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의원대회와 사회적 교섭 논란을 돌아본다 유재이 / 회원 "협상을 주재하면서 노사가 지닌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흐뭇했다. 노사가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자세만 견지하면 오늘 중 잠정합의가 가능하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기초를 마련하자. 국민은 비정규직 입법과정이 성공적으로 되고 노사정 대화틀이 안착되길 고대하고 있다. 이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는 협상이 됐으면 한다." - 4월24일 노사정대표자회의 협상을 앞두고 이목희 의원 모두발언 결과적으로, 세 번의 대의원대회 유회와 두 번에 걸친 물리력을 동원한 대의원대회 의사 진행 저지 등 격렬한 반대도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가를 막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법안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1) 언제 최종적으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민주노총이 교섭을 진행하는 법안의 내용에 대한 논란은 오래 지속되겠지만, 어쨌든 민주노총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기구에 보란 듯이 참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에 대한 논쟁은 그 양상을 변주해가면서 반복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문제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남한의 조건에서 사회적 교섭의 유효성은 끊임없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기구는 눈과 귀를 막고 억지로 계속되다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 - 파탄을 맞거나 혹은 노동자운동을 안정적으로 순치시킬 때까지 계급 대립을 관리하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비정규법안이 어떤 식으로 합의되든 이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가 방침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논쟁되어야하는 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회, 무산된 세 번의 대의원대회 2005년 들어 한달 간격으로 진행된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는 세 번 모두 유회되거나 무산되었다. 1월 20~21일 속리산유스호스텔에서 유회된 정기대의원대회, 2월 1일 영등포구민회관과 2월 22일 예정되었다가 연기되어 3월15일 교통회관에서 개최되었으나 유회되고 무산된 대의원 대회.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논쟁은 이미 지난해 이수호 집행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되었다. 논란은 8월31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 제32차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 상정이 보류되면서 해를 넘기게 된다. 안건상정은 2005년 1월 정기 대의원대회로 안건상정이 미뤄졌으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는 '파견법 개악안 및 기간제 법안 철회를 위한 총파업' 계획을 대의원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 이후에 진행된 상황은 11월26일 6시간 파업 이후, 29일 법안 처리 연기를 이유로 한 '승리선언'과 파업 철회였다. 파업을 서둘러 마무리한 민주노총은 연말까지 국가보안법 페지 투쟁에 몰입한다. 2005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방침 건'이 다시 상정되었다. 32차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개악안 저지를 위해 사회적 교섭방침 건을 다루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여전히 정부가 비정규개악안 통과를 벼르고 있는 가운데에도 안건은 상정되었다. 결과는 대의원대회 첫 번째 유회였다. 이어지는 두 번의 임시 대의원대회는 대의원과 조합원들의 단상 점거와 퇴장으로 인해 유회되고 무산되었다. 물리적 충돌로 치닫는 대의원대회 무산 장면은 언론에는 좋은 장면을 제공했다. 민주노총은 '사태'의 원인이 사회적 교섭 안건을 반대한 대의원과 조합원들의 '폭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4년 하반기와 그리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 안건이 상정되고 통과되어야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못한 집행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민주노총의 '해법'은 '진상조사위원회'와 노란 완장을 찬 질서유지대의 동원이었다. 3월 15일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민주노총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일주일 내에'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겠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한다. 3월17일 중집회의에서 "위원장의 책임하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비정규직보호법안을 우선 과제로 논의한다. 노사정교섭방침과 관련해서는 추후 적절한 시점에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승인여부를 결정한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정규보호법안'이 아니라) 정부의 비정규개악안을 놓고 논의하는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재개된다. 한편, 2003년 3월25일 제6대 노사정위 위원장으로 취임했던 김금수는 3월 24일, 7대 노사정위 위원장의 새임기를 다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몇 번의 중요한 상황 전개의 계기와 논쟁을 살펴보자. 총파업 대신 사회적 교섭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에 대한 비판들은, 2004년 하반기와 2005년 상반기가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 왜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 방침을 상정하는가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비정규개악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을 민주노총이 변경했기 때문이다. (혹은 2004년에는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을 한 것뿐일 것이다.) 민주노총의 이수봉 대변인은 인터넷 신문 프로메테우스와의 인터뷰(2005.2.7)에서 "그런데 조직은 총파업으로 막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거고 그러면 어떻게 막아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회적 교섭'인 셈이다. 비정규개악안을 막기 위해서는 한달 정도의 파업이 가능해야하는데, 이것이 당장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리고 대국민 이데올로기 상으로나 조직화 상으로나 파업을 준비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사회적 교섭을 추진해야한다는 주장이다.2) 그리고 직접적으로 "사회적 교섭이 통과되면 비정규직 법안 처리 강행 않기로 약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발언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단지 비정규개악안을 막기 위한 총파업 준비를 위한 시간적 문제 때문에 사회적 교섭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수차례 확인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사회적 교섭 추진이 '사회적 합의주의'는 아니라는 주장, 단순히 전술적 활용에 불과하다는 발언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사회적 교섭 참가의 근거는 전략적인 수준의 내용이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 기업을 넘는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사회적 쟁점을 형성한다고 해서 사회적 해결이 따라오는 것은 아닌데다가 그것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라는 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서,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쟁점에는 "집행부를 공격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역설적으로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쟁점에서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토하고 만 것이다. 이때는 아직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세력도 공개적으로 이수호 집행부 퇴진을 주장하지는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3월 15일 대의원 대회 무산 이후 열린 17일 민주노총 중집에서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들어가는 방침이 결정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집에서 이렇게 쉽게 결정할 것이면 뭐하러 이제까지 대의원대회의의 충돌을 불러왔는가라는 질문도 제기된다. 이렇게 결정된 데에는 두 번의 물리적 충돌을 통한 대의원대회 무산에 대한 중집위원들의 부담감이 작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민주노총 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평등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이하 <전진>)의 입장이 일종의 '타협안'으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전진>의 임성규 의장은 이미 3월 9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민주노총은 1월 20일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2006년까지 이어지는 2005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그 속에는 "노정교섭, 노사정교섭, 산별교섭을 포함하는 중층적·총체적 교섭을 추진한다"는 교섭방침도 담겨 있다. 사회적 교섭만을 따로 떼어내 안건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중략]... 여러 형태의 교섭방침 중 하나이며, 전술로서의 방침일 뿐인 사회적 교섭 방침을 굳이 이렇게 내홍을 겪으면서까지 별도의 안건으로 상정하여 기어이 관철시키겠다는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3) 이어 2005년 3월14일,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의 좌담에서 역시 <전진>회원인 이성우 공공연맹 사무처장은 "현재 제시된 사회적 교섭안이 3월15일 대의원대회에 상정되면 걷잡을 수 없는 논란에 빠지게 되니 2004년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사회적 교섭 문제를 처리하자는 것이다."라고 발언한다. 민주노총 이상학 정책실장은 이를 "이미 결정돼 있으니까 그것대로 집행부가 집행하도록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자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신호를 받은 민주노총은 3월17일 중집회의에서 "위원장의 책임 하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비정규직보호법안을 최우선 과제로 논의한다. 노사정교섭방침과 관련해서는 추후 적절한 시점에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승인여부를 결정한다"는 안을 큰 무리없이 결정한다. 이후에 여기 언급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지난 해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중집 결정사항이 '비정규법안을 다루기 위한 노사정교섭'인지 '사실상 사회적 교섭을 지도부가 추진하겠다'는 것인지의 쟁점과 맞물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그 양자의 구별은 의미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전진>은 모든 사회적 교섭방침을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은 사회적 교섭의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전진>의 입장은 일정한 조건 -- 노동자 정당의 진출과 조직율 상승, 강력한 산별노조 등-- 하에서는 사회적 교섭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으로 조건부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결국은 거듭되는 대의원대회 파행과 이에 따른 민주노총의 조직적 균열의 심화를 막기 위한 '충심'이 사회적 교섭의 조건이 되고 만 셈이다. 결론은 산별노조? 한편, 전노투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노동자의힘>이 금속연맹 선거에서 <전진>과 <전국회의> 후보와 통합집행부 구성을 위한 연합선본을 꾸리면서 논란이 된다. 전노투 상황실은 "금속산업연맹 선거에 대한 전노투 상황실 입장"이라는 성명을 내고 이는 '전노투가 주장해 온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강도높게 비판한다. <노동자의힘>이 금속연맹 선거에서 연합선본을 구성한 이유는 '산별노조 완성' 때문이었다. 이는 산별노조 건설이 산별연맹 중앙의 강력한 리더쉽을 통한 '대통합'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4) <노동자의힘>의 선거연합 전술을 이 자리에서 평가할 필요는 없겠지만 결국 이 과정은 좌파에게도 사회적 교섭의 쟁점을 초과하는 것이 '산별노조'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좌파의 대표적인 정치조직인 <노동자의힘>은 산별노조 건설을 통한 대자본-대정부 투쟁에서 '결집된 힘'을 만드는 것이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결과 이러한 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연맹 지도력을 통한 조직통합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금속연맹의 지도력 붕괴 속에서 통합집행부를 구성해야할 만큼의 절박한 사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선택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노선보다는 '노조 통합으로서의 산별노조 전환'이라는 익숙한 결론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산별노조 건설은 사회적 교섭의 쟁점을 초과하는 과제인가? 다른 조직들의 경우에도 산별노조 문제는 사회적 교섭 논란 안에 숨은 쟁점이었다. <전진>의 장석원 정책위원은 "산별교섭이 정말 잘 될 때, 그래서 산별 차원에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걸러지고 남았을 때, 비로소 현장의 요구와 전산업적인 투쟁을 통해 사회적 교섭이 정권과 자본에게 강제될 수 있는 것", "(사회적 교섭은) 산별전환을 거부하고 사업장의 틀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다. 결국 산별전환을 가로막는 '운동의 자살행위'"라고 주장한다. 5)이에 비해서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산별교섭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교섭을 활용"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사회적 교섭의 찬반 모두가 산별노조 전환, 산별교섭 실현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는 산별노조 , 산별교섭을 위해서는 다른 쟁점은 부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노동자의힘>이 금속연맹 선거에서 보여준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별노조 전환, 산별교섭 추진이 반드시 계급정치 상에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고 선험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강행되고 있는 사회적 교섭과 결합될 때에는 특수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교섭의 하위 범주로 진행되는 산별교섭을 수행하는 산별노조는 사회적 합의 체제에서 노동자운동을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산별교섭을 위해서 사회적 교섭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근거를 대는 것을 볼 수 있다. "산별중앙교섭 제도화는 강력한 산별노조와 강력한 사용자단체가 함께 만나는 장으로서 '기업별 교섭의 비효율성과 비용문제 등을 극복하면서 노사관계의 안정, 소득분배의 평준화로 사회통합과 복지국가 실현,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강국 도약'을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 확신한다. '강력한 산별노조'와 '새로운 산별중앙교섭'이 '복지국가와 경제강국'을 만든다."(이주호 전국보건의료산별노조 정책국장, 「현장에서 바라본 산별중앙교섭의 필요성과 제도화방안」, 『한국사회에서 산업별 교섭의 전망과 가능성 모색 토론회』, 산별중앙교섭공동대책위원회, 2000) "<교섭비용> 측면에서 보면 산업별교섭은 노사 모두가 교섭비용과 조직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 기업별교섭은 기업의 경영자원과 노조의 운동자원을 비생산적으로 소모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 산별교섭이 이루어지면 교섭일수, 교섭위원 수, 교섭비용 등 모든 측면에서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음" (「민주노총 산별 교섭쟁취 투쟁 계획 관련 기자간담회 자료」, 2001년 4월 20일). 교섭비용을 줄여주는 산별교섭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교섭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현재 이루어지는 왜곡된 산별노조 건설 흐름과 맞물려 사회적인 수준에서부터 산별노조 수준까지 갖가지 '합의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쟁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와의 단절이라는 명확한 원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와 총파업의 미묘한 간극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는 좌파들은 당면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안건처리를 저지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모았지만 미묘한 차이들도 나타났다. 전투적인 대공장 현장조직들은 사회적 교섭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격렬하게 나섰는데, 상대적으로 비정규개악안 저지를 위한 총파업 조직화에는 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비해서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 등은 내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총파업 조직화'와 당면한 불법파견 저지투쟁에 힘을 실었다. 사회적 교섭기구에 들어갈 때 파업은 '교섭을 위한 적절한 압력'의 의미에 머무를 뿐이고 총파업을 통해 계급투쟁을 전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제약된다. 그러나 사회적 교섭 안건이 처리되면 총파업을 조직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곧 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하는가? 그러나 2004년 하반기 비정규연대회의의 열린우리당 당사 점거와 국회 타워크레인 농성 등이 투쟁을 촉발시키면서 사회적 교섭 안건을 연기시켰듯이 오히려 총파업 조직화를 위한 강력한 현장투쟁이 사회적 교섭을 무력화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대공장노조의 경우 기업의 지불능력이나 노조의 강력한 투쟁력 덕분에 사회적 교섭이 불필요하고 오히려 단위노조의 투쟁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대공장노조의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이 사회적 교섭을 자신있게 반대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러한 현장기반도 존재한다. 6)한편 비정규직 노조들도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기업별 현장투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이를 부정적으로 압도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비정규개악안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과 사회적 합의주의 저지라는 과제에서 나타난 이러한 차이는 총파업 조직화에 있어서 차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좌파 혹은 현장파 내부도 대중운동의 균열선을 따라 균열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투쟁에서 보여지는 갈등은 좌파의 정체성이 '전투성'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을 위한 전투성'인가에 따라서 재구성되어야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교섭 반대가 '합의주의'라는 단어가 연상하게 하는 어용 행위에 대한 반대라기 보다는 노동운동의 제도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노동정치체제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정부와 자본의 의도에 반대하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의 의도 : 제도화와 유연화 98년 노사정 위원회를 둘러싼 쟁점과 2005년 사회적 합의를 둘러싼 쟁점에는 공통점이 있다. 격렬한 논쟁의 주제가 되고, 지도부의 거취까지 연결된 쟁점으로 비화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라도 제기되는 문제가 일치하고 있다. 98년 당시 2월 노사정위 합의는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수용하고 공무원, 교원노조의 인정, 노조 정치활동 인정 등을 교환했다. 98년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1기 집행부가 불신임된 이후 3월에 들어선 2기 이갑용 집행부는 노사정위원회 불참전략을 분명히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사정위 참가와 불참 선언을 반복하다가 만도기계 파업에 대한 공권력 침탈 이후 99년 2월 24일 대의원대회에 와서 최종적으로 탈퇴를 결의한다. 98년 노사정 합의에서는 개별적 노사관계의 유연화와 집단적 노사관계의 제도화가 쟁점이었던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후진성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87년 이후 형성된 노동관행조차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에 집단적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쟁점은 '개혁'으로 인식되었다. 2005년 현재도 작년부터 논의되고 있는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일명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제도화와 비정규법안이라는 개별적 노사관계의 쟁점이 얽혀 있다. 98년 노사정위 합의는 이보다 앞선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약칭 노개위)의 쟁점을 경제위기라는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복한 것이다. 96~97 총파업을 통해서 무산되기는 했지만 96년 노개위의 논의는 '민주노총 합법화'(복수노조금지조항과 제3자개입금지조항의 철폐)와 '정리해고제 도입'과 '근로자파견제 도입'을 맞바꾸는 것이었다.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온 교환방식은 2005년에도 양상을 바꾸어가면서 반복되고 있고 민주노총은 이러한 구도에 끌려가고 있다. 대의원대회의 쟁점은 비정규개악안과 사회적 교섭기구의 참가가 중첩되어 있다. 이는 다시 하반기에 전면적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서 정규직에 대한 수월한 정리해고 허용과 파업권의 제한, 사용자 대항권의 규정 등 노사관계 제도화의 강화라는 쟁점으로 연결된다. 정부는 노사정 사회적 합의기구에 민주노총을 포섭하면서 동시에 비정규개악안을 처리하고자 한다. 사회적 합의기구에 민주노총을 참가시키는 것은 이후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에서 정규직의 정리해고 제한 완화와 집단적 노사관계의 쟁점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비정규개악안의 처리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통해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를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서 '합의' 처리한다면 정부가 원하는 새로운 노동정치체제는 더 실현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정부의 모순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98년에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IMF 구제금융 위기라는 전례없는 충격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몰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5년에는 IMF 구제금융 위기와 같은 충격이 부재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가 최대의 노동계 쟁점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쟁점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합의할 것인가가 고민의 핵심이 된다. 결국 비정규직 보호에 있어서는 정부 원안보다는 개선된 몇몇 조항을 삽입하는 '생색내기' 수준에서 합의하고, 정규직에 대한 고용 유연화와 파업권 제한 등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에 있어서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다. 혹은 교섭의 진행 경과에 따라 이 모두를 '빅딜'하는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세 가지 사항이 동시에 협상테이블에 올라올 경우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제반 권리와 정규직 정리해고 제한 규정은 손쉬운 먹이감이 될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사회적 합의에 참가하기 위한 조건으로 기존의 노사정위원회가 아닌 실효성있는 사회적 교섭기구를 새로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합의사항의 이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높이고 구조를 바꿀 것 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는 것은 노사정위원회의 구조가 취약하거나 법제도의 미비사항 때문이 아니라 노사정위원회 밖의 여러 요인 때문이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대표성, 자본가 단체의 대표성 모두가 취약했을 뿐만 아니라 논의에 참가하는 정부도 자본측에 불리한 합의를 이행할 능력이 의심될 만큼 대표성이 취약했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는 노동측에 양보한 내용에 대해서는 합의의 이행을 중요하게 보고 노력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단지 뜨거운 쟁점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노동자운동을 관리하는 데 초점이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제출된 노사관계로드맵이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를 위한 독소조항들로 채워져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이 '실질적 합의'가 가능한 사회적 교섭기구를 요구한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노사관계 로드맵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개 이후 민주노총의 3월17일 중집 결정 이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21일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비정규직 법안 교섭 절차를 논의키로 합의했다고 밝힌다. 이에 따라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가 29일 개최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다. 30일, 이경재 국회 환노위 위원장은 국회중심의 노사정대표자회의 개최를 제안하고 이에 따라 4월 3일 다시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가 열린다. 이에 따라 5일에는 8개월만에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재개된다. 이날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세 개항을 합의한다. 합의문 1. 노사정대표자는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여 정착시켜 나가기로 했다. 2.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기존의 안건인 노사정위 개편 방안과 노사관계법 및 제도 선진화 방안의 처리방향을 우선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3. 현안인 비정규직 관련 법 처리 절차는 노사정대표가 주체가 되어 국회와 조율하기로 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6일 다시 열리는데, 이 회의 결과에 따라 비정규직 법안은 국회가 주관하는 '노사정 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에서 다루어진다. 4월 5일 합의문은 민주노총 중집에서 결정된 '비정규보호법안 논의를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훨씬 초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비정규 법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민주노총의 입장"이라고 밝혔지만7), 합의문은 이미 사회적 대화의 정착과 노사정위, 노사관계선진화방안까지 모두 논의하는 것으로 명시한 뒤였다. 교섭은 10일부터 시작되어 13, 16, 20일까지 약속한 일정을 모두 진행하고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14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법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교섭 분위기가 전환된다. 민주노총은 이제 '비정규개악안 저지'가 아니라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를 구호로 내걸기 시작한다. 교섭은 24일, 26일로 계속 연장된다. 민주노총이 예고한 26일 총파업은 상황 변화를 이유로 연기되었으며 파업 돌입을 위한 새로운 일정은 합의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맥빠진 집회만 계속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가 3월 17일 민주노총 중집위 결정 이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모호한 교섭일정과 이에 따른 모호한 투쟁일정, 연장되는 교섭과 폐기되는 투쟁계획, 현장에서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호언에 대한 신뢰가 계속 침식되어갔다. 현장의 조합원들이나 활동가들은 국회의 교섭과정이 방영되는 TV 뉴스를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할 역할이 없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대중을 투쟁의 주체가 아니라 구경꾼으로 만들고 있다. 인권위의 의견이 제출되고 계속된 비공개 교섭에서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는 추측성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설사 어떤 조항의 실질적 진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대중은 점점 더 수동화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동원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사회적 교섭이 필요함을 주장해왔고, 교섭 현장에서 정부와 자본이 말을 바꾸는 지금 이 순간도 총파업 조직화가 힘들다는 이유로 과감한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교섭전략은 스스로 대중의 수동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비정규권리입법쟁취'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의 투쟁으로 쟁취하는 계급 주체로 구성되지 못한다. 투쟁을 통해서 불안정노동을 철폐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계급주체를 형성하고 계급적 역량을 확대해가기는커녕 대리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국면이 정리된 이후 노동자계급은 과연 무엇을 얻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특징적인 것은 3월 17일 민주노총 중집위 결정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진행되는 전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는 좌파들의 대응이 이전과는 크게 다른 양상이었다는 점이다. 전노투는 곧바로 격렬하게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성명서의 격한 문장뿐이었다. 대의원대회도 열리지 않고 사회적 교섭 참가가 결정된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의사결정과정을 방해, 저지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을 해왔던 방식은 반복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적 반대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집행부를 압박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교섭을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공간은 대의원대회 장소이기 앞서서 총파업 조직화의 공간이어야 했다. 비정규개악안 저지를 위한 총파업을 앞서서 조직하고 사회적 교섭의 본질을 대중적으로 폭로하는 투쟁을 전개하지 않았던 사회적 교섭 반대파들은 여타의 조합원 대중들과 같이 수동적인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8) 제도화냐, 운동이냐 결국 사회적 교섭 논쟁은 사회적 교섭을 막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정치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정부의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났고, 이에 대한 민주노총 내 각 분파의 입장의 차이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남한 노동자 운동의 미래에 대한 상이한 전망이 논쟁되었고 각 주체들은 입장을 낼 것을 강제받았다. 이 논쟁에서 노동자 운동의 제도화를 시도하는 정부와 이에 호응하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구상이 투명하게 폭로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자신의 구상을 일관되게 드러낼 수 없었다. <전진>은 사회적 교섭의 '시기상조론'이라는 형태로 동요했으며, <노동자의힘>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금속연맹 통합집행부 구성으로 스스로 전망의 모호함을 드러냈다. 이러한 모호함은 <노동자의힘>을 비판하는 사실 좌파 모두에게도 공통적인 것이다. 특히 사회적 교섭과 연관되어 이후 노동정치체제의 변화에 핵심적인 쟁점인 산별노조에 있어서는 각 세력들의 맹목이 드러났다. 한편, 정부의 의도는 일관되게 관철되었는데,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가 그것이다. 이미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가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하나의 큰 고비를 넘긴 이상 하반기 노사관계 로드맵의 관철로 이를 완성하려고 할 것이다. 노사정 교섭이 우여곡절 끝에 재개되면서 상황은 국회에서 열리는 교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대중 투쟁은 실종되고 이미 선언된 총파업은 계속 대기에 대기를 거듭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제도화 전략을 구사하면서 대중의 운동, 이를 통한 계급주체 형성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선은 노동조합의 역량 자체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운동'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생겨나지만 이를 '조직'으로 전환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조직으로 정착한 노동조합이 애초에 조직이 생겨나게 한 원인인 '운동'에 냉담해진다면 이는 노동조합의 결속력을 저하할 것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한다.9) 한편,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노총이 혼란스러운 교섭국면에서도 이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투쟁동원력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이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교섭을 진행하고 대중투쟁을 기각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사실 이는 집행부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것은 민주노총 출범 이후 계속되어온 제도화와 투쟁동원 전략 모두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제도화를 통한 영향력 행사가 한계에 부딪치자(98년 노사정위), 투쟁을 동원함으로써(98년 이후 매년 총파업 투쟁)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한 급격한 노동조건의 악화를 막아보고자 하는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지그재그 행보는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불안정화 속에서 기층의 실리주의 노선이 팽배해지면서 단위 사업장의 직접적인 이해에는 전투적일 수 있지만 연대는 축소되었다. 투쟁동원 전략과 기층의 실리주의 노선 사이의 괴리가 발생해왔다. 현재 민주노총이 처한 조직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화 전략이 아니라 운동 전략을 복원해야 한다. 그 속에서 투쟁동원도 불가능하게 하는 기층의 실리주의 노선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계급형성의 관점에서 노동운동을 '운동'으로 복원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면한 비정규개악안저지, 권리입법쟁취 투쟁에서도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가하는 것을 통한 제도화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이 필요하다. 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대중을 교육하는 효과를 만드는 것은 물론 연대의 확장을 통한 계급형성, 주체화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협상과 제도화가 대중을 정치적 교육적으로 각성시킬 수 없다. 새로운 대안적 노동운동은 위로부터의 개혁이나 제도화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투쟁 속에서 싹틀 것이다. PSSP 1)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4월 25일)에도 여전히 노사정 실무협상은 '최종시한'을 연장하여 계속될 예정이다. 4월 25일 민주노총 투본대표자회의에서는 법안처리가 6월 국회로 넘어갈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투쟁계획이 논의되었다. 본문으로 2) 이러한 이수봉 대변인의 언급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바쿠닌주의자들의 총파업에 대한 관념적 입장을 비판하는 엥겔스를 인용해서 말하는 다음의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전체 노동계급이 아직 강력한 조직과 충분한 재정적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총파업을 벌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충분히 잘 조직되어 있을 때에는 총파업이 필요없다."(『대중파업』) 그렇다면 과연 총파업을 가능하게 하는 환상적인 시기는 언제 강림하는가? 본문으로 3) 임성규, 「지도부투쟁 조직하면 파행도 없다」, 『매일노동뉴스』, 2005. 3. 9 본문으로 4)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위원회는 금속연맹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대통합 방식의 산별건설과 투쟁하는 연맹을 만들고자 연맹지도력의 대통합 방식을 주장하고 실천하였습니다.”, 「금속연맹 선거에 부쳐」(2005년 3월 30일 노동자의힘 노동위원회) 본문으로 5) 장석원, 「산별교섭 정말 잘 될 때 사회적 교섭 효력 있어」, 『매일노동뉴스』 2005.3.11 본문으로 6)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 실제 정책담당자들을 불러 분명히 교섭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교섭에 끌어내기 어려운 연맹들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매일노동뉴스 3월 8일) '교섭에 끌어내기 어려운 연맹'이라는 표현은 노조 역량에 따라 사회적 교섭을 바라보는 입장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으로 7) 김봉석, 「노사정 합의안 두고, ‘동상이몽’ 여전」, 『매일노동뉴스』 2005.4.5 본문으로 8) 이런 점에서 이수호 집행부의 출범 이후 폭넓게 결성된 첫 좌파연대체가 비정규직 철폐 등 대중투쟁을 조직화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를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사후적인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본문으로 9) 라마스웨이, 「노동조합 운동론의 제유형」, 『노동조합운동론』, 1981 본문으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와 사회적 교섭 논란을 돌아본다 유재이 / 회원 "협상을 주재하면서 노사가 지닌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흐뭇했다. 노사가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자세만 견지하면 오늘 중 잠정합의가 가능하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기초를 마련하자. 국민은 비정규직 입법과정이 성공적으로 되고 노사정 대화틀이 안착되길 고대하고 있다. 이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는 협상이 됐으면 한다." - 4월24일 노사정대표자회의 협상을 앞두고 이목희 의원 모두발언 결과적으로, 세 번의 대의원대회 유회와 두 번에 걸친 물리력을 동원한 대의원대회 의사 진행 저지 등 격렬한 반대도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가를 막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법안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1) 언제 최종적으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민주노총이 교섭을 진행하는 법안의 내용에 대한 논란은 오래 지속되겠지만, 어쨌든 민주노총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기구에 보란 듯이 참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에 대한 논쟁은 그 양상을 변주해가면서 반복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문제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남한의 조건에서 사회적 교섭의 유효성은 끊임없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기구는 눈과 귀를 막고 억지로 계속되다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 - 파탄을 맞거나 혹은 노동자운동을 안정적으로 순치시킬 때까지 계급 대립을 관리하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비정규법안이 어떤 식으로 합의되든 이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가 방침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논쟁되어야하는 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회, 무산된 세 번의 대의원대회 2005년 들어 한달 간격으로 진행된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는 세 번 모두 유회되거나 무산되었다. 1월 20~21일 속리산유스호스텔에서 유회된 정기대의원대회, 2월 1일 영등포구민회관과 2월 22일 예정되었다가 연기되어 3월15일 교통회관에서 개최되었으나 유회되고 무산된 대의원 대회.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논쟁은 이미 지난해 이수호 집행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되었다. 논란은 8월31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 제32차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 상정이 보류되면서 해를 넘기게 된다. 안건상정은 2005년 1월 정기 대의원대회로 안건상정이 미뤄졌으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는 '파견법 개악안 및 기간제 법안 철회를 위한 총파업' 계획을 대의원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 이후에 진행된 상황은 11월26일 6시간 파업 이후, 29일 법안 처리 연기를 이유로 한 '승리선언'과 파업 철회였다. 파업을 서둘러 마무리한 민주노총은 연말까지 국가보안법 페지 투쟁에 몰입한다. 2005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방침 건'이 다시 상정되었다. 32차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개악안 저지를 위해 사회적 교섭방침 건을 다루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여전히 정부가 비정규개악안 통과를 벼르고 있는 가운데에도 안건은 상정되었다. 결과는 대의원대회 첫 번째 유회였다. 이어지는 두 번의 임시 대의원대회는 대의원과 조합원들의 단상 점거와 퇴장으로 인해 유회되고 무산되었다. 물리적 충돌로 치닫는 대의원대회 무산 장면은 언론에는 좋은 장면을 제공했다. 민주노총은 '사태'의 원인이 사회적 교섭 안건을 반대한 대의원과 조합원들의 '폭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4년 하반기와 그리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 안건이 상정되고 통과되어야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못한 집행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민주노총의 '해법'은 '진상조사위원회'와 노란 완장을 찬 질서유지대의 동원이었다. 3월 15일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민주노총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일주일 내에'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겠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한다. 3월17일 중집회의에서 "위원장의 책임하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비정규직보호법안을 우선 과제로 논의한다. 노사정교섭방침과 관련해서는 추후 적절한 시점에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승인여부를 결정한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정규보호법안'이 아니라) 정부의 비정규개악안을 놓고 논의하는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재개된다. 한편, 2003년 3월25일 제6대 노사정위 위원장으로 취임했던 김금수는 3월 24일, 7대 노사정위 위원장의 새임기를 다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몇 번의 중요한 상황 전개의 계기와 논쟁을 살펴보자. 총파업 대신 사회적 교섭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에 대한 비판들은, 2004년 하반기와 2005년 상반기가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 왜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 방침을 상정하는가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비정규개악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을 민주노총이 변경했기 때문이다. (혹은 2004년에는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을 한 것뿐일 것이다.) 민주노총의 이수봉 대변인은 인터넷 신문 프로메테우스와의 인터뷰(2005.2.7)에서 "그런데 조직은 총파업으로 막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거고 그러면 어떻게 막아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회적 교섭'인 셈이다. 비정규개악안을 막기 위해서는 한달 정도의 파업이 가능해야하는데, 이것이 당장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리고 대국민 이데올로기 상으로나 조직화 상으로나 파업을 준비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사회적 교섭을 추진해야한다는 주장이다.2) 그리고 직접적으로 "사회적 교섭이 통과되면 비정규직 법안 처리 강행 않기로 약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발언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단지 비정규개악안을 막기 위한 총파업 준비를 위한 시간적 문제 때문에 사회적 교섭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수차례 확인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사회적 교섭 추진이 '사회적 합의주의'는 아니라는 주장, 단순히 전술적 활용에 불과하다는 발언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사회적 교섭 참가의 근거는 전략적인 수준의 내용이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 기업을 넘는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사회적 쟁점을 형성한다고 해서 사회적 해결이 따라오는 것은 아닌데다가 그것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라는 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서,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쟁점에는 "집행부를 공격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역설적으로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쟁점에서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토하고 만 것이다. 이때는 아직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세력도 공개적으로 이수호 집행부 퇴진을 주장하지는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3월 15일 대의원 대회 무산 이후 열린 17일 민주노총 중집에서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들어가는 방침이 결정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집에서 이렇게 쉽게 결정할 것이면 뭐하러 이제까지 대의원대회의의 충돌을 불러왔는가라는 질문도 제기된다. 이렇게 결정된 데에는 두 번의 물리적 충돌을 통한 대의원대회 무산에 대한 중집위원들의 부담감이 작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민주노총 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평등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이하 <전진>)의 입장이 일종의 '타협안'으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전진>의 임성규 의장은 이미 3월 9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민주노총은 1월 20일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2006년까지 이어지는 2005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그 속에는 "노정교섭, 노사정교섭, 산별교섭을 포함하는 중층적·총체적 교섭을 추진한다"는 교섭방침도 담겨 있다. 사회적 교섭만을 따로 떼어내 안건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중략]... 여러 형태의 교섭방침 중 하나이며, 전술로서의 방침일 뿐인 사회적 교섭 방침을 굳이 이렇게 내홍을 겪으면서까지 별도의 안건으로 상정하여 기어이 관철시키겠다는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3) 이어 2005년 3월14일,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의 좌담에서 역시 <전진>회원인 이성우 공공연맹 사무처장은 "현재 제시된 사회적 교섭안이 3월15일 대의원대회에 상정되면 걷잡을 수 없는 논란에 빠지게 되니 2004년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사회적 교섭 문제를 처리하자는 것이다."라고 발언한다. 민주노총 이상학 정책실장은 이를 "이미 결정돼 있으니까 그것대로 집행부가 집행하도록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자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신호를 받은 민주노총은 3월17일 중집회의에서 "위원장의 책임 하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비정규직보호법안을 최우선 과제로 논의한다. 노사정교섭방침과 관련해서는 추후 적절한 시점에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승인여부를 결정한다"는 안을 큰 무리없이 결정한다. 이후에 여기 언급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지난 해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중집 결정사항이 '비정규법안을 다루기 위한 노사정교섭'인지 '사실상 사회적 교섭을 지도부가 추진하겠다'는 것인지의 쟁점과 맞물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그 양자의 구별은 의미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전진>은 모든 사회적 교섭방침을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은 사회적 교섭의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전진>의 입장은 일정한 조건 -- 노동자 정당의 진출과 조직율 상승, 강력한 산별노조 등-- 하에서는 사회적 교섭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으로 조건부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결국은 거듭되는 대의원대회 파행과 이에 따른 민주노총의 조직적 균열의 심화를 막기 위한 '충심'이 사회적 교섭의 조건이 되고 만 셈이다. 결론은 산별노조? 한편, 전노투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노동자의힘>이 금속연맹 선거에서 <전진>과 <전국회의> 후보와 통합집행부 구성을 위한 연합선본을 꾸리면서 논란이 된다. 전노투 상황실은 "금속산업연맹 선거에 대한 전노투 상황실 입장"이라는 성명을 내고 이는 '전노투가 주장해 온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강도높게 비판한다. <노동자의힘>이 금속연맹 선거에서 연합선본을 구성한 이유는 '산별노조 완성' 때문이었다. 이는 산별노조 건설이 산별연맹 중앙의 강력한 리더쉽을 통한 '대통합'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4) <노동자의힘>의 선거연합 전술을 이 자리에서 평가할 필요는 없겠지만 결국 이 과정은 좌파에게도 사회적 교섭의 쟁점을 초과하는 것이 '산별노조'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좌파의 대표적인 정치조직인 <노동자의힘>은 산별노조 건설을 통한 대자본-대정부 투쟁에서 '결집된 힘'을 만드는 것이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결과 이러한 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연맹 지도력을 통한 조직통합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금속연맹의 지도력 붕괴 속에서 통합집행부를 구성해야할 만큼의 절박한 사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선택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노선보다는 '노조 통합으로서의 산별노조 전환'이라는 익숙한 결론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산별노조 건설은 사회적 교섭의 쟁점을 초과하는 과제인가? 다른 조직들의 경우에도 산별노조 문제는 사회적 교섭 논란 안에 숨은 쟁점이었다. <전진>의 장석원 정책위원은 "산별교섭이 정말 잘 될 때, 그래서 산별 차원에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걸러지고 남았을 때, 비로소 현장의 요구와 전산업적인 투쟁을 통해 사회적 교섭이 정권과 자본에게 강제될 수 있는 것", "(사회적 교섭은) 산별전환을 거부하고 사업장의 틀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다. 결국 산별전환을 가로막는 '운동의 자살행위'"라고 주장한다. 5)이에 비해서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산별교섭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교섭을 활용"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사회적 교섭의 찬반 모두가 산별노조 전환, 산별교섭 실현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는 산별노조 , 산별교섭을 위해서는 다른 쟁점은 부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노동자의힘>이 금속연맹 선거에서 보여준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별노조 전환, 산별교섭 추진이 반드시 계급정치 상에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고 선험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강행되고 있는 사회적 교섭과 결합될 때에는 특수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교섭의 하위 범주로 진행되는 산별교섭을 수행하는 산별노조는 사회적 합의 체제에서 노동자운동을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산별교섭을 위해서 사회적 교섭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근거를 대는 것을 볼 수 있다. "산별중앙교섭 제도화는 강력한 산별노조와 강력한 사용자단체가 함께 만나는 장으로서 '기업별 교섭의 비효율성과 비용문제 등을 극복하면서 노사관계의 안정, 소득분배의 평준화로 사회통합과 복지국가 실현,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강국 도약'을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 확신한다. '강력한 산별노조'와 '새로운 산별중앙교섭'이 '복지국가와 경제강국'을 만든다."(이주호 전국보건의료산별노조 정책국장, 「현장에서 바라본 산별중앙교섭의 필요성과 제도화방안」, 『한국사회에서 산업별 교섭의 전망과 가능성 모색 토론회』, 산별중앙교섭공동대책위원회, 2000) "<교섭비용> 측면에서 보면 산업별교섭은 노사 모두가 교섭비용과 조직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 기업별교섭은 기업의 경영자원과 노조의 운동자원을 비생산적으로 소모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 산별교섭이 이루어지면 교섭일수, 교섭위원 수, 교섭비용 등 모든 측면에서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음" (「민주노총 산별 교섭쟁취 투쟁 계획 관련 기자간담회 자료」, 2001년 4월 20일). 교섭비용을 줄여주는 산별교섭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교섭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현재 이루어지는 왜곡된 산별노조 건설 흐름과 맞물려 사회적인 수준에서부터 산별노조 수준까지 갖가지 '합의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쟁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와의 단절이라는 명확한 원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와 총파업의 미묘한 간극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는 좌파들은 당면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안건처리를 저지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모았지만 미묘한 차이들도 나타났다. 전투적인 대공장 현장조직들은 사회적 교섭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격렬하게 나섰는데, 상대적으로 비정규개악안 저지를 위한 총파업 조직화에는 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비해서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 등은 내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총파업 조직화'와 당면한 불법파견 저지투쟁에 힘을 실었다. 사회적 교섭기구에 들어갈 때 파업은 '교섭을 위한 적절한 압력'의 의미에 머무를 뿐이고 총파업을 통해 계급투쟁을 전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제약된다. 그러나 사회적 교섭 안건이 처리되면 총파업을 조직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곧 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하는가? 그러나 2004년 하반기 비정규연대회의의 열린우리당 당사 점거와 국회 타워크레인 농성 등이 투쟁을 촉발시키면서 사회적 교섭 안건을 연기시켰듯이 오히려 총파업 조직화를 위한 강력한 현장투쟁이 사회적 교섭을 무력화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대공장노조의 경우 기업의 지불능력이나 노조의 강력한 투쟁력 덕분에 사회적 교섭이 불필요하고 오히려 단위노조의 투쟁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대공장노조의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이 사회적 교섭을 자신있게 반대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러한 현장기반도 존재한다. 6)한편 비정규직 노조들도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기업별 현장투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이를 부정적으로 압도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비정규개악안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과 사회적 합의주의 저지라는 과제에서 나타난 이러한 차이는 총파업 조직화에 있어서 차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좌파 혹은 현장파 내부도 대중운동의 균열선을 따라 균열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투쟁에서 보여지는 갈등은 좌파의 정체성이 '전투성'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을 위한 전투성'인가에 따라서 재구성되어야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교섭 반대가 '합의주의'라는 단어가 연상하게 하는 어용 행위에 대한 반대라기 보다는 노동운동의 제도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노동정치체제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정부와 자본의 의도에 반대하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의 의도 : 제도화와 유연화 98년 노사정 위원회를 둘러싼 쟁점과 2005년 사회적 합의를 둘러싼 쟁점에는 공통점이 있다. 격렬한 논쟁의 주제가 되고, 지도부의 거취까지 연결된 쟁점으로 비화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라도 제기되는 문제가 일치하고 있다. 98년 당시 2월 노사정위 합의는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수용하고 공무원, 교원노조의 인정, 노조 정치활동 인정 등을 교환했다. 98년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1기 집행부가 불신임된 이후 3월에 들어선 2기 이갑용 집행부는 노사정위원회 불참전략을 분명히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사정위 참가와 불참 선언을 반복하다가 만도기계 파업에 대한 공권력 침탈 이후 99년 2월 24일 대의원대회에 와서 최종적으로 탈퇴를 결의한다. 98년 노사정 합의에서는 개별적 노사관계의 유연화와 집단적 노사관계의 제도화가 쟁점이었던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후진성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87년 이후 형성된 노동관행조차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에 집단적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쟁점은 '개혁'으로 인식되었다. 2005년 현재도 작년부터 논의되고 있는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일명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제도화와 비정규법안이라는 개별적 노사관계의 쟁점이 얽혀 있다. 98년 노사정위 합의는 이보다 앞선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약칭 노개위)의 쟁점을 경제위기라는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복한 것이다. 96~97 총파업을 통해서 무산되기는 했지만 96년 노개위의 논의는 '민주노총 합법화'(복수노조금지조항과 제3자개입금지조항의 철폐)와 '정리해고제 도입'과 '근로자파견제 도입'을 맞바꾸는 것이었다.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온 교환방식은 2005년에도 양상을 바꾸어가면서 반복되고 있고 민주노총은 이러한 구도에 끌려가고 있다. 대의원대회의 쟁점은 비정규개악안과 사회적 교섭기구의 참가가 중첩되어 있다. 이는 다시 하반기에 전면적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서 정규직에 대한 수월한 정리해고 허용과 파업권의 제한, 사용자 대항권의 규정 등 노사관계 제도화의 강화라는 쟁점으로 연결된다. 정부는 노사정 사회적 합의기구에 민주노총을 포섭하면서 동시에 비정규개악안을 처리하고자 한다. 사회적 합의기구에 민주노총을 참가시키는 것은 이후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에서 정규직의 정리해고 제한 완화와 집단적 노사관계의 쟁점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비정규개악안의 처리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통해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를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서 '합의' 처리한다면 정부가 원하는 새로운 노동정치체제는 더 실현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정부의 모순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98년에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IMF 구제금융 위기라는 전례없는 충격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몰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5년에는 IMF 구제금융 위기와 같은 충격이 부재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가 최대의 노동계 쟁점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쟁점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합의할 것인가가 고민의 핵심이 된다. 결국 비정규직 보호에 있어서는 정부 원안보다는 개선된 몇몇 조항을 삽입하는 '생색내기' 수준에서 합의하고, 정규직에 대한 고용 유연화와 파업권 제한 등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에 있어서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다. 혹은 교섭의 진행 경과에 따라 이 모두를 '빅딜'하는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세 가지 사항이 동시에 협상테이블에 올라올 경우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제반 권리와 정규직 정리해고 제한 규정은 손쉬운 먹이감이 될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사회적 합의에 참가하기 위한 조건으로 기존의 노사정위원회가 아닌 실효성있는 사회적 교섭기구를 새로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합의사항의 이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높이고 구조를 바꿀 것 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는 것은 노사정위원회의 구조가 취약하거나 법제도의 미비사항 때문이 아니라 노사정위원회 밖의 여러 요인 때문이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대표성, 자본가 단체의 대표성 모두가 취약했을 뿐만 아니라 논의에 참가하는 정부도 자본측에 불리한 합의를 이행할 능력이 의심될 만큼 대표성이 취약했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는 노동측에 양보한 내용에 대해서는 합의의 이행을 중요하게 보고 노력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단지 뜨거운 쟁점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노동자운동을 관리하는 데 초점이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제출된 노사관계로드맵이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를 위한 독소조항들로 채워져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이 '실질적 합의'가 가능한 사회적 교섭기구를 요구한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노사관계 로드맵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개 이후 민주노총의 3월17일 중집 결정 이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21일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비정규직 법안 교섭 절차를 논의키로 합의했다고 밝힌다. 이에 따라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가 29일 개최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다. 30일, 이경재 국회 환노위 위원장은 국회중심의 노사정대표자회의 개최를 제안하고 이에 따라 4월 3일 다시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가 열린다. 이에 따라 5일에는 8개월만에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재개된다. 이날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세 개항을 합의한다. 합의문 1. 노사정대표자는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여 정착시켜 나가기로 했다. 2.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기존의 안건인 노사정위 개편 방안과 노사관계법 및 제도 선진화 방안의 처리방향을 우선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3. 현안인 비정규직 관련 법 처리 절차는 노사정대표가 주체가 되어 국회와 조율하기로 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6일 다시 열리는데, 이 회의 결과에 따라 비정규직 법안은 국회가 주관하는 '노사정 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에서 다루어진다. 4월 5일 합의문은 민주노총 중집에서 결정된 '비정규보호법안 논의를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훨씬 초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비정규 법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민주노총의 입장"이라고 밝혔지만7), 합의문은 이미 사회적 대화의 정착과 노사정위, 노사관계선진화방안까지 모두 논의하는 것으로 명시한 뒤였다. 교섭은 10일부터 시작되어 13, 16, 20일까지 약속한 일정을 모두 진행하고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14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법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교섭 분위기가 전환된다. 민주노총은 이제 '비정규개악안 저지'가 아니라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를 구호로 내걸기 시작한다. 교섭은 24일, 26일로 계속 연장된다. 민주노총이 예고한 26일 총파업은 상황 변화를 이유로 연기되었으며 파업 돌입을 위한 새로운 일정은 합의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맥빠진 집회만 계속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가 3월 17일 민주노총 중집위 결정 이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모호한 교섭일정과 이에 따른 모호한 투쟁일정, 연장되는 교섭과 폐기되는 투쟁계획, 현장에서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호언에 대한 신뢰가 계속 침식되어갔다. 현장의 조합원들이나 활동가들은 국회의 교섭과정이 방영되는 TV 뉴스를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할 역할이 없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대중을 투쟁의 주체가 아니라 구경꾼으로 만들고 있다. 인권위의 의견이 제출되고 계속된 비공개 교섭에서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는 추측성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설사 어떤 조항의 실질적 진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대중은 점점 더 수동화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동원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사회적 교섭이 필요함을 주장해왔고, 교섭 현장에서 정부와 자본이 말을 바꾸는 지금 이 순간도 총파업 조직화가 힘들다는 이유로 과감한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교섭전략은 스스로 대중의 수동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비정규권리입법쟁취'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의 투쟁으로 쟁취하는 계급 주체로 구성되지 못한다. 투쟁을 통해서 불안정노동을 철폐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계급주체를 형성하고 계급적 역량을 확대해가기는커녕 대리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국면이 정리된 이후 노동자계급은 과연 무엇을 얻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특징적인 것은 3월 17일 민주노총 중집위 결정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진행되는 전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는 좌파들의 대응이 이전과는 크게 다른 양상이었다는 점이다. 전노투는 곧바로 격렬하게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성명서의 격한 문장뿐이었다. 대의원대회도 열리지 않고 사회적 교섭 참가가 결정된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의사결정과정을 방해, 저지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을 해왔던 방식은 반복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적 반대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집행부를 압박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교섭을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공간은 대의원대회 장소이기 앞서서 총파업 조직화의 공간이어야 했다. 비정규개악안 저지를 위한 총파업을 앞서서 조직하고 사회적 교섭의 본질을 대중적으로 폭로하는 투쟁을 전개하지 않았던 사회적 교섭 반대파들은 여타의 조합원 대중들과 같이 수동적인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8) 제도화냐, 운동이냐 결국 사회적 교섭 논쟁은 사회적 교섭을 막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정치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정부의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났고, 이에 대한 민주노총 내 각 분파의 입장의 차이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남한 노동자 운동의 미래에 대한 상이한 전망이 논쟁되었고 각 주체들은 입장을 낼 것을 강제받았다. 이 논쟁에서 노동자 운동의 제도화를 시도하는 정부와 이에 호응하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구상이 투명하게 폭로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자신의 구상을 일관되게 드러낼 수 없었다. <전진>은 사회적 교섭의 '시기상조론'이라는 형태로 동요했으며, <노동자의힘>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금속연맹 통합집행부 구성으로 스스로 전망의 모호함을 드러냈다. 이러한 모호함은 <노동자의힘>을 비판하는 사실 좌파 모두에게도 공통적인 것이다. 특히 사회적 교섭과 연관되어 이후 노동정치체제의 변화에 핵심적인 쟁점인 산별노조에 있어서는 각 세력들의 맹목이 드러났다. 한편, 정부의 의도는 일관되게 관철되었는데,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가 그것이다. 이미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가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하나의 큰 고비를 넘긴 이상 하반기 노사관계 로드맵의 관철로 이를 완성하려고 할 것이다. 노사정 교섭이 우여곡절 끝에 재개되면서 상황은 국회에서 열리는 교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대중 투쟁은 실종되고 이미 선언된 총파업은 계속 대기에 대기를 거듭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제도화 전략을 구사하면서 대중의 운동, 이를 통한 계급주체 형성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선은 노동조합의 역량 자체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운동'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생겨나지만 이를 '조직'으로 전환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조직으로 정착한 노동조합이 애초에 조직이 생겨나게 한 원인인 '운동'에 냉담해진다면 이는 노동조합의 결속력을 저하할 것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한다.9) 한편,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노총이 혼란스러운 교섭국면에서도 이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투쟁동원력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이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교섭을 진행하고 대중투쟁을 기각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사실 이는 집행부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것은 민주노총 출범 이후 계속되어온 제도화와 투쟁동원 전략 모두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제도화를 통한 영향력 행사가 한계에 부딪치자(98년 노사정위), 투쟁을 동원함으로써(98년 이후 매년 총파업 투쟁)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한 급격한 노동조건의 악화를 막아보고자 하는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지그재그 행보는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불안정화 속에서 기층의 실리주의 노선이 팽배해지면서 단위 사업장의 직접적인 이해에는 전투적일 수 있지만 연대는 축소되었다. 투쟁동원 전략과 기층의 실리주의 노선 사이의 괴리가 발생해왔다. 현재 민주노총이 처한 조직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화 전략이 아니라 운동 전략을 복원해야 한다. 그 속에서 투쟁동원도 불가능하게 하는 기층의 실리주의 노선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계급형성의 관점에서 노동운동을 '운동'으로 복원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면한 비정규개악안저지, 권리입법쟁취 투쟁에서도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가하는 것을 통한 제도화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이 필요하다. 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대중을 교육하는 효과를 만드는 것은 물론 연대의 확장을 통한 계급형성, 주체화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협상과 제도화가 대중을 정치적 교육적으로 각성시킬 수 없다. 새로운 대안적 노동운동은 위로부터의 개혁이나 제도화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투쟁 속에서 싹틀 것이다. PSSP 1)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4월 25일)에도 여전히 노사정 실무협상은 '최종시한'을 연장하여 계속될 예정이다. 4월 25일 민주노총 투본대표자회의에서는 법안처리가 6월 국회로 넘어갈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투쟁계획이 논의되었다. 본문으로 2) 이러한 이수봉 대변인의 언급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바쿠닌주의자들의 총파업에 대한 관념적 입장을 비판하는 엥겔스를 인용해서 말하는 다음의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전체 노동계급이 아직 강력한 조직과 충분한 재정적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총파업을 벌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충분히 잘 조직되어 있을 때에는 총파업이 필요없다."(『대중파업』) 그렇다면 과연 총파업을 가능하게 하는 환상적인 시기는 언제 강림하는가? 본문으로 3) 임성규, 「지도부투쟁 조직하면 파행도 없다」, 『매일노동뉴스』, 2005. 3. 9 본문으로 4)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위원회는 금속연맹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대통합 방식의 산별건설과 투쟁하는 연맹을 만들고자 연맹지도력의 대통합 방식을 주장하고 실천하였습니다.”, 「금속연맹 선거에 부쳐」(2005년 3월 30일 노동자의힘 노동위원회) 본문으로 5) 장석원, 「산별교섭 정말 잘 될 때 사회적 교섭 효력 있어」, 『매일노동뉴스』 2005.3.11 본문으로 6)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 실제 정책담당자들을 불러 분명히 교섭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교섭에 끌어내기 어려운 연맹들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매일노동뉴스 3월 8일) '교섭에 끌어내기 어려운 연맹'이라는 표현은 노조 역량에 따라 사회적 교섭을 바라보는 입장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으로 7) 김봉석, 「노사정 합의안 두고, ‘동상이몽’ 여전」, 『매일노동뉴스』 2005.4.5 본문으로 8) 이런 점에서 이수호 집행부의 출범 이후 폭넓게 결성된 첫 좌파연대체가 비정규직 철폐 등 대중투쟁을 조직화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를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사후적인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본문으로 9) 라마스웨이, 「노동조합 운동론의 제유형」, 『노동조합운동론』, 1981 본문으로
일시: 2005년 4월 22일 금요일 6시 장소: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토론: 박하순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사회)/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 김석 공무원노조 국제부장 정리: 최예륜 정책편집부장 <편집자주>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토론을 촉진하는 기관지를 만들기 위해 이번 호부터 '회원쟁점토론' 코너가 신설되었습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쟁점이 되는 사안이나 주제에 대한 의견, 입장을 교환하는 계기로서 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자리는 노동자 국제연대를 통해 반세계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석, 이창근 회원을 모시고 '노동자운동의 국제연대,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국제연대 활동의 경험과 소회를 비롯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의 국제연대의 방향성에 대한 쟁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박하순(이하 박); 회원쟁점토론에 와주신 동지들께 감사 드립니다. 노동자 국제연대라는 포괄적인 쟁점을 잡았는데요. 오늘은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두 분은 국제연대 운동에 대해 상당히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오셨고 지금은 노조 국제부에 계시죠. 국제연대 운동에 뜻을 펼치기 위해 어떻게 준비를 하셨는지,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펼쳐오셨는지 먼저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합니다. 이창근(이하 이);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남한 진보운동이 어려움에 처한 시기에 사회운동의 전망을 고민하면서부터 국제연대운동에 관심을 갖게되었습니다. 두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첫째, 한국 사회운동은 스탈린주의 편향을 극복하지 못하였고,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마르크스주의 전반의 위기로 이어졌죠. 운동이 위기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해외 운동과 역사에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시사점을 받고 싶었습니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전부터 유럽이나 남미에서 스탈린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존재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도식적으로 이해하거나 정통에서 벗어난 곁다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정통이라 믿어왔던 것이 현실적으로 몰락하면서 우리의 이론적, 실천적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이론과 지식의 수입과 소개에 문제점이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진정한 국제주의의 부활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민테른 이후 남반구·북반구의 연대와 상호지원이 스탈린주의 방식으로 왜곡되면서 사실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코민테른도 몰락했죠. 그래서 국제주의 이념이나 실천이 사실상 수십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한 상황이 세계적이며 국내적인 차원에서의 운동의 위기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대안세계화 운동이 급격히 활성화되면서 국제주의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그때에는 코민테른이 재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죠. 그래서 국제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문제의식을 최소한의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전달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김석(이하 김): 저도 이창근 동지와 비슷한 고민으로 출발했습니다. 사회주의권 몰락이나 '코민테른의 부활'처럼 거창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가 필요한데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매개는 무엇인가가 제 화두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소통과 조직의 문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투쟁의 연결고리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제와 쟁점으로 서로 연대할 것인가라는 고리의 문제... 그러한 연결고리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계기로 국제주의 활동형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죠. 그 와중에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고 활동을 함께 하게 됐습니다. 박; 민주노총과 공무원노조에 들어가셔서 어떤 일을 하는지, 꿈꾸었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이: 저는 민주노총 국제사업을 시작하면서 민주노총은 크게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아시아 연대입니다. 국제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반구-북반구 간의 위계와 분할, 대륙별 편차의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제자유노련(ICFTU)1)가 국제 노동자운동 질서를 장악하고 있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국제연대 전략에 대한 사고도 필요합니다. 또한 민주노총의 현실적인 역량의 한계도 고려해야죠.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우선 민주노총은 아시아 지역의 연대를 중요한 고리로서 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제적 연계망의 확산과 다른 대륙과 국제연대도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연대 없이 국제연대를 말하는 것은 실체 없는 구호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또 아시아 연대를 주목하는 이유에는 블록화 문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화가 지역화를 동반한다면 대륙적인 수준에서의 주체형성의 문제가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본의 운동 동학에 대한 명확한 분석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으로 볼 때 지금만큼 대륙적 연대가 강화되어야 할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지역화·블록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면 아시아지역 노동자 국제연대는 무망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아시아노동조합연대회의에 참여했고 동남아 4개국 노동운동동향 보고서 작성 사업을 펼쳤습니다. 올해에는 한국계 해외진출기업의 노동권 탄압 문제에 대한 공동투쟁이나 한일FTA 공동대응 투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노동조합이 반세계화 연대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PICIS 활동의 경험에서 노동조합운동이 국제연대에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가로막는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지금은 ICFTU 등 국제노동운동이 늦었지만 뒤따라가는 분위기죠. 민주노총이 반세계화 투쟁의 주요투쟁목표로 삼고 세계사회포럼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국제연대가 반드시 노동조합끼리의 국제연대로 제한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밖에 몇 가지 문제의식이 더 있었습니다. 하나는 국제연대 사업이 현장과 동떨어진 채 몇몇 전문가나 상층간부 중심의 교류사업으로 진행되는 사업작풍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래서 조합원들의 의식고양을 위한 교육사업에 주목했습니다. 국제연대 활동가수련회라든가 국제노동정치학교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는 국제연대가 일방의 지원이라는 형태가 아니라 진정한 수평적 연대를 가능케 하는 방안을 민주노총이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활동을 평가하자면 문제의식은 있으되, 눈에 보이는 성과는 많지 않았죠. 가장 큰 성과로 볼 수 있는 앞서 말한 수련회나 학교처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는 것이죠. 아시아 연대에 있어서는 문제의식은 강하게 제출했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부족한 상황이죠. 민주노총 내부 자원과 역량의 한계가 있고 다른 나라의 운동에서 주체가 형성되지 못하는 등 한계가 많지만 최소한 문제의식을 공유해나가고는 있습니다. 김; 제가 공무원노조와 관계를 맺은 것은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 때부터입니다. 장기적인 계획이 있지는 않았지만, PICIS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제 역할을 고민했습니다. PICIS는 활동가조직이었고, 정보와 의제 소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대중조직들 속에서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대를 실천하기 위한 고민을 중심으로 대중조직에 직접 들어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활동으로 공무원 노동3권 투쟁에 대한 국제연대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국제적으로 알려내고 국제노동자운동의 압력을 조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활동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공공성 문제였습니다. 공무원 문제는 공공성의 최전선에 있죠. 아직까지도 연결고리들을 찾아내는 과정에 있고요. 공무원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억압해온 이유가 있는 것 아닙니까? 공무원이 지배계급, 자본가들의 이해를 위해 이용당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공무원 투쟁이 그만큼 억압받아온 것이죠. 저는 공무원 노동자운동이 공공성 강화 투쟁과 연결고리를 대중운동 속에서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먼저 공무원 노동자의 의식을 제고하는 교육사업의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해외의 공무원 노동자 운동이 어떠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공공부문 해체에 대한 대응이 대정부투쟁으로 그치거나 개별 초국적자본에 대한 투쟁 등으로 개별화되어있는 상황이죠. 따라서 공공부문의 국제연대가 공무원 노동자운동에게 중심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김석 동지는 네덜란드에 있는 초민족연구소(TNI)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됩니까? 김; 그 때가 1999년 4월이었습니다. 제가 반세계화 활동가로서 준비되어있는 상황이 아니긴 했지만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TNI는 변혁, 개혁의 과제들을 국제적 차원에서 연구하는 지식인 모임이자 광범위한 국제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월든 벨로, 반다나 쉬바, 수잔 조지 같은 반세계화운동의 주요한 이데올로그들이 포진해있죠. 일년에 한번 회의를 하고 반세계화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다 모이죠. 이처럼 정책적·조직적 역량을 모으기 위한 소통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하게 됐습니다. 박; 대개 우리가 국제주의나 국제연대를 뚜렷한 정의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창근 동지 얘기 중에도 나왔지만 한국자본이 세계적으로 진출해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예를 들어 현대가 진출한 국가의 노동자들간 연대도 운동의 항목이 될 수 있고, 이주노동자운동도 국제연대의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국제주의를 소묘하고 무엇을 국제연대의 영역, 공간, 쟁점으로 꼽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ILO, ICFTU 회의 등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것들도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 노조가 국제연대를 구현하기 위한 활동은 어떤 게 있을까요? 김석 동지랑 프랑스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이 주최한 회의에 간 적이 있는데 제3세계와 개도국들이 IMF 구조조정으로 인해 처해있는 조건들이 대개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국제자본이든 금융기구든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열심히 싸운다면 국제주의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투쟁 자체가 국제적인 운동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미 세계화된 자본에 맞서 국내 투쟁을 올곧게 수행하는 것이 국제주의를 구현하는 하나의 내용이나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물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일국 차원에서 열심히 투쟁하면 그것이 국제주의라고 말한다면,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열심히 투쟁하면 전국적, 전계급적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단위사업장 차원의 투쟁을 넘어 산업별, 전국적 투쟁을 조직하듯이, 국내에서 투쟁을 열심히 하면서 전선을 명확히 설정하는 세계적인 투쟁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국제적인 투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정세 속에서 일국의 투쟁이 국제연대나 국제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고를 간과한 경향이 있지 않았나 돌아봐야 할 듯합니다. 패트릭 본드가 시애틀, 프라하에서 세계 활동가들이 모여서 국제기구에 대해 투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국에서 벌어지는 IMF 반대투쟁이 중요한 국제주의 투쟁의 하나라고 얘기했던 적도 있지요. 이; 대체로 동의합니다만, 왜 지금 시대에 일국적 투쟁도 국제주의 운동이 되는가, 그 맥락을 이해할 때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식했든 못 했든 간에 96-97년 총파업 투쟁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유연화에 대한 상당히 중요한 반격의 계기로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투쟁이 국제적 차원의 노동유연화, 금융화라는 쟁점에서 세계적 의의가 있었던 것이죠, 국내의 투쟁과 국제주의를 구현하는 경로가 서로 분절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국제주의를 실현하는 경로가 국내 투쟁을 빼면 뭐가 있냐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일국적 쟁점이라는 것은 거의 사라졌다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세계성을 담지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물론 반대 효과도 고려해야 합니다. 박하순 동지 의견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그런 입장이 국제주의의 진전을 지체시켜서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운동의 관성이 있고 국제연대가 관념적이거나 '고공투쟁'으로 비춰지다 보면, 우리 투쟁을 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관성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칫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분석과 타국의 노동자운동과 연대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히려 그러한 논리를 깨뜨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국내투쟁을 강조하는 입장에는 그런 양면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노동자운동 일부에서 그런 태도로 세계사회포럼 참가에 비판적인 것 같은데 그런 부류를 겨냥해서 하신 말씀 같군요. 김; 이창근 동지가 말씀하면서 양면성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공간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죠. 그 공간이 국제회의장이 아니라 현장이라는 거죠. 그것을 분리할 때 역편향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언어나 비용의 한계와 접근성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국제연대가 상층부 운동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편향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국내투쟁을 정말로 '잘' 한다에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국제주의 전망에 걸맞은 실천이 어떻게 담보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죠. 이; 노동조합에는 생존권 차원의 쟁점이 있습니다. 시장화, 개방화 문제로 인한 공공성의 해체 등의 문제가 있지만 생존권 투쟁이 노동조합의 중요한 목록을 구성하죠. 김석 동지가 얘기했듯 우리가 경계해야 할 편향이 있습니다. 일국적 수준에서의 생존권 투쟁이 소위 '노동자 이기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북반구 노총은 임금과 고용 수준 등 자국 노동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그러한 쟁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한국사회도 그런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면서도 국제적인 원칙을 잃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 공장의 해외이전, 산업공동화, 무역장벽 문제가 한국 노동자운동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고,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저임금을 노린 한국 자본의 해외투자의 증가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야 할 계기가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박; 쟁점이 세계화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예컨대 노동시장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십여 년 전에 미국 토론프로그램에서 미국 조선업 노동자들이 폴란드 등으로 우리 일감이 다 가고 있다면서 산업공동화, 해외이전에 대해서 거칠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보니까 인도 자동차가 한국에 수입된답니다. 국내로 이런 가격이 낮은 제품이 들어올 경우 완성차 문제도 터지지 않겠습니까? 또한 세계화 과정에 노동의 불안정화, 이주노동자 확대, 빈곤화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조건이 전반적으로 하락한다면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의 조건이 형성될 것 같지만, 그래도 노동조건이 세계적으로 동질화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밑바닥을 향한 경주'를 한다고 하지만, 노동조건의 측면에서 다양한 노동자층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제연대의 객관적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으면 합니다. 한 공장 내에서도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갈등이 있는데 세계적으로야 말 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김; 자본주의가 발전할 만큼 발전해야 멸망한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저임금 노동력이 존재하고 소비층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는 지속될 것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죠. 박; 노동조건을 동등하게 만들자는 운동보다는 각 국에 맞는 요구수준에 따른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 노동조합 운동의 국제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이 긴급합니다. 노동조합 운동은 국제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최근에 형성되고 있는 대안세계화 운동들과 화합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조차 결합이 잘 안 되죠. 이것이 화학적 결합이 되려면 노동자운동 자체가 혁신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국제적 실천으로 나아가려면 그러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박; 그렇다면 '왜 노동조합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세계사회포럼이든 지역포럼이든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다른 공간들을 모색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김; 저는 노동조합 운동의 자기 전망을 바꾸는 문제와는 조금 다른 측면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초국적기업의 해외이전에 관해 미국 조선산업 노동자가 항의한 예를 들었는데, 저는 그런 논쟁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의 급진화가 이루어지고 국제주의의 토양을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동조합 운동이 자본의 본질을 벗겨내는 투쟁을 통해 급진화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 내는 건 요원한 일이죠. 박; 이탈리아 사회포럼에 이탈리아 노동총동맹(CGIL)이 적극 참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사회포럼 프로세스가 마을 단위까지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산별노조나 총연맹 차원에서의 모범 사례를 소개해 주신다면? 김; 프랑스 르노 자동차가 벨기에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르노 자동차 노동자들이 수행했던 투쟁2)이 훌륭한 국제연대 사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선 투쟁이 곧 국제연대 투쟁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 미국에서 공장이나 산업을 해외로 이전하는 문제나 '덤핑' 문제에 쟁점으로 떠오를 때. 노동조합이 압력집단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런 활동의 효과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이 이익집단의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자기 이해만 중심에 두고 폴란드 노동자들과 연대나 배려를 사고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또 벨기에-프랑스 연대를 했던 르노 자동차 사례를 보면,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터키공장을 폐쇄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한국의 노동조합이 어떤 행보를 취해야할지가 쟁점입니다. 박; 미국노동자들이 한국철강 수입을 계속 허용하면서 다른 식의 행보를 했어야 했다는 식의 배려가 가능했을까요? 저는 노동자의 특수한 층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답이 없는 문제라 봅니다. 차라리 자본의 본질을 폭로하자는 식의 운동을 하는 방향이 올바른 게 아닐까요? 이; 이를테면 현대자동차가 국내 공장의 상당 부분을 해외로 이전할 경우에 우리의 입장과 기조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나가지 말라고 할 것인가, 나가되 해외 공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최소한도라도 보장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의 본질을 폭로할 것인가? 물론 본질을 폭로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런 문제는 노동조합 차원에서 몹시 투쟁하기 힘든 쟁점이라고 봅니다. 박; '노동조합의 조건'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한, '나가되 해외 공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최소한도라도 보장하라'는 입장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계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동등한 노동조건의 질과 안정성을 보장하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국제협정 안에 사회조항을 집어넣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는지.3) 이; 북반구 노총들의 사업들을 살펴보면 '제3세계 노동조건 감시'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계 초국적기업의 활동 감시'같은 게 나옵니다. 자국의 노동비용의 삭감 시도를 막아내기 위해 외국에 있는 자국계 초국적기업 노동자의 노동권과 진출한 국가들의 임금수준과 고용수준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요한 투쟁과제가 되고 있는 게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나가더라도 노동조건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라"는 요구인 셈입니다. 제가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국제적인 시야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과 정책을 세울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무역과 노동조건의 연계라는 쟁점뿐만 아니라 북반구 노동조합 운동의 조건과 활동방식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내에서 북반구 노동조합과 비슷한 요구사항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북반구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입장과 정책을 모색할 것인가 답해야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저는 오히려 르노의 공동파업에서 하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그러나 저는 르노 투쟁이 국제연대 운동의 모델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본의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만 하자는 것이 아니고, 해외이전 반대투쟁 또한 자본의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자본의 본질, 곧 초과이윤 형성을 위한 착취의 세계화라는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이 되어야 하고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이; 현대자동차의 해외공장 건설은 인건비 절감이 주목적이 아니라 경영확장전략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전략은 다양한 수준에서 현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노조와 협의나, 해외에서 기본적인 노동조건 수준을 유지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장이전 반대투쟁을 하든, 북반구노조와 유사한 요구를 내걸든, 그도 아니라면 이 둘을 동시에 전개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피터 워터만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조항은 WTO의 도움으로 노동권을 획득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전략입니다.4) 이와 비슷하게 '나가되 초과착취 하지 말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입장 아니겠습니까? 소위 '괜찮은 일자리'(decent jop)라는 요구도 사회조항과 유사하게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역시 들어줄 상대가 아닌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격이 아닌가 싶네요. 해외진출자본에 대한 감시활동의 의의가 있다 하더라도... 이; 사회조항의 문제는 실상 대단히 우려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지요. 김; 자본의 운동을 바꾸지 않는 한 패배는 자명한 것이고 우리의 운동은 노동자 전체의 입장에서 투쟁의 씨앗을 남기는 게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자본운동과 노동자 전체의 입장에 대한 고민 없이 '이행기강령'에 대해 말할 수는 없는 거죠. 87년 투쟁 이후 우리가 보았듯이 수많은 노동자운동이 패배했거나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잃기도 했지만 노동자운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런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급진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박; 냉철하게 생각하면 사태의 귀결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내가 활동가로서 노동조합 교육을 나설 때 김석 동지처럼 얘기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일년여 전에 폐업한 어느 노동조합에서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묘수도 없고 싸울 방법도 없고... 그래도 그 기업은 약간이나마 공장인수 가능성이 있지만, 완전 폐쇄라면 노동자들이 공장을 다 떠나버리는 상황에서 공장을 부여잡고 폐쇄반대투쟁을 한다는 것은 지속되기도 힘들 것입니다. 자본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매진하자는 말은 조합원 대중에게 상당히 허무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회조항, '괜찮은 일자리', 기업감시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현실에서 어떤 요구나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 일국에서든 세계적 차원에서든 전반적으로 노동권, 노동조건, 노동친화적인 국제체제 형성 등 대해 각국 노동조합이 공통의 정책을 입안하는 게 지금의 국면에 있어 필요하고 급진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문제, 사회조항·노동조항 문제가 남는데, 대안세계화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 이슈가 무력화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ICFTU를 중심으로 공식적 국제노동조합조직 안에서는 존재감이 남아 있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를 거부한다면 대안이 무엇인가가 문제입니다. 또 '괜찮은 일자리'에 대해 말해보면, 저는 그 요구가 사회조항과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는 지적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국제노동계의 화두의 변화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한참 실업문제와 일자리 창출이 국제노동계의 핵심 화두였지 않습니까. 것이 노동유연화 과정에서 일자리의 질 문제로 변화되었고, '괜찮은 노동'(decent work)이라는 요구가 등장했습니다. 당장 민주노총의 경우도 비정규직 철폐투쟁하면서 고용의 질, 임금·고용조건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량실업시대에서 노동유연화 시대 즉 불안정노동 시대로 접어든 지금, 국제 노동계에서 핵심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괜찮은 노동'이라는 요구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불안정 노동 시대에 적합한 화두로 활용가치가 있는지, 또는 뭔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죠, 박;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 되어야 하고 가능한 만큼 지적, 육체적 능력을 고루 사용하면서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요구할 것인가가 문제죠. ICFTU 등이 로비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괜찮은 노동'이 사회조항과 연결된 측면이 무엇인가 살펴보면... 사회조항은 무역과 노동기준을 연계하고, 예를 들면 노동규정 안 지키면 WTO가 무역제재 가하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반발이 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괜찮은 노동'이 제기될 때도 이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륙협정, 자유무역지대(FTA), WTO, 국가 정책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방법이 필요하며, 따라서 WTO도 무언가 해야한다는 간접적인 압박이 은근슬쩍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괜찮은 노동'이 간접적으로 사회조항을 살려내는 데 봉사한다는 점에서 워터만의 지적은 일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사고해보면 우리가 그것에 대비될 수 있는 화두는 있느냐는 고민이 생깁니다. 정치적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북반구 노동조합들이 제3세계 혹은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노동기준을 어떻게 상승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는데, 이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국제적인 노동기준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가? 그래서 'WTO가 아니라 ILO를 강화하라', 아니면 '국내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라는 말을 빼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죠. 김: 아무리 급진적인 요구라고 해도 누구에게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의 문제는 항상 남게 되고, 어차피 상층부 운동이 됩니다. 이것을 현장에서 조직하지 않는 한... 아까 이야기한 노동기준 문제에 대해 말해보면, 자본이 북반구 노동자들만 착취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제3세계 착취를 동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방법이 있겠냐가 쟁점입니다. 노동자운동의 급진화를 목표로 하고 감시운동 같은 것도 하나의 모델로서 시도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들이 존재할 텐데 이러한 시도들을 묶어줄 수 있는 혹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사회포럼이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동의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직접적인 연대를 매우 강조했습니다. WTO는 당연히 활용할 수 없는 국제기구고, ILO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사업장, 같은 초국적기업의 사업장간 국경을 넘어선 연대가 소중합니다. 누군가를 경유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연대 속에서, 사업장을 넘어선 실천은 아니지만 사업장 내 국경을 넘어선 실천이 노동자 국제연대에 있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그런데 그러한 방식은 대자본을 상정하는 것이고 중소자본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박; '사회운동 노조주의'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각각 주장하는 바가 모두 다른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을 무엇이라 보십니까?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 중 하나가 당 운동으로부터의 탈피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미 현실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사회포럼이든 대안세계화운동이든 어떤 국제당이나 한 조직 혹은 국제정치조직 연합에 의한 전선 형태의 조직체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이 이미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사회운동들이 섞여있고 이미 세계적인 운동의 전개양상이 사회운동을 지향하는 대중운동들의 결합을 통해 진전되고 있습니다. 이; 사회운동 노조주의와 국제주의 실천이란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아까도 말한 것처럼 현재에서는 노동조합운동과 국제적인 사회운동(대안세계화 운동) 사이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공동의 의제를 공유하는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일국적 수준에서의 노동조합 운동이 시대의 과제에 맞게 혁신되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사회운동이 대중운동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실 노동운동과의 결합이 필요하고,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사회운동과 의제와 주체의 측면에서의 결합이 요구됩니다.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 중에 박하순 동지가 이야기한 당 운동으로부터 탈피도 한 요소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급진적인 대중의 목소리를 노동조합도, 당도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표출구로서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가 진행된 게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가 당 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은 당 운동의 재구성 과정과 함께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 운동으로부터의 탈피라기보다는 전통적인 또는 사민주의 당 운동으로부터의 탈피인 것이고, 오히려 당 운동의 재구성을 동반한다고 이해하는 게 올바를 것입니다. 저는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은 연대성의 확장과 강화, 이에 기반을 둔 급진성의 강화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운동이 현재 사실상 정규직·남성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조로 되어있고 자칫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그러므로 연대성을 강화하는 것은 비정규직, 불안정노동과의 연대를 포함한 사회적 연대를 뜻합니다. 이를 통해 관료화되고 위기에 빠진 노동조합운동의 혁신과 급진성의 회복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연대성 강화를 통한 급진성의 강화는 일국적인 수준을 넘어 국제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국제주의에 사회운동의 요소가 내재되어있다고 봅니다. 아까 세계화가 노동자운동에게 던진 현안들에 대해 얘기했지만, 국제주의에는 남-북 노동자의 연대라는 쟁점이 담겨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은 국제주의와 여성주의라고 봅니다. 김;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제기되는 맥락도 급진성의 발현이 아닌가요. 현실 문제에서 노동조합을 통한 노사 교섭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제기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제기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반증이죠. 이창근 동지가 말한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는 노동자 국제주의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말했는데 굳이 그렇게 볼 문제냐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각에는 사회운동이 급진화된 노동자운동과 별개가 아닙니다. 이; 노동자운동과 여러 사회운동이 현실적으로 괴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연대성을 강화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라는 의미입니다. 김; 제가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수입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노동운동은 사회적·계급적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자기 조직을 중심으로 조합주의적 실천을 벌여왔던 북반구 노동운동을 비판하기 위해 제기된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역수입할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박 ; 한국의 여러 활동가들이 사회변혁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하더라도, 현재 조합원 대중의 주류가 그러한 목표로 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맥락에서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제기하고 급진화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지요. 김; 그래서 저는 노동자운동의 국제주의가 매우 중요하고, 국제주의가 하나의 이념 또는 운동의 전망을 표현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워낙 방대한 주제를 제한된 시간에 진행하느라 많은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 듯합니다. 더욱 깊은 토론을 위한 자리를 다음에 또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토론에 참여해주신 동지들께 감사 드립니다. PSSP 1)국제자유노련(ICFTU)은 1949년 11월 세계노동조합연맹(WFTU)에서 공산주의 계열 노동조합과 심한 의견충돌 끝에 탈퇴한 영국 노동조합회의(TUC)를 중심으로 미국의 산업별노동조합(CIO), 미국노동총연맹(AFL:후에 CIO와 합병) 등이 런던에서 결성한 국제노동조합 조직이다. ICFTU는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무역기구(WTO), IMF 등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2002년 현재 148개국 225개 노동조합이 가입해 있다. 한국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가입해 있다. 본문으로 2)다국적 기업인 프랑스 르노 자동차는 1987년 3월 2일 회사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하여 3천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벨기에의 빌보르드 조립공장을 3월 7일부터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반발한 프랑스 본사와 벨기에 공장의 노동자들은 즉각 파업에 돌입하였다. 벨기에 공장의 폐쇄는 곧 각 국의 르노 노동자들 공동의 문제라고 인식한 노동자들은 범유럽적 저항을 조직하였다. 마침내 7일에는 프랑스와 벨기에뿐만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슬로베니아의 르노 공장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1시간 동안 일시 파업을 단행했다. 루이 슈웨치르 르노 회장은 벨기에 공장 노동자들의 요구로 열린 긴급회의에서 일부 노동자들은 전환배치를 통한 고용승계가 있을 수 있지만 공장폐쇄 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본문으로 3)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는 "WTO가 자유무역에 있어 노동기준의 문제를 항상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화를 시작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권리 및 환경보호 조항이 WTO 내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자유무역협정 혹은 투자협정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 노총, 렝고[聯合]의 한일투자협정에 대한 입장도 비슷하다. 그러나, 설사 WTO 혹은 투자협정에 사회조항이 편입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겠는가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 중에서 최초로 노동과 환경이슈가 도입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악명높은 NAFTA가 최초다. NAFTA는 부속협정의 형태로 환경보호위원회와 노동위원회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기능과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 채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한편, 사회조항 노선이 갖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은, 금융세계화 체제를 강화하고 공고히 하고 있는 WTO 및 투자협정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줌으로써, 현재의 제국주의적 지배·종속관계를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창근,〈금융세계화, 한미한일 투자협정 그리고 우리의 대응〉, 《진보평론 2000 여름호》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4) 피터 워터만, 〈새로운 지구적 운동의 국제적 노조주의에 대한 도전에 다른 해방적 노동전략 탐색〉, 《사회진보연대》, 통권 52호, 67p.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