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자료]민주노총 조직진단 결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민주노총 조직진단 결과입니다.
정세와 2005~6년 민주노총의 투쟁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에 대한 야만적인 탄압을 중단하라 1. 지난 13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안기호 동지가 자본과 검·경에 의해 납치·체포되었다. 현대자동차 사측 관리자와 경비대 100여명이 안기호위원장을 납치한 후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 넘겨버린 것이다. 납치 및 체포과정에서 안기호위원장은 집단 구타를 당했으며 이를 숨기기 위해 경찰은 한시간여 동안 면회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본과 검찰, 경찰이 벌인 이 합동작전을 보며 우리는 치떨리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2. 울산공장 101개, 전주공장 12개, 아산공장 15개, 총 128개 업체 1만여명 불법파견 판정! 27명 노조 간부에 대한 징계 및 해고! 100명에 달하는 5공장 파업노동자 전원해고! 노조간부 출입통제! 118명 형사 고소고발! 노조 부위원장·사무국장 구속! 백주대낮에 안기호 위원장 납치연행! 가족과 친지들에게까지 경고장 발송 및 전화연락을 통해 협박! 농성장에 대한 단전단수조치! 집회시위금지가처분! 퇴거단행 및 출입금지가처분! 수억 원대의 손해배상소송! 한시하청 파리목숨 불법대체인력 투입! 원하청 관리자들을 동원한 폭압적 현장통제! 최남선 동지를 분신자결로 몰아간 집회장에 쏟아지는 엄청난 경비대들의 폭력만행!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에서 밝힌 이 같은 탄압을 보며 우리는 망연자실해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것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런'주장이기에 이토록 벼랑끝으로 내모는 것인가! 불법파견을 정규직화하라는, 법을 지키라는 주장이 그렇게도 발칙한 것인가? 불법파견을 정규직화하라는 정당할 수밖에 없는 요구를 무시하는 현대자동차 자본의 모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의 고혈을 빠는 신자유주의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3.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인사에서 '사회통합'을 아주 강하게 주장했다. 동시에 노동의 유연화, 즉 비정규직의 일반화를 말하며 노동법 개악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현자 비정규노조에 대한 탄압은 계속 이어졌다. 정규직이 비정규직화되어야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는 노무현 정권에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사회통합, 사회적 합의를 외치며 노동자를 두들겨 패는 정권과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4. 노무현 정권 집권 3년차, 정권은 이미 자신이 원한 바를 절반이상 달성했다.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불안정노동의 일반화를 위한 그들의 쉼없는 공격은 지금도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단호하고 간명한 투쟁의 양식은 오직 단결이다. 신자유주의가 그어놓은 분할선을 과감히 뛰어넘어, 인간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단결해야 할 때다.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의 투쟁에 힘차게 연대하며 다가올 2월 노동법 개악에 맞서 단결의 기치로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자.
2004년 미국에 던져진 질문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과 '제국' 기획의 불가능성 최예륜(정책부장) 부시의 재선으로 마무리된 2004년 미 대선 직후, 미군은 이라크 저항세력 소탕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대적인 팔루자 공습을 자행했다. 부시는 11월 10일 연설을 통해 "일부 소수 그룹이 이라크의 민주화를 좌절시켜 권력을 잡으려 하고 있다"며 "이같은 민주주의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은 향후 수주간에 걸쳐 공세를 계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9.11테러 이후 감행된 이라크 전쟁과 공세적 세계군사재편 전략이라는 미국의 일방적 대외정책이 대선을 통해 미국 국민들에게 심지어는 전세계 인민들에게 승인되었다는 식의 태도다. 그러나 무차별폭격 수준의 팔루자 학살 이후, 이라크 내 반미여론은 더욱 고조되고 미군이 창설한 이라크군 4개 대대 중 일부가 미군의 공격지원명령을 거부하는 등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저항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시는 동맹국의 협박을 호소하는 등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2004년 미 대선은 베트남전쟁 중이던 1968년 닉슨의 재선 이래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 그리고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나 총득표수 논란과 같은 사태가 불거지지 않은 깔끔한 승리와 승복의 과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부시의 완벽한 승리로 평가된다. 나아가 미국사회의 보수화의 지표, 부시체제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도가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미국 정치체제가 갖는 근원적 한계가 극대화되는 가운데 민주주의 상징으로서의 미국의 헤게모니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징후가 드러난다. 한계에 봉착한 미국 정치 체제의 '민주성' 미국 대선의 선거인단 제도는 미국이 연방국가이며 각 주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연방헌법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 선거인단 제도로 인해 전체 득표율이 선거결과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선거인단 독식제로 민주당, 공화당 이외의 제3세력의 등장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보수성이 유지가능해진다. 이러한 선거제도는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제어하는 가운데 강력한 양당체제를 뒷받침해왔다. 미국적 정치원리의 내부 긴장은 자유주의와 그것을 방어하는 외피로서의 보수주의적 성향{{) 미국의 정치적 변화란 공화주의적 덕성관념과 지유주의적 사익관념의 대립을 현상으로 하면서 주기적으로 개혁의 이념을 형성하였다. 이는 자유주의자, 흑인, 북부 노동자, 소수 인종집단 등의 민주당의 지지연합이 형성되었던 과정, 기본적 자유주의적 전망 하에서 복음주의적 종교집단 등이 주도적으로 도덕적 이슈를 대중화하여 1980년 레이건의 집권으로 결실을 맺은 보수주의 혁명의 과정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치체제는 미국 건국의 정신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아가서는 구래의 정신으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한계 내에서 지속되어왔다. }} 간의 대립으로 유지되어왔다. 1933년-1945년 민주당 루즈벨트의 4선 기간동안 확립되고 미국 사회의 '새로운 다수'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뉴딜연합은 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경제불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지속불가능해였다. 이는 이후의 레이건의 보수주의 혁명과 네오콘의 등장을 뒷받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내부의 보수화와 급진화 사이의 경합을 1992년 중도보수를 표방한 클린턴의 등장으로 일단락된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클린턴의 등장은 여성, 소수 인종집단, 북부 노동자 등 이질적인 집단들의 연합이라는 위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장으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더 이상 불가능해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냉전의 해소는 평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미국 대외정책의 외피를 벗겨내고 다자주의적 개입의 틀(UN과 국제법)을 초과하는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초래하였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는 분명한 선거조작과 플로리다의 수백 표가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을 결정했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자가 패배를 승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플로리다의 상당수의 흑인남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공민권의 박탈을 초래한 '범죄와의 전쟁'은 분명 레이건-부시/클린턴-고어의 합작품이었다. 투표자의 다수가 모든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선거제도는 미국 자유주의의 몰락을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결집으로 은폐하는 미국식 정치체제의 '민주성'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공민의 지위로부터 추방되거나 이탈하는 다양한 세력에 대해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복지의 종식을 뜻하는 '일하는 복지'와 보편성을 상실한 자유주의의 앙상함은 이러한 미국정치의 '민주성'에 대한 환멸을 안고 이탈하는 세력들을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조직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9.11 이후 군사개입의 확대로 재정적자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인 2억 9천만명 중 4천 5백만이 의료보험으로부터 소외되고 8백만 이상이 실업상태라는 조건이 대선에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당이 내건 의료보호확대와 재정적자 해소 등이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사회의 보수화의 지표라거나 전시에는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는 정치적, 법적 평등을 자유의 동반자로 인식하면서도 경제적, 결과적 평등은 자유와 상반되는 것으로 보는 모순된 미국 자유주의에 대한 인민들의 회의와 환멸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 시민의 상당수는 이러한 미국 정치체제로부터 등돌린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 동성애자 결혼반대, 사형제도 찬성, 낙태 불법화 등이 '도덕적 가치'로 인식되는 여론조사기관들의 분류법은 더 이상 미국 정치에 민중적 의제와 쟁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주의의 몰락이 보수주의자의 결집으로 은폐되는 상황이란 다시 말해 미국 지배계급의 대중의 정치의식에 대한 통제력 상실의 상황이다. 체제의 위기상황은 전쟁과 종교의 상호방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관리될 수 있을 따름이다. 대중의 정치적 참여와 직접적 영향력을 배제하고자 했던 연방헌법의 이념이 자유주의의 위기 상황과 맞물려 대중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초래하는 상황을 자초하였다. 이는 '도덕적 가치'로 표상되는 쟁점들을 동원하는 것 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며, 케리의 깨끗한 승복이란 이러한 미국 지배계급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9.11 -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의 전파에서 요새 아메리카 수호로 9.11은 미국적 자유민주주의를 보편으로 인식하는 특수한 소명의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다. 냉전시대에도 관리 가능했던 전세계 도처에서의 미 패권에 대한 비판과 반전, 반미의 기운은 이제 예측불허의 테러가능성으로 가시화되었다. 부시와 신보주주의자들에 의해 천명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는 행복한 제국의 기획으로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따라서 항존하는 '테러'위협으로부터 강력한 보호망을 형성하는 요새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부시는 미국은 냉전 시대의 '억지와 봉쇄' 정책은 21세기의 새로운 위헙을 대처하는 데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억지'는 방어할 국가나 국민이 없는 그림자 같은 테러리스트 조직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봉쇄'는 대량살상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해 공격하거나 테러리스트들에게 비밀리에 제공하는 독재자들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일방주의를 전제로 예방전쟁 차원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잠재적 적국을 선제공격한다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기관지2002년6월호) 2002.9.17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선제공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국경에 닿기 전에 위협을 식별하고 파괴함으로써 미국과 미국 국민, 국내외에서 이익을 지킬 것이며,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지만 필요한 경우 선제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우리의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공격은 최선의 방어이다. }} 자본과 국방의 심장부에 가해진 예측불허의 테러는 '우월성과 모범성'을 가진 구원자로서의 나라, 타락한 구대륙과도 전혀 다르고 미개한 나라에 대해서는 인도자가 되어야 할 대단히 '예외적'인 나라라는 미국적 경험과 체제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에 대한 도전이었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의 특수성과 도덕적 우월성 뿐 아니라, 선을 보존 혹은 확장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이는 마치 오컴의 면도날{{)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 "Entia non sunt multiplicanda sine necessitate"(존재자의 수를 불필요하게 늘려서는 안된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essitate"(불필요하게 다수가 설정되어서는 안된다) "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소수를 가정하여 설명될 수 있는 것을 다수로 가정하여 설명하는 것은 헛되다.) 이상의 세가지 명제로 요약되는 오컴의 이론은 합리적 이성을 표방하는 서구적 세계관의 근저를 이루며, 적과 나를 이분화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처럼 전세계를 정확히 이분화하거나 지구상에서 미합중국만을 오려낸 자신과 타자에 대한 이분법적 개념을 포함한다.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골자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 혹은 개발하고 있는 잠재적 적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통해 적국의 전체주의적 정권을 붕괴시키고 미국적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정권을 수립해, 주변국가 혹은 잠재적 적국을 민주화한다는 것이다. 신보주주의자의 관념(idea)의 힘이자 이미 공화/민주당 내 흡수된 이러한 입장은 강력한 대외정책의 근간을 이룬다. 부시의 재선은 이러한 기반 위에서 수행한 이라크 전을 비롯, 결정된 대외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그 목적을 철저히 추구하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도덕적 절대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 미국인이 선택한 '도덕적 가치'란 이러한 소명의식과 미국적 특수성에 도전하는 세력들에 대한 화답이며, 4130억 달러라는 엄청난 재정적자와 취약한 경제구조를 안고 있는 미국의 채권의 7000억 달러 이상을 사들이는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미국적 보답인 셈이다. 한편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북한, 이란, 시리아 등 불량국가에 대한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케리의 패배는 자유주의의 몰락을 저지하고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 강화하는 데 다양한 이익집단(과거의 '새로운 다수'로 표현된 소수인종, 환경, 여성, 동성애 등등의 이슈)의 이해는 포괄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선거 이래 공화당과 보수주의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제국'적 기획의 판정승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세계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민족국가로서의 미국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제국의 신민들에 의한 보편성의 승인은 이제 미국의 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자국적 이해를 보호하는 것, 미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요새를 수호해내는 것이 미국 그리고 동맹국의 목표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수호하기 위한 전 세계 국가들의 과제는 FTA 등의 도입을 통한 관세철폐로 미국 대외무역적자를 감축하고 미국 경제를 회복하는 데 동참하는 것, 미국을 핵심 타겟으로 하는 테러 위협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지지엄호하고 미국의 이분법에 따라 '우리편'의 수를 늘려 단결하는 것 등이 된다. 한편 이 보호해야 할 요새에는 미국 부의 40%를 소유한 상위 1% 그룹이 존재하며 더불어 전세계 지배엘리트들이 결집하고 있다.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이 요새에 대한 저항과 공격은 물론 모두 테러로 간주된다. 이 요새 수호전략은 테러가능성을 지닌 불량국가들이라는 위협요인을 제거하고 예방전쟁을 항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전파하는 합의적 미국정치체제가 복원되는 길은 요원하며 세계는 동맹국의 암묵적 합의(다자간 틀로 협의한 바 없다 하여도)를 기반으로 한 더욱 야만적인 미국의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미국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전면적인 반전반세계화 투쟁을 조직하자.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금융적 팽창이 새로운 헤게모니 출현의 전조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이 미국의 헤게모니가 쉽게 지속된다거나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이 무난히 이루어질 전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은 절대적 군사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개입을 펼치기에는 군사력과 재정적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주의적 틀을 강조하는 케리의 주장은 물론 설득력이 전혀 없다. 미국은 이라크라는 미궁에서 저항군에게 깨져나가며 친미정부 수립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에 대한 이라크와 전세계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으며 요새 아메리카를 수호하는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동맹국들의 불만과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라크 전을 수행하기 위한 연합군 운영의 과정에서 미국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각 국의 군대를 말그대로 갖다 쓰고 있다. }} 이러한 상황은 다자주의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일방적으로 군사개입을 상시화 해왔던 이전의 미국의 역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임의적 자위권 발동이라는 선제공격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15억 달러씩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로 표현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은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 지게 되는 정치적, 사회적 비용부담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유동성과 규제철폐 경향 속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미국으로 집중되는 금융분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난점이다. 국방비는 점점 늘어날 것이며 반대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보장비용의 지속적 삭감이 요구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기업 감세정책과 의료보호 축소가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대외정책과 맞바뀌어진 점은 그러한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초국적 기업을 통한 세계시장의 장악과 이를 통한 세계적 부의 집중으로 문제를 헤게모니를 유지해왔던 미국이 이와 관련해 내놓을 수 있는 계획은 많지 않다. 더욱 더 파괴적이고 반민중적인 시장개방 압력과 각종 FTA체결을 가속화하는 한편 각종 사회보장기금의 민영화와 사회보장비용의 감소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이는 물론 미국 내에서의 노동자, 빈민들의 저항과 전 세계 개도국 정부 혹은 민중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에게는 한층 가열차고 더욱 폭넓은 연대를 구축하는 반전반세계화 투쟁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왜 부시의 재선을 막지 못했을까라는 평가보다는 2004 미 대선을 통해 드러나는 미국의 몰락과 야만의 징후를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 내에서 공민의 지위(선거권을 비롯하여 제반 사회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미국 시민들의 불만과 미국 내 사회운동의 반전을 비롯한 투쟁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오늘날의 반미란 전쟁과 세계화에 대한 보다 냉철한 비판과 폭넓은 저항의 조직화라는 과제를 일컫는다. 오늘날의 미 대선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지금, 반전반세계화를 중심으로 한 모든 사회운동의 쟁점들의 연대를 통해 저항의 세계화를 이루어야 할 의무가 요구되고 있다. PSSP
미국 대선과 사회운동 정영섭 (반전팀) 11월 3일 아침 부시를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사회운동 진영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허탈해했다. 그들은 그 '악몽과도 같은 체제'가 끝나있기를 희망하면서 눈을 떴으나 현실은 4년 전보다 악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시는 4년 전보다 큰 격차의 승리를 거두었고 많은 이들에게 '4년 더(four more years)'라는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미국인들이 전쟁과 종교광신주의, 국가 테러리즘에 손을 들어주었다며 한탄하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위안거리를 찾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전 세계적인 반전운동의 성장, 민중의 힘이 대통령의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것, 젊은층의 행동이 커진 것, 자유무역 정책에 대한 반대활동 등을 말하면서 '캐나다로 이주해서는 안될 10가지 이유'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사라 앤더슨, www.CommonDreams.org 2004. 11. 4 }} Nation誌와 같은 언론에서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반전운동의 부활이며 이라크로부터의 철수뿐만 아니라 새로운 전쟁에 대해서도 반대하여 모두가 꿋꿋이 서서 싸워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전반적으로 볼 때 미국 진보진영은 크게 실망하면서도 최근 몇 년간 성장해온 운동의 동력이나 그 성과에 다시 주목하고 향후 운동의 힘을 더 키우기 위한 실천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反부시 캠페인의 한계 미국 반전운동 진영은 대체적으로 반부시 캠페인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만 아니라면 아무라도(Anybody But Bush)'가 그 캠페인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마치 주문처럼 "누가 이기든 우리는 여전히 이라크 점령을 지속시키는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즉, 케리 역시 마찬가지로 전쟁과 점령을 지속하려 하기 때문에 그를 지지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부시를 패배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케리 지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선거캠페인이 벌어졌다. 노동운동을 비롯하여 반전운동의 활동가들은 새로운 유권자들을 등록시키거나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호별 방문을 하거나 선거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반부시 선거운동은 전례없이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 있었고 오히려 김빠진 케리진영의 유일한 활력이었다. 그리하여 운동진영이 총력으로 조직하여 공화당 전당대회 전날인 8월 29일 뉴욕에서 개최한 부시 반대 시위에는 무려 50만 명이나 참여하여 부시행정부의 전쟁과 복지삭감, 노동 공격에 대해 반대를 표시했다. 그러나 케리의 정책은 운동진영의 열망과 활동과는 상관없었고 그에 정반대 되는 것이었다. 비판적 지지라고 표현될 만한 수준을 넘어서, 결과적으로 반전활동가들 다수는 전쟁을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노조활동가들은 자유무역에 찬성하는 이를 위해 노력했으며 권리로서의 의료보장을 평생 대변한 이들도 5000억 달러를 사적이고 이윤지향적인 민간의료보험에 부어넣으려는 사람을 선출하기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마크 두직, 「선거 이후 : 다음은 무엇인가」, www.zmag.org, 2004. 11. 22 }} 반부시 캠페인에 적극적이었던 미국의 대표적인 반전운동 연대체인 '정의평화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은 선거 직후 '한탄하지 말고 조직하라'는 제목의 입장을 내어서 스스로의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우리의 오랜 희망은 이 풀뿌리운동의 발전에 있다.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하다. 물론 부시정책을 패배시키지 못했고, 우리는 수많은 활동가들의 좌절과 분노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는 평화와 정의를 위한 운동은 권력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우리는 언제나 이라크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우리의 운동이 대선 결과에 즉각적으로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래는 쉽지 않겠지만 우리의 노력이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정의평화연합, 「한탄하지 말고 조직하라」, www.unitedforpeace.org, 2004. 11. 3 }} 선거에서는 패배하였지만 반전운동을 더욱 강화하자는 얘기다. 또 하나의 반전운동 연대체인 'A.N.S.W.E.R(Act Now to Stop the War and End Racism)'는 케리 비판에 보다 비중을 두면서 많은 진보단체들이 케리에 영합한 것을 비판하였다. 계급을 대표하는 것에 있어 부시나 케리는 동일하고 그들은 오히려 암묵적인 단결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라크에서 전쟁의 가속화와 국내에서의 억압에 직면하여 반전운동의 전망은 무엇인가? 우리가 너무 약했다고 선언해야 하나? 반전운동은 평화를 위한 투쟁과 국내에서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전투적인 운동을 결합시켜야 한다. 노조를 지키고 의료보장과 연금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에 대항해 투쟁을 시작하는 노동자운동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반전운동은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수호하는 반인종주의 운동과도 단결해야 한다... 원칙적인 입장에 서서 집단적 행동에 참여하고 연대하는 민중들에 의해서 국제적 운동은 강화된다."고 하였다.{{) ANSWER, 「미국의 진정한 분열」, www.answercoalition.org, 2004. 11. 5 }} 운동 자체의 변화 발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미국 반전운동은 반부시 운동으로 드러났고, 이는 냉철히 비판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 정치구조가 진입장벽이 높은 양당제로서 제3후보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지만, 부시정권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를 부시와 비슷한 정책을 가진 케리 지지로 동원해내려는 전술 자체는 전제부터 치명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헤게모니국가인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대한 대대적인 대중투쟁의 발전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할 때, 그러한 방향에서 실천을 해야 했다. 미국 노동운동의 현실 AFL-CIO(미국노동조합산업연맹)로 대표되는 미국 노동운동 역시 전례없는 민주당 지지운동에 역량을 동원했고 그야말로 사력을 다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AFL-CIO는 5,000명의 유급직원, 225,000명의 자원봉사자를 동원했고 수백 개의 전화선거운동센터에 활동가를 보냈으며 6백만 가구를 방문했고 3천2백만 장의 유인물을 돌렸다. AFL-CIO는 4천5백만 달러(약 460억 원)를 썼고 SEIU(미국서비스노조)는 6천5백만 달러, AFSCME(미국공무원노조)는 5천만 달러를 썼다. 다른 노조들도 수백만 달러 이상을 썼고 수많은 활동가들을 케리 선거운동에 내보냈다.{{) 마크 그루엔버그, 「케리 패배 이후의 존 스위니」, www.zmag.org, 2004. 11. 6 }} AFL-CIO는 1억달러 이상을 민주당에 기부했다고도 한다.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 전체 투표의 1/4 정도인 2천7백만 표를 투표했고, 이 가운데 케리-부시 비율은 65%대 33%로 거의 두배 차이가 났다. 선거 이후 AFL-CIO의 존 스위니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노동조합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면서, 민주당이 노조의 이슈를 더 중요시하도록 하고 활동가들과 조합원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우군의 위치에서 최대의 기여를 했다고는 하지만, AFL-CIO 자체적으로도 조직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 기여를 지속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케리가 노조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민주당은 계속 멀어지고 있다. 노조와 민주당의 동맹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노동운동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실패한 케리 선거운동에 바친 것이다. 한편, 민주-공화 양당에 독립적인 노동운동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유의미한 시도가 '백만노동자행진(Million Workers' March)'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ILWU(국제항만노조) 10지부에서 제안된 이 운동은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에 대해서 노동자들에 의한 행동을 조직하자는 의미로 제기되었고 흑인과 라틴 등 유색 노동자조직과 일부 반전운동 조직에 의해 주로 지지받았다. 이들은 워싱턴에서 전쟁과 복지삭감, 일자리축소, 노조공격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벌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AFL-CIO 지도부의 탄압을 받았다. AFL-CIO, 팀스터(트럭운수노조), 미국서비스노조, 국제항만노조의 위원장들이 민주당 지도부와 만나서 백만노동자행진에 반대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백만노동자행진 선언과 향후 방향」, www.millionworkersarch.org, 2004. 11. 6 }}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백만노동자행진의 시위는 대규모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미국 전역에서 모인 1만명 정도가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이들은 AFL-CIO의 관성과 전략을 비판하고 이후에도 백만노동자행진 운동을 지속할 것을 밝히면서 기층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노동운동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하였다. 이것이 운동적으로 유의미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물론 AFL-CIO 지도부의 반대 지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 노동운동이 수십 년 간 민주당과의 동맹에 의존해 왔던 것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온 미국의 비즈니스 노조주의가 이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에 직면하여 조직률 자체가 하락하여 영향력마저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민주당과의 동맹으로는 노동자의 이해도 대변해내기 힘들다. 전체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이해를 위해 운동하고 투쟁하는 노동운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은 어디로 대선 이후 정의평화연합과 ANSWER를 비롯한 미국의 반전운동은 1월 20일 부시 취임식에 맞춘 시위와 3월 20일 이라크 침공 2주기에 맞춘 국제적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대선의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시위를 통한 운동 동력의 재조직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대선이 미국만의 대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과 부시 2기에 대한 저항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반전운동 스스로도 얘기하듯이 반부시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대중들이 처음으로 경험한 정치적인 적극성이 향후 운동의 동력이 보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에서도 역시 새로운 흐름이 더욱 활발히 나타나고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인 전쟁과 신자유주의 하에서 미국이라는 헤게모니 국가에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은 기존의 양당체제 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를 초과해야 하며 세계 각 국의 운동과 연대하여 지배체제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PSSP
현자비정규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철폐투쟁을 지지한다. 1. 100여개 업체, 1만여명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이 잔업거부와 농성투쟁으로 불법파견 철폐와 정규직화 쟁취를 위해 헌신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기아차노조 사태에서 보듯이 노동운동이 심각한 문제점에 직면하여 근본적 혁신을 더 이상 미룰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에 나선 비정규노동자들의 행동은 더욱 값진 투쟁이다. 더욱이 또 한명의 비정규노동자가 분신을 하며 투쟁을 호소한 상황이다. 우리는 현자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이 투쟁이 현자 1만여 비정규노동자 전체로 확산되어 더욱 큰 투쟁으로 번져나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2. 불법파견에 대해 현대차자본은 완전도급화 계획, 비정규노동자 투쟁에 대해 관리자와 경비대를 동원한 폭력자행, 농성장 침탈, 초단기 불법파견 대체인력 고용, 고소고발, 손배청구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비정규노동자 투쟁을 억누르고 진화하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 그것은 저들에게도 이 투쟁에 사활적 이익이 걸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현대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불법파견에 관련된 전체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3. 현대차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외에 다른 해답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숨을 걸다시피 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번져가고 노동운동 전체로 투쟁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폭력탄압, 불법대체인력 투입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더 큰 분노를 불러올 것이다. 노동운동 진영도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연대와 단결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현장의 비정규노동자들이 보다 광범위하게 투쟁에 나서고 정규직노동자들이 든든하게 연대하여 지역과 전국으로 투쟁을 확산시켜 나가자. 노무현정권이 비정규노동법 개악안 국회통과를 2월에 다시 추진하는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최대한 확장되어 실질적인 총파업투쟁의 불씨가 될 수 있도록 매진해 나가자. 2005. 1. 24 사회진보연대
금강화섬 노동조합의 투쟁 차 헌 호 | 금강화섬 노동조합 사무국장 경북 구미에 위치하고 있는 금강화섬노동조합(위원장 백문기)은 금강 자본가(민성기)가 일방적으로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면서 폐업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땀 흘려 일해 왔던 350명의 조합원들이 하루아침에 기계, 건물, 토지와 똑같이 취급되어 폐기처분되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영업부 타격투쟁 2004년 3월 25일, 사측은 사전 통보도 없이 생산라인을 하나씩 다운시켰다. 라인 중단은 우리 조합원들의 목을 겨누는 비수였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을 다 죽이려고 덤벼드는 사측의 공격에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우리 노동조합은 사측의 칼날을 피해가지 않았고 정면으로 맞서 3월 25일을 기점으로 간부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사측은 공장을 전면 중단해놓고, 이에 맞서 투쟁하는 조합원 전원에 대해 4월 12일자로 정리해고 통보서를 날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조합원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사측의 행위는 조합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사측은 "회사가 조합원을 해고하고자 할 때는 30일 전에 본인과 조합에 통보해야 한다."는 단협까지 완전히 무시했다. 이것은 근로기준법에도 명백히 위반되는 행위였다. 노동조합은 사측의 후안무치한 부당행위에 대해 노동부에 고소하고, 4월 16일 전체 조합원들이 비상집결해서 버스 5대를 타고 구미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우리는 서울영업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리해고를 반드시 철회한다는 결의로 삭발투쟁을 진행했다. 정리해고를 박살내기 위한 상경투쟁에서 서울영업부를 사냥개처럼 지키고 있는 폭력경찰들과 부딪혀야 했다. 우리는 폭력경찰의 저지선을 뚫었고 사장실까지 밀고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우리를 다 죽이려 하는 자본가에게 해고통보서 뭉치를 집어던졌다. 겁에 질린 사장 민성기는 정리해고 통보로 노동조합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의도대로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정리해고를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들의 단결된 투쟁으로 정리해고를 철회할 수 있었다. 우리 노동조합은 이 정리해고 철회를 통해 사측에 대한 투쟁의 기선을 잡았다. 조합원들은 단결된 힘을 확인했고 이후 투쟁에 필요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모아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금강자본가를 통해서 공장을 재가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투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밀어붙이기로 했다.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민성기 사장을 퇴진시키고 공장을 재가동하기 위한 다각적인 활로를 모색하는 투쟁으로 전진해나갔다. 향후 지속적인 투쟁의 사전준비와 활동의 조건들을 창출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부 대오가 서울에 남았다.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한 23명의 동지들이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면서 금강화섬투쟁을 알리는 선전전을 지속했다. 구미 지역에서의 투쟁 구미 공장에서는 우선 12억의 전기 요금이 체납되어 전기를 끊겠다며 매일 찾아오는 한전과 싸워야 했다. 우리 조합원들은 한전 직원이 정문을 절대로 통과하지 못하도록 봉쇄했다. 우리는 사측을 상대로 노동조합과 기숙사에 전기를 확보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그 누구도 전기를 끊을 수 없음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그 결과 사측이 책임지고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고 생활용수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한전은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구미공장 사수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5월, 우리는 거점인 구미 공장을 사수하는 투쟁을 전개해나갔다. 그리고 구미 노동부, 시청, 칠곡군청,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등에 몰려가 금강화섬의 문제와 우리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권적 요구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항의집회를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노동자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해결하고자 하는 성실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지금 국회의원으로 있는 한나라당 이인기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당직자들은 우리가 입고 있는 붉은 투쟁조끼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나가라고 하는 황당한 일까지 당해야 했다. 지방자치단체, 노동부, 국회의원, 그 누구도 우리 금강화섬 노동자들이 죽든 말든 어떠한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렇다! 이것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그들은 결코 노동자의 편일 수 없다. 투쟁과정에서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끼고 내리는 결론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 노동자들의 문제는 우리들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과 조직된 투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 노동조합은 초점을 이동시켜나갔다. 언제나 변함없이 꾸준히 진행했던 것이지만, 우리들은 공단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구미시민이 많이 이동하는 지역들을 정해서 선전전을 진행해갔다. 노동자와 시민들 한 명 한 명에게 선전물을 전달하고 플래카드를 걸어서 금강화섬의 문제점을 알려나갔다. 우리가 진행한 선전전은 많은 구미지역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금강화섬의 문제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적어도 우리의 투쟁을 비난하거나 외면하는 악조건을 제거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1차 서울 상경투쟁을 위한 준비 노동조합은 우선 사측에 퇴직금 지급을 요구했고 50%를 먼저 받아냈다. 노동조합은 전체 조합원의 퇴직금 50%인 15억 원을 노동조합에 위임하여 전부 모아서 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이에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9억 7천만 원을 노동조합에 위임했다. 노동조합 통장에 조합원들의 퇴직금을 모으고 끝까지 함께 투쟁한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공장 가동이 중단되어 우리들이 일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 노동조합이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에 나서야 하며, 더 나아가 폐업의 원인에 근본적으로 맞선 투쟁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폐업이 분명한 상황에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제조업공동화) 문제로 인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사회적 차원으로 여론화하고, 자본가들의 경쟁과 착취의 기초를 유지보호하고 있는 자본가 정부의 정책을 공격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했다. 우리는 투쟁의 대상을 자본가 정부, 자본가 정당에 맞추면서 금강화섬 공장 재가동의 필요성과 전체 조합원 고용승계의 정당성을 알려내는 투쟁을 기획해나갔다. 우리 노동조합은 6월을 기점으로 해서 집중적인 서울상경투쟁을 준비했다. 그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목표와 기조를 세우고 투쟁에 임했다. 우리들 조합원의 힘으로 고용승계를 쟁취하고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간부들의 활동력을 강화하며 마지막으로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계급의식을 정립하는 투쟁으로 만들어나간다. 또한 현재 투쟁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함께 투쟁한다." 5월 30일, 150명의 조합원들이 상경투쟁을 시작했다. 1차 서울 상경투쟁 우리 노동조합은 상경투쟁에서 할 수 있는 투쟁을 최대한 전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과천 정부종합청사, 화섬협회에서 거의 매일 집회를 진행했다. 또한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과 대정부 현안투쟁에 최대한 결합하여 투쟁했다. 대우종합기계 집회, 정오교통, 보건의료 총파업, 장기투쟁사업장 해결 촉구집회, 보안수사대 해체 집회, 여중생 2주기 추모집회, 이라크 파병반대 범국민대회, 반전평화 반미반세계화 한반도 자주통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WEF 동아시아 정상회의 저지투쟁, 최저임금 쟁취투쟁 등이 그것이다. 150명의 대오를 10개 조로 구성해서 조장을 선출했다. 하루의 투쟁을 마친 저녁에는 시청각교육과 강의를 진행했다. 조별토론을 통해 그 날의 투쟁을 평가하며 다음 날의 투쟁을 준비해나갔다. 상경투쟁을 전개하면서 사측은 4월, 5월 체불임금을 한 번에 지불했고 6월, 7월까지 임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리고 작년 11월 열사투쟁 정국과 맞물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투사답게 싸우다 구속된 박태규 조합원의 해고를 철회하는 데 합의했다. 지금 박태규 동지는 3년의 실형을 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상경투쟁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은 대정부투쟁이 우리들의 고용승계에 도움이 되겠느냐 하며 반대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어렵게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과 연대하면서 조합원들의 의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명동성당에서 장기간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운 투쟁을 보면서 우리들의 투쟁은 그다지 힘들지 않은 투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최저임금 쟁취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그것은 최저임금 투쟁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진정한 생존권 투쟁이고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기에 우리들의 투쟁으로, 나의 투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가슴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조합원들이 상경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안 구미에 남아있던 조합원들은 노동부와 칠곡군청 등에서 항의집회를 조직하고 지역선전전을 전개하면서 구미공장을 사수했다. 상경투쟁은 우리 조합원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성과를 낳았다. 우리들의 1차 상경투쟁은 한국합섬이 인수업체로 등장했고 한국합섬 자본이 금강화섬을 인수할 경우 3가지 (노동조합, 고용, 단체협약) 승계가 보장되어야 함을 합의하면서 마무리되었다. 1차 집중 상경투쟁 이후 구미로 내려와서 공장을 지키고 있던 조합원들과 함께 상경투쟁을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고 2개월 동안의 휴식기를 가졌다. 우리는 구미공장을 사수하면서 조합원에 대한 교육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지역 투쟁사업장에 연대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다음 투쟁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조합원들이 계급적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조직하지 못한 것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금강화섬노동조합이 5년의 짧은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가 폐업의 문제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바라보고 폐업이라는 절망적인 조건에서 조합원들을 흔들리지 않는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어쩌면 노동조합의 경험이 적었기에 우리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조합주의적이고 실리주의적인 관점에 물들지 않고 노동자적이고 원칙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한다. 폐업투쟁이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투쟁이 아니라서 이탈하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을 묶어내는 데 어려움이 따랐고 생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장기투쟁을 요구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스스로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기만 하면 거침없이 선봉에 나선다는 것을 우리는 투쟁을 통해서 경험하고 배워왔다. 현재 금강화섬은 매각절차를 밟고 있다. 유력한 인수자로 등장했던 한국합섬이 지금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인수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고 2차 집중 상경투쟁을 조직했다. 우리 노동조합은 더 이상 자본가들이 무엇인가를 해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 분명했다. 우리는 투쟁의 과정에서 폐업의 이유가 단지 금강자본가의 경영책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들 간의 끊임없는 경쟁을 토대로 하며, 경쟁에서 떨어져나가는 기업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폐업의 재앙은 고스란히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죽어라고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이 찾아오고, 하루아침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임이 분명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부도나 휴폐업, 공장이전 등을 통한 제조업 공동화현상으로 노동자들의 대량실업을 발생하여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금강화섬 노동조합은 현재까지 250일 넘게 투쟁을 전개해왔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투쟁이 더욱 사활적일 것이다. 우리가 2차 상경투쟁의 내용과 성격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그리고 상황이 우리 기대와는 정반대로 전개되면서 우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릴 때 어떻게 결사적으로 싸워나갈 것인가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렵지만 노동조합의 기본이념을 지키기 위해서 어렵지만 또다시 대정부 투쟁을 목표로 투쟁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우리들의 투쟁을 선전하는 확대하는 방침으로 2차 집중상경 투쟁을 기획하며 준비했다. 2차 집중 상경투쟁 11월 8일부터 우리들의 투쟁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2차 집중 상경투쟁의 방향은 한국합섬 타격투쟁과 제조공동화 저지를 목표로 투쟁 과정 속에서 조합원들의 계급의식을 고취시키고 간부대오의 활동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장기투쟁 사업장으로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어려웠지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투쟁하는 사업장과의 연대 속에서 금강화섬 문제를 알려내는 것이었다. 상경투쟁 동안 우리는 많은 연대투쟁을 진행하였다. 국회,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과천 종합정부청사, 대정부 투쟁을 시작으로 시설운영 민주화를 외치며 투쟁하는 정립회관 동지들,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외치며 투쟁하는 장애인 동지들, 노동허가제를 외치며 투쟁하는 이주동지들, 단식농성을 전개하며 투쟁하는 코오롱건설 동지들,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개악을 반대하며 국회의사당 타워크레인 고공투쟁을 전개하는 동지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치며 투쟁하는 새마을 여승무원 동지들, 노동조합조차 인정하지 않지만 힘차게 투쟁하는 한원C.C 동지들,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 동지들, A&O 동지들, 이런 모든 투쟁하는 동지들과 결합하고 함께 연대투쟁을 전개하며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대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워나갔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희망을 얻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우리를 실망스럽게 했으며 우리 투쟁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상층부의 무관심과 소극적인 자세로 강력한 현장 투쟁력과 더 큰 결의가 요구됨에도 투쟁은 지지, 엄호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투쟁사업장을 방문하면서 아직도 여전히 노동자적인 관점을 가지고 투쟁하는 동지들이 너무나 많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역시 우리의 희망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금강화섬의 투쟁은 희망적인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금강화섬은 제조공동화 저지 투쟁일 뿐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적 원칙을 준수하여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투쟁과 노동자는 하나라는 원칙으로 강고하게 투쟁하고 있다. 현재 사라지고 있는 민주노조 운동의 흐름 속에서 금강화섬 노동자들의 이러한 투쟁이 우리 전체 운동에 많은 부분 모범적인 사례로 남아 연대투쟁의 소중함과 필요성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금강화섬 노동조합의 미비한 투쟁에 관심과 연대를 부탁한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