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연대운동의 확장을 위한 민중운동의 과제 폭력의 확산과 저항의 확산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한국의 자유주의 정권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금융화된 초민족적 자본의 이해에 완전히 종속된 새로운 축적 체계(이는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관리체계이기도 하다)는 경기 안정과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동시에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집행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DJ의 정권교체와 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이런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IMF와 세계은행, WTO 각료회의 같은 무역·금융투자기구의 위상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또 국가들 사이의 체계를 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 지배세력들은 WEF, APEC 같은 회의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며 조율했고, 이런 것들을 축제화하면서 대중들을 선동해나갔다. 노무현 정권은 번영과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약속했다. 금융화된 초민족적 자본의 투자처를 확대하는 것만이 평화번영의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이것이 거짓말임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도 안 걸렸다.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른 경제적 궁핍과 가족을 유지할 수 없는 데에 따른 공동체의 해체의 위기를 겪으면서 대중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폭력(착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평화와 번영은커녕 한반도의 위기상태는 지속할 뿐이었고, 테러와의 전쟁(인간안보)이라는 미명아래 이라크 전쟁은 오히려 확산일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중들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려고 했다. 2003년 열사들의 분신·자결을 시작으로 김선일 피살 사건에 분노해서, 핵폐기장에 건설에 맞서서, 미군기지 확장에 맞서서, 노동의 불안정화와 농업말살에 맞서서 노동자 농민, 여성들은 투쟁했다. 그리고 나아가 오늘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향한 지배세력들의 공론장인 WTO각료회의와 APEC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해나갔다. 자본이 세계화되는 만큼 이에 맞서는 투쟁도 조금씩 세계화되고 있다. 대중운동의 정치적 후퇴 하지만 이러한 투쟁이 민중의 정치적 단결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위계화된 노동자의 현실에서 알 수 있듯) 구체적인 현실에서 노동자, 농민, 여성은 개개인으로 분리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에서 민중은 자신의 혹은 서로의 문제를 정치쟁점화 하는데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대중조작적인 인민주의적 경향이 정치지형을 지배하고 있는 데다, 대중의 정치적 권리를 몇몇 정치스타에 대한 정념적 지지로 이해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운동이 자기 개발을 담보할 수 있는 이념과 결합하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가속하는 지배세력들의 정치공세 속에서 기존에 있던 대중조직의 운동이 마땅한 대응 방법을 못 찾을 때 대중의 통념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 들거나 이미 운동에 내재해 있는 이념으로 현실을 해석하려 드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저해하고 대중운동이 운동의 미래를 구성하기 위한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는데 장애가 된다. 대중운동에서 종종 드러나는 (민족주의적 틀에 갇혀있는) 코퍼러티즘적 경향은 가장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지극히 수동적이며 폐쇄적인 형태로 변모한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한 민족국가의 발전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이런 상황에서 민족의 보존(통합)이 다른 문제를 압도하게 되면 민족주의 이념은 자신의 보편성을 탈각하고 고립주의적인 경향을 띠며 급격히 우경화된다. 한편 경제위기상황에서는 지배세력들의 공세만이 강화될 뿐 타협의 여지는 크게 줄어드는데 이런 상황에서 기존 대중조직의 운동은 타협을 통한 탈출구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결국 최종목표를 대중조직으로서 자신만이라도 온전하게 하는 것으로 조정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중조직은 노동자/농민 일반이 아니라 오로지 조합원만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는 비즈니스 노선이 강화된다. 불행히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대중운동에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더 지배적인 경향이 되고 있다. 농민운동은 ‘식량주권’을 제기할 때 농민의 생존권, 농업에 대한 민중의 민주적 결정권보다는 민족국가의 안녕(식량안보)이라는 차원에서 제기하는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이 문제조차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지배세력들에게서 농업회생의 방안을 찾을 수 없었던 농민운동은 투쟁의 응집력을 통해서 이것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도 노무현의 배신 속에서 조직력과 투쟁력을 급격히 상실하게 된다. 2005년 두 농민 열사의 죽음에서 농민운동은 노무현 정권과 지배세력들의 농업말살정책에 치를 떨어야 했지만, 응집력을 보여주는 것에서조차 어려움을 겪고 만다. 노동조합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조합원의 투쟁을 응집력 있게 전개하는데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몇 번의 총파업 선언은 불발로 끝나거나 몇몇 사업장의 응집력에 기댄 채로 미약하게 전개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층 사업장, 연맹에서는 투쟁의 한계라는 이유로 몇 가지는 양보하고 쟁취하는 식의 교섭전략을 추구하게 된다. 이런 교섭은 종종 미조직노동자의 요구가 외면된 채로 진행되지만 ‘현실’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이 같은 노동조합의 비즈니스 노선(자기중심적인 실리주의) 위에서 민주노총은 ‘사회적 합의’를 수립하는데, 이런 코퍼러티즘 전략은 사실, 조합원 중심의 실리주의 노선을 방어하기 위한 제도적 표현에 불과하다. 2005년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 개악저지투쟁에서도 이 같은 교섭전략(기간제 사유제한 예외를 인정한 단병호 의원의 수정안)이 문제가 된다. 단위사업장의 교섭전략이 당과 총연맹의 교섭무대에 그대로 등장한 셈이다. 2006년 국회 투쟁을 기약하는 것으로 2005년 노동법개악저지투쟁을 마무리해야 하는 현실은 결국 오늘 노동조합운동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문제의식만 앙상해진 공동투쟁, 그리고 민중운동의 분열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강화한다는 목표아래 민중운동은 공동투쟁을 조직해 왔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전국민중연대 운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조직 출범 3년 동안 공동투쟁이 제기했던 본래의 문제의식은 (반신자유주의 전선 강화, 운동의 외연 확대) 점점 축소되고, 대중운동들이 자체로 추진할 수 없는 투쟁들(시민운동과의 연계-외연 확장, 일정조율, 반전-반세계화운동)을 대리하는 양상이 강화된다. 이 과정에서 실용주의적 경향이 난무하고, 정치토론은 실종된 채로 기존 운동의 이념(민족주의)이 복원되면서 패권적 경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오늘 노농연대 투쟁이 난망한 이유는 (강력한 정치조직/연대체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대중운동 내에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해야 하지만, 공동투쟁은 계속 이런 경향아래 갇혀져 있었고(기존 대중조직 운동의 외연 확대 - 시민단체를 끌어들이기 위한 각종 대책위 남발), 위기에 대한 공동의 인식에 근거해 민중들의 유대와 공통관념(반신자유주의 문제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으며, 실용주의적 경향(투쟁의 이합집산, 일정조정)만이 강화되어 왔다. 기존 대중조직의 운동들 사이에서 조직 방어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실리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노농연대는 구호수준에만 머무를 뿐이다. 공동투쟁은 더더욱 형해화하고 그 자리에는 특정 조직의 단일사안 단일요구의 투쟁만이 남았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이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정치쟁점화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폭은 오히려 좁아졌다. 수세적인 국면에서 이루어진 의회진출은 민중운동의 국회 의존성(대정부 의존성)을 도리어 더 높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민중운동의 역량은 국회 앞으로 집중하게 되고, 결국 가을 정기국회를 전후로 각종 요구들이 나부끼는 농성투쟁이 모든 민중운동의 투쟁을 대신하게 된다. 국회 앞 투쟁은 자신의 요구도 중요하다는 식의 알리바이를 제공했고, 현 단계 정치 투쟁의 방향, 민중운동의 과제를 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자기 조직 확장을 위한 기본목표(의식화, 조직화)마저 사라지고, 소속된 조합원들로부터 책임을 면하기 위한 요구안의 달성여부가 투쟁의 기본목표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신자유주의 전선 강화는 고사하고 조합원의 확보조차도 쉽지 않게 된다. 지배세력들과의 타협이 어려운 상황에서 투쟁목표는 현실화라는 미명아래 낮게 조정되고, 이렇게 낮게 조정된 투쟁목표는 지배세력들의 목표지점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기존 조합원의 요구를 방어하는 것도 실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반발하는 운동이 이제는 국회 앞에서 관리 받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2006년 민중운동진영의 연대운동이 나아가야 할 것 오늘날 한국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중운동의 발본적인 인식과 노선의 변화 없이는 이런 상황의 타개가 매우 어렵다. 경제위기상황에서 코퍼러티즘적인 운동노선이 불가능해진데도 기존 노선을 고집하려 들고, NGO 운동에 의해 관리 받고 끝내는 배신당하는 상황(2005년 12월 1일 7개 시민단체의 노동법 개악안 지지 사태)에서도 민중운동의 정치적 단결보다도 시민단체와의 연대에 최우선적인 가치를 둔다면, 민중운동은 자신의 존립기반조차 상실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로 돌려야 한다. 정세인식을 위한 토론을 강화하고, 운동 내에서 어떤 요소들을 강화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민의 권리를 자율적으로 실현하고, 사회적·경제적인 변혁을 추구하며, 사회운동과 공동체 사이의 교통과 연대를 확장하려는 운동’ 우리는 이를 대안세계화운동이라고 부른다. 공동투쟁이 무조건 만능이 아니다. 이 같은 요소들을 강화하기 위한 연대운동을 조직하면서 그 내에 다양한 물질적 장치(조직 이념, 조직 운영 원리)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연대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중운동은 지배세력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이에 근거하여 정치적인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민중운동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의 이념으로서 대중의 공통관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조직 혁신으로 되지 않는다. 급진적이며 변혁적인 대중 운동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주체가 형성되고 이것이 대중조직의 운동과 교통할 때 혁신의 기운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배세력들과의 정치적 단절(반신자유주의)을 강조하는 것은 이 같은 운동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최소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 국가(및 사회체제)가 대중에게 가하는 폭력(착취, 배제)의 현주소에 대한 면밀한 인식과 이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정치폭로가 필요하다. 자유주의들과 NGO운동이 심어놓은 ‘민주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경계를 확장하고, 현존하는 사회관계의 변혁을 위한 머나먼 길에 나서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다양한 운동과 더 많은 운동이다. 대중을 분열시키려는 지배세력들의 책략에 맞서는 다양한 운동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우리는 이를 격려해야 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에 여러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에 노동자, 농민,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하며 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기에는 이런 다양한 운동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여러 조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다. 이렇게 등장한 다양한 운동들 사이에서 수평적인 토론이 확산되어야 한다. 공동투쟁에 참여하는 여러 운동 주체들이 자신의 경험, 자신의 이념, 자신의 전망을 놓고 평등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운동들 사이의 교통을 통해서 대중들이 직접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확장하면서 운동 전망에 대한 공동의 관념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들이 연대운동체/공동투쟁체의 조직운영원리(의사결정기구의 민주화)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지금 만일 우리가 민중운동의 연대운동에 대해 새롭게 토론하고자 한다면, 바로 오늘 대중운동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연대운동과 공동투쟁은 공동의 인식을 전제로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이지만, 동시에 대중운동의 혁신을 위한 운동이며 변혁적인 운동 주체의 형성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연대운동에서 노력과 고민을 집중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12월 워크샵 자료입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제작한 소책자입니다. - 목 차 - Ⅰ. 노동법 개악 대응,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1. 노동기본권 후퇴를 허용할 수 없다 2. 민주노동당 수정안이 미치는 지대한 문제점들 3. 어디에서 출발 했는가 4. 현 정세에서의 허구적 쟁점들 5. 우리의 투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Ⅱ.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안 해설 1. 기간제 고용의 제한 2.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근절 3. 원청(사용)사업주의 사용자 책임 인정 4.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5.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6.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금지 Ⅲ. 개악안 통과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제조> <공공> <사무금융> <민간서비스> Ⅳ. 논의 중인 비정규직 법안 쟁점 해설 1. 정기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의결안의 내용 2. 문제가 되고 있는 의결 사항들 3. 권리보장 입법안의 원칙은 무엇이었나? < 참고 > 12월 9일까지 국회 비정규직 개악법안 의결 사항
고 전용철 열사의 죽음에 부쳐 노무현 정권은 전용철 열사를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지난 11월 15일 농민들은 추곡수매제 폐지, 쌀협상 국회비준에 항의하며 격렬하게 시위했다. 추곡수매제 폐지로 쌀 가격안정에 실패하여 수확기 쌀값이 급격히 폭락한데다 쌀비준 국회통과마저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는 대신 손실분의 80%에 이르는 쌀 소득보전을 약속했지만 이것으로는 농가의 소득손실을 메울 수가 없었다. 수확기 쌀값이 너무도 많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쌀 소득보전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목표가격마저도 3년 뒤면 이렇게 계속 떨어질 쌀값이 반영되어 더 하락할 판이었다. 사실 농민들의 쌀 수입 개방 반대 요구는 이 정권에게서는 아예 처음부터 거부당했었다. 도리어 농민들은 이 나라 대통령으로부터 '어려운 협상 여건에서도 정부가 최선을 다해 얻어낸 결과'라며, '국회 비준 동의가 늦어질 경우, 금년도 의무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대외신인도가 저하되고 국제적 분쟁이 일어나는 등 국가적 손실이 막대할 것'이라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6월 7일 정부는 매년 쌀 의무수입량을 2014년까지 40만8700t까지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쌀협상국회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14년 의무수입량 비중이 국내 평균 쌀 소비량의 7.96%라고 하지만 이는 1988년~1990년 국내 쌀 소비량 대비고, 지금은 쌀 소비량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에 8%라는 숫자 놀음은 농민들 입장으로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더구나 올해 의무시판해야 할 물량이 내년으로 이월되어 수입될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2006년 3월에 또다시 쌀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농민들은 노무현의 '선대책 후개방' 약속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쌀농사가 줄었다 해도 쌀농사는 여전히 농가소득의 절반을 이루었고 쌀값 폭락에 따른 농가 소득 감소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27조가 넘는 농가부채까지 짊어지고 있는 농민들에게 쌀 수입개방은 정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농민들은 노무현 정권의 농업정책을 살농정책이라 부르며 죽음으로 항거했다. 담양의 정용품 농민은 정부정책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성주의 오추옥 농민은 쌀개방을 반대하며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죽음으로 생존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처절하게 외치고 항의하며 싸웠던 것이다. 11월 15일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가 진행되었다. 숱한 농민들이 다쳤다. 8명이 전신마비, 뇌출혈, 갈비뼈 골절 등의 중상을 입었고, 147명에 이르는 농민들이 맞고 넘어져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그리고 11월 24일 새벽 폭력진압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한 농민은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은 폭력진압으로 일관했고 결국 전용철 농민까지 앗아갔다. 한편 같은(!) 날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청와대에서 '농업분야의 생산성에 비해 농가인구가 많아 소득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므로 농가인구를 줄여야한다'는 요지의 브리핑을 하며 농업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죽음으로 저항해도, 죽음에 내몰리면서까지 저항해도 이들에게 농민들의 존재란 국민경제의 숫자로서, 구조조정으로 줄여야 할 숫자로서만 의미를 띨 뿐이었다. 이들에게 농민들의 생존권은 그저 경제 효율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로 반신자유주의 기치를 드높이 농민은 생존의 권리 즉 노동에 대한 모든 권리,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민주적으로 누릴 모든 권리를 이 땅의 지배세력들에 의해 완전히 박탈당했다. 자신들의 처지를 분명한 정치적 의제로 부각시키려는 농민들의 시도는 경찰의 폭력적 개입 아래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이상이 전용철 열사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의 본질이다. 이 문제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지배세력이 제시하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은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들의 투쟁으로서 한국사회 정치지형에 분명히 각인되지 못했고, 오늘 한국 정치를 주름잡고 있는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논쟁 구도를 수구세력 척결과 지역구도 타파 여부로 치환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위기와 갈등은 민중의 생존권을 둘러싼 투쟁으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지배세력은 이를 모든 정치논쟁에서 부차적인 것이거나 '국익' 앞에 희생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실업과 저임금 구조의 확산과 공공서비스 해체로 인한 노동자, 농민, 여성의 극심한 빈곤은 '양극화 해소'라는 구호아래 관리(!)될 뿐이었다. 전용철 열사의 죽음은 오늘 우리가 제기해야 할 민주주의의 쟁점이 어디서 비롯되어야 하는지를 날카롭게 제기하고 있다. 생존권은 모든 인민의 보편적인 정치적 권리로서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정치쟁점이다. 살인적인 경찰폭력이 민중의 생존권을 정치적으로 제기하는 것 자체를 가로막고 있으며, 노무현의 인기영합주의는 민주주의를 둘러싼 민중의 요구를 교묘히 조작했다. 2003년 탄핵 국면에서 대중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자유주의자들의 쟁점 조작(그들은 탄핵을 수구보수세력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아래 어떻게 허비되고 이용당했는지를 떠올려 보라. 2004년 차가운 여름 이라크 민중의 처참한 죽음과 한 젊은이의 죽음을 직접 보고도 '조직된'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자이툰 부대를 떠나보내야 했는지를 떠올려 보라. 2004년 겨울 이른바 '4대 개혁입법'에 관한 국회 앞 천막 농성 투쟁이 민중의 정치적 단결은커녕 모든 투쟁을 법안저지투쟁에 몰입하게 하고 자신만의 의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으로 연대를 무너뜨렸는지를 떠올려 보라. 그리하여 2003년 그 혹독했던 가을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재차 삼차 다짐했던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전선(노무현 정권 심판)이 지금 어떻게 실종되었는지를 떠올려 보라. 열사의 죽음은 자유주의자들이 쳐놓은 한계에 갇힌 투쟁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릴 가치조차 없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이 모든 것들과 단호하게 전선을 치고 이들을 물리칠 우리의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배세력들이 의제화한 허구적인 정치쟁점을 거부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옹호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중심으로 민중의 정치적 단결을 이루는 것이다. 민중의 정치적 의사를 살인폭력으로 짓밟은 경찰 같은 국가장치를 해체시키고 민중의 정치적 의제를 지속적으로 확산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위기관리비용을 민중들에게 전가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노무현과 이를 정점으로 하는 한국사회 지배세력들이 지금 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바로 그들이 경찰폭력을 동원하여 민중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막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살인교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슬로는 명확하다. '살인정권 폭력정권 노무현정권 퇴진하라!', '노무현 심판/퇴진'을 전면에 내걸면서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기치를 드높이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동투쟁의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 이 투쟁을 농민들의 투쟁으로만 이해하고 그래서 자신의 의제도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해한 뒤 조금씩 서로 연대하자는 취지로는 아무것도 타개할 수 없다. 아무것도 분명해지지 않는다. 노동자, 농민, 여성 모두가 열사투쟁, 아니 반신자유주의 투쟁(노무현 정권 심판/퇴진)의 기치를 내걸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 노동법개악 저지투쟁이 노동법을 개악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투쟁으로 전환되어야 공동투쟁이 가능하며 쌀협상 국회비준저지 투쟁이 전용철 열사를 살해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투쟁으로 전환되어야 공동투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공동투쟁들이 확산될 때라야 정치적 단결의 싹을 찾을 수 있다. 민중생존권을 파탄 낸 노무현 정권을 민중의 단결된 힘으로 심판하겠다는 투쟁의 의지를 분명히 되새기자. 끊임없는 토론 속에서 민중의 지혜를 모아내자. 민중의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연대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자.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오늘 한국정치의 한복판에 분명하게 각인시키자. 오로지 이것만이 열사의 죽음을 기리는 우리의 가장 값진 추모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현 시기 노동자·농민투쟁의 진로 농민 전용철 열사가 야만적으로 살해당했다. 경찰과 정권은 진상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더러운 술수를 부렸지만, 이내 농민대회 당일 전용철 열사의 타살을 뒷받침할 생생한 사진과 증언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렇다. 진실은 명명백백하다. 곤봉과 날선 방패, 군홧발을 앞세운 경찰이 전용철 농민을 죽였다. 노동자 농민의 피를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열사를 죽였다. 더불어 노무현 정부의 개혁놀음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언론과 지식인들의 침묵이 열사를 두 번 죽였다. 한편 이제는 비정규 노동법 개악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IMF경제협약 이후 처절하게 이어져온 신자유주의 반대 노동자 투쟁과 십수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열사들의 절규를 비웃으며,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노동악법을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는 기상천외한 이름으로 둔갑시키며 연내 처리할 뜻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악어의 눈물’ 쇼로 집권한 노무현의 진실은 잔혹한 폭력 살인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는 숱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붉게 물든 노동악법과 돈 다발을 양손에 쥔 냉혹한 자본가들의 주구였다. 이제는 노동자 민중이 답할 때다. 여의도 국회 앞에는 노동법개악저지를 위한 노동자 대오가 천막농성을 개시하여 12월1일 민주노총 파업에 나섰으며, 광화문에는 전용철 열사대책위의 천막농성이, 또 매일 저녁 이어지는 열사 추모 촛불집회가 개최되고 있다. 두 개의 전선? 하나의 적! -민생파탄 살인만행 노무현 정권 민생파탄 살인만행으로 인한 전 민중의 분노는 공동의 적 노무현 정권을 향한다. 전용철 열사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노무현 정권이고, 비정규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라크 파병 재연장을 획책중인 것도 노무현 정권이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은 현재 여의도 국회 앞 노동자투쟁대오와 광화문 전용철 열사 살해 촛불시위로 나눠져 있다. 전 민중의 투쟁은 아직 발동되지 않았다. 숨은 계산이나 다른 욕심 때문이 아니다. 우루과이라운드투쟁 이후 쌀 개방 비준안 저지라는 희망마저 잃어버린 망연자실한 농민대오의 어려움이 있다. 민주노총의 내부 혁신 지체와 자본의 노동 분절화로 찢기고 얼어붙은 노동현장의 고민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 전 민중의 단결과 연대는 어느 때보다 진실하고, 가장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대안이다. 품앗이 연대를 넘어 전 민중의 정치적 단결을! 품앗이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그러나 마을에 홍수가 나고 농번기가 도래했을 때 품앗이는 별 소용이 없다. 마을차원의 작업조직과 공동작업인 두레가 필요하다. 노동자 농민의 연대가 꼭 그렇다. 일상시기에 우리는 연대투쟁을 통해 서로의 이해와 요구를 알아가고 일손을 나눈다. 그러나 도무지 성한 곳이 없고 일손이 딸리지 않는 곳이 없어, 전 민중적인 투쟁이 발동되어야 하는 비상시국에 ‘품앗이 연대’는 서로의 무력감만을 증폭할 뿐이다. 현 시기 우리에게 요구되는 투쟁의 성격은 정치적인 공동투쟁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농민의 요구와 노동자의 요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요구, 산업별 사업장간 이해를 넘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일상적이고 병렬적인 요구와 사업체계를 공동의 적에 대항한 정치적이고 비상한 형태로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의 분노와 요구를 정치적인 공동투쟁으로 승화해야 한다. 살인 만행을 불사한 채 강행 통과시킨 쌀개방 비준안이 농민들만의 요구로 뒤엎어질리 없다. 자본의 위기비용을 전가하는 방책으로, 청와대와 국회가 제도화하고자하는 노동악법이 민주노총 협상대표단의 엄포로는 포기될 리 없다. 현 정세에서는 민생파탄, 살인 만행의 책임을 물어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는 단지 우리의 분노나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정권 반대’의 실내용인 ‘신자유주의 반대’를 기치로 전 민중이 단호한 태세를 갖춰 전진할 때만이 모두의 권리를 되찾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 노동 악법 저지·비정규 권리 보장 입법 쟁취 파업을 전 민중적인 노무현 정권 심판 투쟁으로! 이미 정부 여당 차원에서 노동악법 연내 통과를 천명한 마당에,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이 법안문구의 일부 수정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는 협상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저들에게는 민중의 생존을 보장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 이미 무수한 열사들의 죽음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이제 노동자 자신의 권리는 물론이고, 전 민중의 권리를 되찾아오기 위해 파업투쟁을 민중연대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물론 민주노총 총파업 돌입 총투표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내부 조직화의 어려움은 분명 노동자 투쟁의 확대를 가로막는 객관적 조건이다. 그러나 이 어려움이 투쟁의 요구와 수위를 낮춘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전 민중적인 단결과 연대를 어떤 수준과 형태로 상승시킬 것인지에 노동자 농민의 생존과 이 땅의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 있다. 12월1일 파업을 시작으로 완강하고 지속적인 투쟁대오를 조직하자. 12월4일 전국민중대회와 9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거쳐, 노동자 농민의 삶을 도탄에 빠트린 원인과 주범이 무엇이고 누구인지를 거듭 확인하자. 이 과정에서 민중을 살해하고, 민중 생존을 압살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목소리를 높이자. 민생파탄 살인만행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 총파업투쟁 성사시켜 노동악법 철폐하자!! 노동법개악, 쌀개방 비준 노동자 농민 다 죽이는 노무현정권 퇴진하라!!
비대위 체제와 6만의 파업대오 지속되었던 운동의 위기가 2005년에 들어서는 조직의 내적 갈등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치 유행처럼 곳곳에서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일부 민주노총 지역본부, 위원장이 사퇴한 전교조 등에 이르기까지 운동진영의 대표적인 조직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비상대책' 상태를 선언했다. 이유야 각기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운동 위기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외부의 탄압과 이데올로기 공세, 내부의 지체된 혁신, 운동노선 재정립의 답보 등이 맞물려 있는 상태에서 특정한 사안을 매개로 하여 조직 내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은 금품수수 비리, 민주노동당은 재보선 참패, 전교조는 일방적인 연가투쟁 연기가 계기였다. 그러나 이런 개별적 사안들을 해결해 보자는 방식, 예컨대 '조직 내 제도개선' 혹은 '투쟁으로 돌파'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사태를 극복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위기는 훨씬 깊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모두 노동자운동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민주노총이 창립 10년을 맞는 해에 총체적인 위기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하다. 이런 상태는 운동주체들이 더욱 근본적으로 사고하고 고민해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12월 2일)에서 민주노총은 총파업 이틀째를 보내고 있다. 민주노총이 자체 집계한 첫날 파업대오는 6만 명.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 저지와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민주노총의 파업에서 작년 하반기 하루 총파업에는 15만7천여 명이 참여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12만1천여 명이 참가했다. 파업찬반 투표가 부결된 기아자동차노조와 임원선거가 겹친 현대자동차노조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일반적으로 분석되지만 그렇게만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의 한 달에 걸친 파업 찬반 투표가 간신히 50%를 넘었고, 찬성율 역시 64.2%로 낮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막아내기 위한 노동자운동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는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와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가 구성되었고, 전국의 사회운동 단체들과 현장조직들이 '비정규직 철폐 현장투쟁단'을 구성하여 연일 국회 앞 농성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그러나 파업 참가자 숫자가 말해 주듯이 투쟁이 급격히 고양되고 있지는 못하다. 결국 우리는 혁신의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현재 민주노총 비리 사건과 지도부 사퇴를 계기로 형성된 운동혁신의 분위기가 당면한 투쟁으로 인해 당분간 미뤄진 듯한 느낌도 크다. 즉 혁신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당장은 비정규 법개악을 막아내는 투쟁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분위기다. 물론 민주노조운동 전반에 걸친 혁신 논의는 투쟁 시기에 전면화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투쟁 따로 혁신 따로'가 아니고, 투쟁 혁신도 중요한 문제이므로 투쟁의 과정에서 더더욱 혁신의 문제의식을 살리고 키워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투쟁 속에서 혁신의 문제의식을 살리기 위해 짚어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교섭의 환상 우선 짚어볼 것은 노사교섭 문제다.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관한 노사교섭은 한국노총의 요청으로 이목희 의원이 주선하여 지난 11월 10일에 열린 노사대표자회의를 시작으로 11월 30일 한국노총의 수정안 발표와 민주노총의 결렬 선언으로 끝났다. 이미 지난 상반기 교섭에서도 민주노총은 교섭을 진행하면서 당초의 원안에서 후퇴하는 안을 던졌다. 이 내용은 언론에 소위 '노동계 안'으로 보도되었고 물의를 일으켰다. 이것이 금번 교섭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났다. 애초의 요구는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으로 표현되었듯이, 정부의 기간제 법안 폐기, 엄격한 기간제 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 불법파견 정규직화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노동3권의 보장 간접고용에서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 등이었다. 그러나 4월 노사정협상 내용으로 언론에 알려진 것은 첫째, 기간제와 관련하여 '사용사유 제한'과 최장 1년까지 '사용기간 제한'이 아니라 '1년+1년', 즉 1년은 마음대로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고 다음 1년은 사유제한을 해서 추가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둘째, 파견법 철폐와 직업안정법을 통한 간접고용 규제가 아니라 현행 파견법 유지였다. 셋째, 원청 등 사용사업주의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책임 확대가 아니라 부당노동행위에서 사용자책임 명문화였다. 넷째,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노동법상 근로자개념의 확대가 아니라 노동3권 보장이었다('비정규법안 관련 현재 노사간 교섭에 대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입장', 2005.11.24).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는 파업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고, 투쟁을 통해 권리보장 입법을 쟁취하기 힘든 상황에서 '협상팀'을 중심으로 이러한 내용들이 언급되었다고 정당화하겠지만, 그렇다고 양보안을 노동자의 안으로 내놓을 수는 없다. 결국 열린우리당과 교감하에(?) 한국노총이 대폭 후퇴하는 안을 발표하여 전선에서 이탈했고 참여연대를 비롯한 7개 시민단체들도 비슷한 안을 내놓아 노동자의 뒤통수를 치는 상황이 되었다. 뒤늦게 민주노총은 원칙을 강조하며 한국노총을 비판하고 공조파기를 선언하였다. 파업을 앞두고 교섭에 매달린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다. 일각에서는 힘도 없는데 너무 원칙만 강조하는 것 아니냐고 교섭과 양보를 은근슬쩍 정당화한다. 그러나 권리보장 입법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좋은 법안 한번 만들어 보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비정규직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그러한 요구를 정치적 준거점으로 삼아 운동진영이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발굴하고 주체를 확대, 강화해서 아래로부터의 비정규직 운동을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의 일부다. 따라서 양보안 혹은 수정안을 노동자의 입장으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향후의 운동과 투쟁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정부와 여당이 양대노총과 사용자측을 끌어들어 교섭 혹은 협상의 형식을 띠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지배계급은 허구적인 사회협약이나 협상을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자 한다. 체제를 관리하는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는 자본 측의 '배째라'식 버티기보다는 친자본적인 법적 규제 틀거리를 마련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의 분출을 봉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은 위기관리에 들러리 서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급진적인 전화를 지향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대안적인 운동을 개척해야 한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 앞서 언급했듯이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함께하는시민행동,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은 한국노총의 최종안 발표 직후 소위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들 7개 시민단체의 조정안은 기간제 2년 사용, 이후 무기계약으로 간주 불법파견시 원청의 직접고용으로 간주하되 소급적용 제외, 경과기간 설정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노사정 공동논의기구 구성 등 한국노총의 최종안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이 불과 하루 전인 11월 30일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의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민주노총의 기본방안인 기간제 사유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불법파견 직접고용의제 및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입법의 원칙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최선의 안이 아닐지라도 입법이 무산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의 원칙을 훼손하는 부분까지 포함"한 조정안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발표 시점이나 내용으로 보아 열린우리당이나 한국노총과 조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생기는 대목이다. 한국노총의 수정안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던 민주노총은 시민단체들의 조정안에 대해서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민중의 정치적 단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그간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진영 상층부 일각에서는 국민적인 연대를 해야 한다는 노선상의 이유나 시민단체의 영향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다소 실용적인 이유에서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지속해왔다. 물론 연대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민중진영의 정치적 단결보다는 시민단체와의 연대가 우선시되는 상황도 발생하는 등 역효과가 더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대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언론 선전이나 정치권 압력행사 사업방식, 신자유주의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 등도 운동의 큰 문제다. 따라서 우리는 민중의 단결과 연대투쟁이라는 대원칙 하에서 이러한 점들을 명확히 하고 민중운동 내부로부터 이를 혁신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 심판투쟁 운동의 위기는 노동자 대중의 위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 대중의 생존의 위기이자 권리의 위기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 대중의 삶과 권리의 문제를 보편적인 운동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해방운동으로 노동자운동을 만들어 가는 것은 혁신의 중요한 방향이다. 노무현 정권 첫해인 2003년에 배달호, 이해남, 김현중, 김주익, 이용석, 곽경해 열사가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계속되는 분신과 자결에 대해 민주노총은 '손배가압류 노동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을 여러 사회운동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하여 민중진영의 투쟁을 결집시키고자 했다. 당시 단병호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 이후 모두 61명의 노동자들이 분신했다. 90년대에는 5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후 해마다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올해에만 벌써 5명이다. 오히려 참여정부 하에서 노태우정권 시절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투쟁을 호소했다. 올해는 김동윤, 류기혁 등 노동자들의 자결에 이어 농민들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면서 정권의 폭력에 의해 한 농민이 직접적으로 맞아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투쟁 호소는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故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졌다. 당시나 지금이나 노동자와 농민의 차이가 있을 뿐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심판, 민중의 정치적 단결이 핵심적인 내용이고 돌파구를 여는 무기인 것이다. 다시 말해 당면 비정규 법개악 저지투쟁 역시 노동자 농민을 죽이고 민생을 파탄 내고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 대해 전체 민중의 연대투쟁으로 명확한 전선을 치고 정치적인 투쟁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 법개악 저지가 시급하니 국회 앞의 투쟁에 주력하고 농민 살해 관련 투쟁에 대해서는 집회 참가 수준의 연대활동을 펼친다는 발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현재의 국면을 정치적으로 분석하고 타격 지점을 명확히 설정하여 노동자·농민, 민중연대 투쟁을 광범위하게 전개해야 한다. 또한 이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국회 앞에 모여 국회 안에서 논의되는 법제도 관련 현상에 압력을 넣는 투쟁 방식을 과감히 전환할 수 있는 유력한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약 국회에서 비정규 개악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그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력하게 돌아설 것이 아니라면 미리부터 이러한 투쟁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을 비롯한 모든 민중에 대한 공격을 거듭해 왔으며 이제 쌀 개방, 노동법 개악 등 제도적인 차원에서까지 목숨 줄을 죄는 단계까지 왔다. 이런 조건에서 어떤 운동이 되었건 기존의 내용과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고 지속적으로 혁신과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민중을 파탄 내는 신자유주의를 저지하고 운동의 대안과 전망을 새로이 개척하는 것은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사활적인 과제다. 그렇지만 운동의 혁신이 하나의 완결된 안을 만들고 그것을 실행하면 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현실의 투쟁 속에서 혁신의 계기를 발견하고 이를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12월,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마저 투쟁대오를 움츠리게 하지만 우리는 전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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