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5년 4월 22일 금요일 6시 장소: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토론: 박하순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사회)/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 김석 공무원노조 국제부장 정리: 최예륜 정책편집부장 <편집자주>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토론을 촉진하는 기관지를 만들기 위해 이번 호부터 '회원쟁점토론' 코너가 신설되었습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쟁점이 되는 사안이나 주제에 대한 의견, 입장을 교환하는 계기로서 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자리는 노동자 국제연대를 통해 반세계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석, 이창근 회원을 모시고 '노동자운동의 국제연대,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국제연대 활동의 경험과 소회를 비롯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의 국제연대의 방향성에 대한 쟁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박하순(이하 박); 회원쟁점토론에 와주신 동지들께 감사 드립니다. 노동자 국제연대라는 포괄적인 쟁점을 잡았는데요. 오늘은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두 분은 국제연대 운동에 대해 상당히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오셨고 지금은 노조 국제부에 계시죠. 국제연대 운동에 뜻을 펼치기 위해 어떻게 준비를 하셨는지,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펼쳐오셨는지 먼저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합니다. 이창근(이하 이);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남한 진보운동이 어려움에 처한 시기에 사회운동의 전망을 고민하면서부터 국제연대운동에 관심을 갖게되었습니다. 두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첫째, 한국 사회운동은 스탈린주의 편향을 극복하지 못하였고,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마르크스주의 전반의 위기로 이어졌죠. 운동이 위기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해외 운동과 역사에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시사점을 받고 싶었습니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전부터 유럽이나 남미에서 스탈린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존재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도식적으로 이해하거나 정통에서 벗어난 곁다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정통이라 믿어왔던 것이 현실적으로 몰락하면서 우리의 이론적, 실천적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이론과 지식의 수입과 소개에 문제점이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진정한 국제주의의 부활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민테른 이후 남반구·북반구의 연대와 상호지원이 스탈린주의 방식으로 왜곡되면서 사실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코민테른도 몰락했죠. 그래서 국제주의 이념이나 실천이 사실상 수십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한 상황이 세계적이며 국내적인 차원에서의 운동의 위기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대안세계화 운동이 급격히 활성화되면서 국제주의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그때에는 코민테른이 재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죠. 그래서 국제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문제의식을 최소한의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전달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김석(이하 김): 저도 이창근 동지와 비슷한 고민으로 출발했습니다. 사회주의권 몰락이나 '코민테른의 부활'처럼 거창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가 필요한데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매개는 무엇인가가 제 화두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소통과 조직의 문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투쟁의 연결고리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제와 쟁점으로 서로 연대할 것인가라는 고리의 문제... 그러한 연결고리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계기로 국제주의 활동형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죠. 그 와중에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고 활동을 함께 하게 됐습니다. 박; 민주노총과 공무원노조에 들어가셔서 어떤 일을 하는지, 꿈꾸었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이: 저는 민주노총 국제사업을 시작하면서 민주노총은 크게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아시아 연대입니다. 국제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반구-북반구 간의 위계와 분할, 대륙별 편차의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제자유노련(ICFTU)1)가 국제 노동자운동 질서를 장악하고 있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국제연대 전략에 대한 사고도 필요합니다. 또한 민주노총의 현실적인 역량의 한계도 고려해야죠.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우선 민주노총은 아시아 지역의 연대를 중요한 고리로서 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제적 연계망의 확산과 다른 대륙과 국제연대도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연대 없이 국제연대를 말하는 것은 실체 없는 구호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또 아시아 연대를 주목하는 이유에는 블록화 문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화가 지역화를 동반한다면 대륙적인 수준에서의 주체형성의 문제가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본의 운동 동학에 대한 명확한 분석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으로 볼 때 지금만큼 대륙적 연대가 강화되어야 할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지역화·블록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면 아시아지역 노동자 국제연대는 무망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아시아노동조합연대회의에 참여했고 동남아 4개국 노동운동동향 보고서 작성 사업을 펼쳤습니다. 올해에는 한국계 해외진출기업의 노동권 탄압 문제에 대한 공동투쟁이나 한일FTA 공동대응 투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노동조합이 반세계화 연대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PICIS 활동의 경험에서 노동조합운동이 국제연대에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가로막는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지금은 ICFTU 등 국제노동운동이 늦었지만 뒤따라가는 분위기죠. 민주노총이 반세계화 투쟁의 주요투쟁목표로 삼고 세계사회포럼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국제연대가 반드시 노동조합끼리의 국제연대로 제한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밖에 몇 가지 문제의식이 더 있었습니다. 하나는 국제연대 사업이 현장과 동떨어진 채 몇몇 전문가나 상층간부 중심의 교류사업으로 진행되는 사업작풍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래서 조합원들의 의식고양을 위한 교육사업에 주목했습니다. 국제연대 활동가수련회라든가 국제노동정치학교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는 국제연대가 일방의 지원이라는 형태가 아니라 진정한 수평적 연대를 가능케 하는 방안을 민주노총이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활동을 평가하자면 문제의식은 있으되, 눈에 보이는 성과는 많지 않았죠. 가장 큰 성과로 볼 수 있는 앞서 말한 수련회나 학교처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는 것이죠. 아시아 연대에 있어서는 문제의식은 강하게 제출했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부족한 상황이죠. 민주노총 내부 자원과 역량의 한계가 있고 다른 나라의 운동에서 주체가 형성되지 못하는 등 한계가 많지만 최소한 문제의식을 공유해나가고는 있습니다. 김; 제가 공무원노조와 관계를 맺은 것은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 때부터입니다. 장기적인 계획이 있지는 않았지만, PICIS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제 역할을 고민했습니다. PICIS는 활동가조직이었고, 정보와 의제 소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대중조직들 속에서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대를 실천하기 위한 고민을 중심으로 대중조직에 직접 들어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활동으로 공무원 노동3권 투쟁에 대한 국제연대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국제적으로 알려내고 국제노동자운동의 압력을 조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활동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공공성 문제였습니다. 공무원 문제는 공공성의 최전선에 있죠. 아직까지도 연결고리들을 찾아내는 과정에 있고요. 공무원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억압해온 이유가 있는 것 아닙니까? 공무원이 지배계급, 자본가들의 이해를 위해 이용당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공무원 투쟁이 그만큼 억압받아온 것이죠. 저는 공무원 노동자운동이 공공성 강화 투쟁과 연결고리를 대중운동 속에서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먼저 공무원 노동자의 의식을 제고하는 교육사업의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해외의 공무원 노동자 운동이 어떠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공공부문 해체에 대한 대응이 대정부투쟁으로 그치거나 개별 초국적자본에 대한 투쟁 등으로 개별화되어있는 상황이죠. 따라서 공공부문의 국제연대가 공무원 노동자운동에게 중심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김석 동지는 네덜란드에 있는 초민족연구소(TNI)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됩니까? 김; 그 때가 1999년 4월이었습니다. 제가 반세계화 활동가로서 준비되어있는 상황이 아니긴 했지만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TNI는 변혁, 개혁의 과제들을 국제적 차원에서 연구하는 지식인 모임이자 광범위한 국제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월든 벨로, 반다나 쉬바, 수잔 조지 같은 반세계화운동의 주요한 이데올로그들이 포진해있죠. 일년에 한번 회의를 하고 반세계화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다 모이죠. 이처럼 정책적·조직적 역량을 모으기 위한 소통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하게 됐습니다. 박; 대개 우리가 국제주의나 국제연대를 뚜렷한 정의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창근 동지 얘기 중에도 나왔지만 한국자본이 세계적으로 진출해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예를 들어 현대가 진출한 국가의 노동자들간 연대도 운동의 항목이 될 수 있고, 이주노동자운동도 국제연대의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국제주의를 소묘하고 무엇을 국제연대의 영역, 공간, 쟁점으로 꼽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ILO, ICFTU 회의 등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것들도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 노조가 국제연대를 구현하기 위한 활동은 어떤 게 있을까요? 김석 동지랑 프랑스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이 주최한 회의에 간 적이 있는데 제3세계와 개도국들이 IMF 구조조정으로 인해 처해있는 조건들이 대개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국제자본이든 금융기구든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열심히 싸운다면 국제주의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투쟁 자체가 국제적인 운동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미 세계화된 자본에 맞서 국내 투쟁을 올곧게 수행하는 것이 국제주의를 구현하는 하나의 내용이나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물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일국 차원에서 열심히 투쟁하면 그것이 국제주의라고 말한다면,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열심히 투쟁하면 전국적, 전계급적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단위사업장 차원의 투쟁을 넘어 산업별, 전국적 투쟁을 조직하듯이, 국내에서 투쟁을 열심히 하면서 전선을 명확히 설정하는 세계적인 투쟁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국제적인 투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정세 속에서 일국의 투쟁이 국제연대나 국제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고를 간과한 경향이 있지 않았나 돌아봐야 할 듯합니다. 패트릭 본드가 시애틀, 프라하에서 세계 활동가들이 모여서 국제기구에 대해 투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국에서 벌어지는 IMF 반대투쟁이 중요한 국제주의 투쟁의 하나라고 얘기했던 적도 있지요. 이; 대체로 동의합니다만, 왜 지금 시대에 일국적 투쟁도 국제주의 운동이 되는가, 그 맥락을 이해할 때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식했든 못 했든 간에 96-97년 총파업 투쟁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유연화에 대한 상당히 중요한 반격의 계기로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투쟁이 국제적 차원의 노동유연화, 금융화라는 쟁점에서 세계적 의의가 있었던 것이죠, 국내의 투쟁과 국제주의를 구현하는 경로가 서로 분절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국제주의를 실현하는 경로가 국내 투쟁을 빼면 뭐가 있냐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일국적 쟁점이라는 것은 거의 사라졌다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세계성을 담지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물론 반대 효과도 고려해야 합니다. 박하순 동지 의견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그런 입장이 국제주의의 진전을 지체시켜서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운동의 관성이 있고 국제연대가 관념적이거나 '고공투쟁'으로 비춰지다 보면, 우리 투쟁을 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관성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칫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분석과 타국의 노동자운동과 연대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히려 그러한 논리를 깨뜨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국내투쟁을 강조하는 입장에는 그런 양면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노동자운동 일부에서 그런 태도로 세계사회포럼 참가에 비판적인 것 같은데 그런 부류를 겨냥해서 하신 말씀 같군요. 김; 이창근 동지가 말씀하면서 양면성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공간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죠. 그 공간이 국제회의장이 아니라 현장이라는 거죠. 그것을 분리할 때 역편향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언어나 비용의 한계와 접근성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국제연대가 상층부 운동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편향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국내투쟁을 정말로 '잘' 한다에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국제주의 전망에 걸맞은 실천이 어떻게 담보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죠. 이; 노동조합에는 생존권 차원의 쟁점이 있습니다. 시장화, 개방화 문제로 인한 공공성의 해체 등의 문제가 있지만 생존권 투쟁이 노동조합의 중요한 목록을 구성하죠. 김석 동지가 얘기했듯 우리가 경계해야 할 편향이 있습니다. 일국적 수준에서의 생존권 투쟁이 소위 '노동자 이기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북반구 노총은 임금과 고용 수준 등 자국 노동자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그러한 쟁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한국사회도 그런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면서도 국제적인 원칙을 잃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 공장의 해외이전, 산업공동화, 무역장벽 문제가 한국 노동자운동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고,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저임금을 노린 한국 자본의 해외투자의 증가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야 할 계기가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박; 쟁점이 세계화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예컨대 노동시장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십여 년 전에 미국 토론프로그램에서 미국 조선업 노동자들이 폴란드 등으로 우리 일감이 다 가고 있다면서 산업공동화, 해외이전에 대해서 거칠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보니까 인도 자동차가 한국에 수입된답니다. 국내로 이런 가격이 낮은 제품이 들어올 경우 완성차 문제도 터지지 않겠습니까? 또한 세계화 과정에 노동의 불안정화, 이주노동자 확대, 빈곤화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조건이 전반적으로 하락한다면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의 조건이 형성될 것 같지만, 그래도 노동조건이 세계적으로 동질화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밑바닥을 향한 경주'를 한다고 하지만, 노동조건의 측면에서 다양한 노동자층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제연대의 객관적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으면 합니다. 한 공장 내에서도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갈등이 있는데 세계적으로야 말 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김; 자본주의가 발전할 만큼 발전해야 멸망한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저임금 노동력이 존재하고 소비층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는 지속될 것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죠. 박; 노동조건을 동등하게 만들자는 운동보다는 각 국에 맞는 요구수준에 따른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 노동조합 운동의 국제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이 긴급합니다. 노동조합 운동은 국제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최근에 형성되고 있는 대안세계화 운동들과 화합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조차 결합이 잘 안 되죠. 이것이 화학적 결합이 되려면 노동자운동 자체가 혁신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국제적 실천으로 나아가려면 그러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박; 그렇다면 '왜 노동조합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세계사회포럼이든 지역포럼이든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다른 공간들을 모색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김; 저는 노동조합 운동의 자기 전망을 바꾸는 문제와는 조금 다른 측면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초국적기업의 해외이전에 관해 미국 조선산업 노동자가 항의한 예를 들었는데, 저는 그런 논쟁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의 급진화가 이루어지고 국제주의의 토양을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동조합 운동이 자본의 본질을 벗겨내는 투쟁을 통해 급진화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 내는 건 요원한 일이죠. 박; 이탈리아 사회포럼에 이탈리아 노동총동맹(CGIL)이 적극 참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사회포럼 프로세스가 마을 단위까지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산별노조나 총연맹 차원에서의 모범 사례를 소개해 주신다면? 김; 프랑스 르노 자동차가 벨기에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르노 자동차 노동자들이 수행했던 투쟁2)이 훌륭한 국제연대 사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선 투쟁이 곧 국제연대 투쟁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 미국에서 공장이나 산업을 해외로 이전하는 문제나 '덤핑' 문제에 쟁점으로 떠오를 때. 노동조합이 압력집단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런 활동의 효과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이 이익집단의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자기 이해만 중심에 두고 폴란드 노동자들과 연대나 배려를 사고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또 벨기에-프랑스 연대를 했던 르노 자동차 사례를 보면,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터키공장을 폐쇄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한국의 노동조합이 어떤 행보를 취해야할지가 쟁점입니다. 박; 미국노동자들이 한국철강 수입을 계속 허용하면서 다른 식의 행보를 했어야 했다는 식의 배려가 가능했을까요? 저는 노동자의 특수한 층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답이 없는 문제라 봅니다. 차라리 자본의 본질을 폭로하자는 식의 운동을 하는 방향이 올바른 게 아닐까요? 이; 이를테면 현대자동차가 국내 공장의 상당 부분을 해외로 이전할 경우에 우리의 입장과 기조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나가지 말라고 할 것인가, 나가되 해외 공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최소한도라도 보장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의 본질을 폭로할 것인가? 물론 본질을 폭로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런 문제는 노동조합 차원에서 몹시 투쟁하기 힘든 쟁점이라고 봅니다. 박; '노동조합의 조건'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한, '나가되 해외 공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최소한도라도 보장하라'는 입장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계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동등한 노동조건의 질과 안정성을 보장하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국제협정 안에 사회조항을 집어넣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는지.3) 이; 북반구 노총들의 사업들을 살펴보면 '제3세계 노동조건 감시'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계 초국적기업의 활동 감시'같은 게 나옵니다. 자국의 노동비용의 삭감 시도를 막아내기 위해 외국에 있는 자국계 초국적기업 노동자의 노동권과 진출한 국가들의 임금수준과 고용수준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요한 투쟁과제가 되고 있는 게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나가더라도 노동조건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라"는 요구인 셈입니다. 제가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국제적인 시야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과 정책을 세울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무역과 노동조건의 연계라는 쟁점뿐만 아니라 북반구 노동조합 운동의 조건과 활동방식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내에서 북반구 노동조합과 비슷한 요구사항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북반구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입장과 정책을 모색할 것인가 답해야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저는 오히려 르노의 공동파업에서 하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그러나 저는 르노 투쟁이 국제연대 운동의 모델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본의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만 하자는 것이 아니고, 해외이전 반대투쟁 또한 자본의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자본의 본질, 곧 초과이윤 형성을 위한 착취의 세계화라는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이 되어야 하고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이; 현대자동차의 해외공장 건설은 인건비 절감이 주목적이 아니라 경영확장전략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전략은 다양한 수준에서 현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노조와 협의나, 해외에서 기본적인 노동조건 수준을 유지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장이전 반대투쟁을 하든, 북반구노조와 유사한 요구를 내걸든, 그도 아니라면 이 둘을 동시에 전개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피터 워터만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조항은 WTO의 도움으로 노동권을 획득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전략입니다.4) 이와 비슷하게 '나가되 초과착취 하지 말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입장 아니겠습니까? 소위 '괜찮은 일자리'(decent jop)라는 요구도 사회조항과 유사하게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역시 들어줄 상대가 아닌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격이 아닌가 싶네요. 해외진출자본에 대한 감시활동의 의의가 있다 하더라도... 이; 사회조항의 문제는 실상 대단히 우려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지요. 김; 자본의 운동을 바꾸지 않는 한 패배는 자명한 것이고 우리의 운동은 노동자 전체의 입장에서 투쟁의 씨앗을 남기는 게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자본운동과 노동자 전체의 입장에 대한 고민 없이 '이행기강령'에 대해 말할 수는 없는 거죠. 87년 투쟁 이후 우리가 보았듯이 수많은 노동자운동이 패배했거나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잃기도 했지만 노동자운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런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급진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박; 냉철하게 생각하면 사태의 귀결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내가 활동가로서 노동조합 교육을 나설 때 김석 동지처럼 얘기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일년여 전에 폐업한 어느 노동조합에서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묘수도 없고 싸울 방법도 없고... 그래도 그 기업은 약간이나마 공장인수 가능성이 있지만, 완전 폐쇄라면 노동자들이 공장을 다 떠나버리는 상황에서 공장을 부여잡고 폐쇄반대투쟁을 한다는 것은 지속되기도 힘들 것입니다. 자본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매진하자는 말은 조합원 대중에게 상당히 허무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회조항, '괜찮은 일자리', 기업감시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현실에서 어떤 요구나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 일국에서든 세계적 차원에서든 전반적으로 노동권, 노동조건, 노동친화적인 국제체제 형성 등 대해 각국 노동조합이 공통의 정책을 입안하는 게 지금의 국면에 있어 필요하고 급진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문제, 사회조항·노동조항 문제가 남는데, 대안세계화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 이슈가 무력화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ICFTU를 중심으로 공식적 국제노동조합조직 안에서는 존재감이 남아 있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를 거부한다면 대안이 무엇인가가 문제입니다. 또 '괜찮은 일자리'에 대해 말해보면, 저는 그 요구가 사회조항과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는 지적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국제노동계의 화두의 변화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한참 실업문제와 일자리 창출이 국제노동계의 핵심 화두였지 않습니까. 것이 노동유연화 과정에서 일자리의 질 문제로 변화되었고, '괜찮은 노동'(decent work)이라는 요구가 등장했습니다. 당장 민주노총의 경우도 비정규직 철폐투쟁하면서 고용의 질, 임금·고용조건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량실업시대에서 노동유연화 시대 즉 불안정노동 시대로 접어든 지금, 국제 노동계에서 핵심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괜찮은 노동'이라는 요구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불안정 노동 시대에 적합한 화두로 활용가치가 있는지, 또는 뭔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죠, 박;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 되어야 하고 가능한 만큼 지적, 육체적 능력을 고루 사용하면서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요구할 것인가가 문제죠. ICFTU 등이 로비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괜찮은 노동'이 사회조항과 연결된 측면이 무엇인가 살펴보면... 사회조항은 무역과 노동기준을 연계하고, 예를 들면 노동규정 안 지키면 WTO가 무역제재 가하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반발이 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괜찮은 노동'이 제기될 때도 이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륙협정, 자유무역지대(FTA), WTO, 국가 정책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방법이 필요하며, 따라서 WTO도 무언가 해야한다는 간접적인 압박이 은근슬쩍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괜찮은 노동'이 간접적으로 사회조항을 살려내는 데 봉사한다는 점에서 워터만의 지적은 일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사고해보면 우리가 그것에 대비될 수 있는 화두는 있느냐는 고민이 생깁니다. 정치적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북반구 노동조합들이 제3세계 혹은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노동기준을 어떻게 상승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는데, 이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국제적인 노동기준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가? 그래서 'WTO가 아니라 ILO를 강화하라', 아니면 '국내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라는 말을 빼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죠. 김: 아무리 급진적인 요구라고 해도 누구에게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의 문제는 항상 남게 되고, 어차피 상층부 운동이 됩니다. 이것을 현장에서 조직하지 않는 한... 아까 이야기한 노동기준 문제에 대해 말해보면, 자본이 북반구 노동자들만 착취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제3세계 착취를 동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방법이 있겠냐가 쟁점입니다. 노동자운동의 급진화를 목표로 하고 감시운동 같은 것도 하나의 모델로서 시도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들이 존재할 텐데 이러한 시도들을 묶어줄 수 있는 혹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사회포럼이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동의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직접적인 연대를 매우 강조했습니다. WTO는 당연히 활용할 수 없는 국제기구고, ILO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사업장, 같은 초국적기업의 사업장간 국경을 넘어선 연대가 소중합니다. 누군가를 경유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연대 속에서, 사업장을 넘어선 실천은 아니지만 사업장 내 국경을 넘어선 실천이 노동자 국제연대에 있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그런데 그러한 방식은 대자본을 상정하는 것이고 중소자본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박; '사회운동 노조주의'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각각 주장하는 바가 모두 다른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을 무엇이라 보십니까?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 중 하나가 당 운동으로부터의 탈피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미 현실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사회포럼이든 대안세계화운동이든 어떤 국제당이나 한 조직 혹은 국제정치조직 연합에 의한 전선 형태의 조직체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이 이미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사회운동들이 섞여있고 이미 세계적인 운동의 전개양상이 사회운동을 지향하는 대중운동들의 결합을 통해 진전되고 있습니다. 이; 사회운동 노조주의와 국제주의 실천이란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아까도 말한 것처럼 현재에서는 노동조합운동과 국제적인 사회운동(대안세계화 운동) 사이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공동의 의제를 공유하는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일국적 수준에서의 노동조합 운동이 시대의 과제에 맞게 혁신되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사회운동이 대중운동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실 노동운동과의 결합이 필요하고,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사회운동과 의제와 주체의 측면에서의 결합이 요구됩니다.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 중에 박하순 동지가 이야기한 당 운동으로부터 탈피도 한 요소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급진적인 대중의 목소리를 노동조합도, 당도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표출구로서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가 진행된 게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가 당 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은 당 운동의 재구성 과정과 함께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 운동으로부터의 탈피라기보다는 전통적인 또는 사민주의 당 운동으로부터의 탈피인 것이고, 오히려 당 운동의 재구성을 동반한다고 이해하는 게 올바를 것입니다. 저는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은 연대성의 확장과 강화, 이에 기반을 둔 급진성의 강화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운동이 현재 사실상 정규직·남성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조로 되어있고 자칫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그러므로 연대성을 강화하는 것은 비정규직, 불안정노동과의 연대를 포함한 사회적 연대를 뜻합니다. 이를 통해 관료화되고 위기에 빠진 노동조합운동의 혁신과 급진성의 회복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연대성 강화를 통한 급진성의 강화는 일국적인 수준을 넘어 국제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국제주의에 사회운동의 요소가 내재되어있다고 봅니다. 아까 세계화가 노동자운동에게 던진 현안들에 대해 얘기했지만, 국제주의에는 남-북 노동자의 연대라는 쟁점이 담겨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핵심은 국제주의와 여성주의라고 봅니다. 김;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제기되는 맥락도 급진성의 발현이 아닌가요. 현실 문제에서 노동조합을 통한 노사 교섭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제기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제기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반증이죠. 이창근 동지가 말한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는 노동자 국제주의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말했는데 굳이 그렇게 볼 문제냐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각에는 사회운동이 급진화된 노동자운동과 별개가 아닙니다. 이; 노동자운동과 여러 사회운동이 현실적으로 괴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연대성을 강화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라는 의미입니다. 김; 제가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수입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노동운동은 사회적·계급적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자기 조직을 중심으로 조합주의적 실천을 벌여왔던 북반구 노동운동을 비판하기 위해 제기된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역수입할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박 ; 한국의 여러 활동가들이 사회변혁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하더라도, 현재 조합원 대중의 주류가 그러한 목표로 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맥락에서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제기하고 급진화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지요. 김; 그래서 저는 노동자운동의 국제주의가 매우 중요하고, 국제주의가 하나의 이념 또는 운동의 전망을 표현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워낙 방대한 주제를 제한된 시간에 진행하느라 많은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 듯합니다. 더욱 깊은 토론을 위한 자리를 다음에 또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토론에 참여해주신 동지들께 감사 드립니다. PSSP 1)국제자유노련(ICFTU)은 1949년 11월 세계노동조합연맹(WFTU)에서 공산주의 계열 노동조합과 심한 의견충돌 끝에 탈퇴한 영국 노동조합회의(TUC)를 중심으로 미국의 산업별노동조합(CIO), 미국노동총연맹(AFL:후에 CIO와 합병) 등이 런던에서 결성한 국제노동조합 조직이다. ICFTU는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무역기구(WTO), IMF 등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2002년 현재 148개국 225개 노동조합이 가입해 있다. 한국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가입해 있다. 본문으로 2)다국적 기업인 프랑스 르노 자동차는 1987년 3월 2일 회사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하여 3천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벨기에의 빌보르드 조립공장을 3월 7일부터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반발한 프랑스 본사와 벨기에 공장의 노동자들은 즉각 파업에 돌입하였다. 벨기에 공장의 폐쇄는 곧 각 국의 르노 노동자들 공동의 문제라고 인식한 노동자들은 범유럽적 저항을 조직하였다. 마침내 7일에는 프랑스와 벨기에뿐만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슬로베니아의 르노 공장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1시간 동안 일시 파업을 단행했다. 루이 슈웨치르 르노 회장은 벨기에 공장 노동자들의 요구로 열린 긴급회의에서 일부 노동자들은 전환배치를 통한 고용승계가 있을 수 있지만 공장폐쇄 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본문으로 3)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는 "WTO가 자유무역에 있어 노동기준의 문제를 항상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화를 시작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권리 및 환경보호 조항이 WTO 내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자유무역협정 혹은 투자협정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 노총, 렝고[聯合]의 한일투자협정에 대한 입장도 비슷하다. 그러나, 설사 WTO 혹은 투자협정에 사회조항이 편입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겠는가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 중에서 최초로 노동과 환경이슈가 도입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악명높은 NAFTA가 최초다. NAFTA는 부속협정의 형태로 환경보호위원회와 노동위원회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기능과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 채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한편, 사회조항 노선이 갖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은, 금융세계화 체제를 강화하고 공고히 하고 있는 WTO 및 투자협정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줌으로써, 현재의 제국주의적 지배·종속관계를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창근,〈금융세계화, 한미한일 투자협정 그리고 우리의 대응〉, 《진보평론 2000 여름호》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4) 피터 워터만, 〈새로운 지구적 운동의 국제적 노조주의에 대한 도전에 다른 해방적 노동전략 탐색〉, 《사회진보연대》, 통권 52호, 67p.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