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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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맹 산하 293개 사업장(13만여 조합원)중에서 올해 주5일제 실시사업장(정부산하기관 및 1,000인 이상 사업장)은 50여개 사업장이다. 거의 모든 사업장은 주5일제 강제시행일인 7월 1일 이전에 거의 타결이 되었다. 그 중 궤도연대(서울, 인천, 부산, 대구지하철, 도시철도, 철도 등) 소속 사업장이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쟁취,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신규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며 오는 7월 21일 총파업의 배수진을 치고 투쟁에 들어간다.
연맹에는 장기투쟁사업장도 많다. 7개월 째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예술노조와 광주환경위생노조, 장애인콜택시노조, 민주적 기관운영 쟁취를 위해 싸우는 소아마비정립회관노조, 위장폐업에 맞서고 있는 자동차운전학원노조 등등.... 오랜 시간 질기게 싸우는 노조들도 있지만, 그 외 연맹 산하에 많은 노조들은 회의하고, 간담회하고, 교섭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장황히 우리 연맹 상황을 읊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할 일도 많고, 싸울꺼리가 많다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현안이 이렇게 많으니,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파병을 철회하라고 절규하며 죽어간 후 연일 광화문이며, 종묘에서 ‘파병철회’를 외치는 정세 속에서 노동조합은 참 할말도, 할 일도 없이 무기력해지는 것에 대한 상대적인 강조일 뿐이다. 변명하자면 그 만큼 본의 아니게 내부사정으로 신경 못 쓰고 있다는 말이다.
‘반전’, ‘평화’, ‘반핵’, ‘환경’, ‘여성’, ‘장애’ 등의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 무기력증.....이 원인을 찾아서 치료해야 진정한 노동운동의 혁신과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을! 이런 얘기 나오면 사실 좀 답답해진다.
지난 파병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노동자들의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주로 광화문에서 저녁 7시부터 진행되는 촛불집회에 가면 노동자들(공공연맹 조합원)은 촛불을 들고 수동적으로 몇 시간 씩 앉았다가 가는 게 고작이다. 총연맹이 조합원들에게 집회 참가 지침을 내리고 조직하는데도 그나마도 몇 명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집회가 워낙 길어서-보통 3시간 이상이다!!- 끝까지 다 있지도 못한 채 이내 자리를 뜨고 만다.
집회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일어서는 이유를 노동자들이 참을성이 없고, 파병철회에 대한 의지가 적어서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집회 시간이 긴 것도 있지만, 사실 촛불집회에 대한 문화적, 정치적 반감이 크게 작용한다. 팔뚝질 한번 안 하고, ‘아침이슬’, ‘광야에서’, ‘솔아솔아’만 연거푸 부르며 내내 쭈구리고 앉아서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을 철회해주세요~~”라고 외치는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되려 기가 빠져서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번 참석한 사람들은 집회에 다시 잘 오지도 않는다. 어떤 조합원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시간만 아깝다”고 잘라 말한다. 집회 내내 내재되어 있는 교묘한 논점과 정치적 분열지점을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오히려 촛불로 분노를 통제, 조절 당하고 있음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파병’은 반대하지만 노무현은 반대 안 하는 ‘착한 시민’, ‘덜 정치화된 시민’으로 포장됨을 느끼는 순간,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불청객이 된 듯이 두리번거리다 가버리는 것은 투쟁 속에서 단련된 훌륭한 감각 덕분일까? 노동자들을 파병반대 투쟁에 좀 더 힘있게 조직화하려면 역시 ‘노무현 퇴진’과 ‘파병철회’를 나란히 앞세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좀 더 신이 나서 투쟁할 것 같단 말이다.
이제 집회 성격 탓은 그만하겠다. 사실 반전평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독자적 실천이 너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작년 초 파병반대 투쟁을 진행 할 때도 독자적인 투쟁한번 못해보고,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해 놓은 집회에 참석해서 ‘집회가 너무 유하니 뭐니’, 불만만 토로하다가 돌아선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특성을 살리고 노동조합 내에서 순전히 반전평화, 파병반대를 가지고 투쟁 사례도 거의 없다.
하지만 김선일씨가 제국주의와 테러리즘이 양산하는 ‘피의 악순환’ 속에서 무참히 죽어간 뒤, 그나마 올해 노동조합의 반전투쟁은 좀 달라진 듯 한다. 공공연맹 산하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등이 속해 있는 항공연대에서 지난 6월 24일 파병군 수송비행 거부선언을 했고, 연맹 산하의 경기도노조는 지난 6월 30일 “정부가 이라크파병을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미군부대 안에 있는 쓰레기 수거 거부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한 바 있다. 모두 노조의 특성을 살린 실천적 투쟁이다.
공공연맹 산하 노동조합 이외에도 화물통합노조(준)도 지난 6월 25일 “이라크로 가는 군수물자를 운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전교조는 6월 28일 ~ 7월 3일을 ‘고 김선일씨 추모기간’으로 정해 ‘반전평화’를 주제로 한 계기수업을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일제히 진행했다. 이밖에 금속노조 대구지부는 지난 7월 7일 오후 2시 파병반대 등을 내걸고 대구에 있는 미20지원단 앞에서 이라크 파병철회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일천했던 일년 전 노동조합의 파병반대 투쟁과 비교해 보면,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반전’, ‘평화’, ‘반핵’, ‘환경’, ‘여성’, ‘장애’ 등....노조의 무기력증을 환기시켜주는 의제들을 노동조합 내부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미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임단협에 매몰되는 경제적인 투쟁으로는 ‘조직율’하락으로 대변되는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사회적 보편적인 과제를 가지고 이른바 ‘대안 세계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은 남한사회 내 하나의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노동조합 외부에서 혼란스럽게 마구 흘러 들어오는 ‘테러’, ‘저항폭력’의 개념들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입장 없이 수용할 것이 아니라, 올바로 정립하고 근본적인 비판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야말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전쟁 속에서 이라크 노동자민중들의 인권, 노동권, 여성권에 대해 제기해야 한다. 그래서 ‘공장을 뛰어넘는 연대’와 더 나아가 ‘국경을 뛰어넘는 연대’를 경험하자! 이라크에서 희생된 1만 여명의 김선일에 대해 침묵하지 말자!
노동운동, 노동조합 운동이 그토록 열망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적 투쟁과 위기탈출을 위한 몸부림은 오늘날 ‘반전평화’, '파병철회‘ 투쟁과 같은 사회운동의 텃밭에서 그 씨앗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PSSP
※ 이 글은 파병이 되기 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하지만 시기적 경과를 감안하더라도 파병철회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유효하기에 이 글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