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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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의 확산과 국제금융체제 개혁 논의의 실상

57차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연차총회에 부쳐

편집팀


9월 29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은 워싱턴에서 세계 184개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세계 경제회복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하고, 57차 연차 총회를 폐막했다. 이번 IMF 총회는 장기화되고 있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제파산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를 모아내고 결의하는 자리였다.
이에 IMF는 총회 직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WEO)를 발표하였는데, 신흥시장의 금융위기 및 유럽과 일본의 지지부진한 경제개혁, 미국의 침체를 전망하는 등 "세계경제가 매우 위태롭고, 내년엔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하여 위기의식을 확산시켰다.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4월에도 국제금융안정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최근 미국경제의 불안정에 따른 기업 이윤의 저하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기업 이윤의 저하가 금융기관의 신용능력을 약화시켜 달러화의 가치하락으로 몰고 갈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신흥시장에서 자본을 회수하도록 하여 세계 금융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폐막과 함께 발표된 공동성명서에 따르면 △내년 4월까지 채무국 파산절차 마련, △채권국 상환조건 완화와 공동 행동 조항 마련, △경제회복을 위한 국제정책 공조 강화, △기업의 투명성 강화, △유럽노동시장 개혁, △일본 금융기관 악성부채 해결, △브라질 경제개혁 가속화, △아르헨티나-IMF 지원협상 타결촉구, △IMF의 경제감독 능력 강화 등의 내용으로 대처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대처방안은 사상최대의 미국주식시장 거품의 붕괴와 세계경제를 장기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을지 모를 남미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도미노 금융위기 가능성에 직면하여 제출된 것이었다.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세계금융체제의 개혁과 관련한 논의를 더욱 활성화시킨 것이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려는 국가들을 위한 파산절차 개혁안이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파산절차 프로그램은 올해 총회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이라며 "이 조치는 국제 금융체제 개혁에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성과를 치켜세웠다고 한다. 여기서 새로운 파산절차 개혁안은 구제금융을 받는 회원국이 자신들의 정책에 대해 1차적인 책임을 지고 개혁 프로그램도 해당 국가가 초안을 잡아야 하며, 구제금융을 받는 국가들도 법적으로 채무상환 일정 및 정책프로그램에 대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봉사하는 국제금융기구와 부르주아 학자 및 각국 관료들의 인식틀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위기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파산절차의 마련으로 촉발된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의 개혁 논의의 배경 및 실상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경제 위기의 확산


9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세계화다. 세계적 수준에서 무역, 투자, 자본이동의 자유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는 미국경제의 향방에 세계경제가 매우 깊숙히 얽매여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의 세계화는 90년대 세계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과 투자의 확대가 미국경제의 불황을 세계경제 전체의 불황으로 만들어버릴 조건을 만들어놓았다. 세계 각국의 증권시장의 운동은 미국 증권시장에 종속되어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경제의 최종소비자 역할을 하고 있어서 미국에서의 소비감소는 전세계 수출감소와 성장을 저하시키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전세계 경제의 동조화가 그나마 미국에게는 모순적인 경제구조를 유지시켜주었던 반면, 신흥시장과 제3세계 국가에게는 재앙과 같은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세계적으로 진행된 변동환율제의 채택, 외환거래의 자유화,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는 미국으로의 자본의 집중을 초래했다. 이러한 자본에는 일본, 중국,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의 저축이 많은 나라들, 프랑스와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과 같은 유럽국가들의 자본 뿐만 아니라 가난한 개도국에서의 자본도피금(예를 들어 1500억불의 외채를 지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기록되지 않은 1300억불의 자본도피가 있다)과 소위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고(달러 준비금)가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미국경제는 해외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오는 자금을 통해 호황국면을 유지해왔고, 국제금융질서를 극히 취약하고 불안정하게 유지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신흥시장의 자금을 흡수하는 한편, 자본 재투자-철수라는 게임을 통해 수익률을 높여왔다. 그러나 이런 질서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경제가 끊임없이 재현되는 신흥시장의 금융위기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 마커스 놀랜드는 "신흥시장으로부터의 자본인출과 신흥시장의 손실이 이미 큰폭으로 이루어진 상태이며, 이에 대한 수치를 살펴보면, 소위 신흥시장에 대한 포트폴리오 자본의 유입은 실제 작년에 바닥났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미국경제는 중남미와 아시아 등 신흥시장 국가들의 경제성장에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경제의 연쇄적인 붕괴는 미국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의 침체는 2000년 상반기 이후 주식시장의 붕괴로부터 표현되었다. 최근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는 뉴욕타임즈를 통해 극도로 팽창되었던 금융시장이 붕괴하면서 경제전체가 디플레이션의 위기로 번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현시기 미국경제는 금리인하정책과 소비수요의 진작(주택시장과 내구성 소비재)을 통해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회성 정책의 효과는 말그대로 지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과잉축적된 자본구조를 바꾸고 투자를 활성화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시장 붕괴와 경제위기는 아직도 채 만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가 2002년 2003년까지 지속된다면 추가적인 파산 및 브라질 및 남미 위기 이상의 주변-반주변 경제의 위기, 새로운 금융공황의 출현 등으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IMF 개혁(?), 위기에 대한 제도적 관리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는 국제금융운동의 불안정성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국제통화기금은 미국 금융업체들이 당면하는 여러 가지 위험을 떠안아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금융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국가가 국내적인 조정을 잘 이루어내어 국제금융계로부터 차입한 채무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다. 즉 구제금융을 통해 채권자의 이익과 국제금융체제의 안정을 보호하고, 금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자본시장을 개방·자유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94-95년 멕시코 페소화의 위기, 97-98년의 동아시아의 위기, 그리고 2000년대 브라질, 터키,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금융위기는 국제통화기금의 정당성을 크게 공격하였다.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처방에 따르는 해당 경제가 은행파산, 기업 도산, 그리고 심각한 수준의 경기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남미는 국제통화기금이 정책에 개입한지 20년 이상이 된 지역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가 파산하더니 브라질과 우루과이 등 남미전역이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나라들이 이미 시장개방을 했고, 자본시장을 자유화했으며 변동환율제로 이행한 IMF 모범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세계적 수준의 금융위기가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도 불구하고 급속하고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러한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미국과 신흥시장국가, 국제경제기구의 엘리트들은 금융의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국제금융체제 구축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제 금융체제 개편과 관련하여 미국 의회는 1998년 11월에 "국제금융기관 자문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이 위원회는 2000년 3월에 소위 "멜쩌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1998년 9월에는 빌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제안을 미국 외교위원회가 받아들여 "미래국제금융체제에 관한 독립 테스크포스"를 구성하여 "번영의 확보를 위한 세계금융체제, 일명 CFR 보고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다. 2001년 11월에는 아시아,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주요 신흥시장국의 경제·금융 전문가로 구성된 '신흥시장국 저명인사 그룹"이 "국제금융체제의 재건" 보고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2002년 9월에 열린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총회에서 제기된 새로운 채무국 파산절차 프로그램 마련과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대가로 해당국가에 권고하는 경제 및 사회정책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 설정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된다.

이들의 주요 논의 축은 첫째, 유동성이 높은 단기자본의 대량 유출입에 따른 문제이다. 둘째, 금융위기의 예방과 해결과정에서 채권자그룹의 비용 분담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채권자 그룹인 G7국가들의 신용공여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삼아 비용을 물리고, 채무상환을 감당할 수 없는 국가들의 파산선언 과정과 채무지불 조건 완화 협상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하자는 것이다. 셋째, 환율안정의 문제이다. 즉 고정환율제 혹은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간의 선택을 강요하지 말고 해당 국가의 사정에 따라 중간제도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상에서 제기된 개혁조치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실행된다면 투기자본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해당 국가의 경제파산절차를 완화해주어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투자자본의 이동과 부채의 흐름을 조정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말하면 금융질서의 개혁조치들은 자본이동의 합리화 과정일 뿐, 실제 세계경제의 광범위하고도 급속한 위기의 확산은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리될 수 없는 민중 생존의 위기, 금융세계화를 반대해야 한다!


위와 같은 방식의 국제 금융질서의 개혁논의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에게 막대한 자금을 빌려준 선진국 금융기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가 격랑에 휩싸여 국제금융자본이 치명적 손실을 반복해서 입는다면 예상보다 빨리 도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본의 입장에서도 세계금융의 체제적 안정을 보장해주는 새로운 금융질서가 아니다. 보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의 부담은 반주변-주변부 국가들에게 집중될 것이며, 전세계 노동자, 여성, 농민들에 대한 수탈과 생존권 말살이 확대 재생산될 것이란 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입장은 불안정한 금융의 흐름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데 있지 않다. 역사상 가장 기생적인 자본운동방식인 금융화·세계화 만이 유일한 대안인양 목매고 있는 저들에게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할 뿐이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미래일 것이다.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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