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개혁의 쟁점과 우리의 자세 "어떤 인간도 불법이 아니다" 거주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름도, 권리도 없이 온갖 궂은 일을 도맡으며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이주자들이 미국의 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자들을 합법화하고 이들의 권리를 전면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연일 이어지며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4월 10일 집회에서는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구호가 전면에 등장할 정도로 이민자들은 투쟁 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만들고 투쟁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이번 투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작년 12월 16일 미국 하원을 통과한 ‘센센브레너 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미등록 이주자(소위 '불법 이민자')들을 범죄자이자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있다. 불법고용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미국 내 고용주들이 노동자의 합법 노동자 신분을 확인하도록 의무화하고 위반 시 벌금은 물론 형사상 처벌까지 받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미등록 이주자들을 중범죄자로 규정해 무조건 구금하고 신소하게 추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들을 보호하는 행위도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700마일의 장벽을 쌓고 국경감시를 위해 첨단장비와 인력을 확충하도록 되어 있다. 인간을 '무자격-무권리'의 상태로 내몰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센센브레너 법안은 열악한 노동환경, 심각한 인권의 박탈과 차별을 겪고 있는 이주자들, 특히 미등록 이주자들의 누적된 불만에 불을 붙였다. 미국 내 미등록 이주자의 수는 2005년 현재 1110만 명으로 이는 미국 내 전체 외국출신 인구의 30%에 해당한다. 89년에는 250만에 불과했지만 매년 50만 명 이상 증가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은 농업, 건설업, 호텔이나 레스토랑 서빙업, 청소업 등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 대부분을 도맡으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1) 또한 97년 클린턴 정부에 의해 임산부를 제외한 모든 미등록 이주자들의 복지혜택이 박탈되는 등 이들의 사회적 권리는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왔다. 그렇다면 무자격 이민자의 수가 이렇게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80년 이후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주변부에서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계속되었다. 국내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소득조차 얻을 수 없던 많은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그나마 형편이 나은 미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하층 일자리를 담당할 외국인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 이와 동시에 이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장기간의 경제침체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거나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지배 정치세력들은 이러한 인식을 활용함은 물론 적극적으로 조장하기도 했다. 합법적 이민을 위한 심사는 더욱 엄격해졌고 무자격 이주자의 수는 더욱 늘어갔다. 9?11 테러 이후에는 이들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미국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흐트러뜨리는 범죄 집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 모든 상황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무자격 이민자들에게 돌아갔다. '불법적인 존재'인 이들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고 공동체에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들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이들의 불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수준까지 쌓여 왔다.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인구통제의 딜레마 이러한 불만의 누적은 미국체제의 커다란 불안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배세력은 이민법의 개혁을 시도하게 된다. 개혁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저렴하고 통제가 쉬운 노동력으로서 이주노동력에 대한 자본가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자격 이민자의 수를 줄이고 인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부시 정부는 두 가지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미등록 이주자들에 대한 수사적, 실질적 공격을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임시 노동자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임시노동자 프로그램은 자본의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미국 사회에 장기 체류하거나 영구 거주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는 좌-우 양쪽의 비판을 모두 받는다. 이주노동력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이 미등록 이주자들의 원활한 공급을 방해하지는 않을지 우려를 표명했다. 자유주의자들도 이에 가세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오히려 미등록 이주자의 수만 더 늘릴 뿐이라며 즉각적인 추방이나 단속의 강화와 같은 보다 강경한 통제정책을 요구했다. 이처럼 자본의 요구와 인구통제의 딜레마 속에서 부시정부의 이민개혁은 계속 연기되었다. 그런데 2006년 상-하원 선거를 앞두고 부시정부는 더 이상 이민문제의 해결을 늦출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보수주의자의 요구를 수용하여 2005년 11월 '이민 개혁을 통한 국가 안보' 전략을 발표한다. 이 전략은 기존의 임시 노동자 프로그램 구상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민개혁의 일차적인 목표가 국경안보의 강화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국경지대에서 입국관리의 강화와 사업장 차원에서 미등록 이주자들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우선적인 과제로 제시하였다. 새로운 전략의 발표 이후 하원에서는 센센브레너가 주도한 ‘국경보호, 반테러, 불법이민 통제법 2005’ 가 통과되고 상원에는 유사한 내용의 ‘프리스트 법안’이 상정된다.2) 그러나 센센브레너 법안에 대한 이주자들의 반대 시위가 격해지고 미 상공회의소마저도 반대의 뜻을 표명하면서 미 상원에서는 이들의 이해를 절충한 여러 수정법안이 제출된다. 특히 미등록 이주자에게 일시적인 합법적 노동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불법체류자에게 영주권을 취득할 때까지 체류를 허용하자."(맥케인-케네디안), "최장 6년간 일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자."(알렌 스펙터 상원 법사위원장, 부시정부의 입장과 유사), "5년간 일하고 본국으로 귀국한 다음 다시 임시 노동비자를 받고 미국에 재입국하도록 하자."(코닌-카일)는 세 가지 법안이 경합한다.3) 장기간의 법안 조정 끝에 2006년 4월 6일 민주-공화 양당은 센센브러너 법안의 무자격 이민자 및 조력자 형사처벌 조항은 삭제하고 불법이민자의 체류기간을 기준으로 3분류로 나누어 차등적으로 합법화를 추진하는 조치를 담은 합의안을 만들지만 바로 다음 날 상원 정기국회에서 부결된다. 현재까지 제시된 미등록 이주자 문제의 해결 방안은 임시 취업 신분으로 합법화하고 영주권 취득의 기회를 주는 방안, 우선 합법화하고 귀국시키는 방안 아니면 즉각 추방하는 방안의 세 가지이다. 이 세 방안 모두 여론에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경합하고 있는 상태여서 당분간 이민법의 개정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민문제에 대한 연구소인 퓨 히스패닉 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각각의 안에 대한 지지도가 32%, 32%, 27%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부시 정부는 물론 미국 정치세력 모두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자본의 수요와 인구의 통제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해법 : 이주자의 범죄화와 행정적-경찰적 접근의 강화 그런데 민주-공화 양 당, 사면파와 추방파 사이에 치열한 논란이 벌어지는 것과 달리 부시가 이민개혁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한 국경안보의 강화, 사업장에서의 단속과 노동력 통제의 강화에 대해서는 일정한 합의가 형성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상원에서 부결된 최종 합의안에는 고용주가 이민노동자 고용 시 합법적 취업 신분을 확인할 의무 부여와 이를 위한 노동자들의 생체정보가 입력된 ID 카드의 도입,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 설치와 감시병력 강화, 그리고 강제구금 시설 확충과 단속된 미등록 이민자의 구금과 신속한 추방 등의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미등록 이주자를 중범죄자로 규정하는 조항은 삭제되었지만 이주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고 형사적 성격의 처벌과 행정적․경찰적 통제를 강화하는 기본 방향은 여전히 건재하다. 더구나 이민법 개정의 통과 여부와는 별도로 기존의 법-제도 내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반인권적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들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국토안보부(DHS)는 US-VISIT 프로그램에 따라 전국 104곳의 모든 지상 입국지에 생체인식 입국심사시설을 설치 완료했다. US-VISIT은 여행자들이 미국의 항공, 해상 및 지상 국경검문소에 도착하거나 떠날 때 비자 발행지에서 여행자들의 생체인식 및 신상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보안조치의 연장이다. 만약 현재의 민주-공화 양 당의 합의안이 통과된다면 이민자들은 입국시에 지문을 날인하고 생체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또한 주정부 차원에서의 반이민적 조치들도 강화되고 있다. 조지아 주정부는 최근 지역 경찰에게 미등록 이주자 여부를 직접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새로 부여하여 단속을 강화하고, 의료비 및 실업수당 지원을 제한하며 주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NGO들이 미등록 이주자를 지원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529법안'을 최종 승인했다. 애리조나주는 멕시코인들의 밀입국을 차단하기 위해 5천만달러를 들여 국경지대에 방벽과 레이더를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전국주의회협의회(NCSL)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42개 주에서 모두 368개의 이민 관련 법안이 마련되었는데, 관계자에 따르면 '법안 대부분은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 혜택에서 불법이민자들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미등록 이주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고 단속이나 국경지대의 순찰 강화 등 경찰적 조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흐름이 다양한 차원에서 강화되고 있다. 이는 좌-우를 막론한 미국의 지배 정치세력들 사이에 이민문제를 안보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민자의 인권은 침해되어도 좋다는 합의가 형성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미국의 이주자운동이 합법화라는 당장의 성과에 눈이 멀어 지배세력의 이러한 합의를 용인한다면 더욱 커다란 위험을 불러 올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각 국의 지배세력은 불평등과 배제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을 범죄화하고 행정적-경찰적 통제를 강화하여 이를 억압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의 결말이 무엇인지 우리는 최근 프랑스 방리유의 비극적인 소요사태에서 확인하지 않았던가? [%=사진1%] 사회운동의 힘으로 지배세력의 위험한 합의를 깨뜨려야 한다 현재 미국의 이주자운동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주자들의 공동체, 인권단체, 종교단체, 노동조합, 정치단체 등 다양한 층위의 집단들이 있고, 정치적 입장에 있어서도 자유주의자에서 반제국주의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이 운동이 민주-공화당의 합의안을 관철하는 것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합법화의 범위를 더욱 확대할 것인지 혹은 각종 선거 국면에 휩쓸려 특정 정당의 지지세력 혹은 압력집단으로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미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운동으로 성장할 것인지는 모두 열려진 문제이다. 미국의 이주자운동은 3월 25일, 4월 10일 대규모 집회에서 분출된 힘을 5월 1일 ‘2006 위대한 미국인의 보이콧: 이민자 없는 날’로 집중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등록 이주자들의 전면적인 합법화와 인권의 전면적인 쟁취를 위해 파업과 수업거부, 상품의 판매와 구매의 거부 등 모든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는 투쟁을 준비중이다. 또한 그동안의 집회가 지역별로, 집단별로 다소 분산되어서 준비되었던 데 비해 이번 집회는 더욱 많은 지역과 단체들이 함께 준비하고 있다. 한편 이 날에는 보수주의자들의 반이민적 집회 역시 개최될 예정이어서 5월 1일은 이민법 개혁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5월 1일 집회를 앞두고 이주자 운동 내부에 미묘한 갈등이 형성되고 있다. 일부 세력들은 전국적인 파업과 수업거부 등이 자칫 예상치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보이콧 전술을 반대하고 있다. 이민법 개악 반대 운동의 주요한 흐름을 만들어 온 로저 마호니 로스앤젤레스 추기경은 '일하고, 학교에도 가자. 그런 뒤에 대규모 시위에 나서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더구나 시카고와 휴스턴, 디트로이트 등 미국 중부 지역에서 이민법 개혁 시위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이어지는 등 자본가들의 탄압도 본격화되고 있다. 시카고의 한 정비공장에서는 지난달 10일 무단 결근하고 시위에 참가한 9명의 직원을 해고조치했으며 디트로이트에서는 시위에 참가한 직원 21명을 해고했다. 이밖에 동부의 플로리다주 템파에서는 학교를 떠나 가두시위에 나섰던 고등학생들이 정학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이주자운동이 미등록 이주자의 완전한 합법화를 쟁취하고 이주자들에 대한 행정적-경찰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막아내는 것은 민주-공화 양 당의 위험한 거래와 합의에 현혹되지 않고 이러한 자본가들의 탄압과 내부에서의 패배주의적 흐름을 막아내면서 5월 1일 투쟁을 얼마나 위력적으로 성사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이주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중잣대 미등록 이주자의 문제는 비단 미국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도 30만이 넘는 미등록 이주자가 존재하고 있고 이들에 대한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단속과 추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민법 개정을 다루는 한국의 많은 언론들은 미국 에 있는 한국계 미등록 이주자들의 힘겨운 삶에 동정을 보내고 이들의 투쟁에 갈채를 보낼 뿐 한국 안에 존재하는 미등록 이주자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들도 이주자들의 문제를 자신들의 운동의 주요한 이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난 17일 불법적인 단속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인 노루푸아트 씨가 추락사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였음에도 사회운동의 대응은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만약 한국의 수배 노동자가 경찰의 연행 과정에서 사망하였다면? 한 노조의 위원장이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1년이나 감금 생활을 했다면?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주노동자운동을 대하는 한국 사회운동의 현실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지금 이민법 개악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미국의 한국계 이민단체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뉴욕 청년학교의 한 활동가는 민중언론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1992년 4.29 나성 사태(소위 LA 흑인 폭동)를 거치며 '이 때까지 모범 이민자 집단의 허상에 안주하며 타 소수민족과의 연대에 소홀하고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없이 살아오던 동포 사회'가 커다란 자각을 하고 이주자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미국 이민법 개혁 논란과 이주자들의 감동적인 투쟁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사회운동이 가장 먼저 돌아 볼 곳은 바로 우리 옆의 이주노동자들이다. 1) 미국의 미등록 이주자의 규모 및 상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Jeffrey S. Passe, The size and characteristics of the unauthorized migrant population in the U.S., Pew Hispanic Center Reserch Report. (http://pewhispanic.org/files/reports/61.pdf)를 참고하시오. 이 글의 요약문은 사회진보연대 자료실에도 번역되어 있다.(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910&page=1&category1=1) 본문으로 2) 미국의 입법제도에서 입법안이 법률로 제정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양원 모두를 통과해야 한다. 한 법안이 서로 다른 내용으로 상, 하원을 통과할 경우 양원 의원들이 협의 위원회를 열고 의견 차를 해소한다. 양원에서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고 나면 승인을 위해 대통령에게 넘겨진다. 본문으로 3) 각 법안의 구체적인 조항별 비교는 사회진보연대 자료실의 910번 자료를 참고하시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910&page=1&category1=1) 본문으로
GM대우는 비정규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하라
GM대우 창원공달 비정규노동자들이 스무날이 넘도록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는 단식까지 시작하였다. 무엇이 비정규노동자들을 이토록 극한의 투쟁에 나서도록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GM대우 자본의 비정규직 해고와 탄압이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면 GM대우는 노동자들에게 사죄하고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측은 정규직화는커녕 파견업체를 폐업시키고 노동자들을 해고해버렸다. GM대우는 불법을 저질러놓고도 도리어 큰소리치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정규직노조 노동자들은 해고자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고자 50미터 높이의 굴뚝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GM대우는 아무런 요구도 수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대집회를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세제를 섞은 물대포를 쏘고 출입을 막았으며 고공 농성자들에게 보내는 물품도 차단시키는 등 그야말로 노동자 탄압에 혈안이 되어 있다. 노동자가 쓰다가 버리는 물건인가? 실컷 부려먹다가 노동자들이 제대로된 권리보장을 요구하자 내쫓는 것이 GM대우의 노사상생인가?
GM대우는 교섭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해고자를 전원 원직복직시켜야 한다.
2006. 4. 14
사회진보연대
두 달 반 동안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CPE(최초고용계약) 법안 반대 투쟁에 정부가 항복하여 지난 10일 법안을 철회하였다. 이는 노동불안정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여 끈질기게 연대투쟁을 전개한 학생과 노동자, 프랑스 민중의 승리다. 프랑스 노동자와 학생들은 11일 '승리의 행진'을 벌였다
애초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는 실업률을 낮추겠다는 명분으로 지난 1월 26세 미만 청년노동자들에 대해 최초 고용 2년 내에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CPE를 내놓았으나 이는 고용불안을 통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확대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이에 대해 대학생, 고등학생,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반대운동 진영에서는 2월 7일 1차 행동의 날을 시작으로, 3월 7일, 3월 18일, 3월 28일, 4월 4일 등 5차례에 걸친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와 파업, 대학점거 등을 조직하면서 CPE 철회투쟁을 벌였다. 특히 3월 28일과 4월 4일은 노동계의 파업 물결이 더해져 ‘검은 화요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투쟁이 고조되었으며 3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CPE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였다.
다급해진 우파정부와 집권당이 ‘수습기간을 1년으로 줄이고 해고 설명의무 부과하는’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시위대는 CPE 철회요구를 밀어붙였다. 법안 철회 발표 이후에도 학생과 노동계는 새로운 승리로 나아갈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CPE와 동일한 내용으로서, 20인 이하에 적용되는 CNE(신고용계약) 폐지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 반CPE 투쟁 승리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라는 의미와 함께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 민중들에게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전체 노동자, 미래의 노동자를 비롯하여 전 국민들에게 노예로 살기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과 저항이 가능하고,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모든 민중이 연대하여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도 CPE법안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비정규직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비정규직법안은 기간제, 파견제를 맘대로 쓸 수 있게 하여 비정규직을 확대 양산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노동자학살법’이다. 전 민중의 단결과 연대 투쟁으로 비정규악법은 반드시 철폐시키도록 전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들어가며
‘전국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전선질서 재편이라는 과제는 8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운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이후 변혁론과 조직론을 둘러싸고 줄곧 논의되어 왔던 문제다. 우선 ‘전선운동’은 역사적인 개념으로,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변혁운동의 성격과 구조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전적·일반적으로는 ‘우리사회의 기층 민중운동진영을 비롯한 정치조직 및 시민사회단체가 해당 시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이슈와 현안을 내걸고 공동의 투쟁을 전개함’을 의미한다. 이런 일반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80년대 이후 추진된 전선운동의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1)
기간 전선운동의 개괄적 흐름
1984년 <민중민주운동협의회>와 1970년대 이래 재야운동의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민주통일국민회의>가 주축이 되어 1985년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하 민통련)을 건설했다. 당시 이 조직들은 자신을 전선운동의 출발점으로 사고하였으며, 민통련의 건설은 본격적인 전선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1985년 2.12 총선을 거치며 본격화된 개헌투쟁에 대응해 약 25개 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3월 25일 ‘민통련’을 결성하게 되는데, 민통련은 군부독재에 의한 구속, 수배와 같은 탄압 속에서도 투쟁을 전개하였다.2) 이런 투쟁은 1987년 김대중 씨, 김영삼 씨를 포함, 당시의 야당 정치세력까지 참여하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본>은 군부독재에 맞서 1987년 6월 호헌철폐라는 국민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국본>을 이끌었던 세력은 김대중, 김영삼을 중심으로 한 야당 인사들이었고, 따라서 실질적인 투쟁의 성과가 민중운동진영의 힘으로 귀결되기보다는 보수야당으로 수렴되는 한계를 낳았다. 그러나 1987년 호헌철폐를 기점으로 7월과 8월에는 억눌려 있던 남한 사회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 일어난다. 1987년 노동자들의 역사적·혁명적인 투쟁 앞에 자본과 정권을 비롯한 전 세계가 놀랐지만, 6월의 호헌철폐가 보수야당의 성과로 끝난 상황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을 지도할 조직적 힘은 대단히 미약했다. <국본>은 1987년 대선을 둘러싸고 단일한 전선을 구축하지 못한 채 양 김 씨에 대한 태도와 지지를 둘러쌓고 분열되었으며, 결국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이 재집권하게 된다.3)
1987년 대선 이후 분열을 극복하고 노태우 정권에 대한 총력 대응을 조직하기 위해서 19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이하 전민련)가 결성되었다. <전민련>에는 <서울민족민주운동연합회> 등 지역운동단체 12개와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와 <전국농민운동연합> 등 부문운동단체 8개를 비롯하여 개별운동단체 약 200개가 참여했다. 그러나 <전민련>은 불과 8개월 만에 정기중앙위에서 합법정당에 대한 입장을 둘러싸고 내부 분열을 겪게 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0년, 대중조직들은 민자당 합당에 대해 아래로부터 정치적 반대를 조직하려했고, 4월 21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빈민연합> 등 기층조직과 13개 재야단체가 한시적 공동투쟁체인 <국민연합>을 결성하는 등 운동세력의 통일단결을 위해 노력한다. 1991년 대대적으로 몰아닥친 공안탄압으로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이 희생되었지만, 민중당을 중심으로 ‘지방선거에서 표로 심판하자’ 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투쟁전선은 급격히 약화된다.
1991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운동진영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연합>, <전민련> 등을 통합·확대하여 <민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을 공식 출범시킨다. <전국연합>은 해방 이래 최초로 전국적 조직을 규합하여 전선운동으로서 위상과 조직체계를 갖추고 출발했다. 그러나 그해 <전국연합>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87년 악몽을 되풀이한다. 후보전술을 둘러싸고 격렬한 내부 논쟁이 일어났으며, 결국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채택, 김대중을 후보로 선택했다. <전국연합>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하에서 민주대연합을 이뤄 보수수구세력을 압박하고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앞당겨야 한다는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대선에 임하지만, 결국 92년 대선은 수구세력과 손잡은 김영삼의 당선으로 끝났다. <전국연합>은 이후 통일운동의 방향을 둘러싸고 내부 논쟁에 휘말리고, 민간 부르주아 정부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 질서 등 1990년대 변화된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 기층대중조직의 생존권적 요구가 대두되면서 당면한 정치적 임무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거나, 이와 반대로 기층대중조직의 민중생존권 투쟁이 경제주의적 투쟁으로 폄하되거나 정치적으로 소외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전국연합>이 민중생존권 투쟁과 기층민중 운동진영의 투쟁을 제대로 엄호하지 못하자 <전노협>, <전빈련> 등이 <전국연합>을 탈퇴했고, ‘전선체’를 표방했던 <전국연합>의 전망은 사실상 빛이 바래게 된다.
그 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노동유연화가 광풍처럼 우리사회에 몰아치고 IMF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이에 맞서 19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같은 사안별 연대기구가 만들어졌다 해소되기를 반복했고, 이후 1998년 5월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 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이하 IMF 범국본)가 한시적 공동투쟁체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