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례 “여러분들도 10대부터 일하셨죠?”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적나라한 현실을 알려내고 기륭전자 투쟁에 대한 연대를 촉구하고자 10월14일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불법파견 실태와 인권 침해사례 고발을 위한 증언대회’를 인권단체 사회권전략팀과 공동주최로 진행하였다. 이날 증언대회에 함께 한 구로동맹파업 당시 효성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김영미 씨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증언을 듣고 난 후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여성은 20여 년 전 구로에 있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20년 후의 모습이라고. 10대 때는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 혹은 남자형제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기계처럼 일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들쳐 메고 일을 했고,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 때쯤이면 또 일을 찾아 파견직,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기계처럼 일해 온 여성들의 삶, 이것이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라고. IMF 당시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어진 지금,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며, 임금은 남성의 63%, 노조가입률은 5.2% 불과하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며, 또한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조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역시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힘들게 일해 왔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옷은 갈아입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힘겹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어내고자 정당한 투쟁을 진행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악랄하게 탄압이 가해지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년 전과 어쩜 이리도 똑같나.” 상시적인 고용불안, 일과 가사노동 양립의 불가능 속에서 끊임없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절실한 요구였으며, 그렇게 절실하게 건설된 노동조합은 그녀들이 투쟁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사측의 탄압은 20여 년 전 구로동맹파업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사측의 탄압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물론이며 성폭력을 통해서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1) 김영미 효성물산 전 노조위원장은 "20년 전 우리가 파업하니까 여성노동자들 기숙사로 남자 구사대 두 명이 옷을 벗고 들어와서 제일 열심히 싸우던 친구들을 폐쇄된 장소로 끌고 가서 '빨래 아니면 나갈래.'라고 협박하는 등 그녀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며 “노동탄압 양상이 20년 전 구로지역에서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와 어쩜 이리도 똑같은가?”라고 개탄했다.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나날이 심각해지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 그리고 투쟁을 진행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여전한 탄압.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에게 집중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현실을 살펴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어떠한 투쟁이 필요한지에 대해 10월 14일 증언대회에서 이야기되었던 바는 다음과 같다. 1.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인 및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와 직결된다. 비서, 타자원 및 관련 사무원, 도서 우편 및 관련 사무원, 간병인, 조리사, 공중보건 영양사, 전화교환 사무원, 전화 외판원, 여행 안내요원, 그리고 대중유흥업소 무용수가 대부분인 연예직종 업무... 지난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로 허용된 파견업종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위 ‘여성직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제도나 다름없는 파견직으로 허용된 26개의 직종은 왜 하필 ‘여성직종’에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당시 파견업종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기에? 사실 파견업종 선정 과정에서 어떠한 일관된 기준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파견법 제정 이전부터 불법적 간접고용으로 사용되어 왔던 업무들을 합법파견으로 정당화시켜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98년 파견직의 확대 과정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거나 여성들이 집중 고용되어 있는 직종의 업무들을 대상으로 한 업무선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인과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와 직결된다. 기륭전자를 비롯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의 현황을 통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정규직은 꿈도 못 꾸죠. 계약직으로라도 전환시켜 준다기에 들어왔죠”_구직 및 취업 2005년 8월부터 9월 사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내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2) 조사기간 중 접할 수 있었던 1,278개의 일자리 중 정규직의 일자리 수는 전부 43개로 파악되었으며, 이는 전체 일자리의 3.4%를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반면 계약직은 306개(23.9%), 파견직은 930개(72.7%)로 집계되었다. 정규직을 제외한 계약직과 파견직을 비정규직으로 보았을 때, 동 기간동안 구직자에게 주어진 비정규직 일자리 수는 1,236개로 전체의 96.6%를 차지하는 비율이었고, 이는 같은 기간동안 제공된 정규직 일자리의 28배가 넘는 수치였다. 그리고 일자리를 성별로 구분한 결과 여성의 구인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여성에게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다는 긍정적 의미라기보다,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심화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의 구직 및 취업 현황은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성차별적이고 성별분업화된 현실을 반증한다. 전체 백분율을 기준으로 할 때, 1279개의 일자리 중 가장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는 “여성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로 0.5%의 확률이었으며, 이에 반해 가장 취업하기 수월한 경우는 “여성이 파견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로 57.1%의 확률이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도 파견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입사한 여성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파견업체 휴먼닷컴을 통해 파견직으로 기륭전자에서 일을 하고 일부가 계약직으로 일하는 상황이다. 2)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남자는 못 봤어요”_직종별 성별 고용형태 위의 조사가 생산직종에 국한되어 진행된 점을 고려했을 때, 중소규모 제조업의 사무직 또는 관리직에는 남성의 고용수요가 높은 반면 일반 생산직의 경우 여성에 대한 고용수요가 높은 사실이 드러난다. 생산직을 다시 세부직종별로 구분해 보면 조립검사업무에 가장 많은 비정규직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던 ‘조립검사’ 직종의 경우 남성을 선발하는 일자리는 183개(17.6%)에 불과하였던 반면 여성을 선발하는 일자리는 856개(82.4%)였다. 조립검사 일자리에서 남성을 선발하는 경우, 정규직이 선발될 가능성은 5.0%, 비정규직으로 선발될 가능성은 95%였다. 반면 같은 일자리에 여성을 선발하는 경우, 전체 조사대상 일자리 중 단 1개만이 여성을 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855개(99.9%)는 비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었다. 이는 생산직의 대표적 직종인 조립검사직종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선발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 그 심각성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로 인해 여성이 특정직종에 집중되고, 그러한 직종 자체가 비정규직화 됨에 따라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확대․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직업에 대한 보상이 낮게 책정된다면 성별 임금격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노동시장의 성별분업화는 비정규직의 여성화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빈곤의 여성화로 이어진다. 3) “‘아줌마 이빨 보이지 말아요!’라고 구박을 받아도 그냥 참았지. 안 짤리려면”_고용불안정 및 노동통제 <최저임금실현과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서울남부지역공동대책위원회>(이하 남부공대위)의 조사결과 명시적으로 계약기간을 밝힌 일자리 중 가장 많은 143개(11.9%)가 12개월(1년)의 계약기간을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인 952개(78.9%)의 일자리는 계약직이긴 하나 그 기간이 특정되어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잘 하면 계속 연장시켜 주겠다’고 고지하였으며, 이는 계약직의 애초 도입취지와는 달리 일시적 필요성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시고용의 필요성이 있는 업무에 이용되고, 나아가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 A) “이력서 쓰고 면담할 때 일년만 잘 하면 계약직 해준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기다렸죠.”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안나오면, 짤렸나보다 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일했어요. 사람을 많이 구해놓고 맘에 안 드는 사람을 짤라내는 식이에요. 일을 아무리 잘해도 관리자에게 밉보이면 짤리는 거예요.” (인터뷰 대상자 B)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맨날 짤리고 나도 언제 짤릴지 모르고 항상 불안에 떨면서 일한다. 오죽하면 ‘이놈의 전화기를 없애버려야겠다,’라는 말들도 한다. ‘전화를 없애버리자, 그러면 (해고)문자 안 받지 않겠냐.’라는 말도 쉬는 시간에 하고 그랬었다.” 기륭전자에서 일하는 파견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3)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던 부분은 재계약이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으로 작동하여 고용불안을 가중시킴으로써 노동통제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대다수가 여성노동자로 구성된 생산라인에서 진행되는 노동통제는 조직화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노동자의 현재적 특성을 백분 활용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잡담이 이유가 되어 해고될까봐 두려운 마음에, 노동의 과정에서 동료들과 대화조차 차단한 채 일해왔던 것이다. 나아가 여성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결혼과 출산 이후에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한 나이든 여성에 해당하는 현실에서, 나이든 여성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은 노동과정 전반에 걸쳐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나이도 많은 너희가 이곳 아니면 어딜 가느냐’ 라는 무시가 만연한 작업장에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알아서 싹싹하게 굴고, 잡담도 조심하고, 관리자에게 커피도 타다 바치고 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처럼 기륭전자를 비롯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여성노동자들은 구직 및 취업과정에서부터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성차별적이고 성별분업화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직종별 고용형태도 성별유형화되어 여성은 저임금의 직종에 편중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노동자들이 상시적인 고용불안정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노동통제의 강화로 연결되게 된다. 2.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기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고용율은 연령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특히 30대 여성의 고용율이 낮다는 것이 특징이다. 장지연, 「여성노동의 동향과 정책적 쟁점」, 한국노동연구원 여성노동정책 워크샵, 2005 이것은 자녀양육과 가사의 부담이 개별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을 반증한다. 또한 연령별 고용율의 패턴은, 출산과 양육 등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시기에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중단하였다가 재진입하는 양상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그리고 노동시장 재진입 시 여성들의 고용형태는 비정규직이 압도적이다. 자료 : 한국여성개발원 여성취업실태조사 4차(2001년) (***이미지 및 캡션 들어갈 자리!!) 이와 같은 생애주기에 따른 경력단절은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뷰 대상자 A) “결혼하면서 다니던 백화점 관두고 애들 낳고 나서 다시 일하러 나왔죠. 이제는 일을 할 나이잖아요. 애들 웬만큼 키워놓았고, 가정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나왔죠. 전자회사에 다니다가 회사가 서울에서 부천으로 이전하여서 그만두고 기륭으로 들어왔어요.” (인터뷰 대상자 B) “결혼 전에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결혼하고 애 낳은 후에 텔레마케터로 일하다가, 정보지에 나온 광고를 보고 공장에 들어오게 되었죠.” 여성노동자들은 임신, 출산, 영아보육, 육아보육, 방과 후 보육 등이 연속적으로 보장되어야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활동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시기에 노동시장에서의 단절이 극심하다. (인터뷰 대상자 A) “어린 아가씨들이나 결혼할 염려가 있는 아가씨들은 6개월, 결혼할 염려가 없는 아줌마들 같은 경우는 1년, 나이가 좀 찬 사람은 3개월.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어왔어요.” (인터뷰 대상자 B) "출산, 육아휴가요? 그건 우리 같은 파견직들은 생각도 못하죠. 아이가 아파도, 가족 장례식에도 휴가를 낼 수가 없는데요. 짤릴까봐.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휴가 못쓰고 외출로 잠깐 다녀온 정도예요. 어떤 사유든 휴가를 내거나 잔업, 특근을 거부하면 해고 0순위인데요. 아침마다 조회를 할 때, 조장이 노골적으로 말해요. 휴가내면 해고 0순위라고.." "생산직 정규직이 출산휴가를 냈다가 말이 많았어요. 9년인가 다니던 분인데, 그때는 파견직이 없었으니까 정규직으로 입사한 분이죠. 임신을 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휴가 처리가 안되었다고 다시 나오라고 해서 나왔대요. 그리고 얼마간 일하다가 다시 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출산휴가 다 쓰고 나면 계약직으로 일하라고 통보를 하더래요. 연구소는 상황이 나은 편인데도, 마찬가지라 들었어요. 연구소 정규직 중에도 출산휴가 쓰려다가 압력이 심해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있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서 출산과 육아휴가, 그리고 양육시설 등에 대한 질문은 그 자체가 배부른 소리나 다름없었다. 80시간에서 100시간에 달하는 잔업을 군말 없이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 속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산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 등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30대 중후반 이후 다시금 일을 하러 나온 여성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인터뷰 대상자 A) “갈 데가 없더라구요. 나이 많다고 받아주는 데가 있어야죠” 왜 파견업체를 찾아가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39살의 기륭전자 조합원은 나이가 많아서라는 이유를 댔다. 면접 때마다 35살 이상은 나이가 많아서 채용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파견노동자라는 불안정한 일자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해 여성들에게 비정규직이 적합한 고용형태이며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하게 된다는 지배적인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알려준다. (인터뷰 대상자 A) "우리가 원래는 격주 휴무인데 쉬어본 적이 없네요. 기본 잔업시간이 한 달에 아무리 못해도 70시간, 많게는 100시간 가까이 해요. 기본급이 63만 3천원이니까, 90시간 넘겨 잔업을 해야지 받아 가는 돈이 100만원 가까이 되요.” (인터뷰 대상자 B) "8시에 근무 끝나면, 이것저것 정리하면 8시 반. 공장 나와서 집에 가면 9시가 넘어요. 애들 공부 봐주는 건 생각도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서 저녁준비까지 해놓으랴 정신 없죠. 일 마치면 거의 12시정도 되요. 저는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언니들은 5시정도 일어나야 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현시기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선택이 결코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며,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에서 해고되지 않고 생계를 위한 벌이를 하기 위해서 잔업과 특근을 마다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장시간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가사노동의 1차적 책임자로 규정되어 있기에, 결국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은 출혈판매를 통해 직장과 가정을 유지해가고 있는 셈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및 기능과 별개로 사고되기 어렵다.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의존하여 가족이 유지되는 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에서 위기에 몰린 가정에 대한 책임이 일방적으로, 또한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한,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른 노동시장 퇴출 현상은 변함 없을 것이다. 또한 여성이 노동시장 재진입시 필연적으로 비정규직이 되는 현실 역시 변함 없을 것이다. 3. 공장문을 넘어서, 가족의 영역을 넘어서,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 필요하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 바대로 노동의 영역 전반에 걸친 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여성에게 집중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현상 및 원인을 드러내기 어렵다. 또한 가족 및 사회 영역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지 않는 상태에서 여성노동권 쟁취란 요원(遼遠)한 일일뿐이다. 그렇다면 현시기 해결되어야 하는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파견법 시행 이후 6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파견근로 허용대상 직종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6개 직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일명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에서 제한 직종만을 명시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변경, 규제를 대폭 풀겠다는 것이다. 만약 파견허용직종이 대폭 확대된다면 단순 사무, 생산직 및 소위 ‘주변’ 업무들은 빠른 속도로 파견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러한 주변적인 업무의 주대상층이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사무직과 생산직, 전통적인 판매 서비스직 등 전형적인 ‘여성직종’은 거의 파견직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파견근로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특히 불안정한 삶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파견 여성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 등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위법의 경우에도 그것을 제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성노동자에게 파견근로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현실에서, 여성들이 파견업체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을 막아내고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땅 비정규노동자 전체의 노동의 권리, 삶의 권리를 외쳐야만 한다. 또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시기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역할을 국가가 보조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다. 가족의 유지를 위한 재생산 노동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두고 그것을 보조하는 각종 법안들을 아무리 만들어보았자 여성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여성인력 활용방안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가능케 한다며 정책을 제출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은 그래서 필요하다.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은 여성들의 사회참여 확장과 권익 확보를 위한 기회가 결코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고 여성에 대한 이중부담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현실의 억압적 구조는 그대로 두고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여성들을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고 일을 해도 빈곤해지는 현실을 강화할 뿐이다. 실제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땅 대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은 이미 직장일과 가사일 두 가지 모두를 해오고 있다.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는 의무에서 자유로워본 적이 없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없었던 여성들에게, 신자유주의 정권의 여성정책은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출산휴가와 양육휴가 등이 아무리 버젓하게 존재할 지라도 가계의 부족한 소득을 메우기 위해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여성의 삶의 조건을 은폐하고 여성에 대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뷰 대상 A)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한다. 기업들이, 자본가들이 이용하지 않냐,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냐. 아무리 나라에서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준다고 해도 단기간의 것들은 소용이 없다. 장기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언제 짤릴지 모르고 불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일 하냐 항상 마음을 졸이고...” (인터뷰 대상 B) “다들 힘들게 돈벌러 왔기 때문에 서로를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얘가 안짤리면 내가 짤려야 하니까, 뇌물은 못 바쳐도 더 잘하는 척 하고 그러면서 저는 공장이 원래 이런 줄 알았거든요. 공장에서는 처음 일해서...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원래 그런 게 아니라 회사가 그렇게 만든 거라는 걸 알았죠. 조합이 안 생겼으면 평생 그런 줄 알고 살았을 꺼에요. 싸움이 길어지면서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이제 그만둬라, 당신이 가서 이제 사람에 대한 것 알고 그랬으니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이만큼 배웠으니 다른 것도 더 배워야겠지 않냐, 나는 아직도 노조활동해서, 싸워서 배울게 많으니까 더 해야겠다고.” 해고될까봐 불만이 있어도 한마디 못하고, 옆에 동료가 경쟁상대가 되고, 관리자에게 경쟁적으로 아부해야 했던 기륭노조 여성노동자들의 공장생활이 노조가 생기면서, 투쟁이 일구어지면서 변했다. 결국 여성들이 노동의 권리를 되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공장의 문을 넘고 가족의 영역을 넘는 전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기륭노조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쟁취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그녀들의 투쟁이, 목소리가, 요구가 공장문을 넘어서 더욱 크게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혁신하려면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어라" 전(前) 효성물산 노조위원장 김영미 씨는 증언대회를 마치며 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만이 희망이며, 이것이 노동자민중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민주노총의 혁신에서 관건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공장문을 넘어서 울려 퍼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민주노총이 귀를 기울여야만 모두의 승리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10월 14일의 증언대회 이후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 전세계 여성들과 함께 연대투쟁을 벌이기로 한 10월 17일에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연행되고 만다. 그녀들이 <여성행진>과 함께 구로지역 불법파견 실태 및 여성노동권 침해 사례에 대해 전세계 연대행동을 통해 널리 알려내기로 했던 바로 그 날에, 공권력은 다시 한번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의 권리, 투쟁의 권리를 앗아간 것이다.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보다 힘차게 지치지 않고 투쟁 중이다. 또한 증언대회 이후 민주노총은 강승규 비리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집행부 총사퇴를 하고 만다. 운동의 오류를 진정으로 평가하고 새롭게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투쟁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담겨있다. 공장의 담장을 넘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녀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데에서 혁신은, 승리는,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1) 기륭전자 조합원은 “체포영장을 받은 사람은 구타와 성희롱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는 회사 임원진의 말을 증언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전하며 몸서리쳤다. 본문으로 2)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과 <불법파견근절과 최저임금실현을 위한 서울남부공대위>는 올해 8월부터 9월 사이 약 30여 일 동안 서울의 대표적 첨단산업단지인 서울디지탈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내용을 분석하였다(「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의 구인형태를 통해서 본 비정규직 실태와 문제점」(2005.9.23) 참조 http://www.labordan.net/ 정책자료실 37번 자료). 조사는 비정규직 확산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조사대상 : 서울디지탈산업단지를 범위로 하는 생산직 사원 채용공고를 통해 총 96개 업체 1,279개 일자리. ■조사일시 : 2005. 8. 17. ~ 2005. 9. 16. (31일간) ■조사방법 : 조사원(18명)들이 위 기간동안 인터넷, 지역신문, 각종 구인광고 등을 통해 접수한 구인광고의 내용 및 직접 업체를 방문해 수집한 정보를 분석. 본문으로 3) 이번 증언대회를 위해 임OO(39세) 조합원과 심OO (41세) 조합원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실시했다. 각각 인터뷰 대상 A와 B로 명기한다. 본문으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례 “여러분들도 10대부터 일하셨죠?”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적나라한 현실을 알려내고 기륭전자 투쟁에 대한 연대를 촉구하고자 10월14일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불법파견 실태와 인권 침해사례 고발을 위한 증언대회’를 인권단체 사회권전략팀과 공동주최로 진행하였다. 이날 증언대회에 함께 한 구로동맹파업 당시 효성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김영미 씨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증언을 듣고 난 후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여성은 20여 년 전 구로에 있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20년 후의 모습이라고. 10대 때는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 혹은 남자형제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기계처럼 일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들쳐 메고 일을 했고,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 때쯤이면 또 일을 찾아 파견직,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기계처럼 일해 온 여성들의 삶, 이것이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라고. IMF 당시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어진 지금,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며, 임금은 남성의 63%, 노조가입률은 5.2% 불과하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며, 또한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조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역시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힘들게 일해 왔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옷은 갈아입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힘겹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어내고자 정당한 투쟁을 진행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악랄하게 탄압이 가해지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년 전과 어쩜 이리도 똑같나.” 상시적인 고용불안, 일과 가사노동 양립의 불가능 속에서 끊임없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절실한 요구였으며, 그렇게 절실하게 건설된 노동조합은 그녀들이 투쟁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사측의 탄압은 20여 년 전 구로동맹파업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사측의 탄압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물론이며 성폭력을 통해서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1) 김영미 효성물산 전 노조위원장은 "20년 전 우리가 파업하니까 여성노동자들 기숙사로 남자 구사대 두 명이 옷을 벗고 들어와서 제일 열심히 싸우던 친구들을 폐쇄된 장소로 끌고 가서 '빨래 아니면 나갈래.'라고 협박하는 등 그녀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며 “노동탄압 양상이 20년 전 구로지역에서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와 어쩜 이리도 똑같은가?”라고 개탄했다.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나날이 심각해지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 그리고 투쟁을 진행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여전한 탄압.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에게 집중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현실을 살펴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어떠한 투쟁이 필요한지에 대해 10월 14일 증언대회에서 이야기되었던 바는 다음과 같다. 1.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인 및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와 직결된다. 비서, 타자원 및 관련 사무원, 도서 우편 및 관련 사무원, 간병인, 조리사, 공중보건 영양사, 전화교환 사무원, 전화 외판원, 여행 안내요원, 그리고 대중유흥업소 무용수가 대부분인 연예직종 업무... 지난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로 허용된 파견업종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위 ‘여성직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제도나 다름없는 파견직으로 허용된 26개의 직종은 왜 하필 ‘여성직종’에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당시 파견업종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기에? 사실 파견업종 선정 과정에서 어떠한 일관된 기준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파견법 제정 이전부터 불법적 간접고용으로 사용되어 왔던 업무들을 합법파견으로 정당화시켜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98년 파견직의 확대 과정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거나 여성들이 집중 고용되어 있는 직종의 업무들을 대상으로 한 업무선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인과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와 직결된다. 기륭전자를 비롯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의 현황을 통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정규직은 꿈도 못 꾸죠. 계약직으로라도 전환시켜 준다기에 들어왔죠”_구직 및 취업 2005년 8월부터 9월 사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내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2) 조사기간 중 접할 수 있었던 1,278개의 일자리 중 정규직의 일자리 수는 전부 43개로 파악되었으며, 이는 전체 일자리의 3.4%를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반면 계약직은 306개(23.9%), 파견직은 930개(72.7%)로 집계되었다. 정규직을 제외한 계약직과 파견직을 비정규직으로 보았을 때, 동 기간동안 구직자에게 주어진 비정규직 일자리 수는 1,236개로 전체의 96.6%를 차지하는 비율이었고, 이는 같은 기간동안 제공된 정규직 일자리의 28배가 넘는 수치였다. 그리고 일자리를 성별로 구분한 결과 여성의 구인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여성에게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다는 긍정적 의미라기보다,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심화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의 구직 및 취업 현황은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성차별적이고 성별분업화된 현실을 반증한다. 전체 백분율을 기준으로 할 때, 1279개의 일자리 중 가장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는 “여성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로 0.5%의 확률이었으며, 이에 반해 가장 취업하기 수월한 경우는 “여성이 파견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로 57.1%의 확률이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도 파견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입사한 여성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파견업체 휴먼닷컴을 통해 파견직으로 기륭전자에서 일을 하고 일부가 계약직으로 일하는 상황이다. 2)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남자는 못 봤어요”_직종별 성별 고용형태 위의 조사가 생산직종에 국한되어 진행된 점을 고려했을 때, 중소규모 제조업의 사무직 또는 관리직에는 남성의 고용수요가 높은 반면 일반 생산직의 경우 여성에 대한 고용수요가 높은 사실이 드러난다. 생산직을 다시 세부직종별로 구분해 보면 조립검사업무에 가장 많은 비정규직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던 ‘조립검사’ 직종의 경우 남성을 선발하는 일자리는 183개(17.6%)에 불과하였던 반면 여성을 선발하는 일자리는 856개(82.4%)였다. 조립검사 일자리에서 남성을 선발하는 경우, 정규직이 선발될 가능성은 5.0%, 비정규직으로 선발될 가능성은 95%였다. 반면 같은 일자리에 여성을 선발하는 경우, 전체 조사대상 일자리 중 단 1개만이 여성을 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855개(99.9%)는 비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었다. 이는 생산직의 대표적 직종인 조립검사직종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선발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 그 심각성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로 인해 여성이 특정직종에 집중되고, 그러한 직종 자체가 비정규직화 됨에 따라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확대․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직업에 대한 보상이 낮게 책정된다면 성별 임금격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노동시장의 성별분업화는 비정규직의 여성화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빈곤의 여성화로 이어진다. 3) “‘아줌마 이빨 보이지 말아요!’라고 구박을 받아도 그냥 참았지. 안 짤리려면”_고용불안정 및 노동통제 <최저임금실현과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서울남부지역공동대책위원회>(이하 남부공대위)의 조사결과 명시적으로 계약기간을 밝힌 일자리 중 가장 많은 143개(11.9%)가 12개월(1년)의 계약기간을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인 952개(78.9%)의 일자리는 계약직이긴 하나 그 기간이 특정되어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잘 하면 계속 연장시켜 주겠다’고 고지하였으며, 이는 계약직의 애초 도입취지와는 달리 일시적 필요성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시고용의 필요성이 있는 업무에 이용되고, 나아가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 A) “이력서 쓰고 면담할 때 일년만 잘 하면 계약직 해준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기다렸죠.”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안나오면, 짤렸나보다 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일했어요. 사람을 많이 구해놓고 맘에 안 드는 사람을 짤라내는 식이에요. 일을 아무리 잘해도 관리자에게 밉보이면 짤리는 거예요.” (인터뷰 대상자 B)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맨날 짤리고 나도 언제 짤릴지 모르고 항상 불안에 떨면서 일한다. 오죽하면 ‘이놈의 전화기를 없애버려야겠다,’라는 말들도 한다. ‘전화를 없애버리자, 그러면 (해고)문자 안 받지 않겠냐.’라는 말도 쉬는 시간에 하고 그랬었다.” 기륭전자에서 일하는 파견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3)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던 부분은 재계약이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으로 작동하여 고용불안을 가중시킴으로써 노동통제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대다수가 여성노동자로 구성된 생산라인에서 진행되는 노동통제는 조직화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노동자의 현재적 특성을 백분 활용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잡담이 이유가 되어 해고될까봐 두려운 마음에, 노동의 과정에서 동료들과 대화조차 차단한 채 일해왔던 것이다. 나아가 여성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결혼과 출산 이후에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한 나이든 여성에 해당하는 현실에서, 나이든 여성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은 노동과정 전반에 걸쳐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나이도 많은 너희가 이곳 아니면 어딜 가느냐’ 라는 무시가 만연한 작업장에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알아서 싹싹하게 굴고, 잡담도 조심하고, 관리자에게 커피도 타다 바치고 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처럼 기륭전자를 비롯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여성노동자들은 구직 및 취업과정에서부터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성차별적이고 성별분업화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직종별 고용형태도 성별유형화되어 여성은 저임금의 직종에 편중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노동자들이 상시적인 고용불안정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노동통제의 강화로 연결되게 된다. 2.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기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고용율은 연령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특히 30대 여성의 고용율이 낮다는 것이 특징이다. 장지연, 「여성노동의 동향과 정책적 쟁점」, 한국노동연구원 여성노동정책 워크샵, 2005 이것은 자녀양육과 가사의 부담이 개별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을 반증한다. 또한 연령별 고용율의 패턴은, 출산과 양육 등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시기에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중단하였다가 재진입하는 양상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그리고 노동시장 재진입 시 여성들의 고용형태는 비정규직이 압도적이다. 자료 : 한국여성개발원 여성취업실태조사 4차(2001년) (***이미지 및 캡션 들어갈 자리!!) 이와 같은 생애주기에 따른 경력단절은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뷰 대상자 A) “결혼하면서 다니던 백화점 관두고 애들 낳고 나서 다시 일하러 나왔죠. 이제는 일을 할 나이잖아요. 애들 웬만큼 키워놓았고, 가정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나왔죠. 전자회사에 다니다가 회사가 서울에서 부천으로 이전하여서 그만두고 기륭으로 들어왔어요.” (인터뷰 대상자 B) “결혼 전에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결혼하고 애 낳은 후에 텔레마케터로 일하다가, 정보지에 나온 광고를 보고 공장에 들어오게 되었죠.” 여성노동자들은 임신, 출산, 영아보육, 육아보육, 방과 후 보육 등이 연속적으로 보장되어야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활동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시기에 노동시장에서의 단절이 극심하다. (인터뷰 대상자 A) “어린 아가씨들이나 결혼할 염려가 있는 아가씨들은 6개월, 결혼할 염려가 없는 아줌마들 같은 경우는 1년, 나이가 좀 찬 사람은 3개월.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어왔어요.” (인터뷰 대상자 B) "출산, 육아휴가요? 그건 우리 같은 파견직들은 생각도 못하죠. 아이가 아파도, 가족 장례식에도 휴가를 낼 수가 없는데요. 짤릴까봐.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휴가 못쓰고 외출로 잠깐 다녀온 정도예요. 어떤 사유든 휴가를 내거나 잔업, 특근을 거부하면 해고 0순위인데요. 아침마다 조회를 할 때, 조장이 노골적으로 말해요. 휴가내면 해고 0순위라고.." "생산직 정규직이 출산휴가를 냈다가 말이 많았어요. 9년인가 다니던 분인데, 그때는 파견직이 없었으니까 정규직으로 입사한 분이죠. 임신을 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휴가 처리가 안되었다고 다시 나오라고 해서 나왔대요. 그리고 얼마간 일하다가 다시 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출산휴가 다 쓰고 나면 계약직으로 일하라고 통보를 하더래요. 연구소는 상황이 나은 편인데도, 마찬가지라 들었어요. 연구소 정규직 중에도 출산휴가 쓰려다가 압력이 심해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있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서 출산과 육아휴가, 그리고 양육시설 등에 대한 질문은 그 자체가 배부른 소리나 다름없었다. 80시간에서 100시간에 달하는 잔업을 군말 없이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 속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산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 등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30대 중후반 이후 다시금 일을 하러 나온 여성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인터뷰 대상자 A) “갈 데가 없더라구요. 나이 많다고 받아주는 데가 있어야죠” 왜 파견업체를 찾아가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39살의 기륭전자 조합원은 나이가 많아서라는 이유를 댔다. 면접 때마다 35살 이상은 나이가 많아서 채용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파견노동자라는 불안정한 일자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해 여성들에게 비정규직이 적합한 고용형태이며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하게 된다는 지배적인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알려준다. (인터뷰 대상자 A) "우리가 원래는 격주 휴무인데 쉬어본 적이 없네요. 기본 잔업시간이 한 달에 아무리 못해도 70시간, 많게는 100시간 가까이 해요. 기본급이 63만 3천원이니까, 90시간 넘겨 잔업을 해야지 받아 가는 돈이 100만원 가까이 되요.” (인터뷰 대상자 B) "8시에 근무 끝나면, 이것저것 정리하면 8시 반. 공장 나와서 집에 가면 9시가 넘어요. 애들 공부 봐주는 건 생각도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서 저녁준비까지 해놓으랴 정신 없죠. 일 마치면 거의 12시정도 되요. 저는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언니들은 5시정도 일어나야 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현시기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선택이 결코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며,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에서 해고되지 않고 생계를 위한 벌이를 하기 위해서 잔업과 특근을 마다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장시간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가사노동의 1차적 책임자로 규정되어 있기에, 결국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은 출혈판매를 통해 직장과 가정을 유지해가고 있는 셈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및 기능과 별개로 사고되기 어렵다.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의존하여 가족이 유지되는 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에서 위기에 몰린 가정에 대한 책임이 일방적으로, 또한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한,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른 노동시장 퇴출 현상은 변함 없을 것이다. 또한 여성이 노동시장 재진입시 필연적으로 비정규직이 되는 현실 역시 변함 없을 것이다. 3. 공장문을 넘어서, 가족의 영역을 넘어서,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 필요하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 바대로 노동의 영역 전반에 걸친 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여성에게 집중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현상 및 원인을 드러내기 어렵다. 또한 가족 및 사회 영역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지 않는 상태에서 여성노동권 쟁취란 요원(遼遠)한 일일뿐이다. 그렇다면 현시기 해결되어야 하는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파견법 시행 이후 6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파견근로 허용대상 직종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6개 직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일명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에서 제한 직종만을 명시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변경, 규제를 대폭 풀겠다는 것이다. 만약 파견허용직종이 대폭 확대된다면 단순 사무, 생산직 및 소위 ‘주변’ 업무들은 빠른 속도로 파견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러한 주변적인 업무의 주대상층이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사무직과 생산직, 전통적인 판매 서비스직 등 전형적인 ‘여성직종’은 거의 파견직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파견근로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특히 불안정한 삶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파견 여성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 등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위법의 경우에도 그것을 제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성노동자에게 파견근로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현실에서, 여성들이 파견업체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을 막아내고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땅 비정규노동자 전체의 노동의 권리, 삶의 권리를 외쳐야만 한다. 또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시기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역할을 국가가 보조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다. 가족의 유지를 위한 재생산 노동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두고 그것을 보조하는 각종 법안들을 아무리 만들어보았자 여성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여성인력 활용방안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가능케 한다며 정책을 제출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은 그래서 필요하다.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은 여성들의 사회참여 확장과 권익 확보를 위한 기회가 결코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고 여성에 대한 이중부담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현실의 억압적 구조는 그대로 두고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여성들을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고 일을 해도 빈곤해지는 현실을 강화할 뿐이다. 실제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땅 대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은 이미 직장일과 가사일 두 가지 모두를 해오고 있다.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는 의무에서 자유로워본 적이 없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없었던 여성들에게, 신자유주의 정권의 여성정책은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출산휴가와 양육휴가 등이 아무리 버젓하게 존재할 지라도 가계의 부족한 소득을 메우기 위해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여성의 삶의 조건을 은폐하고 여성에 대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뷰 대상 A)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한다. 기업들이, 자본가들이 이용하지 않냐,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냐. 아무리 나라에서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준다고 해도 단기간의 것들은 소용이 없다. 장기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언제 짤릴지 모르고 불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일 하냐 항상 마음을 졸이고...” (인터뷰 대상 B) “다들 힘들게 돈벌러 왔기 때문에 서로를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얘가 안짤리면 내가 짤려야 하니까, 뇌물은 못 바쳐도 더 잘하는 척 하고 그러면서 저는 공장이 원래 이런 줄 알았거든요. 공장에서는 처음 일해서...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원래 그런 게 아니라 회사가 그렇게 만든 거라는 걸 알았죠. 조합이 안 생겼으면 평생 그런 줄 알고 살았을 꺼에요. 싸움이 길어지면서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이제 그만둬라, 당신이 가서 이제 사람에 대한 것 알고 그랬으니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이만큼 배웠으니 다른 것도 더 배워야겠지 않냐, 나는 아직도 노조활동해서, 싸워서 배울게 많으니까 더 해야겠다고.” 해고될까봐 불만이 있어도 한마디 못하고, 옆에 동료가 경쟁상대가 되고, 관리자에게 경쟁적으로 아부해야 했던 기륭노조 여성노동자들의 공장생활이 노조가 생기면서, 투쟁이 일구어지면서 변했다. 결국 여성들이 노동의 권리를 되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공장의 문을 넘고 가족의 영역을 넘는 전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기륭노조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쟁취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그녀들의 투쟁이, 목소리가, 요구가 공장문을 넘어서 더욱 크게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혁신하려면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어라" 전(前) 효성물산 노조위원장 김영미 씨는 증언대회를 마치며 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만이 희망이며, 이것이 노동자민중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민주노총의 혁신에서 관건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공장문을 넘어서 울려 퍼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민주노총이 귀를 기울여야만 모두의 승리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10월 14일의 증언대회 이후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 전세계 여성들과 함께 연대투쟁을 벌이기로 한 10월 17일에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연행되고 만다. 그녀들이 <여성행진>과 함께 구로지역 불법파견 실태 및 여성노동권 침해 사례에 대해 전세계 연대행동을 통해 널리 알려내기로 했던 바로 그 날에, 공권력은 다시 한번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의 권리, 투쟁의 권리를 앗아간 것이다.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보다 힘차게 지치지 않고 투쟁 중이다. 또한 증언대회 이후 민주노총은 강승규 비리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집행부 총사퇴를 하고 만다. 운동의 오류를 진정으로 평가하고 새롭게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투쟁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담겨있다. 공장의 담장을 넘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녀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데에서 혁신은, 승리는,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1) 기륭전자 조합원은 “체포영장을 받은 사람은 구타와 성희롱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는 회사 임원진의 말을 증언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전하며 몸서리쳤다. 본문으로 2)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과 <불법파견근절과 최저임금실현을 위한 서울남부공대위>는 올해 8월부터 9월 사이 약 30여 일 동안 서울의 대표적 첨단산업단지인 서울디지탈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내용을 분석하였다(「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의 구인형태를 통해서 본 비정규직 실태와 문제점」(2005.9.23) 참조 http://www.labordan.net/ 정책자료실 37번 자료). 조사는 비정규직 확산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조사대상 : 서울디지탈산업단지를 범위로 하는 생산직 사원 채용공고를 통해 총 96개 업체 1,279개 일자리. ■조사일시 : 2005. 8. 17. ~ 2005. 9. 16. (31일간) ■조사방법 : 조사원(18명)들이 위 기간동안 인터넷, 지역신문, 각종 구인광고 등을 통해 접수한 구인광고의 내용 및 직접 업체를 방문해 수집한 정보를 분석. 본문으로 3) 이번 증언대회를 위해 임OO(39세) 조합원과 심OO (41세) 조합원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실시했다. 각각 인터뷰 대상 A와 B로 명기한다. 본문으로
유럽사회포럼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또다른 유럽은 가능한가?'
[편집자주] 책 속의 책, ‘노동자 사회운동의 전망’ 기획을 마치며
유럽사회포럼을 중심으로 유럽의 사회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현황을 소개하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노동자 사회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담는 기획은 일단 마무리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노동자 사회운동의 전망과 세계 각지의 노동자 사회운동을 소개한다는 애초의 기획이 얼마나 충실하게 달성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노동자 사회운동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 새로운 운동은 전통적인 좌파정당 외부에서 출현했고, 기존의 노동조합을 사회운동의 기관으로 변화시키려는 공통의 특질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운동은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확대된 국가’로서 비정부기구(NGO)와도 구별된다. 이 운동들은 자율적·민주적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민족국가를 강화함으로써 기존의 제도를 방어하려는 코퍼러티즘적 노동자운동과 달리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대안세계화를 자신의 이념으로 한다.
이번 호에 싣는 글은 2002년 피렌체 유럽사회포럼에서 공식 노조와 독립 노조들이 참여하면서 노동자운동과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전략과 실천 상의 접점을 찾으려는 상호 노력을 보여주었으나 2003년 파리 포럼에서는 이러한 기대가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객관적인 조건도 노동자운동과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수렴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일 듯하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 원인을 깊이 파헤치지 않지만, 공식 노조의 삼자합의주의(코퍼러티즘)와 새로운 사회운동의 대안적 전망은 (저자가 양자의 조정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던 것과는 달리) 근본적 불일치를 낳고 있다. 한편 이 글이 작성된 후 유럽헌법조약 비준을 둘러싸고 진행된 유럽사회운동의 대응에 대해서는 정지영, 「유럽통합의 본질과 유럽헌법조약 반대캠페인」, 『사회진보연대』 54호(2005.5)를 참조하고, 이 글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유럽의 사회운동을 평가하는 글로는 박정미, 「유럽의 인민주의」, pp.100~106, 『인민주의 비판』, 공감, 2005을 참고하라.
본 글은 Andreas Bieler·Adam David Morton, 'Another Europe is Possible'?: Labour and Social Movements at the European Social Forum, Globalizations, December 2004, Vol. 1, No. 2, pp.305-27을 번역한 것이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참고자료는 『사회운동』 웹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기획 번역된 목록을 덧붙인다.
① 워터만, 「새로운 지구적 운동의 국제적 노조주의에 대한 도전에 따른 해방적 노동전략 탐색」, 『사회진보연대』, 2005년 1-2월, 3-4월
② 히르쉬, 「NGO, 국가의 새로운 외피」, 『사회운동』 2005년 5월, 6월
③ 로만·아레구이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변형, 노동자계급의 대응」, 『사회운동』, 2005년 7-8월
④ 페트라스·하딩, 「남미 좌파운동의 세 번째 물결」, 『사회운동』, 2005년 9월
⑤ 빌러·모턴, 「유럽사회포럼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이번 호)
요약: 2002년 11월 6일부터 10일까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1차 유럽사회포럼(ESF)에는 다양한 대열의 이른바 ‘반자본주의’ 운동들이 결집했다. 여기에는 유럽통합 과정 안팎에서 출현한 신자유주의 의제에 반대하려는 [전통적] 노동조합, 새롭게 출현한 급진적 노동조합, 그리고 사회운동들이 포함되었다. 이 글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공동 전략을 형성하는 데 있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협력가능성과 유럽사회포럼의 의미를 평가한다. 기존 노동조합이 사회운동의 직접행동에 기초한 저항이 보여주는 더욱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실천에 방해가 된다는 식의 주장이 증명되기보다는, 종종 가정된다. 이 글에서는 상세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사회운동적 반대파의 종종 [전통적 노조와] 상반되는 감수성에 초점을 두는 유럽사회포럼에서 노조 활동의 개량주의적 실천들이 지속되는지 여부를 평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유럽사회포럼에서 벌어지는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의 활동들과 공동전략들,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이라크전쟁에서 증명된 바 있는 군사력을 통한 궁극적인 경제외적 강제에 대한 저항 모두를 살펴볼 것이다. 장래 협력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에 대해 결론을 맺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저항의 지평이 단지 유럽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유럽사회포럼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또다른 유럽은 가능한가?'
[편집자주] 책 속의 책, ‘노동자 사회운동의 전망’ 기획을 마치며
유럽사회포럼을 중심으로 유럽의 사회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현황을 소개하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노동자 사회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담는 기획은 일단 마무리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노동자 사회운동의 전망과 세계 각지의 노동자 사회운동을 소개한다는 애초의 기획이 얼마나 충실하게 달성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노동자 사회운동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 새로운 운동은 전통적인 좌파정당 외부에서 출현했고, 기존의 노동조합을 사회운동의 기관으로 변화시키려는 공통의 특질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운동은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확대된 국가’로서 비정부기구(NGO)와도 구별된다. 이 운동들은 자율적·민주적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민족국가를 강화함으로써 기존의 제도를 방어하려는 코퍼러티즘적 노동자운동과 달리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대안세계화를 자신의 이념으로 한다.
이번 호에 싣는 글은 2002년 피렌체 유럽사회포럼에서 공식 노조와 독립 노조들이 참여하면서 노동자운동과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전략과 실천 상의 접점을 찾으려는 상호 노력을 보여주었으나 2003년 파리 포럼에서는 이러한 기대가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객관적인 조건도 노동자운동과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수렴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일 듯하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 원인을 깊이 파헤치지 않지만, 공식 노조의 삼자합의주의(코퍼러티즘)와 새로운 사회운동의 대안적 전망은 (저자가 양자의 조정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던 것과는 달리) 근본적 불일치를 낳고 있다. 한편 이 글이 작성된 후 유럽헌법조약 비준을 둘러싸고 진행된 유럽사회운동의 대응에 대해서는 정지영, 「유럽통합의 본질과 유럽헌법조약 반대캠페인」, 『사회진보연대』 54호(2005.5)를 참조하고, 이 글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유럽의 사회운동을 평가하는 글로는 박정미, 「유럽의 인민주의」, pp.100~106, 『인민주의 비판』, 공감, 2005을 참고하라.
본 글은 Andreas Bieler·Adam David Morton, 'Another Europe is Possible'?: Labour and Social Movements at the European Social Forum, Globalizations, December 2004, Vol. 1, No. 2, pp.305-27을 번역한 것이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참고자료는 『사회운동』 웹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기획 번역된 목록을 덧붙인다.
① 워터만, 「새로운 지구적 운동의 국제적 노조주의에 대한 도전에 따른 해방적 노동전략 탐색」, 『사회진보연대』, 2005년 1-2월, 3-4월
② 히르쉬, 「NGO, 국가의 새로운 외피」, 『사회운동』 2005년 5월, 6월
③ 로만·아레구이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변형, 노동자계급의 대응」, 『사회운동』, 2005년 7-8월
④ 페트라스·하딩, 「남미 좌파운동의 세 번째 물결」, 『사회운동』, 2005년 9월
⑤ 빌러·모턴, 「유럽사회포럼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이번 호)
요약: 2002년 11월 6일부터 10일까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1차 유럽사회포럼(ESF)에는 다양한 대열의 이른바 ‘반자본주의’ 운동들이 결집했다. 여기에는 유럽통합 과정 안팎에서 출현한 신자유주의 의제에 반대하려는 [전통적] 노동조합, 새롭게 출현한 급진적 노동조합, 그리고 사회운동들이 포함되었다. 이 글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공동 전략을 형성하는 데 있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협력가능성과 유럽사회포럼의 의미를 평가한다. 기존 노동조합이 사회운동의 직접행동에 기초한 저항이 보여주는 더욱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실천에 방해가 된다는 식의 주장이 증명되기보다는, 종종 가정된다. 이 글에서는 상세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사회운동적 반대파의 종종 [전통적 노조와] 상반되는 감수성에 초점을 두는 유럽사회포럼에서 노조 활동의 개량주의적 실천들이 지속되는지 여부를 평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유럽사회포럼에서 벌어지는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의 활동들과 공동전략들,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이라크전쟁에서 증명된 바 있는 군사력을 통한 궁극적인 경제외적 강제에 대한 저항 모두를 살펴볼 것이다. 장래 협력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에 대해 결론을 맺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저항의 지평이 단지 유럽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