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권 하 신뉴딜?

 

존 벨라미 포스터, 로버트 W. 맥체스니

*번역: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미국 자본주의가 점차 1930년대 대불황을 떠올릴 만큼 심각한 경제 위기로 황폐화되면서 “신뉴딜”에 대한 광범위한 요구가 등장한다. 이미 신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을 깊은 경제 침체에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2년간 8천500억 달러에 이르는 광범위한 경기부양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신뉴딜은 곤궁한 노동 대중에게 몇 가지 구제책을 약속하기 때문에 모든 좌파들이 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오늘날 미국에서 신뉴딜의 전망은 무엇인가? 현재 위기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나? 좌파의 입장은 무엇이어야 하나? 여기서는 우리 앞에 놓인 난제들을 조명하는데 도움이 될 몇 가지 문제에 국한하여 살펴본다.

 

뉴딜은 애초에 정부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경제회복을 이끌어내려는 시도가 아니었고, 노동 구제 계획을 동반하면서 주요 목표를 기업을 지원하는 임시 구제조치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에 뉴딜 지출의 가장 중요한 몫은 구제조치 시행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버드 경제학자이자 미국에서 케인즈의 주요 추종자였던 앨빈 한센은 <재정정책과 경기순환>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부분 [뉴딜 시기] 연방정부는 절대적 재정확대 프로그램이 아니라 구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구제 프로그램은 도시·농촌 부채 리파이넌스, 은행의 약화된 자본구조 재건, 도산 위기에 처하거나 그럴 위험이 있는 철도 지원의 형태를 띠었다. 재건금융공사, 주택소유자대부조합, 농업금융국은 180억을 구제 조치에 쏟아 부었다. 연방정부는 곤경에 처한 주정부 및 지방정부를 지원했다.

 

이 정도의 대규모 구제 프로그램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물론 1933년 초에 도달한 불황의 전례 없는 심각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경제는 스폰지처럼 메마른다. 이 “스폰지”를 높은 수준의 번영으로 부양하기 위해 설계된 광범위한 정부 지출을 스폰지 자체가 흡수해버렸다. 지출은 낭비될 것으로 보였다. 이것이 구제 조치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때라야 추가적인 자금이 소득수준을 높일 수 있다. 깊은 불황에는 활발한 재정확대가 진전되기 전에 구제를 위한 지출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중문화 상에서 뉴딜과 동의어로 간주되는 공공근로에 대한 연방 지출은 1929년~1938년 사이 매년 확대되었다. 그러나 공공근로에 대한 정부 지출 총액은 1936년까지 192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연방 지출은 늘어났지만 주정부 및 지방정부 지출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정부 및 지방정부는 공공근로 비용을 늘려 경기침체에 대응했다. 그러나 2년 만에 재원이 고갈되었고 공공근로에 대한 지출은 1929년 수준 이하로 하락했다. 1936년경 주·지방 공공근로 지출은 1929년 수준의 절반 이하로 하락했다. 그러므로 한센의 관찰에 따르면 불황기 내내 “연방정부”는 겨우 퇴조를 지연하는 것을 도왔을 뿐이다. 이 동안 이 분야에 대한 연방정부 비용은 거의 500%가 늘어났지만, 전체 정부 공공근로 지출은 같은 기간 동안 12% 인상되었는데, 이는 경제전반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돈이 아니었다.

[기업] 구제 조치에서 일자리 구제 프로그램 및 노동계급에 직접 혜택을 주는 조치들로 강조점이 옮겨진 역사가들이 명명한 “2차 뉴딜”은 불황기 후반부에 등장하여 1936년 선거에서 로저벨트를 압승으로 이끌었다. 이때는 해리 홉킨스가 이끄는 공공사업촉진국(Work Progress Administration, WPA)의 시대였고, 실업보험, 사회보장, 와그너법(법률적으로 단결권 인정)과 같은 진보적인 프로그램 및 조치들이 동반되었다. 이는 1930년대 노동자조직의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통해서 가능해졌다. WPA은 110억을 지출하고 850만 명을 고용했다. 도로, 고속도로, 다리 건설에 주로 지출되었고 그 뿐이 아니었다. 연방정부의 학교급식 프로그램에 가장 처음으로 WPA 기금이 지출되었다 WPA와 다른 일자리 프로그램의 차이점은 WPA는 사회 전 영역에서 필요한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고용했다는 점이다. 콘서트와 벽화그리기, 연극공연 등에도 지출되었다.

이 중 어떤 것도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지침에 맞는 것이 없다. 1937년까지도 로저벨트 뉴딜 행정부는 헨리 모건소우 Jr.가 이끄는 재무성의 핵심 목표인 연방 예산 균형 목표를 대불황의 한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회계연도 1937년과 1938년 예산에서 지출이 삭감되면서 연방 지출이 진정되었다. 동시에 1935년에 통과된 사회보장정책으로 1936회계연도에 노동자들에게 역진적 근로소득세를 과세했고 1941년까지 노령보험 급여가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 대대적인 디플레이션 효과를 발생시켰다.

 

1937년~38년 침체기에 이 모순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 동안 1933년부터 일어났던 경기회복은 완전히 회복되기에 앞서 중단되고 실업률은 14%에서 19%로 껑충 뛰어오른다. 로저벨트 행정부의 심각한 경기침체에 대한 대응은 연방 예산 균형 시도를 포기하고 연준 의장 매리너 에클스가 추진한 강력한 정부지출 활성화와 적자예산으로 경기를 회복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는 의문을 제기했다. 1966년 폴 바란과 폴 스위지는 <독점자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정부 지출]이 공황기 전체에 걸쳐 인상되지 않았나? 뉴딜은 왜 전쟁이 쉽게 입장한 것을 획득하는데 실패 했는가?” 그들이 제시한 대답은 “미국의 독점자본주의 권력 구조에서 비국방비 지출 인상은 1939년 외적 한계에 도달했다. 지출확대에 반대하는 세력이 너무 강력했다.”

 

비국방비 정부지출이 뉴딜 말기에 “외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바란과 스위지의 이론은 GDP 대비 전체 비국방비 정부 지출로 제시되었다. 이는 복지에 대한 정부 기여, 공립학교, 도로, 고속도로, 보건의료, 하수도, 상수도, 전기, 상업, 환경보존, 복구, 경찰 및 소방서, 법원, 감옥, 입법기관, 행정부서등을 포함한다. 바란과 스위지는 미국 독점자본주의의 권력관계 하에서 정부 지출의 GDP 대비 비중이 1939년에 최고점에 도달했다.

 

바란과 스위지의 비국방비 천장 이론(civilian government ceiling thesis)은 형성된 지 40여 년 만에 빛을 보았다. 비 국방비 소비와 투자는 1938년 GDP 14.5%로 상승하였다가(1939년 14.4%) 1940년대 2차 세계 대전 동안의 군비지출의 엄청난 확대로 인하여 하락했고, 1950년대와 1960년대, 70년대 초반에 그 토대를 회복했다. 비국방비 소비와 투자에 대한 지출은 1975년 국민소득의 15.5%로 정점에 이르렀다가(1976년에는 14.9%로 두 번째로 높았음)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14% 수준으로 안정화되었다. 2007년 비국방비 소비투자는 GDP의 14.6%로 올라 1938~39년과 거의 같은 수준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동산 이해관계자들은 공공주택을 반대하고 사적 보건의료 관계자들과 의료 전문가들은 공적 보건의료에 반대한다. 비국방비 지출 내에서 고속도로와 감옥, 그리고 국방비 지출은 예외다. 바란과 스위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택과 보건의료 두 예산 항목에 대한 지출확대를 동시에 검토하면, 요즘 적당한 공공주택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물론 모두가 최소한 전염병 통제를 위해 보건의료에 충분한 지출을 하는 것에 찬성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반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부동산 이해관계자들은 주택 프로그램을, 의료전문가들은 보건의료프로그램에 대해서... 그러나 부동산 이해관계자들이 보건의료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으며 의사들이 주택프로그램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각각이 자신의 영역에서 각각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 이들은 주택 프로그램 확대와 보건의료 확대 모두에 반대하여 세력을 규합하는데 공동의 이해를 갖게 된다. 개별 항목에 대한 반대는 따라서 두 항목에 대한 지출확대가 동시에 검토될 때 더욱 빠르게 형성되며 전체 예산에서 전면적인 인상을 요구할 때 반대는 가장 커진다. 한 항목만 고려될 때 반대는 인상분 만큼이지만 모든 항목이 검토된다면 인상분의 제곱만큼 반대가 커진다.

 

 

 

 

미국 체계 내에서 정부 지출 천장이 경제적 장벽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장벽이라는 사실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GDP 대비 정부 지출의 수준이 미국과 다르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표 2는 2007년 G7 회원국 및 스웨덴의 자료를 비교한 것이다. 전체 정부 지출은 (a) 전체 총계에 직접 합산되는 정부직접구매와 (b) 경제 내에서 소득과 자본을 재분배하는 지출, 이자지불, 사회보험이전지출, 농업보조금, 투자보조등을 모두 포함한다. 정부의 최종소비지출은 1열의 정부구매 비중의 가장 큰 구성요소이며 군사적 목적의 소비를 포함한다. 사회보장이전(3열)은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 체계 전체를 포괄한다. 군비지출자료(4열)은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군비지출데이터베이스에서 가져왔다. (참고 2,3,4열의 합이 1열의 합은 아니고, 전자는 후자의 구성요소중 일부다. 포함되지 않은 다른 정부지출의 구성요소들은 자본 형성, 이자 지불 및 여타 이전 지불이다.)

이 수치를 살펴볼 때 GDP 대비 정부 최종 소비가 미국이 가장 낮으며 GDP 대비 정부 지출 및 사회보장 이전이 최하위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국민소득의 큰 부분을 군대에 쓴다. 2007년 미국 정부 소비 지출에서 군비지출을 뺀 값은 GDP 대비 11.8%다. 명백하게도 미국이 비국방비 지출과 사회보험 이전을 위한 예산을 늘릴 충분한 여지가 있다. 국민소득에서 이러한 예산이 차지하는 몫의 제한은 미국 사회의 권력구조를 반영하는 것인데, 노동자 조직의 상대적 취약성과 거대자본의 상대적 강력함이 그것이다. 미국은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배계급인 부유한 과두집단에 장악되어 있다.

 

<표2> G7 회원국 및 스웨덴의 GDP 대비 정부 지출 구성요소 일부, 2007

 

 

GDP 대비 정부지출a

GDP 대비 정부 최종소비b

GDP 대비 사회보장 이전

GDP 대비 국방비(2006년)

스웨덴

52.6

25.9

15.3

1.5

프랑스

52.4

23.1

17.4

2.4

이탈리아

48.5

19.8

17.3

1.8

영국

44.6

21.6

12.8

2.6

독일

43.9

18.0

17.3

1.3

캐나다

39.3

19.3

9.9

1.2

미국

36.6

16.0

12.1

4.0

일본

36.0

17.7

11.4

1.0

 

이 모든 것은 제국적 권력으로서의 미국의 역할과 그것이 국내 권력구조에 미치는 효과와 분리할 수 없다. 미국의 2007년 국방 예산은 5천 530억 달러(GDP 4%)이었으나 미국의 실제 군비지출은 1조 달러 (GDP 7.3%)였다. 2007년 연방 비국방비 소비 투자는 연방 국방비 소비 투자의 절반도 안 됐다.

 

따라서 우리의 주장은 간단하다. 미국의 비국방비 예산의 정치적 제한이 7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상황에서 이것이 대중적인, 사회변혁적인 투쟁 없이 변화할 리는 없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행정부가 들어서고 대불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말이다. 지구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인류 문명 역사상 가장 심각한 환경 위기도 미국 체계가 먼저 전복되지 않고서는 정부로부터 충분히 대대적인 대응을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이러한 엄혹한 조건에서 정권을 장악한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군비지출을 획기적으로 늘림으로써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미 현재의 전쟁예산을 유지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이러한 우려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런 이유에서 좌파는 군사주의에 대한 반대와 비국방비 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데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동시에, 군비지출이 현재의 상황에서 효과적인 경기부양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배계급 분파들이 볼 때도 의심스럽다. 우선 미국의 군비지출은 이미 능동적인 전쟁 수준으로 전체 군비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현재 수준에서 군비지출을 두 세배 늘리는 것은 미국이 전쟁과 전쟁준비에 미국을 제외한 세계 전체보다 두 세배를 지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다.

가장 중요하게 군비지출 확대가 경제 균형을 효과적으로 촉진할 것이라는 생각은 경제학자들로부터 거부되었다. 경제학자들은 현대 군비지출의 기술집약적 성격과 대부분의 소비가 해외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볼 때 국방비 인상이 비국방비 지출에 배해 긍정적인 고용효과를 덜 낼 것이라고 지적한다.

 

때라서 군비 확대의 주된 효과는 전쟁의 확대와 인류 문명의 파괴다. C. 라이트 밀즈가 썼듯이 “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를 위한 군사적 준비다.” 지배계급 성원들도 핵확산의 시대에 전쟁과 전쟁 준비에 대한 의존성의 증대 위협을 맞이하여 난색을 표명할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옳고 우리가 그러기를 바란다면 이 위기 대응하여 정부 지출을 인상하는 것은 주로 비국방비 지출 확대의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지출은 주로 [기업] 구제를 위한 것이다. 자본에게 중요한 이런 지출은 곤경에 처한 민중들에게 직접 제공되는 소규모의 공공 근로 프로그램에 의해 정당화될 것이다. 전체 정부지출 인상은 정부 지출 수준의 영구적인 인상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조치일 것이다. 연방 지출 증가가 예산의 조건에서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소비와 투자, 지방정부 지출의 감소를 보상할 것 같지는 않다. 경제 전체가 스폰지처럼 마르는 상황에서 스폰지를 높은 소득수준으로 띄우기 위해 설계된 정부 지출은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스폰지 자체를 흡수해버릴 것이다.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채. 그결과 경기회복은 지체될 것이며 경제는 이미 스테그네이션과 금융 디레버리지의 문제로 문제적인 상황에서 약화가 지속될 것이다.

진정한 또는 제 3의 뉴딜과 결합될 수 있는 사회프로그램으로의 회귀는 기업 구제 프로그램이 실행된 후에나 실시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는 최소한 1930년대 중반 규모의 아래로부터의 반란 없이는 실현되기 힘들다. 노동자들은 잿더미로부터 다시 일어나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일으킨 큰 여파를 통한 미국 정치의 급진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비국방비 지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좌파는 기층 민중의 전투적 조직화뿐만 아니라 체계의 논리에 맞서, 정부 예산 확대에 의지하여 일종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을 촉진할 책임이 있다. 주요 요구로는 (1) 정부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알맞은 임금에 유용할 노동을 제공할 책임이 있음 (2) 실업 보상의 확대 (3) 주택을 잃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정부 지원 (4)홈리스 또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이들을 위해 주택 계획을 실시할 것(모기지 구제, 세입자 지원) (5) 부유세를 동반한 진정한 누진세가 도입되어야 함 (6) 복지 확대와 접근성 확대와 함께 식사 프로그램, 푸드 스탬프 (7)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의료보험(단일지불체계) 도입 (8) 연금기금에 대한 정부 보증 (9) 사회보장 및 역진적 근로소득세 철폐 (10)노조조직화에 대한 법적 제한 제거 (11) 연방 최저임금 인상 (12) 30시간 노동주 도입 (13) 전국적인 대중교통 프로그램 (14) 공적으로 소유·통제되는 통신 체계의 확대와 전국적 확장 (15) 공적 교육 기금 인상 (16) 지구를 구하기 위한 생태 혁명이 필요한 상황에 걸맞은 환경보호.

 

물론 미국사회의 현존하는 권력구조와 70년 동안 존재해온 GDP 대비 비국방비 정부 지출에 대한 제한을 고려할 때 위의 모든 요구는 그림의 떡처럼 보인다. 미국 사회의 권력 구조가 변화하지 않으면 그렇다는 것이다. 현존 미국 경제 정치 질서의 맥락 내에서는 자본주의 시장이 작동하는 장을 근본적으로 축소시키는 개혁운동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혁명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운동은 사회 내 민중들의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기회를 방아야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투쟁은 민중의 삶에 물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한 투쟁의 실질적인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이를 쟁취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를 쟁취하더라도 자본주의의 악, 또는 자본주의가 전 세계와 세계 민중들에게 부과하는 위험을 제거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계를 이루는 벽돌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전체 사회를 사회주의적 원칙에 입각하여 재건하는 것 말고는 실질적인 답은 없다. 인구 대다수가 더욱 평등하고 더욱 인간적이고 더욱 집단적이며 더욱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투쟁을 전개할 때 그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 사회에서 비국방비지출과 사회복지에 제한을 두는 지배계급에 맞선 반란을 조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