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이 남긴 것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1년 동안 어느 때보다 성매매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논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논쟁은 성매매의 원인이 무엇인지, 성매매 여성들의 성노동자로서 조직과 권리주장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운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보다는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반 구도에 갇혀서 진행되었다. 이런 논쟁에서 성매매를 법적으로 처벌함으로써 근절할 수 있다는 입장에 반대하는 것은 성매매 존재를 그대로 찬성하는 것으로 오도되기도 했다. 성매매를 금지·규제할 수 있는 법률의 존재 자체가 성매매를 근절하는 것도 아닌데, 성매매에 대한 담론은 주로 법 개정 시도와 그 연관성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역설적인 결과는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요구를 통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제정했다는 성매매방지법을 비판했고, 이것이 성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글은 성노동/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돌아보며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을 그 의미를 중심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성과는 무엇인가 성매매는 여성의 빈곤, 여성 노동의 현실, 성의 상품화, 가족 제도 하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의 성욕과 같이 여성 일반이 겪는 문제들이 중첩되어 드러나는 복잡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런 인식 하에서 성매매 비범죄화는 성매매가 개별행위자들의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근절될 수 있다는 현재의 금지주의 관점을 비판하고, 사회구조적인 지배, 착취, 폭력의 문제로 쟁점을 확대하면서 성노동자들의 주체화와 조직화의 가능성을 열고자 하는 주장이다. 특히 금지주의는 ‘근절’이라는 이름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화’하게 된다. 결국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라는 동일성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성노동자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구제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대상화”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금지주의 관점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에 조직된 성노동자 존재와 요구를 무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금지주의 태도를 취해왔던 여성운동의 입장은 법집행을 통해 성매매를 관리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고를 전제하기 때문에 국가의 법집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역할을 스스로 ‘법의 철저한 집행과 경찰의 단속강화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것에 제한하고 가족강화와 같은 보수주의적 반격에 취약해지게 된다. 성매매방지법은 ‘건강가족’보호법인가?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여성가족부가 진행하고 있는 화이트 타이 캠페인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위해 제정했다는 성매매방지법의 취지에도 무색할 만큼 퇴행적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상대와 최선을 다해 관계를 하자는 것”이라며 “성매매에는 배우자에 대한 배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는 가족 밖의 성관계에 대한 보수주의적 관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성가족부는 올해부터 시행된 건강가족기본법의 주무부처이기도 하다(그래서 여성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건강가족기본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가정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며, 모든 국민은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할 의무가 있다. 이는 가족해체와 저출산이 국가 위기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발상과 같다. 국가는 이를 위해 가정을 ‘음란물, 유흥가, 폭력 등 위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건강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위해환경인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들)를 근절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족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경제위기로 인한 가족해체의 위기비용을 가족 내 여성에게 전담하려는 시도이자, 가족제도 바깥의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강력한 시행을 요구할 뿐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들은 어디로 갔는가?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가장 큰 성과를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킨 것”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가 범죄로 처벌되는 동안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과 거대한 성산업의 이중적 착취 구조는 개선되었는가? 이들은 성매매 집결지에서 업소와 성매매 여성들이 절반으로 준 것을 성산업의 감소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눈에 잘 보이는 집결지를 집중 단속한 결과일 뿐이다. 집중 단속으로 인해 위협받는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은 “산업구조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 정도로 무시된다. 부산과 인천 집결지 시범사업의 성과를 탈성매매율이 아닌 탈업소율(35%)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집결지 규모가 줄었지만 음성화된 성산업은 늘었다는 사실은 탈업소율 뒤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폭로한다. 여성노동자들 대다수가 현재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집결지를 떠난 여성들은 다시 법망을 벗어난 음성화된 성매매 공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또한 많은 여성들이 성산업으로 새롭게 유입되게 될 것이다. 성매매방지법은 경제적 빈곤으로 성노동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전혀 바꾸어내지 못할 뿐더러 성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과 착취, (음성화 과정에서 나타나는)인권 유린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 이렇듯 성매매방지법과 같은 금지주의는 음성화를 동반하는데 법의 테두리 밖에서 성매매를 양산하는 범죄 조직, 그와 결탁한 경찰을 만들어냄으로써 음성적 성매매를 가능케 하는 구조를 양산한다. 여기서 음성화는 단지 성매매 업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단속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들을 불법적인 지위로 내몰아 착취와 폭력에 더욱 취약하게 하고 성노동을 전업화하는 것이 바로 음성화의 진정한 문제다. 지역재개발 사업을 위한 자활정책? 또한 집결지 폐쇄정책을 추진하는 방법과 의도에도 문제가 있다. 집결지 폐쇄계획이 지역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서울시의 경우, 성매매방지대책은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이후 강남·북 균형발전사업의 일환으로 뉴타운사업, 균형발전촉진지구사업 등 도시재개발이 본격 추진되고 개발 대상지역 중 한곳인 성북구 하월곡동(속칭 ‘미아리’)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자활지원문제가 현안문제로 부상하면서부터 추진되었다.1) <다시함께센터>는 이렇게 마련된 서울시의 성매매종합방지대책에 따라 서울특별시의 위탁을 받아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가 운영하는 민·관 연합기구로 2003년 9월 1일 개소하게 되었다. 서울시의 집결지 자활지원 사업은 재개발을 위한 지역철거사업 비용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여성가족부는 이를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하면서 지난 8월 31일 2005년 집결지 시범사업을 9개 지역으로 확대할 것이며, 그 추진방안으로 관할 지자체 및 경찰서 등 관계기관과의 협력체계 구축, 단속 및 지역개발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효과적인 집결지 정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2) 성매매방지법은 2004년 3월 22일 국회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지만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성 이유는 단일하지 않다. 지역재개발을 위해서,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 판단에 의해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등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이런 상황에서 성매매방지법 추진을 주도한 여성운동은 법과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대신해서 법과 제도를 시행하고, 운동의 비판능력과 역동성을 잃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자기비판해야 한다. 법의 취지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는 성매매방지법이 구매자, 알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의 ‘보호와 자립’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 윤락행위방지법이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윤락행위로 성매매를 규정하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을 중심으로 이를 방지하려고 했던 것에 비해 그 목적과 취지가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 진일보한 법의 취지는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바로 경찰의 단속강화를 통해서였다. 경찰의 단속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집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시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시위는 성매매방지법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성매매방지법은 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성산업에 유입되는지, 성산업이 자그마치 24조원(GDP 4%)에 이르도록 거대해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성매매 근절이 구매자, 포주, (예외를 두더라도)성매매 여성을 처벌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발상은 성매매 문제를 개별 당사자들의 문제로 한정해서 바라보는 것을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성노동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성노동자들의 요구를 드러내고, 성매매 현장의 구체적인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기 보다는 성매매 여성들은 구출되어야 하는 희생자로서만 이해되고, 성매매 현장은 폐쇄되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는 성매매 현장이 여성들의 일터이고 숙소라는 점, 우리가 성매매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 빈곤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는 점을 알려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고 법률을 통해 처벌하는 동안, 성매매 여성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이야기 할 수 없는 무권리의 상태에서 더 극단적인 폭력의 현실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를 촉매제로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반 구도 속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투쟁을 했던 성매매 여성들은 또 다른 낙인을 경험했다. 똑같이 주장을 하고 시위를 하더라도, 하나의 목소리로 인정되고 있지 않은 현실을 경험하고 나서, 그녀들은 자신들을 노동자로 조직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성노동자 조직의 출범 배경이었다. 이제 성노동자들은 자치조직을 결성하고, 경찰의 단속과 비안간적 대우에 공동으로 저항하고, 업주와 노사협의를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성노동자들의 권리와 요구를 작성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성매매방지법의 가장 역설적인 결과이다.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 출범의 의미3)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얻은 임금을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행법과 다소 충돌하기는 해도 노동자가 분명합니다. 단지 성적서비스업에 종사할 따름이지요. 우리가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노동자 신분일 때 비로소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 저희 성노동자들은 단언합니다. 성노동자 운동은 빈민운동이며 사회변혁운동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오명에 시달려온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인간선언입니다.”4) 개인의 인간·시민·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권리는 그들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을 하는지 아닌지를 조건으로 할 수 없다. 즉 인간이기 때문에 (노동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노동자들은 그동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는 도덕적 단죄로 다른 노동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낙인을 경험해왔다. 성노동자 규정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동일성을 부여하고 권리의 주체가 되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러나 성노동자로서의 선언이 즉각적으로 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합법적으로 성노동자를 인정하고 각종 사회보장 체계를 이용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성노동자들은 합법적 등록을 꺼리고 있다. 아마도 결혼이나 전업 시에 부당한 차별이나 심리적 위축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성매매 문제는 복합적이고, 성노동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현실도 그만큼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돼서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을 깨달아가면서 스스로 요구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이것이 성노동자로서 권리 선언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예를 들어, 민주성노동자연대 경우 12대 강령에서 “성노동과 탈성노동에 관한 것은 성노동자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자활정책이 경제적 빈곤의 문제, 성차별적 노동시장,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현재 합법적 형태로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성노동자들이 자치조직을 결성한 것은 여성단체가 성매매방지법의 성과로 이야기하는 탈업소(탈성매매)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성노동자들은 자기 권리를 인식하고 집단적인 힘을 가지게 되면서 성매매방지법 이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단속·조사 시 빈번했던 경찰관들의 폭언과 차별적 대우에 저항하여 정당하게 다루어질 권리를 획득하였다.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는 그동안 범죄자의 신분 때문에 자신의 존재와 요구를 드러낼 수 없었던 성매매 당사자들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운동이며 새로운 여성운동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은 이미 여성운동의 많은 것을 바꾼 운동이다. 성노동/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므로 노동이 될 수 없다. 급진주의 페미니즘 이론에서 남녀간의 모든 관계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유지하려는 집단적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초역사적인) 가부장제의 속성이다. 이른바 가부장제·남성지배적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폭력의 역할에 이론적 중요성이 부여되었다. ‘모든 여성’을 ‘모든 남성’의 희생자로 동일화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은 결국 이성애적 관계를 단절하거나, 남성성욕을 통제하는 전략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이론에서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이며, 성매매에서 자발이나 동의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성매매방지법과 같은 단일 이슈 중심의 투쟁은 억압과 폭력의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결여할 뿐만 아니라 사법체계에 대한 호소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기보다는 보호받아야 할 ‘정조’라는 통념에 의존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입장은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남아있게 되는 구조5)’를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성매매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결국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라는 동일성으로 규정하게 되면 그들은 구제하고 보호받아야 할 법·정책 시행의 대상이 될 뿐, 권리주체로서 성노동자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즉, 성매매를 하지 않을 권리가 아닌 성노동을 지속할 것을 주장하는 성노동자의 주체성을 무시하게 된다. 이처럼 성매매를 강간과 동일시하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나쁜여성-착한여성’이라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내면화하면서 가지게 되는 공포에 기인한다. 이런 입장은 성노동자들이 성노동 현장에서 경험하는 폭력의 구체적인 현실을 인식할 수 없게 하는 한계가 있다. 성노동이라 하면 성상품화를 인정하고, 성매매를 유지 온존 시키자는 것이냐. 성노동과 가사노동을 유비해보자. 가사노동이라는 말은 여성이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해서 가족 내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어떤 일을 수행한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의 이런 부불노동을 존치시키자는 주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매매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성매매를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를 존치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노동이 전통적 여성의 역할과 가부장적 제도와 연결되어 있을지라도, 이러한 여성의 노동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이 노동이 만연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이것이 여성의 이익 속에서 전화되는 것을 촉진하는 것이다. 노동력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분석, 투쟁하면서 그런 현실을 지양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투쟁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런 현실을 지양할 수 있기 위해선 성노동자가 스스로 조직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성노동자 주장과 성매매 비범죄화는 결국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냐 사회진보연대는 성매매 여성들의 권리는 성매매 근절을 위한 형법을 통해 범죄의 피해자로 보호되거나, 범죄자로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법의 적용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므로, 성매매에 대한 형법적 처벌(을 통한 해법)을 반대하면서 성매매 비범죄화를 제기해왔다. 이는 빈곤에 저항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형성과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개조와 동시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장기적인 운동 전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범죄주의는 성매매라는 행위 자체를 법적으로 규제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성매매를 범죄로서 금지하든 일정한 허용 범위에서 합법화하기 위해 규제하든 법률은 성매매가 발생·온존되는 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범죄화가 성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출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상에서 합법적 규제주의와 별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합법화로 이해된다. 합법적 규제주의는 특정 공간에서만 성매매가 허용되고 그 외의 공간에서는 성매매가 불법화된다. 이는 남성들이 합법적으로 성을 살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자 국가가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했던 한 형태이다. 성매매 자체를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법률은 성매매 여성의 권리를 제약한다. 모든 성매매 여성이 범죄자의 신분이 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측면에서 비범죄화는 의의를 지닌다. 우리는 왜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하는가 성노동자 운동의 출현과 성노동/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논쟁이 아니다. 시간차를 두고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를 표명하는 단체들이 만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도 성매매에 대한 격한 논쟁이 존재한다. 그러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분석과 관점은 공유되고 있다. 하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현재의 유래 없는 성산업 규모의 확장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키는 구조에 맞선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장소를 가족으로 한정하면서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가치절하와 불인정을 유지하는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한 비판의 중요성이다. 따라서 현재의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 특히 성노동자(성매매 여성)의 권리 보장과 이를 위해 조직화할 권리의 옹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에서의 논쟁과 여성운동의 방향에 있어 커다란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이 여성억압(빈곤과 폭력) 구조에 대한 분석을 심화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현실에서 구조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 성노동자를 포함한 여성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와 투쟁이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여성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착취의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그것은 성매매를 반대하는 법이 아니라 그녀들에 대한 학대에 반대하는 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의 인권이 언제나 모든 곳에서 존중되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착취와 성차별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생존력을 존중하고 그러한 착취와 차별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도록 성노동자와 연대할 의무가 있다. 1) 다시함께센터 개소 2주년 기념 자료집, 이기영 서울 여성정책담당관 여성복지팀장 글. 본문으로 2) 2005년 8월 31일 여성가족부 보도자료 본문으로 3) 1997년 인도 캘커타에서 개최한 ‘1차 전국 성노동자회의’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동에 두 가지 주요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투쟁 그 자체에서 제기되는 젠더, 빈곤과 섹슈얼리티의 이슈 전반에 관하여 토론하고 정의를 내리고 또 재정의하는 일이다. “두바르협력위원회에서의 우리의 경험은 주변적 세력이 작은 성과나마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물질적, 상징적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은 지속되어야 한다. 둘째, 지배 이데올로기의 지원 하에 우리에게 행해지는 일상적인 억압과 당장,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면하고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의 조건과 우리 삶의 물질적 질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노력, 즉 성산업 자체에 대한 통제권을 성노동자들이 획득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이미 시작했다. 오늘날 대도시, 소도시, 그리고 촌락의 많은 홍등가에서 우리 성노동자들은 연대와 집단적 힘을 형성하기 위해 보다 광범위한 매매춘 여성들의 공동체 속에서 자체적인 모임을 조직화하기에 이르렀고, 매매춘 여성으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우리 스스로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성매매 노동자 선언문」, 『여성적 사고·지구적 저항』, 2001. 본문으로 4) 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 「7.3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에 참가하면서」중 본문으로 5) 여성에 대한 폭력이 몇몇 가시적인 사건들로 국한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여성 억압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측면들이 곧 성폭력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여성 억압을 지속시키는 제도 및 관행, 실천들이 모두 성폭력이고, 그것의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강간일 것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여성성에 대한 다양한 표상들, 성관계에서의 동의 여부에 관한 여성의 진술에 대한 철저한 무시, 여성의 역할을 재생산 노동으로 한정시키고 그것의 가치조차 부정하는 역사적 가족형태 등은 여성의 육체적·정신적 고유성을 위협하므로 광의의 성폭력에 해당한다. 따라서 성폭력은 여성의 배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현실적·상징적 구조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정인경, 「성폭력과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공감, 2003) 본문으로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이 남긴 것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1년 동안 어느 때보다 성매매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논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논쟁은 성매매의 원인이 무엇인지, 성매매 여성들의 성노동자로서 조직과 권리주장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운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보다는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반 구도에 갇혀서 진행되었다. 이런 논쟁에서 성매매를 법적으로 처벌함으로써 근절할 수 있다는 입장에 반대하는 것은 성매매 존재를 그대로 찬성하는 것으로 오도되기도 했다. 성매매를 금지·규제할 수 있는 법률의 존재 자체가 성매매를 근절하는 것도 아닌데, 성매매에 대한 담론은 주로 법 개정 시도와 그 연관성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역설적인 결과는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요구를 통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제정했다는 성매매방지법을 비판했고, 이것이 성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글은 성노동/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돌아보며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을 그 의미를 중심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성과는 무엇인가 성매매는 여성의 빈곤, 여성 노동의 현실, 성의 상품화, 가족 제도 하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의 성욕과 같이 여성 일반이 겪는 문제들이 중첩되어 드러나는 복잡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런 인식 하에서 성매매 비범죄화는 성매매가 개별행위자들의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근절될 수 있다는 현재의 금지주의 관점을 비판하고, 사회구조적인 지배, 착취, 폭력의 문제로 쟁점을 확대하면서 성노동자들의 주체화와 조직화의 가능성을 열고자 하는 주장이다. 특히 금지주의는 ‘근절’이라는 이름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화’하게 된다. 결국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라는 동일성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성노동자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구제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대상화”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금지주의 관점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에 조직된 성노동자 존재와 요구를 무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금지주의 태도를 취해왔던 여성운동의 입장은 법집행을 통해 성매매를 관리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고를 전제하기 때문에 국가의 법집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역할을 스스로 ‘법의 철저한 집행과 경찰의 단속강화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것에 제한하고 가족강화와 같은 보수주의적 반격에 취약해지게 된다. 성매매방지법은 ‘건강가족’보호법인가?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여성가족부가 진행하고 있는 화이트 타이 캠페인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위해 제정했다는 성매매방지법의 취지에도 무색할 만큼 퇴행적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상대와 최선을 다해 관계를 하자는 것”이라며 “성매매에는 배우자에 대한 배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는 가족 밖의 성관계에 대한 보수주의적 관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성가족부는 올해부터 시행된 건강가족기본법의 주무부처이기도 하다(그래서 여성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건강가족기본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가정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며, 모든 국민은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할 의무가 있다. 이는 가족해체와 저출산이 국가 위기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발상과 같다. 국가는 이를 위해 가정을 ‘음란물, 유흥가, 폭력 등 위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건강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위해환경인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들)를 근절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족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경제위기로 인한 가족해체의 위기비용을 가족 내 여성에게 전담하려는 시도이자, 가족제도 바깥의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강력한 시행을 요구할 뿐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들은 어디로 갔는가?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가장 큰 성과를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킨 것”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가 범죄로 처벌되는 동안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과 거대한 성산업의 이중적 착취 구조는 개선되었는가? 이들은 성매매 집결지에서 업소와 성매매 여성들이 절반으로 준 것을 성산업의 감소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눈에 잘 보이는 집결지를 집중 단속한 결과일 뿐이다. 집중 단속으로 인해 위협받는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은 “산업구조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 정도로 무시된다. 부산과 인천 집결지 시범사업의 성과를 탈성매매율이 아닌 탈업소율(35%)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집결지 규모가 줄었지만 음성화된 성산업은 늘었다는 사실은 탈업소율 뒤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폭로한다. 여성노동자들 대다수가 현재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집결지를 떠난 여성들은 다시 법망을 벗어난 음성화된 성매매 공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또한 많은 여성들이 성산업으로 새롭게 유입되게 될 것이다. 성매매방지법은 경제적 빈곤으로 성노동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전혀 바꾸어내지 못할 뿐더러 성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과 착취, (음성화 과정에서 나타나는)인권 유린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 이렇듯 성매매방지법과 같은 금지주의는 음성화를 동반하는데 법의 테두리 밖에서 성매매를 양산하는 범죄 조직, 그와 결탁한 경찰을 만들어냄으로써 음성적 성매매를 가능케 하는 구조를 양산한다. 여기서 음성화는 단지 성매매 업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단속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들을 불법적인 지위로 내몰아 착취와 폭력에 더욱 취약하게 하고 성노동을 전업화하는 것이 바로 음성화의 진정한 문제다. 지역재개발 사업을 위한 자활정책? 또한 집결지 폐쇄정책을 추진하는 방법과 의도에도 문제가 있다. 집결지 폐쇄계획이 지역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서울시의 경우, 성매매방지대책은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이후 강남·북 균형발전사업의 일환으로 뉴타운사업, 균형발전촉진지구사업 등 도시재개발이 본격 추진되고 개발 대상지역 중 한곳인 성북구 하월곡동(속칭 ‘미아리’)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자활지원문제가 현안문제로 부상하면서부터 추진되었다.1) <다시함께센터>는 이렇게 마련된 서울시의 성매매종합방지대책에 따라 서울특별시의 위탁을 받아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가 운영하는 민·관 연합기구로 2003년 9월 1일 개소하게 되었다. 서울시의 집결지 자활지원 사업은 재개발을 위한 지역철거사업 비용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여성가족부는 이를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하면서 지난 8월 31일 2005년 집결지 시범사업을 9개 지역으로 확대할 것이며, 그 추진방안으로 관할 지자체 및 경찰서 등 관계기관과의 협력체계 구축, 단속 및 지역개발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효과적인 집결지 정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2) 성매매방지법은 2004년 3월 22일 국회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지만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성 이유는 단일하지 않다. 지역재개발을 위해서,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 판단에 의해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등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이런 상황에서 성매매방지법 추진을 주도한 여성운동은 법과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대신해서 법과 제도를 시행하고, 운동의 비판능력과 역동성을 잃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자기비판해야 한다. 법의 취지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는 성매매방지법이 구매자, 알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의 ‘보호와 자립’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 윤락행위방지법이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윤락행위로 성매매를 규정하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을 중심으로 이를 방지하려고 했던 것에 비해 그 목적과 취지가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 진일보한 법의 취지는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바로 경찰의 단속강화를 통해서였다. 경찰의 단속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집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시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시위는 성매매방지법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성매매방지법은 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성산업에 유입되는지, 성산업이 자그마치 24조원(GDP 4%)에 이르도록 거대해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성매매 근절이 구매자, 포주, (예외를 두더라도)성매매 여성을 처벌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발상은 성매매 문제를 개별 당사자들의 문제로 한정해서 바라보는 것을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성노동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성노동자들의 요구를 드러내고, 성매매 현장의 구체적인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기 보다는 성매매 여성들은 구출되어야 하는 희생자로서만 이해되고, 성매매 현장은 폐쇄되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는 성매매 현장이 여성들의 일터이고 숙소라는 점, 우리가 성매매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 빈곤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는 점을 알려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고 법률을 통해 처벌하는 동안, 성매매 여성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이야기 할 수 없는 무권리의 상태에서 더 극단적인 폭력의 현실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를 촉매제로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반 구도 속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투쟁을 했던 성매매 여성들은 또 다른 낙인을 경험했다. 똑같이 주장을 하고 시위를 하더라도, 하나의 목소리로 인정되고 있지 않은 현실을 경험하고 나서, 그녀들은 자신들을 노동자로 조직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성노동자 조직의 출범 배경이었다. 이제 성노동자들은 자치조직을 결성하고, 경찰의 단속과 비안간적 대우에 공동으로 저항하고, 업주와 노사협의를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성노동자들의 권리와 요구를 작성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성매매방지법의 가장 역설적인 결과이다.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 출범의 의미3)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얻은 임금을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행법과 다소 충돌하기는 해도 노동자가 분명합니다. 단지 성적서비스업에 종사할 따름이지요. 우리가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노동자 신분일 때 비로소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 저희 성노동자들은 단언합니다. 성노동자 운동은 빈민운동이며 사회변혁운동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오명에 시달려온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인간선언입니다.”4) 개인의 인간·시민·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권리는 그들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을 하는지 아닌지를 조건으로 할 수 없다. 즉 인간이기 때문에 (노동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노동자들은 그동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는 도덕적 단죄로 다른 노동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낙인을 경험해왔다. 성노동자 규정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동일성을 부여하고 권리의 주체가 되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러나 성노동자로서의 선언이 즉각적으로 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합법적으로 성노동자를 인정하고 각종 사회보장 체계를 이용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성노동자들은 합법적 등록을 꺼리고 있다. 아마도 결혼이나 전업 시에 부당한 차별이나 심리적 위축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성매매 문제는 복합적이고, 성노동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현실도 그만큼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돼서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을 깨달아가면서 스스로 요구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이것이 성노동자로서 권리 선언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예를 들어, 민주성노동자연대 경우 12대 강령에서 “성노동과 탈성노동에 관한 것은 성노동자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자활정책이 경제적 빈곤의 문제, 성차별적 노동시장,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현재 합법적 형태로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성노동자들이 자치조직을 결성한 것은 여성단체가 성매매방지법의 성과로 이야기하는 탈업소(탈성매매)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성노동자들은 자기 권리를 인식하고 집단적인 힘을 가지게 되면서 성매매방지법 이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단속·조사 시 빈번했던 경찰관들의 폭언과 차별적 대우에 저항하여 정당하게 다루어질 권리를 획득하였다.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는 그동안 범죄자의 신분 때문에 자신의 존재와 요구를 드러낼 수 없었던 성매매 당사자들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운동이며 새로운 여성운동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은 이미 여성운동의 많은 것을 바꾼 운동이다. 성노동/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므로 노동이 될 수 없다. 급진주의 페미니즘 이론에서 남녀간의 모든 관계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유지하려는 집단적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초역사적인) 가부장제의 속성이다. 이른바 가부장제·남성지배적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폭력의 역할에 이론적 중요성이 부여되었다. ‘모든 여성’을 ‘모든 남성’의 희생자로 동일화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은 결국 이성애적 관계를 단절하거나, 남성성욕을 통제하는 전략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이론에서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이며, 성매매에서 자발이나 동의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성매매방지법과 같은 단일 이슈 중심의 투쟁은 억압과 폭력의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결여할 뿐만 아니라 사법체계에 대한 호소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기보다는 보호받아야 할 ‘정조’라는 통념에 의존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입장은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남아있게 되는 구조5)’를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성매매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결국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라는 동일성으로 규정하게 되면 그들은 구제하고 보호받아야 할 법·정책 시행의 대상이 될 뿐, 권리주체로서 성노동자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즉, 성매매를 하지 않을 권리가 아닌 성노동을 지속할 것을 주장하는 성노동자의 주체성을 무시하게 된다. 이처럼 성매매를 강간과 동일시하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나쁜여성-착한여성’이라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내면화하면서 가지게 되는 공포에 기인한다. 이런 입장은 성노동자들이 성노동 현장에서 경험하는 폭력의 구체적인 현실을 인식할 수 없게 하는 한계가 있다. 성노동이라 하면 성상품화를 인정하고, 성매매를 유지 온존 시키자는 것이냐. 성노동과 가사노동을 유비해보자. 가사노동이라는 말은 여성이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해서 가족 내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어떤 일을 수행한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의 이런 부불노동을 존치시키자는 주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매매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성매매를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를 존치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노동이 전통적 여성의 역할과 가부장적 제도와 연결되어 있을지라도, 이러한 여성의 노동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이 노동이 만연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이것이 여성의 이익 속에서 전화되는 것을 촉진하는 것이다. 노동력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분석, 투쟁하면서 그런 현실을 지양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투쟁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런 현실을 지양할 수 있기 위해선 성노동자가 스스로 조직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성노동자 주장과 성매매 비범죄화는 결국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냐 사회진보연대는 성매매 여성들의 권리는 성매매 근절을 위한 형법을 통해 범죄의 피해자로 보호되거나, 범죄자로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법의 적용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므로, 성매매에 대한 형법적 처벌(을 통한 해법)을 반대하면서 성매매 비범죄화를 제기해왔다. 이는 빈곤에 저항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형성과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개조와 동시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장기적인 운동 전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범죄주의는 성매매라는 행위 자체를 법적으로 규제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성매매를 범죄로서 금지하든 일정한 허용 범위에서 합법화하기 위해 규제하든 법률은 성매매가 발생·온존되는 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범죄화가 성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출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상에서 합법적 규제주의와 별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합법화로 이해된다. 합법적 규제주의는 특정 공간에서만 성매매가 허용되고 그 외의 공간에서는 성매매가 불법화된다. 이는 남성들이 합법적으로 성을 살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자 국가가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했던 한 형태이다. 성매매 자체를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법률은 성매매 여성의 권리를 제약한다. 모든 성매매 여성이 범죄자의 신분이 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측면에서 비범죄화는 의의를 지닌다. 우리는 왜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하는가 성노동자 운동의 출현과 성노동/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논쟁이 아니다. 시간차를 두고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를 표명하는 단체들이 만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도 성매매에 대한 격한 논쟁이 존재한다. 그러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분석과 관점은 공유되고 있다. 하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현재의 유래 없는 성산업 규모의 확장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키는 구조에 맞선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장소를 가족으로 한정하면서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가치절하와 불인정을 유지하는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한 비판의 중요성이다. 따라서 현재의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 특히 성노동자(성매매 여성)의 권리 보장과 이를 위해 조직화할 권리의 옹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에서의 논쟁과 여성운동의 방향에 있어 커다란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이 여성억압(빈곤과 폭력) 구조에 대한 분석을 심화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현실에서 구조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 성노동자를 포함한 여성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와 투쟁이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여성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착취의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그것은 성매매를 반대하는 법이 아니라 그녀들에 대한 학대에 반대하는 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의 인권이 언제나 모든 곳에서 존중되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착취와 성차별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생존력을 존중하고 그러한 착취와 차별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도록 성노동자와 연대할 의무가 있다. 1) 다시함께센터 개소 2주년 기념 자료집, 이기영 서울 여성정책담당관 여성복지팀장 글. 본문으로 2) 2005년 8월 31일 여성가족부 보도자료 본문으로 3) 1997년 인도 캘커타에서 개최한 ‘1차 전국 성노동자회의’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동에 두 가지 주요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투쟁 그 자체에서 제기되는 젠더, 빈곤과 섹슈얼리티의 이슈 전반에 관하여 토론하고 정의를 내리고 또 재정의하는 일이다. “두바르협력위원회에서의 우리의 경험은 주변적 세력이 작은 성과나마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물질적, 상징적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은 지속되어야 한다. 둘째, 지배 이데올로기의 지원 하에 우리에게 행해지는 일상적인 억압과 당장,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면하고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의 조건과 우리 삶의 물질적 질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노력, 즉 성산업 자체에 대한 통제권을 성노동자들이 획득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이미 시작했다. 오늘날 대도시, 소도시, 그리고 촌락의 많은 홍등가에서 우리 성노동자들은 연대와 집단적 힘을 형성하기 위해 보다 광범위한 매매춘 여성들의 공동체 속에서 자체적인 모임을 조직화하기에 이르렀고, 매매춘 여성으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우리 스스로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성매매 노동자 선언문」, 『여성적 사고·지구적 저항』, 2001. 본문으로 4) 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 「7.3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에 참가하면서」중 본문으로 5) 여성에 대한 폭력이 몇몇 가시적인 사건들로 국한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여성 억압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측면들이 곧 성폭력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여성 억압을 지속시키는 제도 및 관행, 실천들이 모두 성폭력이고, 그것의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강간일 것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여성성에 대한 다양한 표상들, 성관계에서의 동의 여부에 관한 여성의 진술에 대한 철저한 무시, 여성의 역할을 재생산 노동으로 한정시키고 그것의 가치조차 부정하는 역사적 가족형태 등은 여성의 육체적·정신적 고유성을 위협하므로 광의의 성폭력에 해당한다. 따라서 성폭력은 여성의 배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현실적·상징적 구조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정인경, 「성폭력과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공감, 200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