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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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년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운동 내에서 최대의 화두는 이른바 '사회적 교섭'이었다. 현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사정 협의기구에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사회적 교섭구조 확보' 문제를 지난 9월 21일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안건상정은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다수 중앙위원들의 반대로 내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로 미뤄진 상태다. 공식적인 노사정 협의기구 복귀 결정은 유보된 상태지만, 민주노총은 이미 2차례에 걸친 (LG칼텍스 직권중재로부터 투쟁사업장 공권력 투입까지 일련의 사태로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서 노사정 협의기구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 집행부의 당선과 함께,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노사정 협의기구로의 복귀 과정은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적 제도화를 가속화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회적 합의주의 문제는 노조운동에 내재되어 있는 경향성 문제일 수 있고 그것이 특정 세력으로 표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보다 본질적으로는 노동조합 운동이 항상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위험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1. 유럽식 사회적 합의 주의 모델
지금의 사회적 교섭, 사회적 대화의 논의는 주로 유럽식 사회적 합의주의를 모델로 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일반적으로 정책협의 제도를 발전시키고 공공정책을 정부와 기업을 대표하는 최상위 사용자 단체와 노동자를 대표하는 최상위 노조 연맹 사이의 공개적 협상을 통한 공식적, 비공식적 협약으로 결정하는 노사정 공동결정의 형태를 일컫는다.
유럽의 경우 코포라티즘 체제의 성립과정에서 노조의 계급타협 노선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관철되었다. 각국의 사민당을 경유하면서 정책협의 제도가 발전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 노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된다. 노사정협약의 안정화 과정에서 공공정책이 노조와 사용자단체의 타협에 의해서 결정되고, 의회의 결정이 사후적이거나 상대화된다는 점에서, 사회세력들 간의 합의로 국가를 운영하는 코포라티즘 국가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노조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충실하게 기능하게 되는데, 노조의 노사정 합의참가는 결정된 국가 정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에 기여하게된다. 또한 노조는 각종 국가기구의 위원회에 결합하면서 국가기구의 일부로 직접적으로 포섭되는 과정을 겪었다.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은 중앙 집중적인 산별노조체제, 이에 기반한 중앙단체교섭, 강력한 사민주의정당,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복지제도와 높은 수준의 노동 보호제도와 기본권, 이에 기반한 생산성 증가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유럽 사민주의사회 특히, 영국과 스웨덴에서 신자유주의는 코포라티즘 타협 체제를 공격하거나 약화시켰다. 그로 인해 양자는 조화될 수 없고 모순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의 폴더모델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조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코포라티즘 모델로 평가되며, 각광을 받게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적 합의를 정당화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데, 네덜란드는 신자유주의 유연화를 합의의 방식으로 갈등 없이 추진하는 동시에 낮은 실업률, 최소한의 사회적 노동기준을 유지한 특이한 사례였다. 코포라티즘론자들에게 네덜란드 사례는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하고자 했던 일, 노동의 협력 하에 이루어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가능함을 입증한 사례가 되었다. 결국 노사정협의 체계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자운동을 제어하고 노동자 대중을 동원하는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2. 한국에서 코포라티즘이 가능한가
유럽(특히 네덜란드)과 한국은 역사적 구조적 조건이 매우 다르다. 네덜란드의 경우 취약하다고 하나 중앙 집중적인 산별노조체제, 사민주의정당이 있으며 복지제도, 노동보호 제도와 기본권을 구비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따라가려고 하는 유럽의 산별노조 체제는 코포라티즘 체제의 유기적 일부이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유럽모델을 참고한다는 것은 조직 형식적인 측면에 대한 참고를 넘어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유럽식의 코포라티즘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 하다. 남한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노사정 합의 체계의 성공 가능성은 유럽식 산별노조 모델의 성공 가능성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또한 산별노조 없이는 노사정 합의기구가 발전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쉽지 않은 것이 남한 노조운동의 조건이다.
여기에 계급대표성의 문제도 존재한다. 현재 민주노총이 계급대표성을 갖는 것은 전노협 이후 전투적으로 전체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투쟁을 진행하지 않을 때, 대표성을 상실한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비정규직의 증가로 인해 가뜩이나 대표성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합의주의는 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현재 노무현 정권은 노동배제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유럽식 합의주의와 산별협약 추진을 병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취약한 정권의 정치역량과 함께 반주변 국가로서 안정적인 계급 타협의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는 점,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의 유효성 상실 혹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의한 폐기라는 상황에서 그것은 성공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이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대응이다.
3. 시대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어떤 정파나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노동조합운동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속적인 위험이다. 이를 극복기 위해서는 우리는 남한사회에서 코포라티즘이 불가능하며 만에 하나 추진될 지라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노동자운동이 코포라티즘을 추종하면서 국가의 정책들을 정당화 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남한의 노동자 운동이 코포라티즘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타협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조직 내부의 균열을 심화키고 조직적 역량을 후퇴시키는 시대착오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특히 코포라티즘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노동자 집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내국인/이주민 등 노동자의 분열이 심화될 것이다.
사회적 교섭기구 복귀에 대한 결정이 내년 1월 대의원대회로 넘겨져 있다. 당면 시기 노사정위 참가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노사정위 참가와 코포라티즘 체계 형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경고하고 반대의 경향성과 실물적 흐름을 창출하고 조직화하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한다. 노사정위로 대표되는 사회적 교섭 기구 복귀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코포라티즘의 불가능성과 불안정성 폭로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 저지는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투쟁을 조직함으로서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과제와 별도로 분리된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의 과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코포라티즘적 합의를 추구하는 입장이 가지는 한계의 정세적인 핵심이 신자유주의라는 상황에 있다면, 이를 저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 분쇄투쟁 속에서 가능해 질 것이다.
노동자간 분열이 심화되고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공세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기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방어하려는 의식이 많아지고 더 열악한 노동자들과의 연대의식은 얕아지고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상황과 대결해야 한다. 이에 노동자간 분할을 막고 연대의식과 헌신성을 강화하는 계급 형성의 관점이 당장의 영향력 행사보다 오히려 더 긴급한 시점이라고 강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은 노동운동의 연대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주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불안정노동 반대투쟁은 코포라티즘의 효과이자 작동 방식으로 노동자 대중의 분할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따라서 불안정노동 반대투쟁을 노조 운동 안에서 전면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전면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급소가 될 것이다. 비정규, 여성, 이주노동자와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이 투쟁을 자기과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국 연대 지향적인 노동운동,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을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운동으로 주체를 발굴하고 계급 형성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위해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