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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10년, 노동자운동의 물줄기를 바꾸자!
- 노동해방 기치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운동으로 거듭나자!
민주노총이 출범한 지 10년이 되었다. 짧게 보아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부터 따지더라도 거의 20년에 걸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피와 땀으로 물든 투쟁과 거대한 전진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러한 역사가 무색하리만큼 민주노조운동은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노동해방을 향한 열망으로 남한사회와 노동현장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다시금 반성해야 할 때다.
현재 노동자운동 위기는 제국주의와 자본의 권력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의 공세와 이에 대항하는 대안적 이념과 전략의 취약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여성․이주노동자 등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을 포괄하고 대표하지 못하는 노동조합운동의 대표성과 정당성의 위기가 등장한다. 또한 그 결과로 노동자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의 축소, 노동현장과 지역에서 일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의 쇠퇴, 노동조합 조직률과 조직력의 약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현장과 지도부간의 괴리, 노동조합 민주주의 위기, 파괴적인 정파 대립과 노동자 대중의 사기 저하 등 악순환이 벌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이러한 조건들을 살피고 노동자운동의 물줄기를 바꾸기 위한 출발점을 함께 찾아 나가야 한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노동자운동의 출발점으로!
최근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른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일명 로드맵)을 입법하기 위한 구체적 방침을 내놓았다. 정부․여당의 로드맵은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을 규제하고 파업을 포함해 노동자의 집단적 활동을 더욱 제약하기 위한 각종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 정부․여당은 노동자과 자본가와 협의를 거쳐 양자의 요구를 종합해서 ‘선진적 노사관계’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에 족쇄를 채우는 것뿐이었다. 왜 정부․여당, 자본가 집단은 노동자들의 행동에 올가미를 채우기 위해 이렇게도 동분서주하는가?
1997년 외채․외환․금융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겪은 후 남한경제는 장기적 위기라는 수렁에 빠졌다. 외환위기에 따른 원화가치 대폭락만도 남한경제 절반을 한 순간에 날려버린 심각한 손실을 의미했지만, 외채 재조정은 초민족 금융권력에게 이중삼중의 이익을 안겨 주었고, 경제구조조정은 그들에게 실질적인 경제 지배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됐다. 이제 초민족 자본은 금융(주식)시장 개방,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남한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주식시장에서 주가차익을 노리거나, 공격적 인수합병을 통해 남한 경제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남한 재벌은 미국 제국주의의 유․무형의 지원과 남한 파시즘의 비호를 받았고, 1980년대 삼저 호황을 계기로 급성장을 경험했으나, 이제는 세계를 뒤흔드는 초민족 자본과 금융권력과 경쟁에서 살아남거나 심지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급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남한 재벌은 이러한 조건을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노동자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노동자의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뿐이다. 정부․여당과 자본가 집단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조차 없도록 저임금을 강요하고, 이로써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노동자가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택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한다.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자본과 권력의 전략에 대항하는 노동자운동을 봉쇄하려고 노동자 대중을 분할․지배하기 위한 신종 법률과 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그들은 각종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법률과 연봉제․성과급 등 새로운 임금제도를 도입해 노동자 사이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있다. 같은 현장 안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거 양산되고, 복잡한 외주․하청시스템이 발달되고, 광범위한 특수고용 노동자가 생기는 이유는 오직 노동자 대중을 더욱 세분하고 그들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위계구조를 형성해 초과 착취를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해서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가 낳은 파괴적인 자본간 경쟁, 초민족 자본의 지배, 남한 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결국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남한경제를 집어삼키려는 제국주의와 초민족 자본이나 경쟁에서 우위에 서려는 남한의 자본과 권력은 모두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함으로써만 부의 원천을 찾을 수 있다.
민주노총 비리사태를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민주노총 전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태는 민주노조운동이 진퇴양난의 위기를 겪고 있던 와중에 터져 나온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순히 어떤 개인이 저지른 부패 사건으로 보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
우리가 남한의 노동자운동을 민주노조운동이라고 부른 이유는 한국노총과 같은 어용노총이 오히려 노동자를 지배․착취하는 도구임을 강력히 비판하고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 대중의 자율적인 노동조합운동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이제 노동조합은 사업장 단위에서는 개별 자본과, 전국적인 차원에서는 정권과 제도화된 교섭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성과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조합의 실천은 심각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개별 노동조합은 노동자 대중 전체의 시야에서 자신의 활동 과제를 구하기보다는 자기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의 이익을 개선하거나 방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력과 자본이 노동자를 분할․지배하려는 신자유주의 전략을 더욱 교활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 노동조합의 투쟁은 고립되거나 파괴되기 쉬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실천이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생활 향상에 기여하기보다는 특정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사이의, 또는 조합원과 비조합원 사이의 격차를 확대하는 데 그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개별 자본에 대한 교섭과 투쟁에 초점을 맞추는 개별 노동조합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에 대항하는 투쟁 속에서 다시금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 상층구조의 상황은 어떠한가? 최근 민주노총 지도부는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기초해 광범위한 노동자의 단결을 확대하기보다는, 정반대로 정권․자본과 특정한 합의를 창출하고 교섭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해서 기층조직과 조합원에 대한 통제를 증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권․자본과 교섭에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흐름이 강화된다면 안정적인 합의구조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는 요소들을 피하려는 경향도 증대될 것이다. 따라서 합의에 부담을 주는 쟁점들, 예를 들어 노동자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에 대한 전면적 반대를 피하고 전투적인 노동자 투쟁을 통제함으로써 결국 노동자 대중 사이의 격차를 다시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개별 자본과 정권과 교섭에 집착하는 노동자운동의 경향이 강화될수록 개별 자본가나 국가는 더 손쉽게 노동자운동을 길들이는 수단을 찾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가장 간단한 방법은 관료화된 노조조직의 지도자들을 매수하는 것이다. 개별자본이 직접적으로 금전을 건네든지, 정치권력이 임기만료 이후 정치적 입지를 약속하든지, 여러 방법을 통해 통해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은 이미 대공장 노조들과 상급단체들에서 널리 벌어졌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노조 비리는 민주노조 운동의 구조적 위기가 발현된 결과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엇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았는지 철저한 반성이 집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모든 현장과 지역, 운동 공간에서 문제를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기업 내로 갇힌 자기중심적 노동조합 활동, 관성적으로 진행하는 임․단협 투쟁, 노사협조주의나 사회적 타협 등을 현재 활동방식을 진단하고 무엇이 이런 활동방식을 낳았는지 함께 토론해 나가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 단결의 구심으로, 사회운동의 기관차로 거듭나야 한다!
최근 노동자운동이 겪고 있는 안팎의 위기와 사기 저하, 잇달아 벌어진 비리 사태는 노동자운동에게 경종을 울린다. 또한 이는 IMF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항하는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기 위한 수 년 간의 노력이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를 모든 운동공간을 통해 수립하고 대중적 흐름으로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우리는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남한의 장기불황이 신자유주의 전략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다. 따라서 정권과 자본은 노동자운동의 근본적 요구에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할 의사도 없다는 사실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다. 노동자운동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위해 우리의 근본적인 과제를 다시 정립하고 투쟁의 기풍을 세워나가야 한다. 계속되는 양보 교섭과 타협에 익숙해지고 패배주의나 냉소주의에 기운 기존 운동은 이러한 투쟁을 세워나가며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노동자운동은 노동자 대중의 단결을 강화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대중운동, 사회운동 집단과 연대를 추구함으로써 질적으로 발전된 투쟁과 운동으로 도약할 수 있다.
특히 비정규직보호법 개악 입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한 투쟁에 헌신적으로 나서야 한다. “싸울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결집해서 결사투쟁하자”는 전국비정규직연대의 호소처럼 11월말로 예정된 파업과 총력투쟁에 결합하자. 이번 투쟁에 전국적으로 힘을 모으기 위한 민주노조운동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또한 노동자운동의 주체를 발굴하고 단결을 확대하려는 일상적인 실천의 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일상적인 여성억압과 노동현장에서 차별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노동자 운동, 인권과 노동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주노동자 운동은 노동자운동이 노동자의 단결을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또한 노동자운동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APEC 정상회담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가장 적극적인 일부가 되어야 한다. 지난 11월 초 미주정상회담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노동자운동과 광범위한 사회운동은 전 세계의 외채․경제위기와 전쟁, 민중의 빈곤과 실업을 낳는 제국주의와 초민족 자본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더 이상 노동자에게 실업과 빈곤,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강요하고, 막대한 부를 수탈하는 자본주의 체계의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하자.
민주노조운동이 커다란 어려움에 처할수록 활동가들의 용기와 적극적인 행동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노동현장과 지역을 비롯한 모든 활동가들이 주체적인 자세야말로 노동자운동의 물줄기를 바꾸는 밀알이 되리라 확신한다. 지난 10년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아래로부터의 혁신과 투쟁을 다짐하자. 민중의 보편적 해방을 지향하는 노동자운동으로, 사회운동의 기관차로 거듭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