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FTA에 맞선 세계의 사회운동② [%=박스1%] 사회운동: 본인 소개와 소속 단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카냐: 저는 빈민연합 북동부대안농업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농업대안농업네트워크는 정책과 공동체 차원에서 대안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책 차원에서는 FTA에서 지역 유전자 자원과 쌀의 다양성,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공동체 차원에서는 농민이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는 것과 쌀, 과일, 야채, 어업, 자급자족 농업 등에서 대안적 농업 체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퐁팁: 저는 태국 빈민연합 국제연대를 담당하는 활동가입니다. 태국 빈민연합은 풀뿌리 민중운동단체로 크게 4개의 민중연합체, 즉 농민, 어민, 도시빈민, 노동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7개의 네트워크 조직이 참가하고 있는데, 댐건설 반대 네트워크, 대안농업네트워크, 남부어민연합, 숲에서 사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토지 네트워크, 슬럼가 네트워크, 작업장에서 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네트워크가 그것입니다. 사회운동: 태국은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미국과 FTA를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듣기로는 태국정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고, 또한 태국정부는 다른 여러 나라들과 FTA를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태국정부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이렇게 광범위하게 FTA를 체결하는 것이 태국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카냐: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지금은 쿠데타로 전복된] 태국의 탁신 [%=사진1%]정부에 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탁신 정부는 많은 나라들과 FTA 협상을 맺으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타이 정부가 타이 농민, 민중 부문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농기업과 산업 부문의 대표일 뿐입니다. 그들은 민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업을 위해 정책을 세웠습니다. 태국을 지배하는 그들 대부분은 사적 부문에서 사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인사들이나 장관들은 자신이나 측근의 사업이나 기업에 이익이 된다면 어떤 FTA도 체결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 수상 탁신 자신이 통신 기업을 소유하고 있었고, 어떤 장관은 전기 산업, 또 어떤 장관은 자동차 산업, 또 다른 장관은 농기업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들은 탁신을 중심으로 측근 내각을 형성하고, 부를 더 축적하고자 FTA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FTA가 태국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든지 말이죠. 사회운동: 태국에서 추진하는 FTA는 사회 각계각층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태국에는 많은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들의 투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카냐: 제가 여성 농민이기 때문에 먼저 여성 농민의 문제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여성 농민은 유전자 자원, 지역의 쌀 다양성, 동물의 종 다양성을 위해서, 그리고 생명특허에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성 농민들이 FTA에 맞서 싸우는 이유입니다. 여성 노동자에 관해서 말하자면,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소규모 공장, 가내 공업과 같이 비공식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장이 자신들을 노동자로 등록하여 제대로 된 임금을 지불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공장들이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이들을 정식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은 의료 보험과 같은 사회적 서비스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은 FTA 체결을 통해 미국에서 들어올 대규모 공장․투자와 경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소규모 공장, 사업이 중단될 것이므로 미국과의 FTA 체결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FTA가 여성에게 가져올 부정적 영향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투쟁에 관해서 태국에는 한국의 한미FTA저지 여성대책위처럼 전체 여성을 포괄하는 조직은 없지만,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집회 등이 열리고, 여성 농민이 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이외에도 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FTA 반대 투쟁에 대해서 설명해주십시오. 카냐: 다양한 부문과 그룹들이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두 그룹은 생명 특허에 반대하는 농민과 의약품 특허에 반대하는 HIV 감염인들의 투쟁입니다. 공공부문과 국유기업과 같은 다양한 노동조직들의 연합조직․노동조합인 태국 <노동자연대위원회>(Solidarity Workers' Committee)도 FTA 반대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북부 농민운동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태국-중국 FTA로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전의 경험으로 활발하게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농민, 노동자, 어민, 도시 빈민 등을 포함한 총 11개 네트워크 멤버가 FTA 반대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치앙마이 투쟁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십시오. 카냐: 태국-미국의 FTA 협상은 이미 6차례 진행되었습니다. 3차, 6차 협상이 태국에서 진행되었고 치앙마이에서 6차 협상이 열렸습니다. 태국, 미국 협상단이 이곳에서 3일 간의 협상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첫째 날과 둘째 날 투쟁을 진행했고, 셋째 날 이들은 더 이상 치앙마이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없어서 치앙마이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협상을 했습니다. 우리는 호텔을 둘러싸고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만여 명이 투쟁을 진행하고 협상 대표의 관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이 때 학교, 언론에서 FTA 이슈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치앙마이 주민들도 식량, 물, 잘 곳을 제공하는 등 대중적으로 반 FTA 투쟁에 대한 지지가 쏟아졌습니다. 결국 타이 협상단 대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FTA를 반대한다는 점을 알고 매우 유감스러워했고, 사임했습니다. 치앙마이 투쟁 이후 협상단 대표가 사임하고 정부는 새 협상단 대표를 세워야 했는데, 아직도 새로운 협상단 대표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FTA가 농민과 HIV 감염자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카냐: 태국 토종 쌀은 다양한 종을 보유했습니다. 태국 쌀은 이전에 수만, 수십만 가지의 종이 있었지만 지금은 태국 법에 의해 보호되는 쌀 종이 29개에 불과합니다. 6년 전 농민운동은 법을 다시 쓸 것을 제안했습니다. ‘식물종다양성보호에관한법’을 통해 식물 종에 대한 권리가 민중들에 속한다는 내용을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태․미 FTA 협상안에는 태국이 미국에 생명특허에 대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식물보호에 관한 태국의 법을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태국 식물보호법은 태국의 쌀, 식물, 동물의 다양성이 태국에 속해 있으므로 아무도 이를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또한 만약 이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지역 공동체 그리고, 태국정부에 알려야하며 그에 합당한 배상을 하도록 규정합니다. 그러나 FTA가 체결되면 이 법은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FTA는 생물종에 대한 권리를 태국 민중이 아닌 미국이 보유하도록 규정합니다. 유럽의 특허법을 한 예로 살펴보면, 이 법은 특허권을 보호하는 법이지만, 유럽의 토착적인 식물 다양성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에서 개발된 식물종에 대한 특허권을 보호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소유자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투쟁을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자스민 쌀의 소유권이 우리에게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들이 자스민 쌀을 가져가서 연구 후에 약간 변형을 하고 이름을 바꾼 다음, 새로운 종에 대한 특허권이 미국에 있고, 태국은 이를 돈을 내고 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농민은 종자를 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종자는 우리의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국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자스민 쌀의 권리를 이름을 바꿔 팔려고 하기도 했고, 이제 이를 위해 FTA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역의 쌀 다양성에 대한 투쟁이 일어난 이유입니다. 미국은 자스민 쌀이 세계시장에서 인기가 있기 때문에 이를 소유하려고 합니다. 올해 태국은 30,000,000,000 바트의 자스민 쌀을 수출했습니다.(1달러=45바트) 미국은 이 시장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 소비자를 생각했을 때 수익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태국은 유전자원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스민 쌀만이 아니라 태국의 다양한 토착 식물을 미국의 제약회사, 종자회사도 노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에 반대하는 투쟁에 농민들이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퐁팁: HIV 감염인들에 대해서는 제가 얘기를 하겠습니다. 우선 의약품 분야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데, [%=사진2%]태국에서 의약품 특허는 현재 20년입니다. 미국은 이를 25년으로 늘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태국정부는 이미 미국 제약정부에 많은 것을 주었지만 미국 제약회사는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태국에서는 의약품의 특허를 등록하는 데 5년 정도가 걸리는데, 미국 제약회사들은 이를 빌미로 특허 기간을 25년으로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HIV 감염인들은 이미 20년도 충분하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는 너무 심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강제실시와 관련된 문제도 있습니다. 강제실시권이 있다면, 태국은 이웃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더 싼 값에 약을 수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미 FTA는 이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미국 제약회사는 특허권이 보호되는 비싼 약을 사라고 요구합니다. 태국에서는 매일 많은 사람이 HIV로 죽어갑니다. 따라서 HIV 감염인들은 FTA에 반대해 싸우고 있습니다. 태국의 HIV 감염인은 정부 통계로 700,000~800,000명이지만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1,500,000명에 달합니다. 사회운동: 태국에서는 대규모 군중시위가 열리는 등 FTA반대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투쟁의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카냐: 물론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한국이랑 비교하면 미․태 FTA가 농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FTA가 농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미․태 FTA의 부정적 효과를 예측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차원에서 이런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농민, 사람들이 FTA의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신속하게 확산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FTA의 부정적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핵심 활동가들은 농업문제와 FTA, WTO,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연관성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대중적인 인식으로 확산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FTA가 다양한 부문에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아직까지 FTA 반대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집단은 농민과 HIV 감염인 뿐입니다. FTA가 다양한 부문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이 더욱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사회운동: 탁신총리 퇴진투쟁이 태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졌고 쿠데타도 일어났는데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또 쿠데타가 현재 FTA반대운동에 미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카냐: 쿠데타의 문제는 매우 복잡합니다. 쿠데타는 탁신 체계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쿠데타가 풀뿌리 운동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는 태국에서 FTA에 대한 교육을 계속 진행하는 중입니다. 쿠데타로 태․국 FTA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지만 우리는 이 협상이 다시 시작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 협상이 곧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교육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퐁팁: 반 탁신 투쟁은 중간계급에 의해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하층계급은 대중행동에 동참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운동들이 탁신 정부를 쫓아내는 것에 동의했지만, 어떤 전략을 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몇몇은 고위층의 권력을 통해 탁신을 쫓아내려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쿠데타가 탁신을 쫓아내면서 FTA를 일시 중단시켰을지라도 쿠데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쿠데타는 우리로 하여금 민주주의 체계의 파괴라는 대가를 치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한명의 지도자를 쫓아내면서 민주주의를 붕괴시켜버렸습니다. 태국은 이미 쿠데타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계엄령에 따라 5인 이상의 정치적 회합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계엄령 하에서도 대중 투쟁이 계속 진행 중입니다. 지난달에도 3000 명이 군 지도부 관저에서 집회를 시행했습니다.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투쟁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반 FTA 투쟁 또한 계속 진행 중입니다. FTA WATCH가 협상 진행상황, 정부의 동향 등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군부가 반 FTA 투쟁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군부는 FTA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협상의 일시적 중지는 다음 선거까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달 이미 일본과의 FTA협상이 끝이 났고, 비준만을 남겨둔 상황이었고 군부는 이에 서명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회가 해산되고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과의 협상은 끝나지 않았고, 이는 선거 이후의 다음 정부가 진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부패정권을 축출했지만, 그들이 FTA를 그만두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FTA반대의 의미와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몇몇 주체들 뿐 만아니라 전 국민적인 공감대와 운동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고민하고 있는 방도가 있다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카냐: 북동부 차원에서는 전체 네트워크 회의가 있습니다. 농민 운동은 이를 통해 매달 최대한 자주 FTA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적 차원에서는 FTA WATCH가 있습니다. 하지만 FTA WATCH가 태국 사회의 많은 부문을 포괄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FTA는 많은 사회 부문에 영향을 미치므로, 우리가 이들의 지지를 조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의 차원에서 보자면, 농민, 도시 빈민, 노조 등이 FTA WATCH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FTA WATCH는 다양한 소비자 그룹, 국회의원, 기자, 다양한 도시 시민들과 연합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가 존재합니다. 우리의 투쟁은 FTA반대 투쟁의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 확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방콕의 FTA WATCH는 언론, 의회, 소비자 그룹, 정부 관계자와 같이 다양한 사람과 연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농민운동, 노동운동, 도시 빈민 운동에 대한 투쟁이 벌어질 경우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퐁팁: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농민들의 투쟁은 활성화되고 있지만, 도시 지역은 아직 그만큼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운동의 확산에 대해 말하자면, 도시 빈민이든 농민이든 HIV 감염인이든 각각의 투쟁에 헌신하는 활동가들은 FTA의 영향에 대해 잘 알고 집회에서 선동을 할 수도 있지만, 기층의 대중들에게까지 다가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느끼는 운동의 과제입니다. 운동 간의 연계와 확산에 관해 또 한 가지 말하자면, FTA WATCH 수준은 아니지만, 각각의 운동 차원에서 상호 교육활동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농민들이 도시 빈민의 투쟁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도시 빈민들은 HIV 감염인들의 투쟁을 배우기 위해 가고, HIV 감염인들은 무토지 농민들의 투쟁을 배우러 가고, 무토지 농민들은 노동조합의 투쟁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네트워크를 가로지르는 교육 활동을 진행하여 서로의 투쟁과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모여서 집회를 할 수 있고, 공동 집회에서 서로 조정하기가 쉽습니다. 사회운동: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카냐: 한국에서 민중들이 벌이는 FTA 반대투쟁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농민들과 민중이 FTA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강력한 투쟁을 벌여가고 있다는 점이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 등 모든 부문이 함께 투쟁을 만들어가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태국에서도 많은 민중들이 모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태국의 농민들을 대신하여 깊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태국에 돌아가서도 한국 민중의 투쟁에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며 지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태국에서 우리 또한 FTA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조 사코, 함규진 옮김, <안전지대 고라즈데: 보스니아 내전의 기록> 어느 날 집에 들어오니 우체통에 무언가 꽂혀 있다. 각설이타령마냥 매년 잊을 만하면 날아와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병력동원 소집통지서’. 심심하시면 부대로 놀러와 축구라도 하면서 현역시절을 떠올리며 즐기시라는 친절한 동대장의 안내문까지 첨부되어 있다. 생판 처음 보는 동네아저씨들과의 축구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종이 낭비를 해마다 반복하는 동사무소 상근들의 노고가 새삼 안쓰러워진다. 전시 상황이 되면 준비를 해서 모처로 집결하라는 내용을 읽는 내 귀에, 북한의 미사일 문제에 대한 유엔의 대북결의안 통과를 알리는 TV뉴스가 들려온다.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나 잊고 사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기에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있다. 전쟁의 위협. 2년여의 군 생활 동안, “한국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200만 병력이 집결 대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안보의 주적 북한은 핵을 머리에 이고서...”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어 대는 그 놈의 정신교육 시간만 되면, ‘어떻게 해야 편하게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사격훈련만 되면 이번엔 좀 많이 맞춰서 포상휴가 좀 따 볼까 했었고 말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공기처럼 잊어버리고 살았었나 보다. 오늘도 내가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을. 북한 핵실험이 보도된 다음날,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다 한 녀석이 문득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전쟁이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어떻게든 살아서 와야지.” “그럼 진짜 사람도 죽여야 하겠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잖아. 어쩔 수 없잖아.” “쓸데없는 소리. 핵미사일 한방 떨어지면 다 끝나.”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한참 북한의 핵실험 사건으로 시끄럽던 얼마 전, 일간신문 한 켠에 남한이 사정거리 1000km급의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북한이 동해상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한·미·일 삼국이 입을 모아 비난을 퍼붓더니, 이건 또 뭔가. 하지만 남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해 주변국이 우려를 표명했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구도가 미사일 경쟁이라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끔찍한 예고 앞에서, 신자유주의 군사세계화가 동아시아에 몰고 온 핵무장의 위기 앞에서, 고작 남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진단하겠다는 선정적인 특집들과 북한의 핵이 결국 한민족의 핵이 될 거라는 반동적인 망상들만이 떠돌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거듭되는 파멸의 위협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무신경해져 있으니까. 50년간을 전시체제 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전쟁의 공포는 어느덧 너무나 높은 역치 값을 갖게 되어 버렸나 보다. 94년에 북핵 위기가 닥쳤을 때, 동네 사람들이 앞 다투어 라면 사재기를 하는 모습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덤덤히 뉴스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남한사회에서 전쟁이 더 이상 흥밋거리조차 아님을 보여주는 단상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 현실로 나타난 아수라장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부모와 자식들이 저격수에게 쓰러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밤새도록 쏟아지는 포격으로 무너진 집을 나와 이웃들의 시체를 넘어, 물 대신 피가 흐르는 강을 건너 안전지대에 도착한 이들이, 너무도 담담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이미 앞서 9월호에 소개된 바 있었던 『팔레스타인』의 작가인 만화가 조 사코의 『안전지대 고라즈데』는,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 버린 보스니아 내전의 취재기다. 고라즈데는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에 의해 고립되었던 무슬림들을 위해 UN이 지정한 안전지대 중 하나였다.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서 UN평화유지군이 철수하자, 세르비아계들은 안전지대를 잔인하게 짓밟았다. 사코는 세르비아계의 잔혹한 인종청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이 곳으로 95년부터 96년까지 4차례에 걸쳐 들어갔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평온을 그들과 함께 두려워하면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대신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하지만 그 역시 다음과 같이 묻는 질문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책임회피와 발뺌하기에 급급했던 서방세계에서 온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기자 선생, 스레브레니차에서 6천이 죽었어. 상상이 가시오? 그를 위해 당신은 뭘 쓰지?’ “...그들과 나와의 거리, 그들의 젠장맞을 전쟁과 동정심 넘치는 방관자들 사이의 거리는 얼마란 말인가?” 어제의 절친한 이웃이 오늘 총부리를 겨누는 잔혹한 학살자로 변하는 비극, 끝없이 거듭되는 증오의 연쇄 속에서 생존해 온 이들, 그 앞에서 누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누가 거대한 폭력의 바퀴 속에서 홀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이 병영국가에서, 보이지 않는 위험과 함께 살고 있다. 보스니아의 비극은 끝났지만, 전쟁의 망령은 지구 건너편 이라크로 넘어가 민중의 피를 마시고 있다. 고라즈데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의 모습이 되지 않으리라고는, 평택에 드리워져 있는 전쟁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지옥의 악몽으로 도래하지 않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으리라. 기억하자. 바로 지금, 우리가 전쟁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그럼으로써 증오와 학살의 굴레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이 10년 전, 파멸의 기로에서 섰던 사람들의 기록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과정의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소송 및 유엔이주민특별보고관 진정 기자회견 자료 일 시 : 2006년 12월 7일 오전 11시 장 소 :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 주 최 :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목차] - 인천 아니서씨 사건개요 - 최근 단속과정 인권침해 사례 - 이주노동자 단속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다! - 대한변호사협회 2005년도 인권보고서 『이주노동자의 권리』 - 단속과정 부상사건 피해자 사진
김지태위원장 석방! 평택미군기지확장 전면 재협상! 반전평화! 각계 대표자 선언문 죄없는 주민대표 김지태위원장은 즉각 석방되어야 합니다! 김지태위원장은 정부와 국방부가 주민들의 의사를 철저히 묵살한 채 생명과도 같은 삶의 터전인 땅을 빼앗고 대대로 지켜 온 주민공동체를 파괴한 것에 저항한 죄밖에는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죄라면 수백만평에 달하는 농지에 장애물과 철조망을 설치하고 불법적인 검문과 통행제한으로 주민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무참히 유린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추분교 파괴에 이어 주택에 대한 강제철거까지 자행한 정부와 국방부의 야만적인 폭력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공권력을 앞세운 정부와 국방부의 부당한 국가폭력에 저항한 김지태위원장과 주민들의 투쟁은 너무나 정당한 행동이자 권리입니다. 더구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당국이 주민대표인 김지태위원장을 구속하고 실형까지 선고한 것은 가족과 주민들은 물론 국민들까지 기만한 행위입니다. 김지태위원장을 계속 가두어 놓는 것으로 주민들의 투쟁의지를 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그들은 3년이 넘도록 온갖 회유와 협박, 공권력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생명과 평화의 땅을 지키며 800일이 넘도록 희망의 촛불을 밝혀온 분들입니다. 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탄압은 더 큰 분노와 저항을 불러올 뿐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엄중히 요구합니다. 정부와 국방부가 진정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주민들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일체의 탄압행위를 중단하고 주민대표 김지태위원장을 조속히 석방시켜야 합니다. 평택미군기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유연성’에 따른 침략전쟁의 전초기지입니다. 불합리한 미군기지 이전협상을 전면 재협상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의 동의없이 미국이 요청한 ‘주한미군의 전략적유연성’ 정책에 동조하고 나서 한미간에 합의한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미군기지이전협정의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유연성은 대북전쟁억지력이라는 명분마저 팽개치고 미국이 벌이는 전쟁을 위해 전세계로 주한미군을 자유롭게 배치하기 위한 것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주한미군의 역할은 명백히 성격이 바뀌었으므로 평택미군기지이전 협상은 당연히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합니다. 또한 여러 경로를 통해 한미간에 ‘주한미군의 재조정’ 관련 현안이 논의되고 있음이 확인 되었습니다. 이것의 구체적 내용은 미8군사령부의 해체 혹은 축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따른 한미연합사 해체, 지상군의 감축 등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 규모를 3만 7천명에서 2만 5천명까지 축소한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고 더 나아가 많은 군사전문가들과 언론에서는 주한미군의 지상군 규모가 1만 5천명 선까지 추가감축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미양국은 지금이라도 주한미군 이전의 성격, 비용 부담, 기지 규모 등 평택미군기지확장에 대한 전면적인 재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북핵문제는 제재와 대결이 아닌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대북제재, 강경정책에 맞선 북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속으로 치닫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지금이야 말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나서야 할 때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택미군기지확장이 완료된다면 결국 유사시 대북선제공격의 전초기지로써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 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중대한 과제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다행이 6자회담이 재개되면서 긴장이 다소 완화되었고, 최근 북미 간의 접촉이 이어지면서 ‘북핵폐기와 평화협정’ 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점이 거론되고 있는 사실에 새로운 희망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여전히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제재와 대화’는 어떤 경우에도 양립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면 지금 즉시 대북제재를 중단하고 모든 적대적 행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미 양국은 6자회담 이든 북미간 직접대화 이든 성실한 대화를 통해 북미 사이에 오래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근본적으로 실현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영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 동북아의 비핵화는 물론 궁극적으로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임을 확신하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2006년 12월 8일 김지태위원장 석방! 평택미군기지확장 전면 재협상! 반전평화! 각계 대표자 선언 참가자 일동 <첨부자료 2> 『 각계 대표자 선언 참가자 명단 (총 218명) 』 <정치> 21명 문성현(민주노동당 대표) 강병기 김기수 김선동 김성진 김은진 박인숙 심재옥 이용대 이해삼 홍승하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강기갑 권영길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이영순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임종인(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언론> 3명 손석춘(한계레신문 기획의원) 윤원철(한국인터넷기자협회 대표) 홍세화(한계레신문 기획의원) <여성> 6명 김숙임(평화여성회 공동대표) 김정수(평화여성회 공동대표) 김지희(민주노총 여성위원장) 윤금순(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회장) 이강실(전북통일연대 상임대표) 이미혜(반미여성회 대표) <개신교> 10명 고은영(기장생명선교연대 회장) 김동한(정의평화를위한기독인연대 공동대표) 김영진(푸른마을교회) 문대골(생명교회 원로목사) 백창욱(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기독인연대 사무국장) 양재성(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이근복(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공동의장) 조헌정(향린교회) 진광수(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상임대표) 최재봉(한국교회 인권센터 사무국장) <천주교> 21명 김영식 김인국 김진화 맹제영 문규현 문정현 박요환 배인호 백남해 서북원 송년홍 양요섭 이강서 이상헌 이영선 전종훈 정도영 정석현 정진호 조영만 최경식 <불교> 25명 가섭 금강 도문 법경 법상 법안 법천 보림 부경 세영 수경 유곡 재범 정산 정휴 종호 지관 진관 토진 하림 혜성 혜조 효림 효진 지원 <원불교> 21명 강해윤 김경일 김성근 김인경 나상호 남성균 남세진 박영호 서영수 서의진 성도학 성명종 안자은 오정행 우세관 이도전 이형권 정상덕 최서연 하상덕 하성래 <학계> 20명 강내희(중앙대) 강영걸(대구대) 김광철(동아대) 김세균(서울대) 김승석(울산대) 김승환(충북대) 김연각(서원대) 김정인(춘천교대) 박관석(목포대) 박상환(성균관대) 서창호(목포대) 손호철(서강대) 양해림(충남대) 유제호(전북대) 유초하(충북대) 이승렬(영남대) 이중호(전북대) 전종일(가톨릭대) 조희연(성공회대) 최영찬(서울대) <민중> 9명 김흥현(전국빈민연합 의장) 문경식(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박하순(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장) 오종렬(전국연합 상임의장) 이용득(한국노총 위원장) 이종회(노동자의힘 중앙집행위원장) 정광훈(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 조준호(민주노총 위원장) 최일붕(다함께 운영위원) <청년> 10명 고윤호(가톨릭청년포럼 대표) 김동윤(6.15청년학생연대 공동대표) 김익석(대한불교청년회 회장) 신건수 (평택청년연대 운영위원장) 신진수(평화를여는가톨릭청년 대표) 윤기진(6.15청년학생연대 공동대표) 윤법달(원불교청년회 사무국장) 이두희(한국기독청년연합회 총무) 이승호(한국청년단체협의회 의장) 편재승(민주노동당 청년위원장) <학생> 9명 강정남(한대련 의장) 김영익(다함께 대학생모임) 송상훈(전국연극영화학과학생회 연합) 위안나(전국학생행진 건준위장) 이주희(민주노동당 학생위원장) 이진호(전국학생기자연합 의장) 이현경(한국대학생문화연대 대표) 장송회(한총련 의장) 조이하나(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시민사회> 16명 강민조(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강희남(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 대표) 권오창(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 권오헌(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 김제남(녹색연합 사무총장) 노중선(사월혁명회 회장) 박석률(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대표) 박순성(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 박중기(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의장) 이규재(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의장) 이수호(아시아평화역사교육연대 상임대표) 임방규(통일광장 대표) 임종대(참여연대 공동대표) 정재돈(한국카톨릭농민회 회장) 한상렬(통일연대 상임대표) 홍근수(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공동대표) <문화예술> 10명 김용태(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회장) 김정헌(문화연대 대표) 남요원(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사무총장) 배인석(민족미술인협회 사무처장) 여 운(민족미술인협회 회장) 이인휘(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임헌영(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 정희성(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조세희(소설가) 지금종(문화연대 사무총장) <보건의료> 7명 김정범(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박용신 양계환 임 준 전성원 천문호 최인순 <인권> 9명 박정기(박종철열사 아버님) 배은심(이한열열사 어머님) 변연식(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이상수(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이창수(새사회연대 대표) 이소선(전태일열사 어머님) 이 영(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상임의장) 임기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상임의장) 최민식(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해외> 21명 - 일본 나카키타 류우타로(中北龍太郎, 하지 않고 시키지 않은 전쟁 협력 칸사이 네트워크, 대표) 다케우치 야스토(竹内康人, No!AWACS 모임 하마마츠, 대표) 에츠타 기요카즈(越田清和, 홋카이도 피스 네트워크, 대표) 와타나베 켄쥬(渡辺健樹, 일한민중연대 네트워크, 대표) 유아사 이치로(湯浅一郎, 피스 링크 히로시마, 구레, 이와쿠니, 대표) 키모토 시게오(木元茂夫, 모든 기지에게「No!」를 파이팅 가나가와, 대표) 키타가와 히로가즈(北川広和, 일한민중연대 네트워크, 대표) - 오키나와 니시오 이치로우(西尾市郎, 오키나와 한국 민중연대, 대표) 다이라 나츠메(平良夏芽, 오키나와 평화시민연락회, 대표) 모토나가 타카코(本永貴子, 오키나와 여성 네트워크, 대표) 아시토미 히로시(安次富浩, 오키나와 헤노코 헬리기지 건설반대협의회, 대표) - 미국 마리오 무릴로 Mario Murillo WBAI, Pacifica station (호프스트라 대학 교수 및 WBAI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메디아 벤자민 Medea Benjamin (코드핑크. 글로벌 익스체인지) 신디 쉬헨 Cindy Sheehan (골드 스타 가족회) 데니스 쿠씨니치 Dennis Kucinich (민주당 오하이오 하원의원) 아뉴라다 미탈 Anuradha Mittal (오클랜드 정책 연구소 소장) 존 페퍼 John Feffer (포커스지 외교정책부 공동 편집장) 염기숙 Kisuk Yom (신자유주의와 전쟁 반대 재미협의회 평택위원장) 이행우 Lee Haeng Woo (신자유주의와 전쟁 반대 재미협의회 고문) Dr. 헬롤드 선우 Dr. Harold Sunwoo (신자유주의와 전쟁 반대 재미협의회 고문) 람지 클라크 Ramsey Clark (전 미법무장관) <첨부자료 3> 『 평택범대위 향후 사업계획 』 <김지태위원장 석방을 위한 엽서보내기 운동> - 청와대, 법원, 김지태 위원장에게 갈 수 있도록 3종으로 제작. - 2심 첫 공판 전까지 엽서를 취합해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재판부와 청와대에 전달할 것임. - 12/9 민가협 인권콘서트에서 1천명 엽서 쓰기 운동 진행 <김지태위원장 석방 촉구와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를 위한 송년문화제> - 일시 : 2006년 12월 17일(일) 오후 4시 - 장소 : 평택 - 주최 : 평택범대위 <대추리 주민들을 위한 성탄예배> - 일시 : 2006년 12월 25일(일) 오후 3시 - 장소 : 동화면세점 앞 - 주최 : 평택기독인연대 <김지태위원장 석방을 위한 4개 종단 연합 기도회> - 일시 : 2006년 12월 28일(목) 오후 5시 - 장소 : 안양교도소 앞 - 4개종단 <2007‘ 한반도 평화선언> - 일시 : 2007년 1월 경 - 취지 : 12월 8일 각계대표자 선언의 성과를 이어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광범위한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하여 진행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를 위한 5차 평화대행진> - 일시 : 2007년 2월 경 - 장소 : 미정 - 주최 : 평택범대위
지난 11월 24일 진행되었던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국제 워크샵 자료집입니다. [목차] ◇초청자 소개 ◇발표 1 NAFTA와 미주여성의 삶 | 말타 오헤라 마낄라도라정의연합 대표 ◇발표 2 미-태국간 FTA와 자유무역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 카냐 온스리 태국 빈민연합 북동부대안농업네트워크 대표 퐁팁 쌈란짓 태국 빈민연합 활동가 ◇발표 3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국여성의 삶: 한미FTA 추진과 여성운동의 과제 | 이정옥 한미FTA저지 여성대책위 상임집행위원장 ◇참 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국여성의 삶: 한미FTA 추진과 여성운동의 과제 | 한미FTA저지 여성대책위 정책팀 [주최] 한미FTA저지 여성대책위, 한미FTA저지 울산·제주·전북여성대책위, 한미FTA저지 경남여성운동본부, 한미FTA저지 광주전남운동본부 우리쌀지키기 여성연대, 민주노동당 심상정·이영순·최순영·현애자 의원
[%=사진1%] 멕시코 남부에 위치한 와하카(Oaxaca)는 전통을 간직한 곳이며, 그 지리적 환경은 고고학적으로 중요하다. 역사적인 유물이 많아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와하카의 산맥은 과거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화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전통과 생활방식, 정치체계를 지키고자 한 원주민들의 은신처였으며 저항과 인내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와하카 주의 규모는 매우 크며 이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16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강고하고 독립적인 자치구들도 많이 존재한다. 와하카 주민들은 오랜 시간동안 고유의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자기통치적인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은 와하카 투쟁의 기원이 되었다. 한편 와하카 교사노조는 26년 동안 지속적으로 민주화운동을 경험했다. 22개 지부로 구성된 와하카 교사노조는 전국교사노조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강건한 지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와하카 교사노조는 와하카 사회운동을 이끌고 있다. 확산되고 있는 와하카 투쟁 지난 5월부터 시작된 멕시코 와하카 지역 교사들의 투쟁은 여섯 달이 넘게 지속되며 와하카 교사들의 투쟁을 넘어 멕시코 전역과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 와하카 지역 교사들과 교육종사자 7만 여명은 5월 22일 임금인상과 빈민 아동들을 위한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하였다. 즉, 빈민 아동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신발, 교과서, 교복 등의 기본적인 학용품과 기초적인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기위해 예산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지사 울리세스 루이스(Ulises Ruiz)는 이러한 교사들의 예산 증액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에 와하카 교사들은 시내 중앙광장을 점거하고 천막농성을 전개하였다. 6월 14일 새벽 와하카 주 경찰은 헬리콥터와 최루가스, 소총 등으로 무장하고 중앙광장의 천막농성장을 급습하여 시위 대오에게 무차별적인 발포와 구타를 가하였다. 당시 100여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고 3명의 교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주지사의 살인적인 탄압으로 와하카 투쟁은 오히려 확산되었다. 6월 17일 와하카 지역 풀뿌리 시민운동조직, 노동조합, 소농, 원주민, 여성운동 단체 등 365개의 단체는 와하카민중회의(Assemblea Popular del Pueblo de Oaxaca, APPO)를 조직하고 주지사 울리세스 루이스의 퇴진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와하카 전역의 사회민중운동 단체의 단결로 APPO는 곧 와하카 시내 중앙을 접수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지역 라디오와 TV방송국을 점령하여 줄곧 와하카 투쟁의 정당성과 결집을 호소하는 방송을 내보냈으며 주지사 울리세스 루이스와 주 정부청사를 변두리 호텔로 쫓아냈다. 9월 초 APPO는 대안정부를 구성하였음을 선포하였으며 노동자, 소농, 원주민, 여성들의 권력이 기반을 둔 ‘진정한 권력’임을 선언하였다. 9월 21일부터 APPO는 멕시코 전역에 와하카 투쟁의 의미를 알리고 연대를 호소하는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연방정부와 APPO와 와하카 지역 교사들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10월 중순부터 의회는 주지사 울리세스 루이스의 파면을 고민하기 시작하였으며 연방 대통령은 주지사의 사퇴를 권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울리세스 루이스는 자신의 통치가 이미 무력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였다. 폭스 정부는 10월 29일 와하카 사태를 진정시키겠다며 특별한 프로그램을 발표하였다. 천명이 넘는 연방 경찰과 최루가스, 헬리콥터, 장갑차를 와하카로 보냈다. 이들은 빠르게 와하카 시내 중앙을 휩쓸었다. 다음날 멕시코 국가인권위원회(CNDH)는 연방정부의 폭력으로 2명이 죽고 최소한 40명이 체포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폭스 대통령은 당시의 폭력과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그저 평화롭고 무혈적으로 와하카를 정상화 시켰다고 발표하였다. 연방경찰이 와하카 시내에 주둔했지만 APPO는 계속해서 전선을 형성하여 그들과 싸울 것을 선포하였으며 중앙광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다시 천막을 세웠다. 11월 5일 다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와하카를 행진하였다. 하지만 11월 18일 결국 의회는 표결을 통해 울리세스 루이스를 파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와하카 투쟁 와하카 투쟁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지난 7월 대선에서 각종 폭력과 흑색비방선거, 개표조작 논란을 거치며 집권한, 정당성과 신뢰가 거의 없는 연방정부에 대한 첫 번째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좌파 후보에 대응하여 제도혁명당(PRI)과 국민행동당(PAN)은 야합하였으며 필리페 칼데론을 앞세워 집권하였다. 제도혁명당(PRI)은 지난 70년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기집권을 했으며 국민행동당(PAN)은 제도혁명당(PRI)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사회운동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가한 폭스 대통령이 소속된 당이다. 와하카 지역 역시 80년 동안 제도혁명당(PRI)이 장기 집권했으며 주지사 울리세스 루이스도 제도혁명당(PRI) 소속이다. 울리세스 루이스 역시 주지사 당선 당시 부정선거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었으며 집권 이후에도 와하카의 사회운동에 대한 많은 정치적 탄압을 가하였다. 와하카의 투쟁은 공권력의 무자비한 감시와 추적, 살인, 구조적인 부정부패에 맞서는 지난 멕시코의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 대선 이후 민중들의 의지를 반영하고자 했던 재검표운동과 대선 불복종 운동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11월 1일 필리페 칼데론은 정식취임을 했지만 그 역시 와하카 운동을 탄압하고 있으며 이는 와하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정부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이는 와하카의 투쟁이 멕시코 전역으로 확대되는 것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둘째, 와하카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희망을 유포하며 체결한 NAFTA는 이후 18년 동안 멕시코는 전체 인구의 70%를 절대 빈곤 상태로 내몰았으며 매년 50만 명의 불법 이민자를 만들었다. 불안정한 일자리, 착취, 성차별, 환경오염 등만을 증대시켰을 뿐이다. 폭스정부는 집권 후 6년 동안 자신이 사유화 정책의 핵심 인물임을 자처하며 항만, 세관, 도로건설, 철도, 교육, 보건 등의 영역에서 대대적인 사유화를 진행하였다. 이 속에서 멕시코 민중들은 배고픔에 시달리며 유랑할 수밖에 없으며 최소한의 삶의 권리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으로 6월 14일부터 지금까지 와하카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145명이 감옥에 가고, 2명의 어린이를 포함하여 17명이 사망하였고 33명은 심각한 부상, 65명은 실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마저도 정확한 것이 아니다. 불법적인 억류와 고문, 표적살인, 폭행이 자행되며 언론에 대한 통제와 조작 속에 인권침해가 매우 심각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와하카 투쟁은 고립되거나 좌초되지 않을 것이다. 싸빠띠스따는 지난 11월 1일 멕시코와 리오 그란데 북부에서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 버스정류장, 공항 등 집회가 가능한 모든 곳에서 기습시위를 기획했고, 지속적으로 투쟁을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 전세계의 멕시코 대사관 및 영사관에 대한 사이버 시위가 기획되고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등지에서 연대 행동들이 조직되고 있다. 한편 유엔은 와하카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멕시코 정부에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위한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도 와하카는 전쟁 중이다. 연방 경찰을 와하카 주변과 시내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여 이동을 통제하고 있으며 시위자를 불법적으로 연행, 감금하고 있다. 하지만 연방경찰이 와하카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와하카 곳곳에서 자신들의 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NAFTA를 체결할 당시 멕시코 정부가 국민들에게 내건 슬로나 현재 한미 FTA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슬로는 너무나도 똑같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노동자와 농민을 방패로 찍어 죽이고 기본권인 집회, 결사의 자유를 무시한 채 모든 집회를 불허하고 원천봉쇄하는 노무현정부의 모습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압살하는 멕시코 정부와 너무도 똑같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다주는 것은 저들이 선전하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생존권의 파괴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사실을 목도하고 있으며 몸소 체험하고 있다. 때문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미 FTA는 이미 실패한 미래다. 저들의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가기위한 싸움을 전개하자. 와하카 민중들의 투쟁과 한미 FTA 저지 투쟁은 하나다.
* 미국 반전평화활동가 초청 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일시 : 2006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 장소 : 참여연대 2층 강당 - 참석 : 메데아 벤자민(Medea Benjamin, 미국 Codepink), 이마니 헨리(Imany Henry, 미국 International Action Center) - 사회 및 정리 : 정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