 발언 중 본문으로
오늘날 가족 책임 중심의 노인부양체계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노인에 대한 사회적 부양체계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복지제도의 기반이 전무한 한국 상황에서 이런 제도의 도입은 여성이 져온 부담을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서구 복지개혁의 ‘시장화’ 정책을 곧바로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병인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는 한국의 가족 전가적 복지부재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과정에서 여성노동에 대한 평가절하가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간병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인수발보험법>의 문제, 현재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노인수발보험법> 제정 경과와 쟁점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노인요양보장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제출한 바 있다. 정부는 급격한 출산율 하락에 대한 사회적 위기 인식을 확산하면서, 저출산·고령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에서 2005년 4월 임시국회에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2005년 10월 <노인수발보장법>을 입법예고하였고, 1차 시범사업).1)을 거쳐 2006년 2월 사회보험 방식의 <노인수발보험법>이 국무회의를 통과, 2008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법이 시행되면, 노인의 삶의 질 향상, 가족의 부양부담 경감, 여성 등 비공식적 수발자의 경제활동 증가,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고령친화산업 및 지역경제 활성화, 노인의료비 사용의 효율화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5월 마련된 기본안이 제도의 윤곽을 드러내면서부터,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제시한 법률안이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상(수급권자), 재원 확보에 있어서 국가 책임과 국민 부담률 문제, 제도 시행을 위한 인력·시설 기반이나 그 운영방식 등 제도의 핵심적인 내용에서 많은 문제점2)이 드러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인수발보험법>은 의료보험과 같이 전 국민에게 보험료를 부과하면서도,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65세 이상 노인과 노인성 질환을 가진 64세 이하의 국민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제공하는 서비스조차 실제 요양에 필요한 서비스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또한 정부의 재정부담률이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범위는 모호하게 명시된 반면에, 국민들은 보험료뿐만 아니라, 서비스 이용 요금의 20%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서비스 접근도 역시 낮을 것이 뻔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장기요양보장제도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요양보장연대회의>) 뿐만 아니라, 정부안과 다르게 추진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법안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하에서 일하게 될 노동자의 입장에서 제도 시행의 효과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흐름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간병노동자들의 현실과 <노인수발보험법> 2003년 말부터 8개월에 걸쳐 전개된 서울대병원 간병인지부 조합원들의 투쟁으로 간병노동자의 현실이 생생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간병노동자들은 매일 24시간씩 주144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8시간 기준 16,666원, 한편 2006년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3100원, 8시간 기준 24800원이다)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료소개소의 중간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간병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임금을 받고 일하지만, ‘사업체가 아니라 개인’에게 고용되었다는 이유로 노동자성 조차 인정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4대 보험의 적용제외 대상으로 그야말로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더구나 ‘간병인’은 26개 파견업 허용직종에도 속해 있어, 간병노동자는 파견노동자이자, 특수고용노동자, 비공식노동자 등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보건복지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4년 현재 간병인력은 19만이 넘지만, 현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간병노동자들은 실제 수요에 따라 병원이나 가정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제도 밖의 비공식적인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병노동자들은 간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법적, 제도적 조치들을 요구해왔고 그만큼 <노인수발보험법> 제정에 거는 기대 또한 컸다. 실제 <노인수발보험법>에 따르면 간병, 가사 및 일상생활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수발요원’이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요 인력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노인수발보험법>에는 재가수발, 시설수발 등 종사노동자들의 노동의 형태만 적시되어 있을 뿐, 종사노동자들의 법적 지위는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별도의 명시가 없을 경우 노동법의 적용을 받게 되지만, 문제는 정부법안의 구성이나 법안 설명에 따르면 특수고용, 파견 등 비정규 형태의 고용이 예상되는데 파견법 및 입법 준비 중인 기간제법, 특수고용법 등 비정규법의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인수발보험법> 6장은 수발기관의 지정과 휴폐업, 취소에 관한 상세한 요건을 다루고 있는데, 수발기관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요건(시설 및 인력)을 갖추고 공단으로부터 지정받도록 되어 있다. 즉 민간위탁으로 노동자들을 간접 고용하겠다는 것이다.3) 이는 <노인수발보험법> 설명에서 ‘다양한 주체의 참여’ 시스템을 확립하겠다는 목표로 민간부문(기업)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이 법이 ‘일자리 창출 정책’이 될 것이라고 적극 홍보하고 있는데, 그 효과는 정부가 나서서 비정규직을 확대 양산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일본의 개호보험은 한국의 <노인수발보험법>의 미래 일본은 사회복지기초구조개혁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개호보험을 실시하였는데, 개호보험의 실시로 일본의 고령자복지에서 나타난 최대의 구조변화는 노인요양서비스의 공급에 있어서 ‘복지의 시장화’라 불리는 규제완화이다4). 일본의 개호보험의 사례를 보는 것은, 정부가 사회보험제도의 방식을 택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참조점으로 삼고 있고 실제로 유사성이 높아, 시행한 지 5년이 넘은 개호보험의 결과는 <노인수발보험제도>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개호보험이 실시되면서 재가복지서비스를 중심으로 공급주체의 규제가 완화되어 의료법인, 주식회사 등과 같은 민간영리기업, 농협, 생협,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사업주체에 의한 서비스 공급이 가능해졌다. ‘복지의 시장화’로 불리는 변화의 핵심은 서비스의 이용과 제공이 행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구조에서 이용자와 제공자가 화폐를 매개로 하여 직접적으로 매매하는 구조로 바뀌고, 복지서비스의 이용 및 제공의 책임이 행정에서 이용자 및 제공자로, 즉 직접적인 당사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구조개혁의 목표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고령자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총량이나 국고부담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용자의 부담을 증대시켜 수요를 억제시키는 것이었다. 이용료의 10%에 달하는 자기부담은 서비스 이용억제 효과를 가져와 개호보험 서비스가 필요함에도 그것을 이용할 수 없는 다수가 생겨나는 계층화된 개호시스템이 구축된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수발을 가족, 특히 여성에게 의존하는 것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영리기업의 참여로 개호종사자의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재가서비스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홈헬퍼’의 경우는 효율화와 비용 삭감의 압력 속에서 시간단위의 서비스 제공과 파트타임 노동을 전제로 한 임금체계 때문에 개호보험 시행 후 노동조건은 급속하게 악화되었다. <노인수발보험법> 역시 일본의 개호보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앞서 서술했듯이 정부는 2004년 10월 민간투자법을 개정하여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를 열어놓고, 서비스 공급에 있어 민간기업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는 법 제정의 취지가 복지의 부재를 가족이 전담했던 현실을 변화하거나 특히 가족 내 여성의 부담을 사회화하겠다는 계획이라기보다는 복지서비스를 새로운 시장으로 만들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임금을 케이스 별(관리수 별)로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이동시간 및 보고서 작성 시간, 교통수단의 격차가 인정되지 않아 가사·간병 노동자의 현재의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가사·간병 서비스를 등급화하려는 것은 이미 ‘여성의 일’로 저평가되어 있는 가사·간병 노동을 차별적 임금지급을 통해 저임금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이다. 「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과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의 기만성 지난 6월 7일 정부는 「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월 [희망한국 21- 저출산 종합대책]이 거의 출산, 양육지원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기본계획’은 아동·여성·노인의 양육·고용·보건·복지 등 매우 포괄적인 정책 분야의 과제를 하나로 묶은 사회정책의 종합판이다.5) 그러나 이번 기본계획 230여개의 세부사업 중에서 <노인수발보험법>을 포함하여, 180여개 사업은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이 확정된 사업이고, 신규 사업은 비 예산 사업 20개를 포함하여 50여 개뿐이다. 즉 ‘기본계획’은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여러 정책들을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이라는 틀로 재구성한 것이며 이는 매우 정치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기본계획’은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의 결과로 나타난 노동의 불안정화, 대중의 삶의 위기를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성장의 위기’로 본질을 호도하고 그 책임을 개별 국민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본계획’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아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주체이자 부족한 생산가능 인구를 보충해야 하는 노동력이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여 있으며, 여성으로 하여금 어머니와 노동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육아휴직, 산전 후 휴가에 대한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일·가정의 양립은 근로형태 유연화를 전제로 하는데 이미 심각히 유연해진 여성노동시장의 상황을 고착화하여 저임금 불안정 여성노동자의 이중부담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여기에 여성가족부는 지난 7월 4일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여성인력 활용을 통한 선진경제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2010년까지 여성경제활동참가율 55% 달성, 여성일자리 약 60만 개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성일자리 창출 60만 개 중 44만 개는 간병서비스 개선 제도화, 노인수발보험제도 등의 실시로 창출될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가 차지한다. 이는 여성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기 보단 이미 비공식부문에서 일하는 가사·간병 노동자의 양성화, 제도화로 봐야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시행예정인 <노인수발보험법>은 가사, 간병노동을 하는 주로 중고령층의 여성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을 고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은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라는 성별분업에 기초한 성차별적 노동시장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가정에서의 이중부담을 증가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여성일자리 창출’로 포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노인수발보험법>과 여성노동자 노무현 정부는 <노인수발보험법>을 통해 국가가 노인부양을 책임지고, 그와 함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선전을 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보장체계로서 <노인수발보험법>에 대한 사회적 기대 또한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시범사업의 경과만 보더라도 이 제도는 노양부양을 사회적 책임으로 분담함으로써 주로 사적 부양체계에서 이 일을 전담하던 여성의 부담을 경감해주고 이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차 시범사업 결과 2차 시범사업에서 적용될 ‘노인수발서비스 수가 및 산정기준’(이하 ‘기준’)에 따르면, 1등급을 받은 수발대상자가 한 달 동안 받을 수 있는 재가서비스 한도액은 975,120원이다. 현재 환자나 환자가족이 1달 동안 간병인을 고용하는데 최소 120만원(이 역시 간병노동자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현실에서의 금액이다)이 소요되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부족한 서비스 제공일뿐더러,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월 20만원이 넘는 비용 부담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60%는 여성이 차지하고 있고, 빈곤계층으로 갈수록 여성노인비율은 높아진다.6) 즉 아프고 요양이 필요한 빈곤한 여성노인들은 높은 본인 부담 때문에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현재 가족 내에서 노인요양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아내나 며느리, 즉 여성인 현실7)을 감안할 때, 높은 비용 부담 때문에 이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여성의 부양부담을 줄어들지 않을뿐더러, 제도 시행에 따른 요양서비스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강해져 오히려 여성의 부담과 역할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준’에 따르면 재가 서비스의 경우,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 서비스 대상자의 등급별로 서비스 제공 시간에 따라 해당 수가를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시간당 급여의 경우 30분 단위로 금액이 책정되어 있는데, 서비스 제공시간 30분 미만인 경우는 지급하지 않고, 책정기준 30분 미만의 초과 서비스 제공8)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수가 체계에 따르면 노동자가 일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고려되어 있지 않고, 교통비, 식대가 모두 일하는 노동자의 부담이 되는 데 반해, 수가가 턱없이 낮고 대상자의 사정으로 일이 취소되어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또한 고용불안정이나 저임금 문제뿐만 아니라 재가서비스의 경우, 가정 내에서 일대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간병노동자들은 환자나 환자가족의 성적,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기 싶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시설서비스의 경우는 등급별 1일당으로 산정하는데, 가장 높은 등급 비율을 차지하는 3등급의 경우 25,280원이다. 이는 간병·수발 등의 일상생활지원, 수발관리, 간호, 기능훈련 및 기타 복지서비스 등 시설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제반 서비스 비용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저임금은 예상가능하다. 이렇듯 <노인수발보험제도>는 이 법의 제정으로 간병노동의 제도화를 통한 노동권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을 기대했던 현재 간병노동자의 기대와는 정반대인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구조의 고착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인수발보험법>의 목표는 중년·고령층 여성노동자를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하여, 높은 비용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데 있을 뿐이다. 이에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조는 노동권 후퇴와 사회복지가 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한 기조9)로 <요양보장연대회의>에 참여하여 현재 추진되는 <노인수발보험법>에 반대하면서, 간병노동자 전국 조직화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여성고용창출의 기회로 보고, 여성노동의 불안정화를 고착화시키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정책에 편승하는 ‘사회적 기업’ 흐름에도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성노동자를 이중적으로 착취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기만성을 폭로하면서 간병노동자의 노동권 쟁취 투쟁에 연대해야 할 것이다. 1) 1차 시범사업은 2005년 7월부터 2006년 3월까지 55개 시설을 중심으로 실시되었는데, 6개 시군구, 기초수급노인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2차 시범사업은 2006년 4월부터 1년 동안 실시되는데, 8개 시범지역, 일반노인까지 확대하여 실시할 예정이다. 본문으로 2) 최예륜, 「장기요양보장제도 도입의 쟁점과 노인수발보험법의 문제점①」, 『사회운동』65호본문으로 3) ‘요양노동자의 노동권 보장과 지자체의 역할’, 공공연맹 정책부장 이윤주 본문으로 4) 일본의 개호보험과 관련해서는 「노인요양서비스 시장화의 두 가지 길: 일본의 경험과 한국의 시도」(오세영, 2005)‘만’을 참조하였다. 본문으로 5) 「‘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주요 쟁점과 당의 대응: 여성관련 쟁점을 중심으로」, 김원정 본문으로 6) 2001년 현재 65세 이상 여성노인이 남성노인의 1.5배이며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에는 3배, 차상위 계층의 경우는 약 2배 정도이다.본문으로 7) 199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 조사결과에 의하면, 주 수발자의 80%가 여성이며, 남성노인의 주 수발자는 여성이 99%이고 배우자가 71.2%를 차지하고(또한 주 수발자의 54.9%가 65세 이상), 여성노인은 71.8%가 여성이고 장남며느리가 37.5%의 비중을 차지한다.본문으로 8) 예를 들어, 가정수발서비스의 경우 30분에 9560원인데, 59분의 경우도 같은 수가가 지급된다. 9) “노인수발보험법을 만들려면 반드시 당사자인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국민건강보험료로 간병료가 지급되고, 노인들은 환자는 무료로 간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간병노동자들이 특수고용에서 벗어나고 최저임금 적용받을 수 있어야지요. 그래서 환자가 정말 마음 편하게 간병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간병인도 불안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정부가 정말로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자 한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98주년 여성의 날 맞이 토론회에서 서울대병원지부 간병인분회장의 발언 중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