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라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은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물론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이자, 배당, 초민족기업 계열사의 유보이윤)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의 자산 규모를 더욱 빠른 속도로 늘리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원인인 부유계급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1)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위하 초민족기업의 활동을 보장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2)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통화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는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런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도 않기로 했고,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일방주의적 개입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레이건 행정부 1기 당시 활약했던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를 세웠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안은 국무부가 담당을 맡아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와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3)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4)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자본금 규모를 줄이고 지분을 가진 주주에게 보상금을 지급)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JP모건이 만도에서 514억원을 회수하고 인터브루가 OB맥주에서 1699억원을 회수한 사건도 있었다). 외국자본이 높은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서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문제가 되었다. 2004년 하나증권은 110%, 메리츠증권은 207%의 배당성향을 보여서, 주주들이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배당액을 챙겨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직접적인 설비투자와 고용창출)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점차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유상감자를 인허가 사항으로 바꾸고, 과거 일정 기간 동안 평균 배당성향을 뛰어넘는 고배당을 금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배당가능이익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될수록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5)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6)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와 우위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7)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인민주의적인 정치스타일, 기술관료-NGO 활용), 이런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애초의 생각했던 내각책임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노대통령은 지역 맹주간 연대의 형태로 지역주의를 온존시킬 수 있다며 정부통령제 도입에는 부정적이지만, 결선투표제는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당헌당규 개정을 시도하여 당의장 권한 강화, 전당대회 1인1투표제도 도입,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 선거 분리를 시도했으나 당 내부의 반발로 실패했다). 또 한 명의 당내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민주노동당과 고건, 박원순, 이수호 등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증세(법인세 인상도 포함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 전략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사적인' 공격(립서비스)에 그칠 때가 많지만, 그 반대급부로 민중에게 요구하는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통합은 이러한 정책방향을 공유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명시하면서 각종 처방전을 쏟아내고 있다.8)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미국 제국주의가 내포한 모순의 폭발은 곧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위기를 뜻한다. 미국은 환율·통상정책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 표출을 지연하고 그 비용을 세계 민중에게 전가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정치군사적 헤게모니의 강고함을 과시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상대적 안전성과 금융지배력을 보장받고자 했다. 또한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나마 승인 받기 위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라면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도 불사한다는 전략을 교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지역을 더욱 확고히 포위하여 그 지역의 불안정이 중심부로 전이되는 것을 봉쇄한다는 전략에 불과하므로 본질적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재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할 뿐이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 모두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와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 사회운동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1) 뒤메닐 & 레비, [21세기로의 전환과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사회진보연대}, 2004년 7-8월호와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에 대한 전망], {사회운동}, 2006년 1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사에서 한미 FTA 타결 의지를 밝혔고, '유일한'(?) 장애 요소로 꼽히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이 무역자유화로 인해 장기적 편익이 증대하나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과 산업(노동집약적 제조업, 농업)에서 고용감소, 임금하락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조정비용이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므로 이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노동신축화가 다시금 등장한다. 본문으로 3) 현재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집단은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NGO와 기독교 복음주의 NGO이다. 그들은 북한자유연합을 결성했고 북한인권법안을 지원했다. 이들 집단이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붕괴 유도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접근법들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 안보, 경제문화교류, 인권 문제를 서로 연계하지 않고 별도로 논의하는 '꾸러미 접근법', 2) 인권 탄압국이라고 '망신'을 주기보다는 북한 관리와 은밀한 접촉을 취하는 '조용한 외교', 3) 경찰이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하는 방식처럼 미국은 강경노선을 취하고 남한은 북한을 구슬리는 역할을 하는 '좋은 경찰/나쁜 경찰' 방식, 4)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인권의 주요 척도라고 인정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방점을 두는 '인도주의적 접근', 5) 북한의 경제적 개혁을 유도해 개혁주의적 정치세력-기업가-신중간층을 육성하고 장기적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하자는 '경제개입' 전략.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입장은 각자 분리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북한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유럽이 조용한 외교를 취하고, 남한은 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인도주의 NGO는 식량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주류 NGO(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와 미국은 "망신주기"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견지에서 현존 사회주의의 역사를 분석할 수 없으므로, 자유주의 개혁을 인권 문제의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본문으로 4) 2005년 말 국내 은행산업에서 외국계은행의 시장점유율은 일반은행 기준으로 33.7%에 달해 1998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한편 외국계 생명보험사는 시장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이 16.5%로 상승했다. 그러나 외국계 손해보험사는 0.9%에 머물고 있으며, 외국계 증권회사는 16.5%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5) 1995년부터 삼성전자의 기업규모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삼성의 경영권 방어가 첨예한 경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LG는 기업규모가 여전히 작은 상태이므로 오너 가족의 지분을 통해 지배가 가능하나, 삼성은 해외투자자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삼성은 에버랜드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기능하게 하고, 후계자 이재용의 '불법상속'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시도했다. 이는 지금도 총액출자제도,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금융보험사가 고객자산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할 때 의결권을 제한), 지주회사요건 등이 쟁점이 되는 이유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재용의 상속문제를 얼마간의 '사회환원'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본문으로 6) 초민족자본의 지배력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자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반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요지는 첫째, 한국의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금/주가)은 1.9%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 비해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기업 전반이 높아졌다. 또한 외국자본이 대규모 유입된 후, 국내기업이 배당을 높였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높아지고 주식프리미엄이 생겨난 것이다. 둘째, 기업들의 투자부진의 원인이 순전히 고배당에 의한 자금부족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기업 부채비율 감축정책으로 인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말 396.3%를 기록한 후 2004년 말 현재 104.2%로 크게 감소하고 있으며, 자기자본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여건이다. 셋째 적대적 M&A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배주주가 지분을 늘리거나 지배하는 계열사를 줄이는 방법을 택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 규모를 확대해 개별회사의 시가총액 규모가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본시장 육성정책을 펼쳐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등등. 결국 주식시장 규모를 더욱 키우는 게 M&A도 막아내고 나눌 수 이득도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의 거품과 이에 따른 원화가치의 거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본문으로 7)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된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본문으로 8) 양극화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처방을 요약하면 1) 근로연계복지(workfare) 강화: 국가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보건·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 2) 취약계층의 직업능력개발 확대, 근로소득보전세제 2007년 도입, 자활근로사업 확대, 3)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차상위계층과 노인·장애인 지원 강화, 4)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으로서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확대(저소득층 장학금지원, 성인대상 직업교육), 5) 영세자영업자 보완대책 마력, 비정규직 보호 법령 정비, 비정규직 고용개선 5개년 계획 수립. 6)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혁신도시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시책 추진이다. 본문으로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라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은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물론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이자, 배당, 초민족기업 계열사의 유보이윤)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의 자산 규모를 더욱 빠른 속도로 늘리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원인인 부유계급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1)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위하 초민족기업의 활동을 보장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2)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통화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는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런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도 않기로 했고,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일방주의적 개입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레이건 행정부 1기 당시 활약했던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를 세웠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안은 국무부가 담당을 맡아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와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3)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4)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자본금 규모를 줄이고 지분을 가진 주주에게 보상금을 지급)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JP모건이 만도에서 514억원을 회수하고 인터브루가 OB맥주에서 1699억원을 회수한 사건도 있었다). 외국자본이 높은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서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문제가 되었다. 2004년 하나증권은 110%, 메리츠증권은 207%의 배당성향을 보여서, 주주들이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배당액을 챙겨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직접적인 설비투자와 고용창출)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점차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유상감자를 인허가 사항으로 바꾸고, 과거 일정 기간 동안 평균 배당성향을 뛰어넘는 고배당을 금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배당가능이익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될수록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5)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6)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와 우위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7)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인민주의적인 정치스타일, 기술관료-NGO 활용), 이런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애초의 생각했던 내각책임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노대통령은 지역 맹주간 연대의 형태로 지역주의를 온존시킬 수 있다며 정부통령제 도입에는 부정적이지만, 결선투표제는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당헌당규 개정을 시도하여 당의장 권한 강화, 전당대회 1인1투표제도 도입,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 선거 분리를 시도했으나 당 내부의 반발로 실패했다). 또 한 명의 당내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민주노동당과 고건, 박원순, 이수호 등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증세(법인세 인상도 포함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 전략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사적인' 공격(립서비스)에 그칠 때가 많지만, 그 반대급부로 민중에게 요구하는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통합은 이러한 정책방향을 공유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명시하면서 각종 처방전을 쏟아내고 있다.8)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미국 제국주의가 내포한 모순의 폭발은 곧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위기를 뜻한다. 미국은 환율·통상정책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 표출을 지연하고 그 비용을 세계 민중에게 전가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정치군사적 헤게모니의 강고함을 과시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상대적 안전성과 금융지배력을 보장받고자 했다. 또한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나마 승인 받기 위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라면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도 불사한다는 전략을 교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지역을 더욱 확고히 포위하여 그 지역의 불안정이 중심부로 전이되는 것을 봉쇄한다는 전략에 불과하므로 본질적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재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할 뿐이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 모두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와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 사회운동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1) 뒤메닐 & 레비, [21세기로의 전환과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사회진보연대}, 2004년 7-8월호와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에 대한 전망], {사회운동}, 2006년 1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사에서 한미 FTA 타결 의지를 밝혔고, '유일한'(?) 장애 요소로 꼽히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이 무역자유화로 인해 장기적 편익이 증대하나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과 산업(노동집약적 제조업, 농업)에서 고용감소, 임금하락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조정비용이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므로 이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노동신축화가 다시금 등장한다. 본문으로 3) 현재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집단은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NGO와 기독교 복음주의 NGO이다. 그들은 북한자유연합을 결성했고 북한인권법안을 지원했다. 이들 집단이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붕괴 유도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접근법들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 안보, 경제문화교류, 인권 문제를 서로 연계하지 않고 별도로 논의하는 '꾸러미 접근법', 2) 인권 탄압국이라고 '망신'을 주기보다는 북한 관리와 은밀한 접촉을 취하는 '조용한 외교', 3) 경찰이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하는 방식처럼 미국은 강경노선을 취하고 남한은 북한을 구슬리는 역할을 하는 '좋은 경찰/나쁜 경찰' 방식, 4)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인권의 주요 척도라고 인정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방점을 두는 '인도주의적 접근', 5) 북한의 경제적 개혁을 유도해 개혁주의적 정치세력-기업가-신중간층을 육성하고 장기적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하자는 '경제개입' 전략.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입장은 각자 분리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북한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유럽이 조용한 외교를 취하고, 남한은 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인도주의 NGO는 식량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주류 NGO(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와 미국은 "망신주기"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견지에서 현존 사회주의의 역사를 분석할 수 없으므로, 자유주의 개혁을 인권 문제의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본문으로 4) 2005년 말 국내 은행산업에서 외국계은행의 시장점유율은 일반은행 기준으로 33.7%에 달해 1998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한편 외국계 생명보험사는 시장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이 16.5%로 상승했다. 그러나 외국계 손해보험사는 0.9%에 머물고 있으며, 외국계 증권회사는 16.5%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5) 1995년부터 삼성전자의 기업규모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삼성의 경영권 방어가 첨예한 경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LG는 기업규모가 여전히 작은 상태이므로 오너 가족의 지분을 통해 지배가 가능하나, 삼성은 해외투자자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삼성은 에버랜드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기능하게 하고, 후계자 이재용의 '불법상속'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시도했다. 이는 지금도 총액출자제도,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금융보험사가 고객자산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할 때 의결권을 제한), 지주회사요건 등이 쟁점이 되는 이유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재용의 상속문제를 얼마간의 '사회환원'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본문으로 6) 초민족자본의 지배력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자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반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요지는 첫째, 한국의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금/주가)은 1.9%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 비해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기업 전반이 높아졌다. 또한 외국자본이 대규모 유입된 후, 국내기업이 배당을 높였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높아지고 주식프리미엄이 생겨난 것이다. 둘째, 기업들의 투자부진의 원인이 순전히 고배당에 의한 자금부족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기업 부채비율 감축정책으로 인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말 396.3%를 기록한 후 2004년 말 현재 104.2%로 크게 감소하고 있으며, 자기자본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여건이다. 셋째 적대적 M&A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배주주가 지분을 늘리거나 지배하는 계열사를 줄이는 방법을 택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 규모를 확대해 개별회사의 시가총액 규모가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본시장 육성정책을 펼쳐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등등. 결국 주식시장 규모를 더욱 키우는 게 M&A도 막아내고 나눌 수 이득도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의 거품과 이에 따른 원화가치의 거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본문으로 7)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된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본문으로 8) 양극화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처방을 요약하면 1) 근로연계복지(workfare) 강화: 국가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보건·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 2) 취약계층의 직업능력개발 확대, 근로소득보전세제 2007년 도입, 자활근로사업 확대, 3)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차상위계층과 노인·장애인 지원 강화, 4)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으로서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확대(저소득층 장학금지원, 성인대상 직업교육), 5) 영세자영업자 보완대책 마력, 비정규직 보호 법령 정비, 비정규직 고용개선 5개년 계획 수립. 6)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혁신도시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시책 추진이다. 본문으로
지난 2005년 11월 9~10일 고려대학교 제2학생회관에서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워크샵이 개최되었다. 1부에서는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측면을 다룬 ILO와 민변 황필규 변호사의 발표가 있었고, 2부에서는 국제건설목공노련의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 소개와 한국, 일본, 홍콩, 네팔 등 4개국 이주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의 발표가 있었다. 특히 2부의 발표는 이주노동자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단초를 던져주었다. 다만 각각의 발표들이 주로 자신들의 구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시아 지역의 전반적인 이주노동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거나 공동의 과제를 확인하기에는 조금 미흡한 면이 있었다. 이 글은 작년 워크샵의 발표를 조금이나마 보충하려는 시도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과 이주노동자운동의 현실을 보다 포괄적으로 살펴보면서 각 국 사례들의 교훈을 분명히 하고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 한다. 각 국의 구체적인 운동 사례는 주로 워크샵의 발표를 참고했다. 당시 워크샵 기획단 일원으로서 이 지면을 빌어 발표를 맡아주신 활동가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말을 전한다. 아시아 이주노동의 전반적 현황 2차대전 이후 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로 노동력을 송출해 왔다. 이는 당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이전과는 다른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했던 많은 국가들이 자본의 부족과 노동력의 과잉이라는 상황에서 택한(혹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일 것이다. 즉 이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수출하여 국내의 노동력 과잉을 해소하고 이를 통한 외화획득으로 부족한 자본을 보충했다. 당시 노동력 이동은 주로 북아메리카, 서유럽, 중동지역 등을 향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러한 흐름이 변화한다. 우선 노동력 이동 방향이 변화하는데, 특히 아시아 내부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한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방향 변화를 넘어선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력 이동의 전반적인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자본주의 위기와 이에 따른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밀접히 연관된다. 한편으로 중심부 및 중동 등 전통적인 노동력 수입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외국인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이민이나 이주노동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호황을 구가하던 아시아의 주요 산업국가인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대했다. 다른 한편으로 개방의 가속화로 인한 농촌의 몰락, 산업의 침체 등으로 주변부 국가에서의 노동자들의 이주가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의 경쟁이 강화된다. 이로 인하여 저임금 노동력의 이동 방향이 변화했을 뿐 아니라 노동력 수입국에서의 규제강화에 따른 불법체류 혹은 불법취업이 증가하고 이주를 둘러싼 각종 중개업체의 개입과 송출비리가 심화된다. 이것이 주로 저임금·미숙련 노동력의 경우라면, 고부가가치 산업과 연관된 고임금·숙련 노동력의 이동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후자의 중심부, 특히 미국 유입은 오히려 증가하고 반주변부나 다른 국가에서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요컨대 노동력 이동에서 이중적 흐름이 형성되고 각 국가는 선별적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정책을 채택한다.1) 다음으로 전통적인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의 노동력 이동 이외에 시설관리, 서비스 등의 업종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의 일자리, 이른바 ‘하인노동’이 팽창하는데 이러한 일자리의 상당수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한편 ‘이주의 여성화’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이주노동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증가한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 전통적 성별 분업이데올로기의 존속, 성산업의 유례없는 팽창, 국제결혼의 증가 등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 성산업, 가족제도의 변화가 맞물려 여성의 이주가 확대되고 있다.2) 아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주요 송출국에서의 여성 비중 증가3), 홍콩 등지의 가사노동자에서 이주여성의 비중 증대, 한국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1990년대 600여명에서 2004년에는 연간 25,500명으로 확대되었다) 등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주요 국가별 이주노동의 상황 및 관련 제도 : 노동력 유입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노동력에 대한 관리의 문제와 국가의 구성원을 관리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의 결합물이다. 근대국가는 국경의 출입을 관리·통제하고 자국 시민의 자격을 결정·부여한다. 19세기를 거치며 일반화된 민족국가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을 이러한 결정의 일차적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국가가 기반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이러한 동일성이 권리의 차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금지하고 시민의 자격 여부를 가르는 기준 면에서 보편성을 원칙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이 끊임없이 1차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는 자본축적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노동력의 공급에 대한 관리와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국경·시민권에 대한 관리 간의 모순과 긴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혈연공동체에 기반하여 시민권 자격을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도 시장의 필요에 부응하는 노동력을 제한적으로 수입하되 사회적·정치적 영역으로의 진입은 철저하게 가로막는 특성을 보인다. 이와 유사한 제도를 가지는 국가로 독일을 꼽을 수 있다.4) 독일의 이주노동력 관리 제도인 ‘노동허가제도’는 정부가 이주노동의 모집과 직업소개를 독점하여 관리하고 이주노동자가 취업할 수 있는 지역·직종을 제한하는 한편 이주노동자의 장기거주를 차단하는 ‘교체순환정책’을 표방한다. 이는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의 이주노동자 수입 정책 모델이 된다. 다만 이들 나라는 독일의 노동허가제도가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의 정착을 막지 못했음에 주목하면서, 독일식 제도를 변형하여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하는 ‘고용허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고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민자로 대우하지만, 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외국인노동자취업법에 따라 사업장 이동의 권리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대만 역시 비슷하나 허가를 받은 고용주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다르다. 홍콩은 외국인력의 도입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갖고 있지 않아 정부의 특별조치나 행정 집행에 의해서 인력의 도입과 관리가 결정된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취업사증을 받은 노동자는 단기간 체류만이 허용되고, 사업장 이동이 금지되며, 영주권을 신청하거나 가족과 동거할 수 없다. 한편 일본은 단순·미숙련 노동자를 원칙적으로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정책방향이다. 따라서 ‘기능실습제도’라는 연수생제도가 노동력을 수입하는 유일한 공식 제도다. 여기서는 한국의 ‘산업연수제도’와는 달리 연수 후 기능실습 기간에 노동자 신분이 인정되기 때문에 노동관계법, 각종 사회 보장 관련 법령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연수생, 실습생이라는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전체 이주노동자 중 실습생은 겨우 1.4%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정주자 사증을 받은 일본계외국인, 유학생들의 파트타임 취업, 미등록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미등록노동자의 비율이 거의 40%에 달할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 음성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도입이 이루어지다가 1991년 일본과 유사한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이주노동력의 수입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세계 1위의 미등록노동자의 비율(2003년 기준, 2위인 일본보다 무려 20%가 높은 60%)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는 다량의 미등록노동자를 양성했을 뿐 아니라 심각한 인권탄압, 초과착취를 조장했다.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반발과 투쟁이 거세지자 정부는 2004년 대만과 유사한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비판하면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각 국별 투쟁 사례의 시사점 1)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IMWU-HKCTU)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홍콩 내 인도네시아인 단체(IGHK)를 기반으로 1993년에 만들어져 1996년 정식노동조합으로 등록되었고 현재는 2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다. 홍콩에는 22,800명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12,420명이 필리핀, 9,170명이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워크샵의 발표자인 릭 키즈마와티 수트리스노씨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순종적이고 유순하며 가장 비천한 업무조차 기꺼이 견디는 존재처럼 인식되고 있어 홍콩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가사노동자로 선호된다고 한다. 유순한 노동력으로 여겨지는 그녀들이 견뎌야 할 노동조건은 극히 열악하다. 홍콩 인도네시아 이주지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47%), 고용계약 외의 의무이행(25%), 폭력(6%), 심지어 성폭력(3%)까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전체 이주노동자 차원에서 보면 2002년에만 1,308,765건의 살인, 강간, 육체적 폭력, 사기, 강제추방이 있었으며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35만 명의 귀국한 이주노동자 중 12%가 질병에 걸린 채 귀국한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정확히 최저임금만큼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그마저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삭감되고 있는 실정이다.5) 또한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새로운 관리지침인 NCS(New Conditions of Stay)는 실직시 2주 이내 추방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와 본국에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다는 현실로 인해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감내하면서 꾸준히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맞서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NCS 등의 홍콩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인도네시아 정부 및 취업알선업체를 상대로 한 알선료 인하 등의 투쟁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대중교육사업을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이들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고, 다른 시민단체,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운동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인권교육, 기술교육, 젠더관련 교육 등을 통해 소속 조합원들의 자활력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이주노동조합들이 공동으로 처해 있는 문제들, 예컨대 잦은 성원교체로 인한 조직의 안정적 토대의 취약성, 의사소통의 어려움, 사용주의 장시간 노동요구 등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조합활동 시간 부족, 인적·재정적 자원의 부족 등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는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 역시 이러한 시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일본 전통일노조 /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 노조 ’04년 기준으로 일본의 이주노동자는 1,973,747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55% 규모다. 제국주의 침략시절의 식민지에서 이주한 이들(약 46만 명)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라틴계 이민 2세들이다(56%). 공식적인 노동력 수입 제도가 없는 일본제도의 특성상 미등록노동자가 많은데 ’03년에는 그 수가 29만 명까지 이르다, 강력한 단속으로 인해 ’05년에는 20만 명 정도로 약간 줄어든 상태다. 한편 유일한 합법적 이주노동자 수입 제도인 기능실습제도는 사실상 기계, 금속, 섬유 등 제조업 분야의 저임금 노동력(일본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의 1/5, 심지어 1/10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을 충원하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수가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적으나 최근에는 중국인,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출신들이 이 제도를 통해 많이 유입되면서 그 수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거대 산별노조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지 않은 반면, 지역에 기반한 일반노조는 조직화에 적극적이다. 이주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은 크게 2개가 있는데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라틴계 이민 2세와 한국인들이 많고, 전통일노조에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3년 3월 8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심각한 인권침해를 폭로한 이 날의 투쟁은 일본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이른바 ‘외국인 춘투’라고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93년 당시 20명으로 출발한 조합원의 수도 현재 2000명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봄 지방자치단체, 노동부, 기업 등을 상대로 투쟁과 교섭을 하고 있다. 일본 이주노동자운동의 특징은 일반노조라는 조직 특성상 조합의 기반이 비교적 탄탄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이주노동자들과 일본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카나가와 씨티 유니온은 지역기반 노조의 이점을 활용, 집중행동의 날을 선정하여 지역 조합원들이 함께 여러 사업장과 지역자치단체 등을 다니며 공동의 투쟁을 만드는 등, 소속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연대감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또한 워크샵에 참석한 전통일노조의 토리 잇페이씨는 일차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활동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운동들의 연대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 관련 연대단위는 산업재해,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일본 사회의 변화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처한 노동조건의 특성상 건강과 관련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연대단위에 소속되어 있는 의료 네트워크의 연대와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편 최근 일본사회가 우경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외국인혐오증을 활용하여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캠페인을 한다거나 미등록노동자들을 일반 시민들이 신고하도록 하여 대중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토리 잇페이씨는 이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권리, 지역의 일원으로서의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투쟁이 절실함을 주장하였다. 3)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의 아태지역 사무국의 이진숙씨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건설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구조조정, 하청, 비정규직노동자 및 이주노동자 등을 이용, 유연한 노동력을 값싸게 부리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들과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일국적·국제적 대응이 중요함을 주장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업체들이 이러한 갈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입국가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들의 동등한 노동권과 노조가입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대만의 전국중국인건설연맹(NFCCWU)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2000년 이주노동자의 고용시 노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채택하는 등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차단하는데 머물렀던 대만 전국중국인건설연맹은 2005년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노조가 인력의 공급을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합의안을 체결하고,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조합원 교육, 조직의 재편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만의 시도가 이주노동자들과 대만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열린 문제다. 그 열쇠는 기존 노조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일상적 활동을 통해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성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자운동의 연대 전망 한편 이번 워크샵에서는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고민도 발표되었다. 이주노동 자체가 개별 국가를 넘나드는 현상이니만큼 이에 걸맞은 대응이 필수적이거니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원리, 제도의 모색이 기존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고민은 매우 중요하다. 워크샵에서는 주로 이주노동자들의 조직화 문제, 이주노동자들이 귀국 후에 겪게 되는 건강상의 문제, 취업알선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알선업자들의 경제적 착취와 물리적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송출국과 수입국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의 연대가 제기되었다. 매년 10만명의 사람들이 해외 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네팔의 노동조합총연맹(GEFONT)은 노동력이 유입되는 국가에서 노총 산하 지원단체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운동을 지원하고자 하는데 현재 홍콩, 남한, 일본, 인도, 몇몇 중동국가들에 지원단체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원단체 대표들은 네팔노총 전체총회에 참가할 권한을 가지는 등 네팔노총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움직이고 있다.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는 각 국 산하단체들(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대만 등의 건설노조들)이 참가하는 이주노동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 수준에서 이주노동자운동, 개별 운동들의 연대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다. 이번 워크샵과 비슷한 행사가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구체적인 공동의 행동계획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일단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운동 자체의 역량이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틀 내에서의 운동이 잘 되어야 국제적 연대의 운동이 가능한 것만은 아니고 역으로 후자의 운동이 전자의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 운동들의 역량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것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볼 수 있다. 특히 취업알선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위한 상호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운동, 우리 모두의 과제 앞서 살펴보았듯 오늘날 금융세계화의 진전은 이윤율 하락에 직면한 기업들의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 증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하인노동’ 확대, 주변부 경제의 파탄에 따른 반주변부/중심부로의 노동력 이동 증가 등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요인들 각각은 노동력의 이주를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 이들을 관리하려는 개별 국가들의 정책은 대부분 미등록노동자 양산, 노동력 송출과 수입과정에서의 비리 증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탄압 증대로 귀결되었으며,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쟁이 심화되거나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적 불만들이 민족적·인종적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각 국의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인 체제 위협 요소로 간주하며 이러한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막아내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국가의 노동력 관리 정책을 변화시키고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공통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각 국의 사회운동 및 세계사회운동은 이주노동자의 운동, 이주노동의 문제에 주목하고 외국인/내국인이라는 분할을 넘어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맞선 공동의 투쟁을 활성화하며 나아가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적 공동체를 건설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각 국의 운동들이 이러한 과제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현실 속에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정부의 폭력적인 단속과 추방, 노동현장에서의 기업주에 의한 심각한 차별이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명동성당에서의 선도적인 농성투쟁을 거치며 2005년 4월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주노조는 미등록노동자에 대해 가해지는 일상적 단속추방의 폭력과 이로 인한 조합원의 사기저하, 노동조합운동의 안정적 기반의 부족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은 미등록노동자, 정부의 폭력적 단속과 추방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적 공포가 운동의 기본적인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현실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은 홍콩이나 일본의 예처럼 이주노동자운동에 적극 나서야 하며 특히 이주노조의 등록이나 민주노총 가입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지역의 각종 상담, 지원 단체나 다른 사회운동단체들은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서 이주노조의 강화를 자신의 활동의 중요한 목표로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노조와 함께 사회운동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후자를 위해서는 기존의 상담, 지원단체 이외에도 보건의료, 교육, 지역운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이주노동자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동의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의 한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그 한계 너머로 민주주의와 권리의 경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투쟁은 비단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1) 이러한 노동력 이동에서의 이중적 흐름의 형성과 선별적 관리는 싱가포르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싱가포르는 이민으로 구성된 신생 도시국가인데 월 기본임금 2,000 싱가포르 달러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취업사증을 발행하여 사실상 이민자로서 대우를 하는 반면, 기준금액 미만의 임금 노동자에게는 취업허가를 발급하여 사업장 이동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자세한 내용은 이진숙,「여성 이주의 현황과 쟁점 :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를 중심으로」,『사회운동』2005. 9월호를 참고하시오. 본문으로 3) 인도네시아 이주/인력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출국한 480,393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중 76%가 여성이었으며 그 중 94%가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가사노동자들이었다고 보고했다. 본문으로 4) 이하 내용은 설동훈,「아시아 각국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과 노동권」, 2003 참조. 본문으로 5) 1999년 5%가 삭감되었고, 2003년에는 11%(400홍콩 달러)가 삭감되었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월 3,270홍콩달러이다. 본문으로
지난 2005년 11월 9~10일 고려대학교 제2학생회관에서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워크샵이 개최되었다. 1부에서는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측면을 다룬 ILO와 민변 황필규 변호사의 발표가 있었고, 2부에서는 국제건설목공노련의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 소개와 한국, 일본, 홍콩, 네팔 등 4개국 이주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의 발표가 있었다. 특히 2부의 발표는 이주노동자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단초를 던져주었다. 다만 각각의 발표들이 주로 자신들의 구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시아 지역의 전반적인 이주노동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거나 공동의 과제를 확인하기에는 조금 미흡한 면이 있었다. 이 글은 작년 워크샵의 발표를 조금이나마 보충하려는 시도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과 이주노동자운동의 현실을 보다 포괄적으로 살펴보면서 각 국 사례들의 교훈을 분명히 하고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 한다. 각 국의 구체적인 운동 사례는 주로 워크샵의 발표를 참고했다. 당시 워크샵 기획단 일원으로서 이 지면을 빌어 발표를 맡아주신 활동가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말을 전한다. 아시아 이주노동의 전반적 현황 2차대전 이후 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로 노동력을 송출해 왔다. 이는 당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이전과는 다른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했던 많은 국가들이 자본의 부족과 노동력의 과잉이라는 상황에서 택한(혹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일 것이다. 즉 이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수출하여 국내의 노동력 과잉을 해소하고 이를 통한 외화획득으로 부족한 자본을 보충했다. 당시 노동력 이동은 주로 북아메리카, 서유럽, 중동지역 등을 향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러한 흐름이 변화한다. 우선 노동력 이동 방향이 변화하는데, 특히 아시아 내부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한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방향 변화를 넘어선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력 이동의 전반적인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자본주의 위기와 이에 따른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밀접히 연관된다. 한편으로 중심부 및 중동 등 전통적인 노동력 수입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외국인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이민이나 이주노동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호황을 구가하던 아시아의 주요 산업국가인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대했다. 다른 한편으로 개방의 가속화로 인한 농촌의 몰락, 산업의 침체 등으로 주변부 국가에서의 노동자들의 이주가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의 경쟁이 강화된다. 이로 인하여 저임금 노동력의 이동 방향이 변화했을 뿐 아니라 노동력 수입국에서의 규제강화에 따른 불법체류 혹은 불법취업이 증가하고 이주를 둘러싼 각종 중개업체의 개입과 송출비리가 심화된다. 이것이 주로 저임금·미숙련 노동력의 경우라면, 고부가가치 산업과 연관된 고임금·숙련 노동력의 이동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후자의 중심부, 특히 미국 유입은 오히려 증가하고 반주변부나 다른 국가에서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요컨대 노동력 이동에서 이중적 흐름이 형성되고 각 국가는 선별적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정책을 채택한다.1) 다음으로 전통적인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의 노동력 이동 이외에 시설관리, 서비스 등의 업종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의 일자리, 이른바 ‘하인노동’이 팽창하는데 이러한 일자리의 상당수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한편 ‘이주의 여성화’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이주노동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증가한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 전통적 성별 분업이데올로기의 존속, 성산업의 유례없는 팽창, 국제결혼의 증가 등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 성산업, 가족제도의 변화가 맞물려 여성의 이주가 확대되고 있다.2) 아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주요 송출국에서의 여성 비중 증가3), 홍콩 등지의 가사노동자에서 이주여성의 비중 증대, 한국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1990년대 600여명에서 2004년에는 연간 25,500명으로 확대되었다) 등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주요 국가별 이주노동의 상황 및 관련 제도 : 노동력 유입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노동력에 대한 관리의 문제와 국가의 구성원을 관리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의 결합물이다. 근대국가는 국경의 출입을 관리·통제하고 자국 시민의 자격을 결정·부여한다. 19세기를 거치며 일반화된 민족국가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을 이러한 결정의 일차적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국가가 기반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이러한 동일성이 권리의 차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금지하고 시민의 자격 여부를 가르는 기준 면에서 보편성을 원칙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이 끊임없이 1차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는 자본축적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노동력의 공급에 대한 관리와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국경·시민권에 대한 관리 간의 모순과 긴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혈연공동체에 기반하여 시민권 자격을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도 시장의 필요에 부응하는 노동력을 제한적으로 수입하되 사회적·정치적 영역으로의 진입은 철저하게 가로막는 특성을 보인다. 이와 유사한 제도를 가지는 국가로 독일을 꼽을 수 있다.4) 독일의 이주노동력 관리 제도인 ‘노동허가제도’는 정부가 이주노동의 모집과 직업소개를 독점하여 관리하고 이주노동자가 취업할 수 있는 지역·직종을 제한하는 한편 이주노동자의 장기거주를 차단하는 ‘교체순환정책’을 표방한다. 이는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의 이주노동자 수입 정책 모델이 된다. 다만 이들 나라는 독일의 노동허가제도가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의 정착을 막지 못했음에 주목하면서, 독일식 제도를 변형하여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하는 ‘고용허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고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민자로 대우하지만, 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외국인노동자취업법에 따라 사업장 이동의 권리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대만 역시 비슷하나 허가를 받은 고용주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다르다. 홍콩은 외국인력의 도입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갖고 있지 않아 정부의 특별조치나 행정 집행에 의해서 인력의 도입과 관리가 결정된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취업사증을 받은 노동자는 단기간 체류만이 허용되고, 사업장 이동이 금지되며, 영주권을 신청하거나 가족과 동거할 수 없다. 한편 일본은 단순·미숙련 노동자를 원칙적으로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정책방향이다. 따라서 ‘기능실습제도’라는 연수생제도가 노동력을 수입하는 유일한 공식 제도다. 여기서는 한국의 ‘산업연수제도’와는 달리 연수 후 기능실습 기간에 노동자 신분이 인정되기 때문에 노동관계법, 각종 사회 보장 관련 법령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연수생, 실습생이라는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전체 이주노동자 중 실습생은 겨우 1.4%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정주자 사증을 받은 일본계외국인, 유학생들의 파트타임 취업, 미등록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미등록노동자의 비율이 거의 40%에 달할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 음성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도입이 이루어지다가 1991년 일본과 유사한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이주노동력의 수입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세계 1위의 미등록노동자의 비율(2003년 기준, 2위인 일본보다 무려 20%가 높은 60%)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는 다량의 미등록노동자를 양성했을 뿐 아니라 심각한 인권탄압, 초과착취를 조장했다.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반발과 투쟁이 거세지자 정부는 2004년 대만과 유사한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비판하면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각 국별 투쟁 사례의 시사점 1)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IMWU-HKCTU)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홍콩 내 인도네시아인 단체(IGHK)를 기반으로 1993년에 만들어져 1996년 정식노동조합으로 등록되었고 현재는 2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다. 홍콩에는 22,800명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12,420명이 필리핀, 9,170명이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워크샵의 발표자인 릭 키즈마와티 수트리스노씨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순종적이고 유순하며 가장 비천한 업무조차 기꺼이 견디는 존재처럼 인식되고 있어 홍콩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가사노동자로 선호된다고 한다. 유순한 노동력으로 여겨지는 그녀들이 견뎌야 할 노동조건은 극히 열악하다. 홍콩 인도네시아 이주지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47%), 고용계약 외의 의무이행(25%), 폭력(6%), 심지어 성폭력(3%)까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전체 이주노동자 차원에서 보면 2002년에만 1,308,765건의 살인, 강간, 육체적 폭력, 사기, 강제추방이 있었으며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35만 명의 귀국한 이주노동자 중 12%가 질병에 걸린 채 귀국한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정확히 최저임금만큼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그마저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삭감되고 있는 실정이다.5) 또한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새로운 관리지침인 NCS(New Conditions of Stay)는 실직시 2주 이내 추방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와 본국에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다는 현실로 인해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감내하면서 꾸준히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맞서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NCS 등의 홍콩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인도네시아 정부 및 취업알선업체를 상대로 한 알선료 인하 등의 투쟁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대중교육사업을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이들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고, 다른 시민단체,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운동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인권교육, 기술교육, 젠더관련 교육 등을 통해 소속 조합원들의 자활력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이주노동조합들이 공동으로 처해 있는 문제들, 예컨대 잦은 성원교체로 인한 조직의 안정적 토대의 취약성, 의사소통의 어려움, 사용주의 장시간 노동요구 등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조합활동 시간 부족, 인적·재정적 자원의 부족 등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는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 역시 이러한 시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일본 전통일노조 /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 노조 ’04년 기준으로 일본의 이주노동자는 1,973,747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55% 규모다. 제국주의 침략시절의 식민지에서 이주한 이들(약 46만 명)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라틴계 이민 2세들이다(56%). 공식적인 노동력 수입 제도가 없는 일본제도의 특성상 미등록노동자가 많은데 ’03년에는 그 수가 29만 명까지 이르다, 강력한 단속으로 인해 ’05년에는 20만 명 정도로 약간 줄어든 상태다. 한편 유일한 합법적 이주노동자 수입 제도인 기능실습제도는 사실상 기계, 금속, 섬유 등 제조업 분야의 저임금 노동력(일본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의 1/5, 심지어 1/10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을 충원하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수가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적으나 최근에는 중국인,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출신들이 이 제도를 통해 많이 유입되면서 그 수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거대 산별노조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지 않은 반면, 지역에 기반한 일반노조는 조직화에 적극적이다. 이주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은 크게 2개가 있는데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라틴계 이민 2세와 한국인들이 많고, 전통일노조에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3년 3월 8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심각한 인권침해를 폭로한 이 날의 투쟁은 일본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이른바 ‘외국인 춘투’라고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93년 당시 20명으로 출발한 조합원의 수도 현재 2000명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봄 지방자치단체, 노동부, 기업 등을 상대로 투쟁과 교섭을 하고 있다. 일본 이주노동자운동의 특징은 일반노조라는 조직 특성상 조합의 기반이 비교적 탄탄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이주노동자들과 일본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카나가와 씨티 유니온은 지역기반 노조의 이점을 활용, 집중행동의 날을 선정하여 지역 조합원들이 함께 여러 사업장과 지역자치단체 등을 다니며 공동의 투쟁을 만드는 등, 소속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연대감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또한 워크샵에 참석한 전통일노조의 토리 잇페이씨는 일차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활동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운동들의 연대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 관련 연대단위는 산업재해,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일본 사회의 변화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처한 노동조건의 특성상 건강과 관련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연대단위에 소속되어 있는 의료 네트워크의 연대와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편 최근 일본사회가 우경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외국인혐오증을 활용하여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캠페인을 한다거나 미등록노동자들을 일반 시민들이 신고하도록 하여 대중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토리 잇페이씨는 이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권리, 지역의 일원으로서의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투쟁이 절실함을 주장하였다. 3)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의 아태지역 사무국의 이진숙씨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건설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구조조정, 하청, 비정규직노동자 및 이주노동자 등을 이용, 유연한 노동력을 값싸게 부리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들과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일국적·국제적 대응이 중요함을 주장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업체들이 이러한 갈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입국가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들의 동등한 노동권과 노조가입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대만의 전국중국인건설연맹(NFCCWU)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2000년 이주노동자의 고용시 노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채택하는 등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차단하는데 머물렀던 대만 전국중국인건설연맹은 2005년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노조가 인력의 공급을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합의안을 체결하고,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조합원 교육, 조직의 재편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만의 시도가 이주노동자들과 대만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열린 문제다. 그 열쇠는 기존 노조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일상적 활동을 통해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성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자운동의 연대 전망 한편 이번 워크샵에서는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고민도 발표되었다. 이주노동 자체가 개별 국가를 넘나드는 현상이니만큼 이에 걸맞은 대응이 필수적이거니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원리, 제도의 모색이 기존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고민은 매우 중요하다. 워크샵에서는 주로 이주노동자들의 조직화 문제, 이주노동자들이 귀국 후에 겪게 되는 건강상의 문제, 취업알선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알선업자들의 경제적 착취와 물리적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송출국과 수입국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의 연대가 제기되었다. 매년 10만명의 사람들이 해외 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네팔의 노동조합총연맹(GEFONT)은 노동력이 유입되는 국가에서 노총 산하 지원단체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운동을 지원하고자 하는데 현재 홍콩, 남한, 일본, 인도, 몇몇 중동국가들에 지원단체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원단체 대표들은 네팔노총 전체총회에 참가할 권한을 가지는 등 네팔노총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움직이고 있다.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는 각 국 산하단체들(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대만 등의 건설노조들)이 참가하는 이주노동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 수준에서 이주노동자운동, 개별 운동들의 연대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다. 이번 워크샵과 비슷한 행사가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구체적인 공동의 행동계획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일단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운동 자체의 역량이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틀 내에서의 운동이 잘 되어야 국제적 연대의 운동이 가능한 것만은 아니고 역으로 후자의 운동이 전자의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 운동들의 역량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것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볼 수 있다. 특히 취업알선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위한 상호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운동, 우리 모두의 과제 앞서 살펴보았듯 오늘날 금융세계화의 진전은 이윤율 하락에 직면한 기업들의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 증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하인노동’ 확대, 주변부 경제의 파탄에 따른 반주변부/중심부로의 노동력 이동 증가 등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요인들 각각은 노동력의 이주를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 이들을 관리하려는 개별 국가들의 정책은 대부분 미등록노동자 양산, 노동력 송출과 수입과정에서의 비리 증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탄압 증대로 귀결되었으며,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쟁이 심화되거나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적 불만들이 민족적·인종적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각 국의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인 체제 위협 요소로 간주하며 이러한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막아내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국가의 노동력 관리 정책을 변화시키고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공통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각 국의 사회운동 및 세계사회운동은 이주노동자의 운동, 이주노동의 문제에 주목하고 외국인/내국인이라는 분할을 넘어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맞선 공동의 투쟁을 활성화하며 나아가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적 공동체를 건설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각 국의 운동들이 이러한 과제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현실 속에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정부의 폭력적인 단속과 추방, 노동현장에서의 기업주에 의한 심각한 차별이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명동성당에서의 선도적인 농성투쟁을 거치며 2005년 4월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주노조는 미등록노동자에 대해 가해지는 일상적 단속추방의 폭력과 이로 인한 조합원의 사기저하, 노동조합운동의 안정적 기반의 부족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은 미등록노동자, 정부의 폭력적 단속과 추방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적 공포가 운동의 기본적인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현실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은 홍콩이나 일본의 예처럼 이주노동자운동에 적극 나서야 하며 특히 이주노조의 등록이나 민주노총 가입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지역의 각종 상담, 지원 단체나 다른 사회운동단체들은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서 이주노조의 강화를 자신의 활동의 중요한 목표로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노조와 함께 사회운동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후자를 위해서는 기존의 상담, 지원단체 이외에도 보건의료, 교육, 지역운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이주노동자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동의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의 한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그 한계 너머로 민주주의와 권리의 경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투쟁은 비단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1) 이러한 노동력 이동에서의 이중적 흐름의 형성과 선별적 관리는 싱가포르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싱가포르는 이민으로 구성된 신생 도시국가인데 월 기본임금 2,000 싱가포르 달러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취업사증을 발행하여 사실상 이민자로서 대우를 하는 반면, 기준금액 미만의 임금 노동자에게는 취업허가를 발급하여 사업장 이동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자세한 내용은 이진숙,「여성 이주의 현황과 쟁점 :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를 중심으로」,『사회운동』2005. 9월호를 참고하시오. 본문으로 3) 인도네시아 이주/인력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출국한 480,393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중 76%가 여성이었으며 그 중 94%가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가사노동자들이었다고 보고했다. 본문으로 4) 이하 내용은 설동훈,「아시아 각국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과 노동권」, 2003 참조. 본문으로 5) 1999년 5%가 삭감되었고, 2003년에는 11%(400홍콩 달러)가 삭감되었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월 3,270홍콩달러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