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 2023.08.16
민주당의 혁신=이재명 대표의 일인지배?
혁신안은 민주당을 이재명 대표의 사당으로 만들 뿐이다
구성부터 문제였던 혁신위원회
지난 8월 10일, 3차 혁신안 발표를 끝으로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됐다. 당초 9월 초, 중순까지 활동할 예정이었으나, 자초한 수많은 설화로 동력을 상실해 활동 기간이 점차 축소되어 한 달가량 일찍 종료하게 됐다.
이런 결과는 혁신위 출범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지도부를 향하는 당내 비판의 화살을 혁신위라는 과녁으로 회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꾸려진 직접적 계기는 송영길 의원이 당대표로 당선되었던 2021년 전당대회에서 당시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장 강래구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을 통해 여러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이 발생한 돈 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태였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재명 대표 본인에 걸려있는 사법리스크로 인해 당 지도부가 부패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정당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6월 27일 발간한 《사회운동포커스》, 「민주당 혁신위의 난맥상」에서도 지적했듯, 비명계도 민주당이 나아갈 바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드러내 놓고 주장하지 못하는 가운데, 결국 지도부의 혁신위 출범을 반대할 수는 없었다. 2019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무죄판결을 촉구했던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의 공동 제안자인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선임은 혁신위의 목표가 이재명 대표의 방패일 뿐임을 증명했다. 이후 꾸려진 김은경 혁신위에서 혁신위원으로 선임된 서복경 혁신위원은 SBS 라디오에서 혁신위가 ‘이재명 지키기 혁신위’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래경 이사장을 낙마시킨 것 이상으로 비명계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렇게 내부 갈등 속에서 출범한 혁신위는 시종 설화에 휘말리며 그 정당성을 잃어갔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제안한 혁신안이 깔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동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1호 혁신안으로 제안한 불체포특권 포기는 지도부조차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지지부진한 논의를 거친 끝에 “정당한 영장을 청구할 경우”라는 단서조항을 달아 겨우 추인됐다. 1호 혁신안이 받아들여지기도 전에 발표됐던 2호 혁신안, “꼼수 탈당 근절, 복당 벌칙 규정 강화”는 1호 혁신안을 둘러싼 당내 갈등 속에 제대로 조명받지도 못했고, 같은 시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김홍걸 의원이 복당하면서 정당성도 훼손됐다. 여기에 김은경 위원장이 청년과의 좌담회에서 여명에 따른 비례적 투표가 합리적이라면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1대 1로 표결을 하냐”라고 발언했고, 이 발언이 노인 비하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 일로 그나마도 없던 권위와 정당성을 모두 잃어버렸다. 누구도 혁신위가 뭔가 할 수 있으리라 전망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최종 혁신안
그런데 혁신위가 어떤 안을 내더라도 받아들여지겠느냐, 빨리 종료하는 게 당을 돕는 것이라는 당 안팎의 비판이 있었음에도,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사퇴를 일축하며 꿋꿋하게 대의원 권한 축소, 권리당원 권한 강화, 현역 의원 평가 기준 강화와 같은 내용을 담은 최종 혁신안을 발표했다. 다만 논란이 됐던 “3선 이상 현역 의원 동일 지역 공천 금지”조항은 빠졌다.
최종안 발표 후 언론은 “화약고”, “폭탄”과 같은 단어로 혁신안을 평가했다. 거대한 당내 갈등을 예고한 것이었다. 역시나 비명계 의원들은 반발했고, 친명계 의원들은 혁신안 수용을 역설했다. 심지어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 내에서도 계파에 따라 갈라졌다. 비명계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런 무리수를 둬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발표를 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발표된 혁신안은 민주당을 혁신할 수 없다. 우선 비명계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이 때문에 혁신안이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다수다. 전망대로 혁신안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통과조차 되지 못한 혁신안이 당을 혁신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다음으로 친명계가 혁신안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곧 혁신과 거리가 멀다는 증거다. 최종 제출된 혁신안은 사실상 혁신위의 근본 목적으로, 이재명 친화적인 체제를 어떻게든 유지하겠다는 안이다. 이는 최근 정치 상황과도 관련된다.
지난 7월 말, 이재명 대표의 ‘10월 퇴진설’이 한 정치 평론가에 의해 언론에 보도되며 논란이 됐다. 평론가 본인이 말했듯 사실 여부를 떠나 10월 퇴진설이 정치권을 뒤흔들 정도로 큰 논란이 된 그 배경을 봐야 할 것이다. 즉 민주당의 총선 승리에 이재명 대표 체제의 유지가 아닌 플랜B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 대북송금과 관련해 이재명 전 경기도 지사에 관련 사안을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하면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어느 때보다도 커진 상황이다. 본인이 직접 불체포특권 포기를 천명했으니 회기 중이라도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될 것이고,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대표의 궐위 상태가 된다. 이때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다시 전당대회를 치르는 상황을 가정하면, 혁신안대로 권리당원 70%, 국민 여론 30% 비율이라는 조건에서는 친명 지도부를 다시 구성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대의원제 축소는 당 지도자의 일인지배로 가는 길이다
친명 일각에서는 돈 봉투 사건으로 혁신위가 출범했고, 대의원제가 있는 한 돈 봉투 사건과 같은 불법 행위의 유인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혁신안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대의원제는, 나아가 대의제는 필연적으로 부패를 가져온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한다. 따라서 저 말이 옳다면 단순히 민주당 내의 대의원제만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있는 한 국회의원을 매수하려는 유인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국회의원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따라서 대의원을 매수하려는 시도 때문에 대의원제를 축소 혹은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엉뚱한 주장이다.
사건의 핵심은 당내 선거에서 매표행위를 했다는 민주당의 도덕적 타락이다. 이를 혁신위도 모르지 않는다. 혁신위가 발표한 혁신안 설명자료에서 언급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당직자, 보좌진의 67.4%가 자당 정치인의 비호감 이유로 ‘위선’을 지적했고, 무당층 중 44.7%는 민주당의 이미지가 1년 전보다 나빠졌다면서 가장 큰 이유로 ‘거듭된 비리 의혹’을 꼽았다. 뭐가 문제인지 알고도 눈 감고 있는데 올바른 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한편 오늘날 포퓰리즘 정치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무기로 대중의 직접 참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대의원제 축소도 이런 흐름의 연장일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흐름이 당내 포퓰리즘 정치인을 걸러내지 못하고 카리스마적 일인지배를 강화하는 경향을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니엘 레비츠키는 그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미국 공화당은 일반 당원과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예비경선만으로 후보를 선출하여 트럼프와 같은 인물을 걸러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미국 민주당에는 슈퍼대의원제도가 정당의 이념과 기준에 따른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슈퍼대의원은 미국 민주당의 선거직 공직자와 상·하원 의원, 주지사 등 전·현직 고위 핵심인사들로 구성된 당연직 대의원을 말한다. 민주당은 1980년대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문제 있는 후보가 대중의 인기만으로 공직후보자로 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미국의 주별 예비경선은 코커스/프라이머리에서 확정된 후보에게 투표할 대의원을 결정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결정된 대의원은 일반대의원[pledged delegate, 서약대의원, 확정된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고 서약했다는 의미.]이라고 하며 확정된 후보에게 투표권을 행사한다. 반면 슈퍼대의원[unpledged delegate, 비서약 대의원]은 이런 과정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지지를 결정할 수 있다. 최근에는 슈퍼대의원이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져 그 비중이 15%에서 5%로 축소됐다. 이 역시도 여러 각도로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 정치에서는 매번 공직, 당직 선거 후보 선출 때마다 큰 논란이 벌어졌다. 언제나 당 지도부의 입맛에 따라 규칙이 변경되고, 이에 불복하는 당내 계파 간 갈등이 폭발했다. 이와 같은 공천 행태는 선수가 경기의 룰을 자의적으로 바꾸는 격으로 끊임없는 파쟁을 낳았다. 이번 혁신위도 최종 혁신안 발표 직전, 현역 의원에 대해 후보 경선 시 감점한다는 조항과 3선 이상 현역 의원의 용퇴를 제안해 큰 논란이 벌어졌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나이가 많으면 투표권 제한하자고 하는 것이랑 같은 것 아니냐”며 “3선 이상 중진이 동일 지역 나가가지고 그 3대 리스크(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리더십 리스크’, 돈 봉투 사건과 가상화폐 투기로 인한 ‘도덕성 리스크’)가 왔냐 묻고 싶다”고 강하게 반발했고, 이상민 의원은 “(이재명 대표에게) 맹종하는 부류들도 다선, 초선 가릴 것이 없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앞서 언급했듯 결국 3선 이상 동일지역 공천 금지 조항은 빠졌지만, 이런 논의가 있었다는 자체가 중진 의원들의 비판을 용납하지 않겠다, 당을 이재명 대표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새로 채우겠다는 지도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미 이재명 대표 체제 아래서 이재명 대표 수호라는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려는 강성 지지층의 폭력적 행동이 묵인되어 왔다. 강성지지층은 이재명 대표에 비판적인 당내 인사에 문자 폭탄을 보내고, 신상털기식 조리돌림을 가하며, “수박”, “낙지탕탕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비난에 열을 올렸다.
이런 행태를 용인하는 데 있어 근저에 깔린 명분은 직접 민주주의다. 현재는 대의원제 아래서 그나마 당내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이들을 견제할 수 있다. 만약 혁신안이 통과된다면 민주당은 강성 지지층에 의해 완전히 장악될 것이다. 이런 결과가 민주당의 혁신인지 타락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