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불안한 요소가 있죠. 차 자체로만 봤을 때도 불완전한 요소가 있고 승강장에도 안전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불안하죠. 차라는 게 아무리 정밀하게 고쳐도 본의 아니게 고장이 날 수 있는 건데 공사는 인원충원 안 하고 결국 검수 시간을 줄인다는 건데. 안전에 대한 방치나 다름없죠." “참을 수 없을 정도면 잠깐 교대하면서 한 명을 불러다 놓고 갔다가 와요. 두 명일 때는 화장실 가기도 힘들죠. 식사는 진짜 어렵고요. 세 명이 근무해도 저녁에 출근하는 날에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저녁을 먹기가 힘들어요. 또 8시쯤 저녁을 먹게 되면 다음날 오후에나 먹는 거예요. 아침에 바쁜데 식사를 시켜먹을 수도 없고. 퇴근하면 11시에나 집에 도착하죠. 그러면 굶은 상태에서 녹초가 되서 그냥 자는 경우가 많아요. 오후 서너 시에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 먹고 또 저녁에 나오고." “생체리듬이 안 맞아요. 우리는 몸으로 수명단축을 느낍니다. 일단 수면장애가 많아요. 수면 클리닉을 받아야 할 경우가 많고 신경적인 질환도 많고. 위나 장이 안 좋아지는 건 다반사고요. 야간근무에 적응하면 또 주간근무가 돼요. 첫날, 둘째 날은 정말 힘들죠. 또 적응하면 다시 야간근무고." ('미디어 참세상'에서) 이상은 인원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하철의 안전문제와 노동강도, 그리고 교대제의 문제 등에 관련된 궤도노동자들의 진술이다. 다음은 도시철도의 공황장애 노동자와 관련된 진술이다. "이제 나이 38, 누가 보아도 건강한 운동매니아에다, 항상 밝았던 동료가 어느 날 초점 없는 눈으로 죽음을 얘기했다. 숨조차 쉴 수 없다면서 겪어보지 못한 네가 무엇을 알겠냐고 했다. 전동차 운전대에서 잠시 긴장을 늦추면 한 손으로 출입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하는 자신이 두려워서 두 손을 꼭 맞잡고 운전대를 잡는다고 고백했다. 처자식이 웃고 있는 거실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는 자신을 공포스럽게 인식한다고, 그 공포를 이기기 위해 운동을 하며 몸을 혹사시키고 그 힘으로 잠을 청하며 지내왔지만 이제는 한계라며 곧 죽을 듯이 말했다."('미디어 참세상'에서) 현재 각 사업장이 전쟁터 아닌 곳이 없듯이 궤도노동자들의 사업장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 5일/40시간 노동제도 도입되고 신규 호선이 개통되는 마당에 궤도노동자들의 인력충원 요구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게다가 정부통계에 의하더라도 실업자 약 80만명, 정상고용이라 할 수 없는 36시간노동 이하 노동자 230여만 명 등 실업 반실업 노동자가 현재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궤도노동자들의 요구가 실현된다고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도저히 없겠지만, 그래도 그 완화에는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철도와 지하철공사들의 대응이 가관이다. 인력과 관련해서는 업무당 소요인력을 무리하게 감축하고 노동시간 유연화를 극대화하여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근무제를 도입하고, 신규 호선 개통도 기존 인력을 대폭 솎아내 배치하거나, 그래도 부족하면 그 때는 정규직이 아니라 외주인력을 활용하여 해결하려 한다. 이뿐 아니다. 서울지하철은 주 40시간제를 생각하면 인력이 상당한 정도 늘어나야 하는데 흑자경영을 하겠다면서 2006년까지 2700여명의 인원을 오히려 감축하려 하고 있고, 철도는 기존 정규직 정원을 대폭 축소하고 신규사업, 24시간 맞교대의 개편, 40시간제 도입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인력 7-8,000여명의 인원을 대부분을 비정규직을 통해서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다. 임금은 또 어떤가?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교대/교번근무자 유급월차폐지, 월차폐지, 연차축소, 연월차 수당 지급률 축소, 토요일 무급휴일화, 선택적 보상휴가제 도입, 각종 수당폐지(도시철도수당, 생활안정수당, 퇴직수당 등), 법정수당 지급률 축소 등을 통한 임금삭감을 기도하면서 조합원들로 하여금 총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존의 실노동시간을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는 사실 궤도뿐만이 아니다. 많은 제조업 사업장에서 낮아진 총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그리고 많은 사무직에서 늘어난 업무량을 처리하기 위해 토요일 일요일 근무가 일상화하고 있어 주 5일제 아래에서 실근무시간이 오히려 늘고 있다. 그래서 주5일제에서 일하는 날은 '월화수목금'이 아니라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문자그대로 무늬만 주5일제/40시간제, 누더기 노동시간단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경제위기/신자유주의 시기,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노동강도 강화의 길이 열려 있는 시기에 국가와 자본이 추진하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고용증대 효과가 약간 있다 하더라도 이는 비정규직의 증대뿐이라는 것을 얘기했었다. 불행하게도 이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사태에 직면하여 공사들이 주 5일제에 대해 인력 충원, 소요 예산 증액 등과 관련하여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력충원과 예산증액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이들이 '만반의 준비'였다고 보고 있다. 재정수지도 계속해서 적자이거니와 정부부채도 늘어만 가는데, 그리고 공사도 적자인데 이들 입장에서도 별 수 없는 것이다. 투자부진과 성장저하라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들도 '용빼는' 재주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쉬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는 바에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는 궤도노동자들의 현재의 요구, 더 나아가 임금삭감이 없고 노동강도 강화 없는 실노동시간의 단축과 완전고용 달성은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두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를 통해 막대한 이익(배당, 이자, 자산이득)이 초민족적 금융자본에게 돌아가고 있으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투기거품과 거품붕괴가 단속적으로 재발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도 불구하고(오히려 이 개혁때문에?) '산업공동화'가 운위될 정도로 투자부진과 성장저하라는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네트워크에 포섭된 지배세력의 사회적 부의 탕진과 자본도피가 만연한 상황에서 온전한 노동권의 설자리는 없다고 판단한다. 미국 주도 '무장한 세계화'에 협조하여 이라크 파병에, '자주국방'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신무기 도입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붇는 상황에서는 노동권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안전도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 무장한 세계화가 문제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투쟁은 달라져야 한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을 교섭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파업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를 분쇄하기 위한 투쟁이어야 하고, 시간단축과 인력충원의 요구와 더불어 이라크파병 철회가 궤도노동자들의 투쟁요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하철노동자들의 파업에 이어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이 실질적으로 준비되어야 하고, 가능한 다양한 투쟁이 촉발되어 전국적 투쟁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끝장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과 이명박을 나누고 노무현정권이 직권중재를 하지 않아 합법파업이 가능하길 기대하는 태도로는 우리는 이번에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으로서 신자유주의를 직시하자. 현재의 지배세력 모두가 신자유주의자들, 즉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자본의 위기를 탈출해 보려는 세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제 그만큼 속았으면 충분하다.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우리는 계속적으로 패배만 해 왔다. 그래서 '나만 아니면', '우리만 문제없다면' 하는 보신주의에 익숙해져 있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확보한 나의 자리, 우리의 자리도 계속해서 침식되어 오고 있지 않은가. 이젠 좀 달라져야 한다. 부디 이번 궤도노동자들의 투쟁이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때는 소를 모"는 삶, 노동이 고역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삶, 자본주의적 강제소비에 찌들지 않고 '청빈'을 구가할 수 있는 삶, 학문과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되는 삶을 쟁취하는 길목에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을 약속한다.
노무현정권의‘사회적 합의’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 토론회 자료집 일시: 2004년 7월 3일 오후 3시 장소: 서울대보건대학원 4층 발제문 ■ 사회적합의주의 현황과 문제점(노중기) ■ 노무현정권의 노사정체제의 문제점과 대응방향(조문익) ■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사회적 합의주의와 계급운동의 대 응 과제(안재원) ■ 노사정 사회적합의체제와 불안정노동(이지수) ■ 사회적 합의주의의 문제점과 노동자운동의 혁신(이상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부대책에 대한 공청회 일시: 2004. 6. 18(금) 장소: 국회 헌정기념관 강당 주관 : 공공연대■전국여성노조 ■ 일시 : 2004. 6. 18(금) 14:00 - 17:00 ■ 장소 : 국회 헌정기념관 강당 자료집 순서 <발제1>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부대책 비판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 장) <발제2>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결 방안 (김태진 공공연맹 부위원장) <사례발표>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사례 서울특별시장애인콜택시노동자 사례 환경미화노동자 사례 <지정토론> 강문대(민주노동당 단병호의원 보좌관) 장화익(노동부 비정규대책과장)
아시아 민중사회운동회의 기간에 진행된 '물 사유화와 노동조합의 대응 워크샵 자료집'입니다. 공무원노조에서 퍼왔습니다.
‘사회적 빈곤의 실상과 그 대책에 대한 비판’ -사회적 일자리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일시 : 2004년 5월 31일 오후 6시30분 장소 : 숭실대 사회봉사관 1층 백마당 회의실 주최 :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보건복지 민중연대 ‘사회복지와 노동’ 포럼 -1주제 사회적 빈곤의 실상, 원인, 성격 -강동진,김종건,성은미,유의선,한진,조성은 -2주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과 사회적 일자리 창출계획 비판과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이유 - 김혜진 -3주제 실업운동의 과정과 평가 -유의선 -4주제 여성노동권의 실태, 빈곤화와 사회적 일자리- 정지현 일자리나누기 베일안의 사회적 배제: “여성의 빈곤화” -안현미
또 한번의 타협과 민주노조운동의 좌절! 이 한마다 외에 다른 어떤 말로 이번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노동자가 자본이나 정권과 협상을 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변혁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떨쳐 일어나 "우리가 작정하면 모든 것을 바꿔낼 수 있다."는 굳은 의지로 자본, 정권과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참 노동자, 민중 세상의 그날을 열어가는 중간과정에 현실적 성과물을 투쟁으로 얻어낼 뿐이다. 노동자운동이 변혁의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자본과의 합의속에 노동자 투쟁을 관리한다면 이미 노동자운동은 자본주의 모순을 은폐하고 관리하는 자본주의 통치기구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이해집단에 다름아닐 것이다. 지금 저 교활한 정권에게 노동자운동이 이기주의적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주장하며 정권, 자본과의 노사정 합의주의에 기울고 있는 현 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자본이나 정권과 어떻게 해서 그림좋은 뭔가를 하려 한다면 이미 그 순간부터 노동운동은 하나의 이해관계속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에 다름아닌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대의는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자본이나 정권과의 그 어떠한 타협이란 불필요한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정당한 요구를 갖고 자본, 정권과의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면, 그것을 탄압하는 자본이나 정권은 더욱 더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고 결국은 노동자투쟁의 승리는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협상이나 타결은 그때 해도 늦지 않는 것이다. 오랜만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현 시기 가장 치열하게 대자본 투쟁을 전개해 온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팔을 걷어부치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24일 최저임금위원회앞의 노동자대오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최저임금 77만원 쟁취!"를 외치는 그들에게서 노동자연대의 희망을 찾기에 충분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 되는 여성노동자들의 절규는 누구보다도 처절했다. 우리 모두는 있는 힘을 다해 "최저임금 현실화!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제도화!"를 외쳤다. 그 대오속의 우리 모두는 투쟁 지도부의 진정성에 무한한 신뢰감을 보냈고, 우리들의 힘찬 투쟁의 함성에 힘을 얻으며, 우리를 대신해 협상하는 그 자리에서 그들 역시 힘차게 투쟁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아마도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최저임금 77만원"은 하나의 숫자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최저임금 77만원"은 "최저임금 현실화"의 숫자적 표현이었을 뿐이었는데, 협상 지도부는 단지 하나의 숫자로만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77만원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최저한의 기준이었는데, 그들에게는 밀고 당기기식의 협상이 가능한 "정규직투쟁에서의 협상을 위한 하나의 요구안"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타협에 급급해 졸속으로 노동자 대중의 요구를 거스르며 졸속타결을 하고야 말았다. 그들은 타협을 위해 투쟁을 배치하고 노동동지들을 동원했다. 딴딴한 대오의 목적은 저들에게 뭔가를 전시적으로 보여주고 금전적인 성과물을 얻어내기 위한, 그래서 노동동지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적 성격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고, 그래서 너무나 정당한, 결국은 저들의 노동자 착취의 본질을 파헤치고 갈아엎어야 할 대상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투쟁이었음에도, 그들은 너무도 쉽게 투쟁의 깃발을 내리고야 말았다. "교섭과 투쟁의 병행" 이라는 전략이 지닌 허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전형이었다고 할 것이다. 아무리 투쟁을 열심히 한들 그것이 결국은 협상을 위한 보여주기식이라면 우리는 그 어떤 성과물도 얻을 수 없다. 한치앞이 뻔히 내다 보이는데 어떤 어리석은 자본과 정권이 그 투쟁을 두려워 하겠는가! 단기적인 성과물에 급급하지 않고 노동해방의 긴 여정속에 단결된 투쟁을 전개할 때만 저들은 하나씩 하나씩 우리에게 무릅꿇을 것이고, 그럴 때에만 현실적인 투쟁의 성과물도 획득할 수 있을 뿐임을 우리는 한시도 잊으면 안된다.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투쟁으로만이 어떤 성과물도 얻을 수 있음이지, 상층부 몇 사람의 능숙한 교섭과 협상으로 마치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는 착각을 이제 걷어버리자. 이번 최저임금 투쟁의 유일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리라. 우리가 협상 지도부의 졸속과 무능을 규탄하는 이유도 다름아닌 바로 이러한 이유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와 그를 위한 투쟁을 지지한다. - 서울대 병원장은 교섭에 성실하게 참여하라!<br>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이 오늘로서 22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파업이 장기화되는 것은 서울대병원이 현재 잠정중단된 산별교섭을 핑계로, 파업이 중단되어야 교섭을 진행할 것이라 말하며 교섭자체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산별교섭에서 지부별교섭으로 전환된 것이며, 교섭은 중단된 것이 아니다. 서울대 병원장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민주적 권리를 부정하고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등 몰상식한 행위를 중단하고 교섭에 성실히 응해야 할 것이다. 병원과 언론은 ‘환자의 불편과 고통’을 이유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탄압해왔다. 이러한 호도는 매년 300억 원이 넘는 국고지원을 받는 국립병원, 서울대병원이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볼모로 지나친 이윤을 추구하고, 병원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비정규직 양산에 앞장서 왔다는 진실을 가리는 일이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다인병실 확보와 부당한 고액병실료 인하, 지정진료제(특진제) 폐지, 입원환자의 TV무료시청, 무료주차제를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건강보험급여기준으로 별도의 병실료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는 6인실 이상의 병상 비중이 42.8%에 불과하다. 이는 법정기준인 50%에도 못 미칠 뿐만 아니라 국립대 병원 중 최하의 비율이다. 또한 서울대병원은 이러한 다인용 병실을 2주 이하의 입원환자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장기입원환자에게 엄청난 의료비를 부담시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입원환자가 이용하는 2인 병실료가 하루 11만원을 넘어, 서울대병원이 환자를 대상으로 ‘방장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실정임에도 입원환자의 TV시청료와 주차료까지 따로 받고 있으니, 돈 없는 사람은 가보지도 못할 곳이 국립병원, 서울대병원인 것이다. 환자의 진료선택권을 보장하고, 국립대병원 의사의 임금보전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된 선택진료제(특진제)는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몸이 아픈 환자의 입장에선 비싼 특진료를 부담하더라도, 교수 같은 수준 높은(?) 전문가들에게 진료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선택진료제는 이러한 환자들의 상황을 이용하여 의사별로 진료비를 차등화한 제도이며, 이 차등료를 환자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킨 제도인 것이다. 또한 서울대병원은 선택진료에 의한 수익에 따라 의사의 월급을 차등화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이는 환자의 진료선택권은 고사하고, 오히려 특진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러한 선택진료제는 사립병원까지 확대 도입되었다. 결국 국립대병원이 앞장서서 환자의 비용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요구대로 이러한 선택진료제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서울대병원은 국립대병원 중에서 비정규직 직원이 31%로 가장 높다. 전체직원 4,699명 중 무려 1450여 명이 비정규직이다. 간병인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포함하면 이 숫자는 더욱 커진다. 주5일제 실시에 따른 인력충원 문제를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국립대병원의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장기파업 중인 경북대병원에서는 얼마 전 31명이 근골격계 산재 집단발병이 일어나 그 심각함이 알려진 바 있다. 환자와의 인간관계가 중요한 의료서비스에서는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노동조건이 진료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세계 보건의료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서울대병원은 노동조합의 표준적이고 모범적인 진료를 위해 적정한 진료를 위한 인력충원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서울대병원은 전자의무기록(EMR)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질병정보의 전산화를 통한 데이터베이스화는 교육계의 NEIS 문제와 그 본질이 같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EMR 사업 중단요구를 지지한다. 한국의 대표적 국립병원이 병실료 차액을 챙기기 위해 다른 국립대병원보다 훨씬 적은 다인용병실을 가지고 있고, 다른 병원보다 비싼 병실료를 받으며 특진제를 통해 환자에게 부당징수를 하고 있다. 국립대병원 중 가장 높은 비율의 1500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직원을 고용하고 노조와 사회단체의 참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감함 질병정보 전산화를 추진하며,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노동조합의 결성도 제대로 허용하지 않는 것이 현재 서울대병원의 모습이다. 서울대병원이 공공병원으로서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바로 노동조합의 공공성 강화 요구와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의 요구를 즉각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의료공공성 강화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흔들림 없이 투쟁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며, 다시 한번 서울대병원과 관련 당국의 문제 해결을 위한 성실한 태도를 촉구하는 바이다. 2004년 7월 1일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총력투쟁에 대한 제언 노동자들에게 한여름은 뜨거운 투쟁의 계절이다. 대부분 봄부터 시작되는 사업장별(혹은 산업별) 임금 및 단체협상 투쟁이 서서히 무르익어 급기야 거리로 분출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그래왔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 혹은 날선 전경방패 앞에서 '노동자'는 다시 태어났다. '옆 공장 근로자'는 '동지'가 됐다. 반도의 동남부, 공업도시 울산에서 87년 대투쟁의 시동을 걸었던 현대엔진노조가 공설운동장으로 향하며 앞세운 덤프트럭에 걸린 현수막에는 '임금 25% 즉각 인상하라'고 적혀있었다. 94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전지협 공동투쟁 결의대회 무대 왼편에는 '승리 94년 임투'라고 쓰인 세로 현수막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임단투의 종착역은 '임금인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머리띠에 서툰 글씨로 선명하게 박힌 '노동해방'이 이를 웅변했다. 노동자는 '계급투쟁'으로 전진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아는 상식이지만, 여름을 달구는 노동자 투쟁은 계급의 학교이자 연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올해에도 임단투는 본궤도에 올랐다. 6월10일 보건의료노조 산별파업을 신호탄으로 택시(16일)가 이미 파업을 진행했고, 금속 (29일)-궤도(7월 중순)로 꼬리에 꼬리를 문 파업이 이어질 전망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총력투쟁은 매년 펼쳐오던 '임단협 시기집중 투쟁'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예년과 같은 시선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과거와는 구분되는 몇 가지 조건과 쟁점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임단투 주요쟁점 민주노총의 이번 상반기 투쟁은 이수호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치러지는 첫 전국차원의 집중투쟁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탄핵사태 뒤 더욱 강력해져 돌아온 노무현의 자유주의 정부와의 승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때도 7월1일이다.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 공공연맹 등 대부분의 투쟁사업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5일제 시행에 따른 노동조건 유지와 인력충원 문제도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이다. 특히 보건의료노조는 주5일제를 두고 노사정 대리전 양상마저 띠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산업공동화 저지' '노동연대기금(산업발전기금 혹은 지역사회발전기금)' 등과 같이 이전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의제들이 주요 요구로 자리잡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정규직화도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다. 민주노총은 '원·하청 공동임단투를 통한 사업장내 차별철폐' 등을 올 임단투 지침으로 내린 상태다. 특히 민주노총의 입장에선, 최근 시작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주최한 노사정 토론회에서 전격 합의돼 꾸려진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8월까지 시한부 운영되지만 '노사정 대화틀 재편' 하나만을 의제로 하고 있는 만큼, 8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와 맞물려 공식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로 다시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총으로선 상반기 투쟁을 통해 노사정 대화틀 내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원내진출 뒤 처음 치러지는 총력투쟁이란 점도 예년과 색다르다. '10석에 불과한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민주노총의 대중투쟁이 필수'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확인해 온 민주노총으로선, 주5일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가두투쟁을 통한 쟁점화를 이룬 뒤 공을 국회의원들에게 넘겨 법·제도개선으로 나아가는 고민도 있는 듯 하다. 2004년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쟁점 총력투쟁이 이제 막 시작된 단계인 만큼 섣부른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하지만 '관찰'이 아닌 '연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몇 가지 평가할만한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총력투쟁'이란 이름의 싸움에서 민주노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전국전선'이란 물론 지역적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산업과 부문이 '단일한' 전선에 서는 것은 임단투가 '임금인상'에 만족하지 안도록 하는 핵심이다. 모두가 경험으로 알다시피, 이 같은 전국전선이 자연스레 그냥 생기진 않는다. 중앙지도부의 역할은 관건 중의 관건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스스로도 <6∼7월 세부투쟁계획(안)> 문건에서 '지금 드러나고 있는 양상을 보면, 연맹별 각계약진 양상이 우려되고 있으며, 요구에 있어서도 백화점식 나열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그 이유로 '민주노총 차원의 대중적인 목표제시가 뚜렷하지 못하고, 전반 상황을 총괄적으로 파악-분석-대책수립-집행으로 이어지는 집행체계가 원활치 못한 것'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상반기 총력투쟁을 맞아 '전략지원단'을 꾸려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임원과 사무총국 일부로 구성된 전략지원단은 △당면투쟁 △산업공동화 △공공부문 △제도개혁 등 네 개의 팀을 구성해, '총연맹을 중심으로 통일단결된 투쟁대열을 구축해 상반기 투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게 목표다. 이전 투쟁시기 때 각 산별연맹 위원장 등으로 구성됐던 '투쟁본부' 보다는 축소된 형태다. 다만 중앙임원과 사무총국 일부의 권한과 역할을 높여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기존 골간 체계가 아닌, 중앙지도부가 직접 현장을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만든 셈이다. 민주노총도 위 문건을 통해 '연맹별 투쟁상황을 총연맹이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드러나는 양상은 (민주노총 스스로도 평가하고 있듯이)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투쟁이 이뤄지고 있는 산별노조·연맹에 많은 인원이 달려들어 '총력지원'에 나서다 보니, 당연히 해당 투쟁현장의 쟁점이 최대현안으로 떠오른다. 이를테면 보건의료노조의 '주5일제'가 그런 형국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보다 중심을 둬야 하는 것은 노동·자본 사이의 전국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쟁점을 투쟁으로 기획하고, 이를 중심으로 대오를 형성하려는 노력이다. 예컨대 지난해부터 불거지기 시작해 올해 입법이 추진될 '노사관계 로드맵' 등이 그것이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정규직화 투쟁의 경우, 민주노총의 핵심지침 중 하나는 '원·하청 공동임단투'다. 이 경우 금속·화학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두 단위가 아직 본격적인 쟁의국면으로 넘어가지 않아 관련 투쟁이 아직 눈에 띠는 수준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그러나 형국을 보면, 지난주의 파업에 들어갔었던 금호타이어와 앞으로 파업에 돌입할 현대자동차 이외에 내용상의 공동 임단투를 기획하고 있는 단위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공동투쟁본부' 등을 구성하고 있는 사업장은 지금까지 단 곳도 없다. '원하청 공동투쟁'은 그 특질 상 제조업 대기업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노조'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는 지난 2003년 임단투를 거치며 '귀족 노동자'로 낙인 찍혀 왔다. 물론 이 같은 정권과 자본의 공격은 노동자 분할통치 전략의 일환이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자,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노동유연화의 결과다. 경총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규직 임금은 노조가 결정하는 독점임금이고, 비정규직 임금이야말로 진정한 시장임금"이라는 말은 이 같은 원인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오류다. 그러나 날로 확대되는 기업규모간·고용형태간 임금격차로 노동자 사이의 생활격차가 벌어지고 이것이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의식을 해쳐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우리는 노동자 연대성이 점차 훼손되는 것을 막아낼 수 없다. 기업규모·고용형태간 차별해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경제정책과 산업정책을 뒤엎어 독과점 위주의 경제구조와 원·하청 불공정 거래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투쟁이 가능할 때까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나온 고민이 바로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과 임단협 공동투쟁'이다. 따라서, 이번 투쟁은 노동계급 내 침투해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신분의식'을 깨부수고, 이런 투쟁을 통해 한국사회를 전변시켜 내기 위한 큰 싸움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공동투쟁의 기획과 수행 자체가 '연대성의 회복'이다. '대기업노조를 향한 정권·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으로서의 공동투쟁을 넘어, 노동자 스스로 계급내부의 단결과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원·하청 공동 임단투' 지침이 과거와 같이 '협상 막판 슬그머니 포기할 수 있는 카드'로 전락해선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대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현실화투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각 산별노조는 올해 임단투의 주요내용으로 산별최저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비록 많은 단위노조나 산별연맹에서는 최저임금현실화의 요구를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를 극복할 수 있는 주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만큼 확산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또한 최근에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최저임금현실화 쟁취하자'라는 슬로건 하에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앞 아침집회에 결합하는 투쟁사업장은 비록 투쟁과정에서 한두번의 결합이지만, 최저임금투쟁의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투쟁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이 하는 것이고, 시혜적이며 동정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집회동원이나 제도개선의 내실화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총연맹과 각 연맹의 비상한 노력 또한 요구된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연대성의 회복과 더불어 불안정노동철폐투쟁의 주체를 발굴한다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공동투쟁은 최저임금·최저생계비 결정방식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며, 최저임금산정기준 또한 최저생계비에 기반하여 최저임금 산정을 모색하고 있는 측면에서 향후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의 내용과 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연대기금' 문제도 관심거리다. 노동연대기금(보건의료노조),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완성차 4노조), 지역사회발전기금(화학섬유연맹 여수산단)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각종 '연대기금'은 타결여부는 물론, 타결 과정에서 구체화될 기금의 내용과 성격 등도 중요하다. 일단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주5일제를 둘러싸고 노사가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노동연대기금에 대해선 상당부분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완성차 4사 노조의 경우, 사용자 쪽에서 "사회공헌기금은 받아들이되, 산업발전기금은 추후에 논의한다"는 내부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연대기금'은 최근 민주노총 이수호 체제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노사정 합의주의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물적 조건이 될 우려가 높다. 그 용도의 범위가 너무 넓어 하나하나 지적할 순 없지만, 일단 비정규직 문제와 맞물려 정규직 노조와 사용자에는 '면죄부'를, 민주노총에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줄 수도 있다. 이는 민주노총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의 노사정 관계에서 기인하는 어쩔 수 없는 효과다. 중요한 것은 조성될 기금의 내용과 성격이다. 민주노총이 밝힌 것처럼 '주택구입자금 보조 등 노동자 재산형성 지원' '자녀 학자금 보조' '지역탁아소 설립' 등도 중요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 관련한 문제를 '연대기금'을 통해서만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주의'의 혐의에서 자유롭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다. 또 연대기금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상으로 격상시키기보다는, 사용자와 정부를 압박하고 관련 법·제도 개선과 비정규직 투쟁주체 조직화 등의 유의미한 경로로 파악하는 것이 더 낫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구조적 문제'임을 늘 확인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철폐가 '노사가 함께 기금을 출연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돼선 곤란하다. 전진을 위하여 우리는 앞서 올해 민주노총에서 제기한 '원·하청공동임단협', '연대기금', '산별최저임금요구와 법정최저임금개선'등을 연대지향적이며 계급주체형성의 측면에서 살펴보려 하였다. 다른 차원에서 보면 총연맹에서 내세웠던 데로 '투쟁과 교섭의 병행'기치아래 투쟁과 더불어 '사회적(?) 교섭'을 위한 줄타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후 많은 사업장에서 파업을 예고하고 있고 보건의료노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선두에 서서 싸우고 있다. 여기에 진정으로 연대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지원하는 것이지, 직권중재시 노사정위참여 여부를 전면 재검토한다는 협박(?)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강경 발언일 수 있지만, 이미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시기 노사정위가 어떠한 역할을 했고, 민주노총과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존재였는지 잊었단 말인가? 경험했듯이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합의주의는 함께 갈 수 없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규모 있고 투쟁력 있는 대중조직이다. 민주노총이란 이름의 거함이 어느 방향으로 돛을 올리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운동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임단투 시기에 어떤 쟁점과 과정을 거쳐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만드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금 상관없는 얘기. 주말 늦은 밤, 버스는 만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왠지 엉덩이 쪽이 따뜻하다. 고개를 획 돌리니 옆에 서있는 남자의 손이 재빨리 사라진다. 기분은 더럽지만 그냥 가기로 한다. 그 남자도 취한건지 꾸벅꾸벅 존다. 어랍쇼 졸고 있는 건지 조는 척 하는 건지, 이 남자 하반신이 좌석에 앉은 젊은 여자 무릎 쪽으로 향한다(버스는 바퀴 부분의 좌석이 높다). 한참을 노려보다 “야, 좋냐?”라고 큰소리로 말해버릴까 하다가 가만보니, 앉아있는 여자는 창가쪽 남자가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 바람에 좌석의 1/3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한 채 왼쪽 다리가 통로 쪽으로 한참 삐져나와있다. 서있던 남자가 내리고, 잠시후 앉아있던 여자도 내리고 나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남자가 다리풀린 취객이었고 여자의 다리가 삐져나와있었기 때문이라고까지 생각되기도 한다. 남자가 정말 졸고 있었는지, 의도적으로 제 몸뚱이를 여자에게 밀착시켰는지는 이제 확인할 바가 없다. 모든 것이 풍문처럼 떠돌 뿐이다. 창가에 앉은 남자와 서있던 남자 사이에 끼어있던 그 여자는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확인할 바 없는 풍문이 지난 후, 심야버스를 타지 말자고 집에 일찍일찍 들어가자고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남성 일반에 대한 불쾌감과 두려움이 앙금처럼 깔려있을지 모른다. 떠도는 소문이 사건이 되고, 사건을 겪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이해와 공감을 유발하는 보편적인 역사가 되는 과정이란, 객관적 사실관계의 조사에 선행하는 주체의 발견이다.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지게 마련이니까. 앞서의 남자가 화자인 상황을 가정했을 때, 좌석에 앉아있던 여성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라거나,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라는 서술까지 가능해진다. (그게 대부분의 강간포르노 신화의 줄기) 객관적 사실의 규명이란,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과 별개일 수도 있으며, 역시 이야기의 주체가 누구이냐에 따라 진실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풍문. 지난 5월 11일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월례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여성노동자에 대한 풍문들에 의거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간병인 노동자가 토론 자리를 함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돌고돌고 허공을 맴돌았다. 전 세계 소득의 10%, 전체 부동산의 1%만을 소유하고 있고, 전 세계 빈곤층 13억 인구 가운데 70%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하청, 파견, 성과급, 시간제 노동 등이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해나가고 있는 노동유연화 과정의 최대 희생자인 여성, 여성노동자의 94%가 비정규직, 비조직 부문에서 일하며 극도의 불안정성과 착취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등등의 일련의 서술은, 물론 현실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지표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객관적 사실을 통해 여성노동자의 처지에 대한 이해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객관적 사실을 인식함과 더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억압의 현실을 서술하는 화자, 즉 주체의 문제이다. 객관적 사실의 나열은 한편, 떠도는 소문들에 불과하다. 그 자체로 개조되어야 할 원인들이 규명되지 않는다. 예컨대, 전체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착취가 왜 여성 노동자들에게 극대화되어 나타나는가? 왜 여성노동의 대부분이 비정규, 비공식부문 노동으로 대체되고 있는가? 왜 여성노동의 대부분이 평가절하되고 있는가?(이는 자본가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노동자 내부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을 때)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여성노동자에 대한 온갖 떠도는 풍문이 진실이 되고, 변화되어야 할 현실의 조건으로 규명되기 위해서는 관점의 이동, 즉 숱한 ‘주체화’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리라. 주체화 과정을 통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과제에 대한 일인칭 서술 시점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이전에 관찰자 시점의 객관적 관점으로는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간병인 노/동/자/ 그러나 이 텀의 서술을 시작하는 순간 괴로움에 빠진다. 이 글이 3인칭 시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 때문이다. 하지만 간병 일을 하는 아줌마에서 간병인 노동자로 자기정체성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 그녀들을 아줌마(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면 냅다 가방을 던지고 달려가는 것으로 묘사되는 무성적 존재)에서 여성노동자로 인식하게 되기까지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있다. 내가 겪은 혹은 보았던 간병의 경험은 환자인 가족 구성원 누군가에 대한 다른 가족 구성원의 보살핌, 그 자체였다. 그것의 여의치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돈을 들여 고용하는 사람이 바로 간병인이었고, 이 관계에서, 간병인은 노동자로서 고용된 사람도 간호보조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도 아닌, 어쩔 수 없이 돈주고 부르는 아줌마들에 불과했다. 이 간병인 아줌마 들이란 화장실 등에 붙어있는 스티커의 전화번호로 연락하면(유료소개소) 아무 때나 불러올 수 있는 존재들이며, 가족들의 몫을 대체하는 보살핌과 감정노동의 전담자여야 했다. 모든 노동이 귀중하다는 전제는 보살핌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비공식부문의 여성노동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노동은 사회적 가치를 지닌 노동이 아니라, 잡스러운 일들이지만 어쩔 수없이 돈주고 사야하는 부차적인 노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간병인 아줌마들이 데모를 했다. 요구조건은 병원 내 유료소개소를 폐지하고 무료소개소 운영을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24시간 근무 후 받는 5만원에서 5천원을 유료소개소에 빼앗기는 것을 막는 것이 근본적인 투쟁의 목표는 결코 아니었다. 피고용관계에 있으면서도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였던 것이고, 간병인도 노동자라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비공식 부문 여성들이 수행하는 노동이 평가절하되는 근거는, 그것이 사회적 가치를 지니지 않고 있으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차적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환자를 24시간 간호하는 간병인의 노동이 부차적인 것일까? 학습지, 보험설계사 등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은 사회적 가치가 없는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노동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면(간병인 노동자 전체 수는 약 20만으로 추산된다) 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하고, 그 노동의 결과물을 향유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상식이 어째서 통하지 않는 것일까? 간병인 노동자들은 오랜 근무시간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오로지 일이 끊기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라 위안하며 간병 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쉬고 싶어도 쉴 땅 한 평을 제공받지 못했으며, 간병 업무 중 사고(환자로부터의 감염, 부상 등)의 책임은 오로지 스스로가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병원 측으로부터 고용된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병원 서비스를 제공받는 환자 가족도 아닌, 유령같은 자신의 존재가치였을 것이다. 서울대병원 간병인 지부의 투쟁의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간병인은 없어지고, 간호보조인력이 충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간호보조인력을 국가에 요구해야 하지 당장 있는 간병인들의 지위를 조금 개선한다고 달라질 게 무어냐는 논리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껏 간병인 업무를 수행해왔던 간병인 노동자들이 국가에 의해, 혹은 병원에 의해 재고용되면 안되는가? 바로 그 간병인 노동자들이 간병에 관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간병 서비스를 제도화하는 것은 안되는가? 현존하는 비공식부문 노동의 폐해는 현재 힘겹게 노동하고 있는 해당 노동자들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사라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출발은, 현재의 비공식 부분 노동자들의 제도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형성과 자기요구의 수립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여성이 임금인상과 처지개선을 요구하는 것보다 가족임금의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와 단절할 수 있는 출발일 것이다. 수많은 아줌마들(수입은 보잘 것 없으면서 괜히 삶만 팍팍한 여성 노동자)이 당당한 여성노동자로 인식되어가는 과정, 당당한 여성노동자로서 투쟁의 역사를 서술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간병인 노동자들의 투쟁이 무료소개소 인정에서 멈추지 않고 지속되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국가 혹은 기업이 책임져야 할 사회적 노동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자로서의 자기정체성 형성이라는 투쟁이 촉발되어야 한다. 기존의 조직화 관점에서의 접근은 조직화 대상인가 아닌가, 혹은 조직화가 쉬운가 어려운가의 판단만을 허락할 뿐이다. 노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주체화가 문제라고 했을 때, 조직화 관점의 채택은 기존 노동자 운동의 틀 안에 변화된 노동의 양태와 노동자들의 처지를 가두고 재단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노동자의 주체화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의 역사는 해결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물론 부르주아 계급의 위기,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질서의 위기를 조건으로 할 수 있고, 조건으로 해왔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억압과 착취의 당사자인 노동자계급의 발견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그/녀들의 자각의 과정과 동지들과의 연대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오늘 노동하는 여성들 자신이 처한 조건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노동자운동의 관념과 운동의 방식으로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숱하게 떠도는 여성동자에 대한 풍문이 개조되어야 할 현실이 되고, 오늘날 여성노동자가 처한 모순적 현실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투쟁이 확장되어야 한다. 여성노동의 역사를 써나가는 서술의 주체로서 오늘의 여성노동자들이 서야 한다. 따라서 여성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방식은, 여성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형성의 과제로 명명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주체형성의 과정은 여성노동자를 불안정한 일자리로 유인해내는 그리고 평등 개념을 핑계삼아 여성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삭제하고, 복지를 축소하는 차이의 삭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판명되었으며, 떠도는 풍문 같은 객관적 사실의 나열만으로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훗날 누군가에 의해, 21세기의 여성들은 가정에서의 가사의 부담 때문에 적은 액수의 단기적인 일자리를 선호했다라는 식의 역사의 왜곡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남성노동자 나아가 전체노동자 임금과 근로조건의 저하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며, 비공식부문의 노동의 제도화 요구가 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를 위협할 지도 모른다는 일각의 두려움이 전혀 근거없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현실에서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여성 노동자들의 주체적 관점에 입각한, 역사의 서술, 즉 투쟁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 그 숱한 여성노동자들의 주체화 과정에서 올바른 역사관과 서술의 양식을 함께 모색하기 위하여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가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모두들 파이팅!!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