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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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제도의 금융화는 아주 끔찍한 재앙

기업연금제 도입의 쟁점과 대응의 방향

편집팀

경제의 위기, 그리고 금융화


오늘날 세계경제는 광범위하고도 깊은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즉 사상최대의 미국주식시장 거품의 붕괴와 세계경제를 장기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을지 모를 남미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도미노 금융위기 가능성에 직면한 실정이다. 동시에 초민족적 자본들에게 매력적이고 차별화된 투자처라고 자임하던 남한경제도 비정상적인 성장의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경제는 수출과 투자의 침체, 그리고 생산자본의 수익률 하락속에서도 저금리정책을 통한 소비거품과 부동산 거품, 금융시장의 수익률 증대를 통해 성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민들의 소비가 신용경제의 유지에 위험스러운 지경에 도달했고,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천장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에서 주식시장에서는 부르주아들의 심리적 저지선인 600선마저 무너져내렸다. 이 때 국내외 기관투자가들과 정·재계는 호들갑스럽게 정부가 주가안정을 위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고, 대선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이회창과 노무현은 초당적 협력을 통해 경제의 원활한 회복에 기여하겠다는 말로 금융시장에 신뢰를 보냈다.
이에 화답하듯 현정권은 마지막 국회를 앞두고 노동·자본시장 관련한 친기업적 법안들을 한바구니채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정부는 완전히 개악된 주5일제 법안, 노조 명칭도 쓰지 못하게 하고 단체행동권과 체결권도 박탈하는 [공무원조합 특별법], 노동권 말살을 포함하여 외국자본에 대한 조세권을 포기하고 교육·서비스·의료분야를 외국자본에게 개방하는 [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으며, 농산물 시장을 완전 개방하여 농민의 생존권을 압살시키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올해내에 체결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금융부분에서는 국내외 보험회사의 팽창에 장애가 되던 규제들을 풀어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보험업법]개정,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등에서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저축을 받아 간접투자를 하는 수탁회사(예:뮤추얼펀드)의 역할강화와 자산운용산업의 규제완화를 위한 [자산운용업법안], 노동자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던 퇴직금제도를 대체할 [기업연금제도]가 수개월안에 국회 통과될 전망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경제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한편 자본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법안들로서 향후 한국사회의 (나쁜 방향을 향한) 구조화에 크게 기여할 것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현시기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은 경제의 금융화와 세계화에 조응하며, 친기업적·반민중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정권과 부르주아의 구상 속에 사회보장체계로 불리던 의료시스템, 연금, 보험 영역의 개혁은 금융자본에게 엄청난 자본을 집중시켜주는 주가부양 장치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사회보장기금은 민영화 과정을 통해 금융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주식시장 의 호황에 버팀목이 되었으며, 미국과 유럽의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막대한 부를 집중시켜주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IBRD), 미국 워싱턴과 뉴욕의 싱크탱크와 언론들이 각종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의 개혁 전망의 핵심으로 계속 지적하고 있는 연금제도의 개혁은 이들이 공을 들이는 만큼 계급적 이해가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급박하게 추진중인 기업연금제도에 대한 짧은 분석


주가지수가 500선으로 무너질 즈음, 10월 11일 정부 부처는 공동으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장기 안정적인 주식수요기반 확충을 위한 기관투자자 육성을 위해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기업연금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0월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연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하고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도출되지 않더라도 내년 2월 정부단독으로 국회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일정에 따라 노사정위원회는 10월 16일 경제사회소위원회를 재개하였으며, 빠른 시일내에 한국노총을 설득하여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나섰다. 여기까지가 최근 진행된 상황이다.
한편 정부와 언론에서 발표한 기업연금 도입안은 작년 12월 노동부에서 한국노동연구원 용역으로 준비된 [퇴직금제도 개선방안]과 거의 동일하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추진배경으로 고용보험과 역할 중복/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부담의 경감/ 국민연금재정 악화 우려/ 주식시장의 활성화(최대 20조원 유입전망)을 제시하였다. ▲ 기본방향은 현행퇴직금 제도를 존치시켜 임의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강제제도로의 점차적인 전환을 시도한다. 이유는 퇴직금 제도를 유지해온 기득권 노동자의 반발을 막기위해서 라고 지적하고있다. ▲ 전환 모형은 임의기업연금제도를 선결적으로 도입하고 나서, 신규 노동자부터 강제적 법정 기업연금을 도입하며, 국민연금과 연계를 통해 소득비례부분을 기업연금과 통합시켜나가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법정 기여율이 줄이고, 노·사가 공동으로 추가 기여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도입형태는 확정급부형(DB)와 확정기여형(DC)가 공존하도록 하며, 원리금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을 포함하여 3개 이상(채권형, 주식형, 혼합형)의 투자옵션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자영자를 중심으로 개인퇴직저축 계정을 도입하고, 기업연금 계정에서 개인저축 계정으로 이전되도록 한다 ▲ 기여금과 급여수준은 투자자본 소득을 감안하여 기업주의 부담은 현행 법정퇴직금 수준(임금의 8.3%)보다 낮은 6% 정도로 낮추기로 했다. ▲ 세제 혜택은 적격 기업연금에 대해서만 부여하며, 기업이 기여할 때와 노동자가 기여할 때에는 비과세하고, 노동자가 급여를 받을 때 과세하여 기업연금제의 도입의 유인을 제공하기로 했다.
최근 언론은 위와 같은 정부의 기업연금제 도입안에 대해 전경련이나 증권계의 요구에 비해 노동자와의 타협을 고려한 (안)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의도는 일단 제도가 도입되면 모든 상황이 금융시장의 게임룰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을 알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의존이 자연스럽게(?) 축소되고, 사적연금시장이 노동자들에게 환상을 불어넣을 것임을. 노후의 연금수령액이 자본시장의 수익률에 따라 결정되는 확정기여형이든, 미리 액수가 정해져있는 확정급여형이든 장기간에 걸쳐 지급이 지연된 임금은 축적(적립)되어 경제의 금융적 팽창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이 노후자금을 볼모삼아 노동시장과 노동과정, 노동자를 금융적으로 규율하여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적극적인 투자자로서 노동자가 스스로의 이해를 위해 경쟁에 동참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할 것임을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는 한번에 '완전 적립형· 확정기여형· 강제적인 퇴직계좌'를 추진하지 않고 단계적인 도입방안을 채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외에도 강제성을 띄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와 기존 노동자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며, 도입형태를 노사자율 선택에 맡긴 이유는 기업의 인사관리 정책을 포함한 경영전략을 침해하지 않고, 금융투자로 한몫 잡아보려는 노동자와 보수적인 노동자 사이의 차이를 존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업부담률을 현행 퇴직금보다 크게 낮추겠다는 것은(8.3%->6%) 전경련의 입장을 크게 반영한 것으로서 현재의 기업연금제 도입이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기제가 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연금제도 개혁 조치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것은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연기금 개혁이 신흥시장의 육성을 위해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제시한 (공적연금-기업연금-개인연금으로 구성되는) 3축 연금모델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연금의 금융시장 유입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전제인 완전 적립식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남한의 연금개혁정책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연금체계 민영화, 연금의 금융자본화 경향을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의 민영화, 연금의 금융자본화


최근 남한의 연금개혁은 기업연금제 도입, 개인연금제도의 활성화, 그리고 국민연금의 투자자유화 조치로 특징지워진다. 그리고 그 방향은 퇴직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사회보장적 차원보다는 금융시장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진행되며, 공적연금제도의 역할 축소와 사적 연금제도(기업연금, 개인연금)의 활성화로 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민연금의 경우 1999년 전국민을 가입대상으로 확대하면서부터 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하여 기금운용의 방향을 금융시장 투자자금으로서 효율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후 연기금 주식투자 비율과 해외투자비율은 계속 확대되었으며, 상품에 대한 규제도 지속적으로 완화시켜 벤쳐캐피탈, 파생상품과 같은 위험성 자산으로 투자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개인연금의 경우 1994년부터 시행되어 2001년 2월부터 주식투자 등 선택이 자유로운 개인연금상품의 판매가 시작되었고, 정부의 입·출입 세제혜택 등에 힘입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기업연금은 정착과정에서부터 매년 1조∼5조원씩 주식시장에 투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연금의 금융화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전체 연기금 체계에서 사적 연금의 비중이 확대되는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부분 '사외적립'되어 있지 않은 퇴직금을 '기업연금'으로 전환시켜 2층체계의 출발점으로 삼고, 개인연금을 의무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편 이러한 추세는 세계은행(IBRD)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금제도 개혁안이 제기한 방향과 크게 맞닿아있다. 이들 국제기구는 공적연금제도가 급속한 노령화와 과도한 연금급여, 그리고 수익률 저하에 따른 재정 불안정등으로 인하여 변화되어야 하는데, 적립재정방식이든 부가방식이든 기존의 공적 연금체계가 노후 소득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가정에 따르면 선진국들이 인구노령화와 재정 적자로 고생하고 있고, 개발도상국 역시 인구노령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이 제도가 필연적으로 파산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인 사회보장에 있어서 국가역할을 축소하고 연금제도에 있어 시장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적립형 기업연금체계, 특히 확정기여형 연금체계를 도입하고 개인 퇴직계좌 도입 등을 통해 개인연금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이들은 마치 '객관적'인 차원에서 공적연금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구의 노령화와 같은 인구학적 문제를 푸는데 있어 공적시스템보다 주식시장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사실 이들은 극심한 변동성과 작전을 동원한 부패커넥션을 제외하면 다른 특징은 별로 없는 금융시장이 바위처럼 견고한 것으로 묘사된 반면, 오랜 기간 기능중단도 없이 노령자에게 연금을 지급해 온 정부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방식에 초점을 찍어보자. 이들이 주장하는대로 '적립방식'의 사연금제도로 바꾸는 것이 과연 공적연금 재정적자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부르주아들이 말하는 적립재정방식을 전제로 하는 공적연금 민영화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부담감소가 아니라 노령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해소, 노후소득보장의 개별화를 의미한다. 한 사회에서 노인비율이 늘어난다면 그 사회의 산출 중 노인인구를 위해 쓰이는 것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부과방식'이냐 '적립방식'이냐 하는 연금재정 방식의 변화로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과방식에서 적립방식으로의 연금재정방식의 변화로 달라지는 것은 필요자원의 양이 아니라 단지 자원조달의 경로이다. 노후보장 비용이 연금제도를 통해 곧바로 노인들에게 주어지느냐, 아니면 자본시장에서의 장단기적인 투자과정을 거친 후에 주어지느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주의자들이 연금재정방식의 '적립'식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면 이는 재정문제를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연금기금 형성ㆍ투자가 야기하는 이해관계에 의해 추동된 것임을 역설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금개혁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연금민영화를 통해 누가 막대한 이익을 챙길 것이며,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외 투자기관 및 보험회사, 은행들은 과연 어느 정도로 이득을 볼 것인지,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얼마나 커질 것이며, 국내외 투자가들은 과연 어느 정도 규모로 이익을 보았는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연금개혁의 실질적인 결과를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보험개발원과 증권연구원에서 제출한 경영전략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예상치를 확인할 수 있다)


연금제도 개혁,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에 맞선 대응방향


첫째, 사적연금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 사적연금의 확대는 한편으로 공적연금제도의 재정부담을 덜기 위한 방책으로 작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부문의 축소, 자본 영역의 확충을 낳는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책입안자들이 선전하듯 사적 연금의 확대는 기금의 안정성과 거의 관련이 없고, 실제 비용과 위험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개인의 책임, 소유, 그리고 선택의 원리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할 뿐이다. 따라서 연금제도의 원래 취지인 소득재분배 문제,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노후보장 달성이란 문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연금제도 민영화-사적 연금의 확대를 막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연기금의 투자를 위한 적립을 반대해야 한다. 적립형 사적 연금제도의 도입 및 전환을 통한 재정부담의 축소, 자본시장의 발달, '더 빠른 경제성장', 그리고 주식 투자 수익을 통한 '노후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연금 개혁의 목표는 실제 객관성을 동원한 허구에 불과하며, 적립재정방식은 연기금의 금융자본화를 위한 기본 전제로 작동한다. 혹자들은 재정을 적립해서 사회적 투자를 할 수도 있지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오늘날 금융화·세계화 국면에서 노동자들의 저축으로 형성된 거대한 금융자본의 집합을 어디에 사용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금융자본의 집합을 만들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형성되어 있는 기업연금도입 논의에서 정부가 제시한 (안)의 특징상 적립재정방식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확정기여형이냐 확정급여형이냐'에 한정된 논점을 극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기금시장의 자유화를 반대해야 한다. 연금시장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들, 대표적으로 공적연금의 주식투자비율 확대, 투자대상 금융상품에 대한 자유화, 해외투자 액수의 증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연금을 전문펀드에 용역하청의 형태로 위탁하는 것 등 연기금의 금융자본화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 조치들, 이외에도 연기금, 뮤추얼펀드, 보험사등 기관투자가에게 자산운용의 자유를 부여하는 보험업법과 자산운용법등의 개정 및 제정을 반대하자.SO-LA
주제어
경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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