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기다려주는 법이 없는 게 시간입니다. 어느새 6월, “독재타도! 민주쟁취!”의 함성으로 뒤덮였던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들도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주의의 요구도, 최소한 권력교체의 요구도 내걸지 않은 채 한 판 축제판이 끝났습니다. 87년 헌법이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의 정치적 담합으로 귀결되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의 요구는 철저히 배제한 채 탄생한 것처럼 항쟁 20년을 기념하는 일도 그런 구도를 넘지 못했습니다.
저는 군사독재자의 자리에 신자유주의 독재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거리를 달리던 투사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는 이때, 그들이 주도하는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대중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투쟁이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한미FTA 체결은 내줄 거 다 내주고도, 더 내줄 것이 있다는 미국의 요구에 끌려 재협상으로 가고 있고, 7월부터 시작되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벌써부터 거리로 내몰리거나 알량한 일자리라도 유지하려고 자존심을 팔아버려야 합니다. 진정 우리는 아직도 항쟁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무기력하게 저들의 기념행사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인가요?
6월은 투쟁일정들이 빽빽합니다. 한 투쟁사안 끝내고 나면, 다른 사안으로 빨리 넘어가야 합니다. 회의는 많은데, 언제 회원들과 공유하고, 투쟁을 준비할까 걱정이 앞섭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중요한 투쟁 일정들이죠. 정신없이 달력투쟁을 하다가 또 한달 후딱 지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무언가 뚜렷한 전환점 하나는 만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요즘 너나없이 힘들다고 합니다. 운동을 하면 일의 성과도 남고, 대중도 남고, 조직은 강화되어야 하는데, 투쟁의 작은 성과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의 기록만 쌓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1년 내내 투쟁했습니다. 그런데도 한미FTA 협상 저지하지 못했고,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하지 못했고, 비정규직법의 통과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기본권을 지키고, 평화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제국주의의 패권적인 침략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고, 공권력을 앞세운 정권의 탄압은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투쟁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매일 회의며, 투쟁이며, 술자리며 소홀히 한 적이 없습니다. 운동하다 병난다고 산재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고용보장이 되는 것도 아닌데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 진출한 진보세력도 아닌 정치인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욕을 먹기도 하고, 운동진영 내에서 발생한 이러저러한 비도덕적인 일들로 인해서 욕을 먹기도 합니다. 힘들게 활동하는 우리들의 충정은 아랑곳없이 비난의 화살을 받기가 일쑤입니다.
저는 올해 초 제안서를 돌렸습니다.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제목의 꽤나 긴 글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글에 동감을 해주었고, 또 다른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포럼의 집행위원장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습니다. 한국진보연대(준)가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합류하지 않는 것은 운동의 단결을 해치는 것이라느니, 좌파 블록을 만드는 것 아니냐하는 오해도 받고 있습니다.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합의회의를 통해 진보운동의 과제를 만들어 보자는 게 말은 좋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니냐는 말에는, 운동 구력이 그래도 20년이 넘는 사람을 그렇게 순진하게만 보아준다는 것에 고맙기도 했습니다. 말들이 많다는 것은 그래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가장 나쁜 점은 아무런 관심도, 의욕도 없는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걱정스러운 일은 이런저런 오해가 아니라 우리는 차이를 강조하는 것에 익숙해 있고, 그 차이로 인해서 의도부터 의심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이유로 삼는 것입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다르지만 같은 지점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가능한 연대부터 찾아내는 것, 그리하여 차이가 결국은 운동의 풍성함으로 발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존의 민중운동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운동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새로운 운동을 만들 수는 없나요?
작은 운동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것,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운동들을 엮어보자는 것, 그래서 중앙 집중이 아니라 분야별로 자생적으로 커왔고, 운동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그런 단위들, 그리고 지역마다에 뿌리내린 자치운동체들이 서로 운동을 점검해주고, 상호침투해주는 그런 운동은 가능합니다. 각자의 전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단위들, 그러기에 지침이나 방침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진보운동의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운동, 집회판이라면 중앙무대에 얼굴마담 하는 몇몇 연설가가 정치 선동하는 게 아니라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주체가 되는 그런 집회, 그렇게만 된다면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으로 전체 진보운동의 기풍을 새롭게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만나면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관계, 소통을 통한 연대가 이루어지는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다 열어놓자는 생각입니다. 포럼에 들어와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만 갖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논의한 것들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안으로 한다면 말이지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그리는 원칙은 수정해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직적인 조직표 대신에 둥근 원으로 조직표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깃발이 아니라 작은 깃발들이 꿰매어져서 큰 깃발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각각의 의제별 워크숍을 준비하는 기획단들이 들어 있고, 사회운동대토론회와 사회운동총회를 준비하는 기획단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집행위원회와 위원장, 사무국이 있을 뿐입니다. 단체나 모임만이 아니라 다른 진보의 세계의 꿈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런저런 진보운동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환영한다는 생각입니다. 재원도 어디 돈 많은 재단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개인들로 조직위원을 만들고, 그 개인들의 참여로 한푼 두푼 모아서 재정도 만들고자 합니다.
이제 운동의 분화가 아니라 총체적인 현실에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강력한 중앙이 있고, 지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전국에 퍼져 있으면서도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비슷한 입장의 단체들이 모여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충분한 운동, 실천에서는 제도화된 운동양식, 관성에 찌든 운동방식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존중하는 운동, 운동권만의 친목대회가 아니라 대중들과 호흡하는 운동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진보운동의 위기는 진보운동에 진력하는 활동가들이, 그리고 현장의 대중들이 함께 극복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그런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만들고자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합니다.
한 번의 회의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그런 포럼이고자 합니다. 8월말 3박 4일로 열리는 우리의 포럼에 동원되고, 조직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모여 열띤 토론과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제안합니다. 우리의 포럼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협소한 기존의 운동틀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들의 논의로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 봅시다. 새로운 사회운동은 가능하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